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제 4 장

 

《너무 어여쁜걸.》

《저건 어떤 계집이야.》

야수의 본능이 새빨갛게 타오르는 음탕한 눈길들이 세라복을 입은 그의 몸에 어지럽게 날아들 때면 련화는 자기가 마치 도마우에 오른 고기처럼 느껴졌다. 고막을 에일듯 터져나오는 형장의 비명을 듣게 된다든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땀에 번들거리는자의 와이샤쯔에 튀긴 피방울을 보게 된다든가 하는것이 그에게는 다 견디기 어려운 고문이였다. 그는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목함에 들어오는 밥같은것은 구역이 나서 입에 대지도 않았다.

처음 체포되였을 때 《평화통일을 지지한것이 왜 죄가 되나요. 민족운동의 기수를 살해하는 진범은 활개치게 하고 애매한 사람을 잡아가두는것이 질서의 파수군이라는 경찰의 본업인가요.》 하고 들이댄것이 말꼬리가 잡혀 김구살해의 장본을 대라는 질문에 리승만과 신성모, 채병덕을 찍어댄것이 지금 보면 자기를 이 륙군형무소의 지하감방에 오게 하고 여기의 한 헌병의 말처럼 《네 고운몸이 백골로 되여나가게 되니 아깝다.》는 신세를 면할수 없게 된것이다.

련화는 일단 죽음을 각오하고나자 마음 편한것을 느꼈다. 그런중에도 바라는것이 있다면 고문을 받지 않고 조용히 자기도 모르게 죽는것이였다.

이날 저녁은 다른 때와 달리 몹시 조용하였다. 옆방의 《월북미수자》들을 족쳐대던 고문도 없었다. 련화는 여느때처럼 뙤창이 보이는 구석 널판자에 쪼그리고앉아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있었다. 자기가 만약 이대로 죽으면 운학동무가 알아줄가. 안다면 언제나 알가. 그리고 그의 부탁대로 이 땅의 지성과 량심의 꽃으로 살려고 마지막까지 모지름썼다는것까지 알가 하는 천진스런 생각에 자기를 찾는것도 몰랐다.

《성련화씨!》

재차 부르는 여느때없이 상냥한 소리에 고개를 돌린 련화는 뼁끼칠이 벗겨진 문이 활짝 열리고 간수옆에 낯모를 소령이 웃으며 선것을 띠여보고 화닥닥 놀라며 일어섰다. 그러나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탓인지 눈앞이 팽 돌아 그대로 주저앉고말았다. 소령이 황황히 달려와 부축하려 했다. 련화는 그 매끈한 손을 보자 진저리를 치며 일어났다. 입술을 피터져라 깨물고 간수를 향해 마주갔다.

《련화씨, 석방입니다. 누가 힘을 쓴줄 아십니까.》

복도에 나갔을 때 소령은 담배진내를 끼얹으며 귀속말로 말하였다. 련화는 이것 역시 무슨 악몽의 시작이려니 하고 그 말을 바람결처럼 흘리며 이끄는대로 걸었다.

땀내와 피비린내로 숨막히는 지하실로부터 마당에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셨을 때 련화는 짜릿한 충격에 몸을 떨었다.

(정말 내가 놓여나가는것이 아닌가. 그러면 내가 산단말인가.)

형무소 정문에는 언니 계화가 우산을 받쳐든채 웬 남자와 함께 서있다가 달려왔다.

《련화야.》

《언니!》

련화는 불쑥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그때 언니와 함께 서있던 남자가 다가와 고개를 끄덕했다.

《고생했겠습니다.》

그를 알아본 련화는 속이 섬찌했다. 백정식이였던것이다.

《이분이 위험을 무릅쓰고 너를 구했다.》

계화의 말에 련화는 저으기 놀라면서도 감사의 뜻으로 말없이 머리를 숙여보였다. 백정식은 구원자로서의 생색을 내지 않고 풍을 씌운 스리쿼타에 안내했다.

《당분간 우리 집에 있어야 돼. 위법으로 빼내니만치 다시 검색이 있을수 있어. 아버지도 승낙하셨다.》

언니가 이렇게 소곤거릴 때 백정식은 매우 초조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폈고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아나갔다. 리윤병의 집에 올 때까지 백정식은 말 한마디 없었다. 련화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였다. 그는 백정식이가 지난 기간의 죄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의 길에 나서는 기적을 발휘한것이 아닌가 하고까지 생각하였다.

련화가 백정식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해방직후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있은 시내 각 학교 대표들의 모임에서였다. 모임은 《해방과 조선청년》이라는 제명으로 된 토론회였다. 여기서 리화녀전대표로 나간 성련화는 《조선은 민주사회로 나가야 하며 청년들은 민주정치의 기발을 들고 앞장서 나가야 한다.》고 열렬히 토론했다. 그가 토론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렸을 때 백정식이 나타나 자기 소개를 하며 물었다.

《련화씨라고 했지요. 불붙는 토론, 목청도 좋구요. 끄당기는 힘이 대단합니다.》

이렇게 얼레발을 치고는 매우 심각한 눈길을 하고 묻는것이였다.

《민주정치라는데는 어떤 민주정치입니까. 미국식민주주의입니까 화란식민주주의입니까. 아니면 손문의 민주주의입니까?》

일본성대 중퇴생이라는 백정식의 질문에 련화는 우선 모욕감을 느꼈고 다음은 그 질문에 답변할 준비가 못된데 당황해서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백정식이도 덩달아 얼굴을 붉히며 《련화씨같은 미모의 녀성은 정치에 나설바 못됩니다. 련화씨는 사랑을 위해 태여난 존재입니다.》 하고 무슨 서푼짜리 련애극 대사같은 말을 뇌이고는 자리를 떴었다.

