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5

제 2 편

15

 

리명구는 자기를 찾아 급히 달려오는 한병권정치부장을 조타실로 가던 도중에 만났다. 그답지 않게 두팔을 허우적거리며 서둘러대는것이 무슨 불상사라도 알리러 오는듯 했다. 리명구를 보자 걸음을 멈춘 그는 입을 벌리고 먼저 더운 바람을 한껏 들여마셨다.

《선장동무.》하고 그는 쉬지근해진 목소리로 바삐 말했다. 《지금 미국놈들이 선장동무를 찾고있소.》

《?!》

리명구는 그가 롱을 하지 않나 해서 그냥 굳어진채로 그의 표정을 살피려 했다. 그는 마치 이웃집 사람이 찾기라도 하는듯 말했던것이다.

《왜 그러오. 놈들이 찾는다는데.》

《뭐라구요?》

《글쎄 미국놈들이 선장동물 찾는다질 않소. 무슨 최후통첩을 하겠다고 한다는거요.》

《최후통첩?》

그때 멀지 않은 조타실에서 2등항해사가 유리문을 딱딱 두드려대서야 그는 놈들이 무선대화기로 선장을 찾는다는 소리임을 알아차렸다. 그의 얼굴이 사납게 이지러졌다.

《갑시다!》

그는 한병권과 같이 조타실로 달려갔다. 그가 들어서니 2등항해사가 다급히 보고했다.

《선장동지, 적잠수함 함장입니다. 우리한테 무슨 최후통첩을 하겠답니다.》

리명구는 무선대화기앞에 마주서서 숨을 헐떡거리며 잠시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놈들이 끝내 우리를 찾아냈는가, 아니면 줄곧 우리를 뒤따라왔던것인가?···

그때 거센 발동기의 소음이 머리우를 휩쓸어갔다. 미해군직승기가 배의 마스트를 스칠듯 하며 날아가는 소리였다. 리명구는 그것이 멀리 앞으로 날아갔을 때에야 빨간불, 파란불, 노란불들이 비행기의 량옆에서 껌벅거리는것을 보았다. 이제는 최후결전의 시각이 온것 같다. 적들이 밤중에 달려드는것을 보면 이 수역에서 소문없이 해치우려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말라터진 입술을 추기며 무선대화기에 바투 다가서자 천천히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 〈무포〉호 선장이다.》

《북조선선장!》

당장 터져나온 신경질적인 부르짖음이였다. 지금껏 신경을 곤두세우며 기다려왔던것 같다.

《북조선선장, 나 미해군잠수함 〈타잔〉호 함장 해군대좌 윌리암 마이클이다.》

그가 하는 수작 역시 심상치 않다. 지금까지 그자는 한번도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것이다.

리명구는 버릇처럼 손바닥으로 턱밑을 쓸어보았다.

어느새 수염뿌리들이 가득 돋아나있었다. 정치부장 한병권이 또 눈꼬리를 치뜨고 《여보, 을지장군! 선원들이 그걸 본따면 어쩔려구.》하면서 혀를 차기전에 면도를 해야겠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말하라. 〈타잔〉호 함장, 뭣때문에 찾았는가?》

《내 말을 들으라.》하고 적함장이 소리쳤다.

《나 윌리암 마이클은 상부의 명령에 의하여 당신들에게 우리 미합중국대통령의 성명을 전달하겠다. 명심해들으라. 대통령성명은 다음과 같다.

〈인디아양을 항행중인 북조선상선 〈무포〉호에 10여기의 미싸일이 은닉되여있다는 정보가 있다. 우리는 불안정한 중동지역의 평화과정을 엄중히 파괴할수 있는 북조선의 미싸일수출을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인정하면서 절대로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이상 대통령성명전문을 전달하였다. 북조선선장 들었는가? 배를 검열받지 않고서는 절대로 인디아양을 통과하지 못할것이다. 우리는 용납하지 않을것이다!》

마지막 그 말은 미국대통령성명이라면서 방금 전해준 거기에서 따온 말이였다. 리명구는 성이 나서 소리쳤다.

