제 1 장 1

제 1 장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어떤 나라에서든지
떠날수 있으며 자국으로 돌아갈 권리를 가진다.》
(유엔 《인권에 관한 세계선언》 제13조 2항)

 

1

그날밤 채석장이 있는 산골짜기로 비구름이 지나갔다. 굵다란 비방울들이 가건물의 함석지붕을 요란스럽게 두드려대더니 시작되던것처럼 홀연 멀어져갔다.

김진서는 인차 잠들지 못했다. 낮동안 돌가루를 들쓰며 정대를 잡아주고 돌을 나른탓에 온 육신이 쑤시고 기침이 나서 참을수 없었다. 한번 기침이 터지면 숨이 넘어가는듯 쿨럭거리며 가슴을 쥐여뜯는데 그럴 때면 그의 유일한 밤동무인 북슬개 《도라》도 정 보기가 딱한지 저도 땅바닥을 발로 허비며 안타까와 끙끙거리군 했다. 그래도 그것만이 유일한 《벗》이였고 위안이였다. 70고개에 이른 비전향장기수 김진서가 한밤중 외로운 산중의 채석장 가건물(창고로 쓰이는 반토굴집)에서 덜컥 숨이 멎는다 한들 누가 알기나 하겠는가.

전라남도 장성의 외진 산골짜기, 장성역에서도 승용차로 한시간나마 달려야 이를수 있는 막바지로서 채석장에서 제일 가까운 마을도 골짜기를 따라 5리쯤 나가야 있었다.

빨리 잠들고싶었다. 잠을 자야 래일 또 일할수 있고 일을 해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할수 있다. 기어이 살아서 고향으로, 조국의 품으로 가려는것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며 목적이다. 얼마전 88살의 비전향장기수 최남규동지가 고향과 안해와 자식들을 부르며 숨을 거둔것을 전후로 벌써 14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세상을 떠났다. 옥중에서 그처럼 모진 고문도 이겨냈던 사람들이 차차로 짚검불처럼 무너져가는것이다.

모지름 쓰며 잠을 청한다. 어떻게 하든 지긋지긋한 이 밤을 보내야만 한다. 밤이 오면 벌써 숨막히고 몸서리쳐지는것을 어쩔수 없다. 밤은 곧 어둠이였고 어둠은 곧 기나긴 34년간의 옥중고초를 의미했다.

또 한번 발작적으로 터져나오는 기침에 손톱으로 침대모서리를 긁어대였다. 아, 어머니! 이 아들을 좀 도와주시우!ㅡ 뼈가 앙상한 팔을 내뻗치며 푸푸 피가 섞인 침방울을 내뱉는다. 어머니라니, 70고령의 늙은이가 어머니를 찾다니!···

아직도 머리칼이 새까만 어머니가 그의 가슴우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천천히 이마를 짚어본다.

《에그ㅡ 몸이 말째면 미리 편질 할게지. 내가 너무 늦게 왔나보구나. 어떻니, 몹시 아프냐?》

여전히 젊어계신 어머니, 그 어머니는 진서가 멀리 남쪽 전선지구로 떠날 때 편지봉투 100장을 사서 아들의 배낭속에 넣어주었다.

《석달이면 돌아온다니 이거면 되겠지. 매일 한장씩 편지를 써보내여라. 알겠지? 매일!···》

그 석달이 3년, 30년, 45년으로 이어질줄이야 그 누군들 알수 있었으랴!···

그는 소란스럽게 한숨을 내뿜었다. 정녕 가고싶은 고향, 보고싶은 부모형제자녀들이였다. 그러나 한생을 념원하고 기다려온 그 길이 인제는 또 아득히 멀어져가는것만 같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김진서와 그의 비전향장기수동료들은 그 희망을 눈앞에 보았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고있던 조미핵대결전에서 그들의 조국이, 공화국이 승리하였던것이다. 당장 전쟁을 일으킬것처럼 을러대던 미국이 무릎을 꿇었던것이다. 그때 비전향장기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만세를 불렀었다.

