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4

 

제 5 장

4

 

내가 무슨 실책을··· 태혁은 몇번이고 입속으로 같은 말을 곱씹었다. 뿌옇게 물기낀 안경을 벗어쥔 그의 두손은 가늘게 떨렸다.

1951년 여름 최고사령부 친위병으로 복무하며 오늘과 같은 괴로움에 모대겼던 일이 떠올랐다. 조국앞에 재진격의 새로운 전쟁국면이 열렸으나 적들의 일시적강점으로 황페화된 나라의 형편은 지금처럼 곤난했다. 최고사령부 친위대원들도 근무를 서고 여가시간에는 농사를 지었다. 태혁은 참말로 힘겨웠던 그때 일을 가끔 회상한다. 매순간 최대의 경각성을 요하는 전투임무에 지친 대원들속에서는 야맹증환자까지 나타나기 시작하여 골치거리로 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친위중대 병실로 찾아나오시였다. 급히 군복자락을 바로 잡고 병실마당으로 달려나간 태혁은 영접자세를 취하며 목청이 터지게 구령을 쳤다.

《중대 차렷!》

다음 순간 그는 군모옆에 손을 붙인채 말뚝처럼 굳어졌다.

《대원들이 없는데 무슨 차렷이야?》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에 뒤통수가 뗑해졌다. 대원들이 모두 근무에 나가고 병실에는 자기 혼자밖에 없었다.

(이런 망신이라구야.)

너무도 창피스러워 귀뿌리가 덴것처럼 홧홧 달아올랐다.

태혁은 그때 위병장을 하면서 남달리 수령님을 자주 만나뵙군 했다. 이따금 산보길에 나서신 수령님께서는 사색을 방해할가봐 먼발치에 지켜서있는 그를 불러 다정히 이야기를 건네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때면 정말 눈굽이 뜨거워졌다. 언젠가 수령님께서는 얼굴에 솜털이 보르르 돋힌 어린 친위병들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너희들이 날 호위하면 얼마나 하겠어? 난 너희들을 잃을가봐 엄지닭이 병아리를 품고다니듯 해.》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신 일도 있었다. 명색이 위병장일뿐 그처럼 소탈하고 인정이 깊으신 수령님앞에 영접보고도 제대로 올리지 못했으니 참말로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어쩐지 수령님께서도 안색이 좋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태혁이더러 식당으로 가보자고 하시였다. 조금후 병사들의 식당에 당도하신 수령님께서는 솔가지를 대수간 덮어놓은 부엌의 엉성한 천정을 바라보시고나서 흐려진 음성으로 물으셨다.

《국가마에 뭘 끓이나?》

《소금국입니다.》

친위중대 고정재산인 배불뚝이 무쇠가마안에서는 시멀건 소금물이 펄펄 끓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날 후방부련대장을 불러놓고 우리 나라 동해안에 고등어가 득실거리는데 왜 대원들에게 알짜 소금국만 먹이는가, 그래서 근무를 서며 야맹증에 걸린다고 격분을 금치 못하시였다. 이튿날 태혁은 그 후방부련대장이 깜쪽같이 자취를 감추어 철직된줄로 알았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고 사흘이 지나자 동해안의 고등어가 쓸어들어오기 시작했다.

《고마이가 왔다!》

친위병들속에 동해안 신포태생의 한 대원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친구》라도 만난듯이 기뻐서 날뛰였다. 다른 대원들도 《고마이 풍년》에 환성을 질렀다. 매끼 식탁에 오르는 쩝쩔한 소금국에 골살을 찌프리던 대원들의 곱배기청으로 식사시간이면 한바탕씩 요란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그만 웃으라구. 모두들 메기입이 되겠어.》

밤근무에 나가면 야맹증으로 골탕먹는 대원들이 그렇게 시까슬렀으나 그들도 며칠후엔 심봉사 눈뜬것만치나 기뻐했다. 고등어가 너무 흔하다보니 대가리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뚝뚝 떼 팽가쳤다. 그렇게 《천대》를 받으며 무져뒀던 고등어대가리를 강냉이밭에 싣고나가서 한포기에 한개씩 묻어주었더니 제격이였다. 당장 강냉이들이 시꺼멓게 독을 쓰며 자랐다. 하루아침 수령님께서도 눈에 띄게 작황이 좋은 친위병들의 포전에 나와 태혁에게 친절히 물으셨다.

