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5

 

제 1 장

5

 

한밤중에 요란한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방등불도 없는 컴컴한 방안의 침대우에 벌떡 일어나앉은 태혁은 원탁우의 송수화기를 얼른 당겨잡았다. 이틀동안 도안의 수해지역들에 나갔다와 두시간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선잠을 깬 그는 독감에 걸린 사람처럼 꽉 막혀버린 목안을 가다듬으면서 어험어험 헛기침을 했다. 송수화기에서 희천시당책임비서의 흥분한 목소리가 쩡쩡 귀청을 울리며 들려왔다.

《책임비서동지, 오늘 저녁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에 찾아오셨댔습니다.》

《뭐요? 그게 사실이요?》

태혁은 갑자기 큰 충격을 받고 숨이 막히였다. 수화기를 꽉 틀어잡은 그는 《장군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시오?》라고 물어보고싶었으나 가슴만 두근거릴뿐 말이 제대로 나가주지 않았다.

《사실이라니까요.··· 어버이수령님께서 장두칠동무를 무척 아끼셨는데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다고 몹시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공장의 책임일군들과 함께 자동베트흐름선현장에 들어가 로동자, 기술자들의 생활, 생산정형까지 자세히 료해하고 떠나시다가 희천시의 밤거리에서 돌아다니는 방랑아들을 다섯명이나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희천려관에 보내주시면서 그 아이들을 도당책임비서동지에게 맡긴다고 하셨습니다. 림산마을 로동자집에 들려 풀죽가마도 열어보시구요.》

《도대체 무슨 소릴 하구 있소!》

태혁은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원탁을 탕 쳤다. 장군님의 승용차에 방랑아이들이 타다니? 에익!··· 이런 기막힌 일도 있는가? 수화기안은 잠잠하다. 이삼분가량 심장이 떨리여 잠자코있던 태혁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누르지 못하며 다시금 굵진 음성으로 다급히 물었다.

《장군님께선 무슨 말씀이 없으셨소?》

《자강도에선 무역을 해야 먹고 살아갈수 있다시며 희천공작기계공장에 한 교대분의 전력을 보장해줄데 대한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셨습니다.》

태혁은 한동안 두눈에 눈물을 듬뿍 머금고 앉아있었다.

그의 손아귀에서 수화기가 저절로 맥없이 떨어져내리였다. 원탁에 데룽데룽 매달린채 흔들리는 수화기안에서 《책임비서동지··· 책임비서동지!》하고 다급히 웨치는 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태혁이가 정신을 잃고 졸도한것같아서 부르짖는 겁질린 소리였다. 태혁은 여전히 고개를 푹 떨구고 나무등걸처럼 숨기없이 멍하니 앉아있었다. 한참만에야 그는 《이렇게 오실줄이야 알았던가···》하고는 수화기를 힘없이 집어놓았다.

장두칠의 비참한 희생과 거리에서 헤매는 방랑아들··· 몇해만에 자강땅에 찾아오신 장군님의 심정이 얼마나 쓰리시였으랴. 태혁은 긴 팔을 무릎우에 놓고 밤깊어가는줄 모르며 어둠속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아무리 오늘의 고난이 가혹하여도 자강도 인민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자기가 구실을 못하고있다는 가책이 그의 정수리를 철퇴처럼 후려쳤다.

온밤 잠을 자지 못해 얼굴이 부어오른 태혁은 이튿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희천공작기계공장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배인의 기쁨에 찬 목소리가 울려왔다.

《지배인이 전화를 받습니다.》

《여기 도당이요.》

《아, 책임비서동집니까. 그러지 않아도 제가 먼저 전화를 하려고했는데 사람들이 연방 들이닥치는 바람에 깜박 잊었댔습니다. 정말 안됐습니다.》

《뭐 안될것 있소.》

태혁은 미안해하는 지배인의 마음을 꾹 눌러놓고 침착하게 말했다.

《장군님께서 동무네 공장에 찾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소. 희천공작기계공장이 돌아가게 되였다니 정말 꿈같소. 우린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공작기계를 생산하여야 인민들을 먹여살릴수 있소.》

《예, 벌써 장군님께서 공장에 찾아오신 소식이 온 희천시내에 쫙 퍼져 로동자들이 공장으로 파도처럼 밀려나오고있습니다. 집에서 겨우 운신을 하던 사람들, 희천려관에 누워있던 기술자, 기능공들도 모두 꼭두새벽에 떨쳐나와 설레입니다.》

《됐소. 이젠 전천탄광문제만 해결하면 될것 같소. 우선 탄광에 들려 갱을 복구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 그리로 가겠소. 생산에 속히 착수하도록 힘써주시오.》

《알겠습니다.》

태혁은 수화기를 놓았다가 다시 들고 인풍려관의 《고아원》책임자를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당장 아이들의 명단을 가지고오시오.》

그의 엄한 요구에 주눅이 들어버린 마흔댓난 젊은 녀인이 얼마후 사무실에 나타났다.

