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5

 

제 6 장

5

 

그 일이 있은후로 명철은 이상하게 어깨가 축 처져다니였다.

은희는 일을 마치고 늘쌍 건설장의 사위여가는 모닥불옆에 혼자 남아있는 명철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마음속이 아릿해나는것을 느끼군 하였다.

왜 저럴가? 내가 너무 가슴아픈 말을 해서인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조용히 만나 잘못을 빌어야지 않을가··· 은희는 생각다 못하여 명철의 옆에가 살그머니 앉으며 생긋이 웃었다.

《명철동무, 성났어요?》

명철은 들은체도 않고 입을 꾹 다문채 앉아있었다. 여느땐 아무리 불쾌해도 이삼일이 지나면 씻은듯이 말짱 잊어버리던 명철은 뿌루퉁해서 은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서 좀 말해요.》

《아무것도 아니요.》

《누가 속을줄 알구··· 내가 미워서 그러지요?》

은희는 새침해서 옆에 있는 나무토막을 당겨놓고 그우에 걸터앉았다.

명철의 진속을 알기전에는 아예 자리를 뜨지 않으려고 단단히 잡도리를 했다.

명철은 생떼를 부리는듯 한 은희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흘끔 거들떠보고나서 돌맹이를 집어 발치에 내동댕이쳤다.

《제길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구!》

은희는 두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왜 그래요?》

《이거야 어디 창피해서 살겠어? 장군님께서 친히 식량까지 보내주셨는데··· 동문 우리 아버지가 뚱딴지같은 공동시장에 환장하여 다닌걸 모르오!》

명철은 한바탕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부르쥔 주먹을 턱에 꾹 눌러댔다. 전번에도 아버지때문에 얼굴을 쳐들고다니지 못하겠다며 중대장일을 하느니 마느니 하던 명철이 아닌가? 은희는 어떻게 하면 명철의 마음을 진정시킬는지 몰라 안타까와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명철동무, 아버지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말아요. 며칠전에 도 중소형발전소건설지휘부의 림준과장동지와 만났는데 절 보고 뭐랬는지 아세요? 명철이를 사랑해주라구. 그 동무의 아버진 정말 훌륭한 사람이였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결함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이제 명철동무의 아버지도 아들의 마음에 꼭 들 때가 있을거예요.》

《그건 거짓말이요!》

명철은 결김에 그렇게 내뱉고 오만상이 되여 은희를 마주 보았다.

《이자 누가 그랬다구?》

《림준과장이였어요.》

《림준?》

명철의 눈길이 어찌도 사나운지 은희는 가슴이 다 떨리였다.

《그래요. 림준과장이 그랬어요.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만나서 물어봐요. 래일이라도 당장!》

은희는 자신만만해서 으름장이라도 놓듯이 말했다.

《아니요, 그럴수 없소! 그럴수···》

《그럴수 없다는건 무슨 말이예요?》

《동문 그의 말을 그대로 믿소? 림준과장이 훌륭하다고 한건 다른 사람이요.》

《아니예요. 과장동진 분명 동무의 아버지라고 했어요. 허튼 소리 말아요!》

은희는 그만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어쩌면 아들인 그가 이럴수 있는가? 남들이 좋지 않게 말해도 가슴을 내대고 아버지를 옹호해나서야 할 그가 너무나도 아버지를 허무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속상했다.

《됐소. 그만 하고 가서 쉬기나 하오. 래일 힘든 작업을 하겠는데···》

은희는 바람이 일게 훌쩍 일어나는 명철을 안타까이 쳐다보았다. 밤바람에 모닥불은 온기없이 재티만 싸늘히 날리였다. 은희는 사위여버린지 오랜 모닥불을 내려다보며 한참 오도카니 앉았다가 뒤따라 일어나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명철은 벌써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강변에 엷은 어둠을 휘감고 솟아있는 발전소언제만이 거무스름히 안겨왔다. 은희는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어 언제밑에 가서 한참이나 나른히 등을 기대고 섰다가 등잔불빛이 반짝거리는 돌격대숙소를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래일 작업에서도 처녀중대 대원들은 본때를 보여야 한다. 발전소건설치고 언제의 마감막이를 위해 물길을 돌리는 가물막이공사만큼 어려운 공사가 없지 않는가. 은희는 가슴속에 처녀중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얼마나 깊이 자리잡고있는가를 가슴뿌듯이 느꼈다. 나날이 사람들속에서 인기가 높아가는 처녀중대와 함께 그들의 모습도 차츰 아름답게 달라져가고있었다. 은희는 어떻게 처녀들의 사기를 부쩍 돋궈주었으면 좋을지 몰라서 안타까왔다. 오락회를 열고 한번 법석 떠들어볼가? 하지만 그는 노래를 부르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왜 이럴가? 혼자 그렇게 골몰하던 은희는 저녁에 명철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때문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며칠전 림준기사와 만났던 일이 다시금 되살아올랐다.

