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8

제 3 편

8

 

윤철과 그의 대원들은 집결지점으로 돌아가고있었다. 기계화보병려단을 비롯한 군단관하 많은 련합부대 정찰병들이 각기 자기들의 목표물을 찾아 《적》진으로 뚫고 들어갔었다. 그들은 《섬광》전야에 싸운 사람들이였다. 사실 그것은 간고한 싸움이였다. 긴긴 낮과 밤을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땅굴을 파고 위장해있었고 마침내 2㎞나 되는 물속을 기여 《적》의 전방지휘소에 접근하여 다시 벼랑을 톺아올라 거기서 바줄을 타고 통신결속소로 날아들어 순식간에 들부셔버렸다. 그리고는 거의 수십리를 달리고 또 달려 항공타격이 있기전에 《적구》에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집결지점으로 돌아가고있다. 인제는 돌아가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하고 보고만 하면 된다. 여느때 같으면 무선으로 보고할수도 있었으나 이번엔 공격개시전까지 일체 무선기의 리용이 금지되여있었다. 정찰병들의 습격전은 직승기에서 확인하였을뿐이다.

앞서가는 윤철소대장의 걸음은 빨랐다. 림정산은 대렬뒤쪽에서 부지런히 다리를 놀리며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만약 이것이 실지전쟁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였을가? 지금 이렇게 공격하는 부대들을 경탄의 눈길로 바라보며 기꺼운 마음으로 돌아갈수 있을가?···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아마도 전쟁이라면 우리들중 많은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을것이다. 그건 사실이다. 불에 타고 찢겨져 너덜너덜해진 위장복을 입은 몇사람만이 서로 부축하고 서서 공격하는 부대들을 바라보고있을것이다.··· 그는 그러한 장면을 머리속으로 그려보았다. 그것이 어느 영화에서 본 한 장면과 신통히 같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는 험상궂게 된 사람들의 얼굴모습도 그려보려고 애썼다. 소대장과 그를 부축하고있는 무선수 최윤두··· 물론 무선기는 파괴되였다. 그는 한팔에 붕대를 두툼히 감고있다. 그다음 사람은···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가운데 자기자신을 포함시킬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다. 그자신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하였던것이다. 윤철소대장은 희생적으로 싸우다 쓰러진 정산이며 다른 전우들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말라터진 입술을 꽉 악물고있다.···

오늘 정산은 처음 자기자신을 죽음과 결부시켜 생각해본다. 실전과 같이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전투훈련이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을뿐더러 어떤 숭엄한 생각까지 불러일으킨다. 그는 비로소 지금 벌어지고있는것과 같은 대공격작전도 자기자신을 포함한 이름없는 보통 병사들의 희생적인 투쟁의 대가로 마련된다는것을 가슴뿌듯이 느끼게 되였다. 바로 여기에 정찰병들의 긍지가 있고 행복이 있는것이 아닐가?!···

그는 자기의 이 생각을 어머니에게 그리고 인제는 아버지에게도 써보내고싶었다. 새로 편지거래를 시작한 윤철소대장의 동생 화옥에게도 써보내고싶다. 자기의 생각, 소대장의 생각, 구대원 최윤두의 롱담이며 지금 입고있는 감탕으로 매닥질된 군복에 대해 그리고 속옷까지 흠씬 젖어버렸어도 추운줄 모르고 걷고있는 자기의 기분에 대하여 모조리 쓰고싶었다.

지금도 간밤에 차디찬 얼음물속을 기고 또 기여가던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지리만큼 으쓱하다. 하지만 참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가며 이발을 떡떡 맞쪼으며 무릎이 으깨여지는듯 하는것도 참고 이기며 무엇을 생각했던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뵙던 그날의 감격을 생각했었다. 그날 그이께서는 윤철소대장에게 림정산을 펄펄 나는 싸움군으로 잘 키우라고 말씀하시였다. 아직 코밑에 면도도 대보지 못한 나어린 전사를 잊지 않으시고 후에도 려단장동지에게 정산의 생활에 대하여, 훈련성과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였고 며칠전에는 아버지의 진정에 대하여 친히 알려주시였다. 아버지와 결별했던 이 아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육친의 정을 다시 이어주시였다. 크나큰 사랑을 되새기며 정산은 끝끝내 《적전방지휘소》에까지 뚫고 들어가 임무를 수행했던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써보내면 어머니와 아버지는 얼마나 기뻐하실가.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도 아마 우실것이다.