태혁은 녀인이 조심히 내미는 아이들의 명단을 받아들고 그를 쳐다보지 않으면서 물었다.

《지금 〈고아원〉아이들이 몇명이요?》

《152명입니다.》

얼마전만 해도 200명 가까이 되던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가? 명단의 여러 곳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벅벅 그어버린 자리들이 눈에 띄여 가뜩이나 화독처럼 달아오른 태혁의 울화를 돋구었다.

《이 아이들은 죽었소?》

《아닙니다. 〈고아원〉에서 배고프다고 도망쳤습니다.

두달전에는 한꺼번에 다섯명씩이나 없어졌습니다.》

(다섯명··· 그러니 바로 장군님의 아픈 눈물을 자아낸 그 아이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분격이 치밀어오른 태혁의 검붉은 볼편이 무섭게 푸들푸들 떨렸다.

《도망쳤다구? 그 말이 쉽게 나가오? 그 애들이 동무의 자식이라면··· 동무가 낳은 아이들이였다면!··· 동문 정신나간 녀성처럼 울며불며 뛰여다니면서 기어이 아이들을 찾아왔을거요. 지금처럼 몰인정하게 아이들의 이름을 수월히 지워버릴수가 있었겠소? 말해보시오. 동무도 과연 모성애를 지닌 녀성이요?》

태혁의 불같은 추궁에 새파랗게 얼굴이 질린 녀인은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엄중하오. 내가 고아들을 제 혈육처럼 아껴주라고 몇번이나 말했소?》

《고아원》책임자는 고개를 숙인채 나직이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엄하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인정이 무른 태혁은 한참이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린 마음을 묵새기다가 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희천려관에 가서 그 아이들을 데려와야겠소. 동무가 이 명단에서 몰인정하게 지워버린 애들을 어느분이 찾아주셨는지 똑바로 알고오시오. 돌아오면 즉시 나한테 보고하오.》

녀인은 변변히 대답도 못하고 얼굴을 싸쥐며 방에서 달려나갔다. 태혁은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고아원》책임자가 밖으로 나간후에야 태혁은 책상앞으로 돌아와 앉아서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꾹 눌러짚었다.

지금 도안의 주민들에게는 하루 30g의 식량도 공급하지 못하지만 《고아원》에는 250g씩 어김없이 보장해준다. 그런데 배고파서 도망친다?···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예닐곱살난 철부지들을 탓할수야 없지 않는가? 문건을 보니 제부모의 생사여부조차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였다. 이제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우리 인민이 잘 살게 될 그날에도 이 애들은 여전히 고아로 남을것인가. 그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아이들의 이름을 자기의 사업수첩에 한명한명 큼직하게 옮겨 적다가 도행정위원회 장관우 부위원장이 급히 들어와 숨넘어가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펜을 멈추었다.

《책임비서동무, 어제 장군님께서 우리 도에 찾아오신 소식을 들었습니까?》

《지난밤 희천시당에서 련락을 받았소. 내가 일을 쓰게 못해 그이앞에 큰 죄를 졌소.》

《그만 진정하십시오. 장군님께서 찾아주신 덕분에 이젠 사람들을 살릴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장관우가 코멘 소리를 하고나서 무거운 한숨을 몰아쉬였다.

《그렇지만 장군님의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겠소. 희천공작기계는 돌아가게 됐으니 전천탄광으로 갑시다. 전천탄광의 생산이 멎으면 우린 녹소.》

태혁의 성칼진 말에 담겨있는 심각한 의미를 깨닫고 장관우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전이였다. 전천탄광 지배인한테서는 탄광의 기본갱인 《20주년갱》에 물목이 터져 채탄장들이 몽땅 침수될 위험에 직면했다는 비상통보가 날아왔다. 최근 전력의 초긴장성때문에 전천탄광의 생산량이 급강하하여 거기에 명줄을 걸고있는 도내 800여개 지방산업 공장들이 숨죽어버리는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기본갱을 페갱할 형편에 처해있다니 앞이 막막했다. 태혁은 즉시 도당비상회의를 소집하고 선전부 일군들을 현지에 내려보냈다.

