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8

제 1 편

8

 

또다시 밤은 깊어가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쾌속으로 달리는 승용차의 시창밖으로 거뭇거뭇 스쳐가는 가로수며 리정표들을 묵묵히 바라보고계시였다.

수도를 떠난지도 벌써 한시간, 여러대의 승용차들이 대도로를 달리고있었다. 하늘에서는 찢어진 구름장사이로 얼굴을 내민 달이 창백한 빛으로 포도를 비치였다.

튕기면 쟁쟁소리를 울릴것 같은 겨울밤의 대기, 고즈넉한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먼 산봉우리들, 모든것이 싸늘한 공허속에 잠들고있었건만 그이께서는 여전히 시시각각으로 커가고있는 전쟁의 위험에 대하여 생각하고계시였다.

(전쟁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군대내 고위지휘관들모두의 일치한 생각이였다. 지금까지 적들은《팀》훈련을 통하여 정세를 고도로 긴장시키고 민심을 소란케 하며 전쟁준비로 매해 우리의 정세를 혼란에 빠뜨림으로써 우리를 체계적으로 가압적으로 질식시켜버리려고 꾀하였었다. 그러나 다년간에 걸친 그러한 시도가 통하지 않게 되자 이번엔 핵문제를 구실로 전면전쟁에 나서려 하고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 뒤좌석의 이동전화기 호출신호를 누르시였다. 그러자 뒤따르는 차에서 《최광 듣습니다.》하는 묵직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울려나왔다.

《총참모장동무.》하고 그이께서는 송화구에 대고 말씀하시였다.

《래일중으로 후방총국장에게 과업을 주어 일체 작전예비물자의 재고량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여야겠습니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리고··· 오늘 진행할 기계화보병려단의 훈련계획을 총참모부에서 검토해보았습니까?》

《예, 검토하였습니다.》

《그래 결과가 어떻습니까?》

《결과는··· 각종 화력타격과 전자장애하에서 지형조건에 맞는 대담한 강행도하작전으로 평가되였습니다. 특히 대기구역으로부터 출발진지를 차지하지 않고 직접 돌격으로 넘어가며 높은 기동력과 화력협동으로 돌파진입을 계획한것이 좋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때 앞서 달리던 승용차가 먼저 대도로에서 내려 산기슭으로 뻗어간 길에 들어섰다.

최광이 보고드렸다.

《기계화보병려단은 2km 전방 운봉산기슭에 있습니다.》

《음ㅡ 알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전화를 끊고 시창밖으로 흘러가는 밋밋한 릉선이며 아카시아나무들이 울바자처럼 둘러싼 과수원 그리고 경사진 산중턱에까지 잇대여진 다락밭들을 바라보시였다.

저 우중충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서있는곳에 운봉산이 있을것이다. 그 산기슭 어느 골안에서 지금 오영범의 기계화보병려단이 뜻밖의 《폭풍》이 들이닥치고있는줄도 모르고 금시 잠들었을것이고···

오영범!··· 굵다란 목과 감때사나운 눈빛 그리고 짧게 깎은 머리며 콩알만 한 기미로 특히 인상적이던 오영범, 그이께서 그를 처음 만나신것은 17년전의 일이다. 그때 군단참모장의 명령으로 지휘감시소에 도착한 오영범은 모가 진 턱을 쑥 내민, 화끈 달아오른 난로같이 열기가 확확 내풍기는 한창나이의 공병소대장이였다.

그때 그는 시뻘건 목덜미로 줄지어흐르는 땀을 팔소매로 뻑 문지르고나서 군단참모장에게 명령대로 왔노라고 아주 큰소리로 보고하였다. 그러자 군단참모장이 포대경쪽에 서계신 그이께 《일을 친 공병소대장》이라고 말씀드렸다.

《아, 동무요?!》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순간 오영범은 제식훈련때처럼 두손을 바지혼솔에 딱 붙이고 홱 돌아섰는데 처음 당장은 환하신 미소를 담고 자기를 바라보시는분이 누구이신지 미처 알아보지 못한것 같았다. 어리둥절해있던 그의 얼굴이 돌변한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였다. 그는 불현듯 눈이 부신것처럼 두눈을 쪼프리면서 입을 벙긋 거렸는데 가슴속에 꽉 들어차는 격정에 숨이 차서 허덕이는듯 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목멘 부르짖음과 동시에 한발 앞으로 나섰으나 별안간 눈굽이 쿡 쑤시는듯 구붓한 눈섭을 흠칫거리며 굳어져버렸다. 또 한순간이 지나서야 서둘러 거수경례를 붙이며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제567군부대직속 공병중대 3소대장 오영범···》

《아, 오영범!》

그이께서는 한손을 약간 드시며 흙탕에 게발린 군복차림 그대로인 그의 모습을 재빨리 훑어보시였다.

