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6

제 2 편

6

 

그날 오영범은 려단을 인계하고 총참모부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너무도 의외의 일이여서 처음엔 그것을 믿을수가 없었다. 다른 때도 아닌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여 전군이 진지를 차지하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있는 때에 전투부대의 지휘를 넘겨주고 소환된다는것은 비상조치가 아닐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작전국에서 내려온 대좌가 려단을 인계받았다. 박격포신같이 굵고 단단한 오영범과 대조적으로 키가 훤칠하고 코마루가 날카로운, 첫 인상에 벌써 령활한 지휘솜씨를 가졌으리라고 믿어지는 사람이였다. 게다가 그는 이전에 땅크련합부대의 작전참모였다고 한다. 오영범을 대신하는 기계화보병려단의 지휘관으로서는 적임자가 아닐수 없다. 오영범은 가슴이 저려나는것을 누르며 려단을 인계하였다. 그들은 처음부터 공식적인 말 이외에는 일체 다른 말은 비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거니와 그럴새도 없었다. 려단의 전체 땅크구분대들과 장갑보병구분대들은 공격출발위치에 진출하였고 지휘관들은 지휘감시소에서 전투명령을 기다리며 밤을 밝히고있었다.

오영범은 인계가 끝나자 지휘감시소에 있는 려단정치위원, 참모장들과만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철갑모를 쓰고 위장풀까지 꽂은 려단정치위원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려단장동무와 같이 본때있게 싸워보려 했는데··· 이렇게 됐군요. 왜 려단장동물 갑자기 소환하는지 알아보지 못했습니까?》

오영범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알수없어 정치위원은 물론 려단참모장도 어쩔바를 몰라했다. 승급이라면 뜨겁게 축하하고 설사 처벌을 받고 소환되여간대도 고무적인 인사말은 얼마든지 생각해낼수 있을것이나 지금 그들은 자기네 려단장이 왜 석별의 정도 변변히 나누지 못하고 갑자기 자리를 떠야 하는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있는것이다.

오영범은 딱해하고 어색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대하기가 괴로왔다. 당황해하며 어정쩡한 미소를 띠우고있는 그들과 되도록 눈길이 마주치지 않도록 애쓰며 그는 서둘러 악수를 하고 차에 올랐다.

골마다에서 위장물로 뒤덮인 땅크와 장갑차, 수륙차들이 병렬전개대형을 짓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려단장의 승용차를 묵묵히 바래우고있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은 지금 자기네 려단장이 새 전투명령을 받으려 어데론가 차를 달려가고있는줄로만 알고있을것이다.

오영범은 눈시울이 떨리는것을 느꼈다. 설핀 저녁해빛이 장갑보병들의 철갑모에서 번쩍이는것을 바라보다가 눈길을 돌리고말았다. 려단은 그의 사랑이였고 희망이였고 삶의 전부이기도 했다. 려단을 떠나서 그는 그 어떤 기쁨도 알지 못했다. 그는 거기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깡그리 쏟아부었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작별의 인사도 없이 려단을 떠나간다.··· 왜 무슨 일로 려단을 떠야만 하는가?··· 그는 강심을 먹고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려단의 도하공격을 전혀 새롭게 진행할 작전안을 짰다. 그것을 총참모부에 올려 보낸지 사흘째이다. 아마도 문제는 거기에 있는것 같다. 새 작전안이 부결되고 그를 려단장의 직무에서 해임하기로 결정했을것이다···

그는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앞을 내다보았다. 매일같이 오가던 길과 다리, 골짜기의 내물이며 소나무숲, 츠렁바위와 뙈기밭들이 서둘러 마주 달려와서는 뒤로 지나갔다. 사무치는 애정 없이는 바라볼수 없는 땅크포탑들, 마지막 골어귀를 지나면서 그는 몇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승용차는 오불꼬불한 산협길을 달리고있었다. 갑자기 오영범은 허리를 쑥 내밀며 앞을 바라보았다. 가철식자동보총을 지여총하고 배낭과 여러가지 장구류들을 둘러멘 위장복차림의 병사들이 길 한쪽에 주런이 늘어서있었다. 려단정찰병들이였다. 려단장의 차가 가까이 가자 맨 앞쪽에 서있던 소대장이 거수경례를 붙였다.

