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15

제 1 편

15

 

그들은 북위 32° 부근의 주산렬도 동북방에서 폭풍우를 만났다. 무려 4시간에 걸치는 무시무시한 항해가 새벽까지 계속되였다. 1만t급배도 여기 바다의 파도우에서는 한낱 가랑잎에 불과했다. 배가 멀기를 타고넘을 때마다 산악같은 파도가 솟구쳐올라 배를 덮치고 갑판을 휩쓸어갔다. 그러면 머리우에서 소리도 없는 번개가 시퍼런 날창같이 고공을 쫙 찢으며 어둠속으로 파고들군 했다. 이따금 몸부림치는 바다의 아우성속에서 불안에 떠는 갈매기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언제부터였는지 알수 없으나 숱한 바다새들이 배의 마스트전망대와 선교우 그리고 조타실지붕우에까지 가득 몰켜앉아있는것이였다.

리명구는 조타실에서 모사수신기에 찍혀나오는 일기도를 지켜보며 장밤 눈을 붙이지 못하였다. 날이 샐녘에야 폭풍우를 꿰질러나갔다. 모사수신기에 찍혀나오는 위성통신일기도는 싱가포르에 이르기까지의 중국남해 해상이 평온할것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불시로 피곤이 몰려들면서 뒤덜미쪽이 뻣뻣해졌다. 20여년간 배를 탄 그였지만 파도가 높을 때엔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 쓴물을 참기가 어려웠다. 아직도 배는 앞머리를 허궁 쳐들며 쑥 솟구쳐올라서는 시커먼 바다의 심연속으로 소리없이 떨어져내리군 했다. 그는 괴롭게 미간을 찌프리며 오른손으로 뒤덜미쪽을 힘주어 문질러댔다. 그때 항해당직근무를 맡고있는 1등항해사 김철수가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선장동지, 이젠 가서 눈을 좀 붙이십시오.》

《음ㅡ》

리명구는 그가 언제부터 근무를 서던가 하고 생각해보았으나 웬일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 친구와 한번 얘길해봐야겠는데…)

리명구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오전 7시 15분 평양시간이다. 지금 그곳 수도의 지하철입구와 궤도전차 정류소들에서는 사람들이 붐비고있을것이다. 그러나 여기 중국 남해해상은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시간을 거슬러 달리고있으므로 하루에도 몇번 시계바늘을 돌려야 하겠으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배의 여러 요소들에 전자시계와 관측기구들이 있어 현지시간을 알수 있으므로 그는 늘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조국의 시간을 그대로 가지고가군 했다. 그 시간을 보느라면 늘 조국과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있는듯 여겨지기때문이였다.

그는 1등항해사쪽의 탐지기에 얼핏 눈길을 던졌다. 그러자 그의 생각을 알아차린 김철수가 《침로 265°, 속도 28놋트, 싱가포르항로로 계속 전진하고있습니다!》하고 말해주었다.

리명구는 미간을 찌프리며 불만스레 킁킁 코김을 불었다. 그는 그것을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이 김철수는?!… 그는 어떤 사람인가?… 겉으로 보기에 그는 거의나 나무랄데없는 사람이다. 헌데 왜 아직 장가를 가지 않았을가. 술을 절대 입에 대지 않는다던 그가 전날밤 출항을 앞두고 억병으로 취한것은 무엇때문인가. 정치부장 한병권이 가지고왔던 그 전보때문이란 말인가?!…

《나는 가서 좀 쉬겠소.》하고 리명구는 군대때 습관으로 차렷자세를 취하는 김철수를 언짢게 바라보며 말했다. 《정황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알리오.》

《알았습니다. 선장동지!》

리명구는 되는대로 손을 쳐들어보이고나서 조타실을 나섰다.

얼마후 그는 선장실 자기의 방에서 제복을 벗고 면도를 하고있었다. 하루라도 게을리했다가는 광대뼈어름까지 온통 시꺼매지는 유명짜한 수염을 가지고있는 그였다. 그래서 다른 무역선선장들이나 부의 일군들속에서 그는 리명구라는 이름보다 《을지장군》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통하였다. 그 별명을 한병권정치부장이 달아주었는데 그는 자기네 선장이 구레나룻을 기르면 틀림없이 중학교력사교과서에 그려진 을지문덕장군과 같을거라고 하면서 영화연출가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충고하였다. 그들이 알면 당장 영화에 출연시키겠다고 끌어갈수 있다는것이였다.

