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1

 

제 6 장

1

 

혜경은 한그람의 강재도 해결받지 못해 안타깝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남몰래 혼자 애꿎은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는지 몰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왜 떠났던가? 애당초 자기는 자신이 없다고 나누울걸 그랬다는 후회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고개를 쳐들었다. 김철에는 강재를 받으러온 사람들로 꽉 덮이다싶이 하였다. 매일과 같이 승벽내기를 벌리였다. 정무원의 모모한 간부들과 무력부장령들, 직위를 놓고봐도 자기같은건 상대도 되지 않을만큼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설치며 돌아가는 판이여서 혜경은 아직 지배인과 조용히 마주 앉지도 못하였다. 어쩌다가 겨우 기회가 생겨 지배인실로 비집고 들어가면 지배인은 혜경이가 찾아온 용무를 말하기도전에 대뜸 버럭 성을 내며 강재가 어디 있는가, 동무와 말씨름을 할사이가 없다며 훌쩍 나가버리였다. 지배인이 무섭게 군다는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그와 한두번 대상하여 본 사람들은 다들 호랑이같은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진짜 지배인은 여불없는 범이였다. 어디 말이나 변변히 붙일수 있게 하는가. 그래도 혜경은 어떻게 하든지 지배인을 구슬려 다문 몇t의 강재라도 받아가지고 돌아가야겠기에 오늘도 아침부터 지배인실앞에 가서 그가 나타나기만 눈이 새까매서 기다렸다.

태혁은 그를 떠나보내며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라, 그러면 얼마든지 강재가 나온다며 선전대의 림신애까지 붙여주었지만 이젠 그 푸접이 좋은 말괄량이조차도 지배인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그저 꿔온 보리자루처럼 혜경이한테 끌려다니다싶이 한다. 혜경이앞에서 무슨 생각엔가 골똘히 잠겨있던 림신애가 그를 바라보며 시들히 말했다.

《혜경이, 정말 불쌍해서 못 보겠구나. 한다하는 도당 부원의 웃주제가 그게 뭐야? 신발이랑 앞코숭이가 다 터진걸 신구.》

혜경은 장난기가 어려있는 림신애의 말에 서글프게 웃으면서 자기들의 편리화를 내려다보았다. 림신애가 신고있는 편리화도 자기의것과 별반 구별이 없이 헐어빠진데다가 흙먼지투성이가 되여 볼 모양이 없었다. 선전대 《배우》의 체모에 어울리게 늘쌍 윤기가 반질반질 도는 굽높은 구두를 신고 강계바닥을 때각때각 울리며 다니던 멋쟁이처녀, 키가 늘씬하고 두눈이 서글서글한 림신애의 행색도 여간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이 김철에 와서 얼마나 분주히 드달려 다니였던가. 한밤중에도 성의껏 마련한 후방물자들을 들고 용해장과 출하직장의 로동자들을 뻔질나게 찾아다니느라 그들의 얼굴에서는 송골땀이 마를사이가 없었다. 그러한 나날이 흘러오는사이에 이젠 제철소로동자들과 퍼그나 친숙해져 길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되고 그들도 《강계처녀》들의 안타까운 문제를 풀어주지 못해 은근히 마음을 쓰는데 지배인만은 여전히 쓴외보듯 하니 속상한 일이였다. 태혁이가 김철에 도착하면 자주 전화도 하고 편지도 써보내라고 당부했지만 혜경은 매번 우는 소리만 할수 없어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있다. 하루빨리 강재가 도착하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을 책임비서동지의 마음인들 오죽 안타까울가? 혜경은 그 생각을 하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서 꼬박 뜬눈으로 새우군 한다. 이젠 식량이 다 떨어져 당장 먹고 살아갈 일도 급하였다. 그래서 한주일전에 김중범아바이를 강계로 보냈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알수 없다. 혜경은 이래저래 두루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남은 강재때문에 속이 타서 죽겠다는데 넌 별소릴 다하누나. 생뚱같이 신발따위가 뭐냐?》

《혜경인 정말 마음도 곱지.》

《애두, 제발 실없는 소린 그만해!》

혜경은 발끈해서 신애를 흘겨보았다. 좀해서 남한테 성낼줄 모르던 혜경이였는데 요즘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곧잘 신경질을 부리군 했다. 림신애는 그러건 말건 고운 눈에 생글생글 웃음을 담고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리광이라도 부리듯이 혜경의 한팔을 살짝 끄당기였다.

