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0

 

제 6 장

10

 

3월! 자강땅은 아직도 한겨울일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리창을 비껴치며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희끗희끗 성글게 흩날리는 눈발을 이윽토록 시름겹게 바라보시였다. 벌써 넉달동안이나 자강도로동계급은 고산지방의 사나운 혹한속에서 사생결단으로 언땅을 파헤치고 언제를 쌓아올리며 힘겨웁게 발전소들을 건설한다. 그들은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고 밤낮없이 처절한 전투를 하는데 오늘아침 정무원으로부터 장강군당책임비서가 발전소건설만 내밀며 올해 영농준비를 태공한다는 뜻밖의 보고를 받으시고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장강군의 마지막전투를 앞장에서 능숙하게 지휘하여야 할 일군이 농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니··· 발전소건설의 기일보장이 어려워져서인가?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제라도 바로잡아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이께서는 즉시 그를 당중앙위원회로 부르시였다.

그때로부터 근 7시간이 경과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로 서기실장한테 물어보시였다.

《장강군당 책임비서동무가 오지 않았습니까?》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정무원 부총리동지가 와서 기다립니다.》

《들여보내시오.》

서기실장과 그 짤막한 전화가 있은후였다.

정무원부총리가 그이의 집무실안으로 조용히 들어왔다.

《앉으시오.》

《장군님, 전 북창화력발전소 설비보수현장에 나가 살다보니 대안의 발전기생산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부총리가 얼굴이 벌개서 자기의 불찰을 심심히 사죄했다.

《난 지난해 스위스에 기술자대표단을 파견할 때 대안중기계공장 기사장을 망라시켜 보냈습니다. 그것은 대안중기계가 앞으로 전국적인 범위에서 중소형발전소건설이 활발히 진행될 때 한몫 단단히 해야 할 공장이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력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서 발전기생산에 착수하지 않았습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은 자기 도에 만포세멘트공장이 있지만 기와공장을 만들어놓고 발전소와 전기난방화된 살림집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자체로 생산해쓰고있습니다. 얼마전 강계청년발전소로동계급은 페기해버린 비동기전동기를 발전기로 개조하여 지금까지 15년동안이나 해결하지 못한 2천kw발전기도 만들었습니다. 나는 며칠전 강계청년발전소 로동계급에게 호소하여 대안중기계공장에 필요한 전력을 보장해주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 일군들도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는 일이였는데 뛰지 않고 앉아서 전력타발만 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년말 자신의 집무실에서 자강도로동계급이 작성한 전투목표를 토론할 때의 일이 떠올라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전력공업부장과 대안중기계기사장은 자강도에서 굉장히 높은 전투계획을 세워놓고 고작 몇대의 발전기를 보장해달라고 했는데 장군님께 올리는 문건이기때문에 어려워서 요구하고싶어도 제기하지 못했을것이라고 했다. 대안중기계기사장은 실지 공사에 착수하면 자강도동무들이 자기네 공장에 발전기를 더 만들어달라며 손을 내밀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그이께서는 자강도로동계급을 잘 알기에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손을 내밀기는커녕 지금 대안중기계의 발전기들이 늦어질수 있기에 자기들이 맡아서 만들기 위한 피타는 투쟁을 벌리고있다. 자강도가 다른 도보다 조건이 훨씬 못하면 못했지 유리한 점이란 하나도 없다. 자강도일군들과 로동계급은 그러한 최악의 조건을 타개하며 오늘의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한 결사전을 벌리고있는데 일군들은 뭘하는 사람들인가! 그이의 준절하신 말씀에 부총리는 일언반구도 못하며 수굿이 앉아있기만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근엄한 표정으로 물으시였다.

《오늘 아침 정무원에서 제기한 장강군당책임비서동무의 문제는 사실입니까?》

《정무원국장동무와 농업위원회 책임부원동무가 장강군의 영농준비실태를 료해하고 와서 제출한 자료입니다. 장강군 농장들의 화학비료창고들이 텅 비여있고 퇴비반출도 하지 않아서 논밭들도 번번하다구 합니다. 발전소건설만 못지 않게 농사에 관심해야 할 군당책임비서동무가 연구중에 있는 리미액미생물비료에 기대를 걸고 영농준비를 소홀히 한것 같습니다.》

그이께서는 부총리와 심중히 나누시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림성실을 머리속에 그려보시였다. 그가 올해에는 꼭 리미액미생물비료로 농사를 잘 짓겠다던 말이 귀전에 다시금 뜨겁게 울려왔다. 하지만 과학연구사업이란 욕망과 달리 뜻대로 되여주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지 않는가. 마침 그이의 집무실로 들어온 서기실장이 금방 장강군당책임비서가 도착했다고 알려드리였다.

