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3

제 2 편

13

 

수련에게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이 시작되였다. 준전시상태가 선포된후 병원에서는 유사시 부상자들과 환자들에 대한 응급치료와 후송조직을 위한 이동치료대를 뭇고 방식상학을 진행한다, 훈련을 한다 하며 법석 끓었다. 낮에는 낮대로 환자치료사업을 계속하면서 밤에는 또 군내주민들에게 전시조건하에서 부상자들에 대한 간단한 지혈법, 붕대감는 법, 소독법, 화상치료를 위한 민간료법 등을 해설하고 인민군대원호물자를 마련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수련은 자기가 준엄한 정세의 소용돌이속에 휘감겨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그와는 관계없이 매해 왔다가는 가버리군 하던 전쟁의 위험이 이번엔 그를 내버려두려고 하지 않았다.

싫건좋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수련은 한 공민으로서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인제는 전쟁을 생각하여야 했고 그것을 준비하여야 했고 거기에 참가하여야 했다.

실로 바쁜 날들이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밤부터 새벽까지 뛰고 또 뛰여도 일감은 늘어만 갔다. 수련은 그 바쁜속에서 시랑송준비도 하여야 했다.

이제 인민군대원호물자를 가지고 어느 구분대를 방문하는데 그때 병원의료일군들로 간단한 예술소품도 내놓아야 하는것이다. 수련은 《나의 조국》이라는 서정시를 읊게 되여있었다.

짬짬이 시를 외우면서 수련은 이제 어느 구분대를 방문하게 될가 하고 자주 생각하였다. 윤철이 속한 부대 역시 운봉산기슭 어데인가 있을것이니 거기로 갔으면 하고 은근히 바랐던것이다. 바라는 마음이 너무도 커서 그것이 현실처럼 여겨지기까지 했다.

여느때같으면 벌써 두번씩이나 편지를 보내왔을 윤철, 요즘은 아무 소식도 없이 계속 침묵만 지키고있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단호히 거래를 끊기로 맘먹은 모양이다. 이렇게 생각되자 이름할수 없는 아쉬움과 실망이 그리고 쑤시는듯 한 아픔이 가슴속을 훑어갔다. 이제 그를 만나면 뭐라고 할가? 그는 나를 어떤 눈빛으로 볼가? 아픔일가, 비난일가, 아니면 쓰디쓴 경멸일가?···

수련은 그와 만나게 될 그 산고지를 그려보았다. 어깨성을 쌓은 군인들앞에서 시를 읊고 윤철은 숱한 사람들속에 끼워 묻는듯 한, 타는듯 한 눈빛으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그런 정경이였다.

 

조국은

고향마을 정든 집이라더라

동구밖 오리나무숲

그 정겨운 설레임

새벽녘 들가에 피는

녀인들의 웃음소리

송아지떼 풀을 뜯는 언덕을 넘어

지줄대며 흐르는 여울물소리

 

그는 시를 들으며 무엇을 생각할가, 시가 그의 마음에 들가?··· 끝까지 아무말없이 먼발치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런지도 모른다. 때로는 침묵이 천마디의 말보다도 더 많은것을 말해주기때문이다.

 

조국은

그리운 얼굴들이라더라

다심하신 고향어머니

모래불에 딩굴던 어릴적동무

 

수련은 인민군구분대방문을 앞두고 온밤을 꼬바기 밝혔다. 고려약제제실에서 약제사 한성숙 등과 같이 인민군군인들의 건강을 위한 10여종에 달하는 고려약들을 수백봉지나 만들었던것이다. 샐녘에야 합숙에 돌아가 잠간 눈을 붙이고 아침 7시에는 습관대로 벌써 거울앞에 서있었다.

오늘은 윤철을 만나는 날이다. 수련은 그를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버릴수 없었다. 먼발치에서 그가 아무말 없이 쳐다보기만 해도 좋다. 그가 쌀쌀한 눈빛으로 비난해도 좋고 비웃어도 좋다!··· 수련은 오늘따라 특히 그를 만나고싶은 생각이 간절해지는것이 놀랍고 이상했다.

