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2

 

제 3 장

2

 

《저쯤에다 차를 세우오.》

북천강기슭의 큰길에 승용차를 세운 장관우는 한손을 옆구리에 짚고 삼봉산언덕받이에 제비둥지처럼 붙은 단층집들을 올려다 보았다. 이 근방 어디에 림준이네 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그는 누구한테 물어보면 정확히 알수 있을런지 몰라 잠시 두릿두릿 눈을 팔았다. 마침 몇채의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비좁은 골목길로 절룩거리며 올라가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한쪽엔 멜가방, 다른쪽 어깨에는 불룩한 망태기를 갈라멘 그의 걸음새가 눈에 익어 자세히 바라보니 그가 바로 림준이였다. 장관우는 한참 부지런히 그를 뒤쫓아 올라갔다. 사오십평가량의 꽤 넓은 터밭이 달린 단층집마당안에 들어선 림준은 어깨의 멜가방과 망태기를 퇴마루에 벗어놓으며 《여보!》하고 큰소리로 안해를 불렀다. 집안에서 급히 달려나온 체소한 녀인이 망태기를 헤쳐보며 반색을 했다.

《아니 어디서 산나물을 이렇게도 많이···》

《오늘은 대응산에 갔던김에 품 놓구 뜯었지.》

요즘은 식량이 바른 때여서 뉘집에서나 푸성귀로 때식을 보태며 근근히 살아간다. 림준이도 그 망태기안의 산나물이 큰 량식이나 되는것처럼 히죽이 웃으며 어망결에 장관우가 서있는쪽을 피끗 돌아다보았다. 무슨 일로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갑자기 자기 집으로 찾아왔는지 짐작 못할리 없는 림준은 별로 반가와 하는 기색이 없이 어줍게 인사말을 건늬였다.

《부위원장동지가 어떻게 우리 집엘 다 오셨습니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림준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시큼하게 풍기였다. 어느 집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온 사람의 행색이였다. 그렇지 않으면 뭣때문에 멀쩡한 대낮에 산에 가서 술마셨겠는가.

《한잔했구만.》

《예, 마셨지요··· 들어갑시다.》

림준은 토방에 외지팽이를 세워놓고 장관우를 방안으로 모셔들이며 량해라도 구하듯 말했다.

《안됐습니다. 우리 집 꼬락서니란게 루추하기 짝이 없습니다.》

《뭐라오. 지금은 이런 집에서도 마음만 굳게 먹고 고난을 뚫고나가면 장땅이요.》

《그렇지요. 집 뜯어먹구 살겠습니까.》

림준이네는 워낙 강계시의 중심지인 부창동아빠트에서 살다가 터밭을 보고 단층집과 세번씩이나 바꿔치기를 하며 밀려온곳이 여기 류동 한끝의 가파로운 산비탈이라고 했다. 터밭농사로 근근히 식량을 보탬하며 살아가는 가정이다보니 마당엔 정성껏 가꾼 가을남새와 당추, 줄당콩넝쿨이 우거졌지만 집안은 도배지도 미처 바르지 못한 토벽이 시뻘겋게 드러나있었다. 우그러든 모자채양처럼 볼품없이 드리운 처마, 반나마 허물어진 토방···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둔듯 한 그 모든것들에서는 림준이네 일가가 겪고있는 각박한 생활의 실상이 가슴아프게 안겨왔다.

혹시 이것이 생활난에 쪼들려 예전의 건설대부대장 면모를 잃어버린 림준의 흐리터분한 정신상태를 보여주는것이 아닌지··· 림준이가 몇번씩 련락을 받고도 발전소건설지휘부에 나타나지 않는걸 봐선 자기의 예측이 틀림없는것 같았다.