《난 뭐 네 마음을 모르는줄 알어? 어서 가자. 오늘은 아무리 여기서 지배인을 기다려도 소용이 없어. 여느때 같으면 벌써 사람들이 잔뜩 모여와서 지배인을 만나려고 법석 떠들겠는데 이렇게 조용하지 않어? 중범아바이가 오지 않았는지 빨리 합숙에 나가보자꾸나.》

혜경은 그 말을 듣고보니 그럴상 싶어서 림신애와 함께 숙소로 정한 로동자합숙으로 나가다가 깜짝 놀라 멈춰섰다. 여러명의 로동자들이 《여, 빨리 기중기차를 불러와!》하며 그들의 옆으로 부리나케 뛰여갔다. 웬일인가 했더니 바다물을 끌어들이는 제철소의 랭각관이 터졌다는것이였다. 혜경은 자신도 왜 그랬던지 모르게 《신애, 뭘해!》 하고 다급히 웨치며 그들을 뒤쫓아갔다. 김철에 와있는동안 어느새 제철소사람이 다되여버린 그였다. 하지만 사고현장에 도착한 혜경은 너무도 어마어마한 광경을 목격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열아름도 넘는 랭각관이 험상궂게 쩍 갈라진 사이로 솟구쳐나오는 물이 번지여 홍수가 난것 같았다. 이런 때면 쇠관의 터진 부위에 철테를 덧씌우고 단단히 조인다음 용접으로 때붙인다는데 미처 준비작업이 안돼 주위는 온통 물바다가 돼버리였다. 시급히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몇개 직장을 세우게 되는 위급한 정황이였으나 령하 30도로 떨어진 혹한속이다 보니 누구도 감히 선뜻 다가설 엄두를 못냈다. 울상이 된 혜경이가 《이 일을 어쩜 좋아. 동무들, 저 물을 몸으로 막아서라도 강철을 뽑아내자요.》하며 애원에 찬 눈길로 로동자들을 둘러보았다.

혜경의 안타까운 호소에 감동된 로동자들이 굉장한 압력으로 내뿜는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림신애도 얼굴을 후려치는 물벼락에 비칠거리며 뒤따르다가 《신애, 뭘해. 빨리 가서 저 방송차를 잡아!》하는 혜경의 웨침에 얼핏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가는 방송차가 눈에 띄였다. 림신애는 방송차를 따라가면서 《차를 세우라요. 세워요!》하고 소리쳤다. 방송차가 멈춰섰다.

림신애는 차에 올라 미처 량해를 구할사이없이 마이크를 들고 사고현장에서 벌어진 위태로운 사태를 다급히 알렸다. 여기저기에서 로동자들이 주먹을 쥐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마니며 솜옷을 벗어들고 달려와 터진 랭각관을 막기 위한 전투를 벌렸다. 그들의 불덩어리같은 마음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라 림신애는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를 격조높이 불렀다. 그의 노래는 도간도간 흐느낌때문에 끊어졌다. 근 반시간동안의 들끓는 분위기속에서 드디여 랭각관수리작업이 끝나자 로동자들은 저마끔 달려와 혜경을 둘러싸고 《정말 수고했소.〈강계처녀〉들의 이악성엔 쇠돌도 녹아나겠소.》하며 손을 꾹꾹 잡아주었다. 혜경은 추위에 꽁꽁 언 녀성같지 않게 생기를 띄며 명랑하게 웃어댔다. 자기의 흠빡 젖은 몸에 솜옷을 씌워주는 림신애와 함께 혜경은 제철소합숙으로 마구 줄달음쳐 갔다.

《혜경이, 넌 정말 도담해.》

림신애가 감탄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비행길 태우지 말아. 난 오늘 신애의 진짜 노래를 들었어. 넌 무대에서보다 훨씬 더 노래를 잘 부르더구나.》

《정말?》

림신애가 깔깔 웃으면서 혜경을 살틀히 그러안았다.

《혜경아, 빨리 가자. 오늘은 어쩐지 중범아바이도 왔을것 같애.》

림신애의 말처럼 중범아바이가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강계소식을 통 모르고 지내는 혜경은 여러모로 중범아바이가 여간 기다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합숙으로 돌아가보니 김중범아바이는 오지 않았다. 그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옆방으로 가보니 무역국부국장만 벽에 잔등을 붙인채 찌뿌둥히 앉아서 그들을 맞아주었다.

