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14

제 3 편

14

 

전쟁이 터질 그 시각이 박두해오면서 나라의 무장력은 고도의 경계태세에 있었다. 인민군대와 인민경비대 및 로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전체 대원들이 자기 초소에서 다가오는 전쟁의 시각을 긴장하여 기다렸다. 모든 전파탐지기들이 조국의 령공을 눈밝혀 살폈고 마싸일들은 조기경계레이다의 신호를 기다렸다. 공군추격기비행사들은 낮에 밤을 이어 교대로 하늘에 떠있었다. 각종 구경의 포들은 단 한대의 적기라도 조국의 령공을 넘어서면 불을 토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숲을 이루어 전개되여있었다. 총참모부와 각 군종, 병종사령부, 지휘관 참모부들 역시 자기 초소에서 한시도 자기 위치를 뜨지 않고 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적들도 역시 초긴장상태에 들어가있었다.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이 절정에 이르면서 모든 공격무력이 군사분계선일대에 집결되였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병원문을 나선것은 그때였다.

정문앞에 그의 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 그는 바래우러 나온 의료일군들과 대충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환자복을 입고있는동안 그들의 정중하고도 강경한 온갖 지시와 권고에 억지로 복종하던것을 벌써 다 잊은듯 했다. 실상 흰옷 입은 그 의료일군들이야말로 얼마나 그를 엄하게 통제하고 까다롭게 대했으랴. 비록 그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상무위원회 위원이며 인민무력부장의 중책을 지닌 일군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를 로년기의 한 환자로서만 대해왔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그를 치료하기 힘들었을것이다. 그러나 인제는 치료도 다 끝났다. 그의 병은 완쾌되였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를 불러주시였다. 바로 전쟁이 일어날것으로 예견하고있던 이날아침 드디여 그이께서 친히 전화로 그를 찾으시였던것이다.

그때 그는 아침산보를 하고있었다. 산보라기보다 괴로운 마음을 달랠길 없어 어뜩새벽부터 정원길을 거닐고있었다. 담당간호원이 따라나와 날이 차다고,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겠느냐고 걱정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일없다고 하면서 자리를 뜨려하지 않았다.

그는 비록 병원에 와있고 외부와의 전화와 일체 접촉이 차단되여있었지만 라지오보도만으로도 나날이 엄중해지는 정치군사정세를 통찰하였고 시시각각으로 커져오는 전쟁의 폭음을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죄다 듣고있었다. 그러므로 치료경과가 좋아지면서 점차 가슴을 짓누르던 그 죄책감이 인제는 더이상 참고견딜수 없을 지경에까지 이르고있었다. 그때 바로 분원 원장이 허둥지등 달려나와 장군님께서 그를 찾으신다고 알려주었던것이다.

그는 어깨에 걸치고있던 외투를 뒤따르는 간호원에게 넘겨주고 거의 반달음쳐 원장방으로 갔다. 송수화기를 들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하고 숨도 돌리지 못한채 부르짖었다.

《아, 부장동무입니까!》 우렁우렁한 그이의 말씀이 공명판을 세게 울렸다. 《원장동무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계속 퇴원시켜 달라고 한다는데 그래 인젠 다 나았습니까?》

《예, 다 나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좋습니다. 원장동무한테 과업을 주었으니 곧 군복을 갈아입고 여기로 와주십시오.》

《예?!···》

너무도 뜻밖에 들이닥친 기쁨이여서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부르짖었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곧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병원문을 나섰고 드디여 싸움터로, 전쟁을 맞받아가게 되였다. 터질것 같은 흥분에 목이 메이고 자꾸만 속이 떨렸다. 이제야 비로소 인민무력부장의 위치에서 전쟁을 맞게 되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막중한 사업을 다소나마 덜어드릴수 있게 되였다!···

승용차는 대도로를 따라 나는듯이 달렸다.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에도 이처럼 급격히, 최고속도로 차를 달려본적은 없었다. 포장도로우를 미끄러져 내달리는 차바퀴의 쓸림소리가 차디찬 대기를 찢으며 울려갔다. 가로수들이 휙휙 뒤로 날아지나고 드문드문 서있는 리정표들이 쏜살같이 마주 달려왔다.

그는 이제 가면 먼저 작전모임에 참가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에게 전쟁과 관련된 중요임무를 주실것이다. 그러면 급히 정황을 연구하고 임무수행에 착수할것이다. 분초를 다투는 때이므로 전반적정세를 재빨리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속도계의 바늘이 파르르 떠는것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차가 느리게 달리는것만 같아 계속 속도를 높이라고 엄하게 말하군 했다.

