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3

 

제 4 장

3

 

리성하는 요즘 태혁이만 보면 무척 마음이 괴로와지군 한다.

지난해 스위스에 기술자대표단으로 갔을 때 그는 태혁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의 명령을 무조건 꼭 관철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것은 리성하가 자강도에 내려오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내뿜었던 말이였다. 최악의 조건에서 벌어지게 될 발전소건설은 태혁이가 집행할 과업이지 자기가 맡아할 일이 아니였다. 요란한 언사를 가리지 않았던 리성하의 심리속에는 자기는 한갖 방관자에 불과하다는 랭랭한 감정이 내포되여있었다. 그들 두사람사이에는 서로 다른 그러한 엄연한 계선이 그어져있었고 리성하와 태혁은 물우에 뜬 두개의 기름방울처럼 따로 갈라져 살아가게 될 별개의 존재였다. 그 기름방울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자기도 태혁이와 함께 자강도의 발전소건설을 책임지게 되였을 때에야 리성하는 차츰 초기의 감정과 흥분이 사그러져가면서 랭철히 타산하는 인간으로 돌변되는 자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가 두달전 입안의 침이 마르게 태혁을 고무격려했던것은 빈 말치레와 허위에 지나지 않았다. 리성하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가 고통스러웠으나 될수록이면 태혁의 앞에서 자기의 떳떳치 못한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전후사연은 어떻게 되였던지 그는 이전에도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대를 해산시켰던 사람이 아닌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은 이전의 건설대 부대장이였던 림준이였다. 그때 건설대가 해산되자 불구된 몸으로 찾아와 가슴을 치며 울분을 내뿜던 림준의 모습은 아직도 리성하의 눈에 선하였다. 리성하는 사나흘전 발전소건설지휘부에 들어갔다가 림준을 얼핏 보았으나 몸가짐이 거북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돌아서나왔다. 그가 한손에 꾹 눌러짚은 지팽이만 봐도 당장 자기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올것만 같아 적당히 자리를 피해버리였다.

옹근 이틀에 걸쳐 자강도안의 발전소건설장들을 돌아보고 말마우재골안에서 빠져나오는 지금도 리성하는 예전에 림준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오르며 마음속이 번거로와졌다.

리성하가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사업을 할 때였다.

어느날 그는 건설대가 한창 기세를 올리는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어지간히 놀랐다. 쉴참에 건설대원들이 발전소언제옆의 강기슭에 둘러앉아 오락회를 벌리는데 건설대 부대장 림준이 부르는 노래가 기딱막힌 명창이였다. 날씨 또한 얼마나 상쾌했던가! 한낮의 밝은 해살에 은구슬처럼 반짝이는 시내물이며 푸른 천연원시림, 그우로 젊은이의 청맑은 목소리가 류창하게 울려퍼졌다.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압록강 2천리에 노를 저어라

얼음장을 헤치면서 떼는 흐른다

 

세멘몰탈이 시허옇게 튕긴 작업복에 안전모를 삐뚜름히 눌러쓰고 건드러지게 뽑아내는 림준의 노래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흐물흐물 녹여냈다. 저 깨끗하고 청신한 목청, 풍만한 정서··· 건설자의 가슴속에서 그렇게도 맑고 우아한 선률이 울려나올수 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흥분한 리성하는 오락회가 끝나자 림준이와 만나서 당장 건설대일을 그만두고 련합기업소로 올라오라는 지시를 주었다. 그 시기 도적으로 기동선전대활동이 승벽내기로 벌어졌는데 자기네 써클이 번마다 다른 기관들에 눌리워 기분이 상해있던차에 마침 전도유망한 로동자가수를 발견한것이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림준이가 발딱 나자빠지며 건설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사코 버티였다. 건설판에서 아까운 재간을 썩이겠는가며 아무리 설복하여도 막무가내였다. 화려한 무대에서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는것보다는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자로 한생을 보람있게 총화하는것이 자기의 리상이고 포부라고 뻗대였다. 리성하는 그날 너무나 후끈 달아서 세상에 이런 밥통도 있는가며 발전소건설장을 떠나고말았다. 그가 두번째로 림준이와 만난것은 그 일이 있은지 2년도 퍼그나 지나 문암발전소건설장을 찾아갔을 때였다.