오영범은 얼마전 밤하늘을 날면서 낯을 익힌 전사들을 알아보았다. 최윤두라고 하던 익살군 무선수 하사도 눈에 띄였다. 그는 차를 멈춰세웠다.

《중위동무, 이건 뭐요?》

차에서 내리자바람으로 그는 례의 그 강경한 어투로 윤철에게 물었다.

《려단장동지》하고 윤철이 말했다. 《중위 윤철외 26명 려단장동지와 작별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작별인사?》

《그렇습니다. 려단장동지!》

소대전체가 이렇게 목소리를 합쳤다.

《려단장동지!》하고 최윤두가 말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우린 려단장동지가 직접 우리와 같이 하늘을 날던것을 언제나 잊지 않겠습니다.》

오영범은 별안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최윤두를 향해 한결 낮아진 음성으로 《어떻게 알았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익살군 최윤두는 너부죽한 얼굴에 능청스러운 표정을 띠웠다.

《우리야 정찰병들이 아닙니까!》

오영범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리고는 정찰병들을 차례로 훑어보면서 또 한사람의 낯익은 모습을 찾아보았다.

림정산은 대렬 맨 끝쪽에서 새끼노루를 부둥켜안고있었다. 오영범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왜 그걸 계속 안고다닐 작정이요?》

《아닙니다. 려단장동지!》 림정산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것이 기뻐 챙챙한 목소리로 재빨리 대답했다. 《이제 곧 놓아주려고 합니다. 이젠 다 나았습니다. 얼마나 잘 뛰는지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그래?!》

《예, 그런데 려단장동지···》하고 정산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지금 여기서··· 려단장동지앞에서 놓아주어도 되겠습니까?》 오영범은 전사의 두눈에서 샘물같이 끓고있는 미소를 보았다. 아마도 그는 정찰소대전체가 정성을 기울여 완쾌시킨 새끼노루를 좀더 의미있게 놓아주고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하오.》

오영범의 말이 떨어지자 정산은 가까이에 있는 동무들을 향해 씩 웃으며 품에 안고있던 새끼노루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잔등을 몇번 쓸어주고나서 산기슭으로 떠밀었다.

《자, 이젠 집으로 가라!》

새끼노루는 한달음에 껑충 뛰면서 애솔포기를 타고넘었으나 웬일인지 걸음을 멈추고 정찰병들을 멀거니 보고있는것이였다. 정산이 소리쳤다.

《가라 가!··· 어서 가라는데!》

그러나 그놈은 여전히 머리를 쳐든채 한동안 이쪽을 보고있다가 급기야 몸을 돌려 후닥닥 뛰면서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오영범은 전사들과 같이 새끼노루가 사라져간 숲속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전체 정찰병들을 둘러보면서 정산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자, 그럼 동무들! 잘 싸우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려단장동지!》

오영범은 차에 올랐다. 전체 정찰소대가 그에게 경례를 하였다.

승용차는 그들의 앞을 지나 차츰 속도를 높였다. 오영범은 정찰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려단장동지!》

누군가 또 소리쳤는데 림정산의 목소리같았다. 오영범은 어느덧 멀리 뒤에 남은 그들을 돌아보며 저도모르게 입귀를 실룩거렸다. 실로 오래동안 오영범은 저 전사들의 이름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그들은 그저 오영범이 지휘하는 기계화보병려단 수천명 전사들중의 한사람이였을 뿐이였다. 오영범은 언제나 용감한 대대장들과 중대장들만을 관심했고 그들만 꽉 틀어쥐면 된다고 생각해왔었다. 련합부대를 지휘하는 그로서 개별적전사들까지 기억에 새겨둘 리유는 없었고 또 그럴 여가도 없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시여 저 전사들과 오영범을 남다른 인연으로 맺어주시였다. 그것은 단순한 명령과 복종, 상하관계만이 아닌 사랑의 정으로 맺어진 인연이였다.

