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6

제 1 편

6

 

문선규일행이 평양역사에 내렸을 때는 새벽이였다. 두대의 승용차가 그들을 마중나와있었다. 문선규는 장운성을 불러 자기 차에 오르게 하고 원자력공업부 실무일군들은 다른 차로 떠나도록 했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멀었다. 특별한 사정으로 집을 나섰을 사람들과 렬차에서 금시 내린 손님들이 궤도전차나 뻐스정류소쪽으로 흩어져갈뿐 대통로 저 한끝까지도 거의나 인적이 없었다.

아빠트의 창문들에서는 금시 동자질을 시작한 녀인들의 그림자가 얼씬거렸다. 불과 몇사람만을 태운 첫 궤도전차가 급행렬차와 같은 속도로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불이 환한 차창들이 언뜻거리며 눈앞을 지나가자 승용차는 창광거리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때에야 문선규는 운전수가 자기집쪽으로 차를 몰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곧장 청사로 가기요!》

《예.》

운전수를 대신하여 장운성이 대답했다.

승용차가 좀더 앞으로 나가자 문선규는 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왼쪽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아빠트 7층에 그의 집이 있다. 그런데 유독 그의 집에서만 아직 불을 켜고있지 않다. 웬일일가?··· 이미 승용차는 방향을 바꾸었고 그는 시야에서 그것을 놓쳐버렸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은것은 아닐가?··· 말이 적고 온순하고 늘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 안해, 아빠트에서 제일 먼저 불을 켜고 제일 늦게 불을 끄는 안해였다.

아무리 깊은 밤중이라도 남편이 들어오기전에는 절대 자리를 펴고 눕지 않았다. 혹간 문선규가 집에 알리지 않고 출장을 가면 장밤 한자리에 앉아 무릎우에 머리를 떨군채 새벽까지 기다리군 하였다. 그러지 말라고 몇번 말했어도 그저 조용히 웃어버릴뿐이였다. 그것은 결코 그 어떤 의무감에서 출발한 맹목적관습이 아니라 본래 성정이 그러했기때문이였다. 처녀시절에도 그러했었다. 사회안전부의 한 통신초소에서 근무하던 그 시절의 김성희, 그를 알게 된것은 어느 한 철길공사장에서였다. 어언 30년세월이 흘러간 60년대초의 일이다.

그때 대학생이였던 문선규는 방학기간을 철길공사장에서 보내고있었다. 쾌활하고 롱질이 세찬 편이였던 그 시절의 문선규의 눈에 비친 김성희는 그저 일밖에 모르는 복스럽게 생긴 한 처녀지원자였을뿐이였다. 속보에도 별로 난것 같지 않다. 흔히 온화하고 부끄럼 잘 타는 처녀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이다. 특히 건설장에서는!··· 아마도 그것은 들끓는 전투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처녀들, 웃고 떠들기 좋아하고 성미도 걸싼 처녀들의 소란스러운 인상에 가리워 빛을 잃기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의 성희는 그런것에는 아무 미련도 없는듯 여전히 조용히 제 할일만 했다. 궂은 일, 마른 일 가리지 않았고 남들이 다 쉬는 때에도 식당일을 돕거나 벌찬 남자들의 빨래를 한버치씩 안고 나가군 했다. 그러던 어느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 처녀 성희가 눈석임물로 불어 난 얼음같이 찬 강물에 뛰여들었던것이다. 얼마후에야 알게 되였지만 그때 강기슭에서 빨래를 하고있던 성희는 그만 누군가의 내의가 강물에 떠내려가는것을 뒤늦게야 발견하고 정신없이 그것을 쫓아갔다고 한다. 얼음장이 둥둥 떠가는 강물은 점차 깊어지면서 금시 처녀를 휩쓸어버릴듯 했다. 사람들이 놀라 사방에서 달려왔다. 어서 빨리 나오라고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그러나 성희는 두터운 얼음장에 떠박질리우면서도 끝내 빨래를 건져내고야 말았다. 중대장이 달려와 성이 나서 고함쳤다.