《우린 이미 대답을 주었다. 우리한테서 다른 대답은 기대하지 말라. 알았는가?》

《좋다. 북조선선장, 이제 후회하게 될것이다.》

리명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리자 한병권이 입귀를 찌긋하면서 물었다.

《놈들이 뭐라고 하오?》

《무슨 대통령성명인가 하는걸 읽으면서 우리 배를 절대로 그냥 그대로는 통과시키지 않겠다는군요. 아마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봅니다.》

《원 미친놈들!》

한병권은 별로 대수롭지 않은듯 늘 하는 버릇으로 손끝에 밴 담배진내를 흥흥 코로 맡고나서 또 입을 열었다.

《전투비상소집을 해야겠지요? 선장동무, 명령을 내리시우. 내 나가보지요.》

《그럼 먼저 나가 준비해주십시오.》

한병권은 머리를 끄덕하고나서 여전히 서둘지 않으며 문밖으로 나갔다.

얼마후였다. 갑자기 머리우에서 펑!ㅡ 하는 소리가 났다. 즉시 길다란 불줄기가 하늘에서 꿈틀거리며 쏟아져내리는것이 보였다. 리명구는 창유리에 이마를 쪼을듯 바투 달려가 붙으며 밖을 내다보았다. 그 순간 우현쪽 바다의 물결우에서 삼단같은 불길이 치솟는것을 보았다. 또다시 펑!ㅡ 하는 소리와 함께 이번엔 저 앞쪽으로 시뻘건 불줄기가 내려꽂혔다.

삽시에 바다전체가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제복상의도 없이 줄간 샤쯔바람인 김철수가 뛰여들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놀라서 달려온 모양이였다.

《선장동지!》하고 그가 부르짖었다. 《놈들이 직승기에서 화염방사기를 쏘아대고있습니다. 바다에 온통 기름을 쏟아붓고 거기에 불을 달았습니다.》

(바다에 기름을?!···)

그때에야 리명구는 오늘따라 바다물결이 더 검고 진하게 번들거리던것을 생각했다.

적들이 해류가 갈라지는 이곳 호수와 같은 고요한 수역을 택하여 미리 준비했던것이다.

조타실지붕우의 확성기에서 한병권정치부장의 석쉼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동무들! 배에 불이 달리지 않도록 하라!》

리명구는 문을 차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바다가 불타고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시뻘건 불길이 몸부림치듯 뒤틀리고 사납게 솟구치며 산지사방으로 퍼져갔다. 금시 죽어들듯 하다가도 갑자기 멀기를 타고 솟구쳐올라서는 배전에 부딪치고 현측과 갑판우에 무수한 불똥들을 뿌려던지기도 하였다.

시꺼먼 연기가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리명구는 숨이 탁탁 막히고 눈을 뜰수가 없어 선교우의 지휘용마이크에까지 가까스로 허우적거리며 달려갔다. 뜨거운 열풍과 화염이 그를 휩쓸었다. 그는 불연기를 삼키며 마이크를 잡자 거쉰 소리로 웨쳤다.

《갑판장! 소방호수를 총동원하라. 모두 자기 위치를 차지하시오. 덤비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하시오!》

아래의 갚판우에서 사람들이 뛰여다니고 불똥을 맞은 사람들이 불에 그슬린 나무잎처럼 온몸을 비틀며 나딩구는것이 보였다.

갑판장이 뛰여다니며 호각을 불고 뭐라고 팔을 내두르며 웨치기도 했다.

사방에서 소방호스가 싯허연 물줄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별로 효과가 없었다. 배가 넘실거리는 불의 파도우를 뚫고나가면 또 다른 불의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군 하였다.

아마도 적들은 사전에 배의 진로와 바람방향까지도 다 타산했던것 같다. 그리고는 이제 안다만제도의 남쪽 어느어느 섬 사이에서 정체모를 유조선이 원유류출사고와 화재를 일으켰다고 소문을 낼것이다.

《더러운놈들, 비렬한놈들!》

리명구는 숨을 쉴수가 없어 부지불식간에 손으로 가슴을 박박 허비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기침소리를 터칠 때마다 입에서는 불덩이와 더불어 뜨거운 피덩이가 막 쏟아져나오는듯 했다. 제일 높은 선교우에 있었으므로 가슴은 불에 그슬고 타들다 못해 갈가리 터져나가는듯 했다. 그러나 죽기내기로 모지름쓰며 또 부르짖었다.

