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9

제 1 편

19

 

야간강하훈련을 앞두고 락하산준비를 꼼꼼히 하고난 정찰병들은 짧은 휴식의 한때를 보냈다.

윤철은 정산이 편지를 쓰는것을 보았다.

《보고싶은 어머니!》

그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정산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이 세상 모든 사랑을 다 의미하는듯 했다. 웬일인지 아버지앞으로는 단 한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거니와 아버지라는 말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그저 입을 꼭 다물고 눈길을 내려뜨린채 발끝으로 땅바닥만 허빌뿐이였다. 그대신 어머니한테는 자주 편지를 썼다. 자기의 수첩에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써넣기도 했다. 그것은 그저 단순한 편지라기보다 매일같이 어머니와 주고받는 애정에 넘친 마음의 대화였다.

정산이 편지를 쓰는것을 보자 윤철은 자기도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싶었다.

먼저 사랑하는 누이동생 화옥을 생각했다. 올해 21살난 동생 윤화옥은 영주직물공장 로동자이며 사로청초급단체위원장이다. 웃기 잘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처녀이다.

화옥은 늘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에서 벌어진 일들과 윤철의 동창들의 소식 등을 전해주군 했다. 윤철의 부탁으로 외롭게 살고있는 정산의 부모들 특히 정산이 말하기 꺼려하며 일체 아버지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지 않는 그의 아버지 림희문에게도 편지를 썼다. 정산의 아버지는 눈물로 얼룩진 답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소대장의 누이동생을 친딸처럼 생각한다고 한번 꼭 오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화옥은 집안의 《우편함》이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윤철은 다른 한 처녀에게 편지를 쓰고싶었다.

《수련동무, 오늘 수련동무의 동생 림정산은 두번째로 강하훈련에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아니면 《수련동무, 오늘도 우리는 밤하늘에 날아오릅니다.》하고 시작하려던 편지, 쓰고싶었으나 더는 쓸 필요가 없게 된 편지이다.

그들의 서신거래는 이미 끝나버리고말았다. 수련이의 어머니가 써보낸 한장의 편지가 그의 가슴속 정열의 불길에 찬물을 쏟아부었던것이다.

《윤철소대장동무.》하고 수련의 어머니는 그 편지에 썼다. 《나는 수련이 어머니입니다. 동무에게 한가지 알려드릴게 있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다름아니라 제 딸 수련이에게 대상자가 한사람 정해졌습니다. 곧 약혼식을 하게 됩니다.

소대장동무, 나는 딸의 이야기와 동무가 써보낸 편지들을 통해서 동무가 정직하고 굳센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수련이와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생기면 집에 한번 들려주세요. 그러면 매우 기쁘게, 반갑게 맞겠습니다.

소대장동무의 군무생활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1993년 2월 19일 수련 어머니 씀》

이것이 그 편지의 전부였다. 깍듯이 례절차려 쓴 편지였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수련의 뜻이였을가, 제손으로는 차마 쓸수가 없어 어머니의 손을 빌린것일가?··· 주머니속에서 편지가 손에 닿을 때마다 불에 데는듯 했다. 마음은 쓰리고 어수선했다.

그 편지가 어머니의 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수련이자신이 쓴것이였다면 비록 마음은 괴로왔을망정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것이다.

무엇때문에 그 처녀는 윤철이 그 무엇을 구걸하기라도 한듯이 이런 편지를 쓰게 했는가?··· 과연 그 처녀 역시 허영에 찬 녀자였단말인가. 사람을 잘못 봤는가?···

흔히 보통 남자들은 남달리 어여쁜 녀자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녀자들은 화려한 달력장에나 찍혀 걸려있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하다면 윤철은 수련이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믿었는가?··· 윤철의 눈에 비쳐진 수련은 결코 자기의 미에 반하여 굽높은 구두를 신고 마치 못이라도 박는듯 딱딱딱딱 포도를 찍어가며 모든 남자들이 자기를 훔쳐보고있으리라는 자만에 빠져 오연해서 머리를 높이 쳐들고 걷는데 습관된 그런 속이 텅 빈 허풍선이 처녀가 아니였다. 흔히 교양도 있는 아름다운 처녀들이 그렇듯이 수련은 자기의 미를 다는 모르고 사는데 습관된 겉멋을 모르는 처녀였었다. 윤철은 그렇게 보았고 그렇게 믿고있었다.

