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8

 

제 5 장

8

 

온종일 세차게 휘몰아친 눈보라는 한시도 멎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수도의 거리는 뽀얗게 흩날리는 눈가루속에 묻히였다. 례년에 없던 사나운 날씨여서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에는 거의나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량옆에 흰 눈무지들이 쌓인 도로를 따라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언 대기를 가르며 천천히 달리고있었다.

뜻밖의 병환으로 사망한 항일투사의 가족을 위로하고 돌아오시는 길이였다. 이 고난의 시기 로투사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일이 무척 괴로우시였다.

추위가 심하여 이따금 밤거리에 나타난 사람들은 솜옷을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뚱뚱한 차림으로 재빨리 걸었다. 최대 갈수기인 요즘은 아빠트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밝지 못했다. 그나마 대동강건너의 문수거리는 아주 캄캄했다. 지난해 자강땅의 령길에서 목격하셨던 암흑을 련상시켰다.

얼마후 인민문화궁전쪽의 도로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의 식량난때문에 고생하는 태혁의 수척한 얼굴이 떠올라 흐릿한 시선으로 차창밖을 바라보시였다.

엄혹한 자강도의 식량난은 그이의 마음속에 앙버티고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내가 태혁에게 해결할수 없는 과업을 주었는가?)

압록강의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운영하는 문제도 원목수출문제도 가망성이 없다. 문성태는 누구도 감히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에 그이께서는 원목수출을 법적으로 엄하게 금지시키시였다. 벌둥섬의 공동시장도 반대하고 원목수출도 제기하지 못하는 태혁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밤··· 밤은 끝없는 고뇌의 심연같았다.

지난 전후복구건설시기 페허우에 새로 공장과 살림집들을 일떠세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선 때에도 우리 인민의 생활은 오늘처럼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각별히도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올라 빈 방에 조용히 앉아계실 때가 많았다. 수령님만 생존해계셔도 떼구름마냥 몰려드는 안타까운 문제들을 의논하며 이 모든 마음의 중하를 이겨낼것 같으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령님을 잃은 어려운 정황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며 단신으로 겹겹이 앞을 막아서는 난국을 타개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사회주의시장의 붕괴와 적들의 악랄한 봉쇄책동으로 인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만 해도 막대했다.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의 숨결이 죽어가고 우리 인민의 피땀이 스며있는 기대들에는 쇠녹이 쓸고있다. 벌써 몇달째 도시엔 교통이 마비되고 렬차들도 제대로 뛰지 못한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이 참상들을 하루빨리 수습하려고 이틀 사흘 련속 지새우신 밤인들 그 얼마였던지 알수 없으시였다. 과연 자신의 일생에 오늘처럼 마음고생이 많은 때가 언제 있었던가 싶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밤 집무실로 돌아오시자 피로한 몸을 의자에 기대이시였다. 어쩐지 앞이 잘 보이지 않으시였다. 방안의 눈에 익은 물건들이 안개속에 싸인것처럼 뿌잇하게 안겨왔다. 매일같이 겹쌓이는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인한 시력장애라고 생각되신 그이께서는 두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잠시후 다시금 눈을 뜨신 그이께서는 온통 캄캄하여 아무것도 분간해볼수 없으시였다. 자신도 모르게 쪽잠에 들었다가 깨신것이였다. 천정을 바라보니 형광등불빛이 스러지고 창문에 희미한 미광이 비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에서 몸을 당겨 탁상등을 켜고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멀리, 가까이에서 아빠트들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비쳐왔다. 예전처럼 밝지 못한 불빛이였다. 그나마 저 창문들의 불빛들이 꺼지면 늘쌍 가슴이 아리군 했는데 오늘은 다소 마음속의 아픔이 덜리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마침 집무실로 찾아들어오던 서기실장이 주춤거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기실장에게 방안의 불을 켜라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형광등이 켜지자 서기실장이 책상우에 봉투 하나를 놓았다.

《자강도당에서 문건을 보내왔습니다.》

《그렇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색을 하시면서 얼른 봉투를 개봉하시였다.

태혁이가 자필로 정성껏 써보낸 편지였다.

그이께서는 편지를 앞에 놓고 주의깊게 번져보시였다. 갑자기 글줄들이 흐려져 읽을수 없으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허락해달라고 제기해온것이였다. 한평생 당에 충실해온 그가 역적이 될 각오를 하고 이 편지를 썼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토록 편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시였다.

