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9

제 2 편

9

 

문선규는 방안에 둘러앉은 핵상무조성원들을 바라보았다. 잠을 못자 부석부석해진 얼굴들, 그러나 타는듯 한 기대가 어린 눈빛들이였다. 순회대사 최우정, 참사 김세환, 국장 장운성, 부국장 리용하··· 다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무슨 말씀이 계셨는지 궁금하여 조바심치며 기다리고있다. 그러나 그는 아무말도 못하고 선자리에서 그들 매 사람을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둘러볼뿐이였다. 별안간 뜨거운 생각에 목이 메이는것을 느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핵상무조성원들이 무리하지 말며 절대 앓아눕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면서 최우정, 장운성 등 일부 일군들이 고혈압과 신경통으로 고생한다는것을 아시고 당중앙위원회 해당부서에 과업을 주어 중앙급병원의 교수, 박사들로 현지에서 직접 검진과 치료를 해주도록 배려해주시던 일이 상기되였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했던가. 일만 일이라고 계속 다그어대기만 하지 않았던가. 같이 일하는 혁명동지들에 대하여 장군님께서 마음쓰시는 그 천만분의 일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었던가···

언제보나 피로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는 참사 김세환, 지금도 여전히 눈빛을 번쩍이고있는 최우정, 강직하고도 날카로운 성격인 그는 마치 《왜 그러고있습니까. 1부부장동지, 장군님께서 무슨 말씀이 계셨는지 어서 말해주어야 할게 아닙니까!》하고 부르짖는듯 하다. 그 다음 장운성···

《국장동무.》하고 문선규는 나직이 그를 불렀다.《집에 들어가본지 얼마나 되였소?》

《예?!》

장운성은 놀라서 얼떠름해진 기색이였다. 너무도 뜻밖의 새삼스러운 물음이였던것이다. 문선규는 의혹이 비낀 그의 얼굴을, 어언 60고개에 이르러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고있는 그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30여년간 외교부 법률부서에 고착되여 일하고있는 성실한 일군, 그에게도 근심이 있고 아픔이 있다. 고령의 어머니가 지금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에게 체포되여 악형을 당한 어혈로 신고하고있는것이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그더러 자주 집에 들어가봐야 하지 않는가고 권고하나 시간을 내지 못하고있다. 사무실에서 침식을 하며 초소를 지키고있다.

《동무들.》하고 문선규는 저으기 갈린듯 한 음성으로 시작하였다.

《방금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핵상무조가 그새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면서 오늘은 무조건 푹 쉬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다음 또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으나 목이 메여 말이 나가지 않았다. 어느새 두눈에 물기가 어리고있는 사람들을 또 차례로 둘러보았다.

《장군님께서 거듭 그렇게 당부하셨는데··· 우리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맙시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무슨 말인가 하려고 몸을 움쭉 일으키고있는 최우정을 손을 들어 제지했다,

서기를 불렀다.

《차가 다 준비돼있소?》

《예.》

《그럼 서기동무도 돌아가 쉬오. 난 걸어서 가겠소. 가까운데 들려볼데가 있어서··· 그럼 동무들, 래일아침에 다시 모입시다.》

여러사람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서며 무슨 말인가 하려는것을 엄하게 막았다.

《쉬여야 하오. 이건 장군님의 명령이요!》

그는 사람들이 방에서 다 나갈 때까지 머리도 들지 않았다. 이윽고 책상서랍에서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여물었다. 가슴벽을 허비는 알알한 연기를 페부속깊이 들여마신다. 애연가인 그는 홀로 있을 때 특히 담배연기에 싸여 사색하기를 즐겨했다. 그것도 방의 창가에 서있으면 언제까지이고 움직일줄 몰랐다. 창밖의 어둠속을 눈밝혀 살피며 혹은 창유리에 비쳐진 자기자신의 흐릿한 모습을 보면서 향긋한 담배연기를 삼키느라면 피로는 가셔지고 사색은 더욱더 깊어지는것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으로 가야 한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그토록 마음쓰시며 강조하셨는데 오늘을 넘기면 더는 기회가 없을것이다.