그는 려단장으로 있은 전기간의 가지가지 일들을 두서없이 돌이켜보며 바위처럼 앉아있었다. 군단지휘부까지 언제 어떻게 가대였는지도 알지 못했다.

군단장 김대웅중장이 그 바쁜속에서도 오영범을 위해 우정 시간을 내주었다. 김대웅은 키가 크고 몸집도 우람한 사람이였는데 성격은 온화하고 침착하였다. 오영범이 존경하는 상관들중의 한사람인 그는 인계인수정형이며 오영범의 심리상태에 대해서까지 관심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얼마전부터 작전국에서 능력있는 일군을 물색한다더니만 혹시 거기서 쓰려고 동물 소환해가는게 아닌가?···》

오영범은 말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온화한 얼굴에 떠오른 미소와 장령모밑의 희흑희슥한 귀밑머리를 여겨보며 명치끝이 쿡 쑤시는것을 느꼈다. 김대웅중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영범의 담찬 기질과 내밀성을 칭찬하였고 오영범이야말로 진짜 싸움군이라고 말해왔었는데 지금은 그한테서 동정어린 말을 듣게 되였던것이다.

《군단장동지!》하고 그는 차렷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어쨌든 전 다시 부대에 돌아오겠습니다. 대대를 지휘해도 좋고 중대를 지휘해도 좋습니다. 기어이 다시 부대로 돌아와 여기서 싸우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오.》

오영범은 자기차를 돌려보내고 군단대기차들중의 하나인 《갱생》을 타고 총참모부로 향했다. 운전수도 전혀 낯모를 사람이여서 오래도록 한마디 말도 없이 갔다.

해질무렵이였다.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해가 멀리 들판한끝에 병풍처럼 둘러선 산봉우리들을 맥없이 불태우고있었다. 지난해의 말라버린 강냉이그루터기들이 널린 등성이우로 뜨락또르 한대가 재채기처럼 탕탕탕 허연 연기를 토하며 힘겹게 오르고있을뿐 사위는 한적하고 쓸쓸했다. 산경사면에서는 어느새 이른봄의 땅거미가 잡관목들을 뒤덮고있었다.

오영범은 툭 불거져나온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끄떡없이 앉아 앞을 내다보고있었다. 사위가 어두워지면서 자기의 마음속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된 날에 려단을 떠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였는가?··· 장령별을 달고 처음 이 길을 달려오던 때가 어제같다. 자기 맡은 려단을 총창처럼 벼리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려 했건만···

준엄한 싸움의 날이 오면 맨 앞장에서 진격의 돌파구를 열려고 했건만!··· 그는 김대웅군단장이 말한 그러한 소환을 믿지 않았다.

작전국에는 오영범과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을수 없었다.

그는 자기가 날이 선 장검과 같다는것을, 그리하여 일단 칼집에서 뽑아들면 무엇이든 썩둑 베여던지던가 아니면 칼날이 무디여 다시 벼리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칼집에 꾹 박혀 녹이 쓸고있기보다는 그대로 바위를 쳐서 무디여버리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그였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장검은 시범도하훈련의 《실패》로 하여 날이 무디고말았던것이다.

무력부청사에 도착했을 때엔 한밤중이였다. 총참모부작전직일관이 그의 도착에 대하여 어데인가 보고하였다. 그쪽에서 그를 들여보내라고 한것 같았다. 전투복차림을 한 중좌가 그를 안내하였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어느 한 건물로 들어가 거기에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몇개를 올라서는 길다란 복도 한끝까지 또 말없이 걸어갔다.

《이 방입니다. 소장동지.》

중좌가 한 말이였다. 그 방안에 그를 부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였다.