태혁이가 친위병으로 복무한 전화의 나날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르시였다.

어느 하루 위병근무수행중에 있던 태혁이가 최고사령부 뒤산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질소리를 듣고 뛰여올라가 어떤 놈인가, 당장 쏴갈기겠다며 권총을 뽑아드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벌어졌다. 마침 수령님께서 제때에 목격하고 《태혁이!》 하고 멈춰세우셨을 때 한손에 권총을 쥔채 헐떡거리는 태혁의 두눈망울에선 뜨거운 물기가 번들거렸다. 미국놈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조국의 산천이 불타 벌거숭이가 되는 일만도 분통이 터지는데 제 손으로 수림을 란벌하는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다고 울분에 차서 대답한 태혁이··· 그랬던 그가 오늘 나한테 원목수출을 제기해오지 않았는가. 태혁은 스스로 자기 가슴에 총구를 들이대는 심정이였을것이다. 오죽하면 태혁이가 그처럼 사랑한 나무를 채벌하여 팔자고 했겠는가?···

태혁이의 피타는 몸부림, 애타는 요구가 가슴을 두드리며 절절하게 울려왔다.

얼마간 시간이 경과한후에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수화기를 들고 문성태비서를 자신의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문성태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방금 태혁동무가 나한테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예?!》

문성태는 깜짝 놀라며 그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뜻밖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동문 그가 원목수출문제만은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지.》

《누가 감히 장군님께 이런 무엄한 제기를 할수 있겠습니까.》

문성태가 아연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태혁은 자기를 위해서 원목수출을 제기한것이 아니다. 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인민을 위해, 인민의 충복이 되려고 희생적으로 나선 태혁이라는 생각에 가슴속이 쩌릿해나는것을 느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시였다.

《태혁동무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고 나에게 편지를 썼겠습니까. 내가 이 편지를 보고 좋게 생각한것은 인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나선 그의 열렬한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태혁동무와 같은 투철한 일군,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일군이 없는게 탈입니다. 이건 태혁동무만이 할수 있는 일이요. 그의 요구를 들어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사람들은 처벌을 받을가봐 나서지 않지만 태혁동문 나를 믿고 이렇게 원목수출을 제기했거든.》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의자에 지친 몸을 기대이시였다. 집무실안에 정숙이 깃들고 문성태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짙게 어려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어려울 때 지내봐야 진면모를 알수 있다고 하는것 같소. 지금 우리 일군들속에 김책형의 일군!··· 자기 수령과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일군이 있습니까. 난 오늘의 고난의 행군시기 자기 한몸을 내대지 않고 말로만 충성을 부르짖는 위선적이고 비량심적인 일군들때문에 맘고생이 많은데 태혁동무가 이런 편지를 보냈구만. 이젠 돌아가보시오.》

몇초동안 말뚝처럼 서있던 문성태가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가 방에서 나간후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쏘파에 앉아계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한건 식량난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식량여분이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허비고 밀려드는 괴로운 심정에서 헤여나지 못하시다가 수화기를 들고 림업부 부장에게 물어보시였다.

《부장동무, 금년도 식수계획이 얼마나 됩니까?》

림업부 부장이 침착한 어조로 자세히 설명해올리였다.

《대단하구만. 그 나무모들이 몇년 자라야 채벌할수 있소?》

《적어도 30년은 걸려야 합니다.》

《30년이라-》

그이께서는 수화기를 드신채 또다시 풀길없는 사색속에 잠겨드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했지만 30년동안 나무가 자라야 채벌할수 있다면 그의 대에는 빚을 갚지 못한다는것으로 된다. 결국 다음대에 넘겨주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알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놓고 쏘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시였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천천히 집무실안을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아무리 식량사정이 어려워도 태혁을 역적으로 만들순 없지. 내가 걸머져야지···)라고 혼자 조용히 뇌이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시였다. 인민무력부장에게 호소해볼 결심을 굳히신 그이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이날 밤은 무력부장의 사무실에도 늦도록 불이 켜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무력부장이 미처 련락을 받을사이없이 청사의 접수실을 통과하여 그의 방으로 급히 찾아가시였다. 아닌게 아니라 무력부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셈평좋게 두다리를 벌린채 쏘파에 제빠듬히 앉아 신문을 보다가 와닥닥 일어났다.

《앉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짓하시고 무력부장의 옆자리에 앉으시였다.

