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

 

제 3 장

1

 

태혁을 만나고 도당정문을 나선 명철은 범잡은 포수와도 같은 마음이였다.

명철은 공장으로 돌아오자 여봐란듯이 웃통을 활활 벗어던지고 일판에 뛰여들었다. 숨돌릴 사이없이 불이 번쩍나게 일을 조겨대는 그의 날랜 솜씨에 제관공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요즘 제관장에선 명철이밖에 쳐다볼만한 사람이 없었다.

제관공일이란게 오죽이나 험한가. 언제봐야 두터운 쇠판을 자르고 두드려붙이는 제관작업은 웬간히 뚝심이 세지 않고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쌍 명철이가 힘든 일을 도맡아하는데도 안타깝게 잔뜩 쌓이기만 하던 일감이 하루사이에 눈에 띄게 푹푹 자리가 났다.

저 녀석이 오늘 필경 무슨 일이 있었군! 그가 세괃게 일을 제끼는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리는 사람들이 그렇게 쑥덕거려도 명철은 귀먹은 사람처럼 아예 들은체 하지 않았다. 워낙 일손을 잡으면 말수가 적은 그가 이따금 함마를 거머잡고 머리우로 휘둘러댈 때면 온 제관장이 통채로 뒤흔들리는것 같았다.

명철은 이날 종일 혼자서 제관장의 밀린 일을 축낸 후 바깥의 수도꼭지를 한껏 틀어놓고 그밑에 엎드려 어푸어푸 입바람을 불었다. 하루일을 마치고 찬물로 땀난 잔등을 적실 때의 쾌감은 제관공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다. 그래서 명철은 제관공이랍시고 제멋에 겨워 우쭐대는지 몰랐다. 그의 미끈거리는 몸뚱이에 내돋은 땀방울을 씻어내면서 수도물은 목덜미우로 좔좔 흘러내리였다.

명철은 한참이나 달아오른 몸뚱이를 식힌 후 꺼꺼부정히 엎딘채 꽁무니에 찬 수건을 뽑아 젖은 가슴팍을 문지르다가 얼굴을 들며 피씩 웃었다.

뜻밖에도 옆에 와서 조용히 눈웃음을 짓고 서있는 현이를 알아본것이였다.

《이거 현이동무가 어떻게···》

명철은 덤볐다치며 급히 작업복을 주어입었다.

현이가 제관장에 나타나는 일이란 좀처럼 드물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찾아왔는지 알수 없었다.

《명철동무, 어제밤 은희를 왜 울렸어요?》

은희와 대조적인 현이의 그 나무람이 섞인 목소리는 여간 차분하지 않았다.

명철은 갑자기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런지 알수 없었다. 은희가 깜찍하게 벌써 고해바쳤군! 하는 생각만이 그의 머리속에서 맴돌았을뿐이였다.

《내가 울렸나. 한매 되게 얻어 맞았지.》

명철은 자기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그의 거칠면서도 인정미가 슴배인 말에 현이는 약간 입을 삐죽해보이고 송곳이를 드러내며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동문 언제봐야 직통배기군요. 은희한테 말이랑 따뜻이 하면서 아껴줘요. 은희가 동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요?》

이럴 때 보면 현이는 철저히 은희의 편이였다.

《알겠소. 내 죽을 때까지 현이동무의 충고를 잊지 않지.》

명철은 짜장 사내답게 말하고 벙긋 웃었다.

《됐어요. 난 바빠서 그러는데 빨리 옷을 갈아입고 은희한테 가봐요. 동무들이 늘쌍 남몰래 만나군 하는 장소가 있잖아요. 오늘은 은희와 만나서 그애가 섭섭해하는 마음을 말끔히 풀어줘요. 그럼 난 가요.》

현이는 한손을 살짝 쳐들어보이고 돌아섰다. 어려서 예술체조를 배우며 세련된 탄력있는 발걸음으로 콩튀듯 저만큼 멀어져가던 현이는 또 한번 명철을 돌아다보면서 생긋 웃었다. 참말로 다정하고 고마운 현이였다. 은희와 자기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곡 제관장에 잠간 들렸다가 저렇게 가군 하는 현이가 아닌가! 그래, 오늘은 현이가 당부한대로 은희와 만나서 노여움을 싹다 풀어줘야지. 하긴 내가 은희앞에서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동했던가. 일생 두번다시 그런 일이 없을것이라고 말해주자!

