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4

 

제 2 장

4

 

기계공장의 최성진기사도 일년나마 코피가 터지게 있는 힘껏 추진해온 자동선개조의 실패로 파김치가 되여버리였다. 막대한 로력과 자재를 랑비한 책임에다 주병호지배인의 철직문제까지 겹치여 엄중하게 제기되는 바람에 된서리를 맞고 주눅이 들어버린것이였다. 그러나 장관우부위원장의 참석하에 진행된 공장기술협의회에서 주병호지배인이 벌겋게 피발이 선 눈을 부라리며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는 장군님의 의도인데 손맥을 놓고 주저앉겠는가, 지배인 한사람이 철직되고 말고 하는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설사 지배인이 열두번 바뀌여도 누구든지 공장의 자동선은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며 성진의 결심이 어떠한가를 따져물었을 때였다. 최성진은 꺾이면 꺾였지 조금도 휘여들지 않는 주병호의 만만치 않은 배짱에 머리가 숙어지는 자신을 창피스럽게 느끼며 자기 역시 몸이 열쪼각나는 한이 있어도 기어코 자동선을 성공하리라 강심을 먹고 나섰다.

그 일로 공장안에는 한동안 뒤숭숭한 여론이 떠돌았다. 당장 살아갈 일도 힘겨운 때에 산 송장이 됐던 기사가 지배인을 업고 괜히 되지도 않을 자동선개조를 꿈꾸며 사람들을 들볶는다는것이였다.

요즘도 귀구멍이 쑤시게 날아드는 비난을 떡 먹듯 하며 아닌보살하는 남편에 대해 성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있었다. 성실은 성실이대로 자기의 연구사업을 포기할수밖에 없는 괴로움속에 너무도 깊이 빠져있었던것이다.

오늘 저녁도 남편이 여느때없이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퇴근해왔으나 성실은 가정부인으로 늘쌍 집안일을 팽가치고 시험포전들에 나가 객지생활을 한 죄스러움밖에 다른것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에게 성실이란 존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였다. 성실의 출장이 잦은탓에 아이들도 어머니의 떠살이생활에 치워 활짝 피지 못한다. 성실은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모르고 자라는 그애들이 가엾어 어느 하루도 마음이 홀가분할 때가 없다. 그런대로 무던한 남편을 만나서 여태껏 아무런 말썽도 없이 가정의 화목을 유지해왔는데 몇해동안 뼈심을 들여온 연구사업을 중단하게 됐으니 남편과 아이들을 볼 면목이 있는가? 이날도 근 두달만에 집에 들어선 성실은 저녁상을 너무 허술히 차릴수 없어 타개죽이나마 푸짐히 떠놓고 앉았으나 차마 숟갈을 들지 못했다.

그가 말없이 혼자 조용히 눈물을 머금는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던 남편이 빈털터리 홀아비살림에 어디서 났는지 꽁무니에 손을 찔러 술 한병을 꺼내놓으며 심드렁히 물었다.

《당신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요?》

성실은 애간장이 말라 얼른 대답을 못하고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아무 일도 없다는 사람의 얼굴이 왜 그렇소?》

성실은 저녁상이나 물리고 자세한 내막을 말하려 했으나 남편이 욱박지르는 바람에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저한테야 뭐 다른 일이 있겠어요. 늘쌍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 일부 일군들때문에 애먹는걸요. 한주일째나 매일같이 리미액이 전망이 없다면서 당장 중지시켜야 한다고 과학원에 전화가 걸려온다는데 정말 성가스러워 더는 못견디겠어요.》

《보자보자하니 정말 그 사람들이 못되겐 노누만. 여보. 과학기술국에 나쁜놈이 엎데있는게 아니요?》

워낙 고지식한데다 량심이 곧은 남편이 한바탕 걸죽히 욕사발을 퍼붓고나서도 성차지 않는지 안해를 나무람했다.

《하긴 당신도 떨떨해. 여기서는 리미액이 농사에 효과가 있다고들 소문이 도는데 당신은 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만날 두드려맞기만 하오. 당신이 죽기내기로 연구사업을 하는게 자기의 공명과 명예를 바라기때문이요? 그런데도 어째서 당신을 개밥에 도토리처럼 천대하는지 의심스럽단 말이요.》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저를 도와나선 희천미생물공장 지배인은 일부 일군들로부터 시비를 들었고 사날전엔 저의 연구사업을 조력하던 동무가 애매한 피해를 당했어요. 갑자기 연구소의 호출을 받고 올라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저의 연구사업에서 손을 떼라는 일군과 맞서 언쟁을 벌렸다질 않겠어요. 그날로 연구소에서 쫓겨났어요. 저의 연구사업을 적극 지지하는 동무이니 눈꼴사납게 여기다가 구실을 잡아 쫓아낸거예요. 정말 가슴 아픈 일이예요.··· 저도 돌심장이 아닌데 물러나겠어요.》

《그건 무슨 소리요. 이제 와서 연구사업을 그만둔단 말이요?》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나서 결김에 소주를 고뿌에 부어 맹물마시듯 꿀꺽꿀꺽 들이켰다. 성실은 남편을 속이 한줌만해서 바라보았다. 술에 약골인 남편은 안주도 없이 화김에 강술을 마시고 대뜸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씨근거리며 써레기를 손가락같이 두툼히 말아 물었다. 삽시에 남편이 연방 내뿜어대는 지독한 담배연기가 좁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아이들은 울음이라도 터뜨릴것처럼 겁에 질려 오돌오돌 떨면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여보. 재작년 농업과학원에 들리신 장군님께서는 리미액을 연구하기 위해 현지에 내려간 녀성과학자의 일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하면서 친히 료해까지 하시지 않았소? 장군님의 그 신임이면 다지 뭐가 무서워 벌벌 떠오. 당신이 남보다 잘나서 지금까지 도당에서도 우리 집 일을 각별히 돌봐줬소? 리미액연구사업은 당신이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그만둬도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요.》

《그건 당신 생각이구.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에선 매일과 같이 연구소일군들을 쑤셔대며 완강히 반대하지 않아요?》

성실은 남편을 애끓게 쳐다보며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토막토막 끊어지는 소리로 안타까이 말했다.

