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6

 

제 6 장

6

 

누가 누군지 분간해볼수 없는 어둠속에서 아낙네들이 검푸른 강물을 향해 팔을 내흔들며 사람을 살려달라고 저마끔 웨쳐대였다. 강변의 사위여가는 불무지옆에 주저앉아 《이 일을 어쩜 좋아요? 이 일을···》하며 가슴을 치는 녀인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온통 혼잡판이 된 속에서 녀인들이 기계공장 계획과 부원이란 젊은이를 둘러싸고 저마끔 떠들어대였다.

《부원동무, 우리 공장의 강길봉기능공이 래일의 마감언제막이공사를 보장하려고 휘틀조립작업을 하다가 언제우에서 추락됐어요. 덕삼아바이는 그를 구원하려다가 떨어지구··· 그런데 처녀돌격대원들이 두 로인을 구원하려고 물에 뛰여드는바람에 이 소동이 일어났수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 체네들이 저 세찬 강물속에 들어가서 견뎌내는가요?》

녀인들은 그냥 겁에 질려 아우성을 내질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수? 길봉아바인 명철이가 건져 병원에 실어갔지만 아직도 저렇게 숱한 사람들이 강에 들어가 덕삼아바일 찾수다. 덕삼아바이를 구원하려고 물에 뛰여든 은희동무도 어떻게 됐는지 생사를 몰라서 모두들 저렇게 고아댄다우.》

금방 물속에 뛰여들었다가 끌리워나온 돌격대처녀들이 자기네 중대장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발을 굴렀다.

《빌어먹을것들! 괜히 소란을 피우면서 애먹인다니까.》

한바탕 상스럽게 욕설을 퍼붓고난 계획과 부원이 첨벙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태혁은 그때에야 장관우와 함께 사고현장에 나타났다.

누군가 저쪽 강아래에서 사람을 업고 급히 걸어왔다.

《누구요?》

태혁은 다급히 물었다.

《덕삼아바이입니다. 은희동무가 구원했습니다. 위급합니다.》

《은흰 어디 있소?》

《책임비서동지, 은흰···》

청년이 덕삼아바이를 업은채 어깨를 들먹였다.

태혁은 심장이 떡 멎는것 같았다. 은희가 죽었는가? 은희!··· 태혁은 돌멩이처럼 언 주먹으로 가슴노리를 탕 쳤다. 억이 막혀 말을 못했다. 그는 덕삼아바이를 빨리 병원으로 보내라고 손시늉하면서 장관우를 흘깃 돌아다보았다.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장관우의 입에서 빨간 담배불찌가 강바람에 마구 휘날리였다. 그 담배불이 자기의 가슴을 지지는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다음순간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여오는 명철을 가려본 태혁은 청년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명철은 여전히 강기슭의 자갈판으로 은희를 안고 비칠거리며 걸어왔다. 그가 발을 옮겨짚을 때마다 은희의 한팔이 축 드리워 흔들거렸다. 이미 숨진 처녀였다.

《은희!》

명철은 그제야 태혁을 알아보고 울먹울먹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은흰 숨졌습니다. 좋은 동무였는데 죽었어요.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기능공을 구원하구···》

명철은 울고있었다. 태혁이도 눈앞이 콱 흐려지는것을 참으며 자기의 솜옷을 벗어 땅에 폈다.

이 연약한 처녀를 강물속에 들어가게 하다니?··· 내가 한발 늦었다. 태혁은 은희를 안아 솜옷우에 눕히고 처녀의 언몸을 꽁꽁 감싸주었다.

등뒤에는 사색이 된 장관우며 금방 강변에서 떠들던 사람들, 처녀중대 대원들이 은희와의 영결을 슬퍼하며 침울히 서있었다. 태혁은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으며 무릎을 꿇고앉아 처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공장의 유능한 기능공과 기꺼이 생명을 바꾼 처녀··· 너무도 아까운 처녀를 잃은 태혁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희의 아버지인 장관우도 그 누구도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엄숙했다. 아직은 이보다 더 가슴아픈 일들을 참고 이겨내며 험난한 투쟁의 가시덤불길을 헤쳐가야 할 그들이였다.

