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6

제 3 편

6

 

림희문이 그려보던 화옥이는 몸이 실하고 얼굴이 둥실하며 환한데다가 눈이 크고 억실억실한, 흔히 보름달같다고 표현하는 그런 처녀였다. 화옥이 자신 편지에 자기를 《더퍼리》라고 했고 그 편지의 문장도 아주 활달했었다. 그러므로 희문은 시원시원한 성격에 구변도 좋은 여러 처녀들의 인상을 한데 합쳐 화옥이의 모습을 그려보았던것이다. 그런데 집에 나타난 화옥은 그가 상상해보던 처녀와는 판 달랐다. 키도 크고 몸매도 쭉 빠진 처녀가 두눈을 반짝거리며 《이 집이 림희문아버님댁이 맞나요?》하고 부드럽고 정찬 목소리로 물었던것이다. 적위대복차림에 가는 허리를 군대혁띠로 꼭 동이고있어서 더욱더 날씬해보였다. 얼굴은 갸름하고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게 앙증스러운데가 있었다. 오똑한 코마루, 작은 입, 미간이 넓은 두눈에서는 시종 웃음이 샘물처럼 용솟음쳤다. 그때 림희문은 갱으로 나가려던 참이였다. 생필직장에서 일을 끝내고는 집에 들려 대충 요기를 하고 전에 일하던 갱으로 나가 이것저것 돕는것을 준전시때의 어길수 없는 일과로 정하고있는 그였다. 간데라를 들고 토방을 내려서던 그는 처녀의 첫마디 물음에 벌써 무엇인가를 예감했다. (그 처녀다!)하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무슨 말이든 대답을 해야겠으나 자기의 예감이 틀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처녀는 스스럼없이 바자문을 쑥 밀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님이 맞군요. 예? 나 화옥이예요. 접때 편지를 써보냈던···》

《화옥이!···》

《예, 한번 꼭 들린다고 했지요? 그래서 이렇게 왔죠. 인민군대원호물자를 가지고 갔다오던 길에 잠간!···》

《그래 온다구 했지, 했구말구!》

그는 손에 들고있던 간데라를 토방안쪽에 던지다싶이 했다.

《여보! 어서 나오우. 여기 누가 왔나 좀 보우!》

안해가 부엌문을 열어젖히며 나왔다.

《누구라구요?》

안해는 굳어졌다. 처녀도 역시 한손을 귀밑머리에 가져다댄채 꼼짝 않고 섰다. 한순간의 일이였다.

《화옥이?》

속삭임같은 안해의 목소리였다.

《예, 화옥이예요. 어머니!》

그들은 천천히 팔을 벌리며 얼싸안았다. 그러자 림희문은 이상스러운 경련에 몸이 떨리는것을 느꼈다. 병약한 안해의 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끓고있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딸처럼 화옥이를 붙안고 그의 머리를 어루쓸며 소리없이 울고있다.

《여보! 왜 그러구만 있소!》하고 림희문은 칼칼해진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내였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야지. 뭘 좀 준비도 하구!》

화옥이가 얼른 눈길을 돌렸다.

《아, 안예요. 전 그럴 시간이 없어요.》

《아니, 그건 무슨 소리니, 응?》

《저··· 전 가야 해요.》

《가다니. 그런 법이 어데 있니!》하고 그는 부르짖었다. 《문밖에서 돌아서다니, 어쩜 그럴수 있니. 안된다!》

화옥이 그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정말 오늘은 오래 있을수 없어요. 저기 큰길에서 차가 기다리구 있는걸요. 사실 하루쯤 묵어갈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어찌겠어요. 지금 준전시때에··· 할 일이 오죽 많나요. 예?!》

《준전시때》라는 그 한마디에 그는 입을 다물고말았다. 그 말이 옳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많은 젊은이들이 일을 끝내고 와서는 훈련을 하고 방공호도 파군 한다. 이런 사정은 화옥이네도 다를바 없을것이다.