《아, 군당책임비서동무가 왔소?》

그이께서는 출입문쪽을 바라보시며 걸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가 방안으로 들어와 두손을 바지혼솔에 눌러붙이고 허리굽혀 인사를 올렸다.

《전투장에서 온 동무와 이렇게 만나니 반갑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쏘파에서 일어나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해병출신의 건장하던 일군인데 량볼이 훌쭉하게 패이고 관골이 뚝 삐여져 딴사람 같았다. 농군의 손처럼 손바닥에도 썩살이 박혀 껄끔껄끔했다. 움푹 꺼진 눈확의 시뻘겋게 피진 두눈만이 평시의 과단성있는 그의 성미를 말해주며 감때사납게 번뜩이였다.

《앉소. 어서 앉소. 얼굴이 무척 상했구만.》

김충모를 창가의 쏘파에 앉힌 그이께서는 여전히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시였다. 몇달사이에 사람이 이렇게도 변모할수 있는가? 마치 김충모의 축간 얼굴에서 자강도인민들이 겪고있는 고생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럽게 느끼시는듯 하여 가슴속이 저려드시였다.

《그래 모두들 어떻게 일하고있소?》

김충모가 자리에서 일어나 큼직한 두손을 배허벅에 모아쥐였다. 그는 대답이 없이 벌겋게 충혈된 눈만 껌벅거리였다. 갑자기 그이의 부르심을 받고 몹시 당황해하는 사람 같았다.

《지금 동무네 장강군발전소건설이 제일 어려워졌지. 동무가 수고하는건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말을 잇지 못하시였다. 아무리 힘겨워도 자강도로동계급은 발전소도 건설하고 공장도 돌리며 농사에서도 전국의 앞장에 서야 한다.

그때만이 그들이 이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꼈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었다.

《장강군의 올해농사준비가 망태기라고 하오. 왜 그렇게 되였습니까?》

김충모가 곧은 목이 되여 아래턱을 버쩍 쳐들었다. 그이께서 앉아서 말하라고 손짓하시는데도 충모는 말뚝처럼 꿋꿋이 선채 고통스럽게 얼굴을 찌프렸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반쯤 열린 입안에서는 바람소리같은 쐑쐑소리가 새여나왔다.

웬일인가? 김충모는 여전히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갑잘랐다. 그는 어딘가 없이 몹시 안타까와 하는 기색으로 양복저고리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하다가 그만 피나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거동이 하도 이상하여 부총리도 눈이 둥그래서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때였다. 뜻밖에도 서기실장의 안내를 받아 자강도당책임비서 강태혁이가 방안으로 급히 들어왔다.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아니, 동문 어떻게 왔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불시에 나타난 태혁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그이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함뿍 피여났다.

《어서 여기 와서 앉소.》

태혁은 그이의 옆자리에 앉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였다. 가만 보니 보통 급한 일로 찾아온것 같지 않았다.

《이젠 이야기하오. 무슨 용무로 왔는지 들어봅시다.》

《장군님, 전 저 장강군당책임비서동무를 따라왔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태혁은 한손으로 안경을 추슬러올리면서 충모를 흘끔 곁눈질 했다.

《저 장강군당책임비서동문 말을 못합니다.》

《말을 못하다니?》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못 크게 놀라시며 쏘파의 등받이에서 몸을 당기시였다. 태혁의 어글어글한 두눈에 뜨거운 물기가 핑 감돌았다.