지금 탄광에서는 총 력량을 동원하여 기본갱에 잠겨있는 물을 퍼내고 한편으로는 도청년동맹산하의 천여명 돌격대원들이 벌떼처럼 새까맣게 달라붙어 탄광의 버럭산에서 《수집탄》을 채취하기 위한 전투를 맹렬히 벌리고있다. 이전에 선별기가 온전치 못해 아깝게 버럭더미속에 묻혔던 석탄을 하루 2백t씩 채취한다니 모두들 무척 힘에 겨울것이였다. 이럴 때면 태혁은 오금이 쏴서 도무지 자기 사무실에 붙박혀있지 못한다. 다년간 정무원의 주요직책에서 사업한 경험이 있는 태혁은 당일군인 동시에 철저한 경제실무가였다.

그가 예상치 않았던 복잡한 일들에 들볶이다가 밤 10시가 지나 구봉령을 넘어 전천으로 찾아갈 때였다. 태혁의 옆에 제빠듬히 앉아서 꾸벅꾸벅 졸던 장관우가 넌지시 귀띔했다.

《책임비서동무, 이왕이면 희천기관차대 수출전용견인기수리정형도 알아보지 않겠습니까?》

《옳소. 당장 공작기계가 생산돼나오겠는데 수출전용견인기수리작업을 다그쳐야겠소. 전천탄광에는 돌아오는 길에 들립시다.》

태혁은 어지간히 피로를 느끼며 의자에 몸을 지그시 기대였으나 목전의 긴박한 일때문에 도무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미 고난의 행군초기에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의 실태를 료해하시고 린접한 나라와의 변강무역을 활발하게 벌려 도안의 식량문제를 풀데 대한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긴장되여있는 휘발유사정이 옴짝달싹 못하게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태혁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중 희천기관차대 일군들에게 낡은 기관차와 차량들을 수리정비하여 수출전용견인기와 화차들을 마련할 긴급과업을 떨구었다. 아무리 휘발유사정이 곤난해도 철도만 잘 리용하면 대량적으로 제기되는 수출입물자들을 신뢰성있게 수송하여 무역거래를 신속히 추진시킬수 있다. 때가 때인것만큼 희천기관차대에는 도당선전부의 녀성부원 박혜경이가 파견되여 로동자들과 함께 침식을 하며 최단 기일내에 수출전용견인기를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아글타글 애쓰고있다.

《부위원장동무, 눈을 좀 붙이오. 희천에 도착하면 잠잘 시간이 없소.》

《저야 뭘···》

장관우가 무겁게 드리운 눈덕을 치뜨며 심드렁히 대답했다.

태혁이 매사에 심중하고 주도세밀한 반면에 장관우는 데설궂은 성미때문에 사업에서 빈구석을 드러내군 하는 일군이였다. 이러나 저러나 과격하고 꼼꼼치 못한 약점이 있지만 태혁에게는 이 내밀성있는 장관우만큼 미더운 일군이 없다. 다혈질의 불깃한 얼굴에 볼살이 약간 처진 장관우는 거의 무표정했다.

그의 무릎우에 놓인 큼직한 손에는 니켈도금한 손전지가 쥐여있었다.

태혁은 그 낯익은 손전지에 시선을 던졌다. 요즘도 장관우는 퇴근길에 나서면 저 손전지를 켜들고 강계시안의 골목길을 샅샅이 훑으며 방랑아들을 찾아다니느라 늘쌍 늦게야 집으로 돌아간다. 벌써 일년 남짓이 몸에 쩌들어배인 그 《야간순찰》이 손전지를 애용물로 만들어버려 장관우는 멀쩡한 대낮에도 습관처럼 들고다닐 때가 많다. 누가 뭐라고 시까스르면 《동문 몰라서 그래. 내 눈엔 좀체로 띄지 않는 방랑아들이 도당책임비서한텐 왜 그렇게도 잘 걸려드는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란말요.》하고 빙긋이 웃군 한다.

그들이 희천에 당도했을 때는 새벽 3시경이였다. 희천시는 깊은 고요속에 잠겨있었다. 밤하늘에서 드문드문 싸락별들만이 희미하게 반짝였다.

