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10

제 2 편

10

 

선장 리명구의 얼굴은 피기 하나 없이 꺼칠해지고 살이 쑥 빠진 두볼은 자귀로 찍어낸듯이 우묵해졌다. 강마른 그 얼굴에서 《을지장군》으로 유명한 턱수염만이 무시로 돋아나면서 훌쭉해진 두볼을 거뭇하게 만들었다.

적들과 처음 조우하던 때로부터 벌써 20여일이 지나갔다. 그동안 그는 거의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느새 두눈은 피가 져서 새빨개졌고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시울을 뜨기가 어려웠다. 말라터진 입술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러나 억지로 안깐힘을 쓰며 탐지기나 륙분의(관측기)를 살펴야 했고 무시로 항로를 변경시켜야 했다.

얼마전에 말라까해협을 지났다. 세계의 주요 해상교통로들중 가장 번잡한곳의 하나인 말라까해협은 많은 섬들과 암초가 있어 위험한데다가 통로가 좁고 래왕하는 배들이 많아 줄을 지어 통과해야만 하므로 적들도 그곳을 지날 때까지는 소동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나 배가 콜롬보쪽으로 항로를 잡자 드디여 여러척의 미군함정들이 나타나 앞길을 막으며 강제로 배를 검열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여전히 미군잠수함 《타잔》호가 따르고있었다.

리명구는 침로를 변경시키지 않고 계속 배를 전진시켰다. 적들이 어뢰를 발사할것처럼 좌우현으로 달려들 때에도 멎어서지 않았다.

대양에서의 싸움은 여러 시간이나 계속되였었다. 마침내 적들은 해군륙전대원들을 동원하여 배를 점거하려고 꾀하였다. 어데서 나타났는지 돌연 《무포》호의 량옆으로 수익정(날개달린 쾌속정)들이 바싹 다가붙어 따르고 공중에서는 직승기가 배와 같은 속도로 날았다. 수익정에서 올려뿌린 갈구리들이 현측과 배고물 등 도처에 날카로운 발톱을 박았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선교우에서 그것을 띄여본 리명구가 지휘용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바줄을 찍으라!》

그러자 맨먼저 몸집이 우람찬 갑판장이 도끼를 들고 달려나가 바줄을 찍어던졌다. 그 갈구리바줄에 거꾸로 매달려 허공을 기여오르던 적병이 거품 이는 파도속으로 떨어져내렸다. 아츠러운 비명소리가 순시에 멀어져갔다. 그것을 신호로 전체 선원들이 고기잡이때 쓰던 창과 칼 등으로 무장하고 달려나갔다. 시퍼런 도끼날들이 번뜩이면서 갈구리바줄들을 사정없이 찍어던졌다. 그때마다 물속으로 떨어지는 적병들을 향하여 창과 칼을 든 선원들이 함성을 지르며 기세를 올렸다.

머리우의 직승기에서 그것을 내려다보고있던 적들은 머리만 기웃거릴뿐 내리드리운 줄사다리로 감히 발을 내짚지 못하였다. 줄사다리만이 꼬리를 길게 끌며 흔들거리고있었다. 한병권정치부장이 갑판원들과 힘꼴이나 쓸 조기원들 몇을 선발하여 줄사다리가 드리운 그곳에 가있었다. 취사원들까지 식칼을 들고 달려나왔다. 선장 리명구는 마이크앞에서 선원들을 지휘하고 1등항해사 김철수는 유사시에 쓸 화염병과 뜨로찔장약준비에 바삐 돌아쳤다.

결사전은 피할길 없을것 같았다. 머리우의 적직승기에서 《배를 멈추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거듭 위협하였다. 멀리에선 적순양함의 주포들이 엄청나게 큰 포신을 《무포》호쪽으로 돌리고있었다. 리명구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쌍안경으로 거듭 확인하였다. 저놈들이 어쩔셈인가. 진짜 포격하려는것인가?···가슴이 졸아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군사지식은 없어도 적순양함에 400㎜이상의 구경을 가진 함상포들이 여섯문이나 있다는것쯤은 그도 알고있었다. 그 포탄 한발이면 1만t급 선박이라도 치명상을 입히기에 충분한것이였다.

그는 시꺼먼 대구경포 아구리들이 정면으로 들여다보이자 저도모르게 흠칫하며 쌍안경을 내렸다. 한순간 불볕아래에서 쇠물같이 끓어번지던 바다가 갑자기 얼어붙고만듯 했다.