태혁은 너무도 아까운 처녀를 잃고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여 사고현장에서 그 사실을 직접 장군님께 보고드렸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참이나 태혁의 말을 묵묵히 듣고나서 《처녀중대 중대장이 희생됐단 말이지···》라고 나직이 뇌이시였다.

《공장의 유능한 기능공인 최덕삼로인을 구원하고 자기의 꽃다운 청춘을 바쳤습니다.》

《처녀중대장의 나이가 몇살이요?》

《스물여섯입니다.》

《이름은?》

《장은희입니다. 도행정위원회 장관우부위원장의 딸입니다. 발전소건설의 초기에 직접 처녀중대조직을 발기했고 오늘까지 대원들을 쇠소리나게 키워온 처녀입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고난을 이겨내는 자강도처녀들답게 행진하며 노래도 씩씩하게 부르고 옷단장도 맵시나게 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한 처녀중대장의 모습은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고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태혁의 량볼은 저도 모르게 축축히 젖어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려진 음성으로 《장관우부위원장동문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태혁은 목이 메여 겨우 대답올렸다.

《장군님, 여기에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였다.

《부위원장동무가 딸을 잘 키웠소. 은희가 정말 용소. 부위원장동무를 잘 위로해주시오.··· 처녀중대장의 장례는 어떻게 하자고 합니까?》

《건설장의 돌격대원들이 은희를 잃고 애석해하는데 그들을 전원 참가시키려 합니다.》

《아니 내 생각엔···》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기계공장종업원들과 강계시민들을 광범히 참가시키고 사람들의 추억속에 남도록 장례식을 의의있게 진행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처녀중대장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연설도 하며 사람들을 더 억센 투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게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고도 우리가 처녀중대장에게 무엇을 더해주었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린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처녀중대장이 입당은 하였습니까?》

《아직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화선입당을 시켜줍시다. 요먼저 나에게 말한 강계시 500명 취주악대도 추도식에 동원시켜 〈적기가〉와 항일유격대추도곡을 불러주는것이 좋겠습니다. 전투장에서 장렬히 희생된 처녀중대장인데 붉은기폭으로 감싸주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태혁은 가까스로 대답올렸다. 희생된 한 평범한 처녀중대장에게 훨씬 더 아름답고 빛나는 삶을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한량없는 은정에 또 한번 목이 메여올랐다.

이튿날 아침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의 돌격대원들과 기계공장종업원들, 강계시민들이 은희의 장례식에 참가하였다. 2천여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주병호지배인과 도청년동맹비서의 격동적인 연설이 있은 후 태혁이가 장군님께서 은희의 화선입당을 비준해주신 사실을 전하자 흐느낌소리들이 터져올랐다. 은희가 처녀중대장으로 일한기간 밤새워 수많은 어깨받치개도 만들고 딸의 례장감을 팔아 처녀들의 화장품도 사준 어머니가 딸을 대신하여 당증을 받아들자 군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요란한 박수로 처녀중대장의 입당을 축하해주었다. 뒤이어 량옆에 숭엄히 늘어선 사람들사이로 붉은기폭에 휩싸인 은희의 령구가 북천강발전소옆의 바람세찬 산비탈을 향해 느릿느릿 올라갔다.

강계시 500명 취주악대가 뒤따르며 울려주는 《적기가》의 느린 곡조가 처녀중대장을 잃은 슬픔을 자아내여 손바닥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눈물을 참는 사람들이 많았다.

은희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아 《어마나!···》하며 까무라칠것처럼 놀라는 녀인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정신없이 달려들어 《중대장언니, 날보구 소설책을 가져오라하고선 어디로 가요? 못 가요. 못 가. 언니야!》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평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온 영심이였다. 은희의 령구를 메고 올라가던 행렬이 어쩔수 없이 멈춰섰다. 현이가 또다시 태혁의 품에 쓰러지며 《아버진 왜 은희를 살리지 못했어요. 왜 살리지 못했나 말이예요!》하고 종주먹으로 가슴팍을 마구 두드려대였다.