현장에 도착하자 건설대원들이 언제의 물막이공사에 필요한 돌을 채취하기 위해 산탁의 바위벼랑에 발파준비를 해놓고 홱홱 호각을 불어댔다. 잠시후 쾅쾅 요란한 폭음이 울리고 뽀얗게 피여올랐던 돌먼지가 서서히 걷히였다. 여기저기에 피신했던 건설대원들이 우줄우줄 일어나 발파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붕락된 돌은 얼마 되지 않았다. 폭약이 떨어져 다시 발파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그때 건설대 부대장 림준이가 정대로 돌을 채취해서라도 작업을 내밀자고 호소했다. 대다수 20대의 끌끌한 젊은 청년들로 무어진 건설대원들은 모두 림준의 말에 전적으로 호흥해나섰다. 리성하가 건설대 대장과 함께 발전소건설장을 료해하며 얼핏 바라보니 발파현장에서는 건설대원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함마를 휘둘러대며 채석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순간 갑자기 《돌이 무너진다. 피하라!》고 다급히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길을 멈춘 리성하의 낯빛은 창백해졌다. 움씰거리는 벼랑턱에 지레대를 박고 떡 버티여선 림준의 고함소리였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 리성하의 옆에 섰던 건설대 대장이 림준을 부르며 달려갔으나 부질없는 몸부림이였다. 어느새 림준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돌사태에 묻혀버렸다. 《부대장이 죽었다!》 누군가의 울음섞인 소리와 함께 《림준이!》하고 재차 부르짖는 대장의 웨침이 호곡처럼 인적없는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뒤미처 채석장으로 허둥지둥 달려간 리성하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여 건설대장의 팔에 안겨있는 림준을 보았다. 림준은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다. 리성하의 승용차로 즉시 도병원에 실려간 림준은 이틀만에 정신을 차렸지만 의사들은 그가 척추에 입은 상처를 보고 로동불가능이라는 치명적인 진단을 내리였다. 그날 리성하는 림준이가 련합기업소로 올라오라는 자기의 말에 고분고분 응했더라면 일생을 망치지 않았을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한달후 기적적으로 병원침상에서 일어난 림준은 쌍지팽이를 짚고 다시금 건설대로 찾아갔다. 더구나 놀라운 일은 그가 조금도 비관을 모를뿐아니라 이전처럼 휴식참이면 류창한 노래로 늘쌍 떠살이를 하는 건설대원들의 생활에 기쁨과 랑만을 안겨준다는것이였다. 그 보람찬 건설과정에 림준의 건강도 완쾌되여 그가 지팽이 하나를 버리고도 대지를 활보하게 되자 건설대원들은 떠들썩 연회를 차리고 젊은 부대장의 소생을 축하해주었다. 림준은 그후 건설대가 해산된 날 무서운 기상이 되여 리성하앞에 나타나서 중소형발전소건설은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인데 어느 놈이 함부로 줴버렸는가며 따지고들었다. 리성하도 젊은이의 무례한 행동을 가만 두지 않았다. 나라의 전력은 풍부하고 중소형발전소는 홍수에 파괴되거나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다른 도들에서도 건설을 중지하는데 굳이 자기에게 책임을 물을게 있는가, 당장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림준은 그를 무섭게 쏴보며 《가겠소. 그렇지만 당신들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을거요. 더러운 변절자들 같으니!》하고는 방에서 뚜걱뚜걱 나가버리였다···

리성하는 지금에 와서 건설대 부대장의 울분에 찬 말속에 담겨져있던 진실을 부정할수 없는 자신이 무척 괴로왔다. 그런데 이제 두번 다시 장군님께서 맡겨주신 과업을 집행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리성하가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강계에 도착하여 행정위원회로 찾아가니 장관우도 무슨 일이 언짢은지 자기 사무실에 찌뿌둥히 앉아있었다.

《수고했소.》

《뭐 수고랄게 있나.》

리성하는 의자에 힘없이 앉아 성깃한 앞머리칼을 조심스럽게 쓸어만졌다.

《여보게, 부위원장동무. 툭 터놓고 말해보오. 우리가 과연 전투목표를 해낼수 있겠소?》

장관우는 오래 생각지 않고 심드렁히 대답했다.

《하기야 하겠지.》

《어떻게 한다는거요. 자강도에 식량이 있소, 강재가 있소? 나흘동안이나 발전소들을 돌아봤지만 발전설비도 나올만 한데가 없소. 괜히 큰소리쳤다가 뒤를 꼬지 못하면 진짜 야단이요.》

리성하는 한바탕 심사가 뒤틀린 소리를 하고 장관우를 흘끔 치떠보았다. 장관우의 과격한 성미에 무슨 반응이 있을것 같은데 잠잠하였다. 그는 한참후에야 성문처럼 닫아맸던 입을 열었다.

