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4

제 2 편

14

 

군당에서 나온 일군과 기술부원장을 위시한 군병원의료일군들 그리고 처녀교원과 뜨락또르운전수로 무어진 인민군구분대방문단 일행은 뻐스를 타고 령길을 오르고있었다. 멀리 바다가 바라보이는 릉선이였다. 수련이 바라던 운봉산과는 정반대쪽으로 달려왔던것이다.

수련은 뻐스가 바다쪽으로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속이 조마조마해서 안절부절 못하고있었다. 그가 윤철소대장을 처음 만난곳은 운봉산기슭이였다.

3개군에 걸쳐 뻗어있는 그 운봉산 어느 깊은 골안에 그의 부대가 있으려니 믿고있었는데 왕청같은 바다가초소로 차를 몰아대였던것이다.

혹시 윤철이 속한 부대가 여기 어덴가 바다가기슭에 주둔해있을지도 모른다고 수련은 생각하였다. 정찰병들이 이쪽에서 비행기로 날아올라 운봉산에 락하산으로 떨어져내렸을수도 있는것이다. 그럴듯 한 생각이였다. 하여 수련은 아카시아와 사시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릉선의 이곳저곳을 눈밝혀 살펴보았다.

뻐스가 어느 굽인돌이에서 멎자 대기하고있던 두명의 군관이 마주 달려와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수련은 맨나중으로 차에서 내려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대장과 대대정치지도원이라고 하는데 허리에 권총을 차고 철갑모를 쓰고 어깨우의 위장망에 풀까지 꽂은 전투차림새였다. 대대장이 일행을 안내하며 말했다.

《곧장 화력진지로 가십시다. 지금 녀성고사총중대가 훈련중인데 거기 가서 군인들의 훈련모습도 보고 인사도 나눕시다.》

(고사총?!)하고 수련은 놀라서 생각했다. (그러니 고사총중대로 왔는가?···)

《고사총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시겠지만.》하고 대대장이 계속했다. 《4신고사총 한문이 대구경기관총 4문맞잡이니만큼 모두 수십문대의 대구경기관총이 일시에 불을 토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저 바다기슭까지 넓은 벌에 개미 한마리 살아남지 못합니다.》

한낮이 가까왔다. 서쪽으로부터 소금기가 밴 해풍이 불면서 찢어진 구름장들을 몰아왔다. 해볕은 따스했으나 바람이 차서 몸이 오싹오싹해났다. 어데선가 마른 잔디를 태우는 내내가 풍겨오고 송아지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일행은 릉선 한가운데서 멎었다. 오이처럼 생긴 릉선 좌우에 고사기관총좌지들이 지그자그형으로 전개되여있었는데 철갑모를 쓴 처녀병사들이 눈에 띄였다. 수련은 참호식좌지에서 땀을 들쓰고 훈련하는 처녀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수기를 높이 쳐든 소대장이 《소대 주의!》하고 웨치자 좌지마다에서 붉은색, 흰색의 수기를 쳐든 분대장들이 날카로운 웨침소리로 《분대 주의!ㅡ》하고 되받아 불렀다.

볕과 바람에 타서 가무스레해진 처녀들의 긴장한 얼굴을 바라보느라니 소대의 4개 좌지들에서 일시에 움직이는 그들모두가 꼭같이 높이 보였다. 조준장치에 붙어있는 조준수, 탄갑옆의 장탄수, 장진수, 고저기를 잡고있는 조척수들, 3월의 해빛이 철갑모들을 번쩍이게 했다.

《우측에 적 락하산!ㅡ》소대장의 웨침이다.

《속도 열ㅡ 거리 열다섯ㅡ 아래로 예순!ㅡ》

좌지마다에서 분대장들이 구령을 되받아웨친다.