태혁은 난생처음 딸의 항변에 변명할 말이 없는 자신을 깨닫고 고통스런 얼굴로 머리우의 휘뿌연 공간을 쳐다보았다. 그의 마음처럼 막혀있는 암회색의 흐린 하늘을 헤가르며 흰 눈송이들이 성글게 푸실푸실 흩날리였다. 그는 숫눈이 깔리기 시작하는 산등성이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아니다. 아무리 이 아픔이 크고 가슴을 짓눌러도 나는 딸의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죽어서도 불사신의 넋으로 살아 이 고난에 찬 시기 수만사람들의 심장에 불길을 지펴주는 값높은 삶에 대해!··· 얼마후 그는 돌격대원들이 눈덮인 산등성이의 묘혈속에 은희를 눕히자 처녀중대장과 마지막으로 헤여지기 앞서 잡관목이 우거진 둔덕진곳에 높이 올라섰다. 멀찌감치에 혼자 떨어져있는 장관우가 눈에 띄였다. 모두는 침묵을 지키고 태혁은 그 순간의 가장 적절한 말을 고르며 몇초동안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서있었다.

《여러분, 우린 또 한명의 귀중한 동지를 잃었습니다. 아직은 인생의 머나먼 길을 걸어가야 할 애젊은 처녀의 심장이 고동을 멈췄소. 무엇때문에?··· 무엇때문에 건설장의 처녀중대장이 아까운 청춘을 바쳤는가. 누구도 그가 이렇게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고 너무도 짧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태혁은 제 목소리 같지 않게 말하고 잠시 눈물을 삼키며 목안을 가다듬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의 행군시기 자강도로동계급답게 량심적으로, 떳떳이 그리고 가장 값높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린 발전소건설만 해서는 자강도를 일쿼세우지 못합니다. 전기가 있어도 기술자, 기능공들이 없이는 공장을 다시 돌릴수 없기에 지난해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으로 찾아오셨는데··· 은희가 장군님의 그 아픈 마음을 덜어드리기 위해 자기의 꽃다운 생명을 아낌없이 바쳤음을 우리모두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추억합시다. 누구든지 그를 연약한 처녀로 보았던 사람이 있으면 그 생각도 잊어버리시오. 은희는 한 인간이 두 생애를 살아도 발휘할수 없는 고귀한 희생정신, 자강도사람들의 불사신의 넋을 우리의 심장속에 심어주고 최후를 마쳤소. 여러분, 적들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으로 조국이 시련을 겪는 이 엄혹한 시기에 죽음도 두려움없이 싸운 기특한 처녀, 발전소건설장의 처녀중대장이 이 자강땅의 불덩어리같은 렬녀였다는것을 잊지 말고 더 억세게 일떠섭시다!》

태혁은 긴말을 하지 않고 부르쥔 주먹을 높이 흔들며 둔덕우에서 내려섰다. 내가 왜 지금껏 이 갸륵하고도 아름다운 은희의 마음을 다 모르고있다가 이제야 알게 되는가? 생전에 은희와 자주 만나 그를 아껴주지 못하고 영결의 순간에야 그런 자신을 후회하게 되는 쓰라림이 한순간 태혁의 가슴을 허비였다. 평소엔 너무도 수수해보이다가 조국이 어려울 때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며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는 사람들··· 태혁은 눈앞의 두둑히 파헤쳐놓은 생흙을 한줌 움켜쥐고 꿇어앉아 묘혈속의 령구우에 조심히 뿌리였다. 때마침 취주악대의 장중한 추도곡이 울리자 여기저기에서 다시금 나직한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한줄로 늘어서 손에 쥔 흙을 령구우에 떨어뜨리던 처녀중대원들은 《중대장언니!-》하고 나동그라지며 태질을 쳤다. 그 바람에 울음판이 벌어지자 처녀들을 한켠으로 밀어낸 허명철이가 감때사납게 삽질을 하며 무덤을 메우기 시작했다. 제 손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산등성이에 애인을 묻는 청년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할것이지만 얼굴에서는 눈물 한방울 찾아볼수 없었다. 눈물은 도리여 그를 바라보는 태혁의 눈귀를 적시면서 축축히 미끄러져 내리였다.