당중앙위원회청사에 이른것은 아침해가 솟아오를 때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의 몸이 퍼그나 좋아졌다고, 얼굴에 혈색이 돌고 걸음새도 힘차졌다고 기뻐하시였다. 그러나 그이를 뵈옵는 첫순간부터 오진우의 가슴은 저려드는듯 했다. 그리도 축가신 그이의 모습을 찢기는듯 한 가슴의 아픔없이 바라볼수 없었다. 무엇인가 무딘 칼날로 가슴을 허비는듯 모진 아픔에 눈시울을 바르르 떨군 하였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원장동무한테 좀 일찍 퇴원시켜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저와 같이 먼길을 가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오진우는 지금 그이와 함께라면 천리라도 달려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정세가 극도로 엄중해진 이때 그이께서 갑자기 떠나실적엔 틀림없이 전략전술적으로 중대한 사변이 있을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출발하기에 앞서 그이의 수행원들이 김석현비서를 비롯한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과 사로청중앙위원회 위원장 등이라는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온통 전쟁에 대한 생각만 꽉 차있었으므로 그이께서 응당 총참모장이나 작전일군들을 대동하고 떠나실것으로 생각했기때문이다. 묵묵히 차에 올랐다. 그는 평소에도 자기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과묵한 성격이였다.

이윽고 여러대의 승용차들이 수도를 빠져나와 대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침해가 높이 솟아오르자 강기슭의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였다. 어느덧 뾰족뾰족한 갈색의 움들이 돋기 시작한 가로수들이 가지를 펴들고 서둘러 마주왔다. 음달진 구석에서는 구멍이 숭숭한 얼음버캐가 희끗거렸고 내가의 버들개지들은 가벼운 바람결에도 능청거렸다. 봄이 온것이다. 정세는 엄혹했어도 봄은 시간표대로 꾸준히 찾아왔다. 그러나 봄날의 다냥한 볕과 아늑한 풍치에도 불구하고 오진우는 갈수록 더해가는 의혹에 잠겨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아무리 해도 그는 지금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무엇때문에 어데로 가시는지 짐작할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간 바재이다가 갑자기 놀란듯 크게 말했다.

《라지오를 트오!》

기다리던 보도시간이였던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 매일 아침과 낮 그리고 밤10시 종합보도시간만은 놓치지 않던 그였다. 운전사가 라지오스위치를 누르자 마침 적들의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과 관련한 소식을 알리고있었다.

《···군사소식통에 의하면 어제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괴뢰들은 대지합동타격연습을 발광적으로 벌렸습니다. 여기에는 350여대의 전투폭격기, 습격기, 추격기, 추격습격기, 관측기들이 동원되였습니다. 결과 어제 하루동안 남조선지역상공에서 공화국북반부를 겨냥하여 공중전연습에 돌아친 적군용기는 무려 700여대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보도가 끝날 때까지 한번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꼿꼿이 앉아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지금 어데까지 차를 달려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갑자기 앞서가던 차들이 속도를 죽이더니 길섶에 멎어섰다. 어느한 야산기슭이였다. 반외투를 걸치신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차에서 내리시는것이 보였다. 오진우와 다른 수행원들도 차에서 내렸다.

오진우는 내가의 버들방천으로 걸음을 옮기시는 그이를 따라섰다. 그이께서는 허리 굽혀 통통 살이 진 버들개지를 하나 꺾어들더니 밝은 미소와 함께 그것을 빙그르 돌려보시였다.

해볕이 따스했다. 어데선가 퉁퉁거리는 뜨락또르의 동음이 울려왔다. 그이께서 오진우를 돌아보며 말씀하시였다.

《어떻습니까. 얼마나 좋은 봄날입니까!》

《예.》하고 오진우는 얼결에 입을 열었다. 《정말 좋습니다.》

《이제 곧 씨붙임을 해야겠는데···》

그이께서 혼자말씀같이 뇌이시였다. 오진우는 그이께서 바라보시는 들판을 뜨아해 하는 눈빛으로 묵묵히 바라보고있었다. 그런즉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올해 농사일때문에 예까지 나오셨는가?··· 그는 가까이에 있는 김석현비서와 다른 수행원들을 얼핏 쳐다보았으나 그들의 표정에서도 역시 그에 대한 답을 찾을수 없었다. 하지만··· 절대 그럴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도중에 잠간 휴식을 하시려는것이리라. 한시도 맘편히 쉬여보지 못하신탓에 잠시나마 전쟁을 잊고 휴식하시려는것이 틀림없다···

가까운 숲속에서 꿩이 푸드득거리며 꿱ㅡ꿱ㅡ 울어댔다. 그러자 마치 그에 화답이라도 하는듯 큰길너머쪽에서 줄에 매인 염소가《음메!ㅡ》하고 처량하게 떨리는 목소리를 뽑았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습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는 저으기 당황하였으나 곧 대답올렸다.