《오늘도 또 헛탕이요?》

《네, 만나지 못했어요.》

부국장은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한숨을 내쉬며 심드렁히 말했다.

《혜경동무, 이젠 아무래도 안되겠구만.》

《뭐가 안된단 말이예요.》

《이제라도 도당에 사실대로 보고하는게 어떻소. 그래야 김철의 강재를 단념하고 한시바삐 대책을 새울게 아니요. 괜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걸 될것처럼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간 큰 일을 칠것 같단 말이요. 강재때문에 발전소건설이 중단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소?》

혜경은 가뜩이나 일이 뜻대로 되여주지 않아서 속상한데 부국장까지 걸핏 하면 신심이 없는 말을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정말 이러다간 발전소건설에 지장을 주게 되진 않을가? 손맥이 탁 풀린 그가 머리수건도 벗지 못하고 나른히 앉아있는 모양을 한참이나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림신애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감돌고있었다.

《부국장동문 왜 그렇게도 자신이 없어 해요?》

《됐소. 그만하기요. 내가 또 괜한 소릴 한것 같소. 이제 동무보구 물러서라면 호락호락 물러서겠소?》

부국장은 림신애의 가시돋힌 말을 얼른 막아버리고 나서 김중범에 대한 불만을 한바탕 터뜨렸다.

《그런데 중범령감은 왜 떠난지 한주일이 되도록 아직도 나타나지 않소?》

《하루이틀사이에 오겠지요.》

《오기야 하겠지. 제기랄, 별 령감태기가 다 따라와가지구 애먹이누만.》

부국장은 후끈 단김에 김중범이가 이전에 시행정위원회 위원장직책에 있다가 과오를 범하고 출당철직당한 이야기까지 꺼내며 연방 볼이 부어서 욕설을 퍼부었다.

혜경은 자기도 강계를 떠나기 앞서 부국장처럼 김중범아바이를 왜 김철에 보내는가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 태혁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다가 《혜경동무, 중범동무가 환갑이 지났는데 우린 아직 그의 문제를 풀어주지 못했소. 다른 생각 말고 잘 도와주오. 중범동무도 남들처럼 한 일이 있어야 할게 아니요.》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혜경은 뜻밖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얼마나 당황했던지 모른다.

자기가 강재만이 아니라 한 인간의 운명문제까지 책임지고 떠난다는것을 그처럼 가슴벅차게 깨달았던것이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 어떤 동요를 하고있는가? 아니, 절대로 이래서는 안된다. 김중범아바이를 위해서도 어떻게하든 기어코 맡겨진 과업을 끝까지 수행하리라 벼르고 또 별렀던 혜경은 자리에서 닁큼 일어났다.

《부국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부국장이 혜경의 돌변한 얼굴을 놀랍게 쳐다봤다.

《내가 뭐 없는 소리를 했소?》

《옳아요. 중범아바이가 지난날 잘못을 저지른건 사실이예요. 그러나 오늘의 간고한 투쟁으로 사람들은 보다 아름다워지고 억세여지고있어요. 그것이 고난의 행군시기 인간들의 새로운 면모라는걸 부국장동문 알지 못하고있어요. 난 중범아바이도 반드시 이 보람찬 생활속에서 자기를 갱신하게 되리라고 믿어요. 중범아바이가 왜 따라왔는가구요? 난 이 말만은 그 누구에게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부국장동무한테는 꼭 말해주어야 할것 같군요. 중범아바이의 아픈 마음, 고민을 깨끗이 씻어주기 위해서 데려온거예요. 우린 중범아바이를 위해서도 자기 임무에 끝까지 성실해야 할 사람들이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중범아바이가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해선 안돼요. 이건 도당에서 우리에게 맡긴 눈물겨운 부탁이였어요. 부국장동무한테 과연 그런 뜨거운 마음이 있는가요? 부국장동무와 같이 차겁고 랭담한 심장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요. 난 지금에야 부국장동무가 요즘 왜 그렇게도 동요했는지 그 까닭도 속속들이 알게 된것 같아요. 내 말이 과했다면 량해하세요.》

