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

 

제 5 장

2

 

한편 태혁은 이날 도기술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농촌경리위원회 농산 및 축산전문가들, 리미액연구사 림성실, 시병원의 류설미 등 도안의 이름있는 과학자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당면한 식량문제의 해결방도를 시급히 토론할 의도였다. 태혁은 힘겹게 말을 뗐다.

《우리가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발전소건설에 착수했지만 난관들이 많소. 당장은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소. 굶고서야 어떻게 발전소를 건설하겠소. 동무들이 대용식품을 연구해서 이 문제를 풀지 못하겠소? 지금까지 가둑나무잎을 삶아먹으면서도 견디여낸 사람들인데···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모두들 이 고난을 이겨낼거요.》

손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훔치던 성실이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섰다.

《전 장군님께서 자강도로동계급이 식량고생을 하며 힘겨운 투쟁을 하고있는데 밤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동무가 연구사업을 성공하여 나의 이 아픈 마음을 덜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싶이 장군님의 그 크나큰 신임에 의해 우리 자강도에는 여러명의 끌끌한 미생물연구사들이 망라된 리미액미생물공장이 생겨났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던 일이예요?》

성실의 량볼을 적시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눈가장자리가 불깃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것이 어찌 제 한 사람만이 받아안은 행복이겠습니까. 우리모두 재능과 힘을 모아 자강도인민들때문에 잠 못 이루시는 장군님의 괴로움을 덜어드리자요. 우리 도에 흔한 콩깝대기와 강냉이껍질, 니탄으로도 얼마든지 대용식품을 만들수 있습니다.》

성실의 말에 신심이 생긴 태혁은 《좋소!》하며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 쳤다.

그는 류설미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류설미는 몇해전 아득령밑의 자그마한 농촌진료소에서 그곳 산간오지에 흔하디흔한 봇나무잎사귀로 캄파를 제조해 환자치료에 리용하려고 피타는 열정을 쏟아부어온 의사였다.

때마침 도당에 새로 부임되여 내려간 태혁이 적극 떠밀어주어 자강땅의 대자연속에서 첫 캄파가 태여났다.

멀지 않아 설미는 강력한 고순도항암제인 탁시놀을 두번째로 세상에 내놓게 된다. 자강땅의 모진 칼바람과 령하 40도의 혹한속에서 사시장철 푸르청청히 억세게 자라는 희귀식물의 비결을 인간에게 넘겨주기 위한 세계적인 발명이다. 설미가 미국의 최첨단의학연구소를 압도적으로 누를수 있는 고순도탁시놀을 만들어내면 대단하다. 태혁은 미국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배심있게 연구사업을 내밀고있는 설미의 견해도 찔러보았다.

《류설미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전적으로 찬성입니다.》

《다른 동무들은?》

태혁은 방안에 둘러앉은 매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금 일별해보았다. 한결같이 공감하는 낯빛들이였다.

《그럼 됐습니다. 오늘부터 기술발전위원회 위원장동무가 책임지고 대용식품연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시킵시다. 림성실동무와 류설미동무한테만 일임하지 말고 여기에 참석한 모든 동무들을 전부 인입시키시오. 늦어도 열흘후에는 내 책상우에 대용식품견본을 가져다놔야겠소. 다른 의견이 없으면 그만 합시다.》

그런데 며칠후 장관우가 찾아와 의자에 앉으며 제편에서 먼저 아는체 했다.

《일전에 대용식품문제를 토론했다면서요?》

《다른 방도가 없잖소.》

장관우는 쓰다달다 말이 없었다.

《왜 그렇게 함구무언이요?》

《내 오늘 만포에 가서 정신이 버쩍 드는 소식을 듣구 왔습니다.》

《뭔데 말해보오.》

《만포시 행정위원회 부위원장과 무역과장이 압록강의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만들고 도안의 식량을 해결하기 위한 굉장한 작전을 하구있습니다.》

《공동시장?》

태혁은 뜻밖의 말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예, 상대방의 개인업체가 투자하여 섬을 꾸리겠다고 하니 우린 쓸모없는 빈 땅뙈기를 내놓구 앉아서 톡톡히 외화를 벌어들일수 있답니다. 그들이 자기네 사람들이 시장에 들어오는건 매번 세금을 받으라고 한다는데 그 돈만 해도 약차하더군요.》

태혁은 의자에 듬직히 앉아서 침묵을 지켰다. 압록강의 한복판에 떠서 장마철이면 큰물의 위협을 받군 하는 통털어 열정보도 되나마나 한 섬··· 태혁은 조국해방전쟁때 고산진에서 최고사령부 친위병으로 복무할 때에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간혹 그쪽으로 다닐 때면 령길에서 잠간씩 그 작은 무인도를 눈여겨 바라보군 한다. 장관우의 말처럼 별로 쓸모가 있다고는 할수 없는 뙈기섬이였다.

