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6

 

제 2 장

6

 

희천 명문고개를 바람처럼 날아넘어 성간군 군당위원회마당에 들어선 승용차의 꽁무니에서는 뽀얀 먼지가 피여올랐다. 급한 제동으로 세차게 들추는 승용차의 문을 열고 내린 태혁은 군당청사출입문으로 급히 들어서다가 발길을 멈추었다. 건물의 층계를 쿵당쿵당 요란히 굴러대면서 어느새 성간군당 책임비서 리홍덕이 헐떡거리며 뛰여내려왔다. 꺽두룩한 키꼴에 뚝한 표정인 홍덕은 온다는 소식도 없이 불시에 찾아온 태혁이한테 황급히 인사하고 헤덤벼치며 잠바의 웃주머니를 손더듬했다.

주머니안에 돋보기가 들어있는지 부랴부랴 확인해 보는 우습강스러운 행동거지였다. 건망증이 심한 홍덕은 지난해 도당집행위원회에 참가하여 군내의 실태보고를 얼빤하게 주어섬기다가 태혁이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후 늘쌍 염낭안에 《성간군당 책임비서의 백과사전》이라 소문난 쬐꼬만 수첩을 간수하고 다니는데 갑자기 시력이 나빠져 돋보기신세를 지게 됐다. 그래서 태혁이와 만나면 번마다 주머니를 뒤지며 부산을 피우는 그였다.

《또 안경을 찾소?》

《예, 금방 넣고 왔는데···》

잠바웃주머니를 꾹꾹 만져보던 홍덕은 바지주머니안에서 안경을 꺼내들며 제풀에 투덜거렸다.

《제길헐, 이놈의 안경이 어떻게 여기에 들어갔노?》

홍덕의 건망증은 당초에 유명하기 짝 없다. 오죽하면 결혼식날 지금의 로친네와 하루밤 지내고 나서 생면부지 녀자와 만난듯이 《가만, 동무 이름이 뭐랬더라?》라고 물었다는 해괴망측한 소문까지 퍼졌겠는가. 그러니 안경을 어디에 넣었는지 삭갈리는것쯤은 약과라고 할수 있었다. 홍덕은 그 고질적인 건망증때문에 싫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사무실책상우와 제 집 전화기옆에도 각기 안경을 하나씩 장만해 뒀다고 한다.

오늘도 안경을 찾아쥐고 제풀에 허허 웃는 그의 기름한 얼굴은 《도당책임비서동지, 이젠 아무거나 물으십시오. 소수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답변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가 됐습니다.》라고 빈정대는듯 싶다.

태혁의 앞에 그렇게 자신만만히 서있던 홍덕은 《여보, 동무네 성간군에 이전에 건설하다만 중소형발전소들이 여러개 되지?》라는 왕청같은 물음에 눈이 퀭해졌다.

자기의 《백과사전》에 올라있지 않은 고망년 때의 케케묵은 일을 따져물으니 그럴만도 했다.

《제가 부임되기전의 일이여서 까리까리합니다만 별하 도룡굽이와 남리에 공사를 하다가 집어팡가친 발전소들이 있습니다.》

《외중에도 있구. 내 차에 타오. 가봅시다.》

홍덕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하더니 《잠간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자기 사무실로 부리나케 뛰여올라가 손전지를 들고왔다.

《전지는 왜 가져왔소?》

《거기 굴간은 쥐구멍처럼 깜깜해서 전지불이 없이는 못 들어갑니다. 당초에 코를 베여가도 모를 지경이지요.》

홍덕은 한바탕 요란을 떨고 태혁의 승용차우에 시뿌옇게 앉은 먼지를 유심히 바라봤다.

《뭘 보구 있소? 어서 타오. 시간이 없소.》

벌써 저녁해가 쌍방역쪽의 산말기너머로 기울어져 가고있엇다. 조금후엔 인차 날이 어두워질것 같았다. 태혁의 독촉을 받고서야 홍덕은 운전사의 옆자리에 앉아 길안내를 하면서 넌지시 물었다.

《책임비서동지,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셨다더니··· 평양서 내려오시는 길이구만요.》

《잘 맞혔소.》

《그렇구만요··· 저, 일전에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에 왔다가셨지요?》

《그래.》

태혁은 시무룩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장군님께서 그날 밤 초상령을 넘던 말씀을 하시지 않습디까?》

《못들었소.》

그날 저녁 희천공작기계공장으로 찾아오신 장군님께서 동신군의 림산마을 로동자집에까지 들리신 일밖에 태혁은 알지 못하고있었다.