정산은 아직 아버지가 우시는것을 본 일이 없다. 분노의 눈물이 눈가에 초물같이 맺혀있는것은 보았어도 슬픔에나 기쁨에 겨워 우시는것은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물을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저릿저릿해났다. 두팔벌려 아들을 부르고 또 부르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웨침이 귀전에 쟁쟁했다. 《정산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하고 아버지는 편지에 썼다. 《나는 너를 탓하지 않는다. 아직 단 한번 너를 원망해본 일도 없다. 여직껏 너와 네 어머니의 가슴에 못질만 해온 이 아버지인데 누굴 탓하고 누굴 원망하겠니. 애비구실을 못했으니 너무도 응당한 일이지.

네가 이 애비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까닭을 나는 안다. 알아도 너무나 잘 안다. 그렇지만 정산아, 인제는 믿어다오. 나도 인제는 새 출발을 하게 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친히 늙고 버림받고 쓸모없이 된 나같은 고목에도 다시 꽃을 피우게 해주셨으니··· 정말 이 고마운 은덕을 어떻게 다 갚을수 있겠니···》

군데군데 눈물자욱이 어려있는 편지였다. 한생을 깡그리 다 바쳐 새로운 강철재료의 연구성과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사랑과 은덕에 보답할 맹세로 이어진 편지였다. 정산이 역시 그 편지를 눈물로 적셔놓았다. 친아들마저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마음속으로 결별해버린 아버지, 비난받고 버림받던 그 아버지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소생시켜주신것이다. 이제 와서야 비로소 정산은 아버지의 마음속에 시꺼먼 옹이처럼 박혀있던 남모르는 고민과 아픔이 리해되는듯 싶었다. 그 아버지의 마음속에 깃들어있던 꿈과 념원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것이였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듯싶었다. 바로 그것을, 친아들도 보지 못한 그 소중한 마음을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은 알아주신것이다. 아아, 정산아! 너는 왜 아버지의 그 꿈과 념원을 보려고도 하지 않았더냐. 그 아버지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ㅡ 정산이 너를 얼마나 마음속깊이 사랑했는가를 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더냐!···

사람이 진정 인간답게 되는데는 한평생도 모자랄수 있고 단 하루면 충분할수도 있다는 말이 있다. 누가 그렇게 말했던가,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아니면 소대장동지가 한 말이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들이 걸어온 뒤쪽에서 땅크포들이 무섭게 꽈당거렸다. 그러자 지금까지 축에 들지 못하고있던 박격포들이 오돌차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초기타격의 성과에 이어 맹렬한 돌격전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땅크들이 야산중턱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며 내달려가자 뒤미처 열바퀴차에 견인된 대구경호송포들이 나타났다. 제1제대부대들의 돌격을 엄호하기 위하여 이동해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대구경호송포들은 땅크들처럼 강물을 헤가르며 달리지 못한다.

포차들이 강기슭에서 부릉부릉하며 세차게 배기가스를 내뿜었다.

특히 공병들이 놓은 배떼다리 중간쯤 되는곳에서 적십자표식을 한 위생차가 어디에 고장이 났는지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경적소리가 요란히 울리고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누군가 지독한 욕설까지 퍼부어댔다. 뒤에 밀린 차들속에서 대좌견장을 단 키큰 사람이 급히 걸어오더니 무엇이라고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러자 위생차뒤에 멎어있던 열바퀴짜리 포차가 부릉부릉 하더니 위생차를 밀어내기 시작하였다. 째지는듯 한 녀자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간호원들이 앞뒤로 달아나고 운전칸에 앉아 마지막까지 버티려고 하던 운전수마저 어망결에 문을 열어젖히며 물속에 뛰여들었다.