《어마나! 왜 그렇게 보세요?》 화옥은 온통 웃음으로 빚어진듯 하였다. 《제 어데가··· 혹시 얼굴에 검댕이라두?···》

《아니, 아니다. 그저 똑똑히 봐두려구···》

《그래요?!··· 제가 맘에 들어요?》

《원, 그것두 말이라구 하니. 우린 벌써 너를 만나기전부터 정들었단다. 정말 얼마나 기다렸다구!》

《그러세요?》하고 화옥은 거의나 소리없이 밝게 웃었다. 《이제 자꾸 와도 되지요? 멀지도 않은데··· 기차를 타면 한시간반 안팎이예요. 토요일 밤에 왔다가 일요일 저녁에 가면 되지요. 안그래요?··· 난 벌써 우리 오빠랑 정산동무한테로 편지를 썼어요. 정산동무대신 아버님, 어머님을 잘 돌봐드리겠다구요!》

림희문은 불현듯 눈물에 흐려진 눈으로 처녀의 미간이 넓은 두눈을, 샘물처럼 웃음이 솟고있는 두눈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우리 화옥이, 정말이지 얼마나 정찬 모습이냐. 우리의 귀뚜라미는!···

《아유! 저건 비둘기장이군요!》 화옥이 환성을 질렀다. 《정산동무가 비둘기를 기르댔어요? 그런 얘긴 없던데··· 정말 재미있는 동무군요. 우리 오빤 정산동무가 학교때 수재로 소문났댔다는 그런 얘기만 계속 써보내지 않겠어요.》

화옥은 재빨리 뜨락을 둘러보았다.

《당장 터밭을 뚜져야겠군요. 참, 뒤울안엔 돼지우리가 있어요? 아유! 배가 고프다구 막 야단이구만요. 어머니가 돼질 기르세요?··· 참 몸도 편치 않으신데··· 무척 힘드시겠죠?··· 일없어요. 이제 내가 힘껏 돕겠어요. 이래뵈도 난 아무 일에나 다 솜씨가 있어요. 정말이예요.》

안해는 눈굽이 저려나는듯 했다. 어설프게 웃고있던 해쓱한 입술우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을 지켜보느라니 림희문의 가슴속에도 무엇인가 쑤시는듯 한 아픔과도 비슷한 격정이 치밀어올랐다.

사람은 누구라 할것없이 사랑을 받고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여 죽을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면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여났기때문이다. 진정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는 열망조차 없다면 그 삶은 벌써 끝난것이며 그 죽음은 비참한것이리라.

그런데 지금 소대장 윤철의 녀동생 화옥이 사랑에 주려있는 그들 늙은 내외에게 그것을 한가득 안고서 왔다. 하지만 화옥이자신은 자기가 가져온 그것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것인지 다는 모를수도 있다.

화옥은 뒤울안의 돼지우리에 가보고 안해와 같이 방문도 열고 들여다보았다. 화옥이 올것을 생각해서 잘 거두느라고는 했지만 늙은이들의 외로운 살림이 그대로 다 드러나보내는 방안이였다. 그래도 화옥은 무엇에나 다 감탄했다.

웃음이 많은것처럼 놀라움도 많다. 두마리의 큰 돼지에 깜짝 놀라더니 이번엔 정산의 책꽂이를 보고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정산동문 유명한 수학골이라더니 시도 좋아했나요? 아유ㅡ 저런!··· 없는게 없네ㅡ 천문학, 력사, 세계문학선집, 시집, 철학, 동물사전, 해석기하··· 아유, 백과사전이로군요··· 정말 굉장하네!ㅡ》

그러나 화옥은 재빨리 손목시계를 스쳐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어마나! 10분만 기다려달라구 했는데 벌써···》

《10분?》하고 안해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되받았다. 《그렇게 빨리?··· 이렇게 왔다가 하루밤 자구가지두 않구··· 내가 가서 말해보면 안될가. 응?!》

힘없는 안해의 절절한 당부가 처녀의 가슴을 쳤던것 같다. 화옥은 거의나 애원에 찬 눈빛으로 림희문을 쳐다보았다.