《동무들, 힘을 내시오. 조금만 더···》

또다시 목구멍으로 뜨거운 불을 삼키며 몸부림쳤다. 혀바닥이 타들고 목구멍이 끄슬렸다. 인제는 한마디 말도 더 할수 없다는것을 흐려지는 의식속에 깨달았다. 그는 마이크대를 움켜쥔채 허우적거리다 못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누군가 그를 부르는것 같았다. 불속에서 시꺼먼 연기타래속에서 울려퍼지는 웨침소리였다.

《선장동지! 선장동지, 어데 계십니까?》

확성기에서 울려나온 통신장의 목소리였다. 리명구는 대답하고싶었으나 헉헉 모지름쓰며 버둥거릴뿐이였다.

《선장동지!》 통신장이 또 부르짖었다. 《조국에서 보내온 소식입니다. 이제 곧 평양방송으로 우리 배 선원들의 가족, 친척, 친우들의 록음편지를 보낸다고 합니다. 선장동지, 배의 모든 선실에 평양방송을 련결시켰습니다.》

리명구는 허우적거리며 조타실까지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 또다시 뜨거운 화염이 그의 머리칼까지 끄슬며 휘몰아쳐왔다. 그때 누군가가 그를 부둥켜안으며 소리쳤다.

《선장동지, 위험합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김철수였다. 리명구는 목구멍이 타들어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의 팔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 무어라고 안타까이 몸부림치듯 했는데 그것은 배를 불속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맹렬한 무언의 울부짖음이였다. 김철수가 그 뜻을 알아차리고 지휘용마이크를 틀어잡았다.

《나 부선장이다. 선장의 명령을 전한다. 모두 용기를 내여 자기 위치를 고수하라. 배에 불이 달리지 않도록 전체 선원들 갑판으로!··· 기관장은 전속으로 배를 몰라!···》

그 역시 몇마디안팎에 벌써 목이 타들어 쐐쐐하는 이상해진 목소리를 겨우 짜내였다. 그때 확성기에서 귀청을 메게 하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머나먼 인디아양에서 조국의 존엄을 지켜싸우는 전체 〈무포〉호선원동무들! 동무들에게 조국의 인사를 보냅니다. 그리운 가족, 친척들의 격려의 인사를 보냅니다!··· 잘 들어주십시오. 그럼 먼저 기관장 박성만동무의 막내아들이 보내는 인사의 말입니다.》

대뜸 《아버지!》 하는 되알진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저 아래 갚판우에서 가랑잎처럼 나딩굴던 선원들이 서로 어깨를 부축하며 일어서는것이 보였다. 《아버지, 나 문일이예요. 우린 매일 아버지랑 전체 배에 탄 아저씨들이 미국놈들과 맞서 싸우는 소식을 듣고있어요. 나는 정말 아버지에 대한 자랑으로 가슴이 막 부풀어오르고 목이 메여 견딜수 없어요. 우리 학급 동무들도 다 아버지를 영웅이라고 하면서 부러워하고있어요!···》

사람들은 소방호스로 물총을 쏘면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갑판장의 호각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뛰고 달리고 커다란 방수포로 불달린곳을 덮고있던 사람들도 가끔 조타실지붕우를 올려다보군 하였다.

《일남이 아버지!》하고 조용히 부른것은 갑판장의 안해였다.

《우리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무포〉호 선원들이 지금 조국을 멀리 떠나 어려운 싸움을 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저희들 모든 가족, 친척들이 고무와 격려의 인사말을 보내도록 하시였어요. 일남이 아버지, 잊지 마세요. 조국을 떠나 멀고먼 대양에 있어도 장군님의 사랑의 품에 안겨있다는것을 말예요. 우리 일남인 오늘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에 뽑혔어요.》

모든 선원들의 흥분은 절정에 이른듯 하였다. 확성기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불붙는 구명대들을 바다에 던지거나 배의 현측에 매단 뽀트의 바줄을 도끼로 찍어버리기도 하였다. 눈앞에 덮쳐드는 화염에도 끄떡없이 버티고있었다. 리명구도 철수를 밀어내고 마이크앞에 나섰다. 뭐라고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격앙된 자기의 가슴을 터쳐 《놈들을 족쳐라》, 《용기를 내자!》하고 구호처럼 웨치기도 하였다. 그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울렸다. 사랑하는 외동딸 수련이의 목소리였다.