부국장의 방에서 뛰여나와 녀성호실로 돌아온 혜경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그는 뒤따라 달려온 림신애가 야단스럽게 떠들며 달래여서야 맥풀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애, 난 지쳤어. 더이상 자신을 감당해낼것 같지 못해.》

《무슨 소릴 해? 혜경인 꼭 해낼거야. 금방 부국장을 답새겨준 그 불같은 마음이면 얼마든지 무쇠덩이 같은 김철지배인의 마음도 녹여낼수 있어. 난 믿어! 자, 이젠 웃어봐. 강계녀성답게!》

이럴 때의 림신애는 꼭 3살난 어린애 같기만 했다. 당장 혜경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그렇게 생억지를 부리던 림신애는 돌아앉아서 쿨쩍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림신애가 혜경이한테는 얼마나 큰 위안으로 되는지 몰랐다.

저녁에 혜경은 신애와 함께 일찌감치 역으로 중범아바이 마중을 떠났다. 그들이 합숙을 벗어나 한창 바지런히 걸어갈 때였다.

갑자기 철길옆의 공지에서 웬사람들인지 왁작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바라보니 하루일을 마치고 파철수집에 떨쳐나선 제철소로동자들이였다.

《여보게, 교대반장. 이거 마사진 기관차대가리가 아니야? 히야! 이놈의게 어떻게 여기에 구겨박혔어?》

《전쟁때 미국놈새끼들의 폭탄에 맞았겠지. 오라질놈들! 가부간 오늘 굉장한 노다지를 만난 셈이야. 자, 제꺽 파제끼자구.》

《아따, 큰 소린! 래일 낮교대자들이 몽땅 나와 달라붙기전에는 어림도 없어.》

혜경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그들이 옥신각신하는 모양을 지켜보다가 림신애를 향해 돌아서며 다급히 말했다.

《신애, 우리도 저기 가서 도와주자. 어때?》

《넌 힘들지도 않은게로구나.》

《모두들 저렇게 일손이 딸려하지 않니? 제철소일을 도와주는건 별로 없이 강재만 달라니 우리도 량심이 없지. 그렇잖어?》

혜경은 어느새 림신애앞에서 물러나 로동자들한테로 달려갔다. 그는 무작정 누군가의 삽자루를 빼앗아가지고 걸싸게 흙을 파제끼기 시작했다. 뒤따라 림신애도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일판에 뛰여들었다. 갑자기 그들이 나타나 열성을 내여 일하는 바람에 로동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아니, 이거 강계체네들이 아니요? 아침에 제철소 랭각관이 터졌을 때 찬물속에 뛰여들어 일하며 소문을 낸 동무구만.》

《저기 저 동무는···》

림신애에게 눈길을 멈춘 청년이 왜가리청을 뽑으며 떠따고았다.

《자강도로동계급이 강재가 없어 공장도 돌리지 못하고 발전소도 건설하지 못한다며 방송차에 올라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부른 동무구만. 정말 명가수던걸.》

로동자들이 저마끔 한마디씩 섬기며 떠들어대는 바람에 혜경이와 림신애는 즐거움에 차서 깔깔 웃었다. 알고보니 출하직장 낮교대자들이였다. 그들은 자기집 딸과 별반 차별이 없는 처녀들이 보통 악돌이 아니라면서 삽자루가 부러져나가게 듬뿍듬뿍 흙을 파제끼며 성수가 나서 일했다. 모두는 이날밤 늦도록 일하고 어지간히 지쳐서 일손을 거두었다. 래일 저녁에 인원을 보충해가지고 나와서 마저 끝내기로 약속이 있은것이였다. 그러나 혜경은 로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간후에도 작업장을 뜨지 않고 골똘한 생각에 잠겨있다가 림신애를 쳐다보며 말했다.

《신애, 여기 좀 있어. 나 제꺽 갔다올게.》

《어디로 간다구 그래?》

《글쎄.》

혜경은 긴말하지 않고 제철소합숙쪽으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그가 얼마후 자동차기중기를 끌고 다시 나타나자 림신애는 너무도 좋아서 막 환성을 질렀다. 혜경은 운전공청년이 작업장옆에 기중기차를 세우고 훌쩍 뛰여내리자 흥분해서 말했다.

《이거예요!》

청년은 옆구리에 량손을 짚고 혜경이가 가리키는 파철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대단한거로군. 자, 제꺽 해치우기요.》

기중기의 쇠바줄을 파철뿌다구니에 걸고 운전칸에 올라간 청년이 큰소리를 쳤다.