바로 그때였다. 확성기에서 선장을 찾는 통신장의 목소리가 다급히 울렸다.

《선장동지, 어데 있습니까. 선장동지!》

《나 선교우에 있소. 무슨 일이요?》

《조국에서 급전입니다. 우리 배가 처한 형편을 보고받으신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무포〉호 선원들은 지금 싸우는 조선의 최전연에 서있다고 하시면서 주저말고 계속 전진하라고 말씀하셨답니다!》

《뭐?!》

리명구는 불시로 가슴을 울린 세찬 충격에 숨길이 꽉 막히는것을 느꼈다. 이윽고 다시 숨을 돌리자 그는 턱을 덜덜 떨며 세찬 경련으로 푸들거리는 두팔을 앞으로 힘껏 내뻗쳤다. 그리고는 마치 앞에 통신장이 서있기라도 한듯 목청껏 부르짖었다.

《빨리··· 전체 동무들에게··· 알려주시오. 전체 동무들에게··· 빨리!》

《선장동지!》 통신장의 목소리였다. 《지금 전체 동무들이 다 듣고있습니다. 모든 선실과 조타실, 기관실 할것 없이 통신을 다 련결시켰습니다.》

《그럼 다시한번 알려주오. 전문그대로 읽소!》

《예, 선장동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신장은 조국에서 보내온 전보내용을 다시 읽어주었다. 그런 다음 이제 곧 조선중앙방송으로 해운부성명이 발표된다는 소식도 덧붙였다.

잠시후 조타실 지붕우의 확성기에서 찌륵찌륵 하는 소리가 났다. 중앙방송을 거기에 련결하는것이다. 별안간 리명구는 와뜰 놀랐다. 머리우에서 벼락치는듯 한 소리가 터져나왔던것이다. 흥분한 통신장이 라지오의 다이얄을 최고음량으로 올렸던 모양이다. 굉음이 터지며 고막을 찢어놓는듯 했다.

그는 거센 진동파에 날려버리듯 조타실로 뛰여들어갔다. 2등항해사가 두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무어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귀가 먹었는지 아무것도 알아들을수 없었다. 문을 닫고나서야 그는 밖에서 울려퍼진 방송원의 목소리를 분간해들을수 있었다.

《지금 미국함선들은》하고 방송원은 성명을 전하고있었다. 《인디아양에서 정상적인 항해임무를 수행하고있는 우리 나라 무역선 〈무포〉호의 앞길을 가로막고 터무니없는 구실을 내대며 배를 강제검열하겠다고 하고있다.》

2등항해사가 또 소리쳤다.

《선장동지! 놈들에게도 성명내용을 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제서야 리명구는 그가 왜 무선대화기쪽을 가리키며 계속 웨쳐댔는지 알수 있었다. 좋은 생각이다. 우리를 포위하고있는 놈들에게 직접 성명내용을 통역해주는것도 나쁘지 않다. 그는 다급히 무선대화기앞으로 다가갔다. 통로를 16국제통로에 돌려놓고 기침소리를 내였다. 그리고는 칼칼해진 목구멍을 비틀어짜는듯 힘겹게 영어로 말했다.

《미국군함들에 알린다. 우리를 포위하고있는 미국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함장들에게 알린다. 지금 우리 배에 대한 미국군함들의 강도적인 도발행위를 규탄하여 우리 나라 해운부에서 성명을 발표하고있다. 내 말을 들으라. 지금부터 그 성명내용을 알려주겠다.》

그는 자기의 목청이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게 하느라고 무진 애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불을 삼킨것처럼 목구멍이 쓰라려났다. 그러나 성명내용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밖에서 터지는 방송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의 영어지식을 총동원하느라고 눈시울을 바르르 떨군 하였다.

《우리 나라 무역선 〈무포〉호에는 미국이 주장하는 그 어떤 미싸일도 없다. 미싸일은 고사하고 단 한자루의 총기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인디아양 한복판에서 우리 배를 포위하고 무력으로 위협하면서 강제검열을 요구하는것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에 대한 엄중한 침해이며 국제법에 대한 란폭한 유린행위이다.

