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2

제 1 편

2

 

역두에는 오영범의 승용차가 나와 기다리고있었다.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서천강으로!》하고 짤막하게 말했다. 그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운전수는 아무말없이 려단지휘부와는 정 반대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래도록 한마디 말도 없이 갔다. 길이 험하여 차가 들출 때마다 오영범은 시꺼먼 눈섭을 흠칫거리며 어둠속에서 휙휙 지나가는 앙상하고 성깃성깃한 백양나무들만 내다보고있었다. 그는 군단지휘부에서 중요한 과업을 받고 오는 길이였다. 그에 의하면 얼마후 오영범의 기계화보병려단이 시범도하훈련을 진행하게 되여있었다.

《오동무, 이번 훈련을 잘 준비해야겠소.》하고 군단장 김대웅중장은 말했다. 《동무네 려단의 도하훈련을 통하여 앞으로 있게 될 군단기동훈련의 성과여부가 판정될것이요. 총참모부에서 관심하는 시범훈련이라는걸 잊지 마오.》

작전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 오영범려단의 도하훈련에 관심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범훈련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가 부여되고있는가를 잘 알수 있다. 특히 이해 1993년에 들어서면서 적들이 《팀 스피리트 93》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고 지금 한창 신형 전투기들과 함선, 각종 핵타격수단들을 끌어들이고있는 엄중한 정세하에서 조직된 이번 훈련은 그 무슨 단순한 《시범》이나 《판정》만이 아닐것이다.

오영범은 도하훈련이 진행될 여기 강기슭을 손금보듯이 알고있다. 벌써 몇차례 련합부대내 지휘관참모부성원들과 같이 현지를 밟아보고 면밀한 훈련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때는 총참모부에서 중시하는 《시범훈련》이 되리라는것을 알지 못하였었다. 오늘 이렇게 새로운 과업을 받고보니 혼자서라도 다시 도하훈련장을 돌아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었다. 혹시 미리 예견하지 못한것이라도 있지 않을가?··· 더우기 야간에 진행될 훈련이므로 밤에 돌아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다.

차가 또 세게 들추었다. 운전수가 오영범쪽을 슬쩍 곁눈질했다.

길이 나빠서 어쩔수 없는 일이건만 자기의 불찰로 차가 들추는것처럼 민망스러워하는 표정이였다.

《지름길로!》 오영범이 말했다. 《속도를 높이오.》

《알았습니다.》

승용차는 생소한 지름길로 들어서 휘우듬히 뻗어간 좁은 길로 한참 달렸다. 얼마후 강기슭에 면한 큰길에 나섰는데 한순간 전조등의 불빛에 비쳐진 리정표가 오영범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운전수쪽으로 피끗 머리를 돌렸다.

《가만, 이제 거기에 뭐라고 써있었소?》

《신정리 2㎞라고 씌여있었습니다.》

《그ㅡ래?》

오영범은 《신정리 2㎞라···》하고 속으로 곱씹어보았다. 바로 그 신정리에 그의 옛 상관이며 입당보증인인 김윤필이 살고있다.

언제부터 한번 꼭 찾아보리라 생각했지만 여직껏 한번도 짬을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마침 이렇듯 가까이 그 마을을 지나게 된것이다.

어떻게 할가. 잠간 들렸다 갈가?··· 갑자기 들이닥치면 아마 김윤필은 깜짝 놀랄것이다. 아니 이게 뉘긴가, 오영범이 아닌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불쑥 나타났나!··· 하면서 부산을 피울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닭의 모가지를 비틀며 병마개를 열어 고뿌에 찰찰 넘어나게 부을 시간까지는 낼수 없다. 그저 담배나 한대 태우며 마주보고 찌긋이 웃으면 되지 않을가?!···

《고새 좀 늙었군요. 》

《어찌겠나. 세월이 가는걸··· 헌데 임잔 벌써 장령이 됐구만. 응?!》

《미안합니다. 이제야 찾아와서.》

《반갑네. 이사람 정말 기쁘이!》

그리도 반가와할 김윤필의 얼굴을 그려보느라니 도저히 그대로 지나칠수는 없을것 같았다. 오늘 미루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수도 있다. 오영범은 멀리 희미한 불빛들이 가물거리는 마을쪽을 바라보았다. 저 마을일가. 아니면 좀더 가야만 할가?··· 그는 좌석등받이에 천천히 머리를 기대였다.