태혁은 전후에 바로 여기 희천공작기계공장에서 현장기사로 일했다. 그때 몸집이 다부진 장관우가 단조장의 공기함마앞에서 시뻘건 쇠덩이를 이리저리 굴리느라 땀을 뻘뻘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태혁은 그후 여러해동안 장관우와 헤여져 지내였다. 그러다가 정무원에서 사업할 때 젊은 단조작업반장이 자강도 림업총국 국장으로 승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관우가 평양으로 출장을 올 때면 그와 마주 앉아 인생회포를 나누군 했다. 결국 그들은 오늘 잊을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는 정든 고장으로 함께 찾아온셈이였다.

《책임비서동무, 이거 반지빠르게 왔군요. 지금은 기관차대에 가보나마나 합니다. 그 동무들도 잠을 자야 일하지요.》

장관우가 잠기어린 부석부석한 눈을 꿈벅거리였다.

《아니요. 가봅시다.》

지금은 수출전용견인기의 제작만큼 긴급한 일이 없다. 이악쟁이 혜경이가 이 밤도 안타까와 콩당콩당 뛰며 현장에서 꼬박 새울런지 모른다. 그들은 희천역에 당도하자 승용차에서 내려 역구내로 들어섰다. 저쪽 어둠속에서 새벽정적을 깨뜨리며 망치질하는 소리가 쾅쾅 울려왔다. 전기기관차수리현장이였다.

《저것 보오.》

한발 앞서 철길을 가로지르며 급히 걸어가던 태혁은 잠시후 발길을 멈추었다. 누군가 전기기관차밑의 가마니짝우에 누워서 쇠판을 두드려대다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꽥 소리를 쳤다.

《여! 혜경동무, 고집부리지말구 좀 들어가 눈을 붙이오. 괜히 골병 만나면 누굴 혼내울테요? 동문 똑똑한것 같은데 막혔어. 제몸 건사야 제가 해야지.

뭣때문에 만날 잔소릴 하게 만드오. 허참···》

그는 저혼자 게두덜거리다말고 목을 뽑아들며 《왜 말이 없소. 이거 귀먹쟁이가 됐나보군.》하고 노죽을 부렸다.

태혁은 그제야 가까이 다가서며 말을 건늬였다.

《동무 수고하오.》

《엉? 동문 누구요?》

《나 도당책임비서요.》

《예- 에?》

목소리의 임자가 기겁하여 전기기관차밑에서 벌렁벌렁 기여나왔다. 서른댓 돼보이는 담차게 생긴 젊은이였다. 철도제복의 목깃단추를 반쯤 열어제낀 그의 앙바틈한 몸에서는 기름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청년은 너무 헤덤볐다치는 바람에 비뚤어진 모자를 바로 쓰며 멋적게 인사를 했다.

《미안하긴. 난 동무의 말을 듣고 많은걸 알게 되였는데··· 동문 여기서 무슨 일을 하오?》

《기관차대 수리작업반장입니다.》

《마침 만났구만, 일이 잘돼가오?》

《예. 혜경동무가 다몰아대는 바람에 우린 뽕빠지는줄 모르고 뜁니다.》

태혁은 수리반장의 걸죽한 말에 빙긋이 웃었다.

《혜경동무가 작업반장도 막 쥐구 흔드는게로군.》

《그런게 아니구 혜경동무가 하도 열성이여서 우린 굴레씌운 황소처럼 끄는대로 따라갑니다. 정말 그 동무같은 이악쟁인 보다 처음입니다.》

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그는 이따금 혜경을 바라보며 어디서 저런 보배덩이가 굴러왔을가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혜경은 1991년 9월 자강도를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연풍혁명사적관을 돌아보신 날 해설강의를 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름답게 새겨진 녀성이였다. 워낙 혜경은 사적관 강사가 아니라 학술연구원이였다. 강계사범대학을 졸업한 혜경은 사적관에 배치되자마자 남달리 탐구심이 많고 정열적인 처녀로 지목을 받았다. 혜경은 그 누구의 천거에 의거해서가 아니라 자기의 천성적인 재능덕분에 학술연구부에 들어가 당당히 일하였다. 중키에 탄탄한 몸매, 얼굴도 동그스름하게 생긴 혜경은 인물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너무도 뛰여난 점이 많았다. 그래서 자주 사람들로부터 령감냄새가 나는 학술연구원으로 두기가 아깝다는 애정이 담긴 말을 들어왔다.