명철은 조금후 외출복을 갈아입고 나와서 해가 떨어지는 맞은켠 산마루를 쳐다봤다. 은희를 만나기에는 아직 날이 훤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공장구내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차츰 성기여져갔다. 그제야 명철은 느려빠진 걸음으로 공장정문을 천천히 나섰다.

오늘은 은희가 자기와 만나서 뭐라고 할가? 보나마나 아직도 어제밤 일로 앵돌아져 새침하게 대할거야··· 명철은 이런저런 궁냥을 하면서 예술학원앞도로로 혼자 터벌터벌 걸어가다가 갑자기 등뒤에서 울리는 승용차의 경적소리에 나자빠질듯 하며 길옆으로 비켜섰다. 무슨 놈의 차가 간 떨어지게 사람을 놀래우는가 싶어 마뜩지 않게 흘깃 돌아다보았다. 순간 명철은 저도 모르게 우뚝 굳어졌다. 옆에 와 멈춰선 승용차 문을 열고 뜻밖에도 태혁이가 내렸다.

《명철이, 퇴근하는 길이요?》

《예. 책임비서동지, 안녕하십니까?》

오늘아침 금방 태혁이와 만났던 명철은 도당책임비서동지가 무슨 일로 또다시 차를 세웠는지 알수 없어 어리둥절히 인사했다.

그러나 태혁은 그때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처럼 발뒤꿈치를 딱 붙이고 긴장히 서있는 그의 아래우를 찬찬히 훑어봤다.

《괜찮아. 제대군인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걸··· 요즘 무슨 일을 하오?》

《늘쌍 하느니 그 식으로 쇠판을 주무르면서 씨름질입니다.》

《음. 동무네 공장에서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돌격대를 조직한단말 들었소?》

《예! 알구 있습니다.》

태혁은 빙긋이 미소를 띠우면서 인정겹게 물었다.

《명철이, 다들 장군님의 명령관철에 떨쳐나서는데 발전소건설장에 나가서 한개 중대를 맡아보지 않겠소?》

예상밖의 말에 당황해하던 명철은 도당책임비서가 신임해주는 일인데 못할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기운차게 대답했다.

《할수 있습니다. 책임비서동지, 한개 대대라도 맡겨주십시오. 자신이 있습니다!》

《좋소. 듣자니 벌써 은희는 처녀중대를 맡게 된대.》

《은희가요?》

명철의 눈이 뎅그래졌다.

《왜. 은희가 그렇게 얕보여? 괜히 우쭐렁대지 말라구. 까딱하면 짝질수 있어. 은희한테 져서는 장관우부위원장을 꺾지 못해. 발전소건설장의 중대를 맡고 요란하게 소문을 내보라구.》

태혁은 사랑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명철의 심장에 그렇게 불길을 지펴주고 다시금 차에 올랐다. 명철은 그제야 태혁의 말에 담겨있는 진심을 깨닫고 어느새 멀어져가는 승용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자리에 말뚝처럼 지켜선 그의 입은 굳게 다물려있었지만 울렁거리는 마음속에선 《책임비서동지 고맙습니다!》라는 웨침이 뜨겁게 소용돌이쳤다. 도당책임비서가 이렇게 나서서 자기들의 사랑을 적극 떠밀어주는데 두려워할것이 무엇인가? 명철은 갑자기 가슴속이 북치듯 세차게 두근거려나는 기쁨을 안고 은희가 기다리는 고정된 자리, 북문교 아래의 어스름이 깃든 유보도를 향해 힘차게 뛰여갔다.

한그루 수양버들이 치렁치렁한 가지를 드리우고 하늘거리는 강변에 은희가 홀로 호젓이 서있었다.

명철은 그리로 헐떡헐떡 달려가면서 《은희!》 하고 소리쳐 불렀다.

은희는 분명 그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겠는데 돌아다보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아 왕모래처럼 성격이 서글서글한 처녀가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았는가? 제가 만나자 하구선! 은희도 한창 나이의 처녀니까 비싸게 노는거겠지. 할수 없군. 오늘은 내가 기분전환을 시킬수밖에···)

명철은 은희의 등뒤에 가서 두팔을 내밀어 처녀를 가볍게 덥석 들어올렸다.