그런데 뜻밖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던것이다. 정녕 하늘이 무너져내린것같은 심정이였다. 눈앞이 캄캄했다. 여기에 김영삼역도가 《비상령》의 돌개바람을 몰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하여 온 나라, 온 세계가 슬픔에 잠겨있을 때 추악한 역도 김영삼은 조국에서 중대보도를 발표한지 30분도 못되여 괴뢰군과 경찰에 《특별경계령》과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북행길에 오른 조문단(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조문단)성원들을 체포구속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김영삼의 역적행위로 하여 화해와 단합에로 지향되던 북남관계는 급격히 랭각되고말았다.

게다가 조국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한다고 한다. 전례없는 최악의 상태라고 선전되고있다. 이해 (1996년) 5월까지 붕괴되고만다는 《5월위기설》까지 나돌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 누구보다 암담해진것은 진서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이였다. 이제 우리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는 둘째치고라도 조국은 어떻게 될것인가?···

한생을 지탱해온 기둥이 흔들린다는것은 무서운 일이다. 철창속에서도 이렇듯 괴로왔던적은 없었다. 하여 진서는 매일 밤 잠못이루며 가슴을 우벼내는 기침소리만 터뜨리군 하였다.

이윽고 기침이 멎자 그만 노그라졌다. 인제는 잠들수 있을가?··· 게염스럽게 육체를 파먹는 고독, 강철같이 단련되여온 정신력까지 뒤흔들어놓는 희망의 좌절··· 하지만 믿고기다려야 한다. 희망까지 잃으면 더는 견디지 못한다. 우선 자고보자, 정신력도 육체도 보존하려면 지금 당장 잠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목구멍으로 눅눅한 밤공기를 들여마시며 죽은 사람처럼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구석쪽에서 쥐새끼가 찍찍거리며 그를 자극했다. 그 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모포속에 머리를 틀어박았다. 그를 대신하여 북슬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미물같은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쪽으로 가는것 같다.

또다시 컹컹! 짖는다. 기어이 그를 못견디게 하려는 심사같다.

하는수없이 눈을 뜨고 모포를 밀어놓았다. 북슬개가 널문쪽에서 짖고있는것이 이상했다. 문앞에까지 갔으나 목사리가 조여 끙끙대면서 바닥을 긁어대고있다.

쥐새끼때문인것 같지 않았다. 그럼 누가 찾아왔단 말인가?

아니 그럴수 없다. 그렇지만 개짖는 그 소리가 심상치 않다. 딸가닥 하는 돌쩌귀소리도 난것 같다. 그는 늙은이답게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야 이놈, 그만 짖지 못하겠어?》

그래도 북슬개는 계속 땅바닥을 허비며 갈린 소리로 짖어댄다.

하는수없이 침대에서 내려 사슬에 매놓은 개를 풀어주었다. 그러자 《도라》는 널문쪽으로 달려가 발톱으로 허비기 시작했다.

괴이한 일이 아닐수 없다. 정말 누가 온것일가?··· 그는 김빠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가 왔소?》

대답이 없다. 문짝을 허비던 개가 갑자기 겁에 질린듯 가릉거리며 그한테로 돌아왔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석공젊은이가 《도라(범)》라는 요란스러운 이름을 달아주었지만 컹컹 짖어대는것밖에 모르는 털부숭이개이다.