촌령감처럼 성격이 느긋해가지고 곧잘 엇구수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호감을 사군 하는 홍덕은 감정조직이라도 하듯 안타깝게 시간을 끌다가 능글맞게 입을 열었다.

《책임비서동지, 지금 우리 성간군사람들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전설처럼 돌리며 법석 들끓고있습니다.》

워낙 말포재가 좋은 홍덕은 그날 밤 자강땅이 생겨 처음인 굉장한 흙바람이 불어 하늘땅을 꽉 메웠다고 손세까지 쓰면서 말했다. 태혁은 그를 의아히 쳐다봤다. 자강땅에 다른 지방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흙바람, 일명 검은 회오리바람이라고들 하는 광풍이 일군 하지만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날에 그 무시무시한 돌개바람이 불어쳤다니 가슴속이 뜨끔했다.

《그게 정말이요?》

《그럼 제가 꾸며내겠습니까. 우리 자강도날씨가 고약하다보니 다들 무심히 스쳐버렸지요. 고산지대사람들이 산이 높은걸 모르고 사는것처럼 말입니다. 제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그날 밤 장군님께서 흙바람을 헤치고 초상령을 넘으신 광경을 직접 목격한 령감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십시오.》

홍덕이 어찌도 구수하게 엮어대는지 그 무슨 옛말이라도 듣는것처럼 귀가 솔깃해졌다.

《글쎄 그 령감이 드문히 희천의 딸네집으로 다니는데 밤중에 초상령을 넘다가 혼쌀이 났다고 합니다. 흙바람이 휘익 그를 말아가지고 하늘로 날아오를것처럼 드살을 피우더라니까요. 사위는 온통 시꺼멓고 굉장한 먼지기둥이 솟구쳐오르는데 인간세상 같지 않더랍니다. 옛날 처서판에서 뼈대가 굵은 령감인데도 순식간에 뉘집 헛간옆에 나동그라졌다나요. 정말 미친놈의 바람이였지요. 그런데 때마침 초상령으로 승용차불빛들이 번쩍거리며 넘어오더라질 않겠습니까. 령감은 한 절반 얼혼이 나간채 넋없이 령을 쳐다보았답니다. 그는 이튿날 장군님께서 림산마을 로동자집에 들리셨다는 소문을 듣구 〈그럼 그렇겠지!〉라고 무릎을 탁 쳤다질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누가 저 무서운 흙바람을 헤치며 령을 넘어오겠는가. 령감이 바로 맞혔지요. 그 령감이 제강소에서 일한 로당원인데 괜찮은 늙은입니다. 로인은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어대자 길옆의 구새먹은 돌배나무가 꺾어질것처럼 뿌직뿌직 소리를 지르며 휘청거리는걸 보고 정신이 아찔해졌답니다. 빌어먹을 눔의 돌배나무가 장군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덜컥 넘어지기라도 하면 야단아닙니까. 너무 급해맞아 헤덤볐다치던 령감은 그 집 발구우에 사려놓은 바오라기를 들고와 자기 몸을 돌배나무에 동여맸답니다. 늙어도 기운은 장사라 령감은 돌배나무에 묶이운채 떡 버티고 흙바람을 헤쳐가시는 장군님을 안전하게 바래워드렸는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랍니다.··· 전 로인의 말을 듣고 너무 감동되여 당장 도당에 전화를 했는데 책임비서동진 벌써 평양으로 떠나셨더군요.》

태혁은 말없이 눈을 슴벅이였다.

깊은 밤 사나운 흙바람을 헤치고가시는 장군님을 배웅해드리려고 광풍에 날리는 년로한 몸을 돌배나무에 비끄러맨 로인··· 이 인민을 믿고 오늘의 고난을 헤쳐가신다던 장군님의 말씀이 떠오르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이것이 바로 자강도인민이며 로동계급이 아닌가! 태혁은 이 미더운 로동계급을 불러일으켜 장군님의 명령을 무조건 관철할 결심을 다지며 저녁노을이 짙어가는 별하강기슭을 따라 얼마후 별하발전소에 당도했다. 별하강좌안의 도룡굽이, 거기 도드락한 언덕밑에 지하발전소의 입구가 뚫려있었다 페쇄해버린지 오래된 고갱처럼 음침해 보였다. 크고작은 두엄무지들이 그앞에 너저분히 산재해있고 집짐승들의 오줌똥냄새가 역하게 풍겨왔다. 홍덕이가 몹시 난처한 기색을 지었다.