열바퀴차에 밀린 위생차는 천천히 한쪽바퀴를 허궁 쳐들고 물속에 빠졌다. 그리하여 배떼다리의 혼잡은 가라앉았다. 숱한 포차들이 배떼다리 량옆에 물러난 간호원들에게 파르스름한 배기가스를 들씌우며 기세좋게 지나갔다. 얼마후엔 포차들사이에 끼워 대좌의 승용차도 지나갔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면서 정찰병들은 산비탈을 가로질러가고있었다. 정산은 자꾸 발을 걸채이면서도 그 배떼다리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윤철소대장이 《소대ㅡ 섯!》하고 구령을 쳤다. 그는 손목시계를 보고나서 배떼다리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우리가 저 처녀들을 좀 도와줘야겠소.》

배떼다리우에서는 간호원처녀들이 발을 구르며 지나가는 포차들에 대고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누구도 그들을 도와줄념을 못했다. 지어 포차우의 포병들조차 손을 내저을뿐이였다. 위생차 하나때문에 호송병들의 전방진출이 늦어지면 엄중한 후과가 초래되는것이다.

정찰소대가 물에 들어서자 처녀들이 환성을 질렀다.

《동무들, 고마와요!ㅡ》

《아이 정찰병들이군요. 어데서 불쑥 나타났을가!》

《하늘에서 내렸소.》 최윤두의 말이였다. 《하늘의 선남들이 땅우의 선녀들을 돕자구 내려왔소.》

《어마나! 이 동무 말두 꽤 재미나게 하네ㅡ》

《말만 재미나게 하는줄 아오? 생긴건 또 얼마나 의젓하다구 자, 처녀동무들ㅡ 좀 자세히 봐주ㅡ》

격렬한 포성의 메아리를 들으며 웃고 떠든다는것은 좀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윤두의 익살엔 웃지 않을수 없었다. 정찰병들과 간호원들 그리고 뒤늦게 따라나선 얼마 안되는 공병전사들까지 왁자하니 웃으며 차에 달라붙었다.

간호장인듯 한 처녀상사가 윤철에게 거듭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윤철은 《우리도 신세질 때가 있겠지요.》하고 말했다. 웬일인지 처녀들과만 마주서면 주눅이 들어보이는 그였다. 정산의 눈으로 보건대 윤철소대장은 아직 한번도 어느 한 처녀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것 같았다. 그저 맵짜게 구령을 치고 앞장서 내달리고 명중사격을 퍼붓고··· 지금도 그는 대원들을 둘러보며 구령을 친다.

《자, 동무들! 단단히 잡구 냅다 밀기요!》

어느새 위생차운전수는 물이 찬 운전칸에 올라가 앉았다. 모두 소대장의 구령에 따라 《하나ㅡ 둘ㅡ 영싸!ㅡ》하면서 힘껏 용을 썼다. 배떼다리우를 지나가는 포차우에서도 응원을 했다. 3월의 차디찬 물속에서일망정 기분은 흥거로웠다. 다들 목터지게 웨치며 한쪽으로 허궁 들려있던 차를 바로 돌려놓고 기슭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강기슭으로 나갈수록 점점 더 힘들어졌다.

사람들도 맥이 빠졌다. 특히 정찰병들은 련이틀째 공중에서 땅우에서 또 물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였으므로 헉헉 단김만 내뿜기 시작했다. 정산은 다시 온몸에 스며드는 오한에 이발을 떡떡 맞쪼았다.

그때 최윤두가 바줄을 메고 왔다. 무슨 수로 어떻게 구슬렸는지 그는 배떼다리로 올라서던 포차들중에서 한대를 이쪽으로 꽁무니를 돌려대게 했다. 간호원들이 또 환성을 질렀다. 처녀상사는 최윤두더러 《하사동문 이름을 어떻게 부르나요?》하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자 최윤두는 《옛, 최윤두라고 합니다.》하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있는 좀 어려보이는 처녀의 귀에 대고 역시 큰소리로 《옥희동무, 내 이름이 어떻소. 괜찮지?··· 잘 기억해두라구.》라고 했다. 떠들썩한 웃음판속에서 그 처녀가 《내 이름이 뭐 옥흰가?》하고 샐쭉해서 쏘아붙이자 최윤두는 《그럼 뭐요, 은희? 선희?··· 난 희자가 달린 이름을 좋아하는데 어느쪽이요. 명희? 정희?》하고 떠들어서 또 한바탕 웃게 했다.