얼마후 수련은 합숙을 나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약제사 한성숙의 집에 들렸다. 매일 그 집에 들려 같이 출근하는것이 하나의 일과처럼 되여버렸던것이다.

체격이 크고 성격이 활달한 한성숙은 김이 뽀얗게 서린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며 아이들과 다툼질을 하고있었다. 수련이가 들어서자 대충 인사말을 건네고나서 또 웃방에 있는 큰애한테 소리를 질러댔다.

《얘, 명국아, 너 동생을 왜 자꾸 못살게 구니, 응? 갸가 네 영어책은 해서 뭣하겠니.제가 건사는 안하구 밤낮 명희만 욱박지르지··· 뭐, 뭐라구? 제가 어데 가서 잃어버리구선!···》

한성숙은 왱강댕강 그릇소리를 내며 수련이에게 하소했다.

《아이구, 저것들은 누굴 닮아 그런지 다들 더펄이라니까. 온통 널어놓구 벌려놓구 어데가서 흘려버리구···》

웃방에서 명국이녀석이 《누굴 닮긴, 사람들이 다 엄마 닮았다는데.》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한성숙은 그쪽에 대고 또 한바탕 포격처럼 퍼부어댔다. 소란스러운 성미인 한성숙은 또 어찌나 손이 빠른지 몰랐다. 어느새 설겆이를 다 끝낸 그는 딸애의 넥타이도 바로 매여주고 거울앞에 바투 다가앉아 간단한 화장까지 했다.

얼마후 그들은 군병원으로 가는 큰길에 나섰다.

군병원은 지난해에 완공된 창광원식 목욕탕 《은정원》과 같이 거리 한끝에 있다.

방송차가 거리를 돌면서 준전시하의 생산전투를 힘있게 벌리자는 선동문을 웨친 다음 힘찬 취주악을 울리며 멀어져갔다. 한동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한성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련선생! 오늘도 역시 안색이 좋지 않구만.》

덜퍽지고 떠들썩한데다 웃음도 많은 한성숙이 이렇듯 정중하게 《수련선생!》하고 부르는것은 그가 무엇인가 언짢게 여기고있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뭐 내야 그저 그렇지요.》

수련이의 어정쩡한 대답이였다.

《아니, 내 눈은 못속여.》하고 한성숙이 고집했다. 《뭔가 달라졌어. 이번에 집에 갔다와서부텀 늘 쫓기는 사람같더라니까, 도대체 웬일이야?》

《···》

수련은 대답하지 않았다.

《글쎄 말하고싶지 않으면 그만둬. 하지만 한가지만은 알고싶은데··· 요즘 그 윤철동무한테선 왜 편지가 오지 않지?》

《···》

여전히 입을 다물고있을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아픔없이는 말할수 없는 그런 사연을 그가 묻는다 해서 곧이곧대로 대답할수도 없거니와 그러고싶지도 않았던것이다.

《내 한가지 귀띔해주는데.》하고 한성숙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말이야 맞받아나가야 하는거야. 얌전만 빼면서 의례히 어떤 훌륭한 청년이 나타나주겠거니 하고 기다려선 절대 안돼. 특히 수련이같이 곱게 생긴 처녀들은 더욱 그렇지. 훌륭한 청년이 나타나주기전에 날쌘 녀석들이 채간다니까··· 정신차려 들어요. 수련선생!》

어쩌면 그가 수련이의 일을 다 알고 말하는것만 같아 수련은 속이 뜨끔했지만 내색은 않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 언닌 맞받아나가 자기의 사랑을 찾았겠군요?》

《그야 물론! 난 기다리는 성미가 안야!》

《그래요?··· 그래서 바라던대로 됐어요?》

《오, 그것말이지.》 한성숙은 호함지게 웃어댔다.