때마침 전화종소리가 뜨르릉 울렸다. 책상앞으로 다가선 무력부장이 손에 들었던 수화기를 도로 쾅 놓았다.

보통 성난 표정이 아니여서 무슨 전화인가고 묻자 무력부장의 량볼이 대뜸 푸들푸들 떨리였다.

《장군님께선 벌써 여기 와 계시는데 직일관이 이제야 나한테 알립니다. 빌어먹을 녀석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력부장이 이쯤 화를 내면 뒤일이 무사치 못하다는것을 잘 알기에 직일관에게 후환이 없도록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무력부장동무, 괜히 직일관을 닦아세우는구만. 내가 단숨에 훌 날아서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무력부장은 그 말씀을 듣고서야 그만 허구프게 웃으며 어지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님, 무슨 일로 갑자기 오셨습니까?》

《긴급히 토론할 문제가 있습니다.》

무력부장은 긴급한 문제라니 바싹 긴장해서 우러러보았다. 그이께서 밤중에 갑자기 찾아오신걸 봐선 군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였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미제호전광들의 미친듯 한 전쟁소동으로 요즘도 불의에 정황이 발생하는게 군사적대치상태에 있는 조선정세의 움직임이다보니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수 있었다.

《저기 지도앞으로 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켠 벽의 지도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저 자강도를 보십시오.》

무력부장이 온통 진갈색바탕우에 등고선들이 조잡하게 밀집된 산악지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기서 한해에 량곡이 얼마나 나올것 같습니까?》

《예?》

뜻밖의 질문에 무력부장의 눈이 뎅그래졌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놀라지 않게 됐습니까. 전 놈들이 너무 못되게 노니 한바탕 답새길 일이라도 생겼는가 했습니다.》

《때릴 때가 되면 때려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배포유하게 말씀하시고 상체를 젖히시였다.

《무력부장동무, 다른게 아니라 지금 자강도로동계급이 힘겨운 투쟁을 하는데 식량난에 봉착했습니다. 아무래도 무력부장동무를 달궈야지 식량이 나올데가 없습니다.》

무력부장이 곧은박이 성미그대로 펄쩍 뛰며 어깨를 솟구었다.

《자,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서 잘 생각해보십시오.》

《장군님, 그거야 유사시에만 쓸수 있도록 군령으로 보관해두신 전략물자가 아닙니까.》

《알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사정조로 부드럽게 말씀하시는데도 무력부장은 두발을 딱 벋딛고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놈들이 불의에 덤벼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에 꼭 메꿉시다.》

무력부장이 그이의 간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조국이 위기에 직면한 이 준엄한 시기 어떤 어려운 요구를 하셨는가를 깨닫고 묵묵히 서계시다가 철의 담력을 지닌 령장의 강직한 모습으로 방안이 드렁드렁 울리게 말씀하시였다.

《무력부장동무, 지금도 우린 전쟁을 하고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떼무리들이 우리를 먹어보려구 날뛰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얼마나 큰 전쟁을 치르고있습니까.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의 경제봉쇄를 짓부셔버리고 자강도를 일떠세워야 합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이 쓰러지지 않고 내가 준 과업을 수행하면 그게 이기는겁니다.》

무력부장의 거뭇거뭇한 눈섭이 꿈틀거리였다. 한참이나 잠자코 있던 그가 비로소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을 지워버리면서 말없이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항일전쟁때엔 유격대원들이 쌀을 쌓아두고 왜놈들과 싸웠습니까. 그때에도 적들의것을 빼앗아먹었지요. 총도 그렇구 군복용 천도 그렇구. 봄철에 행군을 하면서 도처에 심어놓은 감자와 조, 호박으로도 식량을 보충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하, 그랬지요.》

무력부장이 몸을 젖히면서 입을 항 벌렸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들이 서뿔리 우리한테 덤벼들진 못합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식량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리구 무력부장동무야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봐도 태혁동무의 아버지 강희준이와 모르는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30년대부터 왕칭(왕청)에서 강희준이와 함께 싸웠구요. 태혁동무를 도와줍시다. 재삼 말하는데 자강도를 도와주는것이 우리를 꺼꾸러뜨리려고 어리석게 날뛰는 적들의 귀뺨을 답새기는 일입니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자강도의 돌파전에 참가하는것으로 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그만 크게 웃으시였다.