《너희들이 여기다 뭘 쳤느냐?》

태혁은 고등어대가리를 묻어줬다고 하면 영낙없이 욕을 먹을것 같아서 뒤덜미를 쓸어만졌다.

《저··· 인분을 줬습니다.》

《그래, 무슨 쪼간이 있었겠지.》

수령님께서는 자못 흐뭇해하시였다. 그러나 태혁은 그날 밤 자기의 떳떳치 못한 행실때문에 마음이 쑤시여 잠을 못잤다. 수령님앞에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추궁을 받았으면 그렇게는 괴롭지 않았을것이였다. 한편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강냉이도 여물지 않고 장대처럼 멋없이 자라기만 했다. 그러던차에 태혁은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내 오늘아침 포전에 나가봤는데 왜 강냉이이삭이 손가락만 해?》

태혁은 한참 진땀을 흘리다가 실토했다.

《사실은··· 그 강냉이포기에 고마이대가리를 묻어줬습니다.》

《그럼 인분을 쳤다는건 거짓말이였나?》

《그땐 욕을 먹을가봐···》

수령님께서는 잠시 서운한 낯빛으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태혁이가 날 속이다니··· 친위병답지 않구만.》

태혁은 그날 수령님앞에서 죄스럽던 자신을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후회했다. 비록 크지 않은 일이였지만 《고등어대가리 매몰사건》은 그의 쓰린 가슴속에 《수령님의 전사는 무한히 솔직하고 청렴결백해야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철기둥처럼 깊이 심어주었다. 태혁은 그후 한평생 그 순결무구한 마음에서 촌보의 드팀도 없었고 거짓과는 비타협적으로 투쟁했다. 그는 늘쌍 아래 일군들에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조금도 보태지도 말고 덜지도 말며 사실대로 말할것을 엄격하게 요구했다. 그자신이 결백성의 수범을 보이며 앞뒤가 따로없이 일해왔다. 처음엔 일부 곁을 주지 않고 경계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차츰 자기 마음속의 숨은 고민까지도 허물없이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두들 자기와 일할 재미가 있다고 한다는데 태혁은 그런 여론이 귀에 들려올 때가 그중 행복했다. 그것은 당일군인 자기에게 차례진 가장 큰 표창이고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인생의 락이였다. 그런데 태혁은 오늘 스스로 공들여 쌓아온 탑을 허물어뜨리는 행위를 했다. 사흘 굶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세상에 배를 곯는것보다 더한 고통이 있는가. 그가 이번의 전투임무를 받고 제일 걱정한것이 식량난이였다. 그래서 수출전용견인기를 만가동하여 한g의 식량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아득바득 애썼고 부모없이 방황하는 아이들을 육아원, 고아원에서 키울 대책도 취했다. 도안의 과학자들을 발동하여 대용식품도 만들어 공급했지만 식량난은 의연히 막을 길 없었다. 실은 그 아픈 마음때문에 차마 장군님께 사실대로 보고드리지 못한 그였다.

때마침 장관우부위원장이 찾아들어와서 알렸다.

《책임비서동무, 회의준비가 되였습니다.》

식량문제를 토의하게 될 협의회였다.

《그래, 갑시다.》

태혁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장관우를 따라 나갔다.

회의장에는 도안의 행정경제사업을 책임진 일군들과 도농촌경리위원회 위원장, 부위원장들, 도량정총국, 무역국을 비롯하여 식량문제와 관련된 유관기관의 국장, 소장, 지배인들이 절반가량의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장내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이제 토론하게 될 식량문제의 절박성때문에 긴장한 낯빛들이였다.

협의회는 장관우가 집행하였다.

태혁은 그의 옆에 약간 비켜앉았다.

회의에 앞서 장관우는 장내를 둘러보면서 격식없이 말했다.

《방이 추운데 외투를 입으시오. 괜히 떨 필요가 있소?》

난방이 보장되지 않아 회의장은 바깥과 다름없이 썰렁했다.

모두들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입소.》

장관우는 재차 권하고 잠시 소란해졌던 장내가 정돈되자 침착하게 말을 떼였다.