《아버님, 이렇게 할바엔 차라리 오지 않을걸 그랬지요?》

숨죽인 목소리였다. 웃음이 샘솟던 두눈에 금시 눈물이 맺힐것 같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하고 림희문은 부르짖었다. 《이렇게 만나보니 얼마나 좋으냐. 그저 계속 붙잡아두고싶어 그러는게지. 안됐다. 우린 그저···》

그가 더 말을 잇지 못하자 안해가 조용히 받았다.

《화옥아, 우린 사실 네가 진짜 오긴 올가 하구··· 매일 그 얘길 했구나. 그러던게 이렇게 와주니··· 정말 얼마나 좋은지··· 그래서 괜히 쓸데없는 소릴 했구나.···》

화옥은 따뜻하게 이뻐진 두눈에 함뿍 웃음을 담았다.

《그럼 이제부턴 계속 올게, 좋지요. 어머니?!》

화옥은 림희문에게도 웃음어린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잰 말씨로 명랑하게 말하였다.

《그럼 전 가겠어요. 아버지, 어머니! 따라나오지 마세요. 난 막 냅다 뛰여갈래. 정말이예요. 뒤에서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거 난 싫어. 그렇게 하시죠?··· 자 그럼 안녕히!···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내 인츰 또 올게!》

어느새 화옥은 고무띠를 매놓은 바자문을 밀고 울밖으로 나갔다.

한순간 피끗 이쪽을 향해 눈인사를 하는데 작고 도드라진 입술에서 애석의 미소가 바르르 떨고있는듯 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림희문은 그냥 그자리에 얼나간듯 서있었다. 무엇인가 경쾌한 음악을 울리던 악기선이 툭 끊어져버린듯 한 느낌이였다. 과연 그것이야말로 어떤 음악이였던가···

그는 자기의 한생이 음악으로 말하면 단 한가지 가락으로만 이어진것이라고 생각해왔었다. 낮이나 밤이나 사시절 언제나 변함없는 가락, 속을 태우며 기다리고 무엇인가를 간절히 희망해온 애절한 가락이였다. 그런데 별안간 그 소심한 가락속으로 밝고 쟁쟁한 그리고 다양하고 억센 정열의 리듬이 뛰여들어 지금까지 변함없던 가락을 판판 다르게 엮어놓더니 홀연 가뭇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급기야 바자문을 차고 나섰다. 젊은 시절에도 이렇듯 급작스럽게 달려본적은 있는것 같지 않다. 그는 비좁은 문화주택사이길을 허둥지둥 내달려 마을앞 큰길로 나섰다.

그때 벌써 화옥은 저쪽 소나강기슭에 세워둔 자동차에 오르고있었다. 적재함우에서 두셋의 손들이 처녀를 끌어올렸다.

이윽고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르스름한 배기가스가 날리는것이 보였다. 화옥이가 이쪽을 쳐다보더니 손을 높이 흔들어주었다. 무어라고 웨친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차가 먼지를 피워올리며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저 멀거니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어떤 허전함이, 가슴을 저리게 하는 서글픈 외로움이 다시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어이하랴, 한순간 섬광이 펑끗! 하고 눈을 때리고 난뒤에는 더욱더 어둠이 짙어보이는것을!···

소나골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쳤다. 먼 산봉우리너머로 벌거우리하게 물들기 시작한 구름장이 떠갔고 인기척없는 길우에는 소리없이 내려앉는 먼지와 함께 땅거미가 재빨리 기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천천히 집으로 돌아갔다. 바자문밖에서는 안해가 해질무렵의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고있었다. 남편의 우울한 낯빛을 여겨보면서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안해가 물었다.

《갔어요?》

그는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또 올가요?》

힘없는 안해의 그 음성에는 사무친 애원이 있었다. 그리고는 또 입을 꼭 다물고있는데 자기의 애절한 소원에 대한 대답을 듣고저 숨죽여 귀를 기울이고있는듯 했다.

《올거요, 그앤 꼭 와!》

뒤울안에서 성난 돼지들이 또 울부짖기 시작했다. 참을길 없는 울분을 토하는 격한 웨침이였다.