《비켜서오!》

뒤이어 땅을 뒤흔드는 요란한 동음과 함께 쇠바줄이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혜경은 숨을 죽이고서서 자동차기중기의 발통이 움찔움찔 들리는 광경을 초조히 지켜보았다. 저러다가 혹시 자동차기중기가 도리여 흙구뎅이속에 끌려들어가지 않겠는가. 갑자기 기중기가 뚝심을 쓰면서 땅속에 한절반 묻혀있는 파철을 통채로 들어 옆에다 내놓자 혜경은 너무도 기뻐 어쩔바를 몰라했다.

《운전공동무, 정말 고마워요!》

《고맙긴···그런데 이걸 어떻게 운반하겠소?》

《그건 걱정말고 어서 합숙에 가서 쉬세요. 후날 강계에 오면 도당에 꼭 들리구요. 그때면 톡톡히 신세갚음을 하겠어요.》

청년은 귀맛이 동하는지 씽긋 웃고 성급히 기중기차를 돌려세우며 물었다.

《동무이름이 뭐요?》

《박혜경이예요.》

혜경은 벌써 저만치 사라져가는 청년을 향해 손을 저어보이였다. 림신애도 친절히 청년을 바래우고 나서 입을 딱 벌렸다.

《혜경인 정말 괴짜야. 저동문 언제 친해뒀어?》

《친하구 말구 할게 있어? 그가 기중기차운전수라는걸 알구 무작정 두드려 깨웠지.》

《어마나!》

《김철지배인이 하도 우리를 검부락지보다 못하게 보니 그렇지 이래뵈두 난 희천기관차대 견인기도 살려냈어!》

혜경은 명랑하게 웃어댄후 《이젠 저 구뎅이나 메우자꾸나.》했다. 그리고는 둘이서 말끔히 지대정리까지 해놓고 허리가 뚝 부러지는것 같아서 맨 땅우에 폴싹폴싹 주저앉아버리였다.

어느새 새날이 휘딱 밝아 공장구내길에는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로동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혜경이와 림신애는 정신없이 밀려드는 잠에 취하여 추위도 잊어버린채 쪼그리고 앉아서 까박까박 조느라 그런줄도 몰랐다. 누군가 급히 달려오는 발자국소리에 잠을 깬 혜경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밤 자기들과 함께 일한 출하직장 교대반장이였다. 그는 한참이나 혜경이와 신애의 새까만 얼굴과 땅우에 꺼내놓은 마사진 기관차대가리를 번갈아보고 눈이 뎅그래서 물었다.

《아니, 장밤 여기서 일했구만. 그런데 저건 어떻게 파냈소?》

《자동차기중기로 들어냈어요.》

《챠, 이런! 강계처녀들이 본때를 보이누만. 동무들의 이악성엔 두손을 바짝 들었소. 피곤할텐데 어서 가서 좀 쉬오. 이젠 우리가 실어갈테니 말이요.》

혜경은 너무 감동되여 입을 다물지 못하는 교대반장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발걸음도 가벼이 그곳을 떠났다.

합숙에 돌아가보니 그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김중범아바이도 와있었다. 혜경은 그와 만나자 다급히 물었다.

《아바이, 강계는 어때요? 도당책임비서동진 만났댔어요?》

김중범은 먼 길을 다녀온 사람같지 않게 생신한 혜경이와 림신애를 정겹게 바라보았다.

《만났소. 혜경이, 지금 강계는 온통 벅작 끓소. 우리가 떠나올 때와는 완전히 딴판이란 말이요. 며칠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우리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어주셨소. 그날 너무나 감격하여 울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하오. 그 이후로 도안의 모든 공장들과 발전소건설장들에서는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결사전이 벌어졌소. 그게 어떤 전투인가 하는건 말로써 표현할수 없을 정도요. 책임비서동무가 발전소건설장에 나가보라고 하여 가보았는데 모두들 혹한속에서 밤낮없이 언제를 쌓고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일하더구만. 그런데 제일 애로되는것이 우리가 맡은 강재요. 이젠 도안의 유휴자재를 다 걷어쓰고 어디서나 강재, 강재가 떨어져서 아우성이였소. 어데서나 강재가 부족하여 애를 먹고있소.