《동무들도 잘 알다싶이 지금 도안의 식량사정은 매우 어렵습니다.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기 위한 우리의 투쟁은 식량난과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요. 우린 시급히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안타깝게 바라시는 절박한 문제이니만큼 모두가 주인의 립장에서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가해야 하겠습니다.》

장관우는 어떤 회의도 지루히 시간을 끌지 않는 성미인지라 말을 마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누가 먼저 발언하겠소?》

장내는 쥐죽은듯 조용했다. 누구도 선뜻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1분 2분··· 긴 침묵이 흘렀으나 장내에서는 다른 변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식량문제는 오늘 비로소 새삼스럽게 토론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짜낼대로 짜내며 최대한의 가능한 조치를 다 취했다. 갑자기 무슨 신통한 해결책이 새롭게 나오겠는가. 얼굴을 들지 못하는 일군들의 심정이 리해되여 장관우가 얼마간 여유를 주었으나 여전히 함구무언이였다.

장관우는 참지 못하고 도량정국장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량정국장동무가 일어나서 말해보오. 어떻게 하면 식량문제를 풀수 있겠소?》

량정국장이 자다 깬 사람같은 얼굴로 마지 못해 일어났다.

《글쎄···》

장관우는 쉰 밥냄새가 나는 대답에 기분을 잡치고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의 입은 꾹 다물려있었으나 순식간에 낯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명색이 량정국장이라는 사람의 얼굴에서 안타까와하는 기색을 전혀 찾아볼수 없었던것이다.

《동무야 량정국장이 아니요. 무슨 대책이 없겠소?》

량정국장이 장관우를 시뿌둥히 쳐다봤다.

《글쎄··· 저라고 무슨 용빼는수가 있겠습니까.》

장관우는 그만 성난 얼굴로 량정국장을 노려보았다.

《동무도 사람이요? 목두개비지. 동무와 같은 일군과 마주 앉아 식량문제를 의논하니··· 이거 어디 속에서 불이 일어 견디겠소.》

장관우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량정국장을 마뜩잖게 흘겨볼 때였다.

《량정국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회의장 중간쯤에서 편직공장 녀성지배인이 일어나 짭짤하게 비판했다.

《요즘 시내에서 량정국장동지를 뭐라고 비난하는지 알아요? 남들은 풀죽도 없어 못먹는데 딸잔치를 요란히 차려놓고 흥청거린다구 코웃음을 쳐요. 지금 국수 50kg에 떡 30kg를 치면서 딸 시집보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모두 량정국장을 〈변학도〉같은 사람이래요. 방금 부위원장동지도 말했지만 전 저렇게 량심이 없는 일군과 마주 앉아선 식량문제가 절대로 풀릴수 없다고 봅니다.》

회의장안이 갑자기 술렁거리였다.

장관우는 편직지배인이 앉은후에도 한참이나 말이 없다가 엄하게 물었다.

《량정국장동무, 그게 사실이요?》

량정국장이 컴컴해진 얼굴을 푹 숙였다.

《사실인가?》

량정국장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사실입니다.》

그 순간 책상을 탕 치는 소리와 함께 《동무가 량정국장이요?··· 보기도 싫소. 나가오.》하는 장관우의 웨침이 장내를 드렁드렁 울렸다.

장관우는 너무도 격분하여 말을 제대로 못했다. 그의 격분한 말에 곁불을 맞고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떨구었다.

《인민들이야 어떻게 되건 상관치 않는 동무를 량정국장이라고 할수 있는가. 동문 출당감이요. 나가오. 나가-시-오!》

장관우의 천둥같은 고함소리에 어깨가 축 처진 량정국장이 출입문을 향해 풀기없이 걸어갔다. 이런 일과 타협을 모르는 장관우의 성품을 알고있는 회의참가자들은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량정국장이 회의장에서 사라진후에도 장관우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태혁을 돌아보았다.

《이거 안되겠습니다. 량정국장과 같이 저렇게 썩어빠진 일군들의 머리통에서 무슨 식량해결방도가 나오겠습니까? 오늘 밤 모두 강계시 로동자들 집에 가 함께 자며 그들이 뭘 먹고 어떻게 사는지 보고와서 회의를 다시 합시다.》

태혁은 장관우의 결단성있는 말에 동감을 표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후 그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우리 일군들속에 량정국장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런 때면 태혁은 과도한 심장부담으로 하여 잠간씩 안정하군 했으나 오늘은 그 짧은 휴식도 차례지지 않았다. 뒤따라 장관우가 편직공장지배인을 달고 방으로 들어왔다.

