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

 

제 6 장

3

 

림준이 지팽이를 내짚으며 태혁의 사무실로 성급히 찾아들어왔다.

《이거 야단났습니다.》

《무슨 일이요?》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서 리성하부부장과 덕삼아바이사이에 대판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태혁은 눈이 떼꾼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좀 차근차근 말하오.》

《리성하부부장이 엄중합니다. 그는 여태껏 대안에서 발전기생산에 착수하지 않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있다가 급해맞아 어디선가 쓰던 100kw발전기들을 떼여 북천3호발전소에 실어왔습니다. 그 일때문에 대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리성하부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공사기일을 보장해야 한다며 무작정 내리먹이구 덕삼아바인 다른 발전소의 발전기를 떼여다 맞추는 이따위 량심이 없는 놀음은 죽어두 못한다고 펄펄 뜁니다.》

《그건 어디서 난 발전기요?》

태혁은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남도에서 실어왔다나 봅니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에게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창조할 과업을 주셨는데 남의 설비를 떼여다 발전소를 돌리겠다니 분격하지 않을수 없군요. 이러자고 우리가 혹한속에서 굶주림을 참고 견디며 발전소를 건설하였습니까? 발전소건설을 위해 자기의 목숨도 서슴없이 바친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면 부부장동무를 용서하겠습니까.》

태혁이도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지난해 장군님께서 비준하여주신 그들의 전투목표에는 대안중기계공장에서 12대의 발전기들을 생산보장하기로 되여있었다. 게다가 전력공업부 부부장인 리성하가 그 발전기들의 제작은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장담했었다. 태혁은 그의 말을 믿고 대안중기계의 발전기생산을 전적으로 리성하에게 일임했다. 그는 리성하가 지금까지 대안의 발전기생산이 어떻게 진척되는지 관심하지 않고있을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무렴 이럴수 있는가. 큰 공장에 대한 리성하의 의존심때문에 이런 엄중한 후과가 빚어졌는가? 태혁은 그렇게밖에는 리성하를 달리 리해할 길이 없었다.

《전력공업부 부부장이 대단하구만. 누가 그에게 다른 발전소의 설비를 함부로 뜯어올 권한을 줬소. 누가!》

태혁은 결김에 전화종소리를 듣고 성급히 수화기를 들었는데 장군님의 묵직한 음성이 울려왔다.

《태혁동무, 대안의 발전기들때문에 공사가 늦어질수 있습니다.》

《장군님, 그래서 저희들은 속이 새까매있습니다.》

《음··· 대안중기계동무들이 전력이 없어 발전기를 만들지 못하는걸 알면서 정무원과 전력부문 일군들이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사무실에 올방자를 틀고앉아 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이나 장악하며 림시방책으로 돌려맞출 궁리를 해서야 전력이 나옵니까. 내 오늘 당중앙위원회 해당부서에 과업을 주어 발전소들의 가동정형을 료해하여보니 설비불량으로 만부하를 걸지 못하는 발전기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강계청년발전소 로동계급이 대안의 실태를 듣더니 나의 명령을 관철해야 한다면서 자기들이 대안중기계에 필요한 전력을 더 생산하여 무조건 보장해주겠다고 궐기해나섰습니다.》

《그렇습니까? 장군님, 이젠 됐습니다!》

태혁은 기쁨에 넘쳐 환성을 올리고나서 떠뜸떠뜸 말씀올렸다.

《전 미처 그 생각을···》

《동무야 눈앞의 일만도 아름찬데 그럴수 있지. 중요한건 대안중기계에 전력을 넣어주었지만 이제 발전기생산을 해서는 늦어질수 있다는것입니다. 동무네 공사기일보장이 어려워질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태혁은 장군님께 책임적인 대답을 드려야 할 자신을 깨닫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였다.