기계공장에서는 두석달동안 밤을 패며 자동선설계를 완성해놓았는데 강재가 걸려서 내밀지 못하더구만. 자동선개조를 담당한 최성진동문 날 보더니만 자기네는 강재때문에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지 못하는데 이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는가면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더구만. 정말 눈물이 나는걸 겨우 참았소.》

《아이 정말 속상해.》

혜경은 자기들이 구실을 못하여 자강도로동계급의 투쟁에 지장을 주고있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그저 울고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책임비서동진 뭐랬어요?》

《내가 아직도 과업을 수행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니까 동무들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혜경이와 림신애가 가정을 버리고 객지에 나가서 고생하며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았는가고 걱정하더구만. 동무네 집에랑 들려보구 가라질 않겠소. 혜경동무의 집에 찾아가니 세대주가 그동안 도당에서 극진히 돌봐주어 호강스레 살았다더군. 내가 혜경이 김철에 가서 너무 뛰여다니여 신발이 다 꿰여졌다고 하자 새 비닐신발을 꺼내주며 강재를 받기전에는 돌아올 생각을 말라더구만. 림신애 어머니도 똑같은 말을 하면서 저렇게 한보따리 잔뜩 꾸려보냈소.》

김중범은 말을 마치고 배낭안에서 혜경이와 림신애한테 보내온 물건들을 꺼내여놓았다. 혜경은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았다. 이토록 자기들에 대한 기대가 큰데 자기는 아직 김철지배인한테 이 안타까운 심정을 똑바로 호소하지도 못했다. 이러구야 무슨 면목으로 자강땅에 다시 나타날수 있겠는가? 내가 바보였어.··· 혜경은 그만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판을 보리라고 결심한것이였다. 더이상 시간을 끌며 허송세월을 할수 없었다. 자강도인민들의 준엄한 투쟁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일한 어지러운 옷차림 그대로 흙묻은 편리화를 신고 림신애와 함께 제철소구내길을 걸어가다가 누군가의 발걸음소리를 듣고 얼핏 등뒤를 돌아다보았다. 순간 혜경은 깜짝 놀라며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가 바로 김철지배인이였다.

혜경은 얼른 길옆으로 비켜서면서 맵짠 목소리로 깍듯이 인사했다.

《지배인동지, 안녕하십니까?》

지배인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으로 휙 스쳐지나갔다. 여느때 같으면 손맥이 탁 풀려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을 혜경이도 이날은 지배인이야 어떻게 대해주건 말건 입술을 꼭 깨물고 인내성있게 따라 걸었다. 그의 도담한 행동에 지지성원을 보내듯이 때마침 구내방송에서는 강계처녀들이 지난밤 꼬박 새우며 출하직장로동자들과 함께 파철을 100t이나 수집한 소식을 꽝꽝 불어댔다.

혜경은 지배인도 저 방송을 듣고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자 기운이 우쩍 솟아났다. 아무렴 돌심장이 아닌 이상 지배인인들 무감정일수 있는가? 설사 호랑이처럼 성미가 사나운 사람이라고 해도 생각되는바가 있을것이기에 혜경은 마구 달리다싶이 하며 지배인을 뒤쫓아갔다. 그런데 지배인실앞에 당도한 혜경은 약간 드틴 문사이로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고 그만 아연해졌다.

《여, 방송실! 누가 저따위 방송을 내보내라구 했어? 사실이건 아니건 상관없어. 동무들이 강계체네들을 추어주는 바람에 녹아나는건 나밖에 없단 말이요!》

지배인은 성이 나서 수화기를 쾅 놓았다. 하지만 오늘은 혜경이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가 참지 못하고 힘껏 문을 열어제끼며 방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놀란 사람처럼 뚫어지게 마주 보았다. 혜경은 자기를 집어삼킬듯 한 지배인의 무서운 기상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아래다리가 와들와들 떨리였다. 뒤이어 지배인이 쇠판을 두드려대듯 한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동문 왜 또 왔소?》라고 어성을 높였다.