그바람에 까무라칠것처럼 깜짝 놀란 은희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러건말건 은희를 한바퀴 휘 공중으로 돌리고 땅바닥에 도로 내려놓은 명철은 제풀에 허허 웃었다.

《이건 뭐예요. 창피스럽게!》

은희는 반항하듯 종주먹을 쳐들고 달려들었다.

《은희, 나는 화해하자는거요. 제발 그 무서운 주먹은 내리우라구.》

《에- 밉광스럽다는건!》

《내가 그런줄 몰랐소? 어제밤에 그만치 눈물을 흘렸으면 이젠 좀 웃지 뭐.》

은희는 그의 넉살스러운 말에 참지 못하고 입가에 손등을 가져다댔다. 은희는 웃고 명철은 마침내 후 숨을 길게 내쉬였다.

《이젠 좀 걷기오. 은희, 나 오늘 아침 도당책임비서동지와 만났댔소.》

《네? 그래 뭐랬어요.》

은희가 량미간을 쪼프리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방 들이댔지. 우리 사랑을 지지해달라구. 전적인 찬성이라더구만.》

명철은 뽐내듯 말했다.

《어마나, 그런 일로 현이아버지와 만나다니?》

은희는 싫다는 소리인지 좋다는 소리인지 종잡을수 없게 말하고 명철을 따라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었다.

《명철동무, 우리 아버진 날 보구 뭐랬는지 알아요? 코흘리개래요.》

《뭐?》

명철은 그만 웃음을 탁 내뿜었다.

《그까짓건 큰 문제가 아니예요. 난 오늘 주병호지배인동지와 만나서 발전소건설장에 처녀돌격대중대를 뭇자고 제기했어요. 지배인동지가 처음엔 신통치 않은지 시물시물 웃더니만 갑자기 흥분해서 그럴듯해! 처녀돌격대원들이 본때를 보이면 풀어놓은 망아지같은 사내녀석들이 창피해서 건달을 부리지 못할거요. 한데 처녀들이 남자들처럼 바위들도 까고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일할수 있을가 하구 걱정하길래 자신있다고 대답했더니만 글쎄··· 좋소, 아주 좋아! 대담하게 처녀중대를 조직하자구. 중대장은 동무요! 하질 않겠어요.》

《그래?》

명철은 이미 은희가 발전소건설장의 처녀중대를 맡게 되였다는것을 알고있었어도 우정 모르쇠를 했다.

처녀중대라, 말은 엇구수한데 은희가 장담하는것처럼 맥을 추겠는가. 까딱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지··· 사실은 아짜아짜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래 뭐라고 했소?》

《지배인동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지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겠다? 동무가 과연 중대장을 할수 있겠소?》

《하면 하는거지요. 못할건 뭐예요. 내가 뭐 명철동무가 입에 떠넣어주는 밥이나 먹으면서 호강할 녀자인가요? 아버진 간부이지만 나는 당당한 로동자예요. 아버진 아버지이고 딸은 딸이란 말이예요. 난 날보구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 딸이라며 호부자집 자식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요. 그래서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현이와 약속하구 로동현장에로 나왔던거예요. 이제 두고보라요. 내가 돌격대중대장으로 발전소건설장에서 본때를 보이면 우리 아버지의 견해도 달라질거예요. 지금은 날 보고 코흘리개라며 호통질을 했지만 어림도 없어요. 나한테도 자기의 리상과 꿈, 포부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이 딸을 믿고 너 좋을대로 하라고 하면 우린 성공이예요!》

은희의 영채가 감도는 두눈은 자기를 믿고 자기 생활을 락관하는 녀성들한테서만 찾아볼수 있는 기쁨과 환희로 빛났다. 명철은 사랑도 생활도 자기 힘으로 가꾸고 아름답게 꽃피워나가려는 은희앞에서 너무도 볼꼴없이 납작해지는 자신을 창피스럽게 깨닫고 허구프게 웃어보였다.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문문해 보여요?》

《아니··· 난 처녀중대란 말이 너무 귀맛이 동해 그래. 이 조용하고 침울한 강계시에서 처녀중대란 이름도 유별난 중대가 활개치며 돌아가면 볼만하겠소.》

《그래요. 우리 강계는 너무도 조용해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웃음소리도 들을수 없고 사람들도 활기가 없이 다녀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예요. 우리 중대가 이 도시우에 드리운 무거운 정적을 깨뜨려버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은희가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는 바람에 명철은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나는것을 느꼈다.

