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8

 

제 6 장

8

 

태혁은 장강군의 발전소건설에 총력량을 집중할데 대한 장군님의 전화를 받고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 분주한 시간을 보내였다.

그래 장강이다. 거기서 우리의 피어린 전투를 결속하게 될것이다! 태혁은 주먹을 부르쥐고 분연히 일어섰다. 그가 로력도 자재도 운수수단도 장강군발전소건설장들에 우선적으로 들이밀 결심을 품고 도지휘부에 나타나 장군님의 전화내용을 전달하자 지휘부성원들이 일제히 무릎을 치면서 환성을 올렸다.

모든 발전소건설장에서 한창 맹렬한 전투가 벌어져 정신을 차릴수 없는 때 대안의 발전기들때문에 장강군이 골탕먹게 되였다고 걱정하면서도 누가 장강군에서 마지막전투를 결속하게 되리라고 상상인들 했던가.

요즘은 그 어떤 회의도 15분을 초과하는 일이 없었다.

오늘도 태혁은 지휘부회의가 끝나자 대안중기계공장에서 보장하기로 된 발전기들만 믿지 말고 자체로 만들데 대한 도당위원회 결정을 도안의 모든 공장, 기업소 당위원회들에 시급히 내려보내였다. 때를 같이 하여 만포와 자성, 화평지구의 발전소들에 나가 있는 림준과장한테서 적지 않은 발전기예비를 탐구해냈으니 속히 기술자들을 보내달라는 련락이 와 리경훈이 출장차림을 하고 태혁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로학자는 무릎까지 처져내린 솜외투에 허술한 배낭을 메고 겸손하게 풍뎅이를 벗어쥐였다.

《책임비서동무, 이제 곧 떠나겠습니다.》

지난 넉달동안의 어려운 투쟁속에서 리경훈이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막역지우가 된 태혁은 한동안 그의 손을 뜨겁게 잡고 놓지 않았다.

《경훈선생, 또 수고하게 됐군요.》

《원, 별소릴··· 나를 한전호속에서 싸우는 로병처럼 생각하면 됩니다.》

《예. 선생은 여불없는 로병같습니다. 큰 키에 두툼한 동화며 긴외투··· 난 선생의 이 훌륭한 모습을 일생 잊을것 같지 못합니다. 늘쌍 부탁하는 말인데 아무쪼록 몸을 조심하십시오. 아직도 우리의 투쟁은 간고합니다.》

《알고있습니다. 무척 힘겨워들 하지요. 하지만 내 눈에는 모든 사람들이 돋보입니다. 참으로 자강도사람들의 투쟁은 고난에 차있으면서도 부럽게만 생각된다니까요.》

로학자가 탄 《갱생》차가 얼음이 깔린 중앙광장쪽으로 사라져가는 모양을 이윽토록 뜨거운 눈길로 바래워주고난 태혁은 곧 승용차에 올랐다.

그는 강계시의 발전소건설정형을 돌아보고 다시금 성간군을 향하여 급히 떠났다. 순간 성간군당책임비서가 그가 찾아가면 늘쌍 웃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들던 모습이 떠올라서 혼자 빙긋이 웃었다. 건망증이 심하기로 소문난 그 리흥덕이가 아니나다를가 별하발전소의 지하갱도안에서 건설자들과 어울려 일하다가 태혁을 알아보자 부리나케 아래우주머니를 꾹꾹 만지며 야단을 쳤다. 보아하니 안경과 수첩을 어디다 뒀는지 몰라서 헤덤비는게 분명했다. 기름한 얼굴의 두눈을 흡뜨고 《아뿔사! 이런 변이라구야.》하고 당황해하는것같던 리흥덕은 뒤늦게야 태혁의 앞으로 달려오며 꾸벅 인사를 했다.

《수고하오. 지금 뭘 하오?》

《어제부터 돌격대원들을 갱도미장작업에 붙이고 냅다 미는중입니다.》

태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리흥덕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워낙 키꼴이 크고 뼈대가 굵게 생긴 일군인데 면도도 하지 않은 두볼은 푹 꺼지고 코만 삐죽하게 두드러져보였다. 태혁은 뒤이어 리흥덕이와 함께 굴간안으로 들어갔다. 한절반 미장작업을 마친 100m 지하갱은 이전에 돼지우리로 쓰던 어지러운 굴간과는 완전히 딴판이였다. 그때엔 코를 찌르는 구린내와 얼굴에 달라붙는 하루살이떼의 성화로 눈을 뜰수 없었는데 지금은 지하철도의 웅장한 구조물을 둘러보는 기분이였다.