더우기 이 사건이 우리의 있지도 않는 〈핵문제〉를 구실로 〈특별사찰〉소동을 미친듯이 벌리는것과 모험적인 핵전쟁연습인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이 실동단계에 들어간것과 때를 같이하여 벌어진것은 우리의 응당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수 없다. 이것은 미국이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압살하기 위하여 얼마나 광분하고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있는것이다.》

점차 포위환을 좁히던 적함들이 기동을 멈추었다. 얼마후엔 배의 량옆에서 또다시 갈구리바줄을 걸어보려고 기회를 노리던 수익정이 떨어져나갔다. 머리우의 직승기도 순양함쪽으로 날아가버렸다. 적들이 우리의 성명에 귀를 기울이고있는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교전일방으로서 무모한 도발행위를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 만약 미국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감히 무력으로 우리의 무역선을 공격하려든다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 공화국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은것으로밖에 보지 않을수 없다. 미국은 심사숙고하여야 한다. 전쟁의 전주곡과도 같은 이 엄중한 도발이 계속되는 경우 미국은 이로부터 초래되는 모든 후과에 대하여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다!》

성명내용은 길지 않았으나 준렬하고 서리찬것이였다. 조국이 그들을 지켜주고있는것이다. 조국의 목소리로 울려온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위대한 사랑이 그들모두의 가슴을 쾅쾅 울려주고있는것이다.

그는 불시로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삼키며 말라터진 입술을 짓씹었다. 무선대화기의 통로변환스위치도 돌리지 않고 적들까지 다 듣도록 《동무들, 힘을 내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신다. 자, 용감하게 계속 앞으로! ···침로 265°, 속도 31놋트, 전속 앞으로!ㅡ》하고 목청껏 부르짖었다.

《무포》호는 다시 세차게 물결을 헤가르기 시작했다. 그때 어데선가 수백마리의 곱등어들이 나타나 배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뭉특하고 기름진 검은 대가리를 솟구치며 곱등어떼는 저네들만이 알아들을수 있는 기쁨에 넘친 언어로 바다를 떠들썩하게 하였다.

언제 어떻게 되여 나타난 곱등어들인가?··· 그것들이 배를 따라다니기 좋아한다는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 그것들이 불쑥 나타나 미친듯 기뻐날뛰며 배와 속도경기를 벌리는데는 류다른 의미가 있는듯 했다. 윤기도는 검은 몸뚱이를 뒤채이며 길길이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껙ㅡ 껙 울부짖기도 하는 그 곱등어떼를 바라보느라니 어쩐지 말로써는 다 표현못할 새로운 기쁨과 감격이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적들은 조용해졌다. 멀리에서 《무포》호가 가는쪽을 따라 움직이고있을뿐 무선대화기조차 입을 다물어버렸다. 제놈들의 상부에 벌어진 사태를 보고하고 새로운 지령을 받기로 한것 같았다.

그때부터 적들은 련사흘째 계속 배가 가는 앞길을 막으며 위협적으로 포위태세를 취하군 했어도 본격적인 도발은 걸지 못했다. 가끔 직승기를 날려 머리우에서 돌아치기도 했다. 그 집요한 공세는 전체 선원들을 극도로 피로케 했다. 밤에도 잠들수 없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런지 알수 없어 전체 선원들이 교대로 적을 감시하며 유사시에 대처한 싸움준비를 갖추고있었다.

드디여 사람들의 얼굴은 수척해지고 입술은 갈라터져 피가 나왔다. 적들은 피로전에 들어간것 같았다. 뒤따르던 잠수함이 앞에서 불쑥 북상하여 날카로운 기적소리를 울리는가 하면 낮동안 계속 직승기를 띄워놓기도 했다. 한마디 말도 없다. 단한번 맨처음 추격이 시작될 때 적잠수함 《타잔》호 함장이 《북조선선장에게 경고한다. 이제라도 검열에 응하라. 응하지 않으면 배가 목적지에 이르기전에 침몰시키겠다.》라고 위협했었다. 그리고는 계속 침묵이다. 이 침묵의 추격과 위협을 리명구는 더더욱 참기 어려워했다. 하여 그는 정치부장 한병권과 토론하고 불시에 진로를 바꾸기로 했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남적도해류를 타고 콜롬보항으로 향하는것처럼 곧추 달리고있던 침로를 변경하여 그제밤 갑자기 안다만제도의 무수히 많은 섬들쪽으로 급전한것이였다.