혜경은 자기의 금새가 한창 그렇게 물망에 오르던참에 영광스럽게도 사적관에 찾아오신 수령님께 강의를 해드렸다. 전문강사들의 고정격식적인 강의보다는 혜경이의 풍부한 지식이 수령님의 옛 추억을 자세히 일깨워드릴수 있다는 일치한 의견들이 모아져 심중히 선발된것이였다. 사적관직원들의 혜경이에 대한 기대에는 자그마한 오차도 없었다는것이 뜻깊은 현지지도과정의 매 순간순간마다에서 여실히 실증되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혜경이가 사적관주변의 나무 한그루 풀한포기에도 소중히 스며있는 사적내용을 열정적으로 강의해올리자 《동무가 나도 다 잊어버린 일을 어떻게 이처럼 잘 아오? 정말 고맙소.》라고 하시며 아낌없는 치하를 안겨주시였다. 혜경이가 너무도 대견하게 생각되시여 수령님께서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라며 동기와를 씌운 예전의 나지막한 객주집앞에서 혜경이와 함께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였다. 사적관을 떠나기에 앞서 눈물이 그렁해진 혜경이의손을 잡으시고는 다시한번 꼭 찾아오겠으니 너무 서운해말라는 다정한 말씀도 하시였다. 그렇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떠나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강땅에 다시 오시지 못할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결국 혜경은 어버이수령님의 마지막걸음을 기쁘게 해드린 처녀로 의롭게 남았는데 태혁이가 혜경이만 보면 자꾸만 수령님생각이 떠올라 작년가을 도당으로 소환하였다. 혜경이에 대한 애착과 충분한 파악이 있는 태혁이였기에 도당에 입직한지 1년도 안되는 녀성이지만 그를 믿고 희천기관차대 견인기복구현장의 상무로 직접 파견했었다.···

수리반장은 한바탕 혜경에 대한 자랑을 터뜨려놓고 나서도 성차지 않은 모양 무슨 말인가 더 하려고 태혁을 쳐다보며 비위좋게 물었다.

《이야기를 마저 하랍니까?》

《어서 하오.》

태혁이도 혜경에 대한 말이면 좀 더 듣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혜경동문 우리 수리작업반원들앞에 나타나자 이렇게 선동했습니다. 이 수출전용견인기가 오늘의 고난의 행군시기 자강도인민들을 먹여살리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면서 보름동안에 무조건 살려내자구 말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입을 딱 벌렸지요. 그러자 혜경동문 사처에서 굶주림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는가며 눈물을 주르르 흘렸습니다. 우린 꿀먹은 벙어리처럼 버벙해앉았다가 자리를 털고일어나 견인기수리현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날부터 꼬박 밤을 새며 죽을내기로 전투를 벌렸습니다. 사날전에 견인기를 거의 다 수리해놨는데 제동장치가 낡아서 골치를 앓았지요. 우리한테 예비품만 있다면야 무슨 걱정이였겠습니까. 분명 개천철도국에 있을게 뻔한데 전화로 알아보니 없다고 깍쟁이를 부리며 딱 잘랐습니다. 그러는걸 혜경동무가 그날 밤중으로 개천철도국에 찾아가 낯도 코도 모르는 구두쇠창고장을 구슬리며 담배 술을 고이느라 제 주머니를 말짱 털면서 뽑아왔습니다. 모두들 코마루가 찡해졌지오다.》

태혁이도 눈굽이 시큰해나는것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언제면 견인기가 뛸수 있소?》

《오늘 12시쯤 시운전을 하겠습니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

태혁은 반가운김에 수리반장의 시커먼 손을 힘껏 잡아주고 휑뎅그렁한 역구내를 둘러보았다.

《혜경동문 어디로 갔소?》

《글쎄 잠간 갔다 온다구 했는데··· 제가 가서 찾아오겠습니다.》

수리반장은 얼른 돌아서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주밋거리였다.

《책임비서동지, 저···》

《뭔지 말하오.》

《다름이 아니라 혜경동무를 당장 데려가주십시오. 까딱하면 큰일 나겠습니다. 벌써 보름동안이나 밤을 새운데다가 전 굶다싶이하면서 우리한테 밤참을 보장하느라··· 저러다간 영낙없이 쓰러지고맙니다.》

혜경이의 여돌진 성미에 충분히 그럴수 있었다.

《알겠소.》

그때 차츰 어둠이 바래여가는 역사쪽에서 두팔을 옆으로 내저으며 달려오는 혜경의 발자국소리가 토닥토닥 울려왔다.

태혁은 한손을 허리에 올려짚고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저 낯익은 활개짓이며 금방 엎어질듯 뛰여다니며 명랑하게 웃군 하는 귀염성스러운 모습때문에 혜경은 늘쌍 가정부인인 제 나이보다 훨씬 애젊어보인다.

