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6

 

제 5 장

6

 

《앉소. 앉아서 구체적으로 말하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에 갔다 온 문성태의 보고를 심중히 들으시였다.

압록강의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운영하는 문제며 원목수출··· 한개 도의 책임일군들에게 부여된 권한으로써는 도저히 결론할수 없는 문제들이였다. 협의회가 중단된 리유도 다른데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시였다.

《태혁동문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승인하지 않았단 말이지요?》

《예. 태혁동무도 돈을 벌자면 욕심이 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벌둥섬의 공동시장을 허용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시장경제에 휩쓸려들어간다고 하면서 단호히 반대했습니다.》

그이의 생각은 깊어지시였다. 사람이 외화에 환장하면 못하는 짓이 있는가.

자본주의의 썩은 진수렁속에 빠져버린 나라의 사람들처럼 돈벌이를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할수 있다. 자강땅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런 험악한 사태는 수만금을 들이고도 다시 수습하지 못한다.

굶으면 같이 굶고 잘 살면 다같이 잘 살자는것이 당의 의도이고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인데 눈앞의 일시적인 난관을 이겨내지 못하여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끌어들이자는것은 분별없이 불속에 뛰여드는 자살행위와 다를바 없었다.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들고나온 사람들의 주장은 뭡니까?》

《당장 도안의 인민들을 먹여살릴 다른 방도가 없다는것입니다. 그들은 통털어 열정보도 되나마나한 빈 뙈기섬을 리용해 굶주림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구원하자는것이고 회의에서 론의된 원목수출에 비하면 큰 문제로 될수 없다는것입니다. 태혁동문 그 말에 성을 내며 왜 그것이 빈 땅이겠는가. 벌둥섬도 선렬들의 피가 스며있는 조국땅의 한 부분이다라고 꾹 눌러버렸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등받이에 지그시 몸을 기대시였다.

장마철이면 사품쳐흐르는 탕수에 위태롭게 잠겨버릴듯 하는 압록강의 자그마한 무인섬··· 만포시에서 초간히 떨어진 미타마을앞에 나서면 물가운데 도두룩이 떠있는 그 외진 섬이 선명하게 내려다보인다. 몇해전에 미타농장사람들이 수수천년 바람을 받아온 섬을 개간하여 다소 번해졌으나 예전에는 키낮은 개버들과 잡초들이 엉클어져 물새들만이 찾아들던 땅뙈기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벌둥섬만 보면 세상에 태여난지 한해도 못되여 아버지를 여읜 태혁이가 생각나 마음 한구석이 쓰리군 하시였다.

태혁의 아버지 강희준은 일제때 왕칭(왕청)에 들어가 홍범도독립군에 가담하여 용맹하게 싸운 할아버지를 연줄로 석현 모나니의 오태희일가와 무척 친밀하게 지냈다. 오태희로인도 반일감정이 높고 의협심이 강한 할아버지와 친교를 맺고 강씨가정의 식솔들을 제 혈육처럼 돌봐주었다. 대끝에서 대순이 돋아난다고 독립군출신인 할아버지를 닮아서인지 강희준은 룽징(룡정)중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도를 닦는다 했더니 얼마 못가 학생데모에 참가한 죄명으로 중도에서 퇴학을 당했다. 워낙 남아다운 기질에 성격이 락천적인 강희준은 그후에도 실망한 기색이 없이 구차한 집안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지냈다. 그가 밤이면 구슬프게 퉁소를 불며 고국을 멀리 두고 타향살이설음에 잠 못드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군 한 속내는 누구도 알길이 없었다. 그 퉁소를 잘 부는 청년으로 유명짜하게 소문난 강희준이 예쁜 안해를 집에 두고 오태희로인네 끌끌한 젊은이들과 섭쓸려 직업적인 혁명가로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괴나리보짐에 량식을 넣어지고 날품팔이형식으로 집을 떠난 강희준은 두석달이 지나도 종무소식인 경우가 뜨문했다. 어쩌다 한번씩 야밤중에 집에 찾아들 때면 구레나룻이 텁수룩히 자란 그의 거뭇한 눈섭밑의 두눈은 숯불처럼 이글거리였다. 독립운동의 큰 뜻을 품고 홍범도 《포수부대》수하의 맹호로 싸우다가 《흑하사변》의 참극이 있은 후 패잔병신세가 되여 초야에 묻힌 태혁의 할아버지는 그런 날이면 온밤 모기떼가 성한 퇴마루에 나와 앉아서 담배질을 하며 아들을 지켜주었다.