《책임비서동무, 이 지배인동무를 빨리 만포로 보내야겠습니다. 휘발유가 없어 변강무역을 하여 들여온 밀가루가 만포역에 머물러있답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오? 어서 보내오.》

《예, 휘발유는 보장해주기로 대책을 취했습니다.》

장관우가 숨가쁘게 대답했다.

태혁은 고개를 끄덕이고 편직공장지배인 순정의 꺼칠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동문 만날 잠을 못자고 뛰누만.》

《일없습니다.》

《그럼 가보오.》

순정이가 방에서 나가자 장관우는 벽밑의자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는 한동안 혼자 생각에 잠겨 천정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구있소?》

《힘들군요.》

장관우는 한숨섞인 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이거 어디 방도가 나옵니까?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앉아만 있지. 량정국장같은 저런 도깨비가 나오지 않나. 정말 숨이 콱콱 막히누만요.》

태혁은 그 말에 담겨있는 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은 그도 장관우와 다를바 없었다. 그렇지만 장관우의 울적한 기분은 어쩐지 불쾌하게 생각되였다. 이 손탁이 세고 내밀성있는 일군이 벌써 탕개가 풀린게 아닌가?

《부위원장동무의 심정은 리해되오. 그렇지만 난 오늘 부위원장동무가 량정국장을 회의장에서 퇴장시킬 때와 강계시 로동자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고와서 회의를 다시 진행하기로 결심할 때 마음이 든든해지는걸 느꼈소. 부위원장동무와 손잡고 식량문제를 풀수 있을것 같더란 말이요. 그런데 이렇게 손맥을 놔서야 되겠소?》

《그렇다고 무슨 신통한 방도가 나올것 같습니까. 난 그저 막연한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좀 더 토론해봅시다. 중요한건 신심이요. 부위원장동무가 동요하면 누가 식량문제해결에 나서겠소?》

태혁은 그때 책상우에 전화기가 뜨르릉 울리는 바람에 이야기를 중단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책입비서동지입니까?》

수화기에서 북치는듯 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렇소. 동문 누구요?》

《도지휘부의 림준입니다. 지금 강계청년발전소에서 전화를 합-니-다-.》

태혁은 그제야 며칠전 림준이가 그리로 간다면서 찾아왔던 일이 떠올랐다.

림준이가 떠나는 인편에 벌써 한달가까이 거기 문암발전소건설장에 나가있는 리경훈의 건강을 잘 돌봐주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런데 무슨 일때문에 갑자기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는지 알수 없었다.

《책임비서동지,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요. 강계청년에서 15년동안이나 씨름질하던 2 000kw발전기를 만들었습니다!》

《뭐요. 그게 정말이요?》

《정말이라니까요! 이건 대성공입니다. 이 말마우골- 말두 마오, 여긴 사람 못 살 고장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리워온 말마우골은 지금 인공위성을 쏴올린것만치나 법석 끓어댑니다.》

태혁은 너무도 기뻐 수화기를 꽉 틀어잡았다. 림준이 과따치는 말을 들어봐선 틀림없는 성공이였다.

《괜찮아. 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났소?》

《강계청년에서 페기해버린 비동기전동기를 발전기로 개조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하면 도안의 발전소건설에 필요한 발전기들을 해결할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릴것 같습니다.》

《그럴듯 해. 이건 정말 멋들어진 발명이요!》

태혁이가 가슴이 확 달아올라 목단추를 끄르며 마주 웨치자 림준은 기세충천해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책임비서동지, 기운이 납니까?》

《나구말구!》

태혁이도 큰 소리로 웃었다.

《이번에 평양전력설계사업소의 리경훈선생이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처음에 발전기개조안이 나왔을 때 몇몇 시비군들이 싱거운 소릴 하다가 리경훈선생한테 단단히 혼뜨검이 났습니다. 먹은 소 힘쓴다구 역시 큰 학자인게 틀림없습니다.》

《알겠소. 이제 인차 시간을 내여 찾아가겠소. 그때 달라붙어서 선생을 목마에 태우자구!》

태혁은 수화기를 놓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부위원장동무, 문암이 2천을 만들었소!》

장관우가 넙적한 손바닥으로 벌개진 얼굴을 쓸어만졌다.