안해가 황황히 바자문을 밀고 들어가자 그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토방우에 내던진 간데라가 눈에 띄였다. 그는 간데라를 쥐고 기둥옆에 벗어놓았던 안전모까지 정히 썼다.···

다시 비암산으로 오른다. 듬성듬성 널린 바위돌우에서 저무는 해살이 얼씬거렸다. 령마루에 오르자 그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전에 갱에서 일할 때에도 그는 등판에 다 오르면 어김없이 담배를 한대 피우군 했다. 힘주어 담배를 빨 때마다 끄물끄물 타는 불빛이 그의 남달리 큰 손바닥을, 그가운데로 깊이 파고 지나간 세가닥의 손금을 비쳐주었다.

옛사람들은 흔히 이런 손금을 보고 자기들의 운명을 점치군 했다. 불행한자는 그것을 피하기 위하여, 재물있는자는 그것을 불구기 위하여, 근심걱정 없는자는 더 오래 살고싶어서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다 제각기 세상에 날 때 쥐고나왔다는 그 운명의 표적을, 그 불가사의한 손금의 철학을 제나름으로 풀이했었다. 하여 무엇인가 자기한테 유리한, 하다못해 위안이라도 될수 있는것을 거기서 찾아내군 하였다. 그러고보면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믿지 않으면 안되는 모양이다. 믿음이 없다는것은 곧 희망을 잃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럴진대 희망없는 삶이야 어떻게 참고 견딜수 있으랴.

그러면 그는 무엇을 믿고있는것인가?··· 손끝까지 타들어가도록 정신없이 담배를 빨며 그는 생각을 이어간다. 누구는 힘을, 누구는 정열을, 누구는 자기의 지식과 재능을, 노력을 믿고있다. 그도 믿는것이 있다. 오랜 세월 자기가 바쳐온 그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것을 믿고있으며 이제 저 귀여운 화옥이가 꼭 다시 오리라고 믿고있는것처럼 사랑하는 아들 정산이 아버지라 부르며 그의 품에 안길 날이 오리라는것을 믿고있다. 정산아, 사랑하는 내 아들아! 너를 기다린다. 너의 밝은 웃음을, 너의 정찬 목소리를 기다린다. 아버지라 부르며 숨가삐 달려올 너를 기다린다!···

그는 입술이 타들 지경이 되여서야 손톱눈만큼 작아진 담배꽁초를 비벼끄고 비암산을 내려갔다.

 

갱입구에는 무장한 적위대원이 서있었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첫날 림희문을 멈춰세웠던 그 청년이였다.

《아바이, 오늘은 좀 늦었군요.》

《음ㅡ 그렇게 됐네.》

《이자 누군가 찾던데···》

《나를?》

《예, 갱에 들어가는걸 봤는가고 묻겠지요. 그래 아직 못보았다고 했더니 이제라도 만나면 당위원회에서 찾는다고 말해주라더군요. 손님이 왔다던지···》

《손님이?!》

그 순간 가슴이 활랑거렸다. 갑자기 귀에서 웅웅 소리가 날만큼 적막속에 빠져든것 같기도 했다. 드디여 매일같이 가슴조이며 기다려온 그 일이 찾아온것이다. 그는 물고기모양으로 입을 벙긋거리다가 겨우 숨을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

《고마우이.》

그는 자기를 찾는 사람이 누굴가 하고 골똘히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헌털뱅이같은 림희문 자기를 찾아온단말인가!···

그는 허둥지둥하며 당위원회를 찾아갔다. 마당앞에 서있는 하얀 승용차가 먼저 눈에 띄였다. 어데선가 본것 같은 차였는데···

그는 왼손에 들고있던 간데라를 오른손에 바꾸어쥐고 당비서실에 들어섰다. 뜻밖에도 거기엔 광산당비서와 황시우총국장이 있었다.

