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4

 

제 1 장

4

 

가파른 령길을 벗어나 대도로로 달리는 승용차의 불빛이 어둠을 휘저으며 번쩍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며칠 밤을 주무시지 못해 깔깔해진 눈을 반쯤 내려감고 의자등받이에 지그시 몸을 기대시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던 흙바람의 소란도 멎고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문성태가 때마침 무슨 말을 하려고 그이를 쳐다보았다. 분명 눈을 좀 붙이라는 권고를 하고싶었을것이였으나 왜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마음을 육감적으로 느끼셨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육체의 피로보다도 못견디게 그이의 온몸을 사로잡고 괴롭히는것은 이 이틀동안에 목격하신 가슴아픈 일들이였다. 그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머리속에 다시금 생생히 떠오르시였다.

우리 인민은 지금 한발자욱도 더 물러설수 없는 생사의 계선에서 눈물겨운 생활난을 지탱하고있다. 한 민족에게 이 가혹한 참상을 들씌우는 제국주의자들은 어리석게도 우리의 붕괴와 죽음만을 바라고있다. 우리가 저절로 항복하고 손을 들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악착하게 숨통을 조이고있다.

그이께서는 차창밖에 드리운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보시였다.

과연 이 엄혹한 정세를 근본적으로 변경시킬수 없단말인가?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헤쳐나갈것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희천땅으로 찾아오시기전에도 수십수백번 곱씹었던 생각을 또다시 굴리며 지그시 입술을 깨무시였다. 아니, 어떤 세상풍파가 휘몰아치며 앞길을 가로막아도 추호의 동요없이 뚫고나가야 한다.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는가? 없다. 우린 비굴하게 남을 넘겨다보지도 말고 다른 나라 장단에 춤추는 넋빠진 행위도 하지 말며 오로지 제힘으로 돌파구를 열어나갈 때만이 다시 일어설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가? 공장들의 거세찬 동음은 멎고 생떼같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퍽퍽 쓰러지지 않는가. 하지만 그이께서 이 난세에도 굽힘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하시는것은 오늘의 준엄처절한 시련의 시기에도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서 변함없이 활화산처럼 살아 숨쉬는 자기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의 감정을 절감하시기때문이였다. 전후에 피땀을 쏟아부어 건설한 공장을 자기의 생명재산보다 소중히 여길줄 아는 우리의 믿음직한 로동계급과 장두칠의 유언, 지어 거리의 방랑아들한테서도 그것을 눈물이 나게 체험하시였다. 그 인민이 주먹을 부르쥐고 분발해 일떠서면 이 지구상에 무서울것이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간 깊은 사색에 잠기셨다가 잠자코 앉아있는 문성태를 측은히 돌아보시였다. 며칠동안 퍼붓는 폭우속을 뚫고 함흥지구의 장마피해를 막느라 뛰여다니던 문성태인데 잠간이나마 눈을 붙일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것인가. 홍수의 피해로 수다한 사람들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란리통에 식사도 제대로 했을리 만무하다. 요즘은 그이께서도 때식을 잊고 분주히 지내시는것쯤 례상사였다.

《문성태동무, 배고프지 않소?》

문성태가 뜻밖의 물음에 놀라며 헐끔해진 얼굴을 쳐들었다.

《동문 어제 하루도 나와 함께 다니며 굶었는데···》

《전 일없습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성실한 일군을 위해 그냥 밤길을 갈수 없다는 생각이 뜨겁게 굽이치시였다.

《난 좀 속이 출출하구만. 운전사동무, 여기 어디서 간단히 요기나 하고갑시다. 수염이 댓자라도 먹어야 기운을 내오.》

《장군님, 희천에서 방랑아들한테 줴기밥을 다 주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참, 그렇군.》

《저기에 가면 기딱막힌 샘물터가 있습니다.》

《그럼 시원하게 샘물이나 한모금씩 마시고가지.》

조금후 승용차가 멈춰섰다. 그이께서는 어느새 운전사가 샘물을 떠오려고 물주전자를 흔들며 어둠속으로 신나서 달려가는 모양을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우리도 바람을 쏘일겸 밖으로 나갑시다.》

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운전사가 사라진쪽 야산의 도두룩한 바람맞이언덕으로 문성태를 데리고 천천히 올라가시였다. 이틀전의 소낙비에 후줄근히 두들겨맞은 풀잎들에 물방울들이 맺혀 바지가랭이와 신발을 적시였다.

