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2

 

제 6 장

2

 

근 두달만에 임무를 수행하고 김철에서 돌아온 혜경의 축간 얼굴에는 그동안 객지생활을 하며 밀린 피곤이 가뿍 실려있었다.

태혁은 그의 차거운 작은 두손을 꽉 잡아주고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태혁의 앞에서 반가와 어쩔바를 몰라 하던 혜경은 얼굴을 숙이고 나직이 흐느꼈다.

《이거 혜경이가 내앞에 와서 우는걸보니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만. 자, 그만 눈물을 거두고 여기에 앉소. 이젠 혜경의 이야기나 좀 들어보자구.》

태혁은 벽밑의 폭신한 쏘파에 혜경을 앉히고 자기도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다른 동무들은 어디에 있소?》

《역에 있습니다. 우린 너무 사기가 나서 강재방통우에 앉아오며 손발이 떵떵 얼어드는데도 전혀 추운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동무네가 큰 일을 했소. 큰 일을··· 이렇게 마침 와주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소.》

태혁은 그때에야 제철소의 연기에 그슬린듯 한 혜경의 덞어진 솜외투며 본래의 색갈을 알아보기 어렵게 얼룩덜룩 기름때가 묻은 바지에 눈길이 미치자 가슴속이 얼얼해났다. 어디 그뿐인가. 시누렇게 쇠녹이 앉은 편리화는 앞코숭이가 터져 발가락이 삐여져나올 정도였다. 혜경의 귀염성스러운 얼굴에서도 그와 비슷한 변화가 눈에 띄여 잠시 쓰린 마음을 금치 못하던 태혁은 그만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이상하게 혜경이가 얌전히 앉아있다 했더니 목수건에 턱을 박고 어린애처럼 쌔근쌔근 잠을 자고있었다. 이틀동안이나 강재방통우에 앉아오면서 얼마나 잠이 몰렸으면 이렇게 정신없이 곯아떨어질가? 순간 책상앞으로 다가선 태혁은 교환수처녀에게 이제부터 30분동안만 자기 방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끊으라고 당부한 다음 수화기를 가만히 놓았다. 그리고는 혜경의 달콤한 잠을 깨울가봐 발걸음소리를 죽여가며 방에서 조심조심 걸어나갔다.

굳잠이 들어버린 혜경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조용한 방안에 뜨르릉- 전화종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혜경은 잠결에 어렴풋이 그 전화종소리를 가려듣고서야 겨우 눈을 떴다.

그러나 자기가 책임비서의 방에 와서 잠들어버린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딘가? 잠에 취한 혜경은 한참이나 눈이 휘둥그래 두리번거리다가 비로서 책임비서의 사무실임을 깨닫고 깜짝 놀라 일어섰다. 그런데 책임비서동지는 어디로 갔는가? 주인이 없는 방에서 전화종소리는 여전히 울렸다. 혜경은 책상앞으로 달려가서 얼른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순간 그는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나 김정일이요.》

수화기안에서 뜻밖에도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뜨겁게 울려왔다. 혜경은 너무나도 가슴이 두근거려 제 목소리 같지 않게 말씀올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도당책임비서동진 잠간 자리를 떴습니다.》

《동문 누구요?》

《선전부 부원 박혜경입니다.》

《박혜경··· 음,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 갔던 동무구만.》

(장군님께서 그 일을 어떻게 아실가?)

혜경은 드디여 기쁨에 넘쳐 힘차게 대답올렸다.

《그렇습니다. 장군님!》

《동무에 대한 이야기는 동무네 책임비서한테서 들었소. 희천기관차대의 견인기도 동무가 현장에 내려가 로동자들을 발동하여 살렸다지? 그래 강재는 받아왔소?》

《장군님, 오늘 아침에 강재를 실은 화차가 강계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대단하오. 요즘 나라의 강재사정이 긴장하여 정무원 부총리도 받아오지 못하는 강재를 동무가 실어왔단 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고나서 다정히 물으시였다.