《방금 차에서 들은 보도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팀 스피리트〉말입니까?》

《예.》

멀지 않은곳에서 호들갑스럽게 울어대는 새소리가 유난스러웠다. 그 떠들썩한 소리를 피해 달아나듯 새 한마리가 길을 건너 저쪽의 굵은 참나무가지에 가 앉았다. 이윽고 그쪽에서 나무를 세게 쪼아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부리로 한바탕 련발사격소리처럼 나무통을 두드려댔다. 그리고는 잠시 동정을 살피는듯 하더니 또다시 힘있게, 정열적으로 봄날아침의 대기를 울리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오진우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봄과 새들!··· 내가 예술가라면 이런 제목으로 시와 노래를 짓고싶은 심정입니다. 여기서 울려나오는 저 모든 음향이 그대로 하나의 훌륭한 음악작품이 아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하고 오진우는 얼결에 대답올렸다.《지금 정세만 엄중하지 않다면···》

순간 그이께서 한손을 약간 드시였다.

《가만! 저게 무슨 새소리입니까?》

오진우는 귀를 기울여보고나서 알릴듯말듯 웃음을 머금었다.

《그거야 뭐 종달새 아닙니까.》

《옳습니다. 옛사람들이 노고지리라고 하던 종달새입니다. 시와 노래에서 많이 불리우는 종다리··· 이런 시조도 있지요.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들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어떻습니까. 기억나십니까?》

《예. 어릴 때, 아니 소학교에 다닐 때 배운것 같습니다. 선생한테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으며 외우긴 했댔는데···》

《그렇습니까!》

그이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오진우도 허허···하고 늙은이답게 웃었다. 김석현비서를 비롯한 여러 수행원들도 즐겁게 웃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맘편히 웃어보는것 같다. 오진우는 웃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분께서는 이처럼 다감하실가, 뜨거운 용암처럼 분출하는 열정, 거세찬 파도같이 몰아치는 기백, 번개불과 뢰성, 그런가 하면 맑은 시내물과 같은 깨끗함과 봄볕같은 따스함··· 정녕 이분의 가슴속에는 온 세계가 다 들어있는것이 아닌가!···

그이께서는 여전히 그윽한 미소를 담고서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전야를 바라보고계시였다.

《재너머 사래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하고 또 나직이 뇌이신다. 《이제부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일에 힘을 넣어야겠는데···》

여전히 말없이 서있는 오진우와 여러 수행원들을 둘러보시며 그이께서는 말씀하시였다.

《봄이 온 전야를 바라보느라니 그대로 지나갈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곧 농촌의 모든 력량을 집중하여 벼랭상모판 씨뿌리기를 다그쳐야 하겠습니다. 사전에 비료와 농약, 비닐박막 등 영농물자들이 충분히 공급되였는가도 알아보고 출판물과 방송을 통한 선전사업도 강화해야 합니다. 인젠 전쟁도 끝났으니 봄을 가꾸는데 힘을 넣읍시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진우 역시 꿈쩍 놀랐다. 전쟁이 끝나다니, 방금 들은 보도에서도 적들이 공중핵타격연습을 미친듯 벌리고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이께서는 따뜻한 미소가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왜 놀랍니까?··· 오늘은 바로 적들이 녕변기습공격을 계획했던 그날입니다. 제반 조건으로 미루어 늦어도 오늘새벽엔 기습공격을 감행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시각에 이르러 적들은 그것을 포기하고말았습니다. 어제밤 작전국장동무가 보고해온데 의하면 적들은 핵전쟁지휘체계인 〈씨3아이체계〉의 가동을 중지했고 군사분계선일대 상공에서 우리에 대한 전자정찰행위를 끊임없이 감행하던 〈유ㅡ2〉고공전략정찰기의 비행도 중지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도 역시 〈팀 스피리트〉전쟁연습을 미친듯 벌리고있지만 그것은 단말마의 몸부림에 불과합니다. 적들은 련속적인 우리의 공격에 넋을 잃고 전쟁의 기회도 잃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전쟁의 명분과 내외의 지지 그리고 그들자신의 용기마저 다 잃고말았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나는 이제 곧 준전시상태를 해제할데 대한 최고사령관명령을 하달할 결심입니다.》