리명구는 면도를 한 다음 탁자우에 해도를 펴놓고 창가의 고무나무와 토란화분에 물을 주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다음 상두대우에 놓인 라지오록음기 전원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라지오록음기에서 연록색의 작은 불빛과 함께 보천보전자악단의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눈을 감아도 그리운 고향

푸른 언덕이 어리여오네

 

다시 탁자에 마주앉은 그는 확대경을 들고 영국로이드출판사에서 편찬한 해도를 깐깐히 훑어보기 시작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잠들기전에 신문이나 소설책같은것을 뒤적거린다지만 선장인 그는 커다란 해도에 그려진 사연많은 선과 점들을 살펴보는데 습관되여있는것이다.

얼마후 그는 침대로 가서 벌렁 드러누웠다. 팔베개를 하고 눈을 감았으나 금시 곯아떨어질것 같던것이 점차 새록새록 많은 생각들이 련이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보통강역홈에서 안해가 하던 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어수선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안해가 보여준 사진도 떠올랐다. 암팡지게 생긴 그 젊은이가 어데서 무얼 하는지 묻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수련이와 꼭 이야기를 해봤어야 하는건데… 수련이가 그 청년을 맘에 들어했다는것이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안해가 거짓말을 했을리는 없다.

언제 음악이 끝났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별안간 라지오록음기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가 기울여졌다. 방송원이 요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는 핵문제에 대하여 말하고있다.

《…이처럼 미국반동계층들은 핵문제를 걸고 계속 반공화국책동에 매달리고있습니다. 이번에 미중앙정보국장이 그 무슨 국회〈청문회〉라는데서 우리 나라가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플루토니움을 생산하고있으나 그를 숨기려 하고있다〉느니 우리 공화국이 〈가장 우려되는 나라들중의 하나〉라느니 하고 고아된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라고 볼수 없습니다.》

그는 손더듬으로 상두대우의 담배갑을 끌어왔다. 여전히 방송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니 알싸한 흥분이 가슴벽을 훑으며 흘러들었다.

《…알려진바와 같이 비핵국가인 우리 공화국에는 하나의 핵무기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핵무기를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데 대하여 한두번만 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있지도 않는 우리의 〈핵위협〉을 구실로 광란적인 핵시험전쟁이며 예비전쟁인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까지 재개하고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보고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흥분할 때마다 그렇게 손끝이 떨리군 한다. 담배대를 다른 손에 옮겨쥐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금 미국반동계층은 어떻게 하나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습니다. 이리하여 오늘 조선반도에는 핵전쟁이 터질수 있는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고있습니다.…》

어느새 창밖은 훤히 밝아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갈매기들이 껙껙 울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푸른 파도우를 날아예는 물새들의 하얀 깃털이 얼씬거렸다. 지난밤 배에 올라앉아 가던 새들인지, 아니면 가까이에 섬들이 있는것인지… 항행길을 손금보듯이 알고있는 그였지만 이렇게 막연히 추측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졸음은 말짱 달아나버렸다. 그는 숨쉬기가 편안치 않아 두팔을 힘껏 펴면서 둥근 시창을 그러쥐였다.

아침이 밝아오고있었다. 배전너머에서 부서지는 파도, 불그레한 빛으로 물들어가는 수평선, 쪼각쪼각 뜯기운 구름이 어데론가 황황히 사라져가고 그뒤쪽에서는 작은 별들이 반짝이다가 빛을 잃었다.

바로 그때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그는 탁자로 다가가 전화를 들었다.

《나 선장이요.》

《선장동지!》 1등항해사 김철수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정황이 발생했습니다. 잠수함이 우리를 뒤따르는것 같습니다.》

《뭐 잠수함?》

《예, 선미 좌현 35°, 거리 1마일지점에서 잠망경을 발견했습니다.》

《?!…》

그는 한손으로 버릇처럼 뒤덜미쪽을 힘주어 문지르기만 했다.

《선장동지!》

김철수가 또 소리쳐부른다.