《여보, 이거 정말 굉장하구만.》

태혁은 너무도 희한하여 두손을 허리에 올려짚고 황홀한 심경에 잠겨 말했다.

《천지개벽이라는게 바로 이런거요. 이제 저 천정에다 새하얗게 도색까지 하면 볼만 하겠소. 군당책임비서동무, 평양의 고려호텔에 가봤지? 거기 드높은 천정에 매달려있는 무리등과 같은 화려한 장식등을 우리도 여기다 만들어달자구. 이왕이면 군데군데에 벽화들도 멋들어지게 그려붙이구. 난 이번 전투기간에 자강도안의 모든 발전소들을 궁전화하자는거요. 어떻소?》

《전적인 찬성입니다.》

《그래, 맘먹고 달라붙으면 못할게 없소.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자강도로동계급의 본때를 보이자구!》

태혁은 발전기실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겨갔다.

드넓은 현장안에서 제강소의 로동자, 기술자들이 설비조립작업에 한참 여념이 없었다. 누가 누군지 도무지 분간해보지 못할 정도로 얼굴이며 작업복에 온통 새까맣게 기름매닥질을 하고 불이 번쩍나게 일손을 다그치는 그들의 미더운 모습을 태혁은 한참이나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성간군이 별하와 남리발전소만 완공해도 전기부자가 되겠소.》

《예, 작년말 건설을 시작할 때 당장 먹고살아갈 일도 급한데 어떻게 발전소도 건설하고 살림집도 짓는가, 군당책임비서가 정신나갔다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모두들 사기충천하여 죽을둥살둥 모르고 일합니다.》

《군당책임비서가 고생한 보람이 있단 말인데 얼마나 좋소. 동무네 군에 동원된 도청년동맹돌격대원들이 몇명이나 되오?》

《약 150명가량 됩니다.》

《내가 찾아온건 다름이 아니요. 오늘저녁에 그들을 철수시켜 당장 장강군에 보내야겠소.》

리흥덕은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와는 여간 승벽이 강하지 않다. 그는 자기네 군의 발전소건설을 도와주고있는 청년동맹돌격대원들을 장강군에 넘겨주라고 하자 펄쩍 놀라며 우는 소리를 했다.

《아니, 그럼 우린 쫄딱 녹습니다.》

《군말 말고 보내라면 보내오. 장강군의 공사형편이 대단히 긴장해졌소. 동무네만 발전소를 완공하고 장군님께 보고드릴테요? 지금은 네일내일 가릴 때가 아니요.》

태혁은 구태여 긴말을 하지 않고 돌아서나와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연해서 그를 바라보던 리흥덕이 그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씨근거리며 뒤쫓아와서 멋적게 뒤덜미를 쓸어만지였다.

《책임비서동지, 저 구봉령도로관리원 복실이의 신랑감이 생겼습니다.》

태혁은 뜻밖의 희소식에 호기심이 동하여 발길을 멈추었다.

《장강군의 굴착기운전공인데 눈섭이랑 량옆으로 치째진게 보통 사내싸게 생긴 녀석이 아닙니다.》

《당사자들끼리 만나봤소?》

벌써 여러차례 성간군당책임비서에게 복실의 대상자를 좋은 청년으로 물색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던 태혁은 엄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만나봤지요. 일이 좀 별나게 되긴 했습니다만··· 전번달에 복실이가 회령에 가서 백살구나무모를 한자동차 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때 눈보라치는 밤에 굴착기부속을 구해가지고오던 한 청년이 그 자동차와 맞다들자 태워달라구 무작정 앞을 가로막아 나섰습니다. 성이 독같이 난 운전사가 결김에 주먹을 부르쥐고 뛰여나가자 복실은 간이 콩알만 해서 울상이 되여버리구요.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두 청년이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는바람에 복실은 마구 웃어댔답니다. 글쎄 군대때 한부대에서 복무하며 포차를 끌었던 친구들사이의 감격적인 상봉이 벌어졌다나요. 마음씨 고운 복실은 너무도 기뻐서 운전칸의 자기 자리까지 굴착기운전공에게 양보하고 적재함에 올라가 앉았는데 두 친구는 그간의 회포를 나누며 오는 정신에 적재함의 처녀에 대해서는 감감히 잊어버렸답니다. 서너시간이 실히 지나서야 갑자기 처녀생각이 난 굴착기운전공이 자리를 바꾸려고 적재함에 올라가보니 글쎄 복실이가 동태짝처럼 꽁꽁 얼어서 말도 못하더랍니다.》