《책임비서동문 어디로 갔소?》

혜경은 철딱서니없이 책임비서의 방에 와서 잠들어버린 일이 부끄러워 얼른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전 책임비서동지에게 김철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깜박 잠들었댔습니다.》

《책임비서동무앞에 와서 잠들었다?》

그이께서는 또 한번 큰 소리로 웃으시였다.

《그러니 동무를 잠재우려고 잠간 자리를 피한게로군. 좀 찾아보오. 거기 어디 가까운데서 담배를 태우며 서성거리고있을거요.》

《알겠습니다.》

혜경은 전화가 끊어질가봐 수화기를 살며시 놓고 재빨리 방에서 달려나갔다. 복도 창문앞에 태혁이와 림준이 마주 서있었다. 방금 온듯 거친 숨을 몰아쉬는 림준의 눈빛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책임비서동지, 대안중기계공장으로 간다고 떠난 리성하부부장동무가 종무소식이길래 알아봤더니만 글쎄··· 아직도 발전기생산에 착수하지 않았다구 합니다. 이런 코막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게 정말이요?》

《정말이라니까요. 난 너무 부아가 나서 대안에 나쁜 놈이 엎데있지 않는가구 고함을 질렀습니다.》

《알겠소!》 태혁이가 성칼지게 말하고 급히 달려오는 혜경을 얼핏 돌아다봤다.

《책임비서동지, 책임비서동지··· 어서요! 장군님께서 전화로 찾으십니다.》

혜경의 다급한 말을 듣고서야 태혁은 방으로 뛰여들어가 수화기를 움켜잡았다.

《장군님, 강태혁이 전화를 받습니다.》

《아, 태혁동무요? 내 방금 혜경동무한테서 강재를 받아왔다는 말을 들었소. 똑똑한 동무요. 그 동무가 김철에 가서 숱한 고생을 하고 동무앞에 와서 잠들었다지? 그게 얼마나 좋소. 동무가 정말 부럽구만.》

《장군님, 저도 이렇게 사랑스러운 동무들과 함께 일하니 힘든줄 모르겠습니다.》

태혁은 이번에 김철에 파견한 혜경이네 일행속에 10년전 시행정위원회 위원장사업을 맡아하다가 과오를 범하고 출당철직된 김중범이를 함께 보낸데 대해서도 사실대로 말씀올렸다.

《잘했소. 그 동무의 정치적생명을 건져주려고 김철에 따라보냈으면 아주 잘했소. 우린 오늘의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기 위한 자강도로동계급의 투쟁을 통하여 이전보다 훨씬 억세여진 우리 인민의 모습을 세상에 시위할수 있게 되여야 합니다. 내 이전에도 동무한테 말했지만 적들이 우리를 고립압살하려고 제아무리 미친듯이 날뛰여도 우리 인민의 이 무궁무진한 힘만은 절대로 억누르거나 봉쇄하지 못합니다.》

《장군님, 지금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은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최후돌격전에 나서서 용맹하게 싸우고있습니다. 이 비등된 기세로 일하면 이달중으로 모든 발전소들의 구조물공사를 완전히 끝내고 설비조립작업에 달라붙을수 있습니다. 얼마전 강계청년발전소동무들은 몇해동안 현장구석에 사장되여있던 비동기전동기를 개조하여 2천kw 발전기를 제작하였습니다. 강계청년발전소동무들이 15년동안이나 역사질하면서 만들지 못한 발전기인데 지금 꽝꽝 기운차게 돌아갑니다.》

《비동기전동기를 발전기로 개조하였단 말이지? 그거 정말 멋들어진 발기를 했소. 아주 훌륭하오!》

《평양전력설계사업소의 원자력발전소 설계가인 리경훈선생이 이번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완강히 반대해나섰지만 그는 우리가 살아갈 길은 자력갱생밖에 없다고 하며 로동자들과 함께 현장에서 며칠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적들의 경수로건설에 환멸을 느끼고 자강도에 와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며 여생을 빛내이는 참다운 학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다년간 경수로건설을 위한 대적투쟁에 참가하면서 우리 당의 자력갱생밖에 믿을것이 없음을 뼈속깊이 체험했다고 하시며 친절히 물으시였다.