《이제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사처에서 발전소건설전투를 벌리면 강계시도 달라질거요. 어디서나 노래소리가 울리고 법석 떠들며 흥성거리겠지.》

명철은 이날밤 은희와 여러가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래도록 강변을 거닐었다. 헤여질 때에는 명철이가 은희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밤늦게야 합숙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튿날 오후 은희가 밝은 얼굴로 제관장에 찾아와 그를 밖으로 끌어내더니 가만히 말했다.

《명철동무, 정문에 어머니가 찾아왔어요.》

명철은 뜻밖의 소식을 듣고 사랑하는 처녀앞에서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 몰라했다. 세상에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부모보다 더 귀중한 사람이 있는가.

그러나 명철은 제대되여온지 1년이 넘도록 자기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누르고 불효자식처럼 살아간다. 명철은 자신도 걷잡을수 없이 이지러져가는 마음을 어떻게 돌려세우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은희와의 사랑이 겪고있는 곡절도 기실은 자기 가정의 불행에 근원을 두고있지 않는가. 명철의 가슴속에서는 안타깝게도 부모들에 대한 원망만이 나날이 커갈뿐이였다. 은희는 눈치가 무딘 처녀가 아닌데도 명철의 그런 괴로운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것같지 않게 저혼자 즐거움에 차서 종알거리였다.

《전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명철동무의 어머니라니 말이예요. 젊고 생김새도 꼭 예술인같더군요. 말씨랑 얼마나 고운지. 우린 한참이나 재미나게 이야기했어요.》

《무슨 말?》

《동무에 대해서요.》

은희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우며 발쭉 웃었다.

《명철동무가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며 친한 처녀랑 있는가고 꼬치꼬치 캐여묻더군요. 난 사실대로 제관공일을 하는데 애인도 있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호호호··· 그 처녀의 이름이 뭔가고 묻질 않겠어요. 난 갑자기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명철동무의 어머니가 찬찬히 바라보는 바람에··· 그건 모르겠다면서 마구 달려오고말았어요.》

명철은 처녀가 명랑하게 웃어대면서 공무직장쪽으로 사라져버리자 돌아서서 공장정문을 향해 뛰여갔다. 정문밖에 중키의 녀인이 진회색 털외투에 목도리를 쓰고 오도카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그가 입대하여 떠나는 날 평양역두에서 바래워주던 그때의 모습 그대로인 어머니였다.

《어머니!》

어머니는 한참이나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마치 자기아들이 옳은지 확인이라도 하는것처럼··· 하기야 몇해만에 만난 어머니와의 상봉인가. 어머니의 눈에 갑자기 핑 감도는 눈물을 보고 명철이도 가슴속 상처가 쓰려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얘야. 넌 어른이 다 됐구나.》

《제가 몇해나 군대에서 복무하지 않았어요. 어머닌 여전하시군요.》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별로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동안의 수도생활에 습관된 어머니는 아직도 도회지녀성다운 세련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있었다. 은희가 어머니와 만나보고 와서 예술인같다며 까불어댄 말이 우연치 않았다.

《아버진 건강해요?》

명철은 아버지의 안부를 물으면서 쑥스럽게 눈길을 떨구었다.