《알겠소. 내 곧 그리로 가겠소.》

그는 모자를 쓰고 제복을 팔에 끼면서 문을 열고나갔다. 조타실까지는 멀지 않다. 그는 서둘지 않고 란간을 따라걸어가면서 생각하였다. 잠수함이 왜 우릴 따르겠는가. 혹시 그가 잘못본것은 아니겠는가?…

조타실에서는 1등항해사 김철수가 탐지기에 붙어 눈이 빠지게 그것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선장이 들어서자 그는 데면데면한 표정으로 뒤더수기를 긁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

리명구는 그를 일별하고나서 두번째 탐지기로 다가갔다. 그리고 부질없는 일인줄 알면서도 잠시 둥그런 영상면에 새겨진 360° 눈금들로부터 침로 265°, 방향각 64수역 즉 배가 가는 방향 수십마일 이내를 훑어보았다. 처음 30마일 전방에서 그 특이한 랭동차같은 모양새로 널리 알려진 일본자동차운반선 《아오이마루》와 원자력화물선 《무쯔》호를 발견하였다. 싱가포르정기려객선이 그보다 더 먼 수역에서 움직이고있을뿐 새날을 맞는 바다는 고요하였다.

뒤쪽에서도 잠수함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다. 몇척의 유조선과 상선들이 중국의 상해항으로 향하고있었다. 아직은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을 오가는 정기우편비행기도 뜨지 않았다.

그는 김철수에게 머리를 돌렸다.

《감시기록은 했소?》

《저… 아직…》

《하지 마오!》

리명구는 그가 착각했으리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자 다시금 야릇한 불만이 가슴노리까지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입술만 자근자근 깨물고있는 그의 시뿌둥한 얼굴을 훌 스쳐보고나서 리명구는 선교로 나갔다.

밖에서는 바야흐로 장쾌한 바다의 아침이 시작되고있었다. 수평선너머에서 거대한 불덩어리가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자 온 수평선일대가 시뻘건 용암처럼 끓어번졌다. 하늘과 바다는 그 용암속에서 녹아붙고 말았다. 배가 흐느적거리는 물결을 타고넘을 때마다 쇠물빛거품이 배전너머로 뒤번져갔다. 망망대해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불타는 바다, 새날을 불러오는 탄생의 환희, 빛의 교향시!… 리명구는 선교란간을 꽉 틀어잡고 서있었다. 이제 잠시후이면 대자연의 이 벅찬 환희도 곧 평범해지고말것이다. 태양이 물우에 떠오르면 붉은 빛의 세계는 사라지고 검푸른 물결우에는 남방의 뜨거운 볕이 자글자글 퍼부어질것이다.

밑에서 호각소리가 길게 울렸다. 갑판장이 사람들을 아침체조에로 부르는것이다. 맨내의바람인 갑판원, 조기원들과 당직근무이외의 보장성원들까지 달려나와 줄지어섰다.

모든것이 군대식이다. 아침체조도 근래엔 태권도훈련이 기본으로 되고있는데 그것은 1등항해사 김철수가 발기하고 제가 나서서 직접 훈련을 준것이다.

그때 맨처음 배치되여왔을 때의 김철수는 얼마나 의젓해보였던가. 틀을 차리지 않고 웃동을 벗어붙이고 갑판원들과 같이 고무호스를 휘둘러대거나 기세좋게 태권도시범동작을 할 때의 그의 모습은 얼마나 대견했던가!… 하지만 나날이 그의 마음속 어둠이 드러나고 무엇인가 꾸며대고 억지로 쾌활한체 하는것이 알릴수록 그에 대한 선망의 정은 서서히 갈앉고말았다. 이제 와서 리명구는 역스러운 느낌없이 그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을 지경이다.

밑에서는 갑판장이 계속 호각을 불어대였다. 그 어느 배에서나 호각을 떠난 갑판장은 생각할수 없다. 길게 울리는 그 호각소리야말로 갑판장의 소유로만 되여있는 배의 언어인것이다.

리명구는 태권도틀동작을 지휘하는 갑판장의 둔한 동작을 지켜보다가 저도모르게 웃음을 머금었다.

바로 그때였다. 별안간 그의 눈길은 배전너머에서 딱 굳어져버렸다. 가슴이 후두둑 세차게 뛰였다.

(저게 무얼가?!…)

선수좌현 800m쯤되는 근방에서 부글부글 물이 끓으며 사품쳐오르고있었다. 용솟음쳐 흐르는 번들거리는 물결, 뒤번져지는 물거품, 드디여 그속에서 시꺼먼 형체가 솟구쳐올랐다.