《지금 이 발전소굴간을 돼지우리로 씁니다.》

《뭐요?》

태혁이 기가 막혀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때마침 굴간에서 나오던 녀인이 깜짝 놀라 뜨물버치를 안은채 어디론가 황급히 종적을 감추었다. 태혁은 그런줄도 모르고 그냥 성난 소리를 질렀다.

《엄중하오. 엄중해!··· 이건 영창감이요.》

《사실은 저희들도 잘하느라고 한 일이였지요. 차라리 돼지나 집어 넣고 기르면 제격이겠다구 생각했지요.》

홍덕은 비위좋게 말하고 벌개진 덜미를 쓸어만지였다. 그의 말이 옳은지도 몰랐다. 근 이십년동안이나 아무 쓸모없이 내버린 발전소이니 돼지우리로 쓸만도 한 노릇이였다.

《제 말이 과했으면 량해하십시오.》

《됐소. 이젠 굴안이나 들어가봅시다.》

《가만···》

홍덕은 앞서려는 태혁을 만류하고 자기가 먼저 굴안으로 들어서면서 전지불을 켰다.

《조심히 따라오십시오.》

굴간에서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어찌도 과따대는지 홍덕의 말을 가려듣기가 힘들었다. 량켠에 늘어선 돼지우리들사이의 통로로 지나가면서 보니 사오십마리는 실히 될것 같았다. 굴안은 통풍이 되지 않아서 짐승들의 분비물냄새가 코를 찌르고 무엇을 밟았는지 신발바닥이 미끄적거렸다. 홍덕이가 켜든 전지불빛을 보고 부옇게 날아드는 하루살이들이 성가스럽게 안경알에 부딪치기도 하고 땀난 목덜미에 달라붙어 끈적끈적 기여다니기도 했다. 태혁이가 하루살이들의 성화에 얼굴을 들지 못하고 느릿느릿 걷자 홍덕이 죄송스럽게 말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 굴의 길이가 얼마요?》

《약 90m가량 됩니다. 사실은 이 발전소가 보통 멋들어지게 설계된 발전소가 아닙니다. 유사시 적들이 원자탄을 떨궈도 이 발전소는 끄덕없이 돌아가게 생겨먹었지요. 여기가 발전기실입니다.》

홍덕이 발전기실입구에서 손전지를 휘둘렀다. 커다랗게 원을 그리는 불빛에 비쳐 우죽뿌죽한 화강석들이 칼날처럼 번뜩이는 천정이며 벽체들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웬간한 직장만큼한 드넓은 공간이였다. 홍덕의 손에서 전지를 당겨쥔 태혁은 어둠속에 시추탑처럼 우뚝 솟은 발전기앞으로 다가서며 얼핏 비쳐보았다. 아직 제대로 구색을 갖추지 못한 발전기인데 500㎾정도는 잘될상 싶었다. 발전기들의 표면에는 그리스가 걸죽히 게발려 별로 손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압애자가 사슴의 뿔처럼 달린 대형변압기우에는 거미줄들이 너설너설 드리우고 썩은 곰팡이냄새가 진동했다. 손전지를 꽉 움켜잡은 태혁의 팔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는 괴로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며 홍덕을 흘끔 돌아다보았다.

《지금 전력이 부족하여 경제와 인민생활에 막심한 지장을 주고있는데 발전소를 땅속에 이렇게 사장해두다니··· 정말 가슴아프오. 바로 이게 우리가 장군님앞에 짓고있는 죄요! 이젠 남리발전소로 가봅시다.》

홍덕은 하늘소발통처럼 땅에 발을 떡 붙이고 선채 움직이지 않았다.

《저··· 거긴 밤엔 못 들어갑니다. 굴간이 험해서···》

《아니요. 난 오늘 밤중으로 다 돌아봐야 하오!》

《글쎄 저야 뭐랍니까. 책임비서동지가 걱정돼서 그러지요.》

《여보, 우물거릴 사이가 없소.》

태혁은 성급히 말하고 《어서 앞서오.》 하며 손전지를 내밀었다.

《기어코 가야 한다면 가지요. 한데 저한테도 좀 속시원히 말해주십시오.