차가 기슭에 끌려나가자 처녀들은 정찰병들에게 또 입을 모아 고맙다는 인사말을 퍼부었다. 그리하여 처녀들의 선망어린 눈길을 받으며 비록 지치고 물참봉이 된 그들이였지만 마음이 흐뭇해서 기슭을 떠났다.

바야흐로 제2제대부대들의 결전진입시간이 다가오는듯 했다. 비행대들이 또 출격하였다. 보이지 않는 먼 산너머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무서운 대집중타격이 또 거기에 가해지고있는것이다. 아마도 그 집중포화를 들쓰고있는 산들은 밑뿌리채 뒤흔들리고있을것이다. 흙도 바위도 다 타고 녹아버릴것이다. 정산은 암갈색의 포연이 구름처럼 드리운 그쪽을 자꾸 뒤돌아보았다. 윤철소대장의 말에 의하면 그런 산들에선 몇해동안 풀도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인제는 몽땅 파헤치고 뒤집어엎고 송두리채 들부셔놓았음직한데도 계속 포화를 들씌우고있다. 저 방사포탄 한발이면 황소 한마리값이라던데··· 정산은 병사들속에서 떠도는 말을 생각하며 그토록 아낌없이 들붓는 포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얼굴에 불어치는 바람이 훗훗하게 느껴졌다. 산간지대의 봄은 여전히 쌀쌀하고 지어 맵기까지 했으나 불의 소나기가 대기를 덥혀놓은듯 했다.

하늘은 잔뜩 흐렸다. 재빛의 어두운 하늘에서 희미하고 벌거우리한 태양이 짙은 포연속을 가까스로 헤염쳐갔다.

정찰병들이 가로질러가는 둔덕우에서 촬영가들이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군복입은 사진가, 촬영가들이다. 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준전시상태선포와 아울러 진행되는 이번의 타격집단전투훈련을 력사에 길이 남기려고 《섬광》의 열점에 렌즈의 초점을 맞추고있는것이다. 아까는 《나》형무개차를 타고있는 그들을 보았는데 지금은 이 언덕우에 올라있다.

그들쪽을 슬금슬금 곁눈질하며 최윤두가 말했다.

《전전해 군단기동훈련때말야, 한 촬영가가 날아나는걸 봤는데 말야···》

정산은 걸음을 빨리 하면서 그의 곁으로 가붙었다. 의심스러운데가 많긴 했어도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귀를 솔깃하게 한다.

《글쎄 대위의 군사칭호를 단 그 사람이 그렇게 무식할수야 있겠나. 평곡사포화력진지뒤에서 의자우에 올라서서 일제사격의 멋있는 장면을 찍으려 했거든. 그런데 포병들은 그가 뒤에서 촬영준비를 하는걸 몰랐다는거야. 다들 사격준비에 바빴거든··· 일이 안될라니 그렇게 된거지··· 결국 일제사격과 함께 그 사람은 허궁 날아났는데 글쎄 얼굴엔 온통 모래알이 들여박히지 않았겠나. 그걸 파내느라구 무던히두 고생을 했을거야. 잘 생긴 사람이였는데···》

정산이 물었다.

《그래 그담은요?》

《그담?··· 알게 뭐야. 우린 바쁜 사람들이니 그저 지나가구말았지.》

정산은 입이 쓰거워 더 말을 안하기로 했다. 한순간 촬영가들쪽을 흘깃 바라보며 그네들이 정찰병들에 대해서는 왜 전혀 관심이 없는지 조금 아쉬워했다. 지난밤 얼음물속을 기여가고 죽기내기로 바위벼랑을 톺아오르는것을 그들이 알기나 하겠는가!···

윤철소대장이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걸음을 맞추었다.

《힘들지?··· 이젠 다 왔소. 조금만 더 가면 집결구역이야.》

소대장은 정산의 얼굴에서 피로한 기색만을 발견한 모양이다. 사실 그는 극도로 지치긴 했어도 힘들다는 생각은 없었다. 이것도 역시 오늘 처음으로 체험하는것 같다.