《지난 발전소건설기간 잠을 못 자고 차거운 강물속에 뛰여들어 일하는 바람에 저렇게 되였습니다. 우리 자강도추위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대소한철에 강물속에 잠간 들어갔다 나와도 작업복은 소가죽처럼 꾸덕꾸덕 얼고 바지가랭이엔 고드름이 달립니다. 저 군당책임비서동무가 매일 그런 작업복을 입고다니며 혹한속에서 일했습니다. 처음엔 목쉰 소리를 하더니 이젠 아무 말도 못합니다.》

그이께서는 갑자기 눈앞이 콱 흐려지시였다. 방금전 김충모가 왜 자신의 물음에 한마디도 대답을 못하는가 했더니 벙어리로 되였단 말인가? 가슴이 쓰리다 못하여 칼로 에이는듯 하는것을 겨우 참으시던 그이께서는 그만 주먹으로 앞탁을 탕 내리치시였다.

《그런데도 동무들은 뭘 했소. 옆에서 그렇게도 도와줄 생각을 못했단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성난 소리로 꾸짖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어째서인지 아픔은 조금도 덜리지 않고 마음이 더구나 괴로와나시였다. 작년말 자강도로동계급에게 어려운 과업을 맡기실 때와 판판 달리 태혁이도 허울밖에 남지 않았음을 비로소 눈물겹게 깨달으신것이였다. 얼굴은 숯덩이처럼 거멓게 변하고 두볼은 살이 빠져 코만 삐죽이 두드러져보였다. 몇달어간에 키도 작아지고 늙은이처럼 등도 굽었다. 창문켠의 쏘파에는 장강군당책임비서가 바위돌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있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그의 꺼칠한 볼을 타고 주르륵 흘러 주단우에 뚤렁뚤렁 떨어져내리고있었다.

《장군님, 제힘으로는 도저히 그를 막아나설수 없었습니다.》

태혁이가 젖은 얼굴을 쳐들고 목메인 소리로 그 까닭을 떠듬떠듬 말씀올렸다.

···장강군에서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위한 궐기모임이 있은후였다. 그때 장강군인민들의 식량사정도 눈뜨고 볼수 없을 정도로 곤난했다. 그들은 당장 때식거리가 없어 겨우 살아가는 판에 군당책임비서가 발전소도 건설하고 살림집도 짓자고 하자 정신나간 소리를 한다면서 마지 못해 따라나섰다. 김충모가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전에는 자기를 군당책임비서라고 부르지 말라며 잔등에서 질통이 떨어질 사이없이 솔선 이신작칙을 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렴, 군당책임비서야 책임비서겠지. 자기들처럼 생활이 어렵지 않으니 힘든줄 모른다고 어떤 사람들은 쑤근쑤근 뒤소리도 했다. 김충모는 전혀 그런 눈치를 채지 못한채 골재짐을 지고 등가죽이 벗겨지게 뛰여다니다가 하루저녁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요즘 건설장의 녀인들이 우리 집에 물마시러 와서 왜 몰래 밥가마를 열어보는가고 묻는 말에 와뜰 놀랐다.

《어머니, 그게 무슨 소리요? 장군님께선 나를 믿고 군당책임비서 중책을 맡기셨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의심하다니요. 내가 도대체 군당책임비서자격이 있는 놈입니까. 장군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소. 내가 7~8년동안이나 헛일을 했습니다!》하고 가슴을 쳤다.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해서 《내가 공연한 소릴 했구나. 됐다. 우리 집 밥가마에도 풀죽이 놓여있지 않았느냐.》라고 아들을 위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충모는 장밤 웃방에 앉아 담배질만 하다가 날이 새자 집을 나선 뒤로는 발전소건설장에서 살며 죽을내기로 일한다고 했다. 태혁은 옆에 김충모가 앉아있건말건 상관함이 없이 그렇게 말하고 두눈을 슴벅거렸다.

《전 저 동무가 너무도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기에 그러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해줬습니다. 그때마다 충모동문 자기는 장군님앞에 용서받을 다른 방도가 없다면서···》

《됐소, 됐소. 그만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격한 심정으로 태혁의 말을 밀막아버리고 창가로 다가서시였다. 불시에 목안이 울컥 메여오르는것을 억제할수 없으시였다.

김충모는 여전히 쏘파의 팔걸이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서 흐느껴 울고있었다. 순간 그이께서도 자신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여 젖은 눈굽을 훔치면서 갈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내가 동무들을 너무도 고생시키는것 같소. 너무도···》

《장군님!》

태혁은 코등으로 미끄러져내리는 안경을 잡고 일어섰다.