혹시 이 발전소들을 다시 복구하는게 아닙니까?》

태혁은 그제야 너무 조급한 나머지 홍덕을 무작정 다몰아대기만 한 자신을 깨닫고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순서가 좀 바뀌였구만. 내가 너무 흥분한가 보오.》

태혁은 자기의 결함앞에서도 린색하지 않았다.

《홍덕동무, 동무가 똑바로 봤소. 장군님께서는 며칠전 당중앙위원회협의회에서 현 시기 우리 나라 전력문제를 푸는 길은 대규모발전소와 함께 자력갱생하여 전국도처에 중소형발전소들을 건설하는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소. 이 별하발전소만 살려도 우린 전천탄광에 필요한 전력을 자체로 넉근히 생산할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이십년동안이나 묻어두고 앉아서 전력타발을 했소.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방침이 얼마나 현명하오. 장군님께서는 우리 자강도 로동계급에게 중소형발전소건설의 시범을 창조할 영예로운 과업까지 맡겨주시였소. 이제 우린 6개월동안에 이미 있는 발전소들은 복구정비하고 새 발전소들을 건설하기 위한 대대적인 전투를 벌리게 되오.》

홍덕이가 입을 꾹 다물고 어깨숨을 몰아 쉬였다.

《그렇군요.》

《그런데 동무네 성간군에 이렇게 쓸모없이 집어던진 발전소들이 다섯개나 되오. 이것만 살려도 우린 대단한 전력을 생산할수 있소. 이젠 떠나자구.》

《하지만 밤길은 조심해야 합니다.》

《걱정마오. 여보, 홍덕동무. 난 좀전에 동무가 흙바람이야기를 할 때 속으로 울었소. 이번에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아픈 마음을 안고 우리 자강도로 찾아오셨소? 헌데 밤중에 사나운 흙바람을 헤치며 초상령을 넘으시다니··· 고산지대의 눈보라가 세차지만 그 흙바람의 횡포에 비길수 있소? 장군님의 그 막중한 로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

그 길로 태혁은 홍덕이와 함께 남리발전소를 떠나 연거퍼 다섯개 발전소를 돌아보고나서 외중발전소어구에 나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여보, 거 담배 한대 좀 주오.》

《담배말입니까?》

홍덕이가 갑자기 아래우주머니를 부리나케 만지고 엉거주춤히 돌아서더니 손가락같이 두툼히 만 담배를 내밀었다.

《이래뵈두 이 마라초가 구수하고 괜찮습니다.》

태혁이 담배를 받아물자 홍덕은 라이타까지 철컥 켜대였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맛스레 연기를 들이켰다가 내뿜는 태혁의 모습을 지켜보던 홍덕이 벙그죽 웃었다.

《어떻습니까. 담배맛이 좋지요?》

《뭐 내가 담배맛이 좋아 그러는줄 아오. 어느 굴간안에 들어가나 냄새는 고약했어두 발전소를 다 돌아보고나니 한숨 놓이누만. 성간군발전소들은 먹어놓은것이나 다름없소. 자신심이 생긴단 말이요.》

태혁은 흐뭇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고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덧 저 멀리 별하강 건너편의 샘물령상공에서 북두칠성이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었으나 별로 밤이 깊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 이젠 가기요.》

태혁은 그후에도 군당에 들려 홍덕에게 군자체로 발전소들을 건설하기 위한 협의회를 진행할 구체적인 과업을 주고 그와 헤여져 구봉령으로 치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강계, 강계에서 평양으로 왕래하는 자동차들은 그 어느 차나 복실이가 사랑하는 구봉령을 넘는다.

륙로는 이 하나밖에 없다.

단지 오늘같은 날에도 웬간한 차는 감히 구봉령에 오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멀쩡한 대낮에 차를 몰아도 귀신몰래 벼랑아래로 굴러떨어지기가 쉬워 몇해전까지 불길령으로 불리웠던 령길이였다.

하지만 세찬 비바람이 무성한 수림을 쓰러눕힐듯 후려치는 캄캄한 밤에도 북변땅의 사나운 눈보라가 앞을 가로막는 날에도 복실은 늘쌍 이 외통길에 나와살다싶이 한다.

여름철의 물오이자라듯 하는 처녀시절에 다들 잠이 모자라서 쩔쩔 맨다지만 복실은 잠은 커녕 두눈이 말똥해지군 한다는 처녀이다.