몇해전 통다이야문제로 마찰이 생겨 오진우무력부장이 태혁을 단단히 벼른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스위스로 함께 휴양을 보냈던 일이 떠오르신것이였다.

그때 스위스에 갔다 온 오진우가 얼굴이 활짝 개여 돌아와서 《장군님, 태혁이 그 친구 알고보니 사람이 괜찮습니다. 제가 졌습니다.》라고 했었다. 지금도 그때의 오진우처럼 이 무력부장의 왕고집을 꺾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그이께서는 드디여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무력부장이 평시의 꼿꼿한 자세로 따라 일어서면서 힘차게 말씀올렸다.

《장군님, 래일 아침 당장 자강도에다 전선수송차들을 출동시키겠습니다!》

 

그날 밤 자강도당청사의 모든 방들에서는 간데라불빛이 희미하게 새여나왔다. 장군님께 원목수출을 제기한 태혁의 일이 걱정스러워 모두들 근심에 싸여 퇴근을 못하고 밤을 밝히고있었다. 그들은 밤 3시경 뜻밖의 소식을 듣고 출입문을 걷어차며 복도로 뛰여나왔다. 온 청사가 떠나갈듯이 아래웃층에서 쾅쾅 문을 여닫는 소리, 복도와 층계를 굴러대며 무질서하게 달리는 발자국소리··· 누군가는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식량을 보내주셨소!》라고 웨쳤다.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여기저기에서 다급히 달려온 사람들은 태혁의 사무실앞으로 밀려가 담벽을 쌓고 법석 떠들었다. 날래게 먼저 뛰여온 사람들로 앞이 막혀 방으로는 들어갈 형편이 못되였다. 그렇게 흥분한 사람들이 연방 달려와 덮씌우는 바람에 태혁은 숨이 막혀 말도 못했다.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을 해결할 과업을 주셨지만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무엄하게 원목수출을 허락해달라고 제기했는데 친히 식량을 보내주시다니!··· 자강도의 악조건에서 강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기 위한 투쟁은 첫 걸음부터 힘에 겨웠지만 매번 앞을 가로 막아서는 난관을 도맡아안고 풀어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던 태혁은 누구인가 달려들어 우악스럽게 껴안으며 《책임비서동무의 목이 날아나는가 했는데 이런 사랑을 받아안다니요!》하고 과따치는 말에 허허 웃었다. 그는 웃고있었지만 얼굴에서는 여전히 걸죽한 눈물이 즐벅하게 흘러내리였다.

《하기야 나도 속이 한줌만 했지. 막말로 말해서 오라는 져도 할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댔으니까. 까딱하면 자강도사람들을 다 굶겨죽일것 같더란 말이요.》

태혁은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쳐들고 그의 량어깨를 꽉 잡았다.

《여보, 우리가 큰 전투를 벌려놨지만 똑바로 하는 일이 뭐요? 하나에서 열까지 장군님께서 우리 일을 보살피시며 걸린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지. 단신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끌어가시는 장군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지 못할망정 부담만 드리니 죄송스럽단 말이요. 난 원목을 수출하지 않고선 살아갈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장군님께선 이 어리석은 인간을 처벌할 대신에··· 정말 눈물이 나서 못 견디겠소!》

순간 뜨르릉- 요란히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끌려 태혁은 책상앞으로 다가섰다. 갑자기 깊은 밤중에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인가 하여 모두들 긴장히 지켜보는 가운데 수화기를 집어든 태혁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거렸다. 뜻밖에도 귀에 익은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거의나 거리감이 없이 똑똑히 울려왔다.

《태혁동무요?》

《그렇습니다. 장군님!》

태혁은 두손으로 수화기를 꽉 움켜잡았다.

《왜 아직 쉬지 않소?》

《···》

태혁은 목안이 메여올라 대답을 못했다. 바로 자기가 그렇게 묻고싶었던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겨우 입을 열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전 이 새벽에 장군님께서 저의 외람된 편지를 보아주시고 이렇게 귀한 식량을 보내주실줄은···》

《태혁동무, 동무들이 이해 겨울에 배를 곯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소.》

그 짤막하신 말씀속에 담겨있는 뜨거운 사랑에 태혁은 다시금 격정이 북받쳐올라 고개를 떨어뜨리였다.