《동무 정신이 있소? 그따위 빨래가 다 뭐요, 응? 그러다 죽자구 그래?!》

그것은 그저 고함소리인것이 아니라 억이 막힌 울부짖음소리같았다. 처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젖은 빨래를 꼭 껴안은채 와들와들 떨고만 있을뿐이였다. 그때 문선규는 처녀를 둘러싼 사람들속에서 놀라운 심정으로 처녀의 그 두눈을, 겁에 질린듯 얼어붙은 땅바닥에 줄금줄금 떨어져내리는 물방울만 보고있는 그 순진하고 애처로운 두눈을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언제나 말없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해오던 그 처녀를 새삼스럽게 보고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어느덧 방학이 끝나 문선규는 대학으로 돌아왔고 다시금 학업에 몰두하였다. 언제나 학과실력에서 첫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그였던것이다. 그 처녀도 곧 잊혀졌다. 어떤 우연만 아니라면 영영 그렇게 잊고말았을것이다.

4년세월이 흘렀다. 자기 직무에 극성인 문선규는 가정을 이룰 생각도 잊고있는듯 했다.

녀동생이 먼저 시집을 갔다. 어느날 시안전국에서 일하는 매부가 그를 찾아와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형님, 형수될 사람을 골라봤는데 보시우.》

문선규는 물론 코웃음쳤다.

《무슨 쓸데없는 소리!》

《아, 형님, 그저 보기만 하라는데!》

검질긴 매부를 당해내는 수가 없었다. 그가 내밀어준 사진 넉장을 대충 훑어보면서 하나하나 도로 넘겨주었다. 네번째 사진마저 그렇게 넘겨주려다가 그만 다시 들여다보았다. 가만, 낯익은 처녀인데 어데서 봤더라?!··· 매부가 소리쳤다.

《형님 왜 그러시우. 이건 다 한사람인데!》

《?!···》

한순간 어떤 기억이 머리속에서 번개쳤다. 웃고있는 그 얼굴, 웃는다기보다 꿈을 꾸는듯 조용히 미소를 띠고있는 그 얼굴, 얼음장에 떠박질리우면서도 끝내 빨래를 건져내던 그 처녀··· 순간 그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준것은 무엇이였던가. 뜻하지 않게 다시 보게 된 그 낯익은 모습에 대한 반가움이였던가, 놀라움이였던가, 기쁨이였던가 아니면 혹시···

차가 멎었다. 어느덧 외교부청사앞에 이른것이다.

시간은 빨리도 흘렀다. 문선규는 핵상무조성원들인 순회대사 최우정, 국장 장운성, 과장 김수일 그리고 조국에 와있는 유엔주재 부대표 허송 등과 함께 진지한 토론을 거듭하였다. 지금 유럽에 가있는 김세환참사도 포함하여 지난해에 조직된 이 핵상무조야말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후일 《나의 정예팀》, 《외교부의 두뇌진》이라고 높이 평가하신 전투조로서 첫걸음부터 긴장한 사업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오랜 세월 대적투쟁의 제일선에서 헤아릴수 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게 될것인지, 그 길에서 얼마나 큰 환희와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될것인지 다는 알지 못하고있었다. 지금 그들은 핵대결전의 첫단계에서 국제원자력기구 2월관리리사회라는 심각한 전투를 준비하고있었다.

드디여 문건준비가 다 끝났다. 회의에서 할 연설문들, 검증자료, 기자회견, 기구내 일부 불순분자들을 제압하고 지지자, 동정자들과 할 사업 등도 빈틈없이 준비되였다. 그런데 이 문건들을 연구하고 우리 대표단을 이끌고 가야 할 김세환참사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일정대로 하면 김세환일행은 브라찌슬라바에서 기차로 모스크바를 향해 가는중이겠는데··· 그간의 사업과 활동에 대한 보고가 왜 아직 오지 않는지, 혹시 무슨 일이 생긴것이나 아닌지 하는 불안이 떠나지 않았다.

문선규는 장운성국장에게 말했다.