비에 말끔히 씻긴 맑고 청신한 밤공기가 페부로 스며들며 한순간 심신이 거뜬해지는 상쾌한 감을 느끼시였다. 축축히 젖은 대지에서는 싱그러운 땅냄새, 풀냄새가 밤바람을 타고 가슴후련히 풍겨왔다.

잠시후 어둠속에서 운전사의 모습이 다시금 나타났다. 두손에 샘물이 찰랑이는 물주전자와 고뿌를 들고 등성이를 숨차게 달려올라왔다.

《이리 주오.》

그이께서는 운전사에게서 물주전자를 받아들고 고뿌에 샘물을 따르시였다. 그리고는 문성태에게 고뿌를 내밀면서 쾌활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차구만. 문성태동무, 속이 비였을 때엔 물로 허기를 면하는것도 괜찮소. 어서 한고뿌 쭉 마시오. 동무야 워낙 고질적인 위병쟁이가 아니요.》

《장군님, 먼저 드십시오. 전 벌써 위병을 뗀지 오랩니다.》

《어떻게?》

그이께서는 호기심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였다.

《이 고난의 시기 저절로 뚝 떨어졌습니다. 지난 전쟁때에도 위병환자는 보구 죽자고해도 없었다질 않습니까.》

조국해방전쟁시기 락동강도하전에서 치명상을 당한 문성태가 그때 네댓달 입원생활을 하며 얻어들은 소리를 하자 그이께서는 그만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 며칠동안에 전혀 웃음을 모르고 지내시다가 문성태의 말이 너무도 신통하게 생각되여 자신도모르게 그처럼 요란히 웃으시였다. 문성태와 운전사도 오래간만에 그이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기분이 좋아서 서로 마주 보며 벙실거리였다.

《하긴 그래, 그때도 간고했으니까. 돌멩이를 먹어도 새길만큼 배고픔을 겪을 때도 있었지. 밤중에 몇백리씩 행군을 하면서 잠을 자야 할 때도 있구.》

김정일동지께서는 샘물을 달게 마시고나서 손수건으로 입가를 문대시였다.

《어, 시원하군. 정신이 번쩍 드누만. 이젠 동무들도 마시오.》

물주전자와 고뿌를 문성태에게 넘겨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둠에 뒤덮인 언덕아래의 황량한 공지를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별빛 한점없는 캄캄한 밤이였지만 도로 건너로 철길이 지나가고 그 한끝에 한적하게 자리잡은 자그마한 간이역의 륜곽을 어슴푸레 가려보실수 있었다. 그 크지 않은 역사와 철뚝주변의 불과 몇채 되지 않는 인가들은 온통 짙은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한참 자세히 여겨보신후에야 그이께서는 역사의 어느한 귀퉁이에서 가물거리는 등잔불빛을 겨우 희미하게 알아보시였을뿐이였다. 나라의 전력사정이 긴장하다보니 전기철도를 끼고있는 역사들에서도 직원들이 등잔불을 켜놓고 밤근무를 서는 모양이였다. 하기야 요즘은 평양도 온밤 정전이 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지난 전쟁때에도 적들은 제일 먼저 발전소들을 쳤지. 우리를 꺼꾸러뜨리려는 놈들의 야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이 답답해나는것을 느끼시며 가렬처절했던 전화의 나날을 더듬어보시였다.

우리 조국은 지금 그때처럼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르는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서나 대규모공장들이 전력부족으로 멎어서고있지만 발전소들의 설비하나 변변히 보수할수 없어 우리 경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과연 이것을 수만톤 폭탄과 미싸일타격에 의한 피해상과 대비할수 있는가.

오늘의 고난은 그 간고성에 있어서 50년도의 전쟁을 훨씬 릉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분연히 일떠서 놈들의 검질긴 포위환을 기어이 뚫고나가야 한다.

전국을 휩쓴 이 숨막히는 암흑을 짓몰아버릴 돌파구를 열자, 공격의 돌파구를!···

그때면 오늘 밤 이 나지막한 언덕받이에 앉아 저 칠흙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맹물로 시장기를 면하던 일을 회상하면서 옛말을 하게 될것이다.

눈보라사납게 불어친 한겨울 돌덩이처럼 꽝꽝 언 줴기밥을 모닥불에 구워먹었던 일, 한절반 녹고 속은 언대로 있어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줴기밥을 씹어삼켰던 일도···

멀지 않아 그날이 반드시 오게 될것임을 믿어의심치 않으시면서 그이께서는 마침내 풀냄새 싱그럽게 풍기는 언덕우에서 문성태와 나란히 걸어내려오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