태혁은 철도침목을 골라짚으며 숨가쁘게 달려오는 혜경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어 몇걸음 마주 걸어갔다. 그러나 정작 혜경이와 마주선 태혁은 억이 막혀 무슨 말을 못했다. 자그마한 쇠주전자와 종이봉지를 량손에 갈라쥔 혜경은 꼭 기관차대 녀인들의 행색이였다. 도당에 있을 때의 보동보동하던 얼굴이 고달픈 객지생활에 치워 반쪽이 되고 창백해졌다는것이 어둠속에서도 헨둥히 알리였다.

《책임비서동지, 이 날씨에 어떻게 오셨습니까?》

보름만에 만난 혜경은 그의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막 반가와했다.

혜경이가 아무리 기뻐해도 태혁은 그의 축간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혜경이 힘들지? 뭘 가져왔소?》

《더운 물과 강냉이빵입니다.》

혜경이의 그 말에 수리반장이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리였다.

《보십시오. 바로 이렇습니다!》

혜경은 옆에서 수리반장이 눈을 딱 부릅뜨고 투덜거리여도 이젠 귀에 못박히게 들어온 소리라는듯이 생긋 웃으며 태혁에게 견인기의 수리정형을 보고했다.

《저 수리반장동무랑 밤을 꼬박 패면서 두달 걸려도 어방없다던 견인기수리를 보름동안에 끝냈습니다.》

《알고있소. 정말 수고했소. 내가 여기로 혜경동무를 보낸 보람이 있구만. 이건 대단한 성과요.》

태혁은 그렇게 말하고 또다시 혜경의 반쪽이 된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수리반장의 말처럼 혜경을 기관차대에 더이상 둬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돌아가는 차편에 데리고가야 할것 같았다.

《혜경이, 그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오늘은 나와 함께 가자구. 수리반장동무도 이젠 혜경이가 없어두 된다니말이요.》

기관차대 수리반장이 혜경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나 하여 그를 힐끔 훔쳐봤다. 그는 우둘투둘하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인간성도 있고 혜경을 여간 아끼는 눈치가 아니였다.

혜경은 잠자코있었다.

《왜 말이 없소?》

《책임비서동지···》

뒤말을 흐려버리는 혜경의 두눈에 별안간 엷은 눈물이 감돌았다.

《지금 희천시 로동계급은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섰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찾아오시여 공작기계공장이 돌아가게 되였다면서 온통 들끓고있습니다. 굶주림때문에 퉁퉁 부은 얼굴로 공장에 출근합니다. 죽어도 기계설비를 베고 죽겠다고들 합니다. 전 그 억센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발을 악물고 하루빨리 견인기를 살려야겠다는 결심을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태혁은 잠시 말없이 서있었다. 혜경은 견인기의 수리작업만이 아니라 그에게 보다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를 상기시키고있었다. 지금 어디서나 식량난은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있다. 혜경은 자기가 직접 보고 체험한 눈물겨운 사실, 로동자들과 기술자들이 모진 기아와 생활난을 어떻게 참고 견디는가를 구태여 까밝혀 말하지 않았다. 혜경의 두눈에 가뿍 고여있는 눈물만이 그가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주고있었다

《알겠소. 혜경이.》

《책임비서동지!··· 전 돌아가고싶어도 갈수 없습니다.》

혜경이가 갑자기 쓰러질듯 하며 비칠거리였다.

수리반장이 말한것처럼 보름동안 굶다싶이 하며 밤을 새웠으니 아무리 속대가 강한 혜경이도 능히 꺼꾸러질수 있었다. 태혁은 수리반장이 왜 그처럼 혜경을 데려가달라고 완강히 우기였는가를 비로소 똑똑히 알게 되였다. 그러나 혜경은 애써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 무슨 시라도 읊듯이 열정을 담아 말하였다.

《책임비서동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 견인기까지 붕- 기적소리를 울리며 힘차게 뛰면 온 희천시 로동계급들이 마구 환성을 올릴겁니다. 우린 오늘 낮 12시 견인기의 시운전시각이 되면 기적소리를 요란하게 울리기로 약속했습니다. 온 희천시가 들썩하게 말입니다!》

태혁은 혜경의 뜨거운 마음에 감염된듯 터져나오는 눈물을 삼키면서 목청을 돋구었다.