김윤필은 오영범이 신입병사훈련을 마치고 처음으로 배치된 공병구분대의 중대장이였다. 전쟁참가자인 그는 오영범이 열여덟살나던 그해 벌써 마흔고개에 이르고있었다. 전쟁때 그와 함께 싸운 전우들은 다 련대급이상에서 중좌, 상좌, 대좌의 별들을 달고있었지만 그만은 여전히 중대장 대위였다.

그 시절 오영범은 련합부대적으로 제일 나이많은 중대장인 그를 존경한다기보다 오히려 련민의 정으로 측은하게 본적도 있었다. 무엇때문인지 그는 승급도 바라지 않았을뿐아니라 제대되는것도 원하지 않았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군단간부과에서 여러번 그와의 제대담화를 연기하였는데 그것은 그의 경험과 기술을 대신할만 한 사람이 없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공병은 그를 필요로 했고 또 그는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 김윤필이 오영범에게 오직 성실한 땀과 노력을 바쳐야만 하는 공병의 의무와 량심에 대하여 그리고 각종 축성차단물 설치와 폭파기술 등을 배워주었다. 그는 공병이란 바로 《군복입은 근로자》라고 하면서 그의 임무는 《건설하고 파괴하는》것인바 《든든히 건설하고 철저히 파괴》하는 법을 배울 때 진짜 공병이 되는것이라고 말하군 했다.

그는 오영범이 자기의 동년배들보다 훨씬 더 완강하고 배짱이 있는것을 보고 그야말로 타고난 공병중대장감이라고 하면서 각별히 관심해주었다. 물론 호된 추궁과 가슴아픈 《매질》도 있었다.

그러한 남다른 사랑과 관심이 있어 오영범은 벌써 스물두살때 공병소대장으로 제발되였다.

제일 기뻐한것이 김윤필이였다. 저녁때 집으로 잡아끌기에 따라가보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있었다. 군관사택마을에서 음식솜씨가 제일 좋다는 그 집 주부가 목이 기다란 병도 꺼내놓았다. 그날 김윤필은 오영범을 축하하면서 이제 그에게 중대를 인계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이제 두고보라니.》하고 그는 우겼다.《머지 않아 나도 제대명령서를 받게 될게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해에 애젊은 소대장 오영범이 전군단을 들었다놓은 일을 《저질렀다》. 그것은 며칠째 쏟아지던 폭우가 금시 멎은 8월의 어느날, 바야흐로 군단기동훈련이 한창인 때에 있은 일이였다.

그날 중대장 김윤필은 림진강우안에서 배다리부설전투를 지휘하였고 3소대장 오영범은 강좌안에서 배다리로부터 큰길까지 강기슭의 산턱을 깎아 길을 내는 일을 맡아했었다. 전체 중대가 밤새 폭우속에서 간난신고를 하여 맡은바 임무를 다 해냈다.

아침이 왔다. 비는 멎었으나 홍수로 불어난 강물은 사품치며 흘렀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공병중대는 강 우안과 좌안에 갈라져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그들이 죽기내기로 애써 부설한 배다리우로 땅크와 포차들이 육중한 몸체를 움씰거리며 건느고있었다.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오영범의 소대가 맡은 구간에서 산사태가 나면서 새로 낸 비탈면의 외통길을 뭉청 끊어놓았던것이다. 며칠째 계속된 폭우로 물을 잔뜩 먹고있던 산중턱이 그만 무너져내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일 앞서가던 땅크 한대가 그 끊어진 구뎅이속에 굴러들어갔다. 사람들이 왁작하니 떠들며 거기에 몰켜들었다. 꼬리를 물고 배다리우에 올라서던 포차들이 다 멎었다. 뒤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운전수들이 련속 빵빵 경적소리를 울리며 독촉하였다.