은희의 장례가 끝나자 명철이네 중대원들은 그길로 발전소건설장을 향해 노도와 같이 달려내려갔다. 금방 눈물을 쏟던 처녀중대원들도 산에서 내려오자 여느때의 이채로운 모습대로 《유격대행진곡》을 부르며 건설장으로 씩씩하게 렬을 지어갔다. 중대장인 은희가 죽지 않고 여전히 대오의 앞장에서 걸어가는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팔을 힘있게 내젖는 처녀들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좔좔 흘러내리였다.

벌써 허명철이네 중대원들이 지핀 우등불이 건설장의 눈내리는 강변에서 활활 타올랐다. 이제 그 우등불에 언몸을 녹이며 세찬 강물속에서 가물막이작업을 하게 될 돌격대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드디여 가물막이작업에 착수할 시간이 림박하여 주병호지배인이 공장의 끌끌한 청장년들로 무어진 지원로력을 들이밀고 500명 대취주악대가 강변에 어마어마하게 늘어서는바람에 건설장의 분위기가 한층 열기를 띠여갔다.

《시작!》하는 주병호의 우렁찬 웨침과 함께 취주악대의 요란한 나팔소리가 울리고 모래가마니를 둘러멘 명철이네 돌격대원들이 사품치는 강물속으로 육탄처럼 뛰여들었다. 처녀중대 대원들도 지원로력도 일제히 와 함성을 지르며 따라섰다. 태혁이도 딸을 잃은 장관우부위원장도 주병호지배인도 가마니를 메고 연방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마치도 백병전에 떨쳐나선 병사들을 방불케 하는 눈물겨운 광경이였다. 은희의 고귀한 희생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서운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모두들 허리까지 차올라 굼실대는 강물을 헤가르며 흙가마니를 메고 필사적으로 뛰였다. 처녀중대 대원들도 남자들과 꼭같이 흙가마니를 둘러메고 얼음장처럼 차거운 물속에서 맹렬한 전투를 벌렸다. 십분, 이십분이 경과하자 오한에 턱이 떨리고 사지가 괃아들었지만 단 한명도 전투장에서 물러서는 사람이 없었다. 온통 황토빛으로 누렇게 물들어가는 어지러운 흙탕물속에서 비칠거리는 처녀들이 나타나자 명철이가 달려가 그 처녀들의 모래가마니를 빼앗아 량어깨에 메고 비호같이 달리면서 웨쳤다. 동무들, 기운을 내라 기운을! 순간 바로 그의 눈앞에서 주병호지배인이 보짱같은 팔을 내흔들며 취주악대를 향해 쇠고함을 질렀다.

《취주악대! 뭘 하는가? 나팔을 힘껏 불라. 더 힘껏!》

하지만 나팔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500명 나팔수들이 모두 울고있었다. 드디여 그들중의 한 청년이 트럼베트를 내던지고 흐느끼면서 돌격대원들속에 뛰여들었다. 뒤이어 한명, 또 한명··· 나팔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아주 멎어버리고 말았다. 돌격대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치렬한 격전을 벌리는 500명 나팔수들!··· 다 영웅들 같았다. 강변에는 그들이 내던진 악기들이 격전뒤끝의 탄피처럼 시누렇게 널려있었다. 근 한시간동안 돌격대원들과 지원대, 나팔수들이 살을 에이는 강물속에서 추위를 참고견디며 불사신들처럼 뛰고 뛰여 마침내 가물막이공사를 완전히 끝내자 건설장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태혁은 소가죽처럼 꽛꽛이 언 옷을 걸치고 선채 강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건설장을 둘러보았다. 왜서인지 은희가 없다는 뼈저린 생각이 밀려들며 가슴속이 쩌릿해났다. 푸근히 흐린 하늘에서 갓난아이 주먹만큼한 눈송이들이 소리없이 날아내리였다. 건설자들의 영웅적인 투쟁성과를 축복해주는듯 한 흰 눈이였다.