그는 서류를 정리한 다음 옷걸이에 걸려있는 코트를 벗겨들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머리우에 차디찬 눈송이를 맞고싶었다.

인제는 홀로 생각에 잠겨 걸을수 있게 되였다. 다년간 매일같이 긴장한 사업과 외교적인 의례행사, 늘 분주탕속에 살아온 그였다. 론쟁과 연설, 유엔총회, 박수갈채, 사진기의 섬광, 기자회견, 면담방문, 텔렉스, 전화, 문건작성, 연회, 떠들썩한 인사말들-쌩큐, 쓰빠씨보, 아리가또우 고자이마스, 쎄ㅡ쎄, 메르씨··· 그러나 오늘은 흩날리는 눈송이들의 설레임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생각에 잠겨 걸을수 있다. 비록 밤길이긴 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퇴근길에 올라 어제와 오늘의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학창시절의 동무들과 친척들, 자식들과 안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수 있다.

그는 안해의 병에 대해서 거의나 알지 못하고있었다. 안해의 병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였는지 지금도 알지 못한다. 처녀시절 자기 맡은 통신초소에서는 물론 지원자로 달려간 철도건설장에서 제몸을 돌보지 않고 일해온 김성희, 언제나 별로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일해온 안해였다. 가정에서도 역시 그랬다. 남편의 직무가 오를수록, 그의 사업과 책임이 늘어나고 무거워질수록 집안살림을 도맡아하면서 언제 한번 앓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얼마전 병원에 실려갔을 때에야 안해의 병이 중하다는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병원의사들도 《이렇게 중태에 빠질 때까지 뭘하고있었습니까?》하고 놀라 소리쳤다고 한다. 그가 그 지경에 이르도록 내색을 내지 않고있었으니 얼마나 모질게 참아왔으랴.···그래도 안해는 그가 저녁상을 물리기전에는 자리를 편적이 없다. 아무리 밤이 깊어도 언제 한번 누워있는것을 본적이 없다. 그러니 내가 과연 이렇듯 무심했던가. 남들처럼 명절에도 안해와 같이 들놀이를 나가본적도 없다. 사업에 묻혀, 일에 몰리여 할수 없는것으로 여기며 어질고 순박한 그 안해를 돌보지 않았으니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흔히 부부간의 정은 늙어갈수록 더 깊어진다고 한다.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릴 무렵에야 진정한 부부간의 사랑을, 그 귀중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너무 늦었다. 그토록 분망하신 장군님께서 일깨워주셔서야 비로소 시간을 내게 되였다.

이윽고 그는 의대병원 유리문앞에 이르렀다. 이 병원에 지금 안해가 입원해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이 병원으로 곧장 실려온것이다.

정작 병원문앞에 와서야 지금이 몇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한숨을 내쉬였다. 깊은 한밤중, 남 다 자는 야밤중에 아무것도 든것이 없는 빈손으로 면회를 왔다. 어쩐지 일이 잘될것 같지 않다. 그는 조바심치며 안의 동정을 살폈다. 유리문안의 접수실에는 목이 길숨한 늙은이가 돋보기를 끼고앉아 무슨 잡지를 뒤적거리고있었다.

유리문을 똑똑 두드렸다. 늙은이가 나와서 밖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왜 그러시우? 손님, 무슨 일루 오셨소?》

《저··· 면회를 왔습니다.》

《뭐ㅡ요?》하고 늙은이가 놀랜 소리를 질렀다.《아니 지금이 몇시게 면회요.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요?》

이러리라는것을 예견하고있은 그였으므로 재빨리 설명을 달았다.

《그럴만 한 사정이 있습니다. 좀 들어보십시오.》

《안되오. 되지도 않을 소리!》

늙은이는 다시 접수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바빠난 그는 저도모르게 유리문을 탕탕 두드려댔다.

《아바이, 급한 일때문에 그러는데 제발···》

그는 말끝을 채 맺지 못했다. 늙은이가 홱 돌아서며 성난 눈길을 던진때문이였다.