《장군님, 만약경우를 생각하여 저희들이 다 맡아할 대책을 시급히 세우겠습니다.》

《좋습니다. 대안중기계의 발전기생산이 지연되는 바람에 제일 난관에 봉착한건 장강군의 발전소건설입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장강에서 전투결속을 하게 될것 같습니다. 그러니만큼 장강에다 판을 크게 벌리시오. 강계시와 성간군에서 공사를 완공하여도 장강군발전소건설을 끝내지 못하면 우리는 인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것으로 됩니다. 래일부터 장강군의 발전소건설전투에 총력량을 집중하시오!》

태혁을 뜨겁게 고무격려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시금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번 전투의 마감단계에서 동무가 놓치지 말아야 할 다른 하나의 문제는 도안의 기술력량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것이요. 기술자들과 기능공들을 잘 동원시켜야 발전소들의 설비조립과 공장기업소들을 만가동하기 위한 최종전투에서 제기되는 기술적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할수 있습니다. 지금은 전후에 망치로 기계를 두드려 만들던 때와는 다릅니다. 자력갱생도 최신과학기술에 토대한 자력갱생이여야 합니다. 현 시대는 과학기술의 시대입니다. 발전하는 과학의 추세를 앞서나가지 않고서는 피어린 투쟁으로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낀 보람이 없습니다.》

그이께서 일깨워주시는 고난의 행군의 돌파전에 대한 새로운 리해, 그 깊은 의미를 크나큰 충격속에 받아안은 태혁은 두손으로 수화기를 꽉 움켜잡고 신심에 넘쳐 대답올렸다.

태혁은 그 길로 림준이와 함께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을 향해 떠났다.

북천교를 단숨에 넘은 승용차는 얼음버캐가 깔린 도로를 따라 질풍처럼 내달렸다. 오늘따라 날씨도 을씨년스러웠다. 찌뿌둥히 흐린 하늘은 컴컴히 드리우고 사나운 눈보라가 고속으로 달리는 승용차의 유리창에 심술궂게 눈가루를 휘뿌렸다. 태혁은 그 모든것을 거의나 의식하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방금전 림준이가 격분하여 리성하부부장을 용서할수 없다던 말만이 괴롭게 떠올랐다.

(그래, 리성하로 하여 공사는 또다시 엄중한 난관에 봉착하지 않았는가!)

태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이러나 저러나 리성하는 자기들을 돕기 위해 찾아온 일군이였다. 그가 수습하기 어려운 실책을 범한것을 보고 책임추궁을 한다는것이 어쩐지 몰인정한 처사로 생각되였다. 이제야 별다른 묘책이 있는가? 대안중기계공장의 발전기생산이 늦어져도 공사기일은 단 하루도 어기지 말아야 한다. 태혁은 그런 비장한 결심을 품고 얼마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 당도하여 차에서 내렸다. 건설장의 돌격대원들이 새까맣게 모여선 가운데 아직도 리성하부부장과 덕삼로인의 언쟁이 계속되고있었다.

《이건 발전기를 갖다줘도 땅땅 튀기는 판이니 공사기일을 보장하지 못하면 령감이 책임질테요!》

리성하가 얼굴이 시뻘개서 눈을 부라렸다.

《부부장동무, 우린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량심이 없는 너절한 일은 하지 않소. 우리한텐 저런 발전기가 필요없으니 당장 도로 가져가시오.》

덕삼로인의 기상도 험악했다.

《이 령감 정말 셈판이 없구만. 대안사람들이 령감보다 못해서 발전기를 만들지 못하는줄 아오? 전력이 없어 공장을, 공장을 돌리지 못한단 말이요.》

《그래서 남의 발전기를 떼와도 무방하다는거겠소.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을 모욕하지 마시오. 우린 장군님의 의도와 어긋나는 그 어떤것도 받아물지 않소!》

덕삼의 추상같은 말속에는 예전의 《강계싸움대장》다운 넋이 살아서 뜨겁게 숨쉬고있었다.

로인을 미덥게 지켜보던 태혁이가 마침내 리성하앞으로 다가섰다.

《부부장동무, 내 방금 장군님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인데 덕삼로인의 말대로 저 발전기는 도로 가져다주는게 좋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대안중기계의 전력문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 어디 전력을 돌려주셨답니까?》

리성하의 너무도 태연스러운 말에 태혁은 분격을 겨우 참았다.

《부부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뭐 내가 말을 잘못했습니까?》

리성하가 뗑한 표정으로 태혁을 쳐다봤다.