태혁은 우등불에 언몸을 대수간 녹이고 펑펑 쏟아붓는 휘뿌연 눈발을 헤가르며 명철이네 돌격대숙소로 찾아갔다. 애인을 잃은 명철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잠간이나마 그와 만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해주고싶었다. 그러나 명철은 방에 없었다. 혹시 은희의 묘에 올라간게 아닐가? 잠간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사이 눈은 태혁의 어깨와 머리우에 한뽐이나 수북이 쌓이였다. 그렇다면 괜히 그를 방해할 필요가 없지··· 태혁은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숫눈을 밟으며 승용차가 서있는 건설장의 입구로 걸어나왔다.

사위는 온통 새하얀 눈세계였다. 발전소언제와 세멘트창고지붕, 강변의 크고 작은 돌멩이들우에는 흰눈이 소담히 쌓이였다. 순간 태혁은 저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며 와뜰 놀랐다.

몇발자국옆의 흰 눈무지, 분명 바위돌이라고 생각했던것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씰움씰 움직였다. 저게 뭔가? 태혁은 그 신기한 눈무지를 넋없이 바라보았다. 마치도 병아리가 닭알껍질을 터치고 나올 때처럼 눈무지가 부슬부슬 터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머리칼도 눈섭도 온통 새하얀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그 《눈사람》이 바로 허명철이였다. 얼굴에 눈물이 고드름처럼 얼어붙어있었다.

은희를 잃고 강변에 혼자 앉아 눈속에 파묻혀버린 청년이였다.

《명철이!》

태혁은 와락 달려가 명철의 어깨를 꽉 그러안았다.

《책임비서동지!···》

명철이가 태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그때였다. 태혁은 자기 등뒤에 서있는 장관우를 알아보고 옆으로 비켜섰다.

장관우는 딸을 잃은 지금에야 청년에게서 혈육의 뜨거운 정을 느끼는것인지··· 한동안 엷은 물기가 고인 눈으로 명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들은 힘껏 껴안았다. 이미전 은희의 눈앞에서 그러한 인간적인 융합이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태혁은 괴롭게 고개를 돌렸다.

조금후 태혁은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을 떠나 시내로 향했다. 장관우의 승용차가 뒤따랐다.

오늘은 장관우의 가슴이 얼마나 쓸쓸할것인가. 그는 딸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지 못한 사람이였다.

은희가 자기의 순결한 가슴속에 명철을 두고 사랑했지만 장관우는 딸의 그 마음을 리해해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인 그보다도 딸을 훨씬 더 뜨겁게 사랑해준 사람은 명철이가 아니였던가!··· 태혁은 도당으로 돌아오던 길에 우정 시육아원에 들렸다. 지금쯤 그 귀여운 어린것들은 포근한 요람속에서 단잠을 잘것이였다. 아닌게아니라 보육원처녀는 밤중에 찾아온 그들을 당황히 맞아주었다.

《애들이 잠자오?》

《예. 방금전에···》

《가보기요.···》

아이들의 아늑한 침실에 들어선 태혁은 조심히 발걸음을 멈췄다. 저마끔 장난감같은 자그마한 침대를 차지하고 잠든 어린것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태혁은 이 육아원에만 오면 아무리 바쁜 날에도 시간가는줄 모른다. 하지만 이 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는 태혁의 마음은 즐겁지만 않았다. 어쩐지 은희의 가슴아픈 희생이 눈앞에 자꾸만 밟혀왔다. 그 사랑스러운 처녀처럼 공장의 기대앞에서 순직한 사람들의 모습도 생생히 떠올랐다. 우리의 후대들은 이 고난의 시기에 그들이 장군님의 명령관철을 위해 어떻게 살며 영웅적으로 싸웠는가를 결코 잊지 않을것이다. 태혁은 드디여 그런 숭엄한 생각끝에 장관우를 바라보면서 조용히 물었다.

《부위원장동무, 우리가 이 부모없는 피덩이들을 데려다가 이름을 지어주던 생각이 나오?》

《나지요.》

장관우가 풀기없이 대답했다.

《우리 이렇게 합시다. 오늘 래일중으로 발전소건설장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야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제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난 그들의 성을 붙여주자는겁니다. 고난의 행군의 산아들인 이 어린것들의 심장속에 새별처럼 빛나는 눈빛속에 자강도로동계급의 장한 모습이 영원히 아로새겨지게 말이요!》

태혁은 그렇게 힘주어 말하고나서 두눈을 슴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