《당신까지 이러면 어떻게 해요? 전 그저 죽고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에익! 누군 똥집이 편해서 당신한테 이따위 훈시질을 하는줄 아오?》

남편은 상우의 술고뿌를 부셔뜨릴것처럼 우악스레 꽉 움켜잡았다. 고뿌의 술이 한절반 쏟아져 힘줄이 시퍼렇게 울뚝불뚝 살아오른 그의 손등으로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평시의 유순하던 남편이 두눈을 뚝 부릅뜨고 노려보는 바람에 오싹 소름이 돋힌 성실이가 다가들어 남편의 손아귀에서 고뿌를 빼앗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걷어치우오!》

남편은 성실의 손을 매정하게 홱 뿌리쳐 버리며 그냥 기염을 토했다. 도수가 넘게 술을 마셨지만 그의 입에서는 취중의 말이 아닌 대바른 소리가 울분에 뒤섞여 가슴을 치며 거침없이 울려나왔다.

《내 말을 똑바로 듣소. 난 누구보다도 당신을 잘 아오. 당신은 리미액연구사업을 관두면 두번다시 과학연구사업을 못해. 과학자로서의 당신의 인생은 이것으로 끝장나고 마오. 당신은 살아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이 된단 말이요.》

성실은 남편의 말에 담겨있는 진실을 부정할수 없었다. 내가 리미액연구에 미련을 둔채 그 누구의 강요에 못이겨 다른 새로운 연구과제를 맡아할수 있는가? 과학자의 심장과 열정이 식어버리면 어떤 재능도 저절로 죽어버리기마련이다. 그 엄연한 리치를 번연히 알면서 자기의 피땀과 넋이 스며있는 리미액연구사업을 포기할수밖에 없는 성실은 절망의 벼랑끝에 나선것처럼 눈앞이 캄캄했다.

밥상우에 이마를 떨구고 고통스럽게 앉아있던 남편이 때마침 흐릿한 눈길을 들면서 《우리 집안일은 풍전등화로구나!》 하고 장탄식을 했다.

성실은 아무리 남편이 기가 죽어 락심한 소리를 해도 다 자기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눈가장이 발깃해서 입을 봉하고있다가 애타게 말했다.

《여보. 이젠 좀 쉬세요.》

남편도 한동안 피대를 돋구며 성풀이를 하고는 어지간히 지쳐버린 사람처럼 상머리에서 물러앉으며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였다.

《난 당신한테 하고싶은 말을 다 했소. 당신은 과학원에 밥탁을 둔 사람이니 평양으로 올라가겠으면 가오. 당신이 과학원으로 올라가도 난 공장에 남아서 자동선을 완성해야 할 사람이요. 결국 우리 가정은 두 동강이 난단 말인데 그건 걱정할것 없소. 내가 여기서 아이들을 데리고 살겠으니 당신은 맘 놓고 가란 말이요!》

성실은 자기를 문밖으로 내동댕이치는것 같은 남편의 말에 얼혼이 나간 녀인처럼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말 못할 안타까움에 휩싸인 그의 마음은 매운 재라도 뿌린것처럼 아리고 쓰리여났다. 아직은 한창 나이인데 내 인생은 왜 이다지도 기박한가? 성실은 남편과 생리별을 하나 다름없는 서러움에 마침내 눈물이 왈칵 솟구쳐올라 얼른 밥상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는 등잔불도 없는 캄캄한 부엌바닥에 쪼크리고 앉아서 속상한김에 소리를 죽여가며 실컷 울고 난 후에야 방으로 들어가 남편의 잠자리를 펴주었다. 그리고는 자기도 아래목에 두 아이를 끼고 숨 죽은듯이 누웠다가 밤 열시가 되자 살그머니 일어나 역으로 나갈 차비를 했다. 더 남아있었대야 집안의 기분이나 흐려놓을뿐 좋을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과학원으로 올라가야 할 몸인데 밤차를 타고 조용히 떠나기로 마음먹은것이였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겠는지?··· 앞일을 기약할수 없는 길이였다. 성실은 망연한 눈길로 잠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측은히 내려다 보았다.

요즘 뉘집이나 할것 없이 살림살이형편이 어려운 때에 아이들을 남편한테 맡기고 떠나자니 성실의 마음은 칼로 저미는듯 아팠다. 아마 하루 한끼쯤 번지는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길거야. 그 뻔한 내속을 번연히 알면서 과학원으로 올라가려고 결심한 자기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녀자인가? 성실은 가정도 남편도 자식도 모르는 무감정한 인간으로 되여버린 자신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 가슴이라도 쥐여뜯고싶었다. 한참이나 넋 나간 녀인마냥 앉아서 그 모진 아픔과 가책에 눈물을 삼키던 성실은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참으며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바깥은 그의 마음처럼 온통 캄캄하였다. 저 멀리 역전쪽에서 붕- 밤렬차의 기적소리만이 그의 발길을 재촉하듯 고요한 대기를 흔들며 구슬프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