《내나 부부장동무가 도대체 장군님의 로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 사람들이요? 장군님께서는 바로 부부장동무처럼 걸린 문제에 어깨를 들이밀지 않고 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을 돌려맞출 궁리나 하기때문에 전력이 나오지 못한다구 엄하게 지적하시였소. 그리고는 여기 강계청년발전소의 발전기들을 만가동하여 대안에 전력을 보내주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소. 우리가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였는데 왜 못했는가? 현재의 상태에서는 1kw의 전력도 더 나올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패배주의적인 사고방식때문이였지. 부부장동무가 자기 직권을 휘두르면서 남의 발전기를 떼온것도 그래서였구. 우리가 제 구실을 못해 장군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게 부부장동문 가슴아프지도 않소!》

태혁은 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자강도에 내려오자 리성하는 강계청년발전소와 도안의 여러개 발전소들을 찾아다녔지만 우리 로동계급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일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박 겉핥는 식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보지 못했다는것을 태혁은 구태여 까밝혀 말하고싶지 않았다. 언제인가 리성하가 반드시 그런 자신을 스스로 뉘우치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얼혼이 나간듯이 고개를 떨구고서있는 리성하를 마뜩지 않게 흘겨보던 최덕삼이 휙 돌아서 씨엉씨엉 걸어가더니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버쩍 쳐들며 고함을 질렀다.

《여, 기중기! 정신 바짝 차리고 1호 수문을 조립하자구!》

중량이 30t이나 되는 수문을 들어올릴수 있는 기중기가 없어 넉대의 자동차기중기를 동원하여 개미역사를 벌리는 이런 까다로운 수문조립작업은 오랜 기능공인 최덕삼이밖에 감당해낼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언제우에 모여선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덕삼의 지휘하에 배심있게 중량물을 다루는 작업을 긴장히 지켜보았다. 태혁이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등뒤에 가서 붙어섰다. 그는 초조한 생각에 잠겨있느라 자기앞에 선 장관우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눈섭까지 개털모자를 꾹 눌러쓴 덕삼로인이 입에 호각을 물고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기중기운전공들을 조종하는 모습만 넋없이 바라보았다. 드디여 로인의 숙련된 솜씨를 말해주듯이 수문이 허공에 둥 뜨자 환성이 터져올랐다. 그때였다. 누군가 갑자기 《흙바람이 불어온다!》하고 요란히 웨쳐대였다. 태혁은 흠칠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하늘땅을 컴컴히 메우면서 시커먼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밀려왔다. 저 사납게 휘몰아치는 흙바람에 기중기들이 견디여낼것인가? 기중기에는 30t중량의 수문이 쇠바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세찬 바람에 밀려 수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눈깜짝할사이에 수문도 기중기들도 강물속에 처박히고 말 판이였다. 언제 수문을 땅에 내려놓을 경황이 없었다. 어느새 건설장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였다. 질겁한 사람들이 언제우에서 헤덤벼치며 산지사방으로 내뛰기 시작했다. 순간 기중기차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였다. 주위에서 저마끔 소동을 일구자 기중기운전공들도 어쩔바를 몰라하며 당황망조해 하는것이 헨둥히 알렸다. 안된다, 이래선! 때마침 그 다급한 속에서 덕삼로인이 수문밑에 떡 버티고선채 《모두들 멈춰서라! 언제우에서 한걸음도 물러서면 안된다. 동무들은 장군님께서 이 자강땅의 흙바람을 헤치며 초상령을 넘으신 일을 잊었는가!》라고 목청이 터지게 고함을 질렀다. 로인의 그 말에 감동된 사람들이 언제우에 멈춰서서 태풍에 날리지 않게 서로 꽉 부둥켜안았다. 태혁은 한손으로 안경을 거머잡고 덕삼로인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으나 얼굴에 휘뿌리는 흙먼지때문에 도무지 눈을 뜰수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흔들리는 수문과 자동차기중기의 팔들이 부러질듯이 삐걱거리는 모양을 겨우 가려보았을뿐이였다. 머리칼이 곤두섰다. 뒤이어 기중기가 넘어진다는 누군가의 웨침에 태혁은 피끗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리성하부부장이였다. 수문이 이리저리 들춰대는통에 기중기의 발통에 고였던 받침목이 빠져나와 차가 옆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 리성하를 와락 밀쳐버린 장관우가 침목을 안고 기중기차밑으로 날쌔게 뛰여들었다. 눈앞이 아찔해진 태혁은 《모두들 여기로 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언제우에 몰켜섰던 사람들이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흙바람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달려왔다. 태혁은 그들과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기중기차를 바로 세우고 장관우를 잡아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여보, 어디 상하지 않았소?》

태혁의 어깨에 머리를 떨군 장관우는 대답이 없었다.

