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3

 

제 2 장

3

 

성실은 중키에 입이 무겁고 얼굴이 가무숙한 내성적인 녀성이다. 사십대 젊은 나이인데도 연구사업에만 몰두하다보니 남들처럼 활짝 피여나지 못한 성실은 오늘따라 눈에 띄게 상큼한 목에 입술까지 초들초들 말라서 폴싹 겉늙어보였다. 성실은 희천미생물공장에 나가서 3년동안이나 피땀을 바쳐온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밤길을 떠났던지 몰랐다. 동신에서 구봉령밑의 부지리마을까지 겨우 화물자동차를 얻어타고는 온밤 혼자서 캄캄한 령길을 걸었다. 소름이 돋치게 불어치는 바람을 안고 그가 구봉령을 넘어 강계에 도착하자 도당책임비서의 집뜰안에서는 현이 어머니 숙경이가 안달복달하며 돌아갔다.

(이 꼭두새벽에 웬일인가?)

숙경은 소매속으로 스며드는 고산지대의 차거운 바람에 오싹 몸을 떨다가 어망결에 성실이와 눈길이 마주치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에그머니나. 성실동무가 마침 오누만. 이 일을 어쩜 좋담?》

《현이 어머니, 왜 그러세요.》

성실은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글쎄. 지금까지 별일없던 돼지가 왜 갑자기 저렇게 설치며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니까.》

숙경은 늘쌍 주인이 나타나면 가름대사이로 나팔 같은 주둥이를 내밀고 꿀꿀대던 짐승이 눈정기가 풀려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속이 설뚱했던 성실은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자기가 연구한 발효사료를 먹고 돼지가 탈을 만난게 아닐가? 그러지 않아도 요즘 성실이가 돼지의 사육에 적용한 발효사료를 두고 구구하게 뒤소리들이 많았다. 성실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들었던 손가방을 토방우에 집어던지고 굴뚝담밑의 돼지우리앞으로 달려갔다. 돼지우리바닥에 축 늘어진 배를 끌면서 안절부절 못하던 돼지가 구석켠에 털썩 드러누워 풀무질하듯 헐떡거리는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혹시 분만할 때가 된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짐작에 불과할뿐 말 못하는 짐승의 속내는 도무지 알길 없었다. 성실은 돼지우리안으로 정신없이 뛰여들었다. 밤도와 캄캄한 령길을 걸어온 그가 무슨 힘으로 돼지우리의 높은 가름대를 눈깜박할 사이에 훌쩍 뛰여넘었는지 알수 없었다.

우리안에 드러누운 돼지옆에 붙어앉은 성실은 숙경을 얼핏 돌아다 보았다.

《현이 어머니, 얼른 더운 물을 한 소랭이 갖다주세요!》

성실이가 급하게 구는 바람에 숙경은 부엌의 법랑소랭이에 퍼들고 나오던 물을 한절반 치마자락에 쏟뜨리며 달려와서 물었다.

《이거면 되겠나?》

《됐어요.》

성실은 소랭이를 받아들고 돌아앉아서 돼지의 분만을 열심히 돕다가 마른 벼짚을 갖다달라고 재차 독촉했다. 숙경이 김치움안의 북데기를 한아름 안아다주자 성실은 돼지우리구석에다 얼른 폈다. 그가 어찌도 잽싸게 돌아가는지 말한마디 나눌 사이도 없었다. 젖은 치마자락을 축 드리운채 돼지우리앞에 조마조마해 서있던 숙경은 반시간가량 지나서야 일어서는 성실의 땀투성이얼굴을 긴장히 쳐다봤다.

《어떻게 됐나?》

《돼지가 새끼를 아홉마리나 낳았어요.》

《죽지 않구?》

《보세요. 모두 살아서 엄지의 젖을 먹고있지 않아요.》

숙경은 너무도 좋아서 대뜸 얼굴이 보름달처럼 환히 밝아졌다.