(잠수함이다…)

한순간 그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굳어져버렸다. 이마전으로 차디찬 전률이 푸들거리고 퍼릿해진 볼편근육이 움씰거렸다.

마침내 잠수함우현에 새긴 흰 글자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USA237》… 미해군잠수함이였다.

여전히 그는 쇠란간을 꽉 틀어잡은채 움직이지 못했다. 두팔이 저려나다 못해 힘살들이 막 튀여날것만 같았다. 미국잠수함이 어떻게 되여 우리의 눈앞에서 부상했는가. 우연인가 아니면 우리를 목표로 한것인가?…

갑판우에서는 여전히 갑판장의 호각소리에 맞추어 선원들이 태권도틀동작에 여념이 없다. 아직 그들은 등뒤의 배전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있다.

《선장동지!ㅡ》

1등항해사 김철수가 그를 소리쳐부르고있었다. 뒤를 돌아보며 적잠수함쪽을 가리키는 그의 손이 창유리에서 얼른거렸다. 선장이 잠수함의 출현을 아직 모르고있나 해서인것 같다. 리명구는 알고있다는 의미로 한손을 홱 내젓고 다시금 잠수함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던 거품의 파도는 이미 스러져버렸다. 미국잠수함은 속도를 높여 약간 앞질러가면서 배의 선수방향으로 점차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던 일루의 기대도 사라졌다. 적함이 《무포》호를 노리고 부상한것이 틀림없었다.

적함에서 기적소리가 울렸다. 옛 증기기관차의 목갈린 부르짖음소리와 같이 대기를 찢어발기는 사나운 웨침이였다. 길게 한번 짧게 두번… 대화를 건네는 배들간의 신호이다.

리명구는 조타실로 달려들어갔다. 그를 보자 김철수가 갈린 목소리로 《선장동지, 미국놈들입니다.》하고 부르짖었다. 리명구는 그의 흥분한 얼굴을 흘낏 치떠보며 우정 거칠게 말했다.

《소리치지 마오.》

김철수는 입술을 꽉 악물었다,

《놈들에게 응답신호를 하오.》

리명구의 그 말에 그는 속삭임과도 같은 소리로 《알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윽고 고동소리가 울렸다. 길고 짧은 배고동소리, 웅글고 정답고 부드럽고도 억센 배고동소리, 귀항의 부두에서 울릴 때면 가슴이 뭉클해지던 배고동소리였다.

미국잠수함이 또 찢어지는듯 한 기적소리로 신호해왔다. 리명구는 놈들이 16통로를 찾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16통로란 바다우의 모든 배들사이에 통하는 국제대화통로이다.

《초단파대화기를 동작시키시오.》

리명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철수가 초단파대화기의 전원을 련결시켰다. 잠시 급격하게 뛰놀던 계기바늘이 파르르 떨면서 한자리에 멎어섰다. 16통로이다.

리명구는 초단파대화기의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대고 영어로 말했다.

《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선 〈무포〉호선장이다. 무슨 일인지 말하라.》

그러자 아주 성급한 영어말소리가 진동판을 세게 울렸다.

《북조선상선 들으라!…》

몹시 갈개는 녀석인듯 했다. 그 위혁적인 첫마디에 리명구는 모욕감을 느꼈다. 관자노리의 피줄들이 푸들푸들 들뛰는것을 느끼며 그는 거칠게 쏘아붙였다.

《다시 말한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무역선 선장이다. 너는 누군가? 말하라!》

《나 아메리카해군잠수함 〈타잔〉호 함장이다.》

《흥, 벌써 그랬어야지.》

리명구는 이 말을 영어로가 아니라 우리 말로 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 다음 말은 또 영어로 번졌다.

《그럼 말해보라. 왜 우릴 찾는가?》

《우린 명령을 받고 왔다. 북조선상선 검열하겠다.》

《검열?》

《그렇다. 북조선상선 미싸일을 싣고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당장 배를 멈추라. 검열하겠다!》

리명구는 입술을 꽉 악물고있었다. 얼굴은 검붉어지다 못해 퍼런 빛이 돌 지경이였다.

그는 세찬 흥분을 이기지 못하여 숱진 눈섭을 흠칫거리며 두손을 맞잡고 마주 비틀었다.

