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3

 

제 5 장

3

 

1997년의 준엄한 겨울은 왔다.

온 나라를 휩쓴 식량위기로 요즘은 수도시민들도 하루하루 근근히 끼니를 에워간다. 엄동설한에 난방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겪는 생활상의 불편도 이만저만 하지 않다. 평양화력발전소와 새로 건설한 동평양화력발전소의 정상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초래된 후과였다. 5도미만의 랭방에서 잠을 설치고 기관들에 출근한 사람들이 외투와 장갑도 벗지 못하고 시허연 입김을 내불며 사무를 보기가 례상사이지만 추위는 조금도 수그러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한을 앞두고 련 이틀 퍼부은 폭설은 가로수옆에 쌓인채 싸늘한 랭기를 풍겼다. 새벽부터 세차게 불기 시작한 광풍이 그 눈무지를 물어뜯으며 허공중에 뽀얀 눈가루를 말아올렸다. 우우- 귀청이 아프게 울부짖어대는 눈보라··· 온종일 기승을 부리는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오늘도 군인건설자들의 들끓는 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고 밤이 이슥해서야 당중앙위원회 집무실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의 엄혹한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시였다. 간고할테지··· 수도시민들의 생활도 나날이 어려워져가는데 자강도야 더 말할나위가 있는가? 잠시 그런 가슴 아픈 생각에 잠겨 묵묵히 서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즉시에 수화기를 들고 강태혁을 찾으시였다.

《태혁동무요?》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태혁이가 의자를 밀치며 급히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이께서는 태혁의 석쉼한 목소리에서 이상한 감촉을 느끼고 물으셨다.

《왜 목소리가 그렇소?》

태혁이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이께서는 잠간 여유를 두고 다시금 시름겹게 물으시였다.

《그곳 추위는 어떻소?》

《어제부터 령하 39도로 떨어졌습니다.》

《그럴거요. 대한추위니까. 공사에 지장이 많을테지?》

《예, 세멘몰탈이 얼어붙어서 애를 먹습니다. 워낙은 정월달에 발전소들의 기초작업을 끝낼 예정이였는데 공사기일이 다소 지연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건설장에서나 난관을 극복하며 동기전투를 밀고나갑니다.》

그이께서는 락관에 넘친 태혁의 말을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힘겨울거요. 동무네 식량사정이 어떻소. 난 오늘 그 일이 걱정되여 전화를 했습니다.》

태혁이 머뭇거리면서 제꺽 대답을 못했다.

《장군님, 전국이 겪는 식량난이 아닙니까. 저희들은 장군님께서 도안에서 생산되는 공작기계와 농토산물, 정광들을 식량문제해결에 전적으로 돌려주신 덕분에 견디여갑니다. 며칠전부터는 도내의 과학자들이 대용식품을 연구하여 인민들에게 공급합니다.》

태혁은 아직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대용식품들을 무슨 발명품처럼 렬거하고나서 덧붙였다.

《도당직원들도 점심 한끼를 식당에서 〈니탄떡〉으로 에우는데 먹기도 괜찮고 근기가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말이 없으시였다.

《그러니 일없다는거요?》

《장군님, 이겨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드신채 말씀이 없으시였다. 태혁이가 식량문제를 놓고 여러가지로 위안조의 말을 많이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였다. 자강도로동계급이 어려운 투쟁에 떨쳐나섰는데 굶고서야 일할수 있는가. 그것이 한개 도인민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사활적인 문제이기도 하여 그이께서는 다시금 자세히 물으시였다.

《지금 동무네 희천에서 공작기계가 얼마나 나옵니까?》

《요즘은 최대갈수기여서 희천공작기계공장도 전력을 거의나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일없다.ㅡ 매해 농토산물도 두석달 긁어먹으면 바닥이 나지 않소. 공작기계도 농토산물도 없으면 변강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식량도 없다는 말인데 인민들을 먹여살릴수 있소?》

태혁은 그이의 엄한 말씀을 듣고 움츠러들었다.

《솔직하지 못하구만.》

《제가 도를 책임지고 어떻게 매번 장군님께 궁한 소리만 하겠습니까?》

《그만하오. 지금은 나한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충신이요. 그래 인민들이 굶주림에 쓰러지는데 동무 혼자서 막을수 있다고 생각하오? 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소!》

태혁이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에 실려왔다.

《조금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시오.》

《장군님.》

태혁은 갑자르면서 겨우 대답올렸다.

《한마디로 자강도의 식량난은··· 최악에 이르렀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수없는 참상들이 처처에서 벌어지고있습니다. 이삼일씩 때식을 굶다싶이 하고 누워있는 사람들··· 참혹합니다.···》

태혁의 목소리가 기여들어가 들리지 않았다.

그이께서는 쏘파의 팔걸이를 꽉 틀어잡으시였다.

《계속하오.》

《장군님, 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아니요. 죄다 말하시오.》

그이께서 재차 강경히 요구하시자 태혁은 다시금 목안을 가다듬었다.

《장두칠이처럼 유능한 기능공들과 기술자들이 식량타격에 목숨을 잃고있습니다. 그들이 없이야 공장을 돌려냅니까. 굶주림은 사정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립니다. 주검은 어디에서나 눈에 띕니다. 기대앞에서 졸도하는 로동자들··· 한 로기능공은 허약한 몸으로 발전소건설장의 강물속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그만··· 그 가슴 아픈 일이 있은 후로 기능공, 기술자들을 정양소에 넣고 예비식량을 들이밀어 대우해주지만 극히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구제대책에 불과합니다. 이게 답니다···》

태혁의 말은 몇번이나 눈물에 막혀 끊어졌다.

마감까지 참을성있게 태혁의 보고를 받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주먹을 꽉 움켜쥐시였다.

《장군님, 절··· 절 처벌해주십시오.》

태혁의 흐느낌소리가 가슴아프게 들려왔다.

《그래, 있는것보다 없는것이 훨씬 더 많은 오늘의 역경속에서도 변심없이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고있는 인민! 그것은 내가 수령님으로부터 넘겨받은 가장 귀중한 유산이요.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큰 유산이 없소. 난 그 인민이 있기에 지구상에서 단독으로 제국주의와 맞서 싸울 용단을 내리고 우리 인민은 지금 나의 명령을 결사관철하고있는데 우린 그들을 위해 무엇을 바치고있소? 무엇을!···》

그이께서도 목이 메여올라 더 말씀을 못하시였다.

《우린 모두 처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요. 자강도로동계급은 죽어도 기계를 베고 죽겠다며 일떠섰는데 우린 그렇게 당에 운명을 맡긴 인민을 책임지지 못하고있소. 가슴이 타오. 가슴이!··· 태혁동무, 우리 어떤 일이 있어도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기어코 해결합시다.》

자강도로동계급은 이 엄동설한에 발전소들을 건설하고 공장들을 돌리기 위한 결사전을 벌린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석달동안이나 초인간적인 힘으로 일떠서 싸우는 불사신의 인간들이다. 제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쳐 부강조국건설의 진격로를 한치한치 힘겹게 열어나가는 사람들··· 그들의 정신력이 발휘하는 힘은 무한대한데 매일 매 시각 그 귀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기아와 식량난을 해결할수 있는 방도는 과연 없단 말인가. 그이께서는 수화기를 꽉 잡으시였다.

《최단기일안에···》

《장군님, 명심하겠습니다.》

태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힘껏 돕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긴 말씀을 하지 않으시였다. 마침내 수화기를 놓고 책상앞에서 물러선후에도 그이께서는 이윽토록 집무실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