하지만 인제는 모든것이 다 끝나버리고말았다. 윤철은 앞에 놓고있던 종이를 구겨버리고 자리에서 일어서고말았다.

드디여 야간강하훈련시간이 왔다. 인적이 끊긴 대도로에 군용비행기가 내리자 대기하고있던 려단장의 승용차가 비행기가까이 접근해갔다. 신호등을 들고있던 병사들이 그쪽으로 불을 비쳤다.

오영범이 윤철을 돌아보았다.

《소대를 정렬시키오.》

《알았습니다!》

윤철이 어둠속을 향해 구령을 쳤다.

《소대, 모엿!》

그러자 도로 량쪽에 위장하고있던 대원들이 왁 쓸어나왔다. 모두 위장복차림에 저마끔 락하산과 무선기, 각종 신호기재 등을 휴대하고있어 마치 전쟁영화의 화면에서 뛰여나온듯 했다.

윤철은 소대를 정렬시키고 오영범에게 보고를 했다. 그러자 려단장은 대렬앞 중간위치에 나섰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그들의 훈련성과를 기대하신다는 자각이 그들 매 병사들의 가슴에 뜨거운 피의 흐름으로 새겨져있었다. 하여 그는 《동무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고계시오. 자, 그럼 탑승!》하고 구령처럼 웨쳤다.

찢어진 구름장사이로 창백한 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신호등의 빨간 불빛에 비쳐진 가로수들이 시꺼먼 하늘을 배경으로 앙상한 가지들을 흔들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것이다.

정찰병들은 비행기에 오르는 차제로 선줄고리를 걸어놓고 자리에 앉았다. 다들 긴장한 표정이였다. 산을 지고 비행기에 오를 때마다 겪게 되는 흥분, 가슴을 옥죄이는듯 한 야릇한 심정은 어찌할수 없는것 같다. 락하산을 많이 타보았다고 해서 거기에 습관되는것은 아니다. 간혹 많이 타면 탈수록 더더욱 복잡한 심리상태에 잠기는때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향집 울담우에서가 아니라 바로 1,000m에 달하는 야밤의 고공에서 돌덩이처럼 떨어져내려야 하는것이다.

려단장 오영범이 맨 나중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마침 좌실문을 열고 이쪽을 바라보고있는 항법사에게 우정 큰소리로 말했다.

《자 동무들, 인젠 날아보기요.》

《알았습니다!》 하고 항법사가 유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동이 걸렸다. 온몸을 흔드는 단조로운 진동, 한순간에 흘러간 생활의 단편들이 련속 번쩍번쩍 사진처럼 눈앞에 찍혀진다는 꿈결같은 리륙의 한순간이다. 어느덧 요동을 쓰며 내달리던 비행기가 돌연 그 어떤 충격도 없이 아스라한 고공으로 허궁 솟구쳐오른다. 온몸에 스쳐가는 짜릿한 전률, 금시 졸아들던 심장이 별안간 단김을 내뿜으며 다시 풀떡풀떡 뛰기 시작하는것을 느낀다.

오영범은 나란히 줄지어 앉은 정찰병들을 차례로 훑어보았다. 소대장 윤철과 새끼노루때문에 소문난 림정산을 내놓고는 이름을 아는 전사가 없다. 윤철이나 림정산조차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관심해주셨기에 비로소 알게 된것이다.

그는 엄하기로 소문난 려단장인 자기를 아무 꺼리낌없이 웃고있는 눈으로 마주보고있는 한 정찰병에게서 눈길을 멈추었다.

《동문 이름이 뭐요?》

《옛, 무선수 하사 최윤두입니다.》

《동문 무섭지 않소?》

《무섭지 않습니다.》

《그ㅡ래?!》하고 오영범은 그의 반대쪽에서 앞가슴의 박띠를 움켜쥔채 잔뜩 굳어져있는 림정산을 스쳐보며 히죽이 웃었다. 《입대한지 오래 됐소?》

《예, 구대원입니다. 려단장동지!》

비행기의 동음때문에 좌실에서는 조용히 말할수 없다. 그러므로 될수록 큰소리로 주고받지 않으면 안된다.