《천만다행이군요. 식량문제때문에 골머리 아픈 때에 강계청년동무들이 힘을 주누만.》

《그래 답답한 가슴이 열리는것 같소. 자, 괜히 한숨만 쉬지 말구 오늘은 우리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나 가봅시다. 이럴 때엔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는게 제일 좋소.》

태혁은 어느새 날이 어두워진줄도 모르고있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으로 찾아간 태혁은 어지간히 놀랐다. 돌격대원들이 발전기실기초타입작업에 달라붙어 와짝 들끓고있었다.

널직한 철판옆에는 여러명의 돌격대원들이 빙 둘러서서 불이 번쩍나게 몰탈혼합을 하며 《모래!》, 《자갈!》, 《여, 세멘트 뭘 해!》하고 고함을 질렀다. 따찌까들이 연방 달려와 모래와 자갈, 세멘트를 철판우에 쏟아부었다. 뿌연 세멘트먼지속에서 부리나케 모래, 자갈, 세멘트를 뒤섞으며 볶았다치는 소리, 삽질소리··· 누군가 또다시 《물! 물!》하고 목청껏 웨쳤다. 물통을 들고오던 청년이 너무 급해 맞아서 헤덤비다가 나자빠지는 바람에 와- 터져오르는 통쾌한 웃음소리··· 몰탈운반조원들은 남들이 웃건말건 분주스레 따찌까를 몰고 뛰여다니며 발판을 쾅쾅 굴러댄다.

온 건설장이 죽가마 끓듯 하는데 삐죽삐죽 철근이 솟아난 타입장에서는 처녀중대원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다짐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털모자를 귀엽게 쓰고 팥죽땀을 흘리는 처녀들속에서 뜻밖에도 성실을 알아보고 태혁은 얼른 그리로 달려갔다.

《성실동무, 이게 웬일이요?》

《아이, 책임비서동지!》

성실은 눈섭까지 내려쓴 머리수건을 손등으로 밀어올리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동문 왜 여기 와서 일하오?》

《전 늘 외따로 떨어져 연구사업만 하랍니까. 오늘 건설장에 와서 이 처녀동무들과 함께 일하니 막 젊어지는것 같습니다.》

성실은 명랑하게 웃었다. 늘쌍 조용하고 어딘가 없이 수심에 잠겨있던 녀성이 건설장의 복새통속에서 신이 나 일하더니 정말 웃음도 마음껏 웃게 된것만 같았다. 오로지 연구사업밖에 모르며 살아온 성실의 그 생기에 찬 모습이 얼마나 대견해보이는지 몰랐다. 하지만 성실은 늘쌍 시간이 모자라서 밤을 새우는 녀성이다. 태혁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기에 위엄을 풍기면서 말했다.

《동문 이런 일을 안해도 돼. 다짐봉을 나한테 주고 빨리 가서 연구사업이나 하오.》

《책임비서동지-》

성실이 가슴에 다짐봉을 꼭 당겨붙이면서 안타까이 쳐다봤다.

《장군님께선 절 보구 자강도에 내려가 연구사업을 꼭 성공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강도로동계급의 투쟁정신으로 억세게 살라는 뜻이였어요. 그런데도 제가 이 발전소건설장에 와서 땀한방울 흘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음, 좋소. 그럼 우리 오늘 실컷 땀을 흘려보자구!》

태혁은 얼른 다짐봉을 들고왔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열심히 일손을 놀리다가 성실을 흘끔흘끔 돌아다보았다. 성실이가 이상하게 자꾸만 웃고있었다.

《성실이, 왜 웃소?》

《책임비서동지, 좀 슬렁슬렁 일하십시오. 다짐봉이 부러지겠어요. 호호···》

태혁이도 허허 따라 웃고 넌지시 물었다.