《즉시 쁘라하에 전보를 쳐서 김세환참사의 보고가 왜 늦어지는지 알아보도록 하시오.》

《예,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전보문이 적힌 종이를 내밀며 장운성이 하는 말이였다. 문선규는 매사에 빈틈이 없고 치밀한 그를 믿음이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소리없이 문이 열리며 서기가 들어왔다. 문선규는 급히 물었다.

《쁘라하에서 온 소식이요?》

《저···》 서기가 난처해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쁘라하에선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이건 국제원자력기구 총국장이 방금 텔렉스로 보내온 전문입니다.》

《기구총국장이?··· 봅시다!》

그는 단숨에 전문을 읽었다. 차츰 그의 눈길이 꼿꼿해졌다. 성급하게 안경을 바로잡으며 또 한번 전문을 훑고나서 그것을 내던지다싶이 했다. 참을길 없는 분노에 그의 얼굴은 불깃해지고있었다. 이윽고 그는 책상우에 던져버렸던 전문을 핵상무조성원들에게 밀어주었다.

《보시오, 기구총국장이 뭐라했는가!》

국자원자력기구 총국장 한스 블릭스는 전문에서 이번의 2월관리리사회에서 우리의 두개 군사대상에 대한 《특별사찰》이 결단코 《결의》되리라는것, 따라서 《귀국대표단이 그것을 수용하는 답을 가져오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였다. 만일 그것이 거부될 경우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것이며 《국제적제재》를 면치 못할것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가소로운짓이다. 국제기구의 한 책임자로서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삿대질이다. 전문을 읽은 핵상무조성원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특히 한스 블릭스와 직접 회담을 하면서 우리의 변함없는 립장에 대하여 오금을 박은바있는 장운성은 격하여 부르짖었다.

《어떻게 이럴수 있는가. 기구것들이 이렇게까지 오만무례해지다니!》

문선규는 서랍을 열고 담배갑에서 한대 뽑아들었으나 도로 밀어넣고말았다. 한스 블릭스, 그는 언제부터 미국의 하수인으로 되여버렸는가?··· 공정성을 절대의 기준으로 삼는 진정한 외교관이라고 우쭐대던 그가?···

문선규는 1991년 유엔총회에 참가하고 돌아오던 길에 오지리의 수도 윈에 들려 그와 만났던 일을 회상하였다. 한스 블릭스가 한번 꼭 만나고싶다 하여 우정 시간을 냈던것이다. 그때 그가 문선규를 기어이 만나려 했던것은 당시 우리 나라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하고도 조약에 가입한후 1년 6개월이내에 핵담보협정을 체결하고 사찰을 받게 되여있었지만 계속 그것을 미루어왔으므로 그들이 안달복달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날 문선규는 윈의 서쪽 베크만 카쎄거리에 있는 우리 대표부로부터 차를 타고가면서 어떻게 하면 그들의 부당한 요구를 일축하고 조약에 가입한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겠는가 하는것만을 줄곧 생각하였다.

대표부로부터 기구청사까지는 약 20㎞, 자동차로 30분쯤 걸린다. 동행한 오지리주재 우리 대사가 고색창연한 윈의 거리풍경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는 거의나 귀담아듣지 않고있었다. 유명한 마리아 떼레자궁전이며 모짜르트동상, 대통령궁전과 국회청사, 시청사들이 시창밖으로 흘러갔다.

두나이강다리를 건느자 기구청사가 나타났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유엔공업개발기구(유니도)와 함께 21층으로 된 한 청사를 갈라쓰고있었다,

1층홀 안내소앞에 기구부총국장과 대외부장이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외교적인사를 나눈 다음 같이 승강기를 타고 20층까지 올라가 총국장실로 들어갔다. 기구총국장 한스 블릭스가 서기실에까지 마주나와 정중하게 그를 맞이하였다.

그는 주의깊게 기구총국장을 관찰하였다. 스웨리예인인 한스 블릭스는 미국과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철학박사, 법학박사의 학위를 받은후 스웨리예 외무성의 법률고문, 국무비서를 거쳐 외무상까지 한 경력을 가진 전형적인 외교관이였다.