홈타기에 굴러들어간 땅크가 모지름을 쓸 때마다 시꺼먼 배기가스가 쓸어나오군 했다. 그러나 어림없는 일이였다. 뒤따르던 땅크에 쇠바줄을 걸고 무한궤도로 땅을 물어뜯으며 용을 썼지만 오히려 깊이 패운 홈타기속으로 점점 더 구겨박힐뿐이였다.

오영범은 강우안의 김윤필중대장에게 벌어진 일을 전화로 알렸다. 그러자 김윤필은 《뭐요, 땅크가?··· 제ㅡ길, 난사로군. 내 이제 그리로 건너가겠소.》하고는 송수화기를 내던지는듯 했다. 그러나 그가 포차들이 가득 늘어선 배다리우를 건너올 때까지 기다릴수는 없었다. 오영범은 자기 소대원들을 모이게 했다. 지난밤 억수로 퍼붓는 비속에서 눈 한번 붙여보지 못한 그들이였지만 또 비지땀을 흘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땅크를 끌어낼수 있게 하려면 산기슭을 따라 10여m나 더 경사지게 깎아야 했다.

여러명의 구분대지휘관들이 오영범을 따라다니며 물었다.

《여보, 공병! 얼마나 걸릴것 같소?》

오영범은 물에 흠씬 젖은 군복자락을 쥐여짜면서 건성으로 대꾸했다.

《한 둬시간이면 되겠지요.》

《뭐ㅡ요?》

여러 사람이 일시에 웨쳤는데 그중에서도 포병소좌의 목소리가 제일 높았다.

《여보, 정신이 있소? 그럼 우린 두시간동안이나 여기서 멍청하니 있으란말이요?!》

《소리치지 마십시오. 소좌동지!》하고 오영범은 감때사나운 눈빛으로 먼저 그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러지 말고 다들 달라붙어 우리 일이나 거들어주십시오.》

그때였다. 누군가 상급참모부에서 찾는다면서 그를 데리고 갔다. 포차들사이에 끼운 승용차에 타고있던 상좌가 그에게 무선전화기를 내밀었다.

《군단참모장동지가 동물 바꾸라오.》

오영범은 일이 심상치 않게 번져지리라는것을 예감하고 말라터진 입술을 감빨았다. 군단참모장이라면 명령집행에서 한치도 에누리를 허용치 않는 엄격하고 치밀한 상관으로 잘 알려져있었던것이다.

오영범이 무선전화기를 들자 저쪽에서 먼저 조용히 물었다.

《동무가 거기 공병지휘관이요?》

《아닙니다. 3소대장 소위 오영범입니다.》

《중대장은 어데 갔소?》

《강건너 우안에 있습니다.》

《그럼 좋소. 동무에게 과업을 주겠소.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써서라도 20분내에 기동로를 여시오. 알겠소? 20분동안이요!》 오영범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있었다.

선서를 한 군인이라면 상관의 명령지시에 《알았습니다!》라는 한마디밖에 할 권리가 없다. 그러되 그 대답은 피로써 목숨으로 지켜져야 한다.

《알았습니다!》

《좋소. 그럼 집행하시오.》

통화가 끝났지만 오영범은 여전히 무선전화기를 꽉 거머쥐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기없이 해쓱해지고 굵은 목에서는 퍼런 피줄이 푸들거렸다.

그는 송수화기를 넘겨주고 홈타기쪽으로 터벌터벌 걸어갔다. 소대원들이 그리고 홈타기에 몰켜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있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는 오직 하나 《20분》에 대해서만 골똘히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얼마나 지꿎게 그리고 얼마나 초조하게 머리를 쥐여짰던지 불에 달군것처럼 머리가 뻥하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저도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우뚝 멎어섰다. 머리속에 스쳐간 어떤 하나의 생각이 그를 숨막히게 했는데 너무도 무서운 생각이여서 온몸이 오싹해날 지경이였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고나서 자기를 지켜보는 소대원들을 향하여 거쉰 소리로 부르짖었다.