《?!···》

오진우는 한순간 흐느끼듯 숨을 들이그으며 그이를 우러르고있었다. 부지중 그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언젠가 전쟁은 불가피하다고, 결사전을 벌릴 시각이 왔다고 하시던 말씀을 상기하였다. 그런즉 바로 이것이 그이께서 결심하신 전쟁이였는가?!··· 그것은 비록 피를 흘리지 않은 무혈전쟁이였지만 준엄하고도 치렬한 격전이였다. 조국과 인민, 사회주의의 운명이 판가름된 엄혹한 전쟁이였다···

《자, 또 달려봅시다.》

그이께서 시계를 보시더니 오진우에게 나직이 물으시였다.

《그런데 왜 어데로 가는지 한번도 묻지 않습니까?》

《저···》

열적은듯 웃으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생 군복만을 입고 살아온 그는 때없이 경솔하게 묻는것을 질색하였다. 그는 깊이 생각하고 따져보고서야 말하는데 습관되여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내가 부장동무를 찾은건 오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같이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예?!》

《우리의 미래를 위한 집이 또 하나 완공됐는데 이런 경사가 어데 있겠습니까. 내 그래서 각 도당책임비서들도 다 오게 하였습니다.

이제 곧 입소식을 하면 우리 어린이들뿐만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들 특히 사회주의를 버린 나라 어린이들도 와서 맘껏 배우며 즐기게 되겠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혁명을 하는 목적도 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부장동무, 그새 병치료를 하면서 적적했겠는데 가서 시원한 송도원 바람이나 쏘이도록 합시다.》

《!!···》

순간 오진우는 눈굽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부지불식간에 치밀어오른 뜨거운 격정에 엇비듬히 이마를 파고 지나간 굵은 주름살들이 꿈틀거렸다. 끝까지 그는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속에 차넘치는 뜨거운 눈물에 자꾸만 목이 메여올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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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5시 문선규는 한장의 전보를 받았다. 놀라운 소식이 거기에 적혀있었다.

 

미국무성 전보 제38192호 친전

 

보낸사람; 미국무성 정치군사담당차관보 로버트 갈루치

 

받는사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부 제1부부장

 

안건; 협상제의

 

나는 워렌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의 위임으로 당신에게 우리 행정부의 제안, 다시말하여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간 협상제안을 전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

미합중국정부는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먼저 베이징에서 미조간 참사급접촉을 가질것을 제의한다. 우리는 참사급접촉을 통하여 핵문제해결을 위한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간 차관보급협상의 기틀이 마련되리라는 희망을 표시하는바이다.

1993년 3월 20일 워싱톤

 

문선규는 창가로 다가가 다시 그것을 확인해보듯 훑어보고나서 빠른 걸음으로 탁자로 돌아왔다. 저도모르게 전화기쪽으로 한손을 뻗쳤으나 또 굳어지고말았다. 어느새 얼굴은 불그레하게 달아오르고있었다.

미국이 우리에게 협상을 제기하고있는것이다. 공화국이 창건된 이래 수십년간 우리를 적대시하며 그 어떤 접촉도 거부하던 미국, 핵문제를 구실로 우리의 신념이고 생활인 사회주의를 압살해보려고 전쟁의 불구름까지 몰아오던 미국, 오만무례하던 그 미국이 드디여 정부급협상을 청탁해왔다.

문선규는 바로 이것이야말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략과 담력의 거대한 승리라고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심정이였다. 핵문제를 법률실무적으로가 아니라 정치군사화하고 미국이 가장 아파하는 정통을 찌르면 움직이지 않을수 없다고 타산하신데 기초하여 미국의 세계제패전략의 기둥을, 그 명줄을 끊어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 드디여 조약탈퇴를 지레대로 하여 미국을 끌어내시였다. 전쟁을 울부짖던 미국이 더는 어쩌지 못하고 코가 꿰여 끌려나왔다. 미국이 굴복하였다. 전쟁이 끝났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미국을 굴복시키고 전쟁도 막으시였다!···

《장군님! 장군님께서 내다보신대로 미국것들이 끌려나왔습니다.》하고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미국이 흰기를 들고나왔습니다.》

그는 그 중대소식을 자신이 직접 보고드리고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또 가슴이 뻐근해났다. 비록 엄정한 사업상 절차와 질서를 어길지언정 이것만은 꼭 직접 보고드리고싶었다.