《유릴 마스겠소!》

《···》

그는 그만 불에 덴것처럼 유리문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는 멍하니 굳어져버리고말았다. 희망과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리는것을 느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사정을 해야 할지··· 명백한것은 이 늙은이를 설복하기가 국제무대에서 합의를 이룩하기보다 더 어려우리라는 그것이였다. 그곳에서는 열띤 론쟁이라도 있지만 이 늙은이는 애당초 말도 들어주려하지 않는것이다. 그는 늙은이가 접수실문을 탕 닫고 앉는것을 보고는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비로소 추위가 느껴졌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걸탐스레 몇모금 들이빨고는 또 유리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늙은이와 통하는 언어가 그것밖에 더 없는것이다.

똑똑똑··· 똑똑똑··· 점차 통방신호를 높였다,

《아바이!》

《···》

《아바이, 한마디만 좀 들어보십시오.》

여전히 대답이 없다. 말끔히 면도를 한 늙은이의 뾰족한 턱과 귀밑까지 바투 올려깎은 희슥희슥한 머리를 바라보면서 그는 맥이 진하는것을 느꼈다. 아무리 사정해본댔자 전혀 가망이 없으리라는것은 뻔했다.

저 아바이는 이전에 무슨 일을 하였을가··· 풍덩한 쥐색솜옷을 입고 입에는 황동테를 두른 물부리를 물고있다. 《천리마》잡지를 펴들고 읽고있는데 코에 걸린 돋보기너머로 이따금 이쪽의 동정을 슬쩍 살피기도 한다. 그러다가 이제 밸이 뒤틀려 가버리겠지, 정신 빠진 사람같으니··· 하고 생각하는것 같다.

무슨 일을 하댔을가.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던 사람일가, 아니면 보통 로동자나 사무원정도였을가··· 시내의 여러 기관에 있는 정문수위들중에는 한때 높은 직무에서 일하던 틀지고 위엄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인민군대에서 오래 복무한 옛 대좌들도 많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들 태반이 다 전쟁로병들이라는 그것이다. 전날에 세운 공적과 로력의 대가로 높은 대우를 받으며 말년을 편히 보낼수도 있으련만 이 로병들은 낚시대를 들고 대동강, 보통강기슭으로 나가는것이 아니라 자동차배기가스와 사람단련에 증이 나는 기관기업소의 정문들과 후문들에 흔연히 나와 있는것이다.

《아바이!》

《···》

대답이 있을리 없다. 몸이 떨려나기 시작했다. 걸어올 때는 몰랐는데 발이 시려들고 잔등이 오싹오싹했다. 그는 코트목깃을 올리고 하나하나 단추를 채운 다음 주머니에 찔러두었던 장갑도 끼였다.

더 무장할것이 없나해서 이쪽저쪽 뒤져보고 살펴보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모자를 쓰고오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그는 열심히 담배를 빨며 발을 굴렀다. 툭툭거리는 소리를 내며 조심스럽게 구르다가 차츰 탕탕 뒤축으로 정문바닥을 울리기 시작했다. 인제는 그것이 매정한 늙은이에게 보내는 청원과 항의의 언어이다.

그대로 돌아갈수도 없는 그였다. 이제 돌아서면 언제 또 오겠는가!··· 석대째 담배를 꺼내여 불을 붙여 물었다. 점점 더 심하게 느껴지는 추위때문에 계속 발을 구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때 등뒤에서 문걸쇠를 벗기는 소리가 났다. 늙은이가 성난 목소리로 물었다.

《어데 계시우?》

《예, 전···》

늙은이는 그에게 대답할 틈도 주지 않았다.

《내 이미 말하지 않았소. 돌아가라구, 에?··· 도대체 지금이 어느때요. 준전시가 선포되구 온 나라가 전쟁상태에 들어갔는데 한밤중에 병원문을 두드려 대는 사람이 어데 있소. 보아하니 막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더 길게 말하진 않겠소. 거기서두 제도와 질서를 모르진 않겠지요, 에!··· 어데 계시우?》

《예, 외교부에···》

《돌아가시우!》

그는 아연해졌다. 인제는 거의나 가망이 없을것 같다. 이제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늙은이는 아직 열려진 문앞에 서서 그를 깐깐히 훑어보고있었다.