《누구시오?》

또 소리친다. 《도라》도 용기를 내여 왕왕왕왕! 하고 소리친다. 대답이 없다. 그럼 돌쩌귀소리는?··· 바람때문이라고 믿고싶지는 않다. 그는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았다. 수십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제일 발달한게 청각이였다. 끔찍스러운 34년간의 암흑세계에서 쥐새끼들이 움직이는 소리로도 큰놈인가 작은놈인가를 가려듣던 그였다. 흔히 비전향장기수들은 눈내리는 소리도 알아듣는다고 했다. 나붓나붓 하느적거리며 손바닥만한 창턱에 내려 앉는 눈송이들의 미세한 속삭임을···

그는 손더듬으로 성냥을 찾아 불을 켰다. 석유등잔에 불을 달고 몸을 일으키자 북슬개가 용기를 내여 문쪽으로 달려가더니 문짝을 허비며 왕왕 짖어댔다. 널판자로 대충 짠 그 문틈에 종이말이가 끼워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것을 뽑아들고 등불에 비쳐보았다. 다음순간 흠칫 놀라며 문을 활 열었다. 도대체 누가 뭣때문에 이런 쪽지와 돈을 끼워놓았는가?···

밖에서는 바람에 부대끼는 숲의 설레임소리가 솨ㅡ 솨 파도쳐오고있을뿐 모든것이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먹장구름이 채석장의 벌거벗은 산너머로 황황히 밀려갔다. 김진서는 가설건물주위를 한바퀴 빙 돌았다. 북슬개가 끙끙거리며 인적이 나있는 산자드락쪽을 알려주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자기의 정체를 숨기고싶어하는 사람이 왔다갔다. 낮에는 10여명의 인부들이 일하는 곳이므로 밤에 공구창고를 거처로 삼고있는 그한테 돈과 쪽지를 주려고왔다 간것이다.

방에 들어와 다시 등잔불을 켰다. 그리고는 까딱 움직이지 않고 그 쪽지를 거듭 읽었다.

 

《김진서씨.

당신과 다름없이 여기 이남땅에 일점 피붙이도 없고 유명을 알릴수도 없는 한 로인이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지리산빨찌산관계자로서 6. 25당시 장흥지구사령부 정치교무과장 및 지구사 부참모장사업을 맡아할 때 리화녀대출신인 하정례와 인연이 깊었고 광주포로수용소에서도 접촉이 있은줄 알고있습니다. 출소이후 하정례와 그의 양딸 아라에 대하여 소식들으신건 없는지?··· 혹시 그녀와 딸에 대하여 알고계시는것이 있으면 TEL 741-1983 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생명이 꺼져가는 한 로인의 간절한 부탁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쪽지에 씌여있는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유명을 알릴수도 없는》라고 썼듯이 이름도 없다. 전화번호와 차비 등에 쓰라고 한듯한 돈, 그것뿐이였다.

김진서는 두번세번 쪽지를 읽었으나 도대체 누가 쓴것인지 짐작할수 없었다.

다시 밖으로 뛰여 나갔다. 골짜기로 통하는 외통길을 달리며 《이보시오, 이보시오!ㅡ》 하고 소리질렀다. 북슬개 《도라》가 신이 나서 앞질러가며 왕왕 짖어댔다. 그러나 어둑컴컴한 골안에서는 골개물소리만이 소란스럽게 울려올뿐이였다.

후둑후둑하는 비방울들이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랭기를 머금은 바람이 희슥해진 머리칼을 날렸다. 그는 헐금씨금하며 멎어섰다. 부질없는짓이다. 《유명을 알릴수도 없다》고 한 그 로인이 거기에 있을리가 없는것이다.

다시 가설건물로 돌아왔다. 등불을 밝히며 또 한번 쪽지를 읽고나서 홱 집어던지고말았다. 《도라》가 날쌔게 그것을 물고와 새로운 장난질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지만 담요를 뒤집어쓰고말았다. 더는 시간을 허비하고싶지 않았다. 이제 잠들지 못하면 래일은 더욱더 곤욕스러워질것이다.

그러나 그 한장의 쪽지는 끝내 그를 잠들지 못하게 했다. 온밤 궁싯거리며 그는 흘러간 먼 시절 40여년전의 과거에로 자꾸만 빠져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