이 갑작스러운 침로변경이 적들을 떼여던진것 같았다. 이틀째나 리명구와 김철수 등이 탐지기를 면밀히 살폈지만 그 어떤 군함도 잠수함의 잠망경도 발견해내지 못하였다. 아마 적들은 지금 인디아남부의 해상 부근에서 우리를 찾느라고 돌아칠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현대과학의 최첨단기술로 장비된 적함선을 대양한가운데서 떼여버리다니··· 하지만 생활속에서는 극히 보잘나위 없는것, 극히 단순한 리치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리명구는 인디아양의 총도를 펴놓았다. 유구한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헤아릴수 없이 많은 난파, 모험, 황금과 무역, 피비린 살륙, 략탈, 탐험 등 무서운 불행과 처참한 죽음의 비밀을 무수히 품고있는 이 대양, 력사에 기록된 이 대양의 정복자는 카르타고의 한노제독이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전에 돛을 올려 이 미지의 대양을 횡단하는데 성공한것이다.

리명구는 적도이북의 인디아양 배길을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별안간 그는 한쪽으로 기울면서 비칠거렸다. 물속에서 코로 물을 들이켰을 때와 같은 역스러운 자극이 골수로 파고들었다. 누군가 그를 부축하였다.

《인젠 좀 쉬시오. 무쇠인들 견디여내겠소.》

정치부장 한병권이였다. 리명구는 그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잠시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가 언제 여기 들어와 있었는지 알수 없었다.

《자, 갑시다. 선장동무.》 한병권이 말했다. 《인젠 맘놓구 쉬여도 되겠소. 암만 그래두 그것들이 래일까진 우릴 찾아내지 못할거요.》

리명구는 한손으로 눈언저리를 세게 문질렀다. 그리고는 2등항해사에게 제정해준 항로를 상기시키고 아무때건 이상한 징후가 발생하면 즉시 자기를 깨우라고 지시했다.

그는 정치부장 한병권에게도 쉴것을 권고했다.

한병권은 자기만큼 태평스레 잠을 잔 사람도 없을거라고 롱을 하면서 그를 떠밀었다. 자기 방에 돌아가자 옷도 채 벗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러자 금시 아득한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감을 느꼈다. 모로 돌아누우면서 벌써 그는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버렸다.

안다만제도의 맨 끝단에 인디아양의 사나운 계절풍과 그에 의한 해류의 영향을 덜 받는 고요한 수역이 있다. 지형상 이곳은 벵갈만으로 흐르는 해류와 그곳을 빠져나오는 해류가 서로 갈라져나가며 호수와 같은 공간수역을 남기고있는것이다. 《무포》호는 이 고요한 바다를 헤가르고있었다.

날이 저물고있을 때였다. 잠에서 깨여난 리명구는 조타실에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고 물으니 2등항해사 아무개라고 한다. 그는 머리를 흔들고나서 아직도 근무를 서는가, 지금 몇시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2등항해사는 그새 네명 륜번제교대가 한바퀴 돌았다고 웃으며 대답했다.

《푹 쉬였습니까, 선장동지?··· 그새 아무 정황도 없었습니다. 배는 지금 안다만남부수역을 항행하고있습니다. 크고작은 섬들이 사방에 가득 널려있습니다.》

2등항해사의 말이였다. 리명구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송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제복상의를 급히 입고 모자를 쓰면서 문밖을 나섰다. 누기찬 해풍이 후덥게 얼굴을 때렸다.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았다. 시뻘건 태양이 물속으로 잠겨들면서 수평선을 불태웠다. 저 아래갑판우에서 물호스를 들고 돌아가는 갑판원의 모습이 락조에 물들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배는 그 언제 적들의 도발이 있었던가싶게 평화로이 전진해가고있었다.

그는 걸음을 늦추었다. 인젠 적들이 우리 배를 찾는것을 포기한것이 아닐가?··· 선교란간을 짚고 멀리 어둠이 밀려드는 바다를 멀거니 보고있는 1등항해사 김철수가 눈에 띄였다. 그도 지금 교대를 마치고 여느때처럼 고향과 해병시절의 추억을 더듬고있는듯 했다. 혹시는 자기가 사귀던 처녀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나이 서른넷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않은 김철수, 조국을 떠나기전에 과음한탓으로 그를 분노케 했던 김철수이다. 그새 폭풍과 적들의 도발이 계속되였으므로 언제 한번 이야기를 나눠볼새도 없었다.