《내 요즘 바빠서 동무와 만나지 못했는데 연구사업이 잘 돼가오?》

《안심하십시오. 금년엔 리미액으로 꼭 농사를 잘 짓겠습니다.》

《그럼 난 성실이만 믿겠소. 가만 저기 저 처녀가 장관우부위원장 딸이 아니요?》

《옳습니다. 온 건설장에 소문난 처녀중대장이예요. 전 저렇게 일잘하는 처녀를 처음 봤어요.》

《그래 모두 똑똑하다고 칭찬이 대단해. 성실동무, 내 저 처녀중대장과 좀 할 말이 있어 그러는데 이젠 그만하고 돌아가보오.》

태혁은 거듭 그렇게 권고하고 처녀가 놀라지 않게 은희옆으로 슬그머니 가서 다짐작업을 했다.

은희는 온통 일에 정신이 팔려 옆에 와 열심히 다짐봉을 놀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몰랐다.

태혁은 한참이나 시치미를 떼고 일하다가 한마디 슬쩍 건늬였다.

《처녀중대장이 본때나는걸.》

《어마나!》

그제야 태혁을 알아본 처녀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웠다.

《됐소. 됐어. 빨리 일이나 하자구.》

태혁이가 일손을 멈추지 않자 은희는 잠시 어쩔바를 몰라 하다가 다시금 다짐작업을 계속했다.

태혁은 처녀와 승벽을 겨루듯 힘차게 다짐봉을 놀리면서 이따금 은희에게 가만가만 곁눈질했다.

《은희, 요즘도 아버지가 말째게 놀아?》

《녜?》

은희가 의아히 쳐다보았다.

《딸의 사랑에 간섭하는가 말이야.》

처녀는 막 웃고나서 또다시 바지런히 일손을 놀렸다. 참말로 사랑스러웠다.

《꼴보기 싫은지 암말도 안합니다.》

《그러니 아직도 채 넘어지지 않았군.》

《우리 아버지의 왕고집을 몰라서 그럽니까.》

《걱정마오. 아버진 혼자구 동무넨 둘이 아니요. 한팔씩 잡고 항복을 받아내라구. 내가 졌다 하고 손을 들 때까지!》

은희는 또 한번 웃고나서 고운 눈을 살짝 치켜떴다.

《저 한가지 물어도 좋아요?》

《말하라구.》

《오늘 식량문제를 토론했지요?》

《은희가 그걸 어떻게 알어?》

《어제밤 집에 갔는데 아버지가 온밤 담배를 태우면서 꼬박 새우더군요. 어머니보고 왜 그런가구 했더니 말해줬어요. 회의결과가 어떻게 됐습니까.》

《아직은 방도가 없소.》

《그렇군요.》

은희가 잠간 눈길을 떨구고나서 호 한숨을 쉬였다.

《아버지가 걱정이 돼요.》

《어째서?》

《모두 우리 아버지보구 배짱이 세다지만 성격이 급하니까요. 아버진 오래 견디기 힘들어 할거예요.》

《음···》

태혁은 은희를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되였다. 아버지에 대해선 딸만큼 잘 알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은희의 말을 듣고보니 아까 장관우가 신심이 없어 하던 일과 꼭 맞아 떨어졌다. 참말로 신통한 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태혁은 얼핏 건설장을 살펴보았다. 저쯤에서 청년들과 섭쓸려 몰탈을 이기며 한창 기세를 올리고있는 장관우가 눈에 띄였다. 청년들은 그가 들볶아대는 소리에 연방 웃어대면서 세괃게 일손을 다그쳤다. 그때 무슨 생각엔가 골똘히 잠겨 일하던 은희가 다시금 떠듬거리면서 가만히 물었다.

《책임비서동지, 저 명철동무의 아버지가···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내온다는게 사실이예요?》

태혁은 뜻밖의 물음에 일손을 멈췄다. 어느새 그 소문이 은희의 귀에까지 울려갔는지 알수 없었다.