《아래로 예순ㅡ 목표있음!》

《아래로 예순ㅡ 목표있음!》

구령처럼 노래처럼 부르짖는 소리, 기계같이 잽싸게, 일시에 움직이는 병사들, 좌로, 우로 구령이 내릴 때마다 빙빙 돌아가며 4개의 총신을 아래우로 겨누는 고사기관총들, 《장탄 끝ㅡ》하는 웨침소리가 울리자 좌지마다에서 거의 동시에 《장탄 끝!》 부르짖고 뒤이어 《제1분대 사격준비 끝!》, 《제2분대 사격준비 끝!》하는 새되고 굵고 높고 챙챙한 각이한 웨침소리들이 터져나온다. 이윽고 소대장이 《길게ㅡ 쐇!》하고 맵짜게 웨치며 수기를 쥔 손을 힘껏 내리친다.

《지금 이 동무들은.》하고 대대장이 또 설명했다. 《적들이 자기네 해상상륙을 지원하기 위해 공중으로부터 투하하는 적항공륙전병들을 소멸하고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수련은 부지불식간에 《항공륙전병!》하고 속삭이였다. 항공륙전병이라고 할 때 먼저 떠오르는것은 락하산이며 락하산은 또 윤철을 생각케 한다. 윤철동무! 그는 지금 어데 있을가. 그 역시 지금 내 생각을 하고있을가, 아니면 영영 단념했을가?··· 그는 왜 아직 단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을가. 원명길이라는 그 청년은 그리도 수월히 꺼내는 그 말을···

드디여 훈련이 끝났다. 중대장이 구령을 쳤다.

얼굴이 갸름하고 입이 작은, 아련하게 생긴 처녀중위였는데 그가 한발을 땅에 짚고 몸을 삑 돌리며 《중대ㅡ 소대종대병립대형으로 모엿!》하고 랑랑하게 구령을 치는 모습을 수련은 거의 황홀해서 바라보았다.

중대가 정렬하자 처녀중대장이 대렬중간앞으로 나섰다.

《동무들! 방금 군에서 병원의료일군들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갖가지 보약과 고려약 등 많은 원호물자를 가지고 우리 중대를 찾아왔습니다. 동무들, 열렬히 환영합시다!》

중대장이 화력복무훈련때처럼 손에 든 수기를 높이 들었다내리자 전체 중대가 《환영합니다!》하고 웨치며 무너지듯 앞으로 쓸어나왔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수련은 어느새 숱한 처녀병사들에게 둘러싸였다. 저저마끔 그를 붙들고 당기고 밀치며 숱한 인사말과 질문을 소낙비처럼 퍼부었다.

《반갑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군병원 의사선생이지요?》

《고사총을 다뤄봤나요?》

수련은 웃고웃으며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볕에 탄 처녀병사들과 한데 어울려 돌아갔다. 그런데 이 녀성중대는 이러한 환영에 아주 숙달되여있는듯 했다. 어느새 손풍금, 기타, 하모니카들이 나타나고 전체 중대가 손님들을 빙 둘러싸고 기세높이 합창을 시작했다.

 

보라 우리를 보라

그러면 마음 든든하리라

보라 우리는 무적의

지도자동지 군대

 

수련이도 그들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 가까운 우측에서는 얼굴이 불깃해진 한성숙이 한팔을 쳐들어 박자를 치며 저음에 가까운 굵은 목청으로 쨍쨍한 처녀들의 새된 소리를 받쳐주고있었다.

 

총창은 번쩍 발구름 쩡쩡

우리들은 위대한 장군의 병사

규률엔 강철 싸움엔 번개

맞설자가 누구냐

 

아까부터 한 나어린 처녀가 수련이의 손을 꼭 잡고있었다. 그는 수련이의 미모에 반한것 같았다. 머루알같이 새까만 반짝이는 눈에 웃음을 담고 수련이를 쳐다보다가는 자기가 잡고있는 그 하얗고 깨끗한 손을 어루쓸기도 했다.

 

보라 우리를 보라

그러면 마음 든든하리라

보라 우리는 무적의

지도자동지 군대

 

합창이 끝나자 그 어린 녀병사가 속삭이듯 물었다.