《솔직히 말해서.》하고 오영범이 또 말했다. 《나도 좀 속이 두근거리는데 동문 왜 떨리지 않는지 후날 내게 와서 강의를 좀 해주겠소?》

《옛, 할수 있습니다. 려단장동지!》

다른 정찰병들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웃고있었으나 림정산은 고집스레 입을 꼭 다물고있었다. 소대장 윤철이 그의 한쪽 손을 잡으며 무어라고 말해주고있다. 오영범은 토막토막 들려오는 말마디들과 그의 입놀림으로 겨우 그가 하는 말을 가려들을수 있었다.

《정산이, 중요한건 신심을 잃지 않는거야.》하고 윤철은 말했다. 《인젠 그전날의 림정산이 아니라는걸 명심해야 돼. 알겠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의 훈련모습을 지켜보신단말이야.》

《예, 알고있습니다. 소대장동지!》

정산의 대답이였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의 이마우에는 이슬같은 땀방울들이 내돋고있었다.

돌연 비행기가 몸체를 떨기 시작했다. 나쁜 징조이다. 사람들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지군 했다. 기실벽에 머리를 짓쫗은 최윤두가 《아이구머니!》하고 부르짖었다. 《아이쿠, 무슨놈의 비행기를 이렇게 몰아대시우. 이 최윤두대갈통을 박살낼 차비로구만, 아이쿠, 아이쿠!》

비행기는 더 심하게 요동을 쳤다. 병사들이 좋아라 웃어댔지만 오영범은 비행사들이 걱정되였다. 발밑의 지형이 복잡한 기복을 이루어 무질서한 공기의 흐름이 생길 때 이런 들추기현상이 생기는데 심할 땐 비행사들이 실신하는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비행기는 마지막으로 한번 더 몸체를 우두두 떨고나서 곧 진정되였다. 그러자 떠벌이 무선수 최윤두가 또 입을 열었다.

《려단장동지, 이제 돌아가면 좀 단단히 혼내주십시오. 글쎄 용감한 정찰병들을 이렇게 모셔가는 법이 어데 있습니까!》

《용감한 정찰병들이라.》하고 오영범은 지금까지 쌓이고쌓인 피로도 다 잊고 소리내여 웃었다.

《정찰병이 된걸 자랑하고싶은게지?》

《그렇습니다. 정찰병이상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왜? 우리 려단에만 하여도 땅크병, 포병, 장갑보병, 통신병 등 다 있는데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네가 제일이라 하거든.》

《그렇지만 우리 정찰병들한테야 대겠습니까!》하고 최윤두는 벌쭉 웃었다. 《우린 남들이 공격출발진지로 갈 때 벌써 적구종심에 들어가있거든요. 말하자면 저··· 남들이 시작할 때 우린 벌써 끝을 맺고있는셈이지요.》

《그렇다!?···》

한순간 오영범은 머리속에 번뜩인 하나의 생각에 그만 굳어져버렸다. 순간의 격동에 쿵쿵 세차게 뛰는것을 느꼈다. 아니 저 친구가 무슨 말을 했는가, 뭐 남들이 공격출발진지로 가고있을때 저들은 벌써 적구종심에 가있다구?!··· 이것이야말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 그 시작과 끝에 대한 암시가 아닌가? 적의 방어전연에 대한 초기타격과 제2제대와 예비대의 결전진입을 동시에 벌려 적의 방어종심에서 강력한 타격을 벌릴수 있지 않는가. 그리하여 순차적인 공격이 아니라 전작전구역에서 일거에, 동시에, 전격적인 결전, 돌파를 벌릴수 있지 않겠는가?··· 가만, 가만···이것이 바로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 전격전이다. 이를 위해 돌파구역과 적의 최후방종심에 제2제대와 예비대의 땅크, 장갑차들을 어떻게 신속히 전개하는가 하는 문제만 풀리면 된다. 그러면 1시간 30분 걸리던 려단의 작전을 1시간, 아니 그보다 더 줄일수도 있다···