태혁은 리흥덕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겁이 더럭 난 굴착기운전공은 복실을 덥석 안고 길옆의 농가로 뛰여갔다누만요. 아닌밤중에 처녀를 안고 나타나서 사람을 살려달라구 소동을 피우는데 제 정신이 아니더라는겁니다. 복실이가 그날 밤에 귀인을 만났지요. 알고보니 그 집 할머니가 젊었을 때 복실이처럼 온몸에 동상을 입었다질 않습니까. 늙은이는 얼른 실겅우의 함지를 내리워 물을 쏟아붓고 굴착기운전공을 내쫓더라는겁니다. 그리고는 복실을 알몸으로 만들어 함지안의 찬물속에 눕히고 얼음독을 뽑아내는데 지금 젊은이들이 그런 문세를 압니까? 굴착기운전공은 복실이가 잘못될가봐 성미급하게 방안으로 뛰여들다가 할머니가 한바가지 퍼붓는 물벼락을 맞고 도로 쫓겨나왔다누만요. 그 고마운 할머니의 구원을 받아 이튿날 복실이가 무사히 돌아올 때에는 흥이 나서 적재함우에 앉아 목청을 돋과대며 노래까지 부르더랍니다.》

리흥덕의 능청스러운 구변에 태혁은 어처구니없어 웃고말았다.

《그 친구 정말 괴짜로군.》

《이후에 복실의 새 솜외투까지 지어가지고 와서 복실이 어머니앞에 내놓으며 그 이야기를 실토하더라질 않습니까. 딸을 시집보내지 못해 속상해하던 복실의 어머니는 연분이 될라구 그런 일이 생겼다면서 굴착기운전공을 놓칠가봐 야단입니다.》

《됐소. 복실이 어머니도 마음에 든다니 성간군당책임비서가 나서서 성사시키오. 발전소건설도 하고 복실의 신혼가정도 무어주잔 말이요.》

태혁은 시간이 급해서 그쯤 말해두고 승용차에 오르려는데 건망증이 심한 리흥덕이가 뭘 또 까먹었는지 손바닥으로 이마빡을 딱 치면서 다가섰다.

《저, 그런데 도투바우같은 장강군당책임비서가 문제입니다. 일전에 도당에 올라간 기회에 만나서 그 말을 했더니 〈내 동무의 능구렝이같은 속심을 모를줄 알구? 우리 굴착기운전공이 탐나면 그저 공손히 달라구 하오.〉하구 눈을 찔 흘기질 않겠습니까. 한번 만나서 단단히 침을 놔주십시오.》

《여보. 장강군당책임비서와 사돈을 맺는다는게 쉬운줄 아오? 만날 자기 군 욕심만 차리며 아웅다웅하지 말고 이번엔 동무네도 손을 잡소! 도청년동맹돌격대원들도 당장 보내구.》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가 아무렴 굴착기운전공이 아까와서 복실이의 혼사를 막아나설 사람인가. 겉보기엔 푸접이 없고 무뚝뚝해보이지만 도량으로 말하면 성간군당책임비서보다 크면 컸지 켤코 작지 않다. 그런즉 오래동안 끌어오던 복실의 신랑감문제는 십중팔구 해결된셈이 아닌가. 그가 조금후에 구봉령을 넘어오면서 보니 오늘도 복실이네 일가식솔들은 눈덮인 미끄러운 령길로 자동차들이 안전하게 다닐수 있게 석비레를 실어다 깔면서 바지런히 일손을 놀리고있었다.

장군님께서 오시는날 온 자강땅에 회령의 백살구꽃을 활짝 피우겠다는 처녀! 그 아름다운 꿈을 안고 나날이 어여뻐져가는 복실이한테 신랑감이 생겼다니 태혁의 마음도 이만저만 기쁘지 않았다. 그가 구봉령의 험한 령길을 넘어 도당에 도착했을 때였다.

좀체로 남편의 사무실에 찾아다니지 않던 안해가 무슨 긴한 용무가 있는지 뒤따라 들어와서 그 무슨 희귀한 식물표본처럼 종이에 따로따로 정성껏 싼 여린 풀줄기들을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이게 뭐요?》

《우리 집 시험포전의 농사작황이예요. 강냉이와 감자, 완두콩, 파인데 리미액미생물비료를 준것과 주지 않은것이 벌써 이렇게 헨둥히 차이가 나요. 보라요. 리미액으로 종자처리를 한 강냉이와 감자, 완두콩은 이렇게 키도 크고 줄기가 실하며 뿌리가 긴데 이쪽건 형편없이 허약하지 않나요? 얼마나 대조가 심해요?》

태혁의 두눈은 금시 기쁨으로 빛났다. 될성부른 나물은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이게 바로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가. 성실이가 연구한 리미액비료의 성공을 확정적으로 실증해주는 증거물이나 다름없었다.