그는 다시 하늘을 날고싶었다. 지금 온몸이 녹초가 되여버렸어도 무방하다. 온몸이 얻어맞은것처럼 쑤셔대고있지만 그리고 피곤에 몰려 금시 눈을 감고 잠들어버릴것 같지만 그래도 일없다. 락하산을 지고 비행기에서 잠간 졸면 되는것을! 그런 다음 캄캄한 야공에서 돌덩이처럼 떨어져내리면 되는것을!··· 그는 자고있었다. 터벌터벌 걸어가면서 눈을 감고있었다. 얼어들었던 몸이 훈훈해지면서 어쩌는수 없이 졸음에 취해버렸던것이다. 가까이에서 걷고있는 윤철소대장과 최윤두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거의나 꿈결에서처럼 듣고있었다.

《저ㅡ길 보십시오.》 최윤두가 하는 말이다. 《무선통신차가 발전기를 달고 갑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거요?》

《아, 소대장동지! 소대장동진 늘 정찰병이란 사소한 징후라도 놓쳐선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ㅡ 그랬지. 그래 저 무선통신차를 통해 뭘 알아냈소?》

《아 그거야 간단하지요. 지금 저 무선통신차는 무선장애를 극복하려고 주파수대역이 서로 다른 무전기들로 전방지휘소 무선통신을 보장하기 위해 이동합니다. 발전기까지 달고.》

《음ㅡ 무선수가 다르긴 다르군.》

《아, 또 있습니다. 저 무선통신차가 이동하고있다는것은 곧 제1제대부대들이 〈적〉의 1참호계선을 돌파하고 확대하고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괜찮아!》

《아, 내야 최윤두아닙니까!》

그들은 소리내여 웃었다. 정산은 졸며 걸으면서 생각하였다. 좋은 소대장이다. 정산에게는 혈육보다 더 친근한 맏형벌이다. 그리고 부소대장 길덕수, 분대장 김광찬, 무선수인 최윤두··· 정말이지 다들 얼마나 귀중한 동지들인가. 그들모두가 정산이를 위해 얼마나 애써주었던가···

별안간 정산은 돌부리에 걸채여 비틀거렸다. 윤철이 제때에 그를 부축해주었다.

《정산이, 더 견디지 못하겠으면 무기를 이리 내오.》

《아, 소대장동지, 일없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는 막무가내로 소대장이 내민 손을 뿌리쳤다. 그는 더 이상 소대장과 동지들의 짐이 되여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이제 림정산은 더는 중대의 《부양가족》이 아니다.··· 그는 소대장에게 슬쩍 웃어보이고 《좀 졸았댔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바삐 걷기 시작했다.

물에 젖은 군복에서 김이 오르고있다. 태양도 높이 떠오르는것 같다. 화약가스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때 뽀얗게 먼지를 일구며 달려오던 승용차가 비탈진 길아래쪽에서 멎었다. 차에서 내린 대좌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동무들! 윤철이!···》

려단참모장이였다.

소대장이 대오를 멈춰세웠다. 《소대 차렷!》하고 구령을 친 다음 그를 맞받아 비탈면을 뛰여내려갔다. 려단참모장이 손을 내저었으나 윤철은 끝까지 규정의 보고를 하고나서 둔덕우의 소대원들에게 쉬엿구령을 내렸다.

려단참모장은 윤철의 손을 잡고 힘주어 흔들어준 다음 바삐 서둘며 올라왔다. 올라와서는 정렬한 대오의 맨끝에서부터 한사람 한사람 반갑게 손을 잡아흔들었다.

《동무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정산의 차례가 오고있다. 려단참모장도 정산을 알고있다. 거의나 병적으로 하늘을 무서워하던 병사를 그가 모를리 없다. 더우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소대장 윤철과 그를 친히 만나주신 다음부터 각별히 관심해왔었다. 그제밤 《적》전방지휘소와 통신결속소 습격임무를 받고 직승기에 오를 때에는 정산의 두손을 꽉 잡고 《정산동무, 잘 싸우오. 우린 동물 믿소!》라고 말해주었다.