《···힘을 내세요. 끝까지 용감하게 싸워주세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며 부지중 눈물을 머금었다. 흥분어린 목소리로,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를 가책하며 시를 읊는 수련이, 《장하다 수련아!》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리라고 믿었다. 그러리라고··· 수련아, 고맙다. 내 딸아!》

수련이의 뒤를 이어 많은 조기원, 갑판원들을 찾고 부르는 목소리가 련이어졌다. 그들을 부르는 친근한 목소리들에 떠밀리우듯 배는 불길속을 헤치고 대양의 어둠속으로 돌진해나갔다.

머리우에서 또 적기가 날치기 시작했다. 직승기였다. 마스트를 스칠듯 날아가고 날아오며 금시 로케트탄을 퍼부을것처럼 위협하군 하였다. 뒤따르는 잠수함에서도 찢어발기는듯 한 기적소리를 연방 울렸다.

리명구는 갑자기 철수가 몸을 부르르 떨며 굳어지는것을 보았다. 조타실과 선교우를 바삐 오가며 정황을 처리하던 그가 무엇인가 발견한듯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리명구는 확성기에 울린 처녀의 목소리가 그를 못박아세웠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철수동무, 저예요. 영옥이예요.》

리명구 역시 흠칠하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그 영옥이란말인가? 1등항해사 김철수의 가슴을 아픔에 물젖게 하던 그 처녀란말인가···

《철수동무, 지금 먼바다에서 어려운 싸움을 벌린다지요? 소식을 들었어요, 지금 온 나라가 싸우는 동무들을 지켜보고있어요.

철수동무, 동무의 가슴을 아프게 허빈 이 처녀를 용서하세요. 저는 지금 함흥외상외과병원 정형외과에 와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아세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병원의료집단에 어떻게 하나 저를 원상대로 고쳐주자고 말씀하셨대요. 그이께서는 얼마전 〈무포〉호의 부선장 철수동무에 대해서까지 친히 료해하시다가 동무가 저때문에 커다란 고민을 겪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몸소 이런 조치를 취해주신것이예요. 글쎄 온 나라가 준전시상태에 들어가 판가리싸움을 준비하는 때에 저같은게 다 뭐라고···》

김철수의 두볼에 진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소리도 없이 한발자국 움직임도 없이 두손으로 저도모르게 가슴앞섶을 마구 긁으며 눈물을 쏟고있었다.

《철수동무, 잘 싸워주세요. 김정일장군님의 전사답게 꼭 이기고 돌아오세요.》

리명구는 그가 언제 어데로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얼마후 한병권의 석쉼한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울려나와서야 그가 자취없이 사라진것을 깨달았다.

《철수, 조심하오!》

한병권이 또 소리쳤다. 그때에도 리명구는 그가 어데 있는지 찾지 못했다. 별안간 세찬 발동기의 소음이 머리우를 파도처럼 휩쓸어갈 때에야 그를 발견하였다. 김철수가 아스라한 마스트꼭대기로 기여오르고있는것이였다.

(아니, 저 사람이?!···)

또다시 파도쳐오는 발동기의 소음, 적직승기가 마스트를 향하여 곧추 날아들면서 화염방사기의 거센 불줄기를 내뿜었다. 시뻘건 화염이 마스트우에서 나붓기는 공화국기를 겨냥하고 날아갔으나 그만 기발이 날리는 바다쪽으로 구름처럼 뭉쳐 빗나가고말았다.

그때에야 리명구는 적들이 벌써 몇차례 공화국기를 불태우려 달려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바다의 불길속을 뚫고나온 《무포》호를 더는 어쩔수 없다는것을 알고 그들의 신념이라도 불태워 보복하려는 기도였다.

김철수는 바로 그 기발을 한몸으로 막아 지켜내려는 비장한 결심을 다진것이였다.