이 밤도 얼마 멀지 않은 곳의 산굽이에서 웬 처녀의 모습이 별안간 승용차불빛에 드러났다. 복실이였다. 한손으로 승용차불빛을 막으며 길옆으로 비켜서는 처녀의 손에 삽자루가 쥐여있다.

《책임비서동지, 안녕하십니까?》

《어, 복실이구만. 왜 이 밤도 쉬지 않구. 어서 차에 타오.》

승용차가 복실을 태우고 다시금 령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처녀의 눈에 연한 눈물이 고여올랐다.

《책임비서동지, 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에 또 오실가요?》

《왜 오시지 않겠소. 복실인 이 령길만 잘 지키라구. 구봉령의 쇠소리나는 보초병이 되란 말이요.》

《알겠습니다.》

복실은 신나서 야무지게 대답하고 두눈에 파뜩 생기를 띠웠다.

《복실인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좋거든. 참, 복실이가 이젠 스물여섯이지?》

《예.》

《내가 사범대학에 다니는 복실이를 이 령길에 세워놓은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렇게 됐군. 그날 난 죽어도 어머니처럼 도로관리원을 못한다며 찔찔 우는걸 겨우 달랬더랬지. 세월도 빠르군.》

복실은 웃으면서 응석이라도 부리듯 말했다.

《전 그때 어머니가 중앙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여 딸을 도로관리원으로 키우겠다고 토론한 바람에 신세를 망쳤다며 얼마나 어머니를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쭐쭐 흘리면서 〈우리 어머니가 정말 날 낳은 친어머니가 옳을가? 혹시 이붓어머닌게 아니야?〉 하고 별 의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디가서 왼땅을 보고 벌어온 딸인가 했단 말이지?》

태혁이도 운전사도 유쾌히 웃었다.

《전 정말 동무들을 보기도 막 부끄러웠어요.》

그때 복실이가 도당에 불리워가 도로관리원이 되자 동창생처녀들이 방정맞게 《어마나!》 하고 깜짝 놀라며 소동을 피웠다. 어떤 녀동무들은 그가 범의 굴에 끌려가기라도 하는것처럼 아부재기를 치며 무조건 딱 버티라고 충동질을 했다. 태혁이가 사범대학 주간학부에 다니던 그를 통신으로 넘겨 대학졸업장을 받게 해준다고 말해줬지만 령길이나 관리하는데 그까짓 자격이 뭣에 필요한가면서 곁가마가 더 끓는격으로 모아붙어 부채질해댔다. 그들이 2년도 못되여 복실이가 평양에서 열린 중앙회의의 높은 연단에서 토론을 하고 장군님의 접견까지 받은 소식이 퍼지자 사람의 발전은 정말 모르겠다며 저마끔 앞을 다투어 축하편지들을 보내왔다.

《우리 동창들중에서는 복실이가 최고야!》 하며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복실을 리해하지 못하는것은 그를 약혼녀로 삼아보려고 넙적넙적 접어드는 총각들인가 싶다.

복실은 태혁이가 어디 혼사말이라도 난게 없는가고 묻자 총각들이란 열이면 열명 다 구봉령에 와서 가정을 뭇겠다는 사람은 없이 자기를 끌어갈 궁리만 한다며 우쭐해서 말했다.

《뭐 바늘 가는데 실 따라 가기 마련이라나요. 일없습니다. 전 시집을 못가도 좋아요. 한평생 장군님의 전사로 이 령길을 지키며 빛나게 살수만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작년가을 분홍꽃아카시아나무모를 가지려 평양으로 갔는데 식물원 원장아바이가 절 보고 〈구봉령체네가 또 왔군. 시집갈 궁린 하지 않구 분홍꽃아카시아만 달래.〉하질 않겠습니까. 그때에도 전 〈원장아바이, 전 우리 장군님께서 구봉령에 오시는 날 분홍꽃아카시아를 활짝 피우고픈 마음뿐이야요.〉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장아바이가 희색이 만면하여 저의 마음에 전적인 찬성이라면서 분홍꽃아카시아나무모를 암만이고 가져가라구 선심을 썼어요.》

복실은 일생 혼자 살아갈 처녀처럼 명랑하게 웃어대였다.

작달막한 키에 눈이며 코, 입매가 오목조목하고 이쁘장하게 생긴 처녀! 복실은 여름철 물오이자라듯 하며 나날이 활짝 피여나기만 한다.