《여보, 이거 정말 맞긴 하오?》

태혁이 어찌나 큰소리를 질렀는지 안해가 깜짝 놀라며 가만가만 타일렀다.

《여보, 좀 진정하라요. 내가 뭐 없는 사실을 꾸며내겠어요?》

태혁은 도무지 자신을 자제하지 못했다. 그는 두손으로 책상모서리를 꾹 눌러짚고 안해를 바라보다가 또다시 흥분하여 떠들어대였다.

《이건 대단한 성과요! 금년 농사는 떼여놓은 당상이란 말이요. 성실동무가 이걸 봤소?》

《봤어요. 장강군 읍농장의 온실에 심은 감자와 남새의 발육도 좋다며 기뻐서 어쩔바를 모르더군요.》

《그런데 왜 그 동문 오지 않구 당신이 왔소?》

신숙경은 얼른 대답을 못하였다. 말없이 마주 쳐다보는 안해의 두눈에는 까닭 모를 눈물이 가득 괴여오르고있었다.

《여보, 왜 그러오? 울긴 왜 우나 말이요. 어서 말하오!》

태혁은 참을성을 잃고 소리쳤다.

《성실동문 중병에 걸렸어요. 너무 연구사업에 몰두하다보니 전신마비가 왔대요. 난 그런줄도 모르고있다가 오늘에야 알았어요. 에그, 가엾기도 하지. 연구사업때문에 곡절을 겪으며 어린 자식을 잃었는데 이젠 자기까지 그렇게··· 어떡하면 좋아요. 류설미선생이 사흘동안이나 꼬박 붙어 좀 차도가 있다지만 걸음걸이랑 영 말이 아니예요.》

태혁은 갑자기 담벽에 이마를 되게 부딪친것처럼 머리속이 뗑해졌다. 아직도 과학자로서 한창 나이인 성실이가 큰 일을 해놓고 중병을 만난 일이 생각할수록 가슴아팠다. 작년말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과학원으로 불리워올라갔을 때 성실이가 겪은 마음고생인들 얼마나 컸던가. 그것으로 과학자인 자기의 인생이 끝났다면서··· 그가 자강땅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던 일이 되살아올랐다.

그처럼 절망의 나락속에 깊이 빠져버렸던 성실이가 장군님의 신임과 사랑을 받아안고 자기앞에 와서 눈물을 흘린 날에는 태혁도 눈굽이 젖어들지 않았던가. 죽어도 그 크나큰 은정만은 정녕 잊을수 없어 그 이후론 장군님께 보답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리미액비료연구사업에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온 성실이··· 그의 신상에 생긴 병환이 너무나도 뜻밖이여서 태혁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컴컴한 얼굴로 서있었다.

《그래 성실이가 어느 병원에 입원했소?》

《병원에 갔으면 좋지요. 자기는 죽어도 현장을 떠날수 없는 몸이라며 실험실에서 치료를 받고있어요. 자기가 직접 리미액의 발효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고 하여··· 첫 하루이틀은 담가에 실려서 종균배양현장을 돌아봤는데 직원들이 그걸 보구 모두 울었다고 해요.》

태혁은 가슴이 터지는듯 하여 방에서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리고는 리미액공장이 자리잡고있는 서산동을 향해 성급히 떠났다. 그가 리미액공장에 찾아가면 늘쌍 차소리를 가려듣고 반갑게 달려나오군 하던 성실이였는데 오늘은 아무도 나타나는 사람이 없었다. 빈 집뜨락처럼 썰렁한 기운이 떠돌뿐이였다. 차에서 내린 태혁은 대문을 열어 젖히며 달려 들어가다가 마침 위생가방을 들고나오는 류설미와 마주치자 성실이 어디 있는가고 다급히 물었다. 류설미는 종균배양실에 있다면서 현장으로 안내했다. 태혁은 그를 따라 몇발자국 옮겨짚다 말고 한자리에 우뚝 굳어져버리였다. 세네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림성실이 힘겹게 마주 걸어왔다. 아니, 걷는다기보다 그들의 팔에 매달려오고있었다. 태혁은 그만 눈앞이 확 흐려지는것을 느끼며 두손으로 성실의 갸날픈 어깨를 잡고 울부짖었다.

