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11

제 3 편

11

 

정오가 지나면서부터 날이 흐리기 시작했다. 눈더미들이 채 녹지 않은 먼 골안에서 서늘한 랭기가 풍겨오더니 바람이 세차졌다. 비탈길 량옆의 잡관목들이 몸부림치고 가까운 송림속에서는 솨ㅡ 솨ㅡ 하는 소리가 났다. 찌뿌둥한 하늘은 금시 진눈까비라도 퍼부을것 같았다.

림희문은 안해를 부축해가고있었다. 그의 곁에서는 군단장 오영범과 나이지숙한 정치위원 그리고 많은 장령, 군관들이 묵묵히 걷고있었다. 령구차는 수천의 병사들과 땅크, 포차들이 량옆에 쭉 늘어선 길가운데를 천천히 굴러갔다. 산기슭의 둔덕진곳에서 군악대가 추도곡을 주악했다.

날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먼 산봉우리를 휘감고있던 검은 구름이 물결마냥 골짜기를 휩쓸며 밀려내리기 시작했다. 다박솔이 들어찬 높지 않은 둔덕도 구름속에 묻혀버렸다. 어데선가 중부선을 질러가는 기차의 기적소리가 아득히 꿈결에서처럼 울려왔다.

이윽고 하늘은 시꺼매지더니 갑자기 진눈까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질풍이 몰아치며 진눈까비를 은빛 모래알같이 엇비듬히 내리꽂히게 했다. 눈도 뜨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속에서도 절절한 추도곡의 주악소리는 계속되였다.

림희문은 가늘게 떨고있는 안해의 어깨를 힘주어 껴안았다. 그랬어도 안해는 자꾸 비틀거리며 헉헉 하는것이 마치도 눈보라를 삼키고있는듯 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사람들이 바삐 서둘렀다. 희문은 한결같이 포신을 추켜든 땅크와 자동포, 장갑차들이며 끝없이 줄지어선 병사들, 그 대오속에서 유표하게 눈에 띄는 《림정산소대》라는 기발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림정산소대》!··· 그 기발은 산과 들에 꽉 차서 묵묵히 서있는 어마어마한 철의 대오 한가운데서 세차게 나붓기고있었다. 그 기발을 바라볼수록 벅찬 흥분에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벌어진 환경이 너무도 숭엄하고 엄엄하였다.

안해 역시 목놓아 울거나 땅을 치며 몸부림치지 않았다. 그저 가슴을 쥐여뜯는 쓰라린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기 어려워 허덕이고있을뿐이였다.

슬픔도 사람에 따라 겪는것이 같지 않다는것을 림희문은 알고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폭풍처럼 들이닥쳐 산산이 짓이겨놓은 다음 시작되던것처럼 갑자기 멀리 사라져버린다. 그러면 그는 무서운 통곡과 몸부림끝에 새로 모습을 달리하고 일어선다. 어느덧 상처는 아물고 그는 생활에 부대끼며 바삐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슬픔이 가을밤의 이슬비와도 같이 음산하고 지리하게 오래오래 계속된다. 그 슬픔은 가슴을 짓누르며 덜어지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결국 그는 야밤의 파도소리와도 같이 무시무시하게 끝없이 울려오는 그 슬픔의 통곡에 귀를 기울이며 무너져간다. 림희문은 바로 안해가 두번째부류의 사람들에 속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이것이 그를 겁나게 했고 더더욱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어느덧 바람이 자면서 산지사방 뿌려치던 진눈까비도 멎었다. 골안에 내려드리웠던 구름발들이 룡트림하듯 하늘중천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름장사이에서 희멀쑥한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누군가 그들을 이끌어가더니 군단장과 군단정치위원이 있는곳에 세워주었다. 드디여 수많은 군인들이 둘러선 가운데 영결의식이 시작되였다. 먼저 정산이 속해있던 려단정치위원이 추도사를 읽었다. 추도사에서 그는 림정산이 얼마나 깨끗한 마음으로 조국의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를 사랑하였고 얼마나 꿈이 많은 병사였는가를 떨리는 목소리로 강조하였다. 특히 그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단 한달동안에 어려운 강하훈련을 완성한 사실이 감동깊이 언급되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감사를 받아안고 충성의 결의로 가슴을 불태워온 병사,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 충성의 보고를 드리기 위해 훈련에 몸바치던 병사, 림정산은 바로 그러한 병사였다. 하기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그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당에 충직한 훌륭한 전사》라는 고귀한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던것이다.

림희문은 그때 아들 정산이 보낸 편지의 구절들을 마음속으로 다시 읽고있었다. 처음으로 《그리운 아버지!》하고 써보낸 편지였다. 친아들조차 마음속으로 결별해버린 아버지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믿어주시고 다시 내세워주신 크나큰 은정에 목메여 눈물로 적신 편지였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로 될줄이야 어찌 알았으랴···

정산은 편지에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 품에서 자라는 기쁨과 감격에 대하여 썼다. 정산은 자기를 하늘의 병사라고 했다. 윤철소대장이 바로 그렇게 말했다는것이다. 하늘처럼 가없이 푸르른 꿈에 대하여, 하늘처럼 끝없이 넓어지는 마음에 대하여 썼었다. 끝내 정산은 장군님의 전사답게 영웅적위훈을 세우고 갔다···

얼마후 정산이와 제일 가까이 지냈다는 무선수 하사 최윤두가 정찰소대를 대표하여 전우와 영결하는 마지막말을 하였다. 전체 중대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말을 듣고있었다.

