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감

마 감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지는 법이다. 이 평이하고 단순한 말은 조미간의 첫 뉴욕공식회담때 우리측 단장인 문선규가 한 말이다. 1993년 6월 2일부터 11일간에 걸쳐 전원회담 4차, 단장회담 3차, 기타 실무접촉 등 6차 총 50시간에 걸쳐 진행된 치렬한 공방전끝에 미국측이 끝내 정치공약을 약속하고 문건토의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때 미국측은 우리가 조약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문제토의를 계속한다는 단 두문장으로 된 문건을 내놓았었다. 그것을 본 문선규는 쓰겁게 웃으며 《당신네 문건 만들기 매우 힘들어하는것 같은데 우리가 도와주겠다. 원래 우리는 문건을 두개 준비했는데 다른것을 내놓으면 당신네가 기절초풍할것 같아 이것만 내놓는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준비한 문건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미국이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내정불간섭, 핵위협중지를 공약하고 조선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것 등의 내용을 담은 사실상 불가침선언과 같은것이였다. 그 문건토의에 또 9시간이 걸렸다. 문건에 지적된 조항 하나하나를 놓고 지어 문장표현에 이르기까지 종일 격렬하게 싸우던 끝에 미국측단장인 미국무성정치군사담당차관보 로버트 갈루치는 그만 우거지상이 되여 《정말 회담이 간고하오. 왜 이렇게 문건이 자꾸 커지오?》하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문선규는 걸걸한 목소리로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지고 조선문제는 만질수록 더 커지오.》라고 웃으며 말했다. 통속적이면서도 깊은 의미가 있고 해학적이면서도 준엄한 경고가 들어있는 말이였다. 그렇다! 조선문제는 만질수록 더 커지고 다칠수록 더 심각해진다. 그것은 우리의 《핵문제》가 시작되던 그때부터 얻어진 수많은 극적사변들이 잘 말해주고있다. 사실상 미국이 우리의 두개 군사대상에 대한 개방을 강요하면서 압살공세를 시작했을 때 과연 그들이 우리가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탈퇴하는 대결단을 내리리라는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과연 그들이 《팀 스피리트》핵전쟁연습을 재개하고 전쟁을 몰아오고있을 때 오래지 않아 우리앞에 무릎꿇고 불가침선언과 같은 정치공약에 도장을 찍게 되리라는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1993년 6월 11일, 바로 우리의 조약탈퇴가 법적효력을 발생하기 전날에 뉴욕에서는 력사적인 조미공동성명이 채택되였다.

또다시 세계가 들끓었다. 《북조선의 대승리》, 《김정일각하의 령도예술의 극치》, 《김정일각하의 특출한 외교지략과 령도의 결과》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는 가운데 미국의 호전세력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갈루치의 목을 떼야 한다, 미국외교사상 최대의 머저리라고 떠들었다. 그것이 클린톤외교에 대한 로골적인 불만과 비난이였으므로 클린톤은 갈루치가 일을 잘해서 축하한다는 내용의 대통령성명을 발표하여 반대여론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극심한 반발과 비난의 화살을 받으면서도 클린톤행정부는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타협이다.》라고 하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였고 일본과 남조선도 전쟁의 위험에서 풀려났다고 숨을 돌렸다. 그러나 미국의 호전광들은 전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전쟁으로써만 조선을 놀래우고 굴복시킬수 있으리라는 어리석은 야망을 버리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1994년 2월 뉴욕에서 다시 조미사이의 당면한 동시행동조치가 합의되였으나 다음달 3월에 열기로 한 제3단계 스위스 제네바 조미회담은 류산되였다. 미국이 부당한 핵사찰수용문제, 북남고위급회담특사 교환문제 등을 구실로 군사적위협을 시작했기때문이였다. 또다시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다. 《키티호크》, 《인디펜던스》핵항공모함전단들이 밀려들었고 남조선에 신형미싸일들이 배비되기 시작하였다. 핵문제는 다시금 대결원점에로 되돌아갔다. 위협과 공갈, 분노의 선언··· 성명, 기자회견, 대변인담화, 각서··· 93년의 봄과 같이 전쟁은 불가피한것으로 되였다. 미국대통령자신이 일본에서 가진 기자회견때 우리에 대한 《대보복》과 《그것은 북조선의 국가적종말을 의미할것이다.》라는 폭언을 했다.