《책임비서동무, 이건 변강무역에 대비할수 없는 큰 노다지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쬐꼬만 땅뙈기를 리용하여 식량문제도 풀고 발전소건설도 꽝꽝 내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태혁은 의연히 무거운 표정에 잠겨있었다. 장관우의 말처럼 돈을 벌자면 욕심이 나는 일이였다. 하지만 오늘과 같이 안팎의 정세가 복잡한 시기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벌려놓으면 그것을 교두보로 해서 무엇이 따라 들어올지 알겠는가. 사람이 돈에 환장하면 못하는 짓이 없다. 자본주의의 퇴페적인 생활풍조가 흘러들어 우리 인민의 건전한 의식을 좀먹지 않는다고 장담할 사람이 있는가? 몇푼 안되는 외화에 현혹되여 우리 당이 수십년동안 애써 키워온 사람들을 못 쓰게 만들면 누구도 그 엄중한 후과를 책임질수 없다. 항차 여기는 자강땅이다. 적들의 악랄한 경제봉쇄를 뚫고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판가리싸움이 벌어지고있는 전투장에서 과연 이런 일이 용납될수 있는가!

《이건 심중한 문제요.》

《아니, 수십년동안 쑥대만 자란 빈 땅을 유익하게 써먹는데 그렇게도 문제로 됩니까?》

《빈 땅이라구? 물론 우리 자강도엔 그런 섬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소. 그렇지만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내오는건 위험한 행위요!》

장관우는 숫제 입을 꾹 다물고 앉았다가 넌지시 물었다.

《듣자니 만포시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신망이 없긴 하더군. 책임비서동무도 정무원에서 일할 때 그 사람때문에 피해를 봤다면서요?》

태혁은 갑자기 눈길이 날카로와졌다. 장관우가 이미 지나가버린지 오랜 일을 들춰내며 지금에 와서 그때의 불쾌한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그건 왜 묻소?》

《한마디 해본 소리지요.》

장관우는 두리뭉실히 얼버무리고 덧붙였다.

《난 방금전에 책임비서동무가 대용식품문제를 의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는걸 겨우 참았군요. 우리가 지금까지 오죽이나 많은 풀을 뜯어먹었는가요. 단오전에 돋는 햇풀은 독이 없다고 닥치는대로 먹었지요. 가둑나무잎과 칡뿌리를 먹고는 뒤가 메여 죽을 고생을 하구요. 오늘 만포에 가니 소금까지 떨어졌더군요. 터놓고말해서 대용식품으로는 식량에 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어마어마하게 정치적으로만 분석하며 벌둥섬문제를 반대하는지 리해할수 없군요.》

장관우는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 정도로밖에 나타낼수 없는 일이 괴로운지 그만 움쭉 일어났다.

《내 그래서···》

창문을 마주하여 불안숨을 내쉬던 장관우가 성칼스럽게 돌아섰다.

《만포시 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무와의 지난 일을 물어봤던겁니다. 책임비서동무의 반대속에 그에 대한 불만이 섞여있지 않는가구 유치한 억측을 했지요.》

장관우의 솔직한 말에 태혁은 얼마간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는것을 느끼며 허구프게 웃었다.

《장관우부위원장이 칡먹구 뒤막힌 소리까지 탕탕 하구. 볼만 하오. 여보, 그렇게 투철한 일군이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벌려놓으면 사람들의 머리속에 쉬가 쓸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오? 장관우가 그만한 리치도 모를 아둔한 사람이요!》

장관우가 된 매를 맞고 뗑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말이 난김에 한가지만 더 묻기요. 난 장관우부위원장이 옹졸하지 않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구있소. 그런데 만포시 행정위원회 부위원장 허진규동무의 아들과 은희가 좋아하는건 왜 죽자꾸나 반대하오? 그 명철이란 청년이 대바르고 똑똑하다구 온 공장에 소문이 자자한데 말이요.》

태혁은 벌둥섬문제를 제껴놓고 젊은이들의 사랑이나 성사시킬 목적으로 숨돌릴 사이없이 다시금 공격을 들이댔다.

《허!》

장관우는 휘파람소리가 나게 냅다 웃었다.