《젠장, 여 승용차!》

태혁은 우선 사람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내여 다시금 큰 소리를 쳤다. 고막이 터져나갈듯이 아우성을 질러대는 바람소리에 제압되여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온통 시꺼먼 흙먼지속에 묻혀버린 발전소언제는 마치 사나운 파도우에 떠있는 조난선을 련상시켰다. 덕삼로인이 근 30분동안이나 그 풍랑 만난 《배》의 선장과도 같이 흙바람과 싸우고난 후였다.

태혁은 뿌옇게 먼지 낀 눈섭을 슴벅거리는 로인과 마주섰다.

《덕삼아바이, 장군님께서는 대안중기계의 전력을 풀어주셨지만 이제 발전기생산에 착수해서는 늦어질수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로인이 태혁의 말뜻을 알아맞히고 제꺽 응답했다.

《장군님께서 걱정하셨으면 그 발전기들도 우리가 만들어야지요. 림준, 이 사람이 뛰면 해낼겁니다.》

로인은 입안으로 날아든 모래알을 땅바닥에 퉤퉤 내뱉고 옆에 서있는 림준에게 말을 붙이였다.

《여보게 림준이, 그때 건설대가 해산되자 우린 너무도 원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만 쳐다봤지. 그 고통을 신물이 나게 체험한 우리가 또다시 장군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슴을 치겠나? 죽어도 그렇게는 못해. 무조건 해결하게! 이 일은 자네만이 할수 있네.》

림준은 찢어진 구름장들이 떠도는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꽉 다문 입술, 번뜩이는 눈길만이 그의 가슴속에서 어떤 비장한 결심이 끓어번지는가를 눈굽이 뜨겁게 말해주고있었다. 태혁은 한동안 말없이 서있다가 림준이와 함께 건설장을 떠났다. 이날 도지휘부에 도착한 림준은 덕삼로인의 부탁대로 발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의 지체도 없이 《갱생》차를 잡아타고 출장길에 나섰다. 태혁은 그를 떠나보내고 뒤따라 장관우부위원장이 입원한 도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관우는 병원에 없었다. 그가 구급처치를 받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는 원장의 말에 태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부위원장동무의 왕고집을 당해낼 사람이 있습니까? 적어도 한주일가량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줬지요. 그랬더니 글쎄 개 닭 보듯 하고 돌아서 훌쩍 가버리더군요.》

태혁은 원장실에서 나오자 곧바로 도행정위원회를 향해 세차게 차를 몰아갔다. 얼마후 장관우의 사무실앞에 당도한 그는 문고리를 잡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방안에서 장관우가 전화로 누구에게인가 호통을 치는 소리가 쩡쩡 울려나왔다. 발전소공사기일을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고 을렀다메는 중이였다.

(욕설쟁이 장관우!)

태혁은 갑자기 장관우에 대한 옛정이 되살아오르는것을 느끼며 한손으로 출입문옆의 벽을 짚었다. 근래에 와서 자주 의견상이로 마찰이 있긴 했지만 어려울 때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 장관우가 아닌가! 여태껏 태혁이가 오른팔처럼 믿어왔던 장관우의 본바탕은 갈데가 없었다. 아무렴 자강도에 와서 손님격으로 일하는 리성하부부장 같겠는가. 뭐니뭐니해도 제 손때가 묻은 사람이 훨씬 낫다는것을 눈물이 나게 깨닫고나서야 태혁이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쪽 어깨와 팔에 붕대를 둘러감은 장관우의 몸에는 두툼한 외투가 걸쳐져있었다.

《마치도 전선사령관 같군!》

태혁은 통쾌하게 웃고 붕대가 감겨 곱절이나 실팍해진 장관우의 팔을 만져보았다.

《이거 대단히 상했구만. 그런데 왜 여기에 앉아있소?》

《어디 한가하게 병원에 엎디여있을 형편이 되는가요. 난 뭐 귀구멍이 막혀있는줄 아시우?》

장관우가 투덜대듯 말했다.

《림준이가 슬그머니 귀띔해주더군요. 대안의 발전기들이 늦어질수 있다구. 어떻게 할셈입니까?》

《아무래두 우리가 만들어야 할것 같소.》

《이거야 속이 타서··· 리성하부부장이 얼굴을 들고다니게 됐습니까? 하긴 내가 남의 말을 할 형편이 못되지요.》

장관우는 직통배기성미그대로 격식없이 사죄를 했다.