《됐구만! 성실이 어서 나와서 손도 씻고 세수도 해요.》

성실을 세면장으로 들여보내고 숙경은 돼지우리안에서 아홉마리의 갓난 새끼들이 엄지의 젖꼭지를 물고 꼼지락거리는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자기집 돼지가 정말 용타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세상만사를 잊은듯이 돼지우리앞에 서있다가 등뒤로 조용히 다가서는 성실을 정찬 눈길로 돌아다보았다.

《성실이, 우리 집 돼지에게 동무가 연구한 발효사료를 먹였지. 그런데 보라구. 정말 기쁘구만.》

《현이 어머니가 저의 연구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정말 수고하셨어요.》

《내야 수고한게 있나. 그저 성실이가 연구사업을 성공하고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게 되기를 바랐을뿐이야.》

《고마와요.》

성실은 얌전히 말하고 어설프게 웃었다.

작년에 숙경이가 길바닥에서 그와 만나 재미나게 들려주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숙경은 워낙 집안에서 고양이를 기르는것도 딱 질색하는 성미였는데 4년전 자강도로 갓 이사해왔을 때 장관우부위원장이 어디서 생겼는지 완구상점의 오또기 같은 새끼고양이를 안고 오는 바람에 눈이 휘둥그래졌다고 한다.

그날 장관우는 고양이를 방안에 집어넣으며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느물느물 웃더라는것이였다.

《현이 어머니, 제 책임비서동무한테서 현이 어머니가 고양이라면 천리밖으로 뛴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늘 칭찬받지 못할 싱거운 일을 한다는것두 알고있구요. 한데 엊그제 책임비서동무가 부임되자마자 가족을 두고 먼저 내려왔다길래 날이 어둡자 이 댁으로 찾아와보니 말이 아닙디다. 책임비서동문 고지식한분이라 텅 빈 집의 부엌아궁이앞에 앉아서 장작을 때더군요. 방안에 온통 연기가 꽉 차서 불난 집 같았습니다. 글쎄 바깥에 굴뚝이 붙어있지만 그리로 빠져나가는 연기가 있어야지요. 부엌의 곰보딱지처럼 숭숭 패운 쥐구멍들에서만 살 때를 만난듯이 승강내기로 시커먼 내굴이 뭉글뭉글 뿜어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책임비서동문 눈물을 짜며 앉아서 그냥 아궁이에 장작을 집어넣질 않겠습니까. 허허··· 정말 여불없는 직사포더군요. 하기야 제가 뭐 책임비서동무의 마음속에 한두번만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라구요.》

장관우는 숙경을 놀려주기라도 하듯이 능글맞게 구슬려대였다.

《현이 어머니, 부엌의 쥐구멍은 아무리 재간껏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밤이 되면 또 쏠라닥거리며 뚫거든요. 그저 도적쥐한텐 고양이가 제격이지요. 제 그래서 고양이새끼를 하나 구해가지고 왔습니다.》

숙경은 그날 기분이 흥떠서 돌아가는 장관우가 미워서 울고싶었다고 했다.

정말 고양이와 앙숙인게 틀림없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위신없이 별걸 다 들고다닌다니까. 숙경은 도적쥐의 성화를 막아주는 고양이였지만 아침저녁 밥상밑으로 버르장머리없이 살살 기여들 때면 장관우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가만히 쥐여박군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퇴근해온 현이 아버지가 이제부터 우리도 돼지를 길러야겠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돼지를 치다니요?》

《여보, 자강도에서 농사도 짓고 산을 리용하여 축산도 하라는건 장군님의 가르치심이요. 당신이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관둬도 되는 일이 아니란 말이요.》

《그럼 진작 그렇다고 하시지요.》

숙경의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이 금시 부드러워졌다. 이튿날로 태혁이와 기계공장에 다니는 현이까지 달라붙어 하루동안에 돼지우리를 번듯하게 만들어놓자 이번에도 장관우부위원장이 새끼돼지를 안고 나타났다.