외교술이 능한 한스 블릭스 역시 조선의 외교사절들을 좌석에 안내하면서 주의깊이 문선규를 살피고있었다.

그러나 그때 문선규는 그가 무엇때문인지 약간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는것을 간파하였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한 이래 몇해째나 계속 문제의 핵담보협정에 서명하지 않는 강경한 나라의 외교관을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눌러놓을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는듯 하였다.

자리에 앉자 문선규는 기구총국장이 입을 열기전에 먼저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번에 우리에 대한 기구의 부당한 압력에 엄중히 항의하려고 왔습니다.》

《?!···》

한스 블릭스는 대번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들은 아직 의례적인 인사말도 미처 나누지 못했던것이다. 그것은 외교관례상 류례가 드문 일이였다.

문선규는 그가 미처 말귀도 고르기전에 또 들이대였다.

《기구는 어째서 우리에게 차별적인 협정문을 보냈습니까. 그리고 거기에 수표하라고 계속 압력을 가하는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아, 가만가만··· 이거 너무 급작스러워서··· 좀···》

한스 블릭스는 재빨리 생각을 굴리는것 같았다. 그는 문선규의 이 단도직입적인 공격에 어떻게 대처할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했던것이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에 느슨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히려 그편이 더 낫지 않을가 하고 생각하였을것이다. 판에 박은 서두의 인사치레야 무슨 대수겠는가. 그가 강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정정당당한 사람이라면 지루하고 묻기 거북한 긴 설명이 필요되지 않는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흔히 직방 본론에 들어가는 법이다.

《좋습니다. 아주 흥미있습니다.》하고 그는 재빠른 말씨로 말했다.《어서 말씀하십시오. 시작이 마음에 듭니다.》

문선규는 여전히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의 립장에 대해서는 지난해 우리 조약국장이 와서 상세히 밝혔습니다. 그때 우리 조약국장이 기구와의 협상에서 담보협정체결을 위한 조건과 환경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예, 생각납니다. 조건과 환경문제!···》

《그런데 어떻게 되여 기구는 우리에게 차별적인 협정문을 보냈습니까. 우리가 국제법규들에 무식하고 자기의 존엄도 지킬줄 모르는 숙맥으로 알았습니까?》

그가 말한 차별적인 협정문이란 핵전파방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들에나 적용되는 문건으로서 핵시설과 설비들까지 다 통제할것을 목적한것이였다. 조약가입국들은 핵물질에 대한 사찰만 받게 되여있었으므로 문선규는 그에 대해 강하게 추궁한것이였다.

한스 블릭스는 장대한 체구를 움쭉거리며 연방 두손을 쩍 벌려보이군 했다.

《그것은 정말 우연적인 실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그의 이 말에 문선규는 랭소를 띠였다.

《실수라구요? 아니 그것은 의도적인것이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를 중떠보려는 시도라고밖에 달리는 볼수 없었습니다.》

《아아 이런!···》하고 그는 바빠맞아서 얼굴이 벌개졌다. 《실수했습니다. 실수! 우리 일군들의 잘못으로 그렇게 되였던것입니다. 나는 귀국에서 항의해올 때까지 그것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늦게나마 귀국정부에 사죄편지도 보내지 않았습니까. 외교부장앞으로 보낸 그 편지말입니다. 받아보셨지요?··· 그래 그것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문선규가 딱딱하게 잘라 말하자 한스 블릭스는 또 두팔을 쩍 벌려보였다.

《그밖에 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도대체 어떤 담보가 또 있어야 하는가말입니다.》

그리하여 문선규는 때를 놓치지 않고 들이대였다. 담보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남조선에서 핵무기를 철수하고 우리에 대한 핵위협을 제거하는것이다. 우리가 조약에 가입한것도 바로 그때문이다. 그런데 기구는 계속 담보협정에 서명할것만 강박하고있다. 기구는 이제라도 우리에게 압력을 가할것이 아니라 미국의 핵위협을 제거하는데 도와나서야 할것이다. 미국을 심판석에 끌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자 한스 블릭스의 굳어졌던 얼굴이 점차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날카로운 공격의 창끝이 자기들에게가 아니라 미국에 향해진것을 알고 통쾌해하는듯 했다.