《성실동무, 어쩌다 이렇게 됐소. 나한테는 왜 알리지도 않았는가 말이요!》

성실의 두눈에 대뜸 눈물이 가득히 고이였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용서하십시오. 전 책임비서동지가 어떤 어려움을 이겨가는지 잘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했는데···》

성실은 얼굴을 적시는 눈물이 성가신지 머리를 젓고나서 애써 웃음을 지었다. 여위고 창백한 얼굴에 한순간 떠오른 그 이지러진 웃음을 지켜보던 태혁은 너무도 처량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돌리였다. 그가 괴로와하는것을 보고 류설미가 옆에 새로 병실처럼 꾸린 방으로 성실을 데리고가서 침대에 눕히였다.

《안되겠소. 당장 병원에 입원시키오.》

《책임비서동지, 전 여기가 좋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구 있소? 동문 넘어져선 안될 사람이요.》

성실은 침대머리의 이불에 반쯤 등을 기댄채 안타까운 눈매로 태혁을 바라보았다.

《전 정말 현장을 떠날수 없습니다. 어제 농업과학원 동무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리미액연구사가 꺼꾸러졌다고 소문이 짜 하답니다. 누가 벌써 그렇게 련락을 했는지···》

성실은 잠시 말을 중단했다. 다른 녀성같으면 서러워서 막 흐느껴 울겠는데 성실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까딱않고 천정만 바라보는 그의 눈귀에서 작은 눈물방울들이 반짝이다가 이내 자취를 감추어버리였다. 태혁은 오늘에야 성실의 귀밑머리도 몰라보게 희여졌음을 깨닫고 가슴속이 쓰려났다.

성실은 리미액의 성공이 확고해진 지금까지도 여전히 불신을 품고 시기질투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격을 누르지 못하여 눈물이 그렁해서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나보다 더 좋은 미생물균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겠습니다.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에서 날보고 국가심의를 받으라고 하는데 전 학위학직이 필요없습니다. 적들이 우리를 먹자고 하는데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고 쓸데없는 말공부로 시간을 보내면 어떻게 합니까. 우린 죽게 되지 않습니까.》

림성실은 비록 병상에 누워있지만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안타까운 심정을 열렬히 토로하였다.

《하지만 전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의 종균배양실에서는 리미액균이 매분 1억개이상 기하급수적으로 증식하고있습니다. 금년에 리미액으로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수 있습니다. 오늘 현이어머니도 리미액을 뿌린 뜨락의 강냉이와 감자, 완두콩의 뿌리효률이 좋고 줄기들이 실하게 자란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나도 보았소. 그러나 동무가 이렇게 누워있으니 어디 수고했다는 말인들 할수 있소?》

《책임비서동지, 저때문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전 정말 행복합니다. 장군님께서 저를 얼마나 아끼시며 뜨겁게 보살펴주시였습니까? 그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에 전 성공할수 있었습니다. 제가 연구한 리미액은 나의 균이 아니라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균입니다.》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균!)

태혁은 순간 너무도 큰 충격을 받고 가슴속이 뭉클해졌다. 과연 성실의 저 말에 담겨있는 진실을 부정할 사람이 누구인가. 장군님께서 그를 귀중히 여기시며 각별한 사랑과 신임을 베풀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성실은 이미전에 자기의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물러난지 오랬을 녀성이였다.

리미액연구의 성공은 장군님께서 성실의 가슴에 뜨겁게 심어주신 열정과 신심의 산물이였다.

《성실동무, 동문 아직 할 일이 많소. 내 말대로 병원에 입원하여 하루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오.》

재삼 그렇게 간곡히 당부하는 태혁의 말을 잠자코 듣고있던 류설미가 조용히 귀띔했다.

《성실동문 이 일을 집에도 알리지 않고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요?》

태혁이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책임비서동지.》

성실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작년에 제가 과학원으로 올라갈 때 우리 집세대주가 뭐랬는지 압니까? 자기는 자동선을 완성하기전에는 공장을 떠날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벌써 몇달째 그 자동선개조를 위해 현장에서 밤을 팹니다. 주병호지배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그가 쓰러질가봐 자기의 피까지 수혈해주며 자동선을 추진시키지만 전 안해로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주인이 저때문에 근심걱정하는 일없이 자동선을 성공하기를 바랄따름입니다.》

태혁은 그만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다. 오래동안 당일군으로 일해온 그였지만 이런 때 어떻게 성실을 설복시키면 좋을지 적중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창문을 향해 마주선채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이 고난의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일군인 자기의 정신세계를 초월하여 몰라보게 변모돼가는가! 태혁은 그 일이 놀랍고 한편으로는 무척 기쁘게 생각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