《내가 바란 사람은 말이야 속이 깊구 성격은 시원시원하구 동작이 날쌘 운동가형의 미남자였는데 말야 글쎄 어떻게 된 셈판인지 키가 작구 소힘줄같이 질긴 옹고집쟁이 게으름뱅이를 만나지 않았겠어!》

수련이도 그 말에는 웃지 않을수 없었다. 한성숙은 실팍한 어깨를 들썩거리며 아무 꺼리낌없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볼 지경으로 맘껏 소리쳐 웃어댔다. 그 녀자의 희멀쑥하고 둥실한 얼굴에 가득찬 환한 웃음을 보면서 수련은 진짜 자기의 사랑과 행복을 찾은 녀성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덧 병원정문앞에 이르렀다. 접수구쪽에 있던 산부인과 준의가 수련이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참 편지가 왔던걸! 이자 방금 저기 조제사가 가지구 왔어요.》

《편지요?》

《음, 무슨 좋은 소식이 온것 같애. 뭐 봉투도 요란하더구만. 성냥갑만큼씩한 표가 넉장이나 붙어있는게 꼭 무슨 화보장 같더라니까!》

《···》

수련은 누구한테서 온 편지일가 하고 속으로 점쳐보았다. 어머니가 쓴것일가, 아니 어머닌 편지를 쓰지 않는다. 전화로는 끝없는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편지라면 단 두줄도 쓰기 싫어하는 성미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표를 넉장씩이나 붙이지 않을것이다. 그렇다면 누굴가. 혹시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수련이를 평양에 끌어올리기 위해 애써준다는 그 사람은 아닐가?··· 저도모르게 걸음이 빨라진것을 알고 얼굴을 붉혔다. 한성숙이는 웃으며 어서 가보라고 손짓했다.

《난 기술부원장방에 들렸다 가겠어.》

《예ㅡ》

수련은 종종걸음으로 소독약냄새가 진동하는 복도를 지나 맨끝의 고려약제제실문을 열었다. 약장서랍을 열던 조제사가 의미있게 웃었다.

《편지가 왔더군. 거기 원탁우에 놨어요.》

《그래요?!》

수련은 애써 흥분을 감추며 원탁으로 다가갔다. 거기 하얀 실로 뜬 원탁보우에 편지가 놓여있었다. 정말이지 성냥갑만 한 우표들을 봉투 오른쪽에 가득 채우고도 남아 뒤등에까지 감아붙인것이였다.

먼저 누구인가 멋을 부려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글씨로 쓴 주소가 눈에 띄였다. 검은색 마지크로 쓴 생소한 글씨, 다음순간 수련의 두눈이 굳어졌다.

《원명길?!》

비로소 모든것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창광거리 은하수식당, 무지개빛 어스름속에서 피를 끓게 하며 울리던 음악, 무심하게 던지던 멋진 젊은이의 말, 동창생 명숙이 자꾸 권하던 발그스름한 유리잔, 승용차··· 그들은 수련이를 어데로 실어가려 했던가?···

《처음보는 이름이더군요.》

저쪽에서 조제사가 하는 말이였다. 실눈을 짓고 소리없이 웃으며 수련이를 바라보는것이 《그 사람은 또 누구예요?》하고 묻는듯 했다. 수련은 못본척 했다. 말없이 봉투를 만지작거리다가 재빨리 그것을 뜯었다. 수련이 못내 바라는 소식이, 수련이를 소환하게 되였다는 희소식이 씌여있을수도 있지 않는가!···

편지지를 꺼내들자 타는듯 한 기대를 품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수련동무.