희문은 볕과 바람에 탄 그 병사들의 검실검실한 얼굴을 하나하나 여겨보았다. 그러자 어떤 이름할수 없는 애틋하고 찌르는듯 한 충격에 부지중 몸을 떨었다. 두팔 벌려 그들을 붙안고 함께 울고싶은 마음, 어쩌면 아들 정산이와 꼭같아보이는 그 병사들에 대한 사무치는 애정의 물결이 목구멍으로 그들먹이 고여오르는것이였다.

아들 정산이 제 한몸 바쳐 구원한 전우들이 저 대오속에 있는것이다. 친아들처럼 귀하고 사랑스러운 병사들··· 비로소 그는 물에 빠진 두 처녀애를 두고 친딸보다 먼저 다른 애에게로 헤염쳐간 그 아버지의 정신세계가 리해되는듯 했다. 비로소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정신을 그리고 그 숭고한 정신이 우러나오고있는 샘터를 발견한듯싶었다. 위대한 시대가 위대한 정신을 낳는다. 그리고 그 위대한 시대는 세기적인 위인에 의해서 열리는것이다!···

정산의 소대원들이 2렬횡대로 나와서더니 구령에 따라 하늘을 향해 총을 추켜들었다. 병원에 후송된 소대장 윤철을 대신하여 부소대장 길덕수가 구령을 쳤다. 그러자 조총의 사격소리가 산과 들에 메아리쳐갔다.···

림희문부부는 부대에서 하루 더 묵었다. 정산의 중대군인들 특히 그의 소대원들과 낯을 익히고 그들의 훈련모습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밤새워 애써 정리한 중대전투기록장도 보았다. 거기엔 중대가 배출한 영웅들과 모범군인들의 투쟁사적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정산은 열여섯번째로 올라있었다. 사진속의 정산은 입을 약간 벌린채 벙긋이 웃고있는 모습이였다. 머리를 맞대고 정신없이 들여다 보고있는 아버지, 어머니더러 소리없이 웃으며 《난 행복해요. 정말 행복해요!》하고 속삭이는듯 하였다. 중대에 내려온 인민군신문사와 출판사의 기자들, 텔레비죤과 기록영화촬영가들이 그 사진을 연방 찍군 하였다.

수많은 군인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그들은 부대를 떠났다. 부대에서 내준 차를 타고 철도역까지 가서 기차를 갈아탔다. 여러명의 부대지휘관들과 정산의 소대원들이 홈에 서있었다.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울리자 전사들은 손을 흔들어주었고 군관들중의 누군가는 거수경례를 하였다.

희문은 안해와 함께 창유리에 붙어 작별의 인사를 보냈다. 기차는 벌써 속도를 높이고있었다. 어느덧 홈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멀리 뒤에 남았다. 지난해의 묵은 강냉이그루터기들이 널린 산기슭의 다락밭을 끼고 기차는 달리고있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았다.

기적소리가 울렸다. 누군가를 소리쳐 부르는 기세높은 웨침소리였다. 기차는 전속으로 내달리고있었다. 겨울의 발자취를 멀리 뒤에 남기고 봄을 향하여, 봄을 마중하여 서둘러 달리고있었다.

인제는 다 끝났다. 인제는 늙은이들만이 또 외롭게 남았다. 부대에서, 군인들속에서 느끼던 숭엄한 감정도 가슴속에 들어찬 허전함과 쓰라린 아픔만은 다 덜어주지 못했다.

림희문은 안해의 해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술은 말라서 트고 훌쭉해진 두볼은 우묵하니 패워졌다. 요 며칠새 눈귀로부터 허연 관자노리쪽으로 새로 굵은 주름살이 파고지나간듯 했다. 그는 불시로 안해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올려주고싶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속아픔에 짓눌려있는 안해에게 다소나마 위로를 주고싶었다. 다른 손님들이 보지 않는곳에서라면 그렇게 했을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조용히 위로의 말을 해주는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한단말인가?!···

안해는 목에 두른 수건을 풀었다. 그러나 그것을 손에 쥔채 또 이윽토록 까딱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목도리 한끝이 무릎우에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진것도 알지 못했다. 희문은 그것을 들어 안해의 무릎에 놓아주었다. 그러자 안해는 그를 쳐다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듯이 아무런 표정도 의미도 없는 무심한 눈길이였다. 그 순간 희문은 무엇인가 가슴을 뜨끔하니 깨무는듯 했다. 병약한 안해가 무서운 아픔과 슬픔에 못이겨 그대로 쓰러지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왜 그러오?》하고 그는 나직이 부르짖었다. 《어째서 그렇게 자기를 계속 괴롭히는거요, 응?》

그러나 안해는 말없이 머리를 저을뿐이였다. 그 무심한 표정에는 분명 이전에는 결코 볼수 없었던 생소한 무엇이 들어있었다.