《폭파준비!··· 뜨로찔과 도화선, 도폭뢰관을 준비할것!》 이어 주변에 몰켜있던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다들 피하시오. 발파를 하겠소!》

홈타기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바삐 물러났다. 오영범은 그들모두와 함께 땅크에서 내려와 뒤더수기를 벅벅 긁고있는 땅크병들까지 다 멀리 쫓아버렸다. 모두 애젊은 소대장에게 복종했다. 관등급이나 직급상의 차이 같은것은 여기서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의 몰풍스러운 웨침소리와 검붉어진 얼굴에 떠오른 매몰스러운 표정에서 사태를 수습하고 해결하려는 단호한 의지를 보았던것이다. 지어 그들은 오영범이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드디여 발파를 하였다. 산기슭 벼랑턱을 헐어 날라쌓기를 한 방향성발파였다. 그때에야 사람들은 너무도 놀라운 일을 당하여 대경실색하였다. 순식간에 땅크가 구겨박혀있는채로 홈타기를 메워 버렸던것이다.

격노한 땅크병들이 그한테 달려들었다. 무서운 웨침소리와 위협하는 거친 말마디들이 조약돌처럼 날아들었다. 그때 뒤늦게야 강좌안으로 건너온 중대장 김윤필이 그를 막아나섰다. 그와 여러 땅크병들이 모두 일시에 주먹을 부르쥐고 목청껏 웨쳐대였지만 그때 오영범은 극도로 피로하여 가까스로 서있을뿐이였다.

멎어섰던 포차들이 파르스름한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땅크가 묻힌 그 외통길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포병구분대의 지휘관이 승용차를 타고오면서 군단참모장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고 소리쳤다. 이번에는 중대장 김윤필이 무선전화기를 받아쥐였다.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던 땅크병들도 숨을 헐떡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군단참모장이 무어라고 묻자 김윤필은 전화기를 든 손을 부르르 떨면서 3소대장 오영범이 발파를 하여 땅크가 빠져들어간 홈타기를 묻어버렸다고 보고했다. 군단참모장은 그 일에 대해서 벌써 보고받은 모양이였다. 그가 관심하는것은 다른것이였다. 김윤필은 오영범쪽을 흘끔 돌아보고나서 《예, 그렇습니다. 오영범!··· 3소대장입니다··· 나이는 스물둘··· 예, 알겠습니다!···》하고 이상한 목소리로 웨쳤다.

무선전화기를 넘겨주고 포병지휘관이 탄 승용차가 떠나갈 때까지 그는 그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난듯 머리를 들며 오영범을 향해 무겁게 입을 열었다.

《3소대장, 당장 동무를 지휘감시소에 보내라누만.》

《?!···》

오영범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갑자기 어린시절 꿈을 꾸다가 가위에 눌렸을 때처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났다. 그는 모지름을 쓰며 시꺼먼 손가락으로 목을 조이고있는 군복깃을 터놓았다.

《같이 갈가?》

김윤필이 묻는 말이였다.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럴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지 잘 알고있었다. 명령받은대로 기동로는 열었지만 값비싼 땅크 한대는 구뎅이속에 묻어버렸다. 전쟁시기도 아닌 때에 그처럼 귀중한 땅크를 매장해버렸으니 그야말로 군사재판감이 아닐수 없다.

이윽고 그는 김이 문문 흐르는 군복을 쭉 잡아당기고 어깨띠를 바로 한 다음 지휘감시소를 향해 떠났다. 그날 그는 그것이 자기의 한생을 결정짓게 될 운명적인 걸음이라는것을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날 그를 부른것은 군단참모장이 아니였다. 그때 지휘감시소에서 군단기동훈련을 몸소 지도하고계시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놀라운 일을 저지른 공병소대장 오영범에 대하여 보고받으시고 친히 그를 부르시였던것이다.···

뜻밖의 경적소리에 그는 생각에서 깨여났다. 앞을 보니 전조등의 밝은 불빛이 길 한가운데를 걷고있는 한 처녀의 모습을 환히 밝히고있었다. 처녀는 급히 길섶으로 비켜서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일순 달려오는 승용차를 향해 한손을 쳐들다가 그만 도로 내리는것이 보였다. 바퀴달린 려행가방을 멘 처녀였다. 곤색솜옷에 하얀 목도리를 두르고 맵시나는 가죽장갑을 끼였는데 첫 눈에도 도시에서 사는 처녀라는것이 알렸다.