《언니 이름이 뭐예요?》

《리수련.》

《아이, 이름도 곱군요.》

《동문?》

《박은옥이예요.》

《박은옥!》

군당위원회일군이 앞으로 나서서 군인들속에 끼워있는 병원의료일군들을 소개해주었다. 요란한 박수갈채와 북소리가 뒤따랐다. 이어 기술부원장이 정성들여 마련해온 원호물자를 넘겨주자 또 손바닥이 터질 지경으로 박수를 치고 북을 두드렸다.

전체 중대가 하나같이 일시에 환성을 올리군 하는것이 그야말로 힘과 피끓는 청춘을 과시하는듯 했다. 청춘이란 불길과 같은것이여서 빛과 열을 맘껏 내뿜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것이다.

다음으로 군당일군은 원호물자를 가지고온 일행의 나머지 두사람 녀교원과 목이 긴 청년을 소개하였다.

《동무들, 신흥고등중학교 교원 김혜경동무와 뜨락또르운전수 서기주동무를 소개합니다. 이 동무들은 바로 오늘 3월 12일 결혼식을 하기로 되여있었습니다. 두 집 부모님들이 결혼식날을 오늘로 정했던것입니다.》

처녀병사들이 일시에 술렁대였다. 낮고 재빠른 속삭임의 파도소리가 재빨리 스쳐갔다.

《그런데.》하고 군당일군이 계속했다. 《이 동무들은 며칠전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령으로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자 각기 자기 당조직에 찾아가 인민군대에 입대시켜줄것을 탄원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에 쓰려고 준비해두었던 물자들을 고스란히 그대로 싸안고 동무들을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서로 마주보며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바람소리같이 휩쓸었다. 처녀중대장이 앞으로 나서며 두 청년에게 《고맙습니다. 동무들! 전체 녀성고사총중대의 이름으로 동무들을 축하합니다!》하고 구령처럼 웨쳤다. 전체 중대가 또 그것을 받았다.

《축하합니다!》

처녀병사들이 달려나가 두 청년을 가운데로 끌어내자 다시 열렬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수련이의 손을 꼭 잡고있던 박은옥이라는 녀병사도 그 두사람에게로 달려나갔다. 녀교원의 손을 잡고 무어라고 열심히 속삭이고있는 은옥을 보자 수련은 그 어린 녀병사가 벌써 자기를 잊고있다는것, 그리하여 자기가 그의 선망의 대상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져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린 녀병사의 두눈엔 벌써 눈물이 고이고있었다. 그들의 깨끗한 사랑과 조국을 위하는 헌신적인 감정이 처녀병사들을 감동시킨것이였다.

당연한 일이다. 저들이야말로 총쥔 병사들의 열렬한 박수와 뜨거운 축하를 받을만 하다. 그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런데 그 권리는 누가 선사해주는것이 아니다. 줄을 지어 서있다가 차례가 되면 사가지는 희귀상품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조국에 바치는 순결한 량심과 헌신으로만 부여받는것이다.

그런데 수련이 너는 무엇을 하고있었던가. 저 청춘남녀가 결혼식을 미루고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고있을 때 너는 무엇을 생각하고있었던가?···

비로소 수련은 자기가 열심히 외운 조국에 대한 시의 구절구절에 깃든 참뜻이 리해되는듯 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저 입으로만 그리고 그저 고운 목소리로만 외우는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조국이여, 진정 너는 무엇이기에

너의 한치 땅을 위해

애어린 청춘들 웃으며 꽃으로 졌고

쓰러지면서도 못잊어

두팔가득 너를 그러 안고갔더냐

한줌 흙속에

너를 싸안고간 투사들도 있었더라

한떨기 진달래꽃향기에

눈감고

너의 모습 그려본 녀대원도 있었더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시를 외우고 또 외우면서 여적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였다. 그것을 바로 땀에 젖은 이 처녀병사들이 그리고 수수한 뜨락또르운전수와 처녀교원이 깨우쳐준듯 싶었다.