혜경은 눈물이 솟구쳐올라서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지금까지 가슴속에 쌓이고 쌓였던 안타까움이 왈칵 터져나온것이였다. 지배인이 우리의 이 마음을 알고있는가? 차라리 여기 지배인실에서 실컷 울자! 혜경은 이윽해서야 젖은 얼굴을 버쩍 쳐들고 지배인을 애타게 마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지배인동지, 저희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에게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낄데 대한 영예로운 과업을 맡기셨는데 강재가 없어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발전소도 건설하지 못합니다. 저희들이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지 못하고 주저앉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굶어서 쓰러지는것도 얼음장을 까고 찬물속에 뛰여들어 일하는것도 다 참고 견디여 낼수 있습니다. 우리한텐 강재만 있으면 됩니다.···》

혜경이가 겨우 그렇게 말하고 눈물을 훔칠 때였다. 두눈을 부릅뜨고 그의 아래우를 꼼꼼히 훑어보던 지배인이 킁킁 코소리를 내면서 무뚝뚝하게 물었다.

《동무 진짜 도당에서 보내서 왔소?》

《지배인동지, 그렇지 않다면 제가 여기 와서 왜 이 고생을 하겠습니까. 강재만 보장해주면 래일이라도 당장 돌아가겠습니다.》

김철지배인은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찾느라 부산스레 호주머니를 매만지였다. 그 눈치를 챈 혜경이가 얼른 다가가서 자기의 비상용라이타로 불을 켜주었다. 지배인이 심드렁히 담배불을 붙이고나서 그를 흘끔 쳐다보았다.

《동문 늘쌍 그 라이타를 가지고다니오?》

《네, 지금처럼 요긴하게 써먹을 때가 있으니까요. 전 지배인동지한테 아무것도 드릴게 없는데 기념으로 건사해두세요.》

지배인은 한참이나 말없이 뻐금뻐금 담배를 태웠다.

《내 동무네 책임비서한테 두손을 바짝 들었소. 신통한 녀자들을 골라서 보냈거든. 알겠소. 돌아가서 기다리오. 동무네 문제는 래일 아침에 결론을 주겠소.》

《지배인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혜경은 그후 자기가 지배인실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알지 못했다. 너무도 기쁜김에 복도로 뛰여나온 그는 문밖에서 초조히 기다리는 림신애의 손을 잡고 제철소구내길을 따라 나는듯이 내달렸다. 림신애가 금시 엎어질것처럼 뒤따라오면서 연방 엄살을 부리였다.

《아이 숨차! 혜경이, 어서 말해봐. 어떻게 됐어?》

《이 강계멋쟁이야. 내가 이렇게 기뻐하는걸 보면서도 뭘 모르겠다는거야? 김철지배인이 래일 아침에 결론을 주겠대. 이 길로 가서 전보를 치자. 자강도행 강재방통이 드디여 떠난다구. 이제 중범아바이 일도 다 잘될거야!》

《야, 됐구나. 됐어! 우리 중범아바이를 강재방통에 태우고 여봐란듯이 명문고개를 넘어보자!》

그들은 즐거움에 차서 웃고 떠들며 제철소 합숙옆의 자그마한 체신소로 기운차게 달려갔다.

이튿날 오후 강재퉁구리들을 듬뿍 실은 자강도행 화물렬차가 김철을 떠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망을 성취한 혜경이와 림신애는 기뻐서 손을 맞잡고 돌아갔다. 두 녀성은 애간장이 마르게 해결한 강재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되여 렬차표를 호주머니안에 구겨넣고 강재를 실은 방통우에 올라가 앉았다.

출장기간 《푸관》임무를 수행한 김중범이도 자기의 색날은 배낭을 화차우에 훌쩍 올려던지며 《오늘은 나도 강재방통에 앉아서 갑세.》하고 혜경이와 림신애사이에 앉았다. 아연실색하여 뛰여온 무역부국장이 이 엄동설한에 강재방통우에서 동태짝이 되고 싶은가, 당장 내려오라고 을렀다메자 림신애가 《부국장동진 너무 걱정이 많아 대머리가 되겠어요.》하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드디여 붕- 요란한 발차기적소리와 함께 화물차가 역구내를 벗어날 때에는 혜경이가 《야, 강재가 간다. 가긴 가는구나!》하고 웨쳐대여 또 한바탕 와- 웃음판이 벌어졌다. 맵짠 바람이 귀쪽을 떼여갈것처럼 쌩쌩 불어대여도 힘차게 달리는 무개화차우에 꼭 붙어앉은 그들의 가슴은 보이라를 안은것처럼 뜨겁게, 뜨겁게만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