《혜경이, 왜 희천시만 들었다 놓겠소. 그 기적소리를 전천탄광의 탄부들도 다 듣게 하자구! 지금 전천탄광의 〈20주년갱〉은 예상외의 침수로 생산이 중단되였소. 탄부들이 갱안의 물을 퍼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전투를 벌리는데 그들에게도 동무들이 살려낸 견인기의 기적소리는 힘이 되고 용기를 불러일으킬거요. 희천과 전천, 온 자강땅에 메아리쳐가게 기적소리를 더 크고 더 장중하게 울리시오!》

태혁은 원래 요란한 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은 어디까지나 본질이지 그 어떤 즉흥적인 감정의 분출이 아니였다. 그래서 언제나 부단히 사색하고 탐구하며 침착성을 잃을 때가 없는 태혁이였지만 오늘은 혜경이앞에서 꽉 움켜쥔 오른손을 내흔들면서 목메인 소리로 힘주어 말하였다. 평시에 늘쌍 조용하고 무게있게 울리던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쇠판이라도 두드려대는것처럼 희천시가의 고요한 밤대기를 흔들면서 드렁드렁 울려퍼졌다. 혜경은 자기의 말이 그렇게도 태혁의 기쁨으로 되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는지 눈을 깜박이며 서있다가 《알겠습니다. 책임비서동지!》하고 희열에 넘쳐 대답하였다. 그러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저 멀리 동쪽하늘가에서는 벌써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희천시를 성벽처럼 둘러싼 산발들이 어느덧 미명속에 거연한 자태를 희붐히 드러내고있었다.

태혁은 수리작업반장에게 손을 쳐들어보이고는 두눈에 눈물을 머금은 혜경을 세워두고 곧 전천으로 떠났다. 희천기관차대 견인기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 이제 전천탄광만 살려내면 당장 숨통을 조이며 엄습하는 어려운 생활난을 한고비 넘길수 있었다. 그후에 제기되는 문제는 그때에 가서 두고볼 판이였다. 지금은 전천탄광문제만 해도 아름이 차고 다른 일에 마음을 쓰고싶지 않았다.

태혁은 전천탄광에 당도하자 승용차의 차창쪽으로 바투 다가앉았다. 탄광마을의 버럭산밑에서 나붓기는 붉은기발들과 구호판들, 질통을 지고 분주히 드달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선이 끌리였다. 《수집탄》채취에 떨쳐나선 청년돌격대원들의 들끓는 전투장이였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고 써붙인 구호판을 배경으로 바글바글 끓어대는 돌격대원들의 땀투성이얼굴들이 차츰 눈앞에 선명히 안겨왔다.

웬 젊은이가 버럭더미에 발이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승용차를 향해 기운차게 달려왔다. 도청년동맹비서였다.

《차를 세우시오!》 태혁은 운전사에게 소리쳤다. 승용차는 차체를 부르르 떨며 올리막길에서 급히 멎어섰다.

태혁은 얼른 차문을 열고나갔다. 장관우도 뒤따라 내렸다.

《청년대장, 수고하오.》

태혁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년동맹비서의 얼굴과 작업복은 숯덩이처럼 새까맸다. 그는 태혁의 손을 잡으려다가 당황히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석탄가루에 범벅이 된 상처자리가 얼핏 눈에 띄였다.

《아니, 온통 물집투성이구만.》

《뭐 이까짓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청년동맹비서는 태혁이 잡고 살펴보는 손을 당기면서 셈평좋게 웃었다.

《손이 이렇게 만신창이 됐는데두 동문 웃누만.》

《책임비서동지, 저 질통을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죽기내기로 뛰여다니는 처녀들은 어떤지 압니까? 어깨에 피멍이 져도 막무가내로 일합니다. 어떤 처녀들은 어깨의 살가죽이 다 벗겨지고 그 자리에 석탄가루가 묻어 시꺼멓게 석탄입묵이 생겼습니다.》

《뭐 석탄입묵?···》

태혁은 억이 막혀 더 말을 못했다. 이십대의 한창 피여나는 처녀들의 아릿다운 몸에 석탄입묵이 생기다니?··· 청년들이 하루 《수집탄》을 2백t씩 생산한다지만 너무나도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에 가슴속이 쓰리여났다.

태혁은 희천기관차대에 가서 혜경의 창백한 얼굴을 보았을 때처럼 아픈 마음을 안고 몇발자국 거닐다가 청년동맹비서와 다시금 마주 섰다.