녀성중창이 시작되였다. 두 청춘남녀를 축하하는 노래라고 중대 오락회책임자가 소개했다.

 

가는 길 아득히 멀고멀어도

가고싶어 가는 길 먼길이 없네

 

후렴은 전중대가 합창으로 받았다. 수련은 가사를 알지 못해 어쩔바를 몰라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저 어깨가 실팍한 한성숙은 량팔을 쫙 벌려 처녀병사들을 껴안고 거침없이 좌우로 몸을 흔들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이 아닌가!··· 오늘 아침에만 하여도 애들과 큰소리로 다툼질을 하며 복닥질을 하던 그였다.

그때의 한성숙은 장난 세찬 애들을 거느린 한 아낙네, 늘 드바삐 살아가는 가정주부, 쓸쓸한 약제사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그야말로 생활의 한복판에 끄떡없이 버티고 서있는 녀성이다.

 

가는 길 천만리 눈비내려도

가고싶어 가는 길 두렵지 않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수련은 겨우 견디여냈다. 박은옥이라는 처녀병사가 다시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그는 녀교원과 뜨락또르운전수총각옆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축하의 노래가 끝나자 녀교원 김혜경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교단앞에서 그러듯이 전체 중대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동무들, 고맙습니다! 여기 서기주동무와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방금 전체 녀성고사총중대동무들이 축하의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이보다 더 뜻깊은 결혼선물이 또 어데 있겠습니까!··· 다시 한번 전체 녀성중대동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동무들앞에서 맹세합니다. 만약 미제침략자들이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저희들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옹호보위하여 한목숨 다 바쳐 싸울것입니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녀교원의 마지막말끝을 삼켜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중대직일관완장을 낀 처녀중사가 달려와 중대장에게 무어라고 보고했다. 중대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가 대대지휘관들에게 무어라고 말하는동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윽고 중대장은 버릇처럼 군복앞자락을 잡아다리며 대오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그는 전투구분대의 엄엄한 지휘관으로 다시 돌아갔다.

《지금 라지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성명이 발표되고있습니다. 중대보도를 청취하고 다음 일과를 계속하겠습니다.》

중대장은 잠간 숨을 돌리고나서 짧게 구령을 쳤다.

《통신분대장, 내 앞으롯!》

통신분대장이 달려가 보고를 하자 그는 재빨리 말했다.

《중앙방송을 지휘통신에 련결시키시오, 빨리!》

《알았습니다!》

중대의 통신설비들은 훌륭히 위장되여있었다. 잠시후 릉선의 여러곳에서 보이지 않는 지휘통신용 확성기들이 중앙방송과 련결되였다. 거의 일시에 꼭같은 방송원 한사람의 목소리가 여러 좌지들에서 꼬리를 물고 울려나왔다. 공화국정부성명이 랑독되고있는것이였다.

《···우리를 목표로 하는 핵전쟁연습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이 다시 벌어짐으로써 지금 조선반도의 정세는 예측할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로 번져지고있으며 우리 나라는 준전시상태에 들어갔다.

더우기 엄중시하지 않을수 없는것은 국제원자력기구가 우리의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을 감행하려는 〈결의〉를 통과시킴으로써 우리의 이른바 〈핵문제〉를 〈국제화〉하고 우리에 대한 〈집단적인 제재〉와 〈압력〉을 가하려는 미국의 반공화국책동에 합세해나서고있는것이다.》

(역시 핵문제로구나!) 하고 수련은 흐느끼듯 숨을 톺으며 생각하였다. (무슨 변이 또 있으려는게 아닐가?···)

수련은 그것을 방송원의 분개에 찬 격조높은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전체 녀성중대가 숨을 죽이고 긴장해서 듣고있었다.