《아, 아, 알만합니다. 아주 좋습니다. 귀국정부의 의사를 솔직하게 말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어 그는 소리없이 웃으며 슬쩍 이렇게 물었다.

《귀국의 외교관들은 다 그렇게 직통배기입니까?》

문선규가 반문했다.

《왜, 그것이 마음에 안듭니까?》

《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솔직하고 아주 명백한게··· 대단히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 외교라고 하면 좋겠는지···》

문선규는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흔히 사람들은 어느 한 나라의 외교를 특징지을 때 그 나라의 저명한 외교관들의 이름 및 그 성격적특질과 결부시키군 했다. 례하면 딸레랑에 의한 프랑스식 웅변과 설득외교, 비스마르크식 도이췰란드의 철의 외교, 쳐칠식 영국의 타산외교, 마쯔오까식 일본의 간계외교, 몰로또브식 이전 쏘련의 침묵의 고압외교··· 하다면 우리 당의 자주외교는 무엇으로 특징지을수 있는가?··· 두말할것 없이 그것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지략과 담력에 시원을 둔 맞받아나가는 공격외교이다.

물론 이것은 문선규의 마음속 생각일 따름이였다. 그는 느슨한 미소를 띠우고있는 한스 블릭스를 눈여겨보며 공격을 늦추지 않고 계속하였다.

우리는 기구가 공정성과 진리성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서있다. 기구가 발을 헛디디면 만회할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

한스 블릭스가 물었다.

《발을 헛디딘다는 당신의 표현을 어떻게 리해하면 좋을지?》

문선규는 그것이 미국에 편승하여 그의 꼭두각시가 되는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 그럴리야!》하고 한스 블릭스는 재빨리 말했다.

《기구는 그 어떤 특정한 나라의 부속물이 아니니 절대 안심하십시오. 구약성서의 〈시편〉에 이런 시구절이 있지요, 〈예루살렘이여, 내 만약 그대를 잊는다면 내 손을 짓조겨주사이다.〉 나는 그것을 〈공정성이여 내 만약 그것을 잊는다면 내 손을 짓조겨주사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때로부터 2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이 1991년 남조선으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했다고 발표하고 《팀 스피리트》핵전쟁연습도 그만둔다고 했으므로 담보협정에 서명하고 사찰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지난해 우리 나라에 온 한스 블릭스는 문선규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에 대한 다섯차례의 사찰결과에 대해 《아주 만족하며 높이 평가한다.》고 했으며 《이번 기회를 통하여 조선의 과학자, 기술자들이 자립적원자력공업을 창설하는데서 이룩한 성과에 경의를 표한다.》고까지 했다. 돌아가는 도중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회견때에도 그의 태도는 매우 호의적이였다. 그때 어느 한 서방나라 기자가 《당신이 북조선방문기간 녕변에 있는 핵시설과 설비들을 다 보았다고 하는데 거기서 핵무기를 생산하는 기미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가?》하고 묻자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북조선에서는 순수 평화적목적을 위해 핵개발사업을 하고있었다.》고 자신있게 대답했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말부터 갑자기 미국이 제공한 그 무슨 《정보자료》요 뭐요 하면서 소동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제는 무례한 삿대질까지 꺼리지 않고있다. 《공정성이여, 내 만약 그것을 잊는다면.》하고 통속극의 배우처럼 두팔벌려 읊조리던 한스 블릭스, 그 역시 미국의 시녀로 전락되고말았는가?!···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외교부장이였다. 외교부장은 례의 그 담담한 목소리로 국제원자력기구 2월관리리사회 회의에서 우리 대표단이 수행하게 될 사업과 관련한 문건준비가 다 끝났는가고 물었다. 그 문건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올리기로 되여있었던것이다.