《부부장동무, 누군 답답하지 않은줄 아오? 어디 걸린게 한두가지여야지. 속이 타는노릇이요. 내 보기엔 책임비서동무도 몹시 불안해하는것 같소. 그렇지 않다면 뭣때문에 도당선전부의 어린 녀성부원한테 강재를 해결할 과업을 주어 김철에 보내겠소.》

리성하도 그를 의아히 바라보았다.

《녀자가 강재를 해결한단 말이요?》

《래일 떠난다누만. 어방도 없는 일이요. 그 강재를 믿고 발전소를 건설하다니?··· 발전소건설이 뭐 아이들놀음이요?》

《안되겠소!》

리성하는 흥분해서 움쭉 일어났다.

《결정적으로 대책을 세워야겠소.》

《무슨 대책말이요?》

《장군님께서 비준해주신 전투목표는 변동할수 없지만 추가적으로 도움을 받을수 있는거야 왜 받지 못하겠소. 강재와 발전기들도 우에다 제기하면 얼마든지 더 받을수 있지 않소. 문암의 2 000kw발전기도 대안에 물리고 전력공업부문의 기술자들을 망라시켜 공사를 신심있게 내밀자는 생각이요.》

장관우는 바위돌처럼 웅크리고 앉아서 두눈만 끔벅거리였다.

《왜 말이 없소?》

《부부장동무의 주장대로 하면 발전소는 건설할수 있지만 우에다 너무 손을 내민다는 시시한 소릴 들을것 같소.》

《뭐 크게 손을 내미는게 있소? 29개 발전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요. 도에서 자체로 해결할수 없는건 국가적으로 도와주라는 장군님의 가르치심도 있지 않소?》

장관우는 여전히 무우를 먹고 체한 사람처럼 뜬뜬해 앉아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책임비서동무가 찬성하지 않을거요.》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어찌할셈이요. 장관우부위원장도 이젠 다됐구만.》

《바로 말한것 같소.》

장관우는 허파에 바람찬 소리로 허허 웃고나서 리성하의 주장을 대폭 함축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부부장동무, 이렇게 하면 어떻소. 중요한건 강재와 발전설비인데··· 강재문제는 책임비서동무가 김철에 사람을 보냈으니 둬두고 발전기만이라도 좀 더 보장받자는거요. 당분간은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는 문제도 고려하구. 지금 우리한테 평양전력설계사업소 원자력발전소설계가가 내려와있소.》

《누구요?》

《경수로문제때문에 여러차례 조미회담에도 참가하고 스위스에 기술자대표단으로도 갔다온 학자라오.》

《아, 리경훈선생. 그 선생이 어떻게 여기로 왔소?》

《경수로에 환멸을 느끼고 자진해서 자강도중소형발전소건설을 도우러 왔다오.》

《그렇소?》

리성하의 낯빛이 환히 밝아졌다. 뜻밖에도 자강도땅에 경훈이가 찾아온 일이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리경훈은 한평생 학문밖에 모르고 살아온 로련한 설계가였다. 사람됨이 고정하고 점잖기도 하거니와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의 초고압전문가이므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리성하는 대학시절에 가끔 경훈의 초청강의를 받았던 사람이여서 전력공업부의 책임적인 직위에서 사업하는 지금도 그를 선배와 스승으로 깍듯이 존대한다. 두뇌가 명석하고 다문박식한 경훈은 토목부문에도 해박하여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에 실질적인 방조를 줄수 있는 학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리성하를 기쁘게 한것은 경훈이가 내려옴으로써 아무때나 의사소통할수 있는 믿음직한 상대가 생긴 일이였다.

《리경훈선생이 찾아온건 정말 반갑소. 그럼 부위원장동무의 의견대로 우선 발전설비문제만이라도 건의하여 해결받도록 힘써보기요.》

《그렇게 합시다.》

장관우가 찌프렸던 얼굴을 펴며 뜨릉뜨릉 울리는 전화기를 당겨놓고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예. 장관우입니다. 부부장동무요? 방금전에 돌아왔습니다. 알겠습니다.》

장관우가 수화기를 도로 놓고 성큼 일어났다.