《나때문에 맘고생이 많았을텐데 죄송합니다.》

《그만하오. 지금은 내앞에 멀쩡히 앉아서 자기 반성을 하지만 오늘 밤엔 굉장히 쑤셔댈거요. 난 아까 장관우부위원장이 황천객이 되지 않나 해서 가슴이 철렁했댔소. 그런데 어떻게 되여 리성하부부장을 밀쳐버리고 부위원장동무가 기중기차밑으로 뛰여들었소? 혹시 리성하부부장이 자기 생명을 바칠만 한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된게 아니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앉았던 장관우가 쓸쓸히 웃었다.

《글쎄요. 그 한사람의 잘못으로 공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습니까. 그는 자기가 범한 과오를 씻기 위해서도 제 목숨을 아낄수 없는 사람이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요한다면?··· 난 그 짧은 순간 부부장동무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쩐지 늙은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요.》

장관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서 리성하부부장의 어머니인 칠순나이의 늙은이가 허약한 몸에 골재짐을 지고다닌다며 걱정하던 장관우의 말이 떠올랐다.

《부부장동무의 어머닌 아들때문에 고심이 많은 늙은이입니다. 전쟁때 맏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받고도 눈물 한방울없이 공장에 나가서 밤을 패며 포탄을 깎은 어머니였지요. 그런 어머니여서인지 성하부부장이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사업을 하다가 평양으로 소환되여 갈 때에도 아들과 갈라져 강계에 홀로 남았습니다.》

장관우는 그 사연을 대충 이야기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늙은이는 전사한 맏아들과 달리 제 고향이 귀중한줄 모르는 성하부부장을 여간 노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지금까지 이 강계를 떠나지 않고 늙마에 고적하게 살고있는 어머니이지요. 리성하부부장이 그 어머니를 더는 괴롭히지 말아야 했는데··· 아들의 과오를 알면 늙은이는 더이상 자기를 지탱해내지 못할겁니다.》

《가슴아픈 일이요.··· 아무튼 부위원장동무가 잘 돌봐주오. 나도 만나보겠소.》

태혁은 흐려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참, 김철에서 혜경이가 돌아왔소. 강재를 실은 방통우에 앉아서 말이요. 장군님께 보고드렸소.》

《그러니 내가 진짜 허재비였군. 허재비···》

태혁은 침울히 서있었다. 직사포를 쏘는것같은 장관우의 투박한 말이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고향의 사투리처럼 정답게 안겨왔지만 리성하부부장의 어머니생각으로 그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

이튿날 아침 아무런 예고도 없이 태혁의 사무실로 찾아온 장관우가 풀기없이 말했다.

《지난 밤 성하부부장동무의 어머니가 사망하였습니다.》

《뭐요?》

태혁은 몹시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하루밤사이에 이렇게 갑자기 돌아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난밤 우리 행정위원회 운전사가 도당합숙앞의 눈길에 쓰러져있는 늙은이를 발견하고 병원에 실어갔습니다. 아들이 범한 과오를 듣고 찾아오다가 로상에서 졸도하였답니다. 내가 련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엔 의식이 없는 늙은이의 침대옆에 성하부부장이 고개를 떨구고 컴컴히 앉아있더군요. 늙은이는 근 한시간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바라보며 〈네가 어쩌면 이럴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 않습니까. 그는 벌써 모든것을 다 알고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던 늙은이가 마지막힘을 모아 〈내가 잘못했다. 이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너를 강계에 붙잡아둬야 하는건데··· 평양으로 보낸게 내 죄다.〉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태혁의 두눈에 조용히 눈물이 감돌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 가슴 아픈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겠는가. 늙은이의 그 눈물겨운 말에는 제가 나서 자란 땅의 소중함을 모르는 일군이 아니라 이 자강땅을 진정으로 사랑할줄 아는 인간이 되라는 당부가 뜨겁게 어려있었다.

붕대를 둘러감은 몸에 외투를 걸친 장관우도 늙은이와의 영결을 슬퍼하며 성에가 시허옇게 낀 창문앞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부위원장동무, 우리 부부장동무가 섭섭치 않게 늙은이의 장례를 잘 치뤄줍시다.》

장관우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서있다가 그를 돌아다보며 《성하부부장은 사람이 아닙니다!》하고 방에서 힝 나가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