《동무가 발파를 해서 땅크를 파묻었다는게 사실이요?》

《그렇습니다.》

기여들어가는 소리였다. 순간의 기쁨과 환희는 거품처럼 갈앉아 버리고 별안간 가슴속에 눈보라가 이는듯 몸을 옹송그리기까지 했다.

《그건 왜?》하고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그 땅크 한대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들었는지 아오?··· 그래 동문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아나말이요!》

《···》

그는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 달달 말라서 튼 입술만 세차게 깨물고있었다.

《왜 대답을 못하오? 그래도 그걸 묻어버릴 결심을 했을 땐 무슨 타산이 있었을게 아니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하고 그는 마침내 갈린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냈다. 《전··· 각오가 돼있습니다. 어떤 처벌이라도 다···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뭐가 또 있소?··· 말해보오.》

《그렇지만··· 시간을 지키려니··· 다른 방도는 없었습니다.》

《그렇다?!》하시며 그이께서는 흥분으로 하여 푸들거리는 그의 볼편을 눈여겨보시였다. 《그래 그와 꼭같은 정황이 또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소?》

《그런 정황이 또 생긴다면··· 그땐··· 또···》

《또 묻어버리겠다?!》

《예. 달리는··· 할수 없을것 같습니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군단참모장 등을 둘러보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 동무 아주 괜찮소. 응?! 배짱도 있구···》

그이께서는 딱 바라진 그의 어깨를 툭 쳐주시였다.

《괜찮아, 내가 듣고싶었던것이 바로 그 대답이였소. 동무가 잠시나마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더라면 어쩔번 했소. 동문 전투에서 생명과 같은 시간을 지켜냈소. 그것이 중요한거요. 묻어버린 땅크는 아무때건 다시 파낼수 있어도 잃어버린 시간은 영영 되찾지 못하거든!··· 오영범동무, 우리 지휘관들에게 가장 중요한것이 바로 그 결단성이요. 특히 전쟁판에선 제때에 통찰하고 제때에 결단을 내리는 사람만이 승리를 얻을수 있소.》

그이께서는 그때에야 비로소 그를 향해 손을 내미시였다.

《동무를 알게 되여 기쁘오!》

그러자 오영범은 너무도 큰 충격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이께서 다정히 손을 잡아주시자 벅찬 감격에 모가 진 아래턱을 움씰거리는데 그때마다 콩알만 한 기미가 경련적으로 오르내리군 하였다.

그때부터 그이께서는 평범한 한 공병소대장에 불과하였던 오영범을 잊지 않으셨고 남달리 관심하시였다. 그를 만나실 때마다 《아, 〈오발파!〉 인젠 중대장이요?》하며 각별한 정을 표시하시군 하였다. 그리하여 공병출신으로, 자기의 첫 출발진지를 든든히 구축하고 떠난 오영범은 여러 보병구분대와 포병구분대를 지휘해본 경험을 쌓고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주체적군사리론과 전략전술을 익힌후 드디여 기계화보병려단을 지휘하는 장령으로 자라난것이다.···

승용차들은 강파로운 벼랑굽이를 에돌아갔다. 그러자 운봉산마루에서 쫙 펴놓은 손가락들처럼 여러개의 릉선들이 뻗어내린것이 보였는데 그 릉선사이의 시꺼먼 골어귀에서 불빛이 반짝이였다. 오영범의 기계화보병려단 구분대들이 그 골마다에 들어있을것이다.

군단사령관이 탄 맨앞의 승용차가 어느 골어귀에서 멎었다. 보초소가 나타나고 철갑모를 쓴 보초병의 자태가 전조등불빛에 드러났다. 군호를 주고받는 소리에 이어 별안간 보초병이 구령이라도 받은것처럼 차렷자세로 몸을 쭉 펴며 영접들어총을 하는것이 보였다.