《림준동무, 지휘부엔 왜 나오지 않소. 동무도 우리한테 어떤 중요한 과업이 떨어졌는지 알지 않소?》

림준은 숫제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널직한 이마에 하관이 빠를사한 얼굴의 두드러진 코날, 예리한 눈길··· 그는 어느모로 보나 예민하고 강단있게 생긴 사람이였다. 림준의 두눈에서 영문모를 눈물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저기 대응산꼭대기에는 (림준은 열려진 문밖으로 한팔을 힘있게 내뻗쳤다.) 자강도중소형발전소건설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친 건설대 대장이 잠들어있습니다. 일년열두달 가정을 떠나 발전소건설장들에서 뜨내기생활을 하다보니 그의 젊은 안해는 갓난 아들을 업고 달아났습니다. 안해의 버림을 당하고도 건설대 대장은 대원들을 제 식솔처럼 아끼며 변심없이 발전소건설을 위해 헌신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죽은 후 묘에 찾아다니면서 술을 부어줄 혈붙이 한명 없었지요. 그래서 저희들이 저 높은 산정의 바람세찬 철탑밑에 묻어줬습니다. 한생을 발전소건설에 바친 건설대 대장이여서 우리 도의 철탑선로공들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요. 이따금 철탑순찰을 다니는 선로공들이 대장의 묘를 벌초하고 술이나 붓게··· 부위원장동지도 우리 건설대대장이 저 산마루우에 누워있는걸 알지요? 그러나 벌써 그를 잊었지요? 그래 우리 건설대 대장이 다시 살아나면 발전소건설에 나설것 같습니까?》

림준은 취기가 올라 시뻘겋게 피진 눈으로 그를 지릅떠 보았다. 너무도 뜻밖의 공격을 당한 장관우는 말문이 막혀 《어험-》하고 헛기침을 내깇었다.

장관우는 정말 그때의 성실한 건설대 대장에 대해 감감히 잊고 지냈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꼬깃꼬깃 구겨진 손수건을 꺼내여 어느새 축축이 젖어버린 눈굽을 훔치던 림준은 지난 시기 발전소를 건설하며 자신이 체험한 가슴아픈 일들을 다시금 눈물겹게 토로했다.

열아홉살에 고중을 마치자 허름한 배낭을 지고 동신군 생리발전소건설장에 진출한 림준은 일년만에 건설대 부대장으로 발탁되여 맹활약을 한 자강도의 첫 중소형발전소건설자였다. 그때 건설대는 하나의 발전소를 완공하면 전기불이 환히 켜진 정든 마을과 헤여져 천막과 화식도구들을 소달구지나 발구에 둥덩산같이 처싣고 다시금 천고의 원시림이 설레이는 어두운 골짜기로 깊숙이 찾아들어갔다.

로동당시대의 광명을 끌어오는 사람이란 남다른 긍지와 자랑!··· 그 값높은 영예로 심장을 불태운 보람찬 건설의 나날 림준은 뚜껑에 《산정의 랑만》이라고 멋들어지게 휘갈겨 쓴 일기장의 자작시를 휴식참에 자주 읊어 《건설대의 청년시인》으로 소문났지만 장차 시인이 되고픈 욕망은 전혀 없었다.

단지 건설대원들이 누리는 창조의 기쁨과 희열이 갈피갈피 뜨겁게 스며있는 일기장이였기에 늘쌍 배낭안에 소중히 넣어가지고 외진 산골로 찾아다니였다. 그는 문암발전소공사때 돌사태에 깔려 불구의 몸이 되였지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스물다섯의 애젊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지팽이를 짚고도 발전소건설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기쁨때문에 웃으면서 병원문을 나섰던 건설대 부대장··· 림준은 그후 중소형발전소건설의 중단으로 건설대가 해산된 날 가슴을 치며 울었다. 아, 그러니 나한테 남은것이란 무엇인가? 이 병신된 몸뚱아리뿐인가! 반질반질 손때가 묻은 림준의 지팽이에는 그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생이 서글프게 찍혀있다. 그 가실길 없는 마음속 아픔, 괴로움을 리해해 준 사람도 너무나 적었다.···

장관우는 벌써 여러해동안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며 언제한번 림준의 생활에 관심한적이 없었던 자신을 면구스럽게 느꼈다. 지난해 겨울의 어느 눈보라치는 날 승용차를 타고 가다보니 림준이 시허옇게 얼음버캐가 깔린 미끄러운 길로 지팽이를 내짚으며 절뚝절뚝 걸어가고있었다.

그런데 장관우는 자기 차에 림준을 태워주지 않고 휙 스쳐지나갔다. 장관우는 지금에 와서야 자신의 무정한 처사를 후회하게 되는 일이 여간 민망스럽지 않았다.