《아바이, 그럼 몸이라도 좀 녹이게 해주십시오.》

《참, 별손님 다 보겠군.》

늙은이는 투털거리면서 잠시 망설이는것 같았다. 파랗게 질려있는 그의 얼굴을 살펴보고는 그만 문옆으로 조금 비켜섰다,

《할수 없지, 들어오시우.》

늙은이를 따라 접수실에 들어서자 대뜸 안경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는 안경을 벗어들고 손수건으로 정히 닦기 시작했다. 늙은이는 그의 손에 들린 깨끗한 흰 손수건이며 팔소매에 가리워졌다 드러났다 하는 시계 등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어데 계시우?》

늙은이가 세번째로 묻는 말이였다. 지금까지는 거의 습관에 의해 물었다면 이번엔 진짜로 따져묻는 말이였다.

《증명서 가지고계시겠지요?··· 좀 봅시다.》하고나서 늙은이는 자기가 지내 딱딱하게 군다고 여겨졌는지 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질서가 그러하니 어찌겠소. 좀 보여주시우.》

그는 천천히 안경을 걸고 증명서를 꺼내들었으나 웬일인지 선뜻 내보이기가 주저되였다. 증명서에 밝혀진 그의 직무에 늙은이가 게면쩍어하고 죄스러워한다면 그이상 딱한 일이 없을것이다.

벌써 늙은이는 돋보기를 끼고 손을 내밀고있었다. 그가 증명서를 주자 한참이나 깐깐히 훑어보았다.

《음,그렇댔군.》하고 늙은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그었다. 《그럼 그렇다고 미리 말씀할것이지··· 어서 좀 편히 앉으시우.》

늙은이는 그에게 옆에 있는 의자를 옮겨주었다.

좋은 늙은이이다. 그가 별스레 놀란척 하며 태도를 바꾸어 미안하다느니 잘못했다느니 하는 말이라도 늘어놓았더라면 아마 몹시 거북해졌으리라. 하지만 늙은이의 표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접수용교환대앞에 다가앉으며 그가 또 물었다.

《누굴 찾아오셨수?》

《예, 처가··· 2내과병동 4층이라던지···》

늙은이는 돋보기를 한손에 잡고 이것저것 살피더니 접속코드를 꽂으며 송수화기를 들었다. 밤에는 교환수들이 자리를 비우므로 접수에서 직접 련결하는 모양이다.

《병동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군요.》하면서 늙은이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아마 환자들을 돌아보겠지요. 좀 앉아 기다리시우.》

《예, 그러지요.》

문선규는 그에게 담배를 권하였다. 라이타까지 켜주자 늙은이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붙이고는 쿨럭쿨럭 기침을 했다.

《좀 독하군···》

문선규가 물었다.

《지금 년세가 어떻게 됐습니까?》

《올해 예순넷입니다.》

《전엔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군대였수다, 포병으로 내내 복무했지요.》

《예ㅡ 그렇군요. 말씨로 봐서 분간하기 어렵다했더니 전쟁로병이였군요. 아직 정정하십니다.》

《뭘요, 인젠 아무 일이나 마음 같지가 않습니다. 글쎄 환갑이 지나니 왜 그런지 허리가 뚝 부러진것 같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더구나 속이 쑤셔서 견딜수 없군요, 글쎄 온 나라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아안구 떨쳐나섰는데 이렇게 병원문이나 지키구있으니···》

늙은이는 담배연기를 깊숙이 삼키고 담배대를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두눈을 쪼프리면서 문선규를 쳐다보았다.

《한가지 물어도 일없겠는지요?》

《예, 말씀하십시오.》

《거 다름아니라 신문에서랑 보자니 1부부장동지가 핵문제에 많이 관여하던데··· 핵문제말입니다. 그거 미국놈들이 바지에 똥줄을 갈기게 할 무슨 방법이 없는지요?··· 포병식으로 말하면 직접조준사격으로 단방에 즉살탕을 먹였으문 해서 하는 말이지요.》

《직접조준사격이요?》

《예, 직접조준사격이라는게 문자그대루 목표물을 직접 겨누고 쏜다는건데··· 아, 거 1211고지에 직사포를 올려놓구 놈들을 족친 유명한 전투얘길 아실테지요?··· 그때 놈들이 얼마나 질겁했겠는지 한번 상상해보시우. 글쎄 청청하늘에서 마른벼락을 치듯 고지꼭대기에서 직사포가 꽝꽝 울부짖었으니 놈들로서야 상상도 못한 일이지요.》