황시우는 전화를 받고있는중이였다. 당비서가 림희문에게 자리를 권하며 낮은 목소리로 《아는 사람이지요?》하고 물었다. 희문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예.》하고나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이 사람이 나를 찾아왔는가, 나를?!··· 며칠전 내가 찾아갔을 때 굵다란 목에 피대를 세우며 《여보, 인젠 제발 분수없이 굴지 마오. 동무야 교화출소자가 아닌가. 내 동무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좀 집구석에 가만 박혀나 있소. 지금은 준전시때야!》하고 매몰스럽게 말하던 사람, 그가 나를 찾아올 리유란 없지 않은가···

당비서는 《손님》이 지금 당중앙위원회 허영태비서와 전화로 말한다고 했다. 그것이 더더욱 희문을 놀라게 했다. 이럴 때엔 자리를 피해주는것이 옳을것 같았다. 그는 당비서를 향해 입속말처럼 나직이 말했다.

《비서동지, 그럼 전···》

《아니!》

당비서는 손을 들어 그냥 자리에 앉아있으라는 시늉을 했다. 하여 그는 의자 한끝에 겨우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어쩐지 실례되는 일처럼 여겨졌다. 당중앙위원회 비서와 전화로 말하는 이 자리에 쇠돌가루 묻은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간데라를 움켜쥔 늙은이가 아무일 없이 앉아있어도 되겠는가···

송수화기를 거머쥔 황시우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바삐 말했다.

《비서동지! 사실 전··· 가책되는바가 있어서 늦게나마··· 예?··· 예, 그렇습니다. 희문동무를 좀 만나려고···》

그의 널직한 어깨가 거칠은 호흡때문에 들먹거렸다. 별스레 숨이 차 하는것이 듣기에도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림희문을 깜짝 놀라게 한것은 그가 당중앙위원회 비서에게 자기의 이름을 대고있는 그것이였다.

《예, 희문동무를 만나서···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의논도 할겸··· 예? 물론 그렇습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했습니다만···》

저쪽의 쩡쩡한 말소리가 송수화기를 통해 울려나오군 했다. 무엇인가 따져묻는듯 했다.

자기자리에 앉은 당비서는 태연히 사업노트에 무엇을 쓰고있는것이 지금 론의되고있는 문제를 잘 알고있는듯 했다. 그는 전화로 오가는 말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제 할일만 하고있었다. 그러나 희문은 바늘방석에라도 앉은것처럼 자꾸만 몸을 움쭉거렸다. 그럴 때마다 삐걱삐걱하는 의자소리가 또 한줌만해진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찌르군 했다.

그는 간데라손잡이줄이 휘여들지경으로 그것을 힘껏 틀어쥐고있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돌덩이같이 움켜쥔 손바닥안에 땀이 즐벅해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림희문에 대하여 묻고있는 모양이다. 그저 묻는 정도가 아니라 엄하게 추궁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다. 황시우의 굵다란 목둘레로 진땀이 내돋고있다.

《사실 전···》하고 황시우는 중얼거렸다. 《아침에 비서동지의 전화를 받고 줄곧 생각다 못해··· 이제라도··· 해결책을 찾을가 해서···》

그의 굵은 목소리가 점점 더 죽어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저쪽에서만 말하고 황시우는 두툼한 입술을 깨물며 간혹 《예.》혹은 《그렇습니다.》하고 가까스로 대답할뿐이였다.

림희문은 황시우가 두툼한 입술을 깨물며 말을 갑자를 때에는 영문도 알지 못하며 저도 가슴을 조였고 그가 당황하여 잔기침을 할 때엔 저 역시 목에 걸린 가래를 삭이지 못하여 모지름을 쓰군 하였다.

이따금 송수화기를 통해 울려나오는 허영태비서의 목소리는 준렬하였다. 황시우는 한손으로 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땀을 훔쳤다.

《예, 알겠습니다. 곧 그리로 가겠습니다.》하고 나서 황시우는 희문에게로 피끗 시선을 던졌다. 《있습니다. 예, 당비서동무도 여기 같이 있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황시우는 송수화기를 내렸다. 그리고 잠시 멍하니 어둠에 싸인 창밖을 바라보다가 소스라치듯 하며 손에 들고있던 송수화기를 쑥 내밀었다.