《우리의 귀중한 전사들의 희생을 극력 줄이자면 짧은 시간내에 적을 철저히 무자비하게 타격소멸하여야 하오. 문제해결의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소. 시간을 줄여야 하오. 단숨에 불이 번쩍나게 시작하고 끝내야 하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 말씀이다. 이름없는 한 려단장의 심장을 덥혀주고 시야를 틔워주고 의기를 북돋아주시며 친히 깨우쳐주신 말씀이다.

그는 터질것 같은 기쁨을 멈출수가 없어 벌깃해진 두볼을 후들후들 떨었다. 저 떠벌이가 그렇듯 의미깊은 말을 하다니, 저 친구이름이 뭐랬더라?··· 그래 그래, 최윤두라 했지. 최윤두, 저런 멋있는 친구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곁에 두고도 여직껏 보지 못하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니!···

그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주어보지 못한 사무치는 사랑의 눈길로 아무 영문도 모르고 웃고만있는 최윤두를 바라보았다.

그 어느 구분대에 가보나 저런 익살군들이 있는 법이다. 최윤두가 아니면 박윤두가 있거나 허윤두가 있다. 그들은 병사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웃음을 언제건 아낌없이 선물해준다. 병사생활은 거의 날마다 시각마다 그들이 제공해주는 그 웃음으로 하여 더욱더 즐겁고 랑만에 찬것으로 장식된다.

오영범은 자기도모르는새 벌써 그들과 멀리 떨어져있었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과 같이 살고 숨쉬면서도 그들과 심장의 문은 통하지 않았다. 하마트면 성문처럼 굳게 닫긴채 영영 열리지 않을번 하지 않았는가?···

드디여 투하지점에 이르렀다. 신호등이 껌벅껌벅 하는것과 동시에 삐ㅡ 삐ㅡ 하는 소리가 울렸다.

오영범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앞으로 다가갔다. 문곁의 위치에 앉아있던 부소대장이 밀차식으로 된 문을 절컥 열고 쭉 밀어놓았다.

찬바람이 확 쓸어들었다. 시꺼먼 야공이 무시무시하게 입을 벌렸다. 딛고선 바닥이 순시에 꺼져버릴듯, 캄캄한 밤하늘의 별들이 웬일인지 저 멀리, 아득한 심연의 밑바닥에서 반짝이는듯 했다.

《자, 동무들!》하고 오영범은 정찰병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동무들의 훈련소식을 기다리고계시오.》

전체 정찰병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어깨를 쭉 펴고 서있었다. 오영범이 손짓하자 1번위치에 있던 부소대장이 한발 나섰다.

《부소대장 상사 길덕수!》

오영범은 그의 어깨를 힘주어 눌렀다.

《탈출!》

약간 허리를 굽힐사 하고 두발을 모으고있던 부소대장이 동시에 움쭉 몸을 날렸다. 순간 그는 캄캄한 어둠속으로 종이장같이 휙 사라져버렸다.

다음 차례는 2번강하수 최윤두이다. 그는 반쯤 눈을 감고 무어라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문앞에 나섰다. 이윽고 그는 눈을 뜨고 오영범을 향하여 벌씬 웃어보였다.

《려단장동지, 시를 외워보았습니다. 그러면 훨씬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좋소.》

그러자 그는 조기천의 시 한구절을 소리내여 읊었다.

또 싸움의 길에 낭떠러지가 있으면

떨어져서 천야만야 창창 떨어져서

산산이 부서져야 된다면

내 서슴없이 뛰여들리라

다음 순간 그는 벌써 캄캄한 어둠속으로 휙 사라져버렸다.

3번강하수가 나섰다.

《대원 상등병 김명길!》하고 차렷자세를 취하며 보고하고나서 그는 간청하듯 말했다. 《려단장동지, 전 그저 지휘관들이 어깨만 한번 쳐주면 몇갑절 힘이 나군 합니다.》

《좋소.》

오영범은 그를 눈여겨보고나서 어깨를 툭 쳐주었다.