안해는 지금도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 슬픔도 씻어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눈물마저 말라버리면 남는것은 타는듯 한 아픔뿐이다. 그 아픔은 졸아든 등불심지처럼 끄물끄물 힘겹게, 느리고 고통스럽게 타들어가는것이다.

렬차의 고르로운 진동이 그의 손을 떨게 했다. 그는 추위를 타는듯 어깨를 가드라뜨리며 입귀를 우물거렸다. 무엇인가 더 말하려 했으나 바짝 마른 입안에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광산마을 가까운 역에 내렸을 때는 한낮이였다. 광산당비서가 차를 가지고 마중나와있었다. 그들 부부를 보자 급히 달려오더니 병약한 희문의 안해를 부축하면서 온 광산마을이 다 알고있다고, 힘을 내라고 말해주었다. 손수 문을 열고 차에 오르도록 거들어주고 차가 떠날 때엔 그들 부부의 손을 하나씩 꼭 잡아주기까지 했다.

희문은 젊은 당비서의 그 진정어린 위로와 격려에 가슴이 뭉클하여 《고맙습니다. 비서동지.》하고 흐느낌소리처럼 나직이 속삭이였다.

그새 소나강은 골짜기의 눈이 녹으며 물이 불어났었다. 먼 소나골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이고장 특유의 발파가스냄새가 실려왔다.

언제 집에까지 이르렀는지 알지 못했다. 차가 멎고 당비서가 《자, 다 왔습니다.》라고 했을 때에야 흠칠 놀라며 머리를 들었다.

그의 집은 큰길에서 좀 들어가있는 세번째 줄에 있다. 희문은 안해와 함께 비좁은 사이길로 먼저 들어갔다. 도중 급기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집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부엌문도 조금 열려있다. 뜬김이 뽀얗게 서려있는 부엌에서 누군가의 옷자락이 얼씬거렸다.

희문은 놀라서 당비서를 돌아보았다. 당비서는 미소가 어린 눈빛으로 그들을 마주 보았다.

《자, 어서 들어가보십시오.》

그들은 바삐 바자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조금 열려있는 부엌문으로 다가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안에서 먼저 내다본 모양이였다. 문이 활 열리며 하얀 앞치마를 두른 처녀가 손에 들고있던것을 떨어뜨리며 달려나왔다.

《아이, 이제 오세요?!》

맑고 챙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놀라서 굳어져있는 두사람을 보자 처녀는 그만 주춤거렸다. 잠시후 물에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처녀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왔어요. 화옥이예요.》

화옥의 두눈에서는 벌써 눈물이 끓고있었다. 그것을 보면서도 희문은 꼼짝하지 못했다. 안해 역시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있을뿐이였다.

《어머니!》하고 부르며 화옥이가 다가섰다. 《어머니, 힘을 내세요. 내가 어머니를 돕겠어요. 내 이미 약속했지요?··· 인젠 나랑 같이 살자요.》

희문은 별안간 숨이 막혀버린듯 했다. 떨리는 손으로 목단추를 끄르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안해는 여전히 아무 말도 못하고 떨고만있었다.

《오빠부대에서》하고 화옥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계속하였다. 《소식을 알려주더군요. 병원에 실려간 오빠에 대해서랑··· 그래서 곧장 왔어요. 이제부턴 내가 정산동무를 대신해서 아버님과 어머니를 모시겠어요. 정말이예요. 엄마!··· 이제부턴 엄마라고 부를게. 그게 더 좋지요?》

갑자기 안해는 몸의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화옥이가 날래게 그를 부축하였다.

《엄마, 왜 그래요, 예?!》

안해는 화옥이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리고는 그만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흐느껴울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참고 참아오던 그 모든 슬픔과 아픔이 눈물로 쏟아지는듯 했다. 부들부들 떨면서 자꾸만 꺽꺽 목이 잠겨 허우적거리군 하였다.

화옥이도 울었다.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내여 울고있는 그들을 바라보고있으려니 희문은 눈굽이 쩌릿쩌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부지불식간에 그의 주름깊은 눈귀로 한줄기 눈물이 쭉 흘러내렸다. 그는 눈물에 젖은 얼굴을 들어 처음은 당비서를 이어 맑고 푸르른 봄날의 하늘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여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키워주신 화옥이가 와있습니다. 인물 곱고 맘씨 곱고 일솜씨도 고운 우리 딸이 와있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여직껏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피여나는 아름다운 소행들을 신문이나 텔레비죤에서나 보는줄 알았는데 그 고운 꽃 한송이가 내 집문까지 열고 들어설줄이야 어찌 알았겠습니까. 이처럼 귀하고 자랑스러운 새 시대 인간들을 키워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백번천번 감사를 드립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딛고 서있는 땅이 부르르 떨었다. 어느 막장에서 발파를 하는 모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