《잘 있다. 그런데 넌 제대된지 1년이 넘는데 왜 한번도 집으로 찾아오지 않느냐. 아버지가 과오를 범하고 내려온 사람이여도 너야 아들이 아니냐? 가뜩이나 고심이 많은 아버지가 네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명철은 어머니가 불만스러워 하는 말을 듣고 잠자코 서있었다. 그는 아직 한번도 아버지의 출세와 직위를 바란적이 없었다. 어머니의 말처럼 일군이란 사업과정에 과오를 범하고 자기 직책에서 해임될수도 있는 일이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떳떳치 못한 지난 생활로 하여 그가 받아안은 마음의 충격은 너무도 컸다. 난생 처음으로 명철은 자기가 믿고 의탁해왔던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허무감을 눈물이 나게 깨닫지 않았던가. 그래서 자기 일가의 수치를 깨끗이 씻기 전에는 부모님들과 만나지 않을 결심을 품고 로동생활속에 뛰여들었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노여워하시는 심정은 저도 리해합니다. 그렇지만 제대배낭을 메고 집으로 찾아온 아들이 〈어머니〉 하고 불렀을 때 생면부지의 녀인이 나와서 랭랭하게 맞아준 광경을 상상해보십시오. 전 그날처럼 부모님들을 창피스럽게 생각한적이 없습니다. 마치도 풍지박산이 난 우리 가정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제대한 이 아들을 맞아준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은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 일이 너무도 괴로워 전 대학추천장을 구겨던지고 여기 기계공장에 입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우리 집안의 수치와 오욕을 씻어버리는 마음으로 함마를 들고 손바닥에서 피가 터지게 철판을 두드려대였습니다. 저의 이런 마음이 부모님들에 대한 불순한 행위로 된다면 전 더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찾아와서 아버지를 위로해드려야 하지 않느냐.》

명철은 그 순간 몇년만에 처음 만난 어머니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흥분해서 말했다.

《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네가 무슨 말을 그렇게···》

《어머니, 절 버릇없다고 생각지 마세요. 저도 돌심장이 아닙니다. 저에게도 자기 부모들이 보고싶고 존경하구 싶고 제 부모가 그리운 마음이 있어요. 저도 가슴속에서 피가 뛰는 인간이란 말예요. 어머닌 저의 마음을 몰라요. 일생 아버지한테 순종하며 살아왔으니까요.》

명철은 흥분하여 어머니에 대한 불만까지 꺼리낌없이 터뜨리고 피가나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기의 반발에 부정할수 없는 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말을 던진 가책으로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던것이였다. 어머니도 그의 무례한 언사에 눈물이 솟아올라 고개를 돌리다가 다시금 아들을 야속하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말을 못했다. 때마침 그들앞으로 지나가던 기술준비실의 림준기사가 어머니를 보고 와뜰 놀라며 발길을 멈추었다. 어머니의 두눈에 함뿍 고여있는 눈물때문인가? 아니, 그런것같지 않았다. 얼결에 림준기사와 시선이 마주친 어머니도 삽시에 낯빛이 새하얗게 질리더니 얼른 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면서 급히 돌아섰다.

(어머니가 왜 저럴가?)

어머니는 몇발자국 도망치듯 걸어가다가 또 한번 림준을 두렵게 돌아보았다. 명철은 영문을 몰라서 림준을 의아히 쳐다보았다. 한손에 지팽이를 짚고선 림준의 량볼이 푸들푸들 떨었다. 그는 잠시 어머니를 사납게 쏘아보다 말고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녀인이 누구요?》

《저의 어머니입니다.》

그를 말없이 뚫어지게 지켜보는 림준의 두눈에서 불꽃이 튕겼다.

《기사동무,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림준은 한동안 저 멀리 대응산쪽에 괴롭게 눈길을 던지였다.

《동무의 어머니라구?》

《혹시 우리 어머니를 아시는게 아닙니까?》

《아니··· 난 전혀 모르오!》

림준은 무뚝뚝히 대답하고 성칼스럽게 획 돌아서 걸어갔다. 명철은 기사가 뭔가 자기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는것을 직감하고 머리속이 뗑해졌다.

림준기사를 당황히 피해버린 어머니와 성난 사람처럼 급하게 지팽이를 내짚으며 공장안으로 사라져가는 기사··· 가뜩이나 마음이 뒤숭숭하던 명철은 어머니를 향해 뛰여가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으나 다른 말은 듣지 못했다.

《얘야, 넌 왜 어머니를 이렇게도 괴롭히느냐? 도대체 저 절름발이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어머니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눈물을 쏟으면서 랭혹하게 질책했다.

《어머니, 제가 잘못했으면 용서하라요. 하지만 기사동진 모욕하지 마세요. 그는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에 자기의 청춘시절을 바쳤고 그때 불구가 된 몸으로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는 진실한 사람이예요!》

《됐다. 그만해라. 내가 오늘 공연히 너한테로 찾아온가 보구나.》

명철은 그 말에 한풀 꺾인 어머니가 나직이 흐느끼는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