《탈출!》

이렇게 한명 또 한명 사라져버렸다. 드디여 림정산의 차례가 왔다. 오영범은 그의 어깨를 힘껏 다그어안았다. 그러자 어린 전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가늘게 부르짖었다.

《려단장동지, 걱정마십시오. 장군님 전사답게 꼭··· 해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좋아, 정산이 탈출!ㅡ》

하여 정산은 시커먼 허공으로 떨어졌다. 한순간 심장의 박동이 멎고 숨길이 멎고 길길이 뛰던 피의 흐름이 멎었다.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시꺼멓고 괴괴한 허공에 정신없이 곤두박히는 벅찬 느낌뿐,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면서도 두눈을 꼭 감은채 백열하나··· 하고 셈세기를 시작하였다. 운명적인 5초, 그가 제일 무서워한 그 5초를 재여야 했다. 백열둘, 백열서이, 백열너이, 백열다···순간, 등뒤에서 온몸을 툭 채는것을 느꼈다. 비행기고리에서 산줄이 빠진것이다. 허공중에 곤두박히던 몸이 힘껏 산줄에 매달리는것도 감촉했다. 머리는 하늘로, 발은 아래로··· 무섭게 죄여들었던 심장이 후두둑! 하고 다시 박동을 시작했다. 정확히 5초만에 락하산이 펴진것이다.

정산은 머리를 잔뜩 젖히고 우를 올려다보았다. 어둠속일망정 산가운데 뚫린 동그란 검은 구멍이 보인다. 그 구멍가운데서 한순간 반짝 별이 웃었다. 그렇다. 모든것이 정상이다. 산도 제모양대로 펴졌다. 이제 남은것은 무엇인가?··· 비로소 예비산고리에 끼우고있던 한손을 빼며 산줄을 잡았다. 동시에 가슴속 가득히 들어차있던 돌덩이같이 무거운 숨을 후ㅡ 하고 길게 맘껏 내뿜었다.

바람이 세게 불었다. 그러나 여기 무시무시하리만큼 괴괴한 야공에서는 바람소리도 없다. 왜 여직껏 그것이 바람소리라고만 생각했던가? 차거운 먹물속같이 음산하고 숨가쁘고 무시무시한 적막, 멀고먼 허공에서 빛을 잃고있는 뭇별들이 힘없이 가물거릴뿐 동서남북도 가늠할수 없다. 오직 하나 별들만이 위안이다, 벗이다. 그렇지만 저 별빛도 이미 별은 사멸한지 오래고 그 빛만이 장구한 세월을 거쳐 비로소 지구에 도달한다는 그런것은 아닐가?··· 어릴 때 광대한 우주와 태양계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끼던 영원과 무변에 대한 막연하고 숨가쁜 공포심이 되살아났다.

실상 그는 아직도 가슴을 옥죄이는 공포심에서 다 헤여나지 못하고있다. 무엇보다 그를 불안케 한것은 아무리 눈밝혀보아야 먼저 내린 사람들의 산이 보이지 않는 그것이였다. 캄캄한 야공에 홀로 외로이 떠있다면 그것 역시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무서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때 구름속에 잠겨들었던 달이 나타났다. 드디여 정산은 자기의 발밑에서 희끗희끗 움직이는 하얀 버섯모양의 산들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까마득한 심연의 시꺼먼 밑바닥에서 가느다란 댕기처럼 오불꼬불 늘어져 은빛으로 가물거리는 강을 보았다. 그들이 목표로 삼은 투지점은 바로 그 강기슭에 있다.

정산은 바람방향을 살펴보면서 오른쪽 산줄을 연신 당겼다. 인제는 목적지에 무사히 내릴수 있다. 강물우에 떨어지는 실수만 면하면 된다. 그는 불시로 치밀어오르는 기꺼운 마음을 억제할길 없어 헉ㅡ 하고 흐느끼였다.

어머니! 저는 지금 하늘에서 내리고있습니다. 밤은 캄캄하고 사위는 온통 괴괴한데 이 가슴속엔 말로써는 다 전하지 못할 그런 기쁨이 한가득 들어차고있습니다.

