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2

제 2 편

12

 

문선규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이께서는 보시던 문건을 밀어놓고 문선규에게 자리를 권하시였다. 이어 여느때처럼 직방 본론에 들어가시였다.

《1부부장동무, 이제부터 외교부에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일전에 만든 이 비망록은 때가 되면 신문과 통신, 방송을 통하여 공포하고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에도 배포합시다. 그에 앞서 우선 우리의 조약탈퇴결심을 선포할 공화국정부성명도 준비하고 대변인담화, 기자회견, 또 세계 여러 나라들과 국제기구들에 보낼 외교각서 등을 속히 준비해야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장군님!》

문선규는 아직도 가까스로 숨길을 톺고있었다.

그이께서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시자 그는 서둘러 말씀드렸다.

《장군님! 사실 저희들은 지금까지 핵대결전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경대처하겠다고 또 강력한 자위적조치를 취하겠다고 엄포를 놓긴 했지만 장군님께서 그처럼 큰 결단을 내리실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배심이 용솟음칩니다!》

《음ㅡ 우리의 조약탈퇴결심은 그 어떤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는 치렬한 정치투쟁, 계급투쟁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법에도 전적으로 부합되는것입니다. 부부장동무도 잘 알겠지만 핵무기전파방지조약 제10조에 의하면 나라에 특수한 환경이 조성되거나 국가의 최고리익이 침해당하는 경우엔 이 조약에서 탈퇴할수 있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조약탈퇴조치를 지레대로 하여 역경을 순경으로 화를 복으로 전환시킵시다. 핵상무조동무들이 또 수고를 해야겠습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부터입니다!》

《알겠습니다. 당장 돌아가서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하시였다.

《너무 서둘지 마시오. 심중하게 사색하고 면밀하게 준비합시다. 우리의 핵문제가 드디여 폭발하게 됐는데 핵폭발이라는게 어디 간단한 일이요? 세계를 들었다놓겠는데 잘 준비합시다.》

《알았습니다. 장군님!》

···얼마후 그는 터질것 같은 가슴을 안고 외교부청사로 돌아가고있었다. 대기하고있던 운전수에게 먼저 가라고 이르고 홧홧 달아오른 얼굴에 찬바람을 맞으며 한적한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운전수가 차를 몰아 소리없이 뒤따르고있는줄도 알지 못했다. 그는 오직 하나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집무실을 나설 때부터 줄곧 이어온 그 하나의 생각에만 골몰하고있었다. 가슴은 세찬 격동에 뻐근해졌다.

정신없이 걷고 또 걷는다. 밤은 오싹하리만큼 찼으나 그것도 알지 못했다. 투광등에 비쳐진 보통문의 성벽에서는 지난해의 말라버린 담쟁이넝쿨이 바람이 불 때마다 오스스 떨고있었다.

그는 2월관리리사회를 앞두고 밤을 새워가며 준비하던 일들을 돌이켜보았다. 그때로부터 불과 20일남짓한 시일이 지나갔지만 우리의 핵문제는 얼마나 멀리 왔는가!···

가까운 등뒤에서 경적소리가 울렸다. 흠칠 놀라며 머리를 돌려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그의 운전수가 승용차의 문을 열며 소리쳤다.

《아니 어데로 가십니까?》

《?···》

사위를 돌러보았으나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수 없었다. 그는 그제야 왕청같은곳으로, 알수 없는 골목길로 꺾어들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넓지 않은 길 량옆에 쇠울타리를 둘러친 건물들이 솟아있는데 불꺼진 창문유리들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륜곽을 드러내고있었다. 운전수가 또 소리쳤다.

《어서 타십시오.》

타고싶지 않았다. 밤새도록 걷고 또 걷고싶었다. 그는 운전수에게 먼저 가보라는 의미의 손짓을 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또 생각에 잠겼다.

이제 미국과 서방세계는 어떻게 나오겠는가?··· 단번에 아우성치며 전쟁에 뛰여들겠는가? 아니 먼저 기절초풍하여 굳어질것이다. 그 다음···거의 일시에 미친듯 울부짖으며 달려들것이다. 한편 환호를 올리는 나라들도 많을것이다. 세계적인 강권과 압력, 불공정성을 깨뜨렸다고 박수갈채를 보낼것이다. 물론 우리의 동정자들속에서도 동요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발목을 잡거나 공포에 질려 꽁무니를 사리는자들도 없지 않을것이다. 변절과 배신이 전염병처럼 휩쓰는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인들 없겠는가!···