《수고했소. 중좌동무.》

오영범은 그가 거수경례를 붙이고 물러가자 방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키가 큰 대좌가 그를 내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총참모장동지가 지금 기다리고있습니다.》

비로소 그는 자기가 총참모장의 방문앞에 서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키가 큰 대좌는 총참모장의 서기일것이다. 그는 서기를 따라 방음장치가 된 두터운 문안으로 들어갔다. 서기실을 거쳐 총참모장의 방에 들어서니 저 멀리 커다란 탁자앞에 마주앉아있는 총참모장의 모습이 아주 작게 보였다. 총참모장이 눈길을 드는 서슬에 밝은 불빛이 도수높은 그의 안경알에서 부서지며 흐트러졌다. 오영범은 그를 향해 거수경례를 붙이며 규정의 보고를 하려고 하였다. 그때 총참모장이 짧게 말했다.

《가까이 오시오.》

그 목소리는 아득히 먼 하늘가에서 울려오는듯 하였다. 오영범은 몸에 밴 군사적동작으로 재빨리 그의 탁자앞에까지 걸어갔다. 그리고는 눈언저리가 깊이 패인 그의 검누르끄레한 얼굴을 바라보며 또 거수경례를 하였다.

《총참모장동지, 소장 오영범 명령대로 도착하였습니다.》

《앉소.》

오영범이 머뭇거리며 그대로 서있자 총참모장이 피끗 눈길을 들었다. 오영범은 모자를 벗어들며 탁자 한끝에 공손히 자리잡고 앉았다. 그는 아직 이토록 크고 엄엄한 방안에 앉아본 일이 없다. 무릎우에 모자를 놓고 그는 앉아서도 몸을 꼿꼿이 펴고있었다.

총참모장은 탁자우에 지도를 펴놓고있었는데 아직도 커다란 확대경이 손에 들려있는것으로 보아 지도작업을 하고있은것 같았다. 그가 물었다.

《려단을 인계했소?》

《예.》

《제기된것은 없소?》

《없습니다.》

《좋소, 그럼 가서 쉬오.》

《?!···》

오영범은 저도모르게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했다. 그는 총참모장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를 쉬게 하려고 려단을 인계시키고 총참모부에까지 불렀단말인가?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지금 전군이 결전을 앞두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만 기다리고있는데 총참모부객실에 불러다 휴식을 시키다니?!··· 온갖 무서운 의혹심이 그의 머리속에서 고패쳤다. 하여 그는 손에 쥔 장령모를 꽉 움켜쥐며 불같이 속삭이였다.

《총침모장동지, 한가지 문의할수 있습니까?》

《뭐요?》

《저를 왜 여기 불러왔는지 알고싶습니다.》

그는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지시에 대하여 사소한 의문도 가져서는 안되며 오직 《알았습니다!》하고 집행할 의무만이 있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더우기 한등급이상의 상관도 아닌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의 지시임에야 말해 무엇하랴! 가서 쉬라면 쉬고 한달이고 두달이고 기다리라면 기다려야 할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대로 방을 나서고싶지 않았다. 설사 처벌을 받을지언정 사정을 알지 않고서는 절대 자리를 뜰수 없었다. 모가 진 아래턱을 쑥 내밀고있는 그의 완강한 표정을 눈여겨보던 총참모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동물 부르시였소.》

《예?!》

《동무가 올린 새 작전안을 친히 보아주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즉시 동물 총참모부에 올라오게 하라고 하시였소.》

오영범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순식간에 온몸이 옥죄여드는듯 하였다. 결국 그가 올린 작전안이 문제로 된것이였다. 그토록 심혈을 쏟았건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그 높이에 끝내 이르지 못한것이였다. 어느새 눈앞이 뿌얘지고 목에서는 경련이 일었다.

《더 물을게 있소?》

총참모장의 물음이였다. 오영범이 한자리에 굳어진채 목석같이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그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그럼 가서 쉬오. 아침에 다시 부르겠소.》

《알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그 방을 어떻게 나섰는지 잘 알지 못하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아까 그를 데려왔던 전투복차림의 중좌가 그를 객실에까지 안내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