《대안중기계공장에서 보장하기로 된 발전기들은 어떻게 되였습니까?》

《장군님, 거기선 아직 생산에 착수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발전기들때문에 공사기일보장이 매우 곤난하게 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였다.

긴 시간이 흐른후에야 그이께서는 거센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대안중기계공장에 문제가 있소! 왜 그랬는지 알아봤습니까?》

《정무원에서 전력과 자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희들은 너무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보니···》

태혁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그이의 결론을 기다렸다.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이의 말씀이 조용히 울려왔다.

《알겠습니다.》

 

《여보 기사장동무, 당신네가 도대체 제정신 있는 사람들이요? 자강도에 보내줄 발전기들이야 장군님앞에서 결의했던 일이 아니요. 그런데도 아직 발전기생산에 착수하지도 않았다니 이런 불손한 행위가 어디 있소!》

대안중기계공장의 한심한 사태에 부아가 난 리성하는 아던 정 보던 정 없이 몽둥이 휘두르듯 을렀다 멨다. 이러나 저러나 스위스에 기술자대표단성원으로 갔다온 사람은 기사장이였다.

리성하는 워낙 안면이 넓어 대안중기계 지배인과도 너나들이 할 정도로 친밀히 교제하는 사람이였지만 지배인은 제껴놓다싶이 하고 직접 책임을 져야할 당사자인 기사장을 달구어댔다.

리성하가 잔뜩 열이 올라 몰아대여도 찍소리 못하던 기사장이 피우던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면서 만만치 않게 맞섰다.

《낸들 용빼는 재간이 있소. 맨손으로야 발전기를 만들수 없잖소. 내 발바닥에 불이 일게 정무원과 기계공업부, 전력공업부걸음을 얼마나 했는지 알기나 하구 큰소리요? 다들 무우 먹구 체한것처럼 상을 찌프리고 앉아서 한다는 말을 들어보면 한대 멕일 생각밖에 나질 않더란 말이요. 우린 조막만 한 발전기를 만들자고 해도 큰 공장을 몽땅 돌려야 하오. 그래 우리한테 누가 전기를 줬소. 자재가 없어 쩔쩔 매는걸 보면서 도와준 사람은 있소!》

대안중기계 기사장이 오히려 제편에서 볼부은 소리를 해도 리성하는 들은체 하지 않고 헛눈만 팔았다. 시허옇게 쌓여있는 공장구내의 눈무지들에 눈길을 던지고 앉아있는 그의 눈앞에 자강도의 엄혹한 현실이 흐릿하게 비껴들었다. 모두들 이 엄동설한에 죽음을 각오하고 사생결단으로 일하는데 여기는 어떤가? 딴세상 같다. 뻔뻔스럽게 누가 전기와 자재를 줬는가면서 버젓이 내놓고 말하는 판이다. 과연 그것이 발전기를 생산하지 못한 방패막이로 될수 있는가?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런 한심한 사람들을 믿고 문암의 2천kw 발전기만은 우에다 제기하여 해결받자며 완강히 주장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자강도로동계급은 어떤 조건타발도 없이 그 문암의 발전기도 자체로 만들었다. 한때 그가 현실성이 없다고 반대했던 전투목표도 기적적으로 추진되여간다. 그들의 주장을 달가와하지 않고 엇나가면서 내가 한 일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는 괴로운 생각에 어깨가 처져있던 리성하는 자신에 대한 울화라도 터뜨리듯 기사장을 향해 왈칵 어성을 돋구었다.