그 아들이 공작임무를 수행하고 돌아가던 길에 국경수비대의 추격에 걸려들어 근 한달동안이나 초근목피로 창자를 채우며 피신한 곳이 바로 압록강의 벌둥섬이였다.

《그게 빈땅이란 말이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채 조용히 뇌이시였다. 강희준의 짧고도 기구한 한생이 돌이켜지며 태혁에 대한 측은함, 련민의 감정이 북받쳐오르시였다.

《벌둥섬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강희준은 그 이듬해 왕칭지구의 지하조직을 확대강화할 임무를 받고 활동하다가 스시엔(석현)마을에서 놈들한테 체포되여 화형당하였소. 놈들은 그를 중국사람이 살던 빈 집에 가둬놓고 불을 질렀소. 태혁동무의 할아버지가 아들의 유해라도 찾아오려고 스시엔마을로 갔지만 악착한 놈들은 쟈야하(가야허)의 강물속에 처넣었지. 그후 강희준이 불타죽은 집터에 봉분이 생겼소. 불에 거멓게 그슬린 흙무지였소. 태혁동무의 할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수 있었던 일이였소. 난 몇해전 태혁동무의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태혁동무를 불러 아버지의 묘가 있는 왕칭으로 떠나라고 했소. 두분을 합장해드릴 마음이였소. 살아있을 때 생리별한 그들을 죽어서라도 함께 있게 해주고싶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오래전의 일이였지만 목이 메여 더 말씀을 못하시였다.

차마 뒤말을 잇지 못하시는 그이의 눈앞에 그때 태혁이가 눈물을 듬뿍 머금고 쳐다보던 모습만이 선히 떠올랐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깨여나지 못한 그는 겨우 이렇게 떠듬떠듬 말했다.

《장군님, 거기엔 가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요?》

《아버지의 묘에는 유해가 없습니다. 빈 흙무지··· 입니다.》

태혁이가 웅크리고 서서 손등으로 젖은 얼굴을 훔쳤다.

《아니요!》

방안을 쩡 울리는 그이의 음성에 그는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동무의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혁명가의 절개를 지키며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지 않았소? 불속에서도 타죽지 않는 아버지의 넋이 스며있는데 왜 빈 흙무지란 말이요! 그 흙이라도 한줌 가져다가 함께 묻어줍시다. 놈들은 동무 아버지의 흔적조차 없애버리려고 했지만 그렇게는 안될거요. 래일 아침 내가 직승기편으로 떠날수 있도록 조직해주겠으니 당장 준비를 하시오.》

《장군님!》

태혁의 두눈에서는 비오듯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이미 오래전에 아들의 기억속에서도 삭막해져버린 아버지의 묘, 그 빈 흙무지의 한줌 흙을 위해 조국땅에서 직승기까지 띄우시겠다니 태혁은 방바닥에 풀썩 꿇어앉았다. 자기가 한생 어머니에게 못 다한 효도를 대신해주시는 그이의 사랑, 은정이 너무도 고맙고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렸으면 좋을지 몰라 태혁은 눈 먼 사람처럼 방바닥을 더듬으며 흐느껴 울었다.···

문성태는 눈물이 글썽하여 자리에서 정중히 일어났다.

《장군님, 이젠 알만 합니다. 압록강의 벌둥섬을 빈 땅이 아니라고 큰 소리친 태혁동무의 마음이 리해됩니다.》

《음··· 그 동무들이 원목수출문제를 토론했다는데··· 태혁동문 어떤 립장입니까?》

그이께서는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물어보시였다.

《태혁동문 침묵을 지켰습니다. 도림업국장동무가 원목수출문제를 들고나왔으나 리성하부부장이 호되게 면박을 주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원목수출은 역적행위라고 엄하게 가르치셨는데 반역을 하겠는가구 말입니다. 리성하부부장동문 원목수출문제에 대한 태혁동무의 립장이 모호하다고 했지만 제 보기엔 지나친 억측같습니다. 실제상 태혁동문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할만 한 리유가 있지 않았겠소?》

《그 리유란 다른게 아닙니다. 벌둥섬공동시장을 완강히 반대한 태혁동무가 원목수출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는것인데 근거가 명확치 않았습니다. 태혁동무도 감히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할수 없는데 말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그러니 식량문제해결을 위한 방도가 전혀 없단 말인가? 날이 어두워 시안의 아빠트창문들에 하나 둘 전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이의 마음속 어둠을 몰아낼 불빛은 그 어디에서도 깜박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