림준기사가 무엇때문에 명철동무의 아버지를 그렇게도 칭찬했을가? 명철은 그 말을 듣고 성이 나서 그럴수 없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던가. 그래 림준기사가 나한테 거짓말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그는 절대로 아무 말이나 허투로 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림준기사는 분명 명철의 아버지를 념두에 두고 그렇게 말했었다. 그 아버지란 누구인가? 명철동무에게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은희는 때마침 차거운 바람을 안고 돌격대숙소안으로 급히 뛰여들어온 처녀가 울상이 되여 새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와뜰 놀랐다.

《중대장언니! 현장에서 사고가 났어요!》

《뭘?》

《언제휘틀조립을 하던 기능공아바이들이 물에 빠졌어요. 명철중대장동무랑 모두 사람을 건지려고 물에 뛰여들어 벅작 떠들어요.》

방안의 처녀들이 《어마나!》하고 확 풍겨 일어나며 은희를 지켜보았다.

은희는 갑자기 가슴이 활랑거려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건설장의 기술적인 시공작업은 최덕삼, 강길봉아바이가 도맡아놓고 담당해왔다. 청년들이야 뚝심만 세지 셈판이 있는가. 이날도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로인은 래일의 가물막이공사후에 진행하게 될 언제타입을 보장하려고 강추위속에서 늦도록 휘틀조립작업을 했는데 별안간 강길봉아바이가 비칠거리며 언제우에서 떨어졌다는것이다. 돌격대처녀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 허탈증때문이였던것 같았다. 길봉로인을 붙잡다가 언제우에서 함께 떨어진 덕삼아바이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걸 봐선 사태가 여간 위급하지 않았다. 은희는 사태의 전말을 더 꼬치꼬치 캐여물을 경황이 없이 밖으로 와락 뛰쳐나갔다. 다른 처녀들도 몽땅 와르르 떨쳐나섰다. 종주먹을 쥐고 현장으로 뛰여가는 은희앞으로 웬 작달막한 녀인이 총알처럼 마주 달려왔다. 그의 앞을 막아선 은희가 어떻게 됐는가고 물었으나 녀인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울음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산기슭의 인가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또 한번 가슴속이 섬찍해진 은희가 현장에 당도하자 여러 사람들이 와짝 끓어대며 《비켜라. 빨리 빨리!》하고 고함을 질렀다.

뒤이어 그의 옆으로 화물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내뿜으면서 바람처럼 휙 스쳐지났다. 상한 사람들을 싣고 병원으로 급히 내닫는 차였다. 순식간에 전조등불빛은 사라져버리고 어둠속에 몰켜선 사람들이 흥분하여 설치며 돌아갔다.

홈빡 물참봉이 된 명철이가 고개를 숙이고 추위에 우들우들 떨며 서있었다.

이마에 철썩 달라붙은 젖은 머리칼과 바지가랭이가 잠간사이 꾸득꾸득 얼어붙어 말도 변변히 못하는 명철의 옆으로 다가선 은희는 다급히 물었다.

《명철동무, 어떻게 됐어요?》

《길봉··· 아바인 건져 병원에··· 보냈소.》

명철이가 아래턱을 덜덜 떨며 무뚝뚝히 대답했다.

《덕삼아바인요?》

명철은 칼날처럼 번뜩이는 눈길을 강물우에 던졌다. 그의 두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펀들거리였다. 겨울밤의 검푸른 물결이 사납게 굼실대는 격류속에서 아직도 구제작업이 계속되고 강변에 모여선 아낙네들이 그냥 아우성을 질렀다.

《눈물이 나서 말 못하겠소. 난 강에 들어가 먼저 덕삼아바이를 찾아냈는데··· 심하게 다친것 같았소. 날 겨우 알아보더니 빨리 길봉아바이부터 구원하라질 않겠소. 난 너무 엄한 요구였기에 어쩔수 없어 덕삼아바이 손을 놓구 한참이나 헤매다가 의식을 잃은 길봉로인을 건져냈소.》

《덕삼아바인?》

《저렇게 숱한 사람들이 들어가 찾지만.··· 이젠 늦었소.》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은희는 강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명철이가 뒤쫓아가서 금시 강물속에 뛰여들려는 그의 팔을 우악스레 움켜잡았다.

