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7

 

제 5 장

7

 

다른 출로가 없다. 오로지 자강도에 흔한 통나무수출만이 지금의 식량위기에서 사람들을 구원할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안이다. 그런데 왜 문성태비서가 평양으로 올라갈 때 명확한 견해표명을 못했던가?··· 방금 림업총국 국장과 만나 도안의 림지들을 료해하고 돌아온 태혁은 자기의 보신적인 태도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것 같은 가책으로 한시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불안에 싸여 방안을 오락가락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자강도에서는 원목밖에 나올것이 있는가. 지금은 변강무역으로 수입하는 식량도 거의나 없다. 그렇다고 벌둥섬의 공동시장을 운영하겠는가?··· 벌써 몇십번이나 두통이 일게 떠오른 생각을 되씹던 태혁은 수화기를 들고 도재판소 소장에게 물었다.

《소장동무, 원목을 한 5만립방 팔면 말이요. 내가 몇년을 먹소?》

《징역말인가요?》

《그래.》

《허참···》

재판소장이 그만 어처구니없어 허허 웃었다.

《왜 웃소?》

《그렇잖아도 책임비서동지가 원목수출을 들고나올거라구 합디다.》

《그건 누가 벌써 동무한테 고해바쳤소.》

태혁의 말속에는 조금도 롱이 섞여있지 않았다.

《누군 누구겠습니까.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였지요. 장관우부위원장은 책임비서동지가 도내인민들의 식량문제때문에 고심이 많지만 우둔하게 원목수출을 꿈꿀줄은 차마 몰랐다구 하면서 밤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장관우가 그만큼이라도 생각해준다니 태혁은 코마루가 찡해났으나 자기의 감정을 억누르며 퉁명스레 물었다.

《됐소. 그만하고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보오.》

《이거 정말 진땀이 나누만요. 글쎄 책임비서동지가 장군님의 승인을 받지 않고 원목을 밀매하면 법이 적용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거야 뻔하지 않습니까. 책임비서동지, 승산이 없는 일인데 제발 관두십시오. 모두들 불안에 싸여 책임비서동지를 초조히 지켜보고있습니다.···》

태혁은 재판소장의 말이 채 끝나기전에 수화기를 덜컥 놓고 불시에 왼켠 가슴을 꽉 움켜잡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심한 신경과민과 육체의 과로로 갑자기 심장이 후두둑 뛰다말고 칼끝으로 찌르는것처럼 쑤셔대기 시작했다. 근래에 와서 처음인 발작적인 동통이였다. 뒤이어 혼미해져가는 의식속에 다른 한손으로 책상모서리를 으스러지게 눌러잡았다. 모진 아픔을 참느라 이마에 내돋은 땀방울이 미끄러져내리며 안경을 적시였다. 때마침 방안으로 찾아들어온 량정국장이 달려와 헤덤비면서 물었다.

《책임비서동지, 왜 이럽니까?》

《아니··· 아무렇지도 않소.》

태혁은 다소 가슴이 진정되자 손수건을 꺼내여 안경을 닦았다. 량정국장이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죄진 사람처럼 서있었다. 엊그제 협의회에서 퇴장당한후 처음 만나보는 일군이였다. 량정국장도 그사이 무척 고민했다는것이 첫눈에 제꺽 알리였다.

《무슨 일로 왔소?···》

《전 자격이 없습니다.》

량정국장은 사직서를 책상우에 내놓았다. 태혁은 그를 무표정히 바라보았다.

《이건 뭐요?》

량정국장이 컴컴한 낯빛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전 책임비서동지가 장군님께 원목수출을 제기한다는 말을 듣고 지난밤 뜬눈으로 새웠습니다. 전 그것이 역적행위이기전에 자기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자 괴로왔습니다. 저도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책임진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그런 뜨거운 심장이 없었습니다. 책임비서동지의 자기 희생적인 결심앞에서 일신의 안락밖에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인간됨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수치와 창피를 구역질이 나게 느꼈습니다.》

량정국장은 고개를 푹 떨구고 자기의 지난 생활을 뉘우쳤다. 태혁은 책상우에 팔굽을 짚고 앉아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 동문 원목수출에 동감이라는거요?》

《다른 방도가 없잖습니까.》

태혁은 여전히 자기 반성에 잠겨있는 량정국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나서 책상우에 눈길을 떨구었다.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라며 걱정하는 장관우나 재판소장의 말보다는 결함을 범한 사람이지만 량정국장의 진심이 훨씬 더 가슴을 쳤다.

《옳소. 그런데 우린 아직 원목수출문제에 대한 합의를 보지 못하고있소. 장관우부위원장만 지지하면 이제라도 장군님께 보고를 올리겠는데··· 내 마지막으로 부위원장동무와 다시 한번 심중히 의논해보자는거요. 아직은 시간이 있소. 부위원장동무를 급히 찾아서 나한테 보내주오.》

《알겠습니다.》

그때 방에서 나가던 량정국장이 흠칠 놀라며 돌아다봤다.