《마침 됐소. 책임비서동무한테서 온 전화요. 갑시다.》

장관우는 금방 리성하와 토론한 문제를 성사시키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조금후 태혁의 사무실로 찾아간 그는 기회가 타당치 않아서 자기의 의향을 인차 비치지 못했다. 그들보다 먼저 그 자리에 와있던 지휘부 종합분과의 림준, 도건설위원회 위원장, 리경훈이와 리성하사이에 한동안 인사말들이 오갔다. 리경훈이 도착한지 열흘이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그와 만난 리성하는 로설계가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경훈선생을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군요.》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가 열리게 될 땅이 아니요. 내 늘그막에 이 성스러운 전투장에서 인생전환을 하려고 찾아왔는데 욕망뿐이니 안타깝구려.》

리경훈이 자기의 다소 요란스러워진 말에 허허 웃었다. 리성하는 로설계가와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후 림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근 15년만에 다시 만난 림준이였다.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어느 놈이 중단시켰는가고 울부짖던 어제날의 건설대 부대장··· 오늘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장에서 그와 다시 만난것이 마치 곡절많은 인생행로를 걸어오며 이루어진 기이한 상봉같기도 했다. 리성하는 건설대가 해산된 날 림준이가 성난 얼굴로 자기 방에서 나가버릴 때 가슴속이 섬찍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았다. 그 건설대 부대장이 또다시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위한 전투에 결연히 떨쳐나섰다. 그러니 결국 림준의 아름다운 리상과 포부가 승리한 상봉인셈이였다. 리성하는 그것을 인정하기가 괴로왔지만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림준이도 지난일을 아주 잊어버린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마주 웃었다. 유별히도 이마가 넙죽하게 생긴 미남의 청년이 그동안에 겪은 인생고충을 말해주듯 그의 귀밑에도 흰 머리카락이 성깃성깃 섞여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것은 그가 짚고서있는 지팽이뿐이였다. 리성하가 림준, 리경훈이와 인사를 나눈후에야 태혁은 자기 책상우의 설계도면들을 들고와 응접탁우에 펴놓으면서 희열에 넘친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부부장동무와 부위원장동무를 오라고 한건 다름이 아닙니다. 오늘 지휘부성원들이 우리가 건설하게 될 발전소들의 구조물들과 살림집들의 설계를 완성하여내놓았습니다. 한번 보시오. 이번에 리경훈선생의 수고가 많았습니다.》

《저야 뭐 한일이 있습니까. 전 전적으로 찬성을 표시한것밖에 없습니다. 부부장동무, 어서 와서 보시오.》

리경훈이가 흥분해서 떠드는 바람에 응접탁앞으로 다가선 리성하는 아닌게 아니라 눈이 번쩍 뜨이였다. 이것이야말로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리상적인 발전소들과 살림집이로구나! 하고 환성이라도 올리고싶었다.

《어떻습니까?》

태혁의 물음에 리성하는 벌거우리해진 얼굴을 쳐들며 흥분해서 대답했다.

《조금도 의견이 없습니다. 오늘의 고난의 시기에 우리 기술자들이 가둑나무잎을 끓여먹으면서 이처럼 훌륭한 발전소들을 설계하였다는것이 놀랍습니다. 정말 눈물이 납니다. 난 이 설계들에서 적들이 우리를 압살하려고 날뛰면 날뛸수록 더 세차게 불타오르는 자강도사람들의 향토애, 조국애, 그 불굴의 힘을 보는것 같아서 기쁨을 금할수 없군요.》

리성하는 저도모르게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 자신을 느끼면서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였다. 옆의 태혁이도 시종 만족스러운 낯빛으로 서있다가 장관우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부위원장동무, 이걸 보니 힘이 솟지 않습니까?》

《예, 요란합니다. 요란해! 우리 자강도에 이렇게 으리으리한 발전소와 살림집들이 일떠선다니 대단합니다!》

태혁은 그들의 한결같은 의견을 듣고나서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내 생각에도 잘된것 같소. 이번에 우리가 건설하는 중소형발전소들은 도의 범위가 아니라 국가적인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데 그런 높은 요구의 견지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오. 모두 찬성이라니 지휘부에서 하루빨리 시공에 넘겨줄수 있는 부분설계를 다그쳐 마저 완성해야겠소. 이번주안으로 장군님께 발전소건설에 착수할 우리의 결의를 보고드립시다.》

《그런데···》

리성하가 금방 눈굽을 훔친 손수건을 바지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중요한건 공사를 원만히 보장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설계는 훌륭하지만 어디까지나 종이장우의 그림에 불과합니다. 책임비서동무도 알다싶이 지금 공사를 내밀수 있는 식량과 강재, 세멘트, 발전기 암질러 부족하지 않은것이 있습니까?》

리성하는 여기로 올 때까지만 해도 될수록 정면에 나서지 않을 마음이였지만 그렇게 손님격의 립장만 취해서는 일이 바로 될것같지 않아 적극적으로 나왔다.