《은희, 죽지 못해 그래! 동문 저 얼음장 같은 물속에 들어가 1분도 못 견뎌!》

《놔요. 놓으라요!》

은희는 다시금 자기의 팔목을 후려잡는 명철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비켜요. 동문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 기능공이 희생됐다는 보고를 받고 자강땅에 찾아오셨던 일을 벌써 잊었어요? 우린 목숨을 바쳐서라도 덕삼아바이를 살려내야 한단 말예요.》

《은희!》

말문이 막혀버린 명철이가 은희를 와락 껴안았다. 은희는 그것이 자기들의 마지막포옹으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명철의 살얼음이 얼어붙은 가슴에 얼굴을 꼭 눌러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은희는 두손으로 그를 힘껏 떠밀쳐버리며 홱 돌아섰다. 갑자기 찬물속에 뛰여들면 심장이 멎어버릴수 있었으나 처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도 몰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로기능공을 살려야 한다는 그 한 생각밖에 없었다. 사납게 굼실대는 강물우에 정신없이 연약한 몸을 내던지는 은희의 뒤로 명철이가 황급히 따라섰지만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어둠이 뒤덮인 강물속에서 사람들이 와글와글 끓어대는데다 처녀돌격대원들까지 덮씌우는 바람에 대소동이 벌어졌다. 대부분 처녀들이 멋모르고 얼음물속에 덤벙덤벙 뛰여들었다가 숨넘어가는것처럼 아부재기를 쳤다. 사품치는 물속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첨버덕거리는 처녀들을 보고 강녘에 몰켜섰던 아낙네들이 무리죽음이 나겠다며 한층 더 떠따 고았다.

사람을 살리라며 고래고래 웨쳐대는 소리, 가슴을 쥐여짜는 울음섞인 소리··· 온 발전소건설장이 삽시에 수라장이 되고 한켠에서는 물속에 빠진 처녀들을 연방 끌어내며 욕을 퍼부어대는 소리가 귀청을 찢어댔지만 은희는 아무것도 가려듣지 못했다. 살가죽을 발가내는듯 한 차거운 강물속의 여기저기로 헤매면서 애타게 덕삼아바이를 불렀으나 온몸이 얼어들어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오한에 가슴이 컥 막히고 사지가 꽛꽛이 과다들기 시작했다. 나중엔 손발을 제대로 놀릴수 없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럴가? 명철이가 그를 막아서며 《죽지 못해 그래!》 하고 감때사납게 웨쳐대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아니야. 난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 맘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으면서도 은희는 어쩐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눈앞이 캄캄해지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자기의 뻣뻣해진 몸이 나무토막처럼 물우에 떴다 잠겼다 하며 어디론가 자꾸만 떠내려가는것을 안타깝게 느꼈다. 순간 은희는 그 무엇엔가 부딪치는 어렴풋한 감촉을 느끼고 손을 뻗쳐 필사적으로 휘여잡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이였다. 은희가 이발을 사려물고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은것은 그때였다. 덕삼아바이다. 덕삼아바이!··· 마침내 로기능공을 찾아낸 은희는 《덕삼아바이!》하고 목멘 소리로 불렀다. 로기능공은 대답이 없었다. 그가 살아있는지 숨이 졌는지 알수 없었다.

은희는 울면서 자기의 작은 몸으로 로기능공을 강기슭으로 조금씩 떠밀기 시작했다. 아바이, 죽으면 안돼요··· 그를 살리기전엔 죽어선 안된다. 처녀의 두눈에서 마구 쏟아져내리는 눈물이 강물에 씻겨갔다. 그러나 이미 힘이 빠져버릴대로 빠져버린 은희였다. 이젠 자기의 몸조차 가누기도 힘들었다. 기운이 진한 은희는 물밑으로 가라앉으며 몇번이나 차거운 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숨이 막혔다. 그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악! 소리를 지르며 물우로 솟구쳐올라 로기능공을 다시금 떠밀었다. 이런 때 명철동무가 왔으면··· 명철동문 어데 있을가? 은희는 자기가 너무도 시간을 끄는 일이 속상했다. 그후에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성미사나운 산골물에 밀리며 사선으로 겨우 강변에 가닿은 은희는 차츰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로기능공의 육중한 몸을 기슭으로 올리밀다가 다시금 까무라치면서 물속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그리고는 또다시 최후의 힘을 다 짜내여 로인을 가까스로 떠밀면서 덕삼아바이, 이러면 안돼요. 이러면··· 올라가세요. 아바인 꼭 살아야 해요.··· 하며 울었다. 은희는 그때에야 비로소 일생에 단 한번도 상상해본적 없는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무서웠다. 은희는 마지막으로 몸을 뒤채이며 어머니를 불렀으나 부질없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죽음의 심연은 너무나도 일찌기 꽃다운 나이를 빼앗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