책상우의 전화기가 요란히 울리고 수화기를 든 태혁이가 큰소리를 질렀다.

《뭐, 편직공장지배인이 어떻게 됐다구?》

《만포에서 식량을 싣고 령을 넘어오다가 화물자동차와 함께 굴었습니다.》

수화기에서 울려나오는 끔찍한 소식을 듣고 눈앞이 아뜩해진 태혁은 재차 다급히 물었다.

《사람은 다치지 않았소? 왜 말이 없소?》

《자동차가 뒤집혔는데 사람이 성할리 있습니까. 다행이 생명의 위험은 면했는데 전혀 운신을 못합니다.》

《빨리 병원에 싣고와서 구급대책을 취하시오.》

《챠, 그런데 이거 정말 죽여줍니다. 편직지배인이 사고현장에 실성한 녀인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말을 들어줘야지요.》

《무슨 소릴 하오. 당장 병원으로 호송하시오!》

태혁은 수화기를 덜컥 소리가 나게 놓고 한손으로 이마를 꾹 눌러짚었다. 그의 이마에 담박 식은땀이 내돋았다. 사색이 된 그의 얼굴을 보고 량정국장은 말을 붙일 엄두도 못냈다. 목석처럼 우두커니 멍청히 앉아있던 태혁이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을 때에야 량정국장은 어두운 낯빛으로 근심스럽게 물었다.

《사고현장으로 가시렵니까?》

《사람이 상하지 않았소? 편직지배인이 어떤 동무요!》

태혁은 청사의 문밖으로 나서자 급히 승용차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내달리였다. 녀성의 몸으로 이삼일이 멀다하게 출장을 다니며 이악하게 식량을 끌어들이던 동무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편직공장지배인 리순정은 강계바닥의 녀걸로 소문난 녀성이였다. 남성들 찜쪄먹게 장대한 체격에 보기 좋은 키꼴, 억실억실한 눈매, 자기의 시원시원한 생김새처럼 순정은 어떤 어려운 과업을 맡겨도 다 해제꼈다.

늘쌍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니느라 한달치고도 집에 들어오는 날이 이삼일도 되나마나 했다. 게다가 낮에 차를 타고다니는 시간이 아까와 늘 밤길을 다니다보니 그가 언제 잠을 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태혁에게서 그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강계에 피복공장지배인이며 포도술공장지배인, 일잘하는 녀성지배인들이 많은데 다들 《강계효녀》들이라는 높은 치하의 말씀을 안겨주시였다. 그 《강계효녀》들중의 한명인 편직공장지배인이 강계시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다가 령길에서 굴었다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생명의 위험은 면했다지만 그가 다시 일할수 있겠는가? 천에 한명도 고르기 힘든 녀성을 잃을가봐 마음을 조이던 태혁은 사고현장에 도착하자 급히 승용차에서 뛰여나갔다. 약 이삼십m가량 아찔히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 구겨박힌 화물자동차와 시허연 눈무지우에 대수간 쌓아놓은 물자들, 령길에 모여서서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아직도 사고현장은 혼잡탕을 이루고있다. 태혁은 너무도 억이 막혀 잠시 발길을 옮기지 못하다가 마주 달려오며 굽벅 인사를 하는 젊은이에게 소리쳐 물었다.

《편직지배인을 병원에 호송했소?》

《운전사만 병원에 가고 지배인동문 지금도 저렇게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태혁은 그제야 한쪽 바퀴를 허공에 쳐든채 벌렁 뒤집힌 화물자동차옆에 퍼더앉은 편직지배인을 알아보고 산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그를 부축한 젊은이가 헐떡거리며 사고난 경위를 설명했지만 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머리속엔 편직지배인이 무사했으면 하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순정은 태혁을 알아보고도 그저 오도카니 앉아있기만 했다. 그가 전혀 몸을 움직일 형편이 못되여 그런다는것을 직감한 태혁이 왜 병원에 가지 않는가고 물어서야 순정은 헝클어진 머리를 떨구며 서럽게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책임비서동지, 죄송···》

《무슨 소릴 하오. 그래 어딜 다쳤소? 어딜···》

태혁이 시뻘겋게 진흙투성이가 된 어깨를 만지려하자 순정은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일없습니다.》

《일없다는 사람이 왜 어깨도 다치지 못하게 하오? 이거 온통 뼈가 박산이 난게 아니요, 엉?》

《책임비서동지, 정말 원통합니다. 전 열밤을 못 자도 견딜수 있지만 운전사가 졸수 있다는 생각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순정은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숙이고 그냥 흐느꼈지만 제 손으로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순정동무, 내가 동무에게 과중한 과업을 맡겼소. 날 용서하오.》

편직지배인이 밤잠을 못 자며 뛰여다녀도 쉬울 생각을 못한 태혁은 손수건을 꺼내여 그의 눈물을 닦아주다말고 흠칫 놀랐다. 온몸이 파김치처럼 되고도 끄떡없이 앉아있던 편직지배인이 조용히 눈을 내리감으며 옆으로 실그러졌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버린 그의 몸을 부여안고 태혁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순정이, 정신을 차리오. 정신을!···》

태혁의 가슴속에서 웅글게 터져나온 그 말에 놀란 사람들이 령길에서 달려내려오고 한편으로는 편직지배인을 병원으로 호송하느라 볶았다쳤다.