눈덩이는 굴릴수록 커지고 조선문제는 만질수록 더 커진다. 드디여 국제원자력기구에서 탈퇴하는 조치가 취해지고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없이 8, 000개의 핵연료봉을 교체하는 자위적용단이 또 실천에 옮겨졌다. 지진과 같은 폭발, 번개가 번쩍이고 무서운 굉음이 또 지구를 흔들었다. 이러한 가운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전 미국대통령 지미 카터를 만나주시였다. 우리의 일관한 평화애호적립장,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우리의 존엄을 건드리는 그 어떤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 싸울 의지와 결심에 대하여 일깨워주시였다. 미국은 뒤걸음쳤다. 한걸음 또 한걸음 힘겹게 물러서고 마지 못해 양보하고 사죄하였다. 1994년 7월 14일 다시 이어진 제네바회담에서 문선규가 《대보복》이요 뭐요 한 클린톤의 망발을 되게 문제세웠을 때 미국측 갈루치 단장이 대통령의 그 발언은 강경자세를 보여준 제스츄어에 불과하다고 애써 변명한것이 바로 그 실례이다. 이렇듯 우리의 《핵문제》는 전쟁을 그림자처럼 달고다니였다. 전쟁의 위험은 한시도 이 땅을 떠나본적이 없었다. 매일 두차례씩 어김없이 오고가는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는 가고 왔다가는 또 갔다. 적들은 《핵문제》라는 폭풍을 타고 격랑처럼 밀려들어 사회주의조선의 성벽을 치고 또 쳤지만 세찬 물보라만 흩날렸을뿐··· 마침내 미국의 호전광들은 락심천만하여 한숨짓고 후회하였어도 때는 이미 늦었었다. 미국은 빌붙지 않을수 없었다.

 

갈루치 ; 우리는 당신들을 존중한다. 앞으로 조선반도뿐만아니라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안전과 평화는 바로 우리들, 미국과 조선에 달려있다.

문선규 ; 그건 누구의 말인가, 당신의 생각인가?

갈루치 ; 백악관의 말이다.

문선규 ; 그러면 우리도 초대국이라는건데···

갈루치 ; 그렇다, 당신네는 초대국이다. 미국과 같은 초대국이다!···

 

지금 조선은 세계유일초대국인 미국과 대등한 지위에 서있다. 동방의 작은 나라인 조선, 한때 세계 지도에서 빛을 잃었던 조선··· 가난과 수모, 사대와 굴종의 한많은 력사를 더듬어보면 조선의 외교관들이 처음 미국땅에 발을 들이민것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있은지 얼마후였다. 6품관이였던 박정양을 비롯한 5명의 첫 공사관원들이 백악관에 신임장을 봉정하기 위해 워싱톤에 나타났었다. 상투를 틀고 통영갓을 머리에 쓴 사람들, 후주른한 도포자락을 너펄거리며 한손엔 금시 부스러뜨릴듯 부채를 꽉 움켜쥐고서 사방을 두릿거리며 번화한 워싱톤시가를 허둥지둥 걸어간 사람들··· 그 괴이한 차림의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워싱톤시민들이 거리에 밀려나왔다고 한다. 그때 위축되고 얼떠름해서 떠들썩한 조롱에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며 걸어간 그 사람들이 생각한것은 무엇이였을가. 양키들의 조롱과 야멸찬 휘파람소리에 대한 분노였을가, 수치였을가, 아니면 비굴한 순종이거나 궁상스러운 허세, 혹은 뼈에 사무치는 렬등감이였을가, 피눈물나는 한이였을가?···

민족의 자존심은 국력에 정비례된다. 국력이 강해지면 민족의 존엄도 높아지고 국력이 피페해지면 민족의 얼도 병들어버린다.

1994년 10월 21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사이의 기본합의문》이 발표되였다. 동시에 미국대통령 빌 클린톤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담보서한을 보내여왔다.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

 

김 정 일 각 하

 

각하

나는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될 경수로발전소대상의 자금보장과 건설을 위한 조치들을 추진시키며 1호경수로발전소가 완공될 때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될 대용에네르기보장과 필요한 자금조성과 그 리행을 위한 조치들을 추진시키겠다는것을 당신께 확언하는바입니다.

이와 함께 나는 이 원자로대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책임이 아닌 다른 리유들로 하여 완공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여 미합중국 국회의 승인밑에 미합중국이 직접 맡아 완공하도록 할것입니다. 동시에 나는 대용에네르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책임이 아닌 다른 리유들로 하여 제공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나의 모든 직권을 행사하여 미합중국 국회의 승인밑에 미합중국이 직접 맡아 제공하도록 할것입니다.

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합중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기본합의문에 지적된 정책들을 계속 리행해나가는 한 이 행동방향을 견지할것입니다.