승용차들은 총대처럼 꼿꼿이 서서 흥분과 경이의 눈빛으로 굳어져버린 보초병앞을 지나 천천히 미끄러져갔다.

보초소를 지나자 상상이외로 넓은 골안이 나졌는데 내가의 비탈면에서 눈더미들이 희끗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둠에 잠긴 골안을 주의깊게 바라보시였다. 석비레를 깔고 다진 길 량옆에 줄지어 늘어선 백양나무들, 잘 위장된 위병소며 일메지게 쌓아놓은 방축, 골안에서 또 여러 갈래로 갈라져들어간 길우에 무수히 찍혀져 있는 무한궤도자국들, 이 모든것들이 오영범의 억센 손아귀의 힘을 그대로 보여주는듯 했다.

아직 이 순간까지도 얼마나 큰 사변이 마중해오고있는지 알지 못하고있을 오영범···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사전예고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그의 련합부대 전투준비상태를 보고싶으시였던것이다.

또다시 스쳐지나는 위장그물을 씌운 진지, 길 좌우의 구호판들··· 바로 그때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둔덕의 소로길에서 큰길로 나서던 한 전사가 전조등의 불빛이 눈에 부시여 한손으로 눈을 가리는것을 띄여보시였다.

앞서가던 승용차가 지나가고 그이께서 타신 차가 가까이 가도록 전사는 손을 내리지 않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 전사가 다른 한손으로 솜옷자락에 싼것을 꼭 안고있는데 솜옷안에서 무엇인가 꿈지럭거리는것이였다. 분명 살아있는 짐승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꼼틀거리지 않을것이다.

(저 전사는 무엇을 싸안고있을가?···)

어쩐지 군인생활에서는 전혀 있을법 하지 않는 놀라운 일을 예감하며 그이께서는 차를 세우시였다. 길가에서 주춤거리고있던 전사는 승용차들이 자기의 눈앞에서 멎고있는데 놀라 어망결에 뒤걸음쳐가기까지 했다.

책임부관이 먼저 내려 그에게 다가갔다. 전사는 전조등불빛에 두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그가 묻는말에 무어라고 중얼거리고있었다. 수염터자리에 솜털이 보르르한, 아직 한번도 면도를 대보지 못한 나어린 전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커다란 호기심을 품고 차에서 내리시였다. 그러자 뒤따르던 차에서 최광차수와 군단장 김대웅중장이 내렸다. 그때 책임부관이 전사의 귀가에 대고 무어라고 재빨리 말했다. 아마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를 찾으신다고 알려주는 모양이였다.

전사는 허리를 꼿꼿이 펴며 대렬훈련에서 익힌 규정의 인사를 올리려 했으나 그 순간 자기가 부둥켜안고있는 짐승이 생각난듯 하였다. 불현듯 낯색이 질린 어린 전사가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거리는것이 전조등의 환한 불빛에 드러나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벌써 전사는 솜옷에 싸안고있던 그것을 길섶의 눈더미우에 떨어뜨리며《최고사령관동지!》하고 목메여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대바람에 눈물이 핑 돌아 어깨를 떨며 불쑥 앞으로 나섰으나 그만 솜옷자락에 걸려 비칠하였다. 그 서슬에 솜옷안에서 꿈지럭거리던것이 끙ㅡ 끙 이상한 신음소리를 질렀다.

전사는 극도로 당황해졌다. 오매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장군님을 이렇게 뜻밖에 만나뵙게 되였는데 그놈의 짐승이 애를 먹이게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전사는 그만 울상이 되여 엉겁결에 계속 신음소리를 내고있는 그것을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건 뭐요?》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옛, 저···》하고 전사는 당황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이건 저··· 새끼노루입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새끼노루?!》하고 그이께서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시였다.

《어디 좀 보기요. 응?!》

그이께서는 전사가 부둥켜안은 솜옷자락을 들어보시였다.

《음ㅡ 아주 큰놈이구만.》

그이께서 최광에게로 눈길을 돌리시자 그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주름깊은 얼굴에 웃음을 띄였다.

《옳습니다. 한 대여섯달잡이나 됐을가. 아주 큰놈입니다.》

그이께서 웃으시자 최광도 아주 흥미있어하며 소리없이 웃고 여러 수행원들까지 호기심이 동하여 가까이 모여들었다.