리명구는 화염에 끄슬려 꼿꼿해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마구 문질렀다. 두눈이 따끔거리다 못해 쿡쿡 쑤셔나고 목에서는 내내가 뭉쳐나왔다. 그는 김철수를 향하여 무어라고 소리치려 했으나 그만 가슴이 찢어지는듯 한 모진 기침소리만 터치고 말았다.

그때 벌써 김철수는 기발쪽으로 손을 내뻗치고있었다. 한손으로는 쇠바줄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기폭의 한끝을 붙잡으려는것이였다. 그것을 잡고있다가 이제 적기에서 화염방사기를 내쏘면 가슴으로 그 불길을 막아나설 결심인것이다.

리명구는 헉!ㅡ 하고 세차게 흐느꼈다. 눈굽이 짜릿해지면서 목구멍이 타들었다. 철수! 이 사람! 조심하라구, 조심해!···

이윽고 저 멀리에서 직승기의 신호등들이 원을 긋는것이 보였다. 다시 마스트를 공격하기 위하여 직승기가 선회하는것이였다.

방금 헤쳐온 바다의 불길이 마스트의 공화국기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보였다. 어느새 철수는 휘날리는 기발 한끝을 잡고 마스트에서 가슴을 내대고있었다. 한목숨 바쳐서라도 공화국기를 지키려는것이였다.

리명구는 저도모르게 신음소리같이 웅얼거리며 비틀거렸다. 끔찍한 참변이, 직승기에서 내쏘는 시뻘건 불줄기가 철수의 온몸을 짓태우는 몸서리쳐지는 광경이 금시 눈앞에서 벌어질듯 했다.

《철수!ㅡ》

목터지게 그를 소리쳐 불렀건만 그는 듣지 못했다. 기발을 몸에 감싸안으며 기수를 돌리는 적기를 무섭게 노려볼뿐이였다. 그 순간 번개불같이 번쩍인 생각이 있어 리명구는 조타실로 뛰여들어갔다. 헉헉 단김을 내뿜으며 무선대화기를 마주하자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미군함장들 들으라. 미군직승기 비행사 들으라! 나 〈무포〉호 선장이다.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것이다. 너희들은 오산하고있다. 우리가 죽으면 죽었지 자기의 존엄을 굽히지 않는다는것을 제눈으로 똑똑히 보라! 지금 우리 배의 공화국기발앞에 가슴을 내대고있는 저 청년을 보라!··· 우리는 우리의 기발을 지킬것이다. 우리의 신념을 지킬것이다. 경고한다. 이놈들아, 우리의 기발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라!ㅡ》

적직승기는 여전히 정면으로 곧추 날아들고있었다. 빨간등, 파란등, 노란등이 미친듯 껌벅거렸다.

리명구는 무섭게 울부짖으며 직승기를 향하여 주먹을 휘둘러댔다.

《안된다. 이놈들아, 안돼!ㅡ》

무시무시한 발동기의 소음이 불타는 대기를 뒤흔들었다. 적기는 계속 거침없이 날아들고있다. 이제 한순간 화염방사기에서 불줄기가 쏟아져나오면··· 배의 마스트를 들이받을것처럼 날아드는 적기, 머리우를 휩쓰는 발동기소리···

《이 개놈들아!···》

리명구가 울부짖었다. 도처에서 선원들이 목터지게 부선장을 불렀다. 번개불같이 가슴을 짓태운 한순간이 지나갔다. 미칠것 같은 흥분에 문을 차고 밖으로 뛰쳐나간 리명구는 여전히 기세좋게 펄럭이는 공화국기와 그앞에 가슴을 펴고 굳어져있는 철수를 보았다.

최후의 순간 적기는 끝내 화염방사기를 쏘지 못한채 마스트를 스칠듯 어둠에 잠긴 수평선쪽으로 날아가버린것이였다.

피가 말라버린것 같은 또 한순간이 지나갔다.

《무포》호가 고동소리를 길게 울렸다. 불의 파도를 뒤에 남기고 하늘과 바다가 맞붙은 저 멀리 시꺼먼 어둠속으로 웅글게 힘차게 울려가는 고동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