《예, 다 준비되였습니다.》하고 문선규는 대답했다. 《곧 가지고 가겠습니다.》

외교부장은 문선규가 가져온 문건을 주의깊게 두세번 읽고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수고했습니다. 나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회의에서 할 우리 대표단단장의 연설내용이 론거가 명백하고 분석이 예리한것이 마음에 듭니다. 곧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드립시다. 그런데··· 여기에 관리리사회 유럽성원국들의 동향자료도 같이 보고드리면 좋겠는데 김세환참사동무한테선 소식이 있습니까?》

《어제까지는 소식이 있었는데 웬일인지 마지막 로정인 체스꼬일정에 대한 보고가 아직 오지 않고있습니다.》

《?!···》

외교부장도 저으기 놀라는 표정이였다. 다년간 외교활동에 종사해온 침착하고 용의주도한 김세환의 일솜씨와 정확성을 잘 알고있는 그였던것이다.

《가만.》하고 외교부장이 문득 생각난듯 말했다.

《마지막 로정이 어디라구요?》

《예, 브라찌슬라바에서 렬차로 모스크바를 향해 가기로 되여있습니다. 지금 아마 그 나라 국경을 통과했을것입니다.》

《가만, 가만··· 브라찌슬라바라니 ?··· 좀전에 그곳에서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브라찌슬라바ㅡ모스크바행 렬차에서 우리 일군들에 대한 폭행사건이 있었다던데 혹시···》

《예?》

문선규는 저도모르게 주먹을 꽉 틀어쥐였다.

《분명 우리 나라 대표단이라고 했습니다.》하고 외교부장은 탁상일력에 적어넣은 글줄을 눈여겨보며 계속했다. 《남조선 안기부놈들이라고 짐작되는 사나이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랍치하려 했다고 합니다. 국제렬차에서는 보기드문 폭행사건이라고 하던데 우리 참사일행을 노린게 아닌지··· 빨리 그 전말을 알아보라고 했으니 소식을 기다려봅시다.》

《···》

어느새 문선규의 낯빛은 어두워지고있었다. 김세환일행이 떠나갈 때 최근의 정세발전에 비추어 각별히 조심하며 일체 일정을 비밀에 붙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했어도 설마 이런 일까지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였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의 증대되는 압력에 편승하여 인제는 남조선괴뢰들까지 미쳐날뛰고있다. 이것은 우리의 핵문제가 예상외의 치렬한 투쟁으로 번져지리라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좋다!) 하고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격렬한 투쟁을 벌리자. 우리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책동을 만천하에 폭로단죄하자. 2월관리리사회 회의를 치렬한 투쟁무대로 만들자!)

그는 한시바삐 자기들이 준비한 문건을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보고드리고싶었다. 가능하면 자기가 직접 가지고가서 보고드리고싶은 생각이였다. 그러나 외교부장은 가볍게 머리를 저으며 나직이 말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지난 밤에 현지지도의 먼길을 다녀오시고도 지금 중요한 군사회의를 지도하고계신다고 합니다.》

그는 잠시 손가락으로 책상한끝을 톡톡 두드리더니 힘들게 말을 이었다.

《1부부장동무, 아직 집에는 들려보지 않았지요?》

《예, 역에서 곧장 여기로 오다보니···》

《어제밤 1부부장동무가 없는새에 부인이 병원에 실려갔습니다.》

《예?》

《병이 몹시 중하다고 하더군요. 담낭열줄기염증이라던지··· 아니 여태 그걸 모르고있었습니까?》

그는 대답을 못했다. 버릇처럼 안경을 밀어올리며 못박힌듯 서있을뿐이였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언제 한번 누워있는걸 보지 못했는데?··· 이따금 병색이 짙은 안해의 얼굴을 놀라서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안해는 스스럼없이 웃으며 감기라거나 사소한 몸살 정도라고 말하군 했었다. 그런데 그토록 병이 중해졌다니?··· 어느덧 태양이 높이 솟아 맞은편 인민대학습당의 창문들이 해빛에 번쩍이고있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마음은 어수선했고 눈확언저리엔 어두운 그늘이 비끼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