리명구는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갔다. 김철수가 머리를 돌려보더니 어줍게 인사를 했다. 전날 선장을 분노케 한 기억이 살아나 몸둘바를 몰라하는것 같다. 잠시 침묵이 있은후에 철수가 먼저 용기를 내여 왜 벌써 일어났는가고 물었다. 자기네 선장이 무려 엿새동안 거의나 눈을 붙여보지 못했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였다.

리명구는 실컷 잤다고 하면서 그새 있은 일들을 물었다. 그리고는 그가 하는 대답을 들으며 고물뒤에서 사품치는 물결을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바다의 밤은 재빨리 찾아든다. 락조의 잔광이 수평선우의 구름 쪼각들을 가까스로 물들이고있을 때 벌써 다른쪽 하늘에서는 숱한 별들이 금모래를 뿌려놓은듯 돋아나는것이다.

벌거우리하던 별마저 사라지자 커다란 하늘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뭇별들이 정기도는 눈으로 반짝이며 서로 자리를 바꾸어 흘러갔다.

배사람들과 별들은 인연이 깊다. 그들은 별을 보고 자기의 위치를 판정하며 언제나 그리운 고향과 정든 사람들도 그 별들이 흐르는 하늘가를 더듬으며 생각한다. 란간을 짚고 하늘가를 바라보고있던 리명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철수동무, 내 하나 묻겠는데··· 솔직히 말해주겠소?》

《예.》

《그럼 약속했소.》

《참, 선장동지두··· 어서 말씀하십시오.》

《철수동문 왜 장가를 안가오? 34살이면 적지 않은데···》

《···》

김철수는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선장의 그 말이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커다란 아픔을 건드려놓은듯했다. 조타실에서 내비친 불빛이 그의 시뿌둥하고 수척해진 얼굴을 비쳐주었다.

《약속하지 않았나. 그래 사귄 처녀는 있소?》

《···》

김철수는 거의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있었다. 리명구는 담배를 꺼내물었다.

《난 동무가 그런 화제를 싫어하는줄 아오. 그래서 지금껏 물어보지 않았는데···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게 아니요? 정치부장동무는 술도 할줄 모르는 동무가 처녀때문에 과음을 했고 고민하는것 같다고 하던데···》

《···》

김철수의 훌쭉해진 두볼이 실룩거렸다. 묻지 않아야 할것을 물은것 같다. 리명구는 라이타를 켜서 담배불을 붙였다. 그리고는 눅눅한 대기와 함께 향긋한 담배연기를 가슴가득히 들이켰다.

멀리 인도지나로부터 낮동안 달아올랐던 열풍이 밀려왔다. 은하수가 길게 꼬리를 드리운 그곳에서 이따금 가느다란 번개가 꿈틀거렸다. 한밤중엔 비를 맞게 될수도 있다. 리명구는 그쪽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조용히 말했다.

《철수동무, 싫으면 관두라구. 뭐 남의 개인비밀을 캐보자는건 아니니까.》

《아, 아닙니다!》하고 김철수가 다급히 부르짖었다. 《뭐 비밀이랄것도 없습니다. 그저··· 무슨 말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사실 한 처녀를 사랑했는데···》

그는 거칠게 숨을 내뿜었다. 무엇인가 쓰라린 아픔에 신음하는듯 했다. 희미한 불빛을 등지고 손가락마디를 뚝뚝 꺾고있는 그의 얼굴에 형언할길 없는 아픔과 애수가 비껴있었다.

《그 처녀에 대한 얘기를 하기 앞서 군대때 표창휴가를 받아가던 일부터 말하겠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요. 입대하여 처음으로 여러해만에 집에 가니 온 동네가 법석 끓더군요. 더구나 새하얀 쎄라복을 입은 해군중사가 산골마을에 나타났으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노상 입을 다물지 못하더군요. 그러면서 날더러 휴가를 온김에 맞춤한 처녀를 보구 가라는것입니다. 두 집 부모들끼리는 이미 약속이 돼있다나요. 참 그런 봉건이 어데 있습니까. 자식도 모르게 부모들끼리 혼사를 정하다니··· 나는 부모들에게 더 이상 말도 비치지 못하게 막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게 웬일이겠습니까. 바로 그 처녀가 왔습니다. 혼자서··· 〈계시나요?〉하는 소리에 문을 열고 내다보던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오, 왔나. 어서 들어오지 않구. 어서!〉하고 처녀를 맞아들입니다. 그러면서 뜨아해 쳐다보는 나를 향해 〈얘, 철수야 마침 그 처녀가 왔구나. 우리가 말하던!···〉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ㅡ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부모들이 혼사를 정한것만 해도 천만뜻밖인데다 처녀가 먼저 제발루 찾아오다니··· 나는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하나 뽑아들고 방안구석에 옮겨앉고말았습니다. 그때 처녀가 방안에 들어섰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해군중사동지!〉하고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그 눈이 나를 붙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그렇게 산뜻한 처녀일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금 대학생처녀들이 입고다니는 그런 하얀 저고리와 깜장치마를 입고있었는데 특히 새물새물 웃고있는 까만 두눈은 정말 인상적이였습니다. 그 눈이 나를 얼어붙게 했습니다. 내가 어쩔바를 몰라하자 처녀가 또 말했습니다.