그는 서류가방을 열고 그속에 전보를 넣었다. 잠시후에는 벌써 복도계단을 뛰여내리고있었다. 밖에 나서자 인민대학습당의 종소리가 울리고있었다. 떵ㅡ 떵ㅡ 떵!ㅡ 그 장중한 음향은 무엇인가 비상한 사변을 예고하는듯 하였다.

그는 차에 오르자 크게 단숨을 내뿜으며 말했다.

《당중앙위원회로.》

이윽고 승용차는 만수대예술극장앞도로를 달려갔다. 문선규는 너무도 벅찬 흥분에 사로잡혀 라지오에서 울리는 보도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운전사쪽으로 한손을 내뻗치며 소리쳤다.

《가만, 차를 세우오.》

《예?》 운전사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여기선 안됩니다.》

《그럼··· 그럼··· 그냥 곧추 가기요. 곧추! 》

그는 흥분하여 손잡이를 꽉 틀어쥐며 라지오의 보도에 귀를 기울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로 건설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를 돌아보시면서 야영소건물과 그 관리운영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밝혀주시였습니다.》

그는 저도모르게 입술을 감빨고 숨길을 딱 멈추었다. 가슴속에서 쿵쿵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귀전에 울려오는듯 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작전대를 뜨시여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에 가계신단말인가?!···

운전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데로 가잡니까?》

《그냥 곧추 가오. 아무대건!···》

보도는 계속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가 겹치는 난관과 시련을 용감히 이겨내며 혁명을 계속 전진시켜나가는 중요한 목적도 바로 후대들에게 세상에 부럼없는 행복을 마련해주기 위한데 있다고 하시면서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가 일떠섬으로써 우리는 로동당시대에 후대들에게 물려줄 또 하나의 귀중한 재부를 마련하여놓았다고 커다란 기쁨과 만족을 표시하시였습니다.》

눈앞이 뿌얘지기 시작하였다. 후더운 물줄기가 솟구쳐오르며 목구멍을 메이게 했다. 진정 얼마나 어려운 시련속에서 얼마나 첨예한 정황속에서 마련된 행복의 집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한시도 작전대를 뜨시지 못하시던 그 나날이 떠올라 눈굽이 찌르르해졌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여 흐려진 안경을 닦았다. 운전사가 또 묻는듯 한 시선을 던졌으나 못본척 했다. 아무데로 달리건 무방하다. 미국무성의 전보따위는 늦어져도 상관없다. 장군님께서는 벌써 이 모든것을 예견하시여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신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년단야영소는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인 어린이들을 지덕체를 갖춘 혁명의 후계자로 키우는데서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하시면서 앞으로 각 도들에도 현대적인 소년단야영소를 더 많이 건설하여 모든 어린이들이 야영소생활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승용차는 동성교밑으로 내려 지하철 황금벌역쪽으로 향했다. 길게 대렬을 지어 만경대쪽으로 가는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 소년들이 눈에 띄였다. 너무도 어린 나이에 장난질을 그치고 텔레비죤과 라지오에서 울려나오는 적들의 핵전쟁연습을 규탄하는 방송원의 목소리에 벌써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소년들이다. 그들의 크지 않은 잔등에는 크나큰 뜻을 담은 구호가 붙여진 배낭들이 지워져있었다.

문선규는 이른봄의 찬바람과 볕에 타서 검실검실해진 그 어린이들이 멀리 보이지 않을 때가지 계속 뒤돌아보군 했다. 바로 저 어린이들이 전쟁을 모르고 마음껏 배우며 뛰놀수 있게 하려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로고에 찬 나날을 계속 이어가고계시는것이다.

《청소년일군들과 이곳 야영소의 일군들은.》하고 방송원은 계속하고있었다.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제시하신 과업을 철저히 관철하여 청소년학생들을 주체혁명위업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키우기 위하여 온갖 사랑을 다 돌려주고있는 우리 당의 원대한 뜻을 활짝 꽃피워갈 불타는 결의에 충만되여있습니다.》

《우리는 승리하였다!》하고 문선규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직도 적들은 포성을 멈추지 않았고 전쟁의 불구름은 가셔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금 송도원기슭을 거닐고 계신다. 봄을 가꾸며 미래를 키우며 빛나는 래일을 앞당겨오고계신다···

전승기념탑건설장이 가까와왔다. 기중기가 커다란 화강석대돌을 물고 빙ㅡ 돌고있다. 기발들이 펄럭이였다. 위대한 승리를 경축할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