《여보, 자강도에선 뭐가 있어 장군님의 명령관철에 일떠선줄 아오? 지금이 이떤 때요. 당신들은 공장안에 구겨박혀 당초에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모르누만. 나한테 그따위 소릴 하는건 괜찮은데 다른데 가서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단단히 문제가 서오. 이건 위협이 아니요.》

대안중기계 기사장은 제김에 속이 언짢아 푸푸 입바람을 내불다가 리성하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부부장동무, 자강도에 들어가 있으면 다요?》

《그건 무슨 소리요?》

《전력공업부일에선 깨끗이 손털고 나앉을 생각인가 말이요. 우리가 자재는 좀 마련해놨는데 한달만 공장에 전기를 넣어주시오. 부장령감은 어찌나 구두쇠인지 두번다시 상대하고싶은 생각이 없소.》

대안의 발전기생산이 지연되여 바짝 등이 달아난 리성하는 그 말을 귀가 항아리만해 듣다가 오금을 박았다.

《한달이면 늦소. 좀 더 앞당겨야지.》

《글쎄 전기만 대주시우다. 죽으나 사나 합지요.》

《어디 노력해보기요.》

리성하는 딱소리나게 된다는 말은 하지 않고 대안중기계공장을 떠나 평양에 올라오자 즉시 부장사무실로 찾아들어갔다. 자강도에 내려간후 얼씬도 하지 않던 리성하가 벌겋게 흥분된 얼굴로 급히 나타나자 부장은 그의 손을 잡아끌면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기 앉아서도 그쪽 소식을 더러 얻어듣는데 수고가 많겠구만.》

《저야 뭐 하는 일이 있는가요.》

《일전에 부부장동무의 어머니건강이 좋잖아 부인이 강계로 떠난다는 말을 듣고도 도와주지 못해서 안됐소.》

《별 말씀을···》

리성하는 기본문제에로 화제를 끌어가려고 자기 집안일은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였다.

마침 부장이 자강도형편에 대해 묻자 이때다 하고 그는 말보따리를 다 털어가며 열변을 토로했다. 본시 리성하의 구변이 능한데다 두석달 자강도에 내려가 생활하며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들이 감동적이다보니 부장은 넋없이 앉아서 눈물을 머금군 했다. 리성하는 자강도인민들이 겪고있는 전투의 엄혹성을 강조하느라 한때 자기가 패배주의적으로 신심이 없이 동요했던 허물까지 들춰내면서 무랍없이 터쳐놓았다. 부장의 입에서 대안중기계공장에 전력을 보장해주자는 말이 저절로 튀여나오게 한참이나 그렇게 바람을 불어넣고난 리성하는 조금도 에돌지 않고 직방 들이댔다.

《부장동무, 대안에선 전기가 없어 아직도 자강도에 보내줄 발전기생산에 착수하지 못했습니다. 이거 대안때문에 큰 공사를 망치겠다니까요. 하루가 급합니다. 더두말구 20일동안만이라도 대안중기계에 전기를 넣어줍시다.》

부장이 한동안 덤덤히 앉아서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디 전력이 있어야지.》

《대담하게 어느 한 대상의 전력을 잡아떼야지요. 대안에 전력을 줬다고 문제로 될건 없습니다.》

《허! 부부장동무가 우리 일에 판무식한 사람처럼 말하는군. 그래 어디서 뗄수 있다고 생각하오? 지금 전기를 쓰는 공장들이 불과 몇개 안되오. 그렇다고 철도에서 잡아떼겠소? 그러지 않아도 달리던 렬차들이 쩍하면 멈춰서는 판인데··· 요즘은 한kw의 전력도 정무원의 승인없이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오.》

리성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부장이 숨김없이 터놓은 말속에 담겨있는 진실을 부정할수 없었던것이다. 그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으나 대안에 전기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짓눌려 리성하는 하는 일없이 괴로운 나날을 흘러보냈다.

내가 미리감치 대안중기계공장의 실태를 알아보고 대책을 세울걸 너무 무관심했어. 큰 공장이니 그쯤한 발전기야 어련히 만들겠거니 했지··· 리성하는 대안의 발전기들을 자기가 맡겠다고 자진해나섰던 일이 여간 후회되지 않았다. 벼룩이도 낯짝이 있다는데 이제야 무슨 면목으로 태혁이 앞에 나타나겠는가? 그러던 리성하는 갑자기 한밤중에 이불을 훌 밀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렇지, 다른 방도가 없잖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