《오늘 조성된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태하에서 우리는 핵무기전파방지조약상 의무를 더이상 리행할수 없게 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는 나라의 최고리익을 수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부득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한다는것을 선포한다.》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그 마지막 한마디에 숨이 꺽 막히는듯 했다. 많은 처녀들이 벅찬 흥분에 몸을 떨었다.

《핵무기전과방지조약에서의 탈퇴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핵전쟁책동과 국제원자력기구 서기국안의 일부 계층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응당한 자위적조치이다.

우리의 이러한 원칙적립장은 미국이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중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서기국이 독자성과 공정성의 원칙으로 돌아설 때까지 달라지지 않을것이다.》

수련은 한성숙이 가까이 다가선것도 알지 못했다. 흥분한 한성숙은 수련의 손을 힘껏 틀어잡았다. 수련은 마주잡은 그의 두툼한 손을 통하여 툭툭 울려오는 피의 맥박을 느꼈다.

《미국을 비롯한 우리의 적대세력과 국제원자력기구 서기국의 일부 계층이 〈특별사찰〉이나 그 어떤 〈조치〉로 우리를 위협한다 해도 우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강도적론리나 강권행위가 통할수 없다.

그 어떤 〈군사적위협〉과 〈정치사상적공세〉도 그 무슨 〈봉쇄〉도 우리 인민의 전진을 가로막을수 없다.》

잠시후 성명랑독이 끝나자 전체 녀성중대가 서로 붙안고 구호를 웨치고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벅찬 격정에 못이겨 처녀들의 볕에 탄 얼굴은 홍조에 물들고 두눈에서는 불빛이 이글거렸다.

수련은 목에 걸린 침을 겨우 삼켰다. 아직 한번도 수련은 저 핵문제를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본 일이 없다. 거기에 귀를 기울이며 분개하고 기뻐해본 일이 없다. 매일같이 가슴을 조이며 그 일을 생각하고 무엇인가 손꼽아 기다려온 일도 없다. 그런데 저 어린 녀병사들은 미칠듯 한 흥분에 사로잡혀 목청껏 웨치며 주먹을 내흔들고있는것이다.

이날 수련은 자기가 준비했던 시랑송을 끝내 하지 못하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할데 대한 공화국정부성명이 발표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만 열중하고말았던것이다.

시랑송을 하지 못한것이 다행이였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처녀병사들은 《나의 조국》이라는 그 시를 수련이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읊고있을것이다.

수련은 채 듣지 못한 공화국정부성명의 첫머리부분을 저녁에 합숙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듣게 되였다. 문화회관 지붕우의 확성기에서 그 성명이 다시 울려나오고있었던것이다.

합숙앞의 오동나무가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아 생기없이 누렇게 드러났다. 수련은 좀 지친듯 한 걸음으로 합숙에 들어섰다.

복도에서 밀대질을 하던 관리원아주머니가 수련이를 보자 갑자기 생각난듯이 말했다.

《참, 군체신소에서 계속 전화로 찾던데.》

《나를요?》

《응, 평양에서 무슨 전화록음을 한다든지···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겠어. 빨리 전화를 해봐요.》

《?!》

수련은 접수구로 다가가 열려진 창문으로 전화기를 끄당겼다. 군체신소 교환수가 수련이라는 말에 반색하며 말했다.

《마침 잘됐어요. 지금 평양에서 또 동물 찾고있는데···》

교환수는 바삐 저쪽에 대고 또 말했다.

《자, 전화를 련결해드립니다. 말씀하세요!》

수련이를 전화로 찾은것은 해운부당위원회 선전부 부부장이였다. 그는 수련이 아버지가 탄 무역선 《무포》호를 미국놈들이 공해상에서 가로막고 강제로 검열하겠다고 덤벼들었다는것과 아버지를 비롯한 전체 선원들이 칼과 도끼 등으로 무장하고 놈들과 결사전을 벌리고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고무적힘을 주기 위하여 가족, 친척, 친우들의 록음편지를 보내기로 했다는것이였다. 그는 계속했다.