《참, 희문동무! 전화를 바꾸라던걸···》

《예?!》

림희문은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당비서가 의미있게 웃으며 어서 전화를 받으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당비서의 그 미소가 희문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는 송수화기를 받들자 먼저 억눌린 기침소리를 냈다. 그러자 저쪽에서 먼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중앙위원회 비서 허영태입니다. 희문동무입니까?》

《예. 제가 림희문입니다.》

그는 목구멍에 걸린것을 삼키느라고 또 기침소리를 냈다.

《반갑습니다. 희문동무, 한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송수화기만 꽉 움켜쥐였을뿐이였다. 어느새 입술이 마르고 목구멍이 껄끔거려서 혀가 놀려지지 않았다.

《희문동무.》하고 허영태비서가 계속했다. 《얼마전 희문동무의 연구사업에서의 실패와 그 이후 생활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유능한 과학자, 기술자들로 동무가 연구한 강철재료의 이온질화법을 주체적립장에서 잘 검토하도록 친히 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예?!》

그는 숨이 꺽 막힌듯 했다. 별안간 가슴을 움켜잡으며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당비서가 다가와 그를 부축해주었다. 마치 그러한 실태를 직접 보기라도 하는듯 잠시 동안을 두고있던 허영태비서가 천천히 또 말을 이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뜻을 받들어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서는 김형우박사를 비롯한 금속재료학분야의 권위자들로 그 연구안을 전면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결과 그것이 우리의 기계공업과 국방공업에 크게 기여할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어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드렸습니다.》

그의 수척한 얼굴은 모진 고통을 겪는듯 이지러졌다. 숨을 쉴 때마다 불을 삼키는것처럼 허덕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하고 허영태비서는 계속하였다. 《보고를 받으시고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희문동무의 연구안을 즉시 생산에 도입하기 위한 대책을 세울데 대하여 밝혀주시였습니다.

희문동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희문동무가 준전시상태에 들어선 온 나라 인민과 발걸음을 맞추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면서 희문동무의 생활과 연구사업을 잘 돌봐주라고 간곡히 말씀하시였습니다.》

림희문은 불길같이 사무치는 아픔에 손으로 가슴을 붙안고있었다.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입이 열려지지 않았다.

언제 황시우가 방에서 나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탄 승용차가 발동을 걸자바람으로 최속으로 골안을 빠져나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곁에서 당비서가 돕지 않았더라면 끝끝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말았을것이다. 당비서는 후들후들 떨고있는 그의 삐죽한 어깨를 꼭 잡으며 《희문아바이, 진정하십시오.》하고 속삭이였다.

허영태비서는 마감으로 건강에 류의할것과 새로운 강철재료를 만들어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꼭 기쁨을 드리자고 당부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림희문은 전화가 끝난지 오랬어도 송수화기를 꽉 움켜쥔채 꼼짝도 않고있었다. 격한 숨결이 송화구속으로 퍼부어졌다.

이윽고 그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초상화를 우러러 섰다. 눈물에 흐려진 눈으로 자애로운 그이의 영상을 우러른다. 그러자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번지던 뜨거운 용암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른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그것은 그의 마음속 부르짖음이였을뿐이였다. 목이 꽉 메이고 눈시울이 사뭇 떨렸다. 후들후들 경련이 이는 해쓱한 볼우로 초물이 녹듯이 진한 눈물이 줄지어내렸다.

아 아! 어찌하여 우리는 가장 뜨거운 감사를 올려야 할분앞에서 매번 뜨거운 눈물만 쏟고마는것이랴, 어찌하여 단 한마디 고마운 인시말 조차 올리지 못하고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씹어삼키고마는것이랴!···

어머니에게는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생의 원천인 태양에, 그 빛에 감사드리지 않듯이. 어머니에게는 오직 경건하고 헌신하여야만 한다고 한다. 변함없이 꾸준히, 성실한 땀과 노력으로 근심많고 주름깊은 어머니의 얼굴에 기쁨의 미소가 피여오르게 해야 한다고 한다. 진정 어머니의 얼굴에 피여나는 그 한점 미소야말로 자식들이 드릴수 있는 가장 진실한 감사가 아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