《저희들때문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강군당책임비서동무만이 아닙니다. 우리 자강도의 모든 로동계급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사신처럼 일떠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고있습니다. 정무원과 농업위원회 일군들이 장강군의 영농준비가 되지 않았다는데 그 사람들의 말이 옳습니다. 저의 실책입니다.》

태혁은 한손으로 아래턱을 꽉 움켜잡고섰다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장군님, 정말 힘이 듭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이겨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이 뭉클해지는것을 느끼며 그를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한참후에야 그이께서는 태혁의 앞으로 다가서며 그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시였다.

《태혁동무, 솔직히 말해주어 고맙소. 어떻게 하나 뚫고 나갑시다.》

그이의 짤막한 말씀속에서 뜨겁게 울리는 사랑과 인정에 태혁은 또다시 얼굴을 숙였다. 갑자기 눈동자가 눈물에 가리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며칠전 림성실동문 장군님께 맹세한대로 자기의 연구사업을 성공하고 현장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는 전혀 운신을 못하지만 지금도 전투장을 떠나지 않고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담가에 실려다니며 자강땅에 뿌릴 리미액종균을 배양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였다. 운신할수 없는 몸으로 담가에 실려 리미액종균을 배양하는 림성실이며 말못하는 장강군당책임비서, 발전소건설장에 자기의 꽃다운 청춘을 바친 처녀중대장. 그들의 억센 모습이 합쳐져 오늘의 난관을 헤쳐가는 자강땅사람들의 군상처럼 눈앞에 숭엄하게 비껴드시였다.

태혁은 옛 친위전사의 자세로 그이의 앞에 듬직히 서있었다.

《장군님, 전 돌아가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를 괴롭게 바라보시였다.

말못하는 군당책임비서를 따라 천리길을 달려온 강태혁! 가슴속에서 뜨거운 인정이 불타는 이 열혈의 인간, 태혁을 만나자 선자리에서 그냥 돌려보내지 않을수 없는 아픔을 견디기 어려워 방안을 거니시였다.

《가겠단 말이지···》

그이께서는 차마 떠나라는 말씀을 못하고 천천히 걸음을 멈추시였다.

《장강군당책임비서동무, 동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일한다는데 여기서 치료를 받고 내려가야겠소.》

김충모가 눈이 휘둥그래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황소의 영각같은 외마디소리를 지르고 돌아서서 종이장우에 뭔가 서둘러 썼다.

조금후 그이께서는 김충모가 눈물을 글썽히 머금고 올리는 종이장을 받아드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 지금 우리 장강군에서는 장군님의 지휘하에 최후결사전이 벌어지고있습니다.

이 엄숙하고도 책임적인 시각에 군당책임비서인 저는 대오에서 단 한발자욱도 물러설수 없습니다.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여도 좋습니다. 저를 전투장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충모가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적은 종이장우의 글줄은 그의 말을 직접 듣는것에 비할수 없이 훨씬 더 가슴을 울리며 절절하게 안겨왔다. 두세군데 눈물방울이 떨어져 퍼렇게 잉크가 퍼진 종이장을 들고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참이나 말없이 서계시였다. 태혁이며 김충모, 이 불덩어리같은 일군들을 좀 더 아껴주고 따뜻이 품어주실수 없는 일로 마음이 쓰리시였다. 그때까지도 태혁은 떠나지 못하고 눈물이 글썽하여 출입문켠에 서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오래도록 괴로운 심정에 잠겨 다시금 집무실안을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드디여 부총리를 향해 돌아서시였다.

《부총리동무, 오늘 정무원과 농업위원회, 대안중기계공장일군들을 자강도로 들여보내야겠습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이 이 고난의 행군의 혈로를 헤쳐나가며 어떻게 희생적으로 싸우고있는가를 보고 오게 하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부총리가 정중히 대답올리고 방에서 나간 후였다.

《동무들은 나와 함께 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곧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청사밖으로 나오신 그이께서는 자신의 승용차에 그들을 태우고 자리에 앉으시면서 조향륜을 잡으시였다.

태혁이와 김충모는 뜻밖의 일에 대뜸 눈앞이 휘둥그래졌다.