《지금 록음기가 돌아가고있으니 거기서 전화로 말하면 되오. 왜 그러구있소, 내 말이 들리오? 어서 아버지에게 보내는 인사말을 하라는데.》

수련은 얼떠름해있었다. 배를 검열하다니, 그런 법도 있는가? 핵문제에서도 무얼 강제로 검열하겠다 한다더니 이번엔 바다에 떠가는 무역선에까지 달려든단말인가.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우리가 뭐 그것들과 전쟁이라도 하고있단말인가?···

저쪽에서 재촉했다. 그러나 수련은 입이 얼어붙은듯 했다. 결사전을 벌리고있다는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버지가 딸의 일에 너무 무관심하다고, 제때에 손써주지 안는다고 은근히 원망해온 수련이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말로 어떻게 고무한단말인가? 그 김혜경이라는 처녀였다면 아마 서슴없이 《아버지, 용기를 내세요. 지금 온 나라가 결사전을 준비하고있어요. 나도 오늘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했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했을것이 아닌가!···

《수련동무.》하고 저쪽의 부부장이 또 말하였다. 《이건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이요.〈무포〉호의 소식을 받으신 장군님께서 친히 해운부성명도 발표하게 하시고 선원들의 가족, 친척들을 찾아 고무적인 인사말을 보내주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소.》

《예? 장군님께서요?》

《그렇소. 장군님께서는 〈무포〉호 선장인 아버지에 대해서도 일일이 다 료해하셨소. 선장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래서 선장의 외동딸인 동무를 우정 찾아 록음을 하는거요. 아버지가 들으면 얼마나 반갑겠소!》

《···》

수련은 저도모르게 입을 벌리고 흐느끼듯 숨을 들이그었다.

별안간 자기의 심장이 아프리만큼 세차게, 급격히 뛰노는것을 느꼈다. 가슴을 치는 격정과 아픔, 그것은 가책의 아픔이였고 눈물의 아픔이였다. 아버지는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있는데 나는 무엇을 꿈꾸고있었던가? 아버지의 신상에 그리고 우리모두의 눈앞에 위험이 닥쳐왔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있었던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선 아버지한테 고무를 주리라고 믿고계시는데 과연 그럴자격이나 있는가?!··· 두눈에서 눈물이 끓고있었다. 어느덧 두볼을 타고 흘러내린 찝찌레한 눈물이 입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수련은 그것을 삼키며 《아버지!》하고 마침내 울음섞인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아버지! 지금 먼바다에서 미국놈들과 결사전을 벌리고있다지요? 힘을 내세요. 끝까지 용감하게 싸워주세요. 아버지,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비로소 저도 인젠 깨달았어요. 조국앞에 준엄한 시련이 닥쳐온 이때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됐어요. 정말이예요. 아버지, 믿어주세요. 그럼 제가 오늘 인민군전사들앞에서 랑송하기로 되였던 시 한구절을 읊어드리겠어요.

 

그렇다. 조국은

더없이 신성하고 숭엄한 그 무엇

위대하신 수령님 한생을 바치시는

겨레의 삶이며 그 무궁한 미래

죽어서도 안기여사는 영원한 품

그것은 그대를 바라보는 깊은 눈동자

맑은 거울앞에서처럼

부끄러움없이 그앞에 서기 쉽지 않으리

오직 그의 영광속에 그대의 삶이 있고

그를 저버림은 곧 그대의 죽음인

조국이란 그러한것

뜨거운 심장 없이 안을수 없고

진실한 사랑 없이 부를수 없는

위대하고 신성한 이름···

조국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라

조국에 그대의 심장을 주기전에는!

 

아버지, 용기를 내세요. 잘 싸워주세요. 저도 이제부턴 달리 살겠어요.》

밖에서는 격조높은 방송원의 목소리가 계속 울리고있었다. 문화회관 지붕우의 확성기에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성명전문을 또 내보내고있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