《옳습니다. 걸리지 않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게 다 부족하오.》

《우에다 제기합시다.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은 장군님께서 구상하시고 직접 지휘하시는 중요한 대상이니만큼 발전기는 좀 더 보장받을수 있지 않습니까. 강계청년발전소에 가봤는데 문암의 2 000kw발전기도 문제입니다. 그 동무들이 15년동안이나 만들지 못한 발전기를 네댓달어간에 해결할수 있는 담보가 없습니다.》

리성하가 설득력있게 자기들의 의향을 상정시키는 바람에 할 말이 없어진 장관우는 긴장해서 태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혁은 심중한 낯빛으로 리성하의 제기를 받아들였다.

《부부장동무의 심정은 알만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서두르지 맙시다. 조급성은 금물이요. 난 대안에서 현재 보장하기로 된 발전기만이라도 제 날자에 보내주었으면 합니다.》

《책임비서동무의 생각이 그렇다면 할수 없군요.》

리성하는 혼자 속으로 (역시 담벽이로군!) 하며 흥심없이 덧붙였다.

《대안의 발전기는 걱정마십시오. 그건 내가 전적으로 책임질수 있습니다.》

《정말 그래주면 좋겠습니다.》

태혁이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지만 리성하의 울적한 기분때문에 어쩔수 없이 방안의 공기가 무거워질 때였다. 림준의 옆에 구부정히 서있던 리경훈이가 고개를 들며 리성하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부부장동무, 난 주제넘게 두분의 이야기에 간참하고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문암의 발전기문제와 관련해서는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 있기에 한마디 하겠습니다.》

리성하는 로학자의 말에 은근히 가슴이 띠끔해나는것을 느끼며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인가 리경훈은 대학초빙강의를 하다가 한 학생이 졸며 코고는 소리를 듣고 도중에 강당에서 나가버린 일이 있었다. 보통 자존심이 높고 의협심이 강하지 않은 리경훈의 얼굴에 그때와 비슷한 불만이 어둡게 비껴있었다.

《장군님께서 스위스에 파견되였던 대표단성원들과의 접견석상에서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목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실 때였습니다. 그날 대다수의 일군들이 자강도에서 국가의 도움이 없이 6개월동안에 29개 대상의 발전소를 완공할수 있겠는가? 이제 건설하느라면 더 손을 내밀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자강도 로동계급이 15년동안에 만들지 못한 문암의 2 000kw짜리발전기도 자체로 만들겠다고 결심한걸 봐선 그런 일이 절대로 없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은 앞으로 그들이 대용량발전소도 얼마든지 건설할수 있다는것을 시사해준다며 기뻐하시였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린 문암의 발전기를 꼭 만들어야 합니다.》

리성하는 말문이 막혀 몸둘바를 몰랐다. 태혁이며 림준, 방안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던 그는 그 무슨 변명이라도 하듯이 떠듬떠듬 말했다.

《난··· 그런줄은 몰랐군요.》

《알구 모르구가 있습니까. 부부장동무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판별해야지요. 난 여기에 온지 며칠 되지 않지만 부부장동무에 대한 기대가 무척 크다는것만은 잘 알고있습니다.》

로학자의 점잖은 말은 충고라기보다 자강땅사람들의 기대와 믿음에 어긋나지 않게 일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이였다.

조금후 그들이 돌아간후에도 장관우만은 방에 혼자 남아서 서성거리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따끔하게 할 말을 해야겠다고 단단히 벼르며 그가 얼굴이 벌개서 성급히 담배를 붙여물자 그만한 눈치를 채지 못할리 없는 태혁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이 있소?》

《난 책임비서동무가 부부장동무의 의견을 좀 참작했으면 합니다.》

태혁은 왕청같이 불쑥 내던지는 장관우의 부르튼 말에 어지간히 놀라면서 물었다.

《그거야 성하부부장동무가 리해한 문제가 아니요?》

《리해가 뭡니까. 책임비서동무가 너무 세게 나오니 불만이 있어도 벙어리 랭가슴 앓듯 하며 돌아갔지요. 그 사람이야 어디까지나 손님인데 피대를 돋궈대면서 아웅다웅 싸움질을 하겠습니까.》

장관우는 잔뜩 열이 올라서 태혁이와 언쟁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듯이 말하고 통짜배기로 들이대였다.