〈중사동지, 부탁이 있어 왔습니다. 전 여기 운곡고등중학교 소년단지도원인데 래일 우리 소년단원들과 상봉모임을 조직할가 해서···〉

〈제가 말입니까?〉하고 나는 혀가 굳어진것처럼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무슨 영웅이라구··· 아니 난 그런건 못합니다.〉

그러자 처녀는 꼭 영웅이여야만 하는가, 중사동지도 조국의 바다를 지켜 잘 싸우지 않았는가. 그저 나어린 소년단원들에게 그 앞가슴의 군공메달에 깃든 이야기만이라도 해달라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는 또 소리없이 새물새물 웃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왜 그가 계속 그렇게 웃고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처녀에게 자꾸 끌리는 눈길을 어쩌지 못해 허둥거리고있었지요. 사실 그 처녀는··· 산뜻하였습니다. 남달리 어여쁘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모든것이 밝고 깨끗하고 귀엽다고 할가··· 어쨌든 나는 그 처녀의 요구에 응하고말았습니다. 까짓거, 해병들이 사시장철 무더위와 추위를 이겨가며 어떻게 생활하는가 하는 얘기야 왜 못하겠는가, 하자. 하는바치곤 멋있게 해보자! 하는 배심이였지요. 그러자 처녀는 〈그럼 약속했어요, 중사동지?!〉 하고 다짐을 받는것이였습니다. 방금 선장동지가 그랬던것처럼 말이지요.

처녀는 좀 망설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문밖으로 나서는것이였습니다. 나가면서도 주춤거리며 무엇인가 기다리는것 같았습니다.

부엌에서 무엇인가 준비하고있던 어머니가 왜 벌써 일어났느냐고 바빠하면서 나에게 눈짓합니다. 날더러 왜 붙잡지 않느냐 하는것인지 따라나가보라는것인지 알수 없더군요. 나는 그저 어리뻥해서 서있었지요. 처녀는 토방에서 신을 찾아신고 또 한번 〈자, 그럼 편히 쉬세요.〉하면서 문을 닫으려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무슨 생각이 들었댔는지 나는 〈아, 잠간!〉 하면서 문고리를 꽉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혀가 굳어진것처럼 힘들게 말했습니다.

〈동무, 어데선가 만나본 일이 있지 않던가요?〉

그러자 이게 웬일입니까. 처녀가 깔깔거리며 웃어댑니다. 어머니도 웃고요. 처녀는 웃어대면서 〈아니 아직도 날 모르겠어요? 내가 그렇게도 변했는가요?〉하는것입니다. 내가 여전히 뻥해있으니 〈그래 눈무지속에 빠져 울고있던 영옥이를 정말 잊으셨어요? 그때 산속에서 업고나오던 일도 생각나지 않으세요?〉하는것이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야!ㅡ〉하고 부르짖었습니다.

비로소 지나간 모든 일들이 죄다 생생히 떠올랐습니다. 거의 10년전 어느해 겨울 학교에서 좀 늦어 돌아오다가 산비탈에서 굴러나 눈무지속에 빠져울고있던 어린 처녀애가 영옥이였습니다. 내가 그애를 집에까지 업어다주었지요. 또 한번은··· 참 그런 얘기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심술을 부리며 머리끄뎅이를 잡아 울려주기도 했구요. 그때 영옥인 아주 죄꼬만 계집애였으니까요.