《여보 림동무, 동무 말을 듣고보니 가책되는바가 많소. 하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이구 당장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한몫 해야잖소. 오늘 전력공업부 성하부부장도 내려와서 이번 일엔 동무만 한 적임자가 없다구 해. 동무에 대한 기대가 크단 말이요.》

《흥- 리성하부부장?》

림준은 갑자기 쓴웃음을 탁 터뜨렸다.

《그 사람말은 하지도 마시오. 구역질이 납니다. 이전에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을 망친 장본인이 누굽니까. 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이였던 리성하였지요?》

《동무! 그때야 다른데서도 중소형발전소가 전망이 없다고 관두던 때가 아니요. 괜히 고망년적 문서장을 들춰내며 엇드레질 말구 공손히 지휘부에 나오라면 나오는게 좋소. 하루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른다구 이게 어떤 과업인지 알기나 하오!》

장관우는 그만큼 설복했으면 알아들어야 할 림준이가 조금도 수그러드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꽥 소래기를 질렀다. 늘쌍 그가 《한 옥타브》 낮추지 못해서 손해를 보군 하는 성미때문에 이날 림준의 울화를 벌컥 돋구었다.

《그래 어버이수령님께서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하라고 가르치신 말씀은 중요하지 않아서 중도에 집어던졌소? 지금 그때 건설하다 팡가친 발전소들이 어떤 꼴이 됐는지 알기나 합니까? 별하발전소는 돼지우리로 쓰고있소! 그런데도 누구보구 큰소리요. 당신들이 하는 일이란 죄다 이렇게 뻔뻔스럽단 말이요. 공손히 지휘부에 나오는게 좋다구요? 천만에!》

림준의 천둥같은 소리에 눈이 둥그래진 장관우는 그만 뒤로 닁큼 물러앉았다.

아직 술기운이 깨지 않은 사람이 무슨 분별없는 행동을 할런지 몰라 황급히 진정시켰지만 림준은 그의 손을 홱 뿌리쳤다.

《제 말을 마저 들으십시오. 난 엊그제 우리 건설대 대장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의 안해가 업고 달아난 아들말이요. 분명 그때의 그 아들이였지만 난 너의 아버지가 우리 건설대 대장이였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왜? 그에겐 다른 아버지가 있단 말이요. 아버지 아닌 가짜 아버지가! 난 그래서 오늘 저 대응산의 건설대장묘에 가서 술을 붓고 〈대장, 대장의 아들과 만났는데 난 모르는척 했소!〉 하구 용서를 빌었습니다.

부위원장동무, 이 마음속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본적이 있습니까? 우린 자강도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위해 자기의 피와 땀, 자기 인생의 귀중한 모든것을 다바친 사람들이요. 그걸 누가 집어던졌소? 당신들 일군들이 아니였는가? 보기도 싫소. 옳자면 남들이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집어던져도 우리는 끝까지 했다고 말할수 있어야지 않소. 돌아가시오. 당신들을 보면 눈에서 불이 인단 말이요!》

무서운 기상이 되여 와닥닥 일어난 림준은 너무도 분통이 터져 토방에 벗어놓은 장관우의 구두를 집어던지였다. 그바람에 기절초풍하여 방안으로 달려들어온 림준의 안해가 와락 눈물을 쏟았다. 잠간사이 란장판이 된 집안을 아연해서 지켜보던 녀인은 장관우가 움쭉 일어나자 얼른 밖으로 뛰여나가 남편이 내던진 구두를 급히 들고왔다. 장관우는 녀인이 치마자락으로 구두에 묻은 흙먼지를 닦으며 흐느껴우는 모습을 보자 어쩐지 처량한 생각에 눈굽이 젖어들었다.

《아주머니, 마음놓으시오. 주인한테 잘못이 없으니··· 이게 다 우리가 일을 쓰게 못한 후과입니다.》

《그래두 그래두··· 어쩌면 이럴수가 있어요. 지난 밤 한잠두 자지 않구 산으로 떠나더니만 글쎄 이런 일이···》

장관우는 녀인의 말을 듣고 더구나 눈물이 콱 솟구쳐올랐다. 벽에 맥 놓고 기대여앉은 림준의 눈에도 뜨거운것이 번지르르 감돌았다.