《예ㅡ》

늙은이는 생각에 잠겨 손에 쥔 담배를 주무르고있는데 크고 시꺼먼 손가락들이 그것을 금시 부스러뜨릴것 같았다,

《내 늙은것의 어리석은 생각일진 몰라두.》하고 늙은이가 또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이제 분명 벼락을 칠거우다. 두고보시우.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번개를 날리실거우다. 이건 나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다들 그렇게 믿고있지요. 이제 핵문제때문에 놈들이 피똥을 싸게 될거라구요. 아무렴 우리를 함부로 걸구드는 놈들이 무사할라구. 어림두 없지, 어따대구 감히! ··· 그렇지 않습니까?》

《옳습니다.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그는 손가락마디를 뚝뚝 소리내여 꺾으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불현듯 가슴이 뭉클해났다. 이렇듯 좋은 늙은이를 만나 이처럼 좋은 말을 듣게 된것이 기뻤다. 늙은이의 말을 들으니 모든것이 단순하고 명백해보였다.

뜨거운 물줄기가 그의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다. 외교사업이라고 해서 세계를 향해 열린 창문에만 붙어서서 내다보고있을 필요는 없다. 인민의 마음속에 조선이 있고 세계가 있다.

그는 또 담배갑을 열어 늙은이에게 권했다. 그것을 받아 굵은 손가락으로 한대 뽑아들던 늙은이가 놀랜 소리를 질렀다.

《원, 이 정신 보지!》

늙은이는 2내과병동 4층을 열심히 찾았다. 드디여 그곳 직일의사가 나왔다. 늙은이는 그쪽에서 거절할가봐 겁내는듯 약간 덤벼치며 애써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긴 접수입니다. 지금 외교부 1부부장동지가 부인한테 면회를 오셨는데··· 워낙 일이 바쁘다보니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야밤중에야 겨우 시간을 낸 모양입니다. 예, 그렇게 하지요.》

늙은이는 그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며 《의사선생이 전활 바꾸라는군요.》하고 나직이 말했다.

문선규가 송수화기를 받아들자 저쪽의 녀의사가 먼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왜 이제야 오십니까?》

《안됐습니다. 의사선생!》

《그러니 아직 집에 들리지 않으셨군요?》

《예.》

《오늘 부인이 퇴원했습니다.》

《예?!》

그가 놀랜 소리를 지르자 녀의사가 설명했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됐는데 어떻게 병원에 누워있겠는가 하면서··· 나갔습니다. 수술후유증이 있을수 있다고 딱 잘랐는데도 한사코 우기더군요. 정말 너무 떼를 써서 막을수 없었습니다.》

《예ㅡ 그래요?》

안해가 고마왔다.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온 나라 인민의 힘찬 숨결과 호흡을 같이하고있는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전화가 끝나자 늙은이와 따뜻한 인사말을 주고받고 밖으로 나섰다.

찬바람이 바늘끝같은 얼음침으로 콕콕 찔렀다. 아직도 바람은 찼지만 그래도 역시 봄밤은 봄밤이였다. 접수실에서 덥힌 몸이 훗훗 열기를 내뿜은때문인지 그는 어깨가 쩍 벌어지는것을 느끼며 집을 향해 빨리 걸어갔다.

다음날 아침 문선규는 국제원자력기구 규약과 담보협정문, 핵무기전파방지조약 원문 등을 가지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집무실로 갔다. 그이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좀 쉬였는가고, 안해의 병문안은 가봤는가고 물으시였다. 문선규는 핵상무조전원이 푹 쉬였고 자기도 짬을 내여 병원에 가보았다고 대답올렸다. 안해가 퇴원한데 대해서는 비치지 않고 의대병원접수실의 막대기같은 늙은이에 대하여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가 전쟁때 직사포를 고지에 올려놓고 적들을 답새기던 일을 회상하며 핵문제에서도 이제 우리 장군님께서 벼락을 내리실거라고 하던 말을 자세히 말씀드렸다.