어머니, 기뻐하십시오! 아직 어머니에게 좋은 소식 한번 전해드리지 못한 이 아들이 인제는 어엿한 정찰병으로 자라고있습니다!···

눈앞이 뿌얘졌다. 어머니의 웃는 모습이, 정녕 보고싶던 그 모습이 환하게 안겨왔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전혀 다른 어머니의 모습, 젊고 아름답고 생신하며 기쁨에 넘친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정산은 체소하고 마음이 여린 어머니를 마음속깊이 동정하고 사랑하였다.

그 사랑은 자기를 낳아 길러준 어머니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오랜 세월 병에 시달리고 마음속 고통에 짓눌리며 수심에 잠겨 살아온 한 녀인에 대한 눈물의 사랑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산후탈때문에 오랜 세월 시달려왔었다. 정산이를 낳은 후부터 줄곧 시름시름 앓으며 추서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중 정산이 6살나던해 아버지가 재판을 받고 교화소에 들어갔다.

금속재료연구사였던 아버지가 공명심에 사로잡혀 과학기술적담보가 불충분한 무슨 플라즈마에 의한 T강이온질화법인가 하는 실험을 몰래 벌려놓았다가 대화재를 일으켜 인명피해와 함께 국가에 막대한 물적손실을 끼쳤다는것이다.

이 사건은 병약한 어머니를 뒤흔들어놓았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이 서서히 웃음이 사라져갔다. 그렇지만 어린 정산이를 남못지 않게 키우느라 말없이 이를 악물고 일하였다. 정산은 어릴 때부터 이 침묵의 애정에 습관되여있었다.

제일 가까운 사람들사이에서는 침묵이 말보다도 많은것을 이야기하는 법이다. 그도 어머니처럼 침묵을 즐겼다. 밤이면 어머니는 바느질을 하던가 무슨 일감을 놓고 앉아있었고 정산은 책상앞에서 숙제를 하고 책을 읽었다. 한번도 소리내여 읽은적은 없다. 가끔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물끄러미 자기를 지켜보는것을 느끼군 했다. 조용히 그리고 자기 할 일도 잊은채 오래도록 말없이 바라보는것이였다.

정산이 마주앉은 책상쪽 벽에 낡은 거울이 걸려있었는데 그는 이따금 그 거울에 비쳐진 어머니의 얼굴을 놀라서 바라보군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모르는줄 알고 눈물이 그렁해서 그의 뒤모습을 조용히 꿈을 꾸듯 바라보는것이였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 아들의 장래에 대한 꿈, 남편과 더불어 그 아들의 훌륭한 래일을 축복하는 꿈이였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정산에게 아버지가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것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거짓을 모르고 대바르고 불길같이 격한 성미인데 결코 남들이 말하는것처럼 공명주의자이거나 출세주의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왜 그렇듯 엄청난 일을 저질렀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어머니는 주지 못했다. 어린 정산이 캐여물으면 어머니는 슬픔에 잠긴 눈빛으로 말없이 머리만 가로 저을뿐이였다.

정산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어머니를 괴롭히고 아프게 허빈다는것을 알고 더 이상 캐여물으려 하지 않았다.

여러해가 지난후 아버지가 나왔다. 그때는 이미 정산이 고등중학교에 다니고있었다. 그 시절 정산의 눈에 비쳐진 아버지는 말이 적고 메마르고 무섭게 고집이 센 전혀 낯모를 사람이였고 술주정뱅이였다. 이따금 교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이 깊도록 우두커니 앉아 써레기담배연기로 방안을 꽉 채우기도 했다. 그럴 때의 아버지는 고독하고 골병이 든 한 늙은이에 불과했으나 술만 들어가면 달라졌다. 아무에게나 트집을 걸고 울화증을 터뜨리며 분별없이 누군가와 대거리로 싸움을 벌릴 기상이였다. 보다못해 어머니가 제발 인제는 술을 입에 대지 말라고, 전에처럼 집에 들어와 책을 보던지 무슨 연구라도 하면 좋지 않는가고 하면서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게 부끄럽지도 않는가고 울며불며 했다.