《장군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요?》

《장군님께선 원목수출을 엄금하셨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심한 자책에 잠겨있는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시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동무가 그렇게 생각할것 같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예?!》

태혁은 그만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동무가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일군이 되기 위해 애쓰고있으니 반가운 일이요. 내 이전에도 동무와 만나서 말했지만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자강도로동계급처럼 혁명성이 강한 인민을 가지고있는것은 참말로 다행한 일입니다. 수령님의 덕분입니다. 한평생 수령님께서 귀중히 키워오신 인민보다 우리에게는 더 큰 재산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 인민에게 자기를 송두리채 바칠줄 아는 참다운 일군이 되여주시오.》

《장군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수화기를 놓으시였다. 순간 태혁은 젖은 얼굴을 훔치면서 어린애마냥 어깨를 들먹이였다. 가실길 없던 자기의 안타까움과 고민이 장군님께 그토록 큰 기쁨이 되였단 말인가! 그의 입안으로는 소금물같은 쩝쩔한것이 그침없이 흘러들었다. 때마침 눈물이 그렁하여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가들어 그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의 아래도리를 두팔로 꽉 그러잡고 《책임비서동지!》하고 꺽꺽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혁은 한참이나 행복의 절정에 올라선 사람의 심경에 잠겨 그들의 어깨며 잔등을 쓸어만지고 나서 웅글진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했다.

《동무들, 우리 자강도인민들은 가장 엄혹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장군님의 은정으로 시련의 고비들을 넘어섰음을 두고두고 옛말처럼 이야기하게 될것이요. 자, 이젠 모두들 눈물을 거두시오. 장군님의 이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산 목숨이라고 할수 있겠소? 천백배의 용기로 불사신처럼 일떠서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합시다.》

《옳습니다. 전투는 불과 석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 석달이요. 우리 자강땅사람들의 본때를 보이기요.》

태혁은 창문앞으로 힘차게 다가섰다. 멀리 평양의 하늘가에 시원을 둔듯 한 새벽빛이 푸르스름히 서리며 어느덧 강계땅의 명산, 흰 눈을 떠이고 솟아있는 독산우의 어둠을 한거풀 서서히 벗겨버리고있었다.

온 강계시가 깊은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 그 잊을수 없는 새벽이였다.

남산기슭의 외딴 집에서 고즈넉한 밤정적을 흔들며 피아노소리가 격동적으로 울렸다. 집으로 돌아온 태혁은 흥분된 마음을 금할길 없어 피아노의 건반을 힘차게 두드려대였다. 몇해전 정무원에 있을 때 장군님께서 그가 음악을 몹시 사랑한다는것을 알고 보내주신 선물피아노였다. 태혁은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 이후 늘쌍 다사분주한 일들에 들볶이다보니 언제 한가하게 피아노앞에 마주 앉을사이가 없었다. 피아노는 현이가 치고 짬짬이 감상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오늘은 딸이 대신할수 없는 자기 가슴속의 세찬 격정을 직접 피아노의 장중한 선률에 열정적으로 쏟아부었다. 장군님을 우러르는 티없이 깨끗한 마음, 그 숭엄한 흠모의 세계에 심취되여 피아노를 치던 태혁은 갑자기 높뛰는 심장속에서 뜨겁게 분출하는 가사가 떠올라 번개불을 휘여잡듯 종이장우에 급히 적다말고 펜을 멈추었다. 아, 이런 때엔 이 가슴에 넘쳐나는 기쁨을 시인처럼 격조높이 마음껏 읊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두손을 건반우에 얹고 안타까움에 휩싸여 고개를 뒤로 젖히였다. 벌써 몇달째 사무실과 발전소건설장들에서 침식을 하고있는 그의 색바랜 솜외투와 바지가랭이는 볼성사납게 군데군데 세멘트몰탈이 튕긴대로였다. 반쯤 열려진 사이문밖에 서있는 안해가 여러모로 너무나도 몰라보게 달라진 남편을 놀랍게 지켜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예요?》

태혁은 그때에야 피아노에 못 다 쏟아부은 자기의 심정을 터뜨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을 풀어주셨소!》

《녜?!》

안해의 눈에 대뜸 눈물이 글썽해졌다.

피아노앞에서 성큼 일어난 태혁은 안해의 어깨를 힘있게 흔들었다.

《지금 온 도가 부글부글 끓고있소. 공장, 기업소, 발전소건설장들마다에선 궐기모임들이 벌어지고··· 이젠 강재요. 강재만 해결하면 우린 발전소도 건설하고 공장도 다 돌릴수 있단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