경의를 표합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빌 클린톤

1994년 10월 20일 워싱톤 백악관

 

력사의 대하가 흘러간다. 격변하는 세기말의 크고작은 사변들, 침략과 도발, 통합과 분리, 국내전쟁, 지역분쟁, 종족싸움, 종교적알륵, 전횡, 간섭, 소요, 음모, 발명과 건설, 충돌과 재해··· 실로 기쁨과 슬픔, 영광과, 치욕, 희망과 절망의 사연들이 력사의 대하에 떠실려간다. 어떤것은 순간에 잊혀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가 하면 어떤것은 소용돌이치며 물멀기를 솟구치기도 한다. 때로 지진과 같은 폭발에 강물이 끓고 뒤번져지며 사품쳐흐르다가 돌연 그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가, 력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그 시대를 선도하고 이끌어준 령도자는 위대하다. 력사는 그 령도자의 이름으로 새로운 시대를 금문자로 아로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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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깊어가는 수도의 밤거리를 승용차로 달리고계시였다. 비가 내리고있었다. 시창에 뿌려진 비방울들이 줄지어 흘렀다. 승용차의 유리닦개가 간단없이 오고가며 비물을 훔쳐내군 했으나 물줄기는 쉼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뿌잇해진 거리의 장식등들, 포도에 흐르는 비물에 어룽어룽한 불빛들이 흔뎅이였다. 드물게 오가는 차들의 앞머리가 물에 젖어 번들거리고 가을철답게 화려한 황금색으로 단장했던 은행나무들이 소리없이 하나둘 잎사귀를 떨구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토록 단잠에 든 거리의 창문들을 내다보고계시였다. 잠 못이루시는 밤마다 수도의 거리를 돌고돌며 사색을 이어가는데 습관되신 그이이시였다. 그러나 이밤은 사정이 다르다. 방금전까지 조미회담을 끝마치고 돌아온 우리 대표단 성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계시였었다. 대표단 단장인 문선규와 참사 김세환, 순회대사 최우정, 참사 손무현 등··· 심각한 핵대결전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그들을 축하해주시고 앞으로 계속될 어려운 싸움에서 틀어쥐고나가야 할 원칙과 방도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였었다. 기쁨도 컸고 울음도 많았었다. 치하와 고무, 축배, 목메인 감사, 맹세··· 화기에 넘친 접견이 끝나고 그들이 모두 돌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밤의 정적을 깨뜨리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순간 그이께서는 습관적으로 옷깃을 여미며 송수화기를 잡으시였다. 례사로운 그 전화종소리를 부지불식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종소리로 여기신것이였다. 그러나··· 별안간 뜨거운것이 솟구쳐오름을 느끼시였다. 가슴속에 밀려드는 뜨거운 물결, 목메이는 격정, 눈굽이 저릿저릿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천하를 휘여잡는 그이이시건만 눈물도 많으시였다. 마음속에 안고계신 사랑과 충정이 하도 커서 아픔도 많으신 그이이시였다. 그이께서는 곧 밖으로 나와 차에 오르시였다. 기쁜 일, 슬픈 일이 생겨도 혼자서만 알고계실수 없어 어버이수령님께 보고드리려 때없이 차를 달리시던 그이이시였다.

비는 여전히 줄금줄금 내리고있었다. 승용차의 시창을 하염없이 적시는 비줄기, 유리닦개가 미처 훔칠새 없이 또 줄지어 흐르고··· 앞이 잘 보이지 않으시였다. 장식등의 불빛마저 흐릿해졌다. 그때 유난히 붉게 명멸하는 글발들이 눈에 뜨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어버이수령님의 만수무강을 바라던 축탑에 새겨진 글발, 김정일동지께서 어버이를 잃은 온 나라 눈물의 바다우에 세워주신 신념의 구호, 비물에 젖은 붉은 글발들이 더욱더 진하고 선명하게 두드러지며 가까와졌다. 그이께서는 그 글발 한자한자를 뜨거운 마음속에 새겨가며 이윽토록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드디여 그곳에 이르시였다. 그곳, 숙연한 정적이 깃든 밤,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의 념원과 한생의 고귀한 업적을 숭엄히 새겨가는 회억의 방, 사색의 방, 불빛마저 수령님께서 한생 추켜들고오신 붉은기의 색조로 물들어있다. 고요하다. 무한과 영원··· 수령님께서는 지금도 조용히 사색에 잠겨계신다. 눈덮인 만주광야의 말발굽소리를 들으시는듯, 남해의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는듯··· 우주에 비껴가는 사색의 빛발, 창창한 조국의 미래를 그려보시듯···