그이께서 또 물으시였다.

《이걸 동무가 잡았소?》

《아닙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이건 저···》

《일없소. 어서 맘놓고 말해보라구.》

《저···》 전사의 얼굴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건 며칠전 우리 정찰소대가 강하훈련을 하다가 잡아왔습니다.》

《강하훈련?》

《예. 하늘에서 갑자기 많은 정찰병들이 떨어져 내리니 엄지와 같이 가던 이 새끼노루가 그만 후닥닥 뛰여달아난다는게 바위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다리를 상했습니다. 엄지는 새끼때문에 먼발치에서 빙빙 돌고있었지만 다리가 상한것을 그냥 둘수가 없어 우리 소대장동지가 안고왔습니다. 그래서 고정근무에 동원된 제가 맡아키우고있습니다.》

《그렇다?!··· 음ㅡ 다리를 상했단말이지.》

그이께서 자세히 살펴보시니 새끼노루의 한쪽다리를 붕대로 감고있었다.

《그런데 이밤중에 이걸 싸안고 어디로 가오?》

《최고사령관동지!》하고 전사는 어느새 어려움도 다 잊고 잰 말씨로 열심히 말씀드렸다. 《사실은 이게 벌써 며칠째 잘 먹지도 않고 앓고있었습니다. 그러던게 오늘 저녁부터 갑자기 다리를 까드라뜨리며 바들바들 떨지 않겠습니까. 꼭 죽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군의소에 안고 갔댔습니다. 거기 가서 주사를 좀 놔달라구 하니까··· 직일군의동지가 막 야단을 치면서 동무, 정신이 있는가, 여기가 뭐 수의방역소인줄 아는가! 하면서 쫓아내는바람에 그만 도로 오는길입니다.》

《음ㅡ 그런 일이 있었군,》

그이께서는 불깃해진 전사의 얼굴을 다정스레 바라보시였다. 자기의 솜옷으로 새끼노루를 싸안고있는 전사, 그의 동그란 두눈에서는 줄곧 애틋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그래 이름이 뭐지?》

《옛, 전사 림정산! 려단직속 정찰소대 대원입니다.》

《나이는?》

《열여덟입니다!》

《음ㅡ》

그이께서는 전사의 어깨를 다정히 안아주며 미소하시였다. 얼마나 좋은 나이인가. 청춘과 피끓는 삶을 그리고 사랑과 위훈을 약속하는 나이, 노래에도 있듯이 리수복영웅의 영원한 삶의 나이 역시 열여덟살이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전사의 고향과 부모들에 대해서도 물으시였다. 그러자 정산은 갑자기 고개를 수그리며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떠듬떠듬 아버지는 하동광산에서 로동자로 일하며 어머니는 부양을 받는다고 대답올렸다.

《그래 아버지한텐 자주 편지를 하나?》

《저···》

정산은 사뭇 고통스러운듯 입귀만 실룩거리고있었다. 무엇인가 차마 말씀드릴수 없어 마음속으로 모지름쓰는 괴로운 표정이였다.

그이께서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는게라고 생각하시였다.

《왜 무슨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게 아니요?》

그이께서 또 이렇게 물으시자 그만 정산은 헉ㅡ 하고 흐느끼듯 하고나서 가까스로 대답올리는것이였다.

《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은지 오랩니다.》

《응?··· 그건 왜?》

《전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결별을···》

《결별?!···》

그이께서는 놀라시였다.

무릇 모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사랑하기전에 먼저 존경하도록 교양받는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가르치고 요구하고 흔히는 아버지라는 가장의 권리로써 엄하게 다스린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간혹 아버지와 결별하는것은 도덕적타락, 사상적대립, 혹은 무서운 죄의식이나 기타의 타협할수 없는 막다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나 없다. 하다면 이 얼굴이 발깃한 전사는 무슨 일로 벌써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결별하였다는것인가?···

《그래 아버지의 이름은?》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저··· 림희문이라고 합니다.》

《림희문?··· 그래 아버진 언제부터 광산에서 일했소?》

《한 10년전부터였습니다.》

《그전엔?》

《금속재료학분야의 연구사였다고 합니다.》

《음.》

찬바람이 불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켠의 최광과 김대웅군단장 등이 벌써 몇번씩이나 팔목시계를 눈가에 가져가고있는것을 느끼시였다. 려단에 《폭풍》구령을 내릴 시각이 되였던것이다.