그렇게 훌쩍 떠나버릴줄은 몰랐습니다. 밤중에 동무네 집 전화번호를 돌리니 어머니가 받더군요. 그래서 동무가 떠나가버린것을 알았습니다. 수련동무, 어머니는 이상해하면서 동무가 얼마나 급작스레 떠났는지 갈아입을 옷가지도 채 꾸려가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수련동무, 지금 동무는 무엇인가 곡해하고있습니다. 동무를 사랑하는 나의 심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경멸하고있습니다. 물론 그럴만 한 리유가 있지요. 내가 본의아니게 동무를 노엽혔으니까요. 사실 그날 나는 동무를 보는 첫순간에 벌써 동무와 오래전부터 알고있었고 사귀여왔던것처럼 생각되더군요. 동무의 산뜻한 아름다움에 끌리면서 나의 의지력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그만 무분별한 정열을 낳게 했지요. 하지만 수련동무, 그러한 정열도 없이 무슨 사랑을 말하겠습니까. 사랑이란 화산의 분출과 같은것이 아닐가요?··· 물론 자기의 정열을 숨기며 오랜 세월 남모르게 서서히 불태우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나는 자기를 드러내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무엇때문에 자기의 사랑을 숨기겠습니까. 그것이 부끄러운것이 아닌담에야 무엇때문에 감추겠습니까. 아니, 나는 그렇게 못합니다. 나는 단번에 불을 지펴 끓어번지던지 아니면 아예 그만두는 성미입니다.》

문소리에 놀라 머리들 든 수련은 기술부원장과 한성숙이 들어오는것을 보았다. 수련이 인사하자 기술부원장은 능청스러운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집에서 온 편지요? 아니면 애인한테서?··· 아, 됐소, 됐어,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는걸 보니 련애편지인게지?··· 어서 마저 읽소.》

기술부원장은 한성숙과 같이 인민군대원호물자로 준비한 고려약들을 어떻게 포장할것인가 하는것을 의논하기 시작했다.

수련은 편지를 들고 구석쪽 창가로 걸어갔다. 수도에서 살고싶다는 강렬한 욕망으로 하여 이끌려갔던 그 은하수식당, 거기에서 만난 멋진 젊은이, 대수롭지 않게 유식한 말들을 시내물처럼 끝없이 줄줄 내리엮군 하던 그 원명길이 지금도 수련이를 구슬리고 귀기울이게 하고 부지중 저도모르는 새에 이끌려가게 유혹하는것이였다.

《수련동무, 나는 동무가 조만간에 나를 리해하고 다시 만날 기회를 마련해주리라고 믿습니다. 수련동무 어느 한 시인의 작품에서 이런 편지구절을 읽은바 있겠지요.

아침에 일어나선 믿어야 합니다

낮에는 당신을 볼수 있다고

이런 희망마저 없다면 나는 견디지 못합니다. 나는 사랑을 시와 노래로써만 아는 그런 나이가 아닙니다. 사랑을 철따라 갈아입는 류행복처럼 여기는 그런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것을 이제 동무는 알게 될것입니다.

수련동무, 믿어주시오. 그리고 대답해주시오. 언제 나를 찾아오겠습니까, 아니면 언제 내가 가면 되겠습니까?

기다리겠습니다.

안녕히!··· 동무의 꿈같은 미소를 그리는 벗 원명길.》

수련은 언제 기술부원장이 나갔는지 그리고 언제 한성숙이 그의 곁에 다가왔는지 알지 뭇했다.

수련은 실망한 표정으로 넉장의 우표가 붙어있는 화려한 봉투를 가져가는 한성숙을 멀거니 보고있었다.

《수련선생.》하고 한성숙이 언짢아하는 낯빛으로 말했다. 《기술부원장선생이 그러는데 인민군구분대방문은 10시쯤해서 떠난다나. 그때까지 약품포장을 다 끝내야겠어.》

《예. 그렇게 하죠.》

수련은 시들하게 대꾸하며 지함있는데로 가려고 했다. 한성숙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손에 든 편지봉투를 수련의 눈앞에 가져다대는 한성숙의 표정은 심각했다.