조금후 태혁은 순정을 구급차에 실어보내고 뒤따라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책상우에는 량정국장이 제출한 사직서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태혁은 사직서를 구겨 휴지통에 집어넣고 창문을 향해 돌아섰다.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라고 하신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 난 이런 사고만 내면서 뭘했는가? 하긴 내가 장군님의 아픈 마음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일이 한두가지인가!

테굵은 안경밑에서 뜨거운 눈물이 끓어번지였다. 지금의 형편에서 장군님께 원목수출까지 제기할수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먹여살릴수 있겠는가?··· 아니 내 한몸을 내댈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태혁은 방안의 여기저기로 다시금 초조히 오락가락했다. 량정국장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날이 어두워서야 잔뜩 찡그린 얼굴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소?》

《책임비서동지의 의향을 전달했습니다만···》

량정국장은 기가 죽어 어깨숨을 몰아쉬였다.

《부위원장동문··· 억병으로 취했습니다.》

태혁의 눈길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리성하부부장은 옆에서 한숨만 쉬구요. 제가 보기엔 그들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장관우부위원장이 원목수출에 자기 목을 내대고 나설것 같습니까? 그는 오늘의 난관앞에서 변질해버린 사람입니다.》

《됐소. 그만하고 돌아가보오.》

태혁은 량정국장이 방에서 나간후 한참이나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니 내가 허황한 기대를 가졌는가? 장관우부위원장과 만날 필요가 없다는 량정국장의 말이 옳은지 몰랐다. 장관우부위원장은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일군임이 틀림없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사람이 자강땅에 공동시장을 끌어들이자고 주장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모른단 말인가? 순간 태혁의 눈앞에는 이전에 장관우와 식량문제때문에 격렬히 론쟁하다가 목을 부둥켜안고 운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장관우의 마음속에서는 인간다운 감정이 살아숨쉬였다. 태혁은 그의 심장이 높뛰는 세찬 고동, 뜨거운 피가 소용돌이치는 소리를 기쁘게 들었다. 지금 장관우의 그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마치도 죽은 사람처럼··· 그러나 이제 와서 장관우보다도 더 큰 골치거리로 되고있는 사람은 그와 인간적으로 밀착되여 있는 리성하부부장이였다.

태혁은 지난해 장군님께서 자강도로동계급에게 전력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열어제낄데 대한 과업을 맡기셨을 때 리성하가 성공을 바란다며 눈물까지 머금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처럼 흥분을 금치 못하던 리성하부부장이 자강도에 파견되여오자 태혁은 배짱이 맞는 실력가와 함께 일하게 되였다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모른다. 하지만 태혁은 유감스럽게도 발전소건설의 첫 걸음부터 리성하와의 의견상이에 부닥치고 크게 실망했다. 리성하는 자기가 직접 자강도의 어려운 실정에서 발전소건설을 책임지게 되자 안팎이 다르게 난관에 겁을 먹고 패배주의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리성하의 영향이 미쳐 여태껏 태혁이가 오른팔처럼 믿어온 장관우부위원장까지 난관앞에서 신심을 잃고 동요하며 갈팡질팡하는것은 더구나 가슴아팠다. 결국 리성하부부장이 내려온것으로 하여 태혁의 일은 헐해진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힘들어져간다.

그는 마침내 책상앞에 마주앉아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종이우에 한자한자 힘주어 눌러쓰기 시작했다.

 

그리운 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도의 식량실태를 료해하시고 해결할데 대한 과업을 주셨지만 저는 아직도 이렇다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사정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하여있습니다. 공장들이 제대로 돌지 못하다보니 변강무역도 거의나 중단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강도에 흔한 원목을 수출하여 식량을 해결할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미전에 원목수출을 역적행위로 엄금하셨는데 감히 이렇게 편지를 올리자니 손이 떨립니다. 그렇지만 장군님, 장군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수 없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면 인민들이 어떻게 우리 일군들을 믿고 일하겠습니까. 저는 그 일이 가슴아파 오늘 장군님께 솔직히 말씀올리기로 마음을 먹게 되였습니다.

장군님.

이제 햇곡식이 날 때까지 넉달동안만 원목으로 식량난을 타개할수 있도록 배려하여주십시오. 올해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해서라도 농사를 잘 지어 두번 다시 장군님께 이런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난국을 단신으로 헤쳐나가시는 장군님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늘쌍 짐이 되니 눈물이 납니다.

장군님, 부디 건강에 류의하시길 바랍니다. 장군님만 건강하시면 만사가 다 잘될수 있습니다.

 

장군님의 전사 강태혁 올립니다.

 

태혁은 펜을 놓자 즉시에 편지를 당중앙위원회로 발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