김정일동지께서는 발걸음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또 한걸음 옮기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사색을 깨칠세라 숨소리마저 저어하신다. 정중한 고요, 엄숙한 정적··· 문득 오래전 일이, 지금처럼 발자국소리를 낼세라 수령님의 침상을 밤새워 지키시던 그때의 일이 떠오르신다. 잊을수 없는 1965년 4월,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불편하신 몸으로 조국을 떠나 적도의 나라 인디아 방문길에 오르시였었다. 머나먼 항로끝에 이어진 무더위속의 연도행사, 무개차를 타고 그 나라 인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숙소로 가시는 과정에 수령님의 병세는 더해지기 시작하였다. 그이께서는 곧 비상의료대책을 세우고 장밤 수령님의 침상을 지키시였다. 매 시간 체온을 재고 방안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어버이수령님의 숨결소리에 귀를 기울이시였다. 발자국소리를 낼세라 극히 조심하면서 침상곁의 작은 의자에 앉아 온밤 꼬바기 밝히며 마음을 졸이시였다. 하루밤새 자신의 입술이 타들고 눈에 뜨이게 축가신줄도 모르시였다. 다음날 아침 그이의 축가신 모습에서 모든것을 다 짐작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아직 몸이 불편하셨지만 열이 내리니 몸이 거뜬해졌다고 하시며 우정 밝은 안색으로 다음 일정을 준비하시였었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도 마음을 놓지 않고 엄정한 치료대책을 세우는 한편 계속 밤잠을 미루시였다. 며칠후 어버이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의 길우에서 맞으시는 탄생일이 왔다. 뜻깊은 4월 15일의 그 아침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나라 대사관에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에서 가져오신 술로 어버이수령님께 축배잔을 드리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연회상을 둘러보시며 조국에서 생일을 맞을 때보다 더 잘 차렸다고, 이국땅이지만 조국의 산해진미가 다 있다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어 보기에도 시원하고 구미가 도는 평양랭면이 상에 오르자 수령님께서는 열대나라에 와서 평양랭면이 어찌된 일인가고, 누가 이런 생각까지 했는가고 물으시였다. 모든 수행원들의 눈길이 김정일동지께 향해진것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더 묻지 않으시고 외국에 와서 지성어린 생일상을 받고보니 지난날 이역땅에서 생일을 모르고 살아온 쓰라림이 가셔지는것 같다고, 평양랭면이 자신의 병세까지 말끔히 가셔주고있다고 하시며 《고맙소, 정말 고맙소.》하고 거듭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흘러간 먼 시절의 그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시다. 또 그뒤를 이어 밀려드는 가지가지의 추억에 눈시울이 뜨거우시다. 수령님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수령님의 기쁨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그이이시기에 추억도 많고 아픔도 많으시였다. 준전시때의 그 준엄한 나날에도 겹쌓인 피로에 눈시울이 무거워지면 창문을 열고 어머님께서 계시는 대성산 주작봉마루를 바라보시던 그이이시였다. 어머님께서 수령님을 잘 받들어모시라고 하신 간곡한 당부를 생각하시며 새로운 용기를 가다듬던 그이이시였다. 오직 한마음 어버이수령님께 더 큰 기쁨을 드리기 위해 쉼없이 일하며 분투하여오신 그이, 지금 그이께서는 수령님께 드릴 크나큰 기쁨을 안고 오시였다. 미국대통령이 그이께 담보서한을 보내온것이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한생 조국의 광복과 통일을 위하여 제국주의와 싸워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받으셔야 할 항복서한이 아니였던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고 걸음을 멈추시였다. 경건한 자세로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르신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 금시 눈을 뜨고 바라보시는듯, 《이 깊은 밤에 웬일이시오?》하고 조용히 물으시는듯··· 크나큰 아픔에 또 목이 꽉 메이신다. 지금껏 남모르게 애써 참아오신 그 모진 아픔과 슬픔이 밀물처럼 엄습해오는것을 느끼신다. 기쁨을 안고오셨지만 심중의 아픔은 가셔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이의 표정은 숭엄하시다. 새 세기의 위업을 떠메신 그이의 눈빛은 거룩하시다.

《수령님, 우리 인민은 언제나 승리할것입니다!》

《나는 확신하오. 21세기는 김정일세기로 빛날것이요!》

밖에서는 어느새 비가 멎고 하늘이 개였었다. 엄숙한 고요, 삼라만상이 숨을 죽이고있었다. 밤하늘의 수억만 별들이 귀를 기울이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