《북조선선장 들었는가. 왜 대답이 없는가?》

갑자기 웬일인지 말을 할수가 없었다. 입안이 타들다 못해 목구멍까지 콱 메이게 했다. 그는 갓 면도를 한 푸리끄레한 턱을 손바닥으로 힘껏 문지르고나서 급기야 분노에 질린 청높은 웨침소리를 터쳤다.

《미국잠수함 함장, 내 말 들으라. 우리 배엔 그 어떤 미싸일도 없다!》

《북조선 선장!》

《뭐 감히 우리 배를 검열하겠다구?… 안된다!》

《북조선 선장, 경고한다. 우리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질수 있다.》

《…》

또다시 리명구는 두볼을 푸들푸들 떨고있을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웬일인지 오만무례한 적들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참을길 없는 울분이 그를 온통 뒤흔들어놓는듯 했다.

적잠수함에서 새된 기적소리가 또 울려왔다. 악에 받친 경고의 울부짖음소리, 초단파대화기에서도 역시 미군잠수함함장의 신경질적인 웨침소리가 귀아프게 계속 울려나오고있었다.

《북조선 선장, 대답하라. 순순히 응하지 않으면 강제로 검열하겠다.》

《…》

리명구는 피끗 김철수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자기가 들은 말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려는것이였다. 철수는 입을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긋는것이 마치도 숨이 가빠 모지름쓰는듯 했다. 그 역시 미국잠수함함장의 말을 알아들었던것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은가?… 리명구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20년이나 배를 타고 세계의 대양을 헤가르며 살아온 그였지만 적함과 직접 맞다들어보기는 처음이여서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급하게 생각을 굴리던 그는 배지휘마이크앞으로 달려갔다.

《통신장, 나 선장이요.》

《예, 선장동지. 통신장 듣습니다.》

《배전체성원들이 내 말을 들을수 있게 련결시키시오.》

《벌써 련결해놓았습니다. 선장동지!》

그러자 배의 요소요소들에서 선원들이 부르짖는 목소리가 고성기를 통해 울려왔다.

《선장동지,말씀하십시오.》

《선장동지, 놈들이 뭐라합니까?》

《미국놈들이 왜 우릴 쫓아옵니까?》

《어서 말씀하십시오. 선장동지!》

그들의 목소리가 그에게 힘을 주었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나서 퍼그나 갈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동무들, 지금 미국놈들이 우리 배를 검열하겠다고 하고있소. 우리 배가 미싸일을 싣고간다는거요.》

《예?》

《아니, 저놈들이?…》

격한 선원들이 이렇게 부르짖자 누군가 좀 조용하라고 웨쳤다. 다시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그러자 불현듯 배의 전체 50여명성원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숨쉬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리명구는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동무들, 이건 분명히 우릴 걸고들려고 미리 짜고든 도발이 분명하오. 그렇게 해서 우릴 모욕하려 하고있소.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짓밟으려 한단말이요. 그러니 이럴 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자 열띤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놈들과 싸웁시다.》

《본때를 보입시다. 선장동지!》

그는 낯익은 그들 전체 선원들의 분노에 찬 얼굴이며 울끈불끈 부르쥔 주먹들을 눈에 선히 보는듯했다. 그들의 힘찬 목소리를 들으니 졸아들던 가슴이 넓어지고 목에서 피대가 부풀어오르는듯 했다.

《동무들, 모두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만단의 준비를 갖춰야겠소. 놈들이 무슨짓을 할지 모르오. 칼과 도끼, 창들로 무장하시오!》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치부장동문 여기로 와주시오.》

《예, 여기와 있습니다.》

등뒤에서 울린 목소리였다. 주름투성이 이마빡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선장에게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전쟁참가자 한병권…

《좋습니다.》

그는 다시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기관장, 어떤 경우에도 전속을 보장하시오. 전체 조기원들을 초소마다 배치하고 비상사태에 대처할수 있게 준비하시오.》

《예, 알았습니다.》

이번에는 통신장을 찾아 조국의 무전대와 즉시 련계를 취할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끝에 조국에 보낼 무선전문을 불러주었다. 통신장이 공개전문으로 날리라는가 비공개 암호전문으로 날리라는가 하고 물어왔다. 그는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공개전문으로 날리오.》

그러자 등뒤에 서있던 한병권이 말했다.

《그러문요, 온 세상이 다 알게 해야지요.》

1등항해사 김철수도 두눈을 번뜩이며 부르짖었다.

《옳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리명구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때 한병권이 팔소매를 당기는바람에 그쪽으로 돌아섰다.