얼마후 그는 외교부청사앞마당에 이르렀다. 어둠에 잠긴 김일성광장 맞은편의 청사쪽에서는 밤을 지키는 외등이 조는듯마는듯 가까스로 어둠을 밀어내고있었다. 그 청사앞 벽면에 걸린 맑스와 레닌의 초상화들마저 희미하게 겨우 두드러져보일뿐··· 그 초상화들을 보느라니 문득 아픔과도 비슷한 야릇한 생각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로동계급의 수령들인 맑스와 레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리한 통찰의 눈길로 급변하는 력사의 소용돌이를 사색깊이 지켜보고있는 그들, 지금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것일가?···

사색과 탐구는 그들의 일생의 반려였으며 타고난 운명이였다. 유물변증법의 철학사상을 지팽이삼아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의 초행길을 출발하였던 그들, 불멸의 진리를 믿어의심치 않았던 위대한 사상리론가들이였던 그들, 그들은 격변하는 오늘의 현실을 두고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것일가?···

저 유럽에서는 강성하던 사회주의가 졸지에 무너져버렸다. 그들이 추켜들었고 넘겨주었던 혁명의 붉은기는 크레믈리성벽우에서 내려져 넝마처럼 찢기고 짓밟혔다. 옛제도의 황족과 귀족의 망령들이 무덤속에서 뛰쳐나와 붉은 광장을 배회하고있다. 《인터나쇼날》의 우렁찬 대합창이 울려나오던 대회당과 거리들에서는 총포성이 울부짖고 피가 흘렀다. 영구불멸로 칭송되던 위대한 저작들이 불길속에 던져졌다. 수령의 동상들이 길바닥에 넘어졌다. 사회주의는 변절자, 배신자들에 의하여 버림받고 모욕을 당하고 치욕을 들쓰고있다.

과연 이 모든것을 두고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것일가?··· 오랜 세월 그들의 가슴을 부풀게 하고 더욱 피를 끓게 하던 그 모든것ㅡ 밝은 미래에 대한 꿈과 노래와 리념과 희망마저 다 사라졌겠는가?

아니다. 지금 그들은 여기서 변함없이 높이 추켜들고 힘있게 휘날리는 붉은기를 보고있다. 어제도 여기 김일성광장에서는 10만의 군중대회와 시위가 있었다. 준전시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최고사령관 김정일장군님의 명령관철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선 영웅적인민의 힘과 의지를 과시하였다.

피빛으로 타는 붉은기들이 숲을 이루며 흘러갔었다.

《인터나쇼날》의 힘찬 주악이 하늘땅을 흔들며 울려퍼졌다. 이 판이한 두 현실을 두고 과연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였을가? 이제 여기서 세계를 뒤흔들어놓을 핵무기전파방지조약탈퇴라는 무서운 폭탄선언이 터지고 서방세계가 전률하는것을 보면 그들은 또 무엇을 생각하게 될것인가?··· 오늘 사회주의는 위대한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사수되고 공고화되고 힘있게 전진하고있다!···

백화점앞도로로 인민군기동순찰대의 자동차대렬이 지나갔다. 푸릿한 가로등불빛에 완전무장을 한 병사들의 철갑모가 번들거렸다. 맨앞의 전투용지휘차에 내건 붉은기가 유난히도 크고 진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세차게 펄럭이는 그 붉은기아래 전투복장을 한 지휘관과 나란히 철갑모를 눌러쓴 기관총수가 어둠속 저 멀리로 당장 불을 토할것 같은 총구를 겨누고있다.

그들은 지금 준전시하의 수도의 안전을 지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거리와 거리를 돌고있다.

(이것이 우리의 기상이다!)하고 문선규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저 붉은기를 보라.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신념과 의지의 상징인 저 붉은기를 보라. 우리는 그 어떤 천지풍파가 들이닥친다 해도 저 신념의 기발을 높이 추켜들고 변함없이 꿋꿋이 전진해갈것이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청사에 들어서서는 젊었을 때처럼 한번에 두계단씩 뛰여오르기도 했다. 예견했던것처럼 서기실문을 열자 핵상무조성원들이 그가 도착하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었다. 김세환, 최우정, 장운성 등 ··· 비록 많지 않은 사람들이였지만 이들이야말로 장군님께서 지휘하시는 핵대결전의 제일선 전투원들이다. 문선규는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자기의 화선전우들인 그들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어떻게 됐습니까?》

강직한 성격을 지닌 최우정이 먼저 이렇게 물었다.

동시에 성미가 급한 장운성과 침착하고 유연한 김세환조차 참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거듭하였다.

문선규는 크게 숨을 들이긋고나서 엄숙하게 말하였다.

《방금 핵폭발이 있었소. 핵폭발이!》

《예?!》

사람들의 놀란 눈빛, 문선규는 소리내여 웃으며 자기의 방문을 활 열었다.

《자, 들어갑시다. 장군님께서 우리들에게 새 전투명령을 주시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