그날밤 일을 정산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뭐 책이라구? 연구라구?!》하고 아버지는 험악해진 표정으로 울부짖었다. 《그게 나하구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걸 해선 뭣한단말이야, 엉?!··· 나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놓은 그 일에 또 손을 디밀라구? 에익, 신물이 난다!》

아버지는 상을 들부시다 못해 자기를 말리려드는 어머니를 힘껏 떠박질렀는데 그만 병약한 어머니를 문설주에 세게 부딪치게 했다.

어머니는 쓰러졌다. 쓰러져서 아픔에 겨워, 설음에 겨워 방바닥을 허비며 울고울었다. 남모르는 근심과 눈물과 한숨속에 정산을 키워온 애오라지 정산의 래일을 위해 모든것을 참고 살아온 어머니가 신음하는것을 본 정산은 난생 처음으로 가슴을 찢는듯 한 아픔과 아버지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느꼈다. 그는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얘져서 아버지를 막아서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버진 뭐예요? 왜 우릴 찾아와 행패질을 하는거예요. 예? 누가 오래서 왔어요?!》

아버지는 놀라서 잠시 멍하니 서있었으나 취기가 뻗쳐 금시 아들을 후려갈길듯 한손을 버쩍 쳐들었다.

《가세요. 우리 집에서 나가요!》하고 정산이 또 부르짖었다.

《우린 아버지가 필요없어요. 나가요!》

쳐들었던 아버지의 손이 굳어져버렸다. 이윽고 풀어진 눈동자로 아들을 여겨보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험한 손바닥으로 정산의 머리를 잡아흔들고는 어데론가 나가버렸다.

그날밤 비가 내렸다. 마가을의 찬비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밤은 지리하게 깊어갔다. 어머니는 자리에 누운채 온밤 비소리에 몸을 떨며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혹시나 아버지의 발자욱소리라도 들릴가 해서 그러는것 같았다.

정산은 문고리를 걸었다. 부엌문도 안방문도 웃방문까지 죄다 꽁꽁 비끄러맸다. 그것을 본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말했다.

《그럼 안돼. 정산아, 아버진··· 나쁜 사람은 아니란다.》

그러나 정산은 그날밤으로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결별하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온 정산이였고 아버지의 과거를 저주하고 오늘의 아버지를 부끄러워한 정산이여서 아까울것도 애석할것도 마음에 꺼릴것도 없었다. 하여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는 결연히 말했다.

《난 절대···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어요!》

그때 어머니는 한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짓고있었는데 그것은 가슴속 쓰라린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숨가쁜 그 순간을 모면하려 한것 같았다. 아픔이 많았던 어머니, 하여 정산은 언제나 병약한 어머니에게 따뜻한 위로를, 기쁨과 웃음을 주고싶어 하였다.

그러나 어릴 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군대에 나와서는 그런 기회를 찾지 못했다. 군인선서를 하던 때의 감격을 써보내고는 별로 이렇다할 자랑거리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세상에 다시 태여난것과 다름없다. 오늘은 림정산이 새 출발을 하는 날이다. 어머니를 부르며 가슴속에 차넘치는 기쁨과 행복을 맘껏 목청껏 웨치고싶다.

어머니 저는 다시 태여났습니다. 인제는 하나도 두려운것이 없습니다. 가슴이 넓어지고 심장도 커졌습니다.

어머니! 캄캄한 이 하늘을 나는 사랑합니다. 끝없이 높은 이 하늘, 바람소리조차 없는 이 하늘을 사랑합니다. 별들이 웃는 이 하늘을 사랑합니다. 어제까지 무서워하던 이 하늘, 하늘만큼 높아지는 이 마음을 자랑합니다. 아아,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저를 보십시오. 경애하는 장군님의 참된 전사로 자라는 이 아들을 보십시오!···

우줄우줄 파도쳐간 검은 산봉우리들이 내려다보였다. 발밑에서 은빛으로 번들거리는 강물이 점차 마주 일어서며 하늘에서 내리는 전사를 얼싸안을듯 곧추 재빨리 눈앞으로 육박해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