우린 그때 일을 생각하며 한바탕 웃어댔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밤길을 걸었습니다. 걸어가면서 있었던 일, 없었던 일, 기억나는 일, 기억나지 않는 일들을 죄다 한꺼번에 상기해보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시내물을 만났습니다. 다리까지 가려면 멀고··· 나는 징검돌을 골라짚고 처녀의 손을 덥석 잡아 건네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가슴이 후두둑! 합니다. 어망결에 불에 덴것처럼 잡았던 손을 놓았지요. 처녀 역시 〈어마!〉 하면서 굳어지더군요. 정말이지··· 별안간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였습니다. 갑자기 서로 쳐다보는것조차 쑥스러워지구··· 그때에야 비로소 우린 흘러간 나날과 더불어 우리들의 소년시절도 멀리 아득히 가버렸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김철수가 숨을 돌리는 사이에 리명구는 두번째로 담배를 꺼내물었다. 철수에게도 한대 권했으나 그는 사양하였다. 그 시절의 애틋한 추억이 그의 마음을 축축히 적셔놓은듯 했다. 그는 제복상의의 옷단추를 끌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들으신것처럼 특별한 얘긴 없습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그러루한 얘기지요. 선장동지한텐 아마 지루하게 들릴수도 있겠는데···》

《아니, 난 흥미있게 듣구있소. 정말이요.》

《그럼··· 계속 할가요?··· 일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 순진하구 정열적이였습니다. 거의나 끊어질새 없이 숱한 편지들을 주고받았지요. 제대되여 대학에 갔을 때도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우리의 사랑이 정열에 넘친 편지들로 엮어졌다고도 할수 있지요.

그런데 선장동지··· 미리 말하는데 나는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그 처녀의 무엇을 보고 사랑했다고 찍어 말할순 없습니다. 그 처녀 역시 나의 무엇이 맘에 들었는지··· 외모인지, 성격인지 아니면 그 어떤 고상한 사상감정인지··· 아니 사랑을 그렇게만 말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 처녀의 어떤 결심에 탄복했거나 어떤 훌륭한 소행에 감동되여 사랑하기 시작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것을 보기 이전에 우린 벌써 사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첫눈에 벌써 그것이 알리더군요. 선장동지, 어떻습니까.

이런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닐가요?》

리명구는 조용히 웃었다.

《나도 그렇게 시작했는걸. 생활이란 다 그런것이지. 첫눈에 반해버리던가 아니면 언제 어느때부터인지는 몰라두 별안간 사랑에 빠진 자기를 발견하던가··· 아무튼 사랑이란 수판알을 튀기거나 저울로 달아서 나눠가지는것이 아니라 거 뭐랄가··· 오직 심장으로만 주고받는 그런것이거든.》

《그렇단말이지요?··· 좋습니다. 그럼 제 이야길 마저 하겠습니다.》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그는 갑자기 호주머니를 뒤졌다. 이쪽저쪽 손을 넣어보더니 제복상의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냈다.

《한대 피우겠습니다. 선장동지!》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자 몇모금 급히 빨기 시작했다. 담배불이 빨갛게 타들어갈 때마다 검붉어진 그의 두볼이 우묵하게 비쳐졌다.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그런데··· 일이 생겼습니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처음엔 잘 믿어지지 않더군요. 그가··· 그 동무가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것입니다. 폭풍이 불던 어느날 밤 전기사고로 불이 났는네··· 수직을 서던 그 동무가 희생적으로 초상화와 선물비품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엔 거의 의식이 없었다더군요. 그의 소행은 곧 신문에도 크게 소개됐지만··· 난 그 동무를 다시는 만나볼수 없게 되였습니다. 그 동무가 일체 면회를 거절했던것입니다. 나에겐··· 자기를 잊어달라는 한마디 편지를 써보내고는··· 영 종무소식입니다. 왜 그랬는지 압니까?··· 그는 자기가 그 전날의 모습을 잃었다는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답던 처녀가··· 화상으로 얼굴이 험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진 마음을 먹구··· 나를 만나는건 물론 편지거래조차 끊어버렸습니다. 내가 아무리 호소하구 간청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을 꼭 닫아건채 아무리 두드려도 대답을 하지 않는단말입니다. 선장동지! 어쩌면 이럴수 있습니까. 그는 나를 믿지 않습니다. 도대체 뭣때문에··· 내가 그렇게 진심을 터놓는데도 그걸··· 도덕적의무감에 못이겨 그러는것처럼 생각할수 있겠습니까!》

그는 또다시 힘주어 담배를 빨기 시작하였다. 담배를 감아쥔 손끝이 후들후들 떨리는것이 알렸다. 리명구도 가슴이 저려나 말하기가 헐치 않았다.