《선장동무, 헌데 저것들이 무어라고 계속 고아대는거요?》

아까부터 그는 초단파대화기에서 울려나오는 귀에 선 외국말에 오만상을 잔뜩 찡그리고있는것이였다.

《저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어째보겠다고 위협하고있지요.》

리명구의 설명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하였다.

《저런!… 그야말로 날강도들이구먼, 뭐 공해상에서 어쩐다구?… 암만 그래봐야 솜방맹이루 턱주가리 찌르는 격이지, 흥!》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으나 다시 생각하고 도로 넣고말았다. 담배지골로 유명한 그였지만 조타실에서 담배를 피워문적은 한번도 없다. 여느때같으면 《여보, 을지장군! 나가서 한대 태우지 않겠소?》하련만 지금은 그러지도 못하고있다.

그는 손끝을 코에 가져다대고 거기에 배여있는 담배진내를 맡으며 수상스럽게 움직이는 적잠수함을 살피고있었다.

《저놈들이 정말 어쩌자는걸가?》

《…》

리명구가 입술을 깨물며 잠자코있자 뒤쪽에서 김철수가 그를 대신하여 말했다.

《놈들이 어뢰를 쏠수도 있습니다. 보십시오. 기관실쪽을 겨누고있습니다.》

《진짜 쏘려는가?》

한병권이 또 웅글게 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머리를 가로저으며 자신있게 말했다.

《아니 쏘지 못해. 그저 위협해보는거지. 하지만… 어떻게 하나 배에 올라오려고 발악할거요.》

리명구가 불안스럽게 물었다.

《우리 배에요?》

《그렇소. 갈구리바줄을 걸고 올라올수도 있소. 그러니 결사전을 각오해야겠소. 문건들이랑 소각할건 다 소각하고… 난 저기 선미쪽에 가있겠으니… 선장동무, 정황을 봐가며 결단성있게 명령을 주시오. 다들 선장동무만 보고있소.》

《…》

리명구는 말없이 조타실에서 나가는 그의 구붓한 잔등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적함은 여전히 얼마간 거리를 두고 달리며 기적소리를 거듭 울리고있었다. 고래등같이 시꺼먼 적함의 선체가 물결을 헤가르는것을 지켜보고있느라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비로소 그는 이제 최후의 순간이 닥쳐올수도 있다는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이렇듯 뜻밖에 불쑥 닥쳐오리라고야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라운것도 아니다.

조국땅에 핵전쟁의 검은 구름이 드리우고있는 이때 조국을 멀리 떠난 만리대양우에서 적함과 충돌한다고 해서 이상할것이란 없다. 다만 우리들모두가 너무도 평화에 젖어 다가오는 전쟁의 위험을 보지 않았거나 보려고 하지 않았을뿐이다.

조국을 떠날 때 안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안해의 머리속에는 온통 수련이를 평양에 끌어올릴 생각뿐이다. 수련이 역시 그것을 바라고있으며 아버지가 힘써주기를 기대하고있다. 박두해오는 전쟁의 위험같은것은 보려고도 믿으려고도 하지 않고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이렇듯 눈앞에 닥치고있지 않는가. 지금 이렇게 최후를 각오하며 적들과 맞서고있지 않는가!…

그는 통신장을 찾아 비밀에 속하는 문건들은 다 태워버릴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선장실로 달려가 서랍을 뒤지고 금고를 열었다.

적들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될 문건들을 따로 갈라놓았다. 그때 책상우의 지령전화가 딸깍했다.

그는 금고안에 손을 넣다 말고 《나 선장이요.》하고 소리쳤다.

《선장동지! 1등항해사 김철수입니다,》

급한 목소리였다.

《왜 그러오?》

《선장동지, 앞을 보십시오. 지금 적들이…》

리명구는 허리를 쭉 펴고 시창밖을 내다보았다. 수평선 멀리로 떠가는 흰구름, 물결너머에서 어룽어룽 들뛰며 흔뎅이는 해빛, 단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김철수의 말을 듣고서야 배를 목표로 곧추 날아오는 군용기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입을 꽉 다물고 굳어져버렸다. 극도의 긴장으로 하여 금시 심장이 터져나갈것같았다. 점차 커져오는 발동기의 소음, 어데선가 채칵거리는 시계소리, 한순간 또 한순간이 피나는 모지름속에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