《차를 세우오.》

오영범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급제동을 거는 아츠러운 소리와 함께 차가 멎었다. 뒤따라 밀려온 먼지구름이 전조등의 밝은 불빛속에 들씌워졌다.

오영범은 문을 열며 머리를 쑥 내밀었다.

《어데까지 가오?···》

《예, 저 신정리에···》

무거운 가방을 추슬러올리며 반갑게 다가서던 처녀가 주춤 멎어섰다. 어깨우의 장령별을 띄여본것이다.

《타오.》

오영범이 말했다. 명령하기에 습관된 묵직한 목소리였다. 그러자 처녀는 황급히 팔을 쳐들며 부르짖었다.

《괜찮습니다. 전···》

《타라는데.》

《아, 아닙니다. 전 다 왔습니다.》

처녀는 장갑낀 손을 가슴우에 모두어쥐며 애처롭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 순간 오영범은 흠칫했다. 처녀의 그 가냘픈 미소가 그를 괴롭히는 다른 한 처녀의 수심에 잠긴 모습을 상기시켜준때문이였다.

《정말입니다. 장령동지!》하고 처녀는 또 잰말씨로 속삭이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웬일인지 처녀는 뒤로 한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저때문에 인민군장령의 바쁜 걸음이 지체된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오영범 그가 찌르는듯 한 눈빛으로 여겨본 때문인지···

《음ㅡ》

그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문을 닫았다. 그와 동시에 운전수가 차를 출발시켰다. 뒤에 남은 처녀는 좀 뒤늦게야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부르짖었는데 그 목소리도 순시에 멀어져 갔다.

오영범은 얼핏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뒤쪽의 작은 시창으로 내다보인것은 차겁고 침침한 어둠뿐 그가 찾는 모습은 없었다.

그는 추위를 타는듯 어깨를 으쓱하면서 모가 진 아래턱을 움씰거렸다. 불현듯 마음이 구깃구깃 구겨지고 어수선해지는것을 어쩌는수가 없었다. 그 처녀, 로상에서 잠시 만난 그 처녀는 바로 그가 제일 아파하는 일, 되도록이면 생각지 않으려고 애쓰던 자기의 녀동생 영옥이의 불행을 또 상기시켰던것이다.

그는 지그시 두눈을 감고 이름모를 그 처녀의 맑고 시원한 두눈이며 어설픈 미소를 머금고 바르르 떨던 엷은 입술을 그려보았다. 어딘가 영옥이와 비슷한데가 있는 단아한 처녀였다. 그 처녀처럼 지금 스물여덟에 난 그의 동생 영옥이도 한때는 목이 상큼하고 얼굴이 희맑은 아름다운 처녀였었다. 한때는···

《신정리입니다.》

운전수가 하는 말이였다.

그는 머리를 들고 앞을 내다보았다. 운전수가 차의 속도를 죽이면서 그의 눈치를 살피고있다.

《차를 세우오.》하고 말하기를 기다리고있는것이다. 그는 시계를 들여다보고나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 그럴새가 없다. 후에 보자··· 그는 군무와 상관없는 온갖 잡사며 개인적인것들은 다 집어던진 사람이였다. 군대일만 생각하자고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였다. 더우기 총참모부에서 관심하는 중요한 훈련을 앞두고 너무도 할일이 많은 그였다.

《속도를 높이오!》하고 그는 짤막하게 명령했다.

《알았습니다!》

승용차는 마을앞으로 곧추 뻗어간 길을 따라 먼지발을 일구며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