《누가 그래.》

《명철동무가··· 그 동문 부아가 나서 펄펄 뛰여요. 게잘싸하게 공동시장따위가 뭔가. 아버지때문에 창피해서 얼굴을 쳐들고 다니겠는가며 돌격대 중대장일도 그만 두겠답니다. 속상해서···》

《알겠어. 그 녀석을 단단히 혼내우자구.》

태혁은 명철이가 아버지와 생판 달리 대바른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의 본심을 감추고 은희의 마음이 후련하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저한테서 들었다는 말은 마세요.》

때마침 건설장에 《휴식!》 하는 구령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그들의 이야기는 끊어졌다. 여기저기서 일손을 멈춘 돌격대원들이 모닥불이 뭉근히 타오르는 강변으로 걸어가 풀썩풀썩 주저앉았다. 태혁은 정겹게 은희를 바라보며 《우리도 좀 쉬자구.》하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가 무슨 일때문인지 떠들썩 웃어대는 처녀중대 대원들보다 한발 앞서 걸어가는데 저쯤 어둠속에 명철이와 마주선 장관우가 큰 소리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만, 동무이름이 뭐랬더라? 무슨 막돌이라구 했지.》

《막돌이 아니라 갑돌입니다.》

《음. 막돌보다는 좀 낫군.》

장관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명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이름이야 막돌이면 어떻구 자갈이면 어때, 사람만 똑똑하면 돼. 그렇잖아?》

《예. 옳은 말씀입니다.》

명철은 능구렝이같이 장관우의 입심사나운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태혁은 한참이나 그들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몇발자국옆의 돌멩이우에 가서 앉았다.

(일은 그렇게 됐군. 엉큼한 녀석같으니.)

무슨 말라빠진 놈의 갑돌인가? 태혁은 웃음이 터져나오는걸 겨우 참았다. 허진규의 집안에 딸을 주지 않겠다는 장관우이니 명철은 그와 상대하기 편리하게 자기를 완전히 변성명한것임에 틀림없었다. 여하튼 전후사연은 어떻든간에 장관우도 명철을 눈알이 똑바로 배긴 청년으로 안중에 두고있는것만은 확실했다. 그럼 만사가 잘된셈이 아닌가! 이제 장관우가 바로 이 청년이 은희를 사랑하는 허명철이라는것을 알면 화들짝 놀랄것이다. 태혁은 저혼자 그런 흐뭇한 생각에 잠겨 담배를 태우는데 웬 청년이 어슬렁거리며 옆에 와서 쭈그리고앉았다.

《담배 좀 없수?》

《왜, 담배생각이 나오?》

《속이 얼어들어 견디겠나요.》

태혁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주며 씽긋 웃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태혁이가 내미는 담배불에 불을 붙인 청년은 둬모금 맛스레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고급담배구만.》

《아들녀석이 한갑 찔러준거요.》

《그래요. 별로 수준이 높다 했더니···》

그때였다. 그들의 등뒤에서 누군가 청년의 엉덩짝을 걷어찼다.

뜻밖에도 명철이였다.

《이건 버르장머리없이!》

《왜 이래?》

청년이 골을 내며 삑 돌아앉았다.

《반편같이 놀지 말구 날 따라와!》

《챠, 이런!》

청년이 게두덜거리며 비실비실 일어났다. 태혁은 성나서 바람처럼 휙 돌아서가는 명철을 다급히 멈춰세웠다.

《명철이! 이리 오라구.》

명철이가 자기옆으로 스쳐지나는 청년을 마뜩지 않게 흘겨보고 씨근거리며 태혁의 옆에 와서 량해를 구했다.

《책임비서동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단 말이요. 그 동무야 어두운 밤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구 그랬겠지. 설사 알았다면 어떻다는거요. 왜 그렇게 대원들을 윽박질러? 그럼 못써!》

《저 친군 아무때 봐도 저 꼴이란 말입니다. 당초에 촌수를 모른다니까요.》

《됐어. 앉소!》

태혁은 옆에 명철을 앉히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동문 언제부터 갑돌이가 됐어?》

《예?》

《그래 은희를 사랑한건 동무가 아니고 도깨비같은 갑돌이였나? 대원들한테 땅땅 큰소리를 치려면 장관우부위원장앞에서도 내가 바로 허명철이라고 버젓이 말해야지. 갑돌이가 뭐야!》

순간 와닥닥 놀라면서 일어난 명철이가 《좀 조용조용···》하며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들한테로 다가오던 장관우부위원장이 걸음을 멈추고 어둠속에 우뚝 서있었다.

태혁은 그만 돌멩이우에서 움쭉 일어나 장관우를 마주 보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여보, 부위원장동무. 이 녀석이 오늘 보니 속대가 물렁물렁해. 졸장부로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