승용차는 어느덧 당중앙위원회를 벗어나 시내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갑자기 어디로 가시는가? 김충모가 치료를 받으라고해도 말을 듣지 않으니 차를 몰고 병원에 찾아가시는게 아닐가. 그런데 가만보니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장대재언덕을 넘어선 승용차는 개선문쪽으로 뻗은 대도로의 중앙선을 타고 곧추 달리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운전대를 잡으신채 한마디의 말씀도 없이 차를 고속으로 몰아가기만 하시였다. 네거리의 초소마다에서는 어느새 그이의 승용차를 알아본 교통안전원처녀들이 오가는 차들을 바삐 멈춰세우느라 팽이처럼 돌아가다가 지휘봉을 맵시나게 옆으로 쳐들어올리는 모습들이 얼핏얼핏 눈에 띄였다.

승용차가 시내를 통과하여 거침없이 내달리자 태혁의 의혹은 점점 커졌다.

이날은 누구에게 알릴 사이도 없이 갑자기 떠나시다보니 뒤따라 오는 호위차도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애당초 차에 타지 말고 나누울걸··· 내가 무슨 실수를 하고있는가? 태혁은 바늘방석에 앉은것같은 심정으로 얼핏 김충모를 돌아보았다. 김충모도 사방을 두릿두릿 살피기만 했다.

그이께서는 잠시도 시창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시였다. 승용차의 차창밖으로는 흰눈덮인 산발들과 농장마을의 아담한 문화주택들이 살처럼 휙휙 스쳐지났다. 어찌도 차를 세차게 몰아가시는지 태혁은 무슨 말씀을 올리고싶어도 입을 열수가 없었다.

얼마후엔 날까지 어두워지기 시작하여 어디가 어딘지 가려보기 어려웠다.

다만 교외로 달린다는것만을 어렴풋이 짐작할수 있을뿐이였다.

조향륜우에 두손을 얹고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여전히 앞을 살피고계시였다.

태혁은 아무리 마음을 써야 소용없다는것을 깨닫고 땀발이 척척히 내밴 잔등을 의자등받이에 눌러붙이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이삼십분 더 경과한 때였다. 오른쪽으로 차머리를 돌린 승용차는 잣나무숲이 우거진 골짜기의 어느 한 건물앞에 문득 멎어섰다.

그이께서는 서둘러 차에서 내리시였다. 태혁이와 김충모도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하면서 따라내렸다. 순간 태혁은 어둠속에서 추녀를 쳐들고 솟아있는 낯익은 건물을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보았다. 언젠가 한번 왔다간 일이 있는 초대소였다.

그이께서는 때마침 황급히 달려나온 초대소 소장의 인사를 받으면서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소장동무, 지금 이 초대소에 누가 들어있습니까?》

《장군님,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내 소장동무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 이제 이 동무들을 식사시키고 하루밤 푹 휴식시키시오.》

《알았습니다.》

태혁이와 김충모는 일시에 우뚝 굳어졌다. 그러니 장군님께서 자기들을 휴식시키려고 이 먼 산중의 초대소로 몸소 차를 몰아오셨단 말인가!

《하루밤 쉰다고 동무들의 피곤이 풀리겠소? 하지만 어찌겠소. 더 쉬라고해도 말을 듣지 않을건 뻔한데··· 차는 래일아침에 보내주겠습니다. 다른 생각말고 오늘밤만이라도 여기서 푹 휴식을 하오. 그래야 내 마음도 좀 편해질것같소.》

그이께서는 곧 돌아서서 승용차에 오르시며 다시금 조향륜을 잡으시였다. 순간 김충모가 와락 달려가 두팔로 승용차의 차창을 그러안으며 헉헉 흐느꼈다. 그가 격정을 터뜨리는 바람에 김정일동지께서는 발동을 걸고도 인차 떠나지 못하시였다.

《군당책임비서동무, 물러서라구. 동무가 그러면 장군님께선 떠나시지 못해!》

태혁의 목멘 웨침이였다. 김충모가 얼굴을 싸쥐고 물러서자 승용차는 어둠속으로 서서히 움직여가기 시작했다. 잠시후 그이의 승용차불빛마저도 시야에서 안타깝게 사라져버리였다. 골짜기를 메운 고요만이 그들을 포근히 감싸고 잠자리에로 떠미는듯 했으나 김충모는 그때까지 길바닥에 바위돌처럼 웅크리고 앉은채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