장관우는 생겨먹은대로 넉살좋게 웃으며 《현이 어머니, 이신작칙은 책임비서동무의 생활신조니까 할수 없수다. 지금이야 돌격앞으로가 아니라 날따라 앞으로! 하는 때가 아닌가요. 자, 이 미련한 짐승아, 어서 책임비서집 우리안에 들어가서 안주인속을 실컷 태워봐라!》 하고 토실토실하게 생긴 돼지새끼를 돼지우리안에 집어넣더니 훌 돌아서 가버렸다.

숙경은 그 이후 돼지기르는 일을 장군님의 가르치심으로 생각하고 온갖 정성을 다 쏟아부었다. 늘쌍 돼지우리에 붙어 달달 볶아대며 돌아가는 숙경이때문에 집안에 굉장한 웃음거리까지 생겼다.

《여보, 우리 집 돼지가 빤히 쳐다보는 그 눈길을 봤어요? 얼마나 고운지 몰라요. 살짝 쌍까풀이 진게··· 보면 볼수록 정이 든다니까요.》

태혁은 그 말에 어깨를 들썩거리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이거 제발 웃기지 마오. 난 돼지눈이 쌍까풀졌다는 말은 듣다 처음이요. 가만 보니 당신이 돼지한테 푹 빠져버렸구려.》

남편만이 아니였다. 그의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돼지의 눈이 쌍까풀졌다는 숙경의 말을 믿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애당초 시틋한 낯빛으로 대꾸도 하지 않던 현이는 너무도 우스워 배를 그러안고 대굴대굴 굴었다. 숙경은 곧장 우겼다. 네가 나처럼 돼지를 기르는데 애착을 느껴봐라, 그러면 그 미욱한 짐승과도 교감이 된다라고 하자 현이는 또다시 갑자기 뿜어나오는 폭소에 숨 넘어 간다며 제 가슴을 탕탕 두드려대였다. 그 귀여운 《쌍까풀눈》이 성실이의 발효사료를 먹고 새끼를 아홉마리나 낳았으니 숙경이가 기뻐할만도 했다.

《성실이, 이젠 집안으로 들어가자구.》

숙경은 기분이 활짝 개여 성실의 팔을 끌었다. 성실이 주춤거리는 기색이자 그는 현이 아버진 출장중이라고 나직이 귀띔했다.

《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는데 열흘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누만.》

《그래요?》

성실은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왜 무슨 일이 있나?》

《현이 어머니, 전··· 연구사업을 그만둬야 할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린가?》

숙경이 깜짝 놀랐다.

성실은 너무 죄송스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지금까지 현이 아버지가 리미액연구에 얼마나 큰 기대와 애착을 품고 살틀히 돌봐줬던가. 3년전 평양에서 내려와 리미액연구사업을 하던 성실이가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일군들의 반대에 부딪쳐 고심할 때 태혁은 그를 찾아가 절대로 동요해선 안된다고 적극 고무해주었다. 리미액연구사업은 장군님께서 관심하시는 문제인데 어떤 사람들이 되느니마느니 하며 시비질인가. 성실이가 안착된 마음으로 일할수 있게 태혁은 평양에 있는 그의 가족까지 데려다 강계에 거주시키고 《연구사업을 기어코 성공하고 여기서 행복하게 사오.》라고 말했다. 그 일이 고마와 성실이가 희천미생물공장과 시험포전들에 나가서 살다싶이 하자 태혁은 가족들과 만날수 있게 몇번이나 승용차를 보내주었는지 모른다. 여태껏 그렇게 애써 추진시켜온 연구사업을 중단하게 된 성실의 얼굴은 이지러진 희미한 달처럼 처량한 인상을 자아내였다.