《동문 자랑삼아 말하지만 이건 너무해! 청년동맹비서. 장군님께서 우리 혁명의 천하지대본이라며 얼마나 아끼시는 청년들이요? 저 꽃다운 처녀들의 어깨에 석탄입묵이 생긴 사실을 아시면 장군님께서 동무나 나를 용서하실것 같은가! 대답해보라구. 우리 자강도의 실태는 어렵고 난관은 첩첩히 앞을 가로막아나서지만 그것으로는 변명이 되지 않어. 다른 방도가 있을텐데 우린 아직도 그걸 찾지 못하고있거든. 찾지 못하구 있어···》

짓수굿이 고개를 숙였던 청년동맹비서의 두눈이 감때사납게 번뜩이였다.

《책임비서동지, 우린 그 어떤 고통도 얼마든지 참고견딜수 있습니다. 설사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어도 부족되는 석탄을 〈수집탄〉으로 보충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탄광의 〈20주년갱〉은 전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전력부족으로 갱안의 물을 퍼내지 못합니다. 양수작업은 중지되고 채탄장들은 거의다 침수됐습니다.》

《···》

태혁은 숨이 꺽 막혔다. 두말없이 돌아선 그는 승용차에 오르며 차문을 힘껏 후려닫았다. 거기서 탄광사무실까지는 멀지 않았다. 잠간이면 걸어갈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목전에서 벌어지고있는 사태의 엄중성은 단 일분의 시간도 허용하지 않고 사정없이 그를 때려 몰았다. 태혁은 우선 탄광지배인을 만나 구체적인 실정을 료해하기로 마음먹고 손기척도 없이 지배인실에 불쑥 들어섰다. 마침 탄광지배인, 기사장, 도당선전부일군들이 모여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의논하다가 그가 방안에 급히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벌떡 일어섰다.

《앉소. 앉으시오.》

태혁은 그들이 제 자리에 앉자 거센 목소리로 물었다.

《지배인동무, 지금 전력이 얼마나 보장되오?》

탄광지배인이 거푸시시한 얼굴을 쳐들고 엉거주춤 일어섰다.

《하루 두시간도 안됩니다. 밤낮으로 열흘동안 퍼내야 할 방대한 물이 갱안에 차있는데··· 고작 두시간입니다. 현재상태에서는 탄광을 구원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전혀 방도가 없단말이요?》

《지금 같아선 암담합니다. 당분간이나마 도안의 공장들에서 전력을 당겨올수 있으면 좋겠는데 누구도 결론할 사람이 없습니다. 도는 국가적으로 보장하는 공장, 기업소들의 전력을 좌우지할 권한이 없잖은가요. 어제 송배전부지배인한테 제기했는데 대번에 재판감이라고 큰소리를 치더군요.》

탄광지배인이 도로 앉자 태혁은 도송배전부 지배인의 말을 입속으로 되씹었다.

《재판··· 재판감이라구?》

원칙적으로는 송배전부 지배인말이 옳다. 그렇다고 전천탄광을 페갱시키겠는가? 크나 작으나 여기에 자강도 지방산업공장들이 목줄을 걸고있는데 누구도 결론할 사람이 없다는 탄광지배인의 말이 쇠방망이처럼 정수리를 때렸다.

(역시 전력··· 전력이 문제다!)

탄광의 막막한 사태를 실증하듯 지배인실의 책상우에 큼직한 카바이드 구리등잔이 덩그렇게 놓여있었다.

벌써 몇해째 국가적으로 긴장된 전력때문에 도안의 주요 공장기업소들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다.

밤이면 주민지역들이 어둠속에 잠기고 병원에만 겨우 전기를 보장하는 형편인데 어디에 전력이 있겠는가. 전력이 없으면 희천기관차대 견인기도 부득불 멈춰설수밖에 없다.

태혁은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은 그런 가슴아픈 생각끝에 전화기가 놓인 탄광지배인의 책상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장군님께 전천탄광이 처한 위급한 실태를 보고드리려던 그는 컴컴한 낯빛으로 굳어졌다. 수화기를 꽉 틀어잡은 태혁의 손이 가늘게 떨리였다.

탄광지배인이며 기사장, 도당선전부일군들은 모두 긴장된 얼굴로 그를 지켜보았다. 태혁의 귀밑으로 굵은 땀방울이 미끄러져내렸다.

태혁은 탄광지배인실을 나선 때에야 비장한 결심을 품고 장관우에게 짤막히 말했다.

《부위원장동무, 오늘 강계에 가면 〈수집탄〉생산에 떨쳐나선 청년들에게 어깨받치개와 지원물자를 보내주시오. 난 평양으로 올라가겠소.》

태혁은 탄광사무실마당에 서있는 승용차에 오르자 곧 평양을 향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