《이건 누구지?··· 원명길!··· 첨 보는 이름인데 도대체 어찌된 일이야. 그 편질 좀 봐도 되겠어?··· 비밀이라면 관두겠어.》

《뭐 비밀까지야···》

수련은 편지를 등뒤에 감췄으나 한성숙이 노여움을 타는것 같아 《그럼 보세요!》하면서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고려약봉지들을 반쯤 채우다만 지함가까이로 걸어갔다. 비로소 지금까지 잊고있던 갖가지 약냄새가 코를 찌르는것을 느꼈다. 수련은 약봉지들을 지함에 넣기 시작했다. 봉지마다 어느 한 인쇄소에서 찍어온 약품상표들이 곱게 붙여져있다.

한성숙은 편지를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쪽 입귀를 비쭉하는가하면 입속으로 웅얼거리다가 흥흥 코김을 불기도 했다. 조제사까지 그쪽에 자꾸 눈길을 던지고있다.

수련은 이제 한성숙이 분노의 웨침으로 소란을 피울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자의 넙죽한 귀밑에서 귀방울이 오르내리는것이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도 일어날것 같았다. 수련은 아예 일손을 놓고 하회를 기다렸다. 마침내 편지를 다 읽은 한성숙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 녀자는 마치 포옹이라도 하려는듯 두팔을 벌리며 수련이에게로 급히 다가왔다.

《수련선생!》하고 한성숙이 떠들었다. 《언제 이런 멋쟁이를 친했어, 응? 아주 똑똑하구 잘 생긴 사람같애. 편진 또 얼마나 기막히게 썼어. 난 아직 한번도 이런 멋들어진 편지를 받아본적이 없잖아!》

그의 한손엔 화려한 봉투가, 다른 손엔 보기 드물게 하얀 종이에 쓴 편지가 들려있었다. 그는 그것들을 내흔들며 계속 떠들었다.

《똑똑한 사람이야. 사람을 주물러댈줄 안다니까. 난 이 편지만 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수 있어. 그렇지만 수련선생 나같으면 이 편지에 침을 뱉겠어, 정말이야!》

수련은 웃고있는 그 녀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추운듯 어깨를 으쓱하였다.

《왜 내 말이 맘에 안들어?》하고 한성숙은 웃음을 거두며 물기를 띤 두눈의 흰자위를 번뜩이였다. 《보나마나 이 사람은 위선자야 알겠어? 몽땅 다 꾸며대구 있어. 겉으로는 점잔을 빼면서두 속으로는 흉측한 생각을 품구있어. 그게 막 보인다니까 구슬러대구 꼬이구 찰거마리같이 들어붙어 떨어지려 하질 않지. 수련선생같이 예쁜 처녀를 그가 놓치려 할게 뭐야. 이런 사람은 조심해야 해. 어렵지 않게 미인들을 나꿔채는 사람들치구 진실한 사람이 없어. 그런 사람들은 제 리속만 채우면 그만이야!》

한성숙은 돌아서서 원탁우에 봉투와 편지종이를 한데 엎어놓고 탕탕 두드려대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자기의 말에 일고의 의문도 반대도 있을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것과 같았다. 수련은 잠자코 있었다. 몽롱하고 노긋한 피로가 엄습해오는것을 느끼며 말없이 두눈을 감았다. 한성숙이 다가와 그의 옆에 의자를 당겨놓고 앉으며 수련의 동실한 어깨를 살그머니 끌어안았다.

《왜, 내 말이 맘에 안들어?》

《아ㅡ니.》하고 수련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저 어쩐지 피곤해서···》

《그래?··· 그럼 좀 쉬여요. 하지만 수련이 한마디만 더 해야겠어. 만약 수련이 어머니가 이 일을 안다면 꼭 나처럼 말했을거야.》

《그럴가요?》

《그렇지 않구!》

수련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기만 하였다. 그 녀자를 그토록 격분케한 그 멋들어진 원명길은 바로 어머니가 눈독을 들인 청년이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