《현이 어머니, 절 나쁜 녀자로 생각지 마세요. 전 자강도에 와서 많은걸 배웠어요. 책임비서동지와 같은 당일군을 만나면 수많은 과학자들이 제 구실을 하게 된다는것을 진심으로 느꼈어요. 전 연구사업이 고되고 힘에 겨웠지만 행복했어요. 제가 언제 이런 말을 하던가요? 안했어요. 전 연구사업을 성공하고 말씀드리고싶었어요. 그런데 과학원에서 연구소 부소장이 저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다며 매일같이 연구사업을 그만두고 올라오라는 독촉이예요. 아무 일도 할수 없어요. 정말 마음이 괴로와 더는 못 견디겠어요. 전 가도 책임비서동지한테 간다는 말이라도 하려고 이렇게···》

성실은 숙경이한테 손을 맡긴채 목안의 점막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 아무데도 못가! 동문 책임비서의 승인이 없이는 이 자강땅을 떠날수 없는 사람이야.》

숙경이도 안타까움에 싸여 그렇게 말하고 성실의 앞을 막아섰다.

《성실이가 연구한 미생물을 맨 먼저 도입한게 축산이였지. 지금도 얼마나 말들이 많아? 알곡만 먹던 돼지들이여서 발효사료를 잘 먹지 않고 먹은 돼지들은 류산을 하거나 죽은 새끼를 낳는다고들 해. 저 도깨비 같은게 멋 모르고 덤빈다거니 정신병자라느니 별 험한 소릴 다 한다면서? 그따위 소릴 두려워해선 과학을 못해. 우리 집 〈쌍까풀눈〉은 발효사료를 먹고도 끄덕없이 자라구 아홉마리의 새끼를 낳았어. 뭐가 겁나서 연구사업을 포기해? 배심을 굳게 가지고 모두들 들으란듯이 당당히 소문을 내자구. 축산을 전문으로 하는 독산동가내반에서도 귀가 항아리만해지게! 이런 소문이야 왁자하게 나면 날수록 좋을게 아닌가. 성실이 덕분에 온 자강도사람들이 돼지를 식은 죽 먹기로 기르게 됐다고 신문에도 내고 한바탕 법석 떠들어보잔 말이야.》

때마침 집안에서 뜨릉뜨릉 울리는 전화종소리를 듣고 달려들어간 숙경이 얼른 송수화기를 들었다.

《예? 예 예··· 아니,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무가 어떻게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 갔어요. 네··· 에··· 그런데 왜 못 받아요. 어림도 없다구요? 하기야 지금은 모든게 바른 때니까··· 예.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럼 수고하세요.》

숙경은 전화를 받고 얼른 나와 성실의 손을 당겨 잡으며 또다시 극성스럽게 타일렀다.

《성실아, 도안에 강재가 떨어져 행정위원회 장관우부위원장까지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 갔다누만. 기계공장의 자동선을 내밀자고 해도 강재가 없다면서··· 모두들 저렇게 뛰고있는데 동문 이게 무슨 꼴인가. 사실 동무의 연구사업을 위해 가정까지 강계로 내려온게 아니겠어? 안해를 도와나선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물러서면 안돼!》

성실의 남편 최성진은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의 설계를 담당한 근면하고 량심적인 기사이다. 성실이가 두석달씩 빈번히 집을 떠나 시험포전들에 나가 살아도 성진은 군말없이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주부노릇을 하며 자동선개조의 완성을 위해 애써왔다. 이제 자기가 연구사업을 포기하고 평양으로 올라가면 그의 가정도 부득불 이사짐을 싸들고 강계를 떠날수밖에 없다. 남편까지 가버리면 기계공장의 자동선개조는 어떻게 될것인가? ···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가지 아니여서 속상해하는 성실의 오목하게 꺼진 눈구석에 갑자기 눈물이 샘솟듯 고여올랐다.

《현이 어머니, 전 남편앞에서도 죄진 녀자예요.···》

성실은 서러운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젖은 얼굴을 싸쥐며 대문밖으로 와락 뛰쳐나갔다.

《성실이!》

깜짝 놀란 숙경이가 뒤쫓아나갔으나 성실은 돌아다보지 않고 그냥 엎어질듯 하며 마구 달음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