 

×

 

그때 오영범은 하루의 사업을 마무리하며 지도와 여러가지 서류들을 정리하고있었다. 려단이 수행하게 될 시범도하훈련을 며칠 앞두고있었으므로 생각은 여전히 거기에 가있었다. 군단급이 아닌 총참모부적인 사업으로 조직되였으므로 수많은 무력부의 장령, 군관들이 참가하게 될것이다. 그는 머리속에 천번도 더 새겨넣은 도하장의 지세며 여울목 등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땅크들의 물속통과능력을 다시 또한번 따져보기도 했다.

어데선가 하모니카소리가 울려왔다. 취침전의 즐거운 밤시간, 여럿이 부르는 노래소리와 혀끝으로 멋지게 장단을 넣는 하모니카소리, 이따금 어느 중대교양실에선가 지나치게 높이 틀어놓은 텔레비죤소리가 울려오기도 했다. 무슨 흥미있는 영화를 돌리고있는 모양이다.

영화를 본지도 오래다. 오영범은 자기 방에 있는 텔레비죤도 켜는 일이 드물어졌다. 날이 갈수록 할 일은 많아지고 시간은 부족되기만 했던것이다.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무심코 손을 내밀다가 상급참모부와 직결된 전화였으므로 긴장되였다. 송수화기를 들자 《대동강 50번 듣습니다!》하고 웨치듯 했다. 다음 순간 그는 불을 삼킨것처럼 벌떡 자리에서 뛰쳐일어났다. 단 몇마디의 길지 않은 전화였으나 그것은 전혀 뜻밖에 작전국에서 내린 명령이였던것이다. 그는 명령을 받자 귀전에 대고있던 송수화기를 내던지다싶이하고 려단교환대와 련결된 다른 전화기를 와락 끌어갔다. 그리고는 교환수가 미처 입도 열기전에 《직일관실!》하고 소리쳤다.

곧 려단직일관이 나왔다.

《나 50번이요.》하고 그는 급하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즉시 참모부성원들과 전체 대대들에 전할것. 려단 〈폭풍〉!···》

마지막 그 말은 거의 고함소리에 가까왔다.

《복창하오!》

부대직일관은 벌써 《폭풍》의 구령소리에 불이 당긴 도화선같이 거세게 숨을 내뿜고있었다. 그는 자기네 려단장보다 더 청높은 소리로 명령을 복창하였다.

《좋소, 집행하시오!》

그는 송수화기를 절컥 내려놓자바람으로 철궤를 열고 권총집이 달린 혁띠를 꺼내였다. 어느새 출입문으로 달려가면서 말코지에 걸려있는 철갑모를 쓰고 전투용솜옷을 벗겨들었다.

문을 열고 나서자 복도의 여러군데에서 참모부와 정치부군관들이 달려나오고있었다.

그 어느 부대 구분대들에서나 비상소집구령은 각이한 여러 통로로 순식간에 그물망처럼 뻗어가며 전해지도록 준비되여있다. 어느새 밖에서는 지휘부둔덕우에 올라선 신호수가 비상소집나팔을 불어대고있었다. 빠른 곡조로 엮어진 류랑한 나팔소리가 밤추위에 유리같이 쨍쨍 얼어붙은 대기를 산산이 부시며 골안에 메아리쳐 갔다.

골안 전체가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했다. 병사들이 무기와 장구류를 절컥거리며 병실에서 뛰쳐나오고 사방에서 지휘관들의 구령소리가 돌멩이처럼 날아다녔다.

오영범은 지휘부의 계단을 뛰여내려 차고가 있는쪽으로 달려갔다. 려단장의 운전수는 벌써 차를 몰아오고있었다. 그는 차에 오르며 《1대대로!》하고 구령처럼 웨쳤다.

1대대는 골어귀의 위병소정문쪽에 있다. 1대대가 어떻게 공격출발위치를 차지하는가에 따라 려단의 돌격전개준비가 앞당겨지는가 늦어지는가 하는것이 좌우된다. 1, 2, 3대대는 땅크대대였던것이다.