《저는 이것이 바로 우리 인민의 지향과 요구라는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그 늙은이의 말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비로소 저는 세계의 외교사에서 자주 론의되는 〈국민의 외교의식〉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였습니다.》

문선규는 흥분하여 필요이상으로 목소리가 높아지고있는줄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지금 세계의 많은 정치가, 외교관들 및 리론가들은 현대외교를 《실력외교》라고 믿고있는데 그 《실력외교》를 뒤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정치력(정치가의 지도력)과 무력, 금융경제력, 문화선전력을 들고있으며 여기에 《국민의 외교의식》을 덧붙이고있다.

그것은 《국민의 외교의식》이 높으면 높을수록 온 나라의 의지적통일과 세계무대에서의 대결의지가 강화되고 따라서 그 나라의 정치적 및 외교적 힘이 높이 발휘될수 있기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하고 문선규는 계속하였다. 《우리 인민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외교의식〉을 가진 인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인민처럼 정세발전에 강한 관심을 돌리는 인민은 아마 없을것입니다. 지금도 온 나라 인민이 핵문제때문에 하나같이 분노하고 근심하고 또 한방 꽝! 하고 갈길것을 다같이 희망하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들은··· 고작 생각했다는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그리시였다.

《〈국민의 외교의식〉이라··· 달리 말하면 인민의 정치의식이지··· 어쨌든 그걸 깨달았으니 됐습니다. 내가 늘 말하는것이지만 인민이 선생입니다. 그래서 나도 언제나 인민에게서 배우고 그들에게서 고무를 받습니다.··· 언젠가 내가 자강도에 갔다오다가 밤중에 전쟁로병들을 만난 일이 있는데 그들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 쌀로써 사회주의를 지키겠다고 로병분조를 뭇고 새벽까지 거름을 실어나르고있었습니다. 적들의 봉쇄책동으로 기름사정이 어려워져서 하는수 없이 밤에 뜨락또르를 돌려쓴 모양인데 기름문제가 정 풀리지 않으면 송탄유를 뽑아써서라도 기어이 올해농사를 잘 짓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늙은이들이 끝내 질좋은 송탄유를 뽑아 뜨락또르를 다 뛰게 한다는 보고가 어제 왔습니다. 우리 인민은 바로 이런 인민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같으면 상상도 할수 없는 일들이 우리 나라에선 매일과 같이 일어나고있지 않습니까. 처녀들이 특류영예군인한테 시집을 가고 물에 빠진 두 아이를 건지려고 뛰여든 아버지가 자기 자식보다 먼저 다른 애한테 헤염쳐가고··· 1부부장동무도 알고있겠지만 인디아양에서는 지금 우리 나라 무역선 〈무포〉호 선원들이 적들과 맞서 치렬한 싸움을 벌리고있습니다. 그새 항행이 복잡한 말라까해협을 통과할 때까지 멀리서 추격하며 기회만 노리고있던 적들이 인디아양에 나서자 드디여 배길을 막고 강도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무포〉호 선원들은 창과 칼, 도끼를 가지고 결사적으로 싸우고있습니다. 죽으면 죽었지 절대 놈들에게 배를 검열하게 하는 치욕은 받지 않겠다는것입니다. 조국의 존엄을 지켜 목숨걸고 싸우는 그들을 보면 다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평범하나 굳세고 꺾이지 않는 우리 인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교전선에서도 이 인민의 힘을 믿고 그에 의거하여 적들에게 일대 공격전을 벌립시다. 공격전을! ···》

단호한 결심이 어리신 그이의 말씀에 문선규는 큰숨을 들이그었다. 그이께서 커다란 사변을 준비하고계신다는것을 절감하였다. 하여 그는 온몸에 뻗쳐가는 신심과 용기에 가슴을 활 펴며 그이를 우러렀다.

《1부부장동무.》 그이께서 계속하시였다. 《이제 곧 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 제기할 보고를 하나 준비하시오. 국제원자력기구 2월관리리사회를 전후하여 핵대결전에서의 우리의 활동과 적들의 동향, 사태발전의 추이에 대하여 잘 분석하여야 하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문선규는 군인들처럼 허리를 꼿꼿이 펴며 힘있게 대답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