《그 녀석이 우리 애한테 눈독을 들이는건 어떻게 아시우?》

《우리 집에 은희의 딱친구가 있잖소. 내가 부위원장의 까부라진 속을 모르는줄 아오? 총각은 욕심이 나지만 허진규동무와는 사돈을 맺기 싫다, 그게 아니요?》

《누가 그럽디까?》

《누구겠소. 은희의 애인으로 등장한 명철이지. 그 녀석이 나한테 와서 장관우부위원장이 큰소리를 치며 다녀도 졸장부라고 하더군.》

《망할 녀석같으니!》

장관우는 당장 명철의 뒤덜미를 잡아 혼내울것처럼 을렀다멨다.

《명철이가 똑바로 말했지. 장관우부위원장이 어디 허진규동무를 곱게 보는 사람이요? 제 속이 그러니까 남두 의심한단 말이요. 여보, 난 벌써 그렇지 않다는 보증으로 명철이와 함께 사진까지 찍었소. 내 오늘 말이 났으니 말인데 부위원장도 마음을 고쳐 먹구 공손히 딸을 주는게 좋을것 같소. 난 허진규동무가 지금은 벌둥섬문제를 들고다니지만 이제 자기 잘못을 알게 될거라고 생각하오.》

《결국 식량문제는 의연히 막연하군요.··· 터놓고 말해서 난 강재문제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김철에 사람을 보냈지만 보름이면 알쪼가 있다던 강재가 한달이 지났는데 옵니까?》

장관우가 한방망이 얻어맞은 앙갚음이라도 하듯 열변을 토했으나 태혁은 그의 말을 들은둥만둥 무슨 전화인가를 열중히 받다가 수화기를 귀에 댄채 움쭉 일어났다.

《그러니 벌써 니탄떡을 만들었단 말이요? 아니, 내가 가지.》

태혁은 부위원장과 옥신각신하던 말씨름질을 다 집어던지고 서둘러 방을 나서다가 그때까지 한본새로 뚝 버티고 서있는 장관우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여보, 뭘하오. 대용식품이 나왔다는데···》

얼마후 그들은 도기술발전위원회에 당도하였다.

위원장책상우의 접시들에 차려놓은 니탄떡을 진기한 물건처럼 넋없이 살펴보던 태혁은 성실을 돌아다보며 《이게 니탄으로 만든게 맞긴 하오?》라고 물었다.

얌전해 빠진 성실이가 입가에 손등을 대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책임비서동지, 맞습니다. 시중호의 니탄으로 만들었습니다.》

《진짜 니탄떡이란 말이지. 수고했소, 수고했소.》

태혁은 두말하지 않고 접시우의 검스레한 떡을 한개 집어 맛이 어떤지 제꺽 먹어보았다. 모두들 열심히 입을 놀리는 그의 얼굴을 긴장해서 지켜봤다.

《음, 꽤 먹을만 하구만! 》

《책임비서동지, 정말입니까?》

《암, 성실동무가 큰 일을 했소.》

성실이가 책임비서의 과찬에 어리둥절해진 모습을 보고 다들 유쾌히 웃었다.

장관우는 그제야 구미가 동하는지 니탄떡을 닁큼 집어들었다.

다음순간이였다. 그의 큼직한 입은 니탄떡을 넙적 베여문채 굳어지고 두 눈알만 데굴데굴 헛돌았다.

《부위원장동무, 왜 인상이 그렇소?》

《예?》

장관우는 갑자기 뭐가 잘못되였다는것을 깨닫고 쓴약 삼키듯 입안의 니탄떡을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더니 마지 못해 한마디 했다.

《괜찮구만. 감탕냄새가 좀 나긴 해두 쫀득쫀득한게.》

《부위원장동무가 괜찮다니 됐소.》

태혁은 여전히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집 식구가 둬끼 먹게 니탄떡을 종이에 꾸려달라고 부탁했다.

《우선 내가 먹어보고 별 탈이 없으면 그때에 인민들에게 공급합시다.》

그리고는 성실이와 류설미가 정성껏 싸주는 봉지를 받아들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가 나오다 보니 장관우도 슬그머니 성실의 옆구리를 툭 치며 자기한테도 한봉지 달라고 눈을 끔벅여보이고있었다. 태혁은 일부러 못본척 하고 복도로 나왔지만 가슴속이 훗훗해지는것을 느꼈다. 가끔 엇드레질을 하며 밉성을 부려도 역시 마음이 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얼굴에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