《여보, 림동무. 래일 지휘부에 나오지 않으면 또 올테니 그리 아오.》 하고 장관우는 림준이네 집 대문밖으로 나섰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심기가 좋지 않아 보온병의 랭수를 연거퍼 두 고뿌나 꿀꺽꿀꺽 들이켰다. 림준의 집에 찾아가서 톡톡히 망신한 생각을 하면 아직도 머리속이 지끈지끈해 났다.

그가 무슨 곤욕이라도 치른것처럼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데 방으로 리성하부부장이 찾아왔다.

《앉게. 부부장이 우리한테로 이렇게 내려올줄은 몰랐구만.》

장관우는 오래간만에 옛 친구와 마주앉자 친절히 말을 건늬였다.

《어머니는 만나봤소?》

《만났네. 여전하시더군. 자네가 잘 도와준 덕분일세. 난 명색뿐이고 아들구실을 자네가 하는셈이요.》

《괜한 소리 말게.》

장관우는 팔을 내저었다. 그는 리성하와 만날 때마다 번번이 미안해하는 말을 듣군 하는 일이 옹색했다.

《내가 뭐 도와드린게 있소?》

장관우는 지금까지 여러해동안 평양에 올라가 있는 리성하를 대신하여 그의 어머니 집으로 찾아다니며 생활상 불편이 없도록 힘써주면서 친구다운 도리를 지켜왔을뿐이였다.

《어머니는 집이랑 멀끔하게 고쳐줬다면서 부위원장이야기를 많이 하더군.》

장관우는 그 말에 어쩔수없이 허허 웃었다.

《집말이요? 글쎄 지난 봄에 자네 모친한테 가서 실없는 소릴 한마디 했다가 혼났소. 이젠 년로하여 작년이 다르고 금년이 다른데 평양의 아들집에 올라가시는게 어떤가구 했더니 대뜸 서운해 하는 기색을 보이며 〈부위원장이 내 시중을 들기가 힘든게로군.〉 하질 않겠소. 난 급해맞아서 그런게 아니라구 했지만 어디 말을 들어주오. 그 이후로는 콩쪼각 하나도 받지 않구 거절하더군. 그래서 매번 진땀을 흘렸소. 난 어떻게 하면 늙은이의 오해를 풀어드릴가 하고 며칠 궁리하다가 바로 그 집수리를 시작했소. 주택보수사업소의 황소같은 친구들을 붙여 한 열흘동안 번듯하게 고쳐놓고 〈어머니, 이 집에서 오래오래 장수하며 사시우다.〉 하자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날 자네 모친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한테 술을 부어주던 일이 아직도 눈에 서물서물해.》

리성하는 잠시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고나서 《어머니한테는 이 고향땅이 제 살점처럼 소중했는데··· 내가 그 마음을 너무나도 늦게 깨달았으니 죄스럽소···》 하고 나직이 뇌이였다.

《그 일은 그렇구 부위원장동무, 지금 지휘부에서 장군님께 올릴 문건을 작성하고있는데 좀 고려하여야 할것 같소.》

《고려라니?》

장관우는 예상외의 말에 그를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였던 리성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 문건이 비준되면 우린 6개월동안에 29개 대상의 발전소들을 완공하여야 하네. 과연 가능한가 말일세. 이전엔 국가에서 발전소건설에 필요한 설비들과 자재를 보장해주었지만 이번의 중소형발전소는 알짜 자력갱생으로 건설하자는것이 장군님의의도이네.

게다가 엄혹한 식량난과 강추위속에서의 동기전투··· 이건 심중한 문제요.》

장관우는 담배를 붙여물었다. 뭉글뭉글 피여오르는 담배연기와 리성하의 주장을 무시할수 없는 착잡한 생각이 한데 엉켜돌았다. 발전설비와 자재, 식량난 등 곤난한 일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난관은 발전소건설을 담당하게 될 공장, 기업소들의 어려운 실태였다.

지금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국가계획을 못해 쩔쩔 매는데 6개월동안에 29개의 발전소를 완공해 내겠는가? 무작정 냅다 몰면 발전소는 건설해도 공장의 생산은 완전히 죽어버릴수 있었다.

《강태혁책임비서동무와는 의논해 봤소?》

《관뒀네. 오자마자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겠소. 부위원장동무가 주인의 립장에서 책임비서와 진지하게 토론했으면 하네. 문건을 올리면 때가 늦어.》

장관우는 재털이에 담배를 힘주어 눌러껐다.

《알겠네. 좀 생각해 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