려단장의 전투용지휘차는 골어귀를 향해 질풍같이 내달렸다. 오영범은 짧은 한순간 어떻게 되여 려단의 도하훈련이 앞당겨졌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작전국에서 왜 그것을 단 1분의 여유도 없이 정시 정각에야 알려주었는지 그것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전에 비스듬히 암시만 했더라도 이렇듯 급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순간순간이 빛살처럼 흘러갔다. 굽인돌이를 지날 때마다 차의 한쪽바퀴가 지치러들면서 위태롭게 기울어지군 하였다. 그러면 전조등의 불빛도 시꺼먼 골안을 이쪽저쪽으로 휘딱휘딱 뒤번지며 앞질러 갔다.

갑자기 삐ㅡ익! 하는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차가 멎었다. 여러대의 승용차들이 앞에 멎어서있는것이였다. 밝은 전조등불빛에 눈이 부셨다. 오영범은 제일 먼저 군단장 김대웅중장을 알아보았다. 차에서 뛰여내리자바람으로 거수경례를 붙이며 다가가는데 그가 다급히 속삭이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셨소!》

《예?!》

한순간 그는 말뚝처럼 박혀버리고말았다. 무엇인가 심장 한끝을 쿡 찌른듯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시다니?!··· 다음 순간 그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총참모장과 나란히 서계신것을 보았다. 그이께서는 길가에 서있는 한 전사와, 무엇인가 잔뜩 붙안고있는 나어린 전사와 마주서계시였다. 그는 두눈을 때리는 전조등불빛을 향하여 거수경례를 붙이고 힘찬 정보로 걸어나갔다. 눈부신 그 불빛속에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계시였던것이다.

《아, 오영범동무!》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를 돌아보며 반갑게 손을 드시였다. 그러나 그는 제식대로 발뒤꿈치를 딱 소리나게 모으고나서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규정의 보고를 시작했다.

《최고사령관동지! 조선인민군 제97기계화보병려단은 전투비상소집훈련에 들어갔습니다. 려단장 소장 오영범!》

《쉬엿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갑자기 얼굴이 해쓱해진 나어린 전사쪽으로 시선을 돌리시였다.

《이 전사동무가 려단장이 나타나자 낯색이 달라지는데 웬일이요? 혹시 〈오발파〉가 너무 무섭게 다궂는게 아니요?》

오영범이 입도 벌리기전에 먼저 전사가 울상이 되여 가늘게 부르짖었다.

《아닙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전··· 그저···》

그 전사가 무엇을 말씀드리고저 한것인지 잘 알고계신 그이께서는 미소하시였으나 오영범은 사납게 량미간을 찌프리였다.

그 나어린 전사가 어떻게 되여 여기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현지지도의 걸음을 지체시켰는지 어인 일로 다리를 싸맨 새끼노루를 안고 부들부들 떨고있는것인지 아직도 다 알지 못하고있는 오영범이였다.

그때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영범려단의 훈련모습을 보고싶어 왔다고 하시며 《어떻소, 만단의 준비가 돼있겠지?》하고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하고 오영범은 자기의 널직한 잔등으로 나어린 전사를 가리우며 힘차게 대답올렸다. 《지금 전체 려단이 〈폭풍〉구령을 받고 기동을 시작했습니다. 곧 려단의 야간전투훈련모습을 보여드릴수 있습니다!》

《좋소. 가봅시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순간 오영범은 등뒤로 머리를 홱 돌리며 어쩔바를 몰라 허둥거리고있는 전사에게 낮게 그리고 무섭게 속삭이였다.

《자기 위치로 갓, 빨리!》

그러자 전사는 《알았습니다!》하고 숨가삐 속삭이고나서 마치 오영범의 세찬 입김에 불리워 날려가듯이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리고말았다. 그때에야 오영범은 몰아쉬고있던 숨을 내뿜으며 총참모장과 군단장 등에게 규정의 인사를 하였다.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려단장동문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부대를 지휘하시오.》

《알았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오영범은 다시 힘있게 거수경례를 올리고 자기 차있는데로 달려갔다.

벌써 골안에서는 발동기들의 세찬 우르릉소리가 우뢰소리처럼 울려오고있었다. 각종 땅크, 자동포, 수륙차, 장갑차 등 현대적무장장비를 그쯘히 갖춘 기계화보병려단이 공격출발진지로 기동을 시작한것이다. 땅이 울리고 대기가 흔들리고 얼어붙어버렸던 겨울밤이 산산이 부서져나가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