《누가 방조해주는것도 아니고 우리 자강도인민들이 발전소를 건설해야겠는데 사람들이 지금 어느 지경입니까. 하루 한끼도 먹지 못해 퍽퍽 쓰러지는 사람들을 데리고 뭘한단 말입니까. 우리 형편이 이렇게 막연하니 발전설비를 좀 더 보장받자는 말도 나오는거지요. 왜 그쯤한거야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세웁니까?》

태혁은 애당초 장관우가 속이 부걱부걱 괴여올라 내뱉는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알수 없는 뜬뜬한 태도였다. 한손으로 테굵은 안경을 밀어올리며 함구무언이던 그가 장관우의 부아를 돋구듯이 한참후에야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여보, 부위원장동무, 재삼 말하는데 우린 죽으나 사나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할 사람들이요. 다른 말이 필요없소.》

《책임비서동무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의 장두칠기능공이 굶어죽은 보고를 받고 찾아오셨을 때 책임비서동무도 눈물을 흘렸지요? 지금은 그때보다도 사람들이 더한 고통을 당하고있습니다. 어디 가나 굶주림에 얼굴이 퉁퉁 부은 사람들만 눈에 띄고 방랑아들이 씨글거리는데 정신이 있습니까. 도대체 책임비서한테 인민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 말입니다!》

장관우의 불을 내뿜는듯 한 항변에 태혁은 이것 봐라 하는 언짢은 태도로 눈섭을 찌긋하고 그를 마뜩지 않게 쏘아봤다.

《인민에 대한 사랑이라구? 말이면 아무 소리나 함부로 탕탕 해도 되는줄 아오? 여보, 이젠 그따위 엽쓸한 설교엔 구역질이 나오. 그래 굶주림에 쓰러지는 사람들에 대한 그 눅거리동정을 과연 사랑이라구 할수 있소? 내 말을 똑바로 듣소. 우린 서푼짜리 자선가가 아니라 혁명을 하는 사람들이요. 이 고난의 시기 사람들을 묶어세워 영웅으로 만들지 못하는 일군은 인민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소!》

태혁은 자기의 직권을 행사하며 장관우를 내리누르듯이 위엄있게 말했다. 하지만 장관우는 그에 못지 않은 배짱으로 목청을 높여가면서 만만치 않게 맞섰다.

《그건 비현실적인 말공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임비서동무, 우리 책임비서와 부위원장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툭 터놓고 말해보기요. 난 오늘 아침 강계시 주민들의 집을 돌아봤는데 한 집에서 세명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쓰러져있었소. 그래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몰인정하다는 가슴아픈 말을 들어야 하겠는가! 어디 한번 말해보시오.》

그때 갑자기 통나무 쩌개는듯 한 소리가 방안을 요란히 울렸다. 태혁이가 힘껏 부르쥔 주먹으로 옆의 책상을 꽝 내리치며 무섭게 고함을 질렀다.

《닥치시오! 난 그보다 더한걸 봤소. 한 집의 네식구가 살길을 찾아 네개방향으로 뿔뿔이 갈라져가는걸 봤단 말이요. 가슴이 터지는듯 했지만 난 그들을 막아나서지 못했소. 우리한테 무엇이 있소. 무엇이!··· 난 울면서 왔소. 그래 그런 사람들을 가만 내버려두면 사는가?》

태혁은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잡고 돌아서 또다시 책상을 꾹 눌러잡았다.

형언할수 없이 격심한 고통에 짓눌려 머리를 푹 떨군 그의 듬직한 어깨가 후두두 떨렸다. 순간 극도의 흥분으로 검붉은 반점들이 내돋은 얼굴을 다시금 버쩍 쳐든 태혁의 후려치는듯 한 말에 장관우는 그만 눈앞이 콱 흐려졌다.

《전쟁때 쓰러졌던 사람들이 총소리만 나면 다 일어섰소. 이 고난의 시기에도 마치소리만 울리면 다 일어설거요. 난 그걸 믿을뿐이요!》

《책임비서동무!》

장관우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태혁의 목을 꽉 그러안았다. 그 무슨 용서라도 빌듯이 두눈에서 쏟아져내린 뜨거운 눈물이 헤벌어진 태혁의 목깃속으로 흘러들었다. 태혁이도 마침내 장관우의 너럭바위같은 잔등을 껴안고 목멘 소리로 울부짖었다.

《부위원장!》

그들은 격렬한 론쟁끝에 둘다 울면서 힘껏 부둥켜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