《그래도 시집이야 가야지. 아무렴 구봉령의 소문난 처녀도로관리원한테 적중한 신랑감이 없을가.》

태혁은 자강도에 그런 알맞춤한 청년이 없으면 온 팔도강산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내자, 복실이한테 장가드는 총각은 팔자를 고치게 될거라고 했다. 복실이가 자기한테 뭘 볼게 있어 그러는가고 하자 태혁은 입버릇처럼 복실이네집 정주간에 걸려있는 《가족출근부》이야기를 또다시 꺼냈다. 얼마전 도당전원회의때 태혁은 이 고난의 행군시기 복실이네 일가식솔이 풀죽으로 끼니를 에우면서 《가족출근부》까지 만들어 놓고 구봉령의 령길을 지킨다며 《이 동무들이 진짜배기요! 참 기특하단 말입니다.》라고 자랑했다. 그날 전원회의에 참가한 성간군당책임비서 리홍덕은 흥분하여 구봉령을 넘어오던 길에 일부러 복실의 집에 들려 그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는 동무네 《가족출근부》때문에 성간군의 위신이 하늘만큼 높아졌다면서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우리 자강도사람들이 얼마나 참되게 살았는가 두고두고 옛말을 하게 될것이라고 했다.

사실 복실이네가 집안식구들끼리 《가족출근부》를 만들어놓고 엄격히 출근정형을 기록해두지만 협동농장 분조장들이 가지고있는 로력수첩처럼 거기서 무슨 분배몫이 나오는것은 아니였다. 단지 장군님께 충실할 일념을 안고 구봉령 령길을 지켜가는 복실이네 집안사람들의 량심을 말해주는 거울로 벽에 소중히 걸어두고 있을 따름이였다.

복실은 오래간만에 만난 태혁이와 이런저런 재미나는 이야기를 나누는 정신에 시간가는줄 모르다가 승용차가 자기네 집옆에 와서 멈춰서자 그의 곁으로 살뜰히 다가앉았다.

《책임비서동지, 오늘 밤은 우리 집에 들렸다 가십시오.》

네모반듯하게 오붓이 널바자를 둘러친 복실이네 집 창문에는 등잔불빛이 불그스름히 어려있었다.

빨간 기와를 얹은 고깔모양의 지붕과 널직한 마당, 두칸 방이 아늑하게 달린 새집··· 태혁이가 복실이네 식솔들이 외진 령길에서 수고를 한다며 재작년 성간군 군당책임비서에게 과업을 주어 알뜰하게 지은 집이였다.

복실이네는 일년열두달 령길에 나가 살다보니 오가는 운전사들과 친숙해져 지금은 그 어느차 운전사도 복실의 집에 들려 한바탕 떠들어대지 않고서는 오금이 쑤시여 구봉령을 넘지 못한다. 말이 구봉령의 외딴집이랄뿐이지 령을 넘나드는 운전사들의 중간정류소로 한시도 조용한 때가 없다. 단지 태혁이만이 복실이네 가정생활을 일껏 관심해주는 일군인데 늘쌍 바쁜 걸음을 하다보니 삼복간 무더운 날에 들려 랭수 한모금 마신일 없다. 복실이네가 잘 살기만 바라는 태혁은 이 밤도 처녀의 부탁을 받고 인정이 푹 배인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복실이, 내 이후에 꼭 집구경이랑 하지. 오늘은 들릴새 없어. 정말 바빠서 그래.》

태혁은 어린 아이 달래듯 조용히 타이르고 복실을 집옆에 내려놓았다.

마침 밖으로 나온 운전사가 승용차의 꽁무니에서 복실의 삽자루를 꺼내주었다. 오늘도 자기의 크지 않은 소망을 이루지 못한 복실은 방금전의 쾌활하게 웃던 처녀같지 않게 눈물이 글썽해지고 말았다. 그 사랑스런 처녀를 떨궈두고 보름만에 강계에 들어선 태혁은 이제 여기에서 벌어지게 될 격렬한 전투의 장면들을 련상해보자 저도 모르게 가슴속이 울렁이였다. 그러나 아직은 이 크지 않은 도소재지에서는 밤의 고요밖에 별다른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단잠에 들고 거리는 조용했다. 밤정적을 깨치며 장자강의 물소리만이 정가롭게 들려왔다. 자정이 훨씬 넘은 때여서 풍치좋은 장자강언덕우에 관서팔경의 제일루정으로 우뚝 솟은 인풍루며 남산밑의 도당청사도 짙은 어둠속에 잠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