《그 처녀야 왜 동물 믿지 않겠소. 동물 위해주느라 그러는거지.》

《옳습니다.》하고 그는 성급하게 받았다. 《하지만··· 어째서 그 동무가 날 위해줘야 합니까. 저의 진정은 아무렇지도 않단말입니까?》

《철수동무, 진정하라구, 진정하라니까!》

그는 손에 쥔 담배를 힘껏 빨고나서 란간너머로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날더러···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전날의 어여쁜 처녀를 알고있는 사람은 더 견디기 어려울거라구요. 애당초 모르던 사람이 낫다는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맘속에 깨끗한 사랑이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제 아무때건 제 마음이 달라질수 있다는것입니까? 선장동지, 어디 말 좀 해보십시오. 제가 그렇게 너절한 사람이란 말입니까, 예?!》

그의 이마에 맺혔던 땀이 눈귀로 스며들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힘껏 문지르고나서 란간너머 푸릿한 어둠속으로 머리를 돌렸다. 부지중 가슴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눈물의 격정을 애써 감추려 한것 같다. 그것이 더욱더 리명구의 마음을 쓰리게 했다. 동시에 그들 두사람, 김철수와 그 처녀에 대한 사무친 애정이 그를 목메이게 했다. 그는 한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제복앞가슴의 쇠단추만 속절없이 주무르고있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수 있으랴. 아직 리명구는 이처럼 사랑의 아픔에 몸부림치는 젊은이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위안의 말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만약 그가 입을 열어 무슨 말이든 시작했더라면 전혀 동에 닿지 않는 시시부렁한 말밖에 더 하지 못했을것이다. 그는 거칠게 숨을 톺으며 입술만 아프게 깨물고있었다.

불현듯 수련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의 딸 수련이 역시 눈에 띄게 산뜻하고 아름답다. 순진하고 가식을 모르며 가끔 밸뚝시를 부릴 때도 있으나 맘씨는 착하다. 그런데 요즘 수련이는 군병원에 배치받은것때문에 어지간히 싱숭생숭해졌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안달아하는가 하면 제때에 손을 써주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한다. 이것이 늘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일로 하여 사랑하는 딸이 빗나갈것 같아 걱정스러워진것이다. 지금 그애는 무엇을 하고있을가. 수련이에게도 이처럼 뜨겁고 헌신적인 사랑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처럼 훌륭한 젊은이와 사귄다면 수선스러워지던 그애의 생활도 바로잡히고 안정되지 않겠는가!···

리명구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철수의 옆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비로소 오늘에야 그를 알게 된것이 이상했다. 이렇듯 성실하고 진실한 젊은이를 몰리해하고 경멸해왔다는것이 놀랍기 그지없었다. 하마트면 남포항에서 승선을 금지시킬번 했었다. 그리하여 훌륭한 젊은이의 마음속에 평생 지울수 없는 아픈 상처를 남길번 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그는 맨 처음부터 이 젊은이를 보통 제대군인출신이며 대학공부를 한 수수한 청년으로밖에 더 보지 않았다. 그에게서 특별히 눈에 띄는 남다른 점을 찾아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성실하고 참된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특별히 모가 난데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였던가. 모가 나지 않고 평범할수록 소박한 법이며 소박하고 수수할수록 진실한 법이다.

그는 또 담배를 피워물었다. 달이 떠올랐다. 흐느적거리는 물의 률동적인 흐름우에서 푸른 달빛이 춤추듯 흔뎅이였다. 오늘따라 어둠에 잠긴 바다는 더더욱 검고 진하게 번들거리는듯 하였다.

두사람은 이윽토록 말없이 검은 물결만 내려다보았다. 마음속 충격이 너무 컸으므로 잠자코 생각에 잠기는것이 더 좋았다. 물결은 쉼없이 설레이고 머리우에서는 남방의 별들이 소리없이 자리를 바꾸며 그들을 따라왔다. 훈풍이 불면서 고요한 꿈의 세계에로, 고향과 처자와 사랑하는 처녀에게로 자꾸만 그들을 이끌어갔다. 하여 그들은 고요한 이 바다우에서 얼마나 무서운 일이 준비되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정적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