참모장은 지금 허우대가 큰 장성부와 마주 서있다. 다음은 최윤두 그리고는 정산의 차례이다. 벌써 참모장은 이쪽을 향해 눈웃음을 지어보이고있다. 그 의미는 《정산동무, 우린 믿소. 동문 꼭 영웅이 될거요.》하는것 같았다. 정산은 그를 향해 미소를 그리며 심호흡을 하고나서 허리를 쭉 폈다.

그 순간이였다. 머리우에서 날카로운 부르짖음소리가 터졌다. 사람의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운 째지는듯한, 거의 비명에 가까운 웨침이였다.

《발전기가 군다!ㅡ》

정산은 머리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헉ㅡ 하면서 무수한 바늘끝같은 화약내섞인 바람을 들이켰다. 오불꼬불 길이 뻗어간 릉선우에서 무엇인가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전체 정찰소대가 그쪽으로 머리를 돌린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였다. 커다란, 육중한 쇠덩어리가 굴러내리고있었다. 잡관목을 짓이기고 바위돌에 부딪쳐 허궁 쳐들리면서 무서운 기세로 정찰소대를 향해 달려들고있었다. 그밑의 경사면엔 참모장이 타고온 승용차가 서있고 포차들이 꼬리를 물고있었다.

눈앞에 날아들고있는것은 발전기였다. 무선통신차가 달고 오르던 중유발전기, 무선장애때문에 전방지휘무선통신을 보장하려고 이동한다던 발전기, 그것은 정산이 꿈결에 들은 말이 아니였던가!··· 아마 발전기는 릉선우의 급경사면에서 한쪽으로 기울며 굴러내렸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 어떤 세찬 충격에 련결고리가 끊어졌는지··· 너무도 급작스러운 일에 모두 입을 딱 벌린채 얼어붙고말았다. 아무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놀란 두눈마저 굳어져버렸다.

그 순간 윤철이 《비켜라!ㅡ》하고 목터지게 부르짖으며 경사면을 뛰여올랐다. 굳어져버린 대원들을 닥치는대로 밀쳐내고 쥐여던지며 발전기를 맞받아 뛰여오르고있다. 그때 정산은 발전기와 제일 가까운 맨 웃쪽에 있었다. 소대장의 웨침소리가 그를 정신들게 했다. 비로소 우당탕 퉁탕ㅡ 달려드는 발전기를 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별안간 깨달았다. 그렇다! 한순간에 머리속을 스쳐간 그 생각에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목이 타들고 혀가 말라들었다. 심장의 피가 길길이 솟구쳐올라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눈앞에서는 번개불이 번쩍거렸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무서운 결심을 내렸는가 하는것도 미처 의식할새가 없었다. 소대장의 거친 웨침소리와 그의 머리속에 스쳐간 무서운 생각 그리고 그가 무기를 내던지며 몸을 날린것 등 그 모든것은 거의 동시에,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그는 달려드는 소대장을 막으려는듯 한팔을 쭉 내뻗치며 《소대장동지!ㅡ》하는 목갈린 웨침소리와 함께 무서운 기세로 덮쳐드는 발전기밑에 몸을 던졌다.

한순간 타는듯 한 무서운 충격이 그의 전신을 으깨여놓았다. 급기야 심장의 고동이 멎고 호흡이 멎고 피의 흐름도 멎어버린듯 했다.

오로지 순식간에 무섭게 커지는 날카롭고 뜨거운 고통의 물결이 그를 휘감아 동댕이쳐버렸을뿐이였다.

두번째의 모진 충격은 윤철에게 가해졌다. 그러나 정산은 소대장이 뒤따라 몸을 내던진것도 알지 못했다.

한순간 시커먼 어둠속에서 파아란 섬광이 펑끗! 하는것 같았다. 그러자 고요와 평온이 그의 몸을 안개처럼 감싸고 아득히 멀리 푸르른 하늘가로 실어갔다. 그가 사랑하는 하늘, 해빛넘치는 하늘, 밤이면 별들이 웃는 하늘··· 그러나 다음 순간 그 하늘에서 또 뜨거운 불줄기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눈을 때리는 번쩍임, 끊임없이 울부짖는 격렬한 포성··· 하지만 정산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피빛으로 물든 구름속으로 아득히 멀리 자꾸만 떠실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