두번째로 만난것이 좌익계학생들의 모임때였다. 림운학이 나가 토론할 때 서북청년단 깡패들이 들이닥쳤다. 그중에 백정식이도 있었다. 백정식은 뒤전에서 싸움을 지휘하다가 련화를 보자 슬그머니 피하고말았다. 그후 백정식은 련화를 찾아 학교로 왔었다.

그는 란투극에 뛰여든데 대해서 사과하면서 자기는 련화를 위해 모든것을 바칠 준비가 되였노라고 사랑의 고백 비슷한것을 하였다.

련화는 어처구니 없어 웃었다.

《전 방금 토론한 연사의 편인데요.》

《련화씨에 한해선 그것을 잊으렵니다.》

련화는 웃음을 거두고 경멸하는 눈길로 그를 똑바로 보았다.

《체포하러 오지 않은데 대해서는 감사해요. 그러나 이제 다신 오지 마세요.》

그후 련화는 백정식이가 미군정청에도 나들고 엠피들을 이끌고 좌익계학교들을 습격하는데 앞장을 선다는것을 알았다. 더우기 그가 림운학의 체포에 혈안이 되여 날뛰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영원한 원쑤로 락인찍었었다. 그런데 3년동안 어데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던 백정식이 련화가 체포되기 닷새전에 불시에 집으로 나타났다.

그때 련화는 방에서 평화통일호소문을 열부씩 간종그려 쌓고있었다. 미처 치울새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선 백정식은 군복차림이였다. 3년전보다 낯이 한결 희멀끔해진 그는 미국류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사차로 들렸다고 비위좋게 말하였다. 련화는 바닥에 널린 호소문때문에 간이 콩알만해서 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고 조밋조밋해 서있었다. 다행히 아버지가 그전의 원혐은 잊은듯 점잖게 말동무를 해주었다. 련화가 새초름해서 보자기에 호소문을 싸자 백정식은 시치미를 떼고 한장을 집어들어 소리내여 읽었다. 그리고는 별게 아니라는투로 련화에게 돌려주는것이였다

《뭐 나를 3년전의 백정식이로 알지 마십시오. 하긴 나도 리대통령과 백내무께서 이 호소문관계자들을 엄벌하라고 한 내용을 잘 알고있습니다. 그러나 이까짓··· 뭐랍니까. 미국에서는 매일 시위고 삐라놀음이지요 사상놀음은 자유로워야지요. 그렇지만 련화씨, 이런 놀음은 그만두십시오. 종이 몇장으로 태풍을 당합니까.

지금 정부나 군정은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한 사상때문에 혈안이 되여 쏴죽일내기를 하고있지 않습니까. 개개인의 벼룩같은 존재가 무엇입니까. 련화씨같은 경우에 경찰은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저승으로 보낼거란말입니다. 민족의 기둥이라고 하던 김구같은분도 서슴지 않고 없애는 판에.》

《그거야 무뢰배의 개인테로지 정부가 한것은 아니잖나?》

김구의 살해진상에 무척 관심을 갖고있던 아버지가 한물음 던지자 백정식은 가엾다는듯 싱그레 웃고는 기가 나 떠벌였다.

《선생님은 그래 안두희같은 조그마한 존재가 제 의사로 그 거물의 가슴에 맞창을 내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저의 매부나 특수정보과장 김창룡이나 씨아이씨의 노엽중위에게 물어보십시오. 국부가 아니 그보다 더한데서의 지령이였지요.》 (련화는 첫 심문시 이 자료를 가지고 반박을 한것으로 륙군형무소로 옮겨진것이였다. 그는 어데서 들은 류언비어인가고 할 때 백정식이한테서 들었다는것은 말하지 않았다. 백정식이가 호소문건을 가지고 고발하지 않은데 대한 갚음이라고 하겠는지··· 자기로도 분명치 않은 리유로 침묵을 지켰다.)

백정식은 자기의 말에 반응이 큰것을 보고 성수가 나 계속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리 있습니까?

그러니 련화씨는 괜한 모험을 하지 마시오. 아버님께도 부탁합니다. 아버님처럼 현명한분이 어찌하여 따님의 이런 행동에 눈을 감으시는지 리해가 안갑니다. 나는 련화씨가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전 지난 기간에 선생님뿐아니라 련화씨앞에서도 불한당이였습니다. 사상바람에 미쳐 칼부림도 하고 나쁜 짓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3년전의 백정식이가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따님한테 청혼하는것을 승인해주십시오.》

너무나 뜻밖의 맹렬한 기습이라 그때 아버지는 깜짝 놀랐으나 련화는 낯이 파릿하게 될 정도로 분했고 한편 억이 막혔다. 그는 백정식이 비굴할 정도의 웃음을 담고 아부어린 눈길을 자기에게 돌릴 때 발칵 일어섰다.

《저한텐 애인이 있어요. 미안하지만 전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어요.》

《···》

백정식의 낯이 해쓱해졌다. 점차 입술이 파릿하게 몽켜들며 눈에 독이 뻗쳐올랐다. 그러나 그는 싸늘히 비웃음을 띄웠을뿐 소리없이 일어났다. 그는 문을 홱 열어젖히고 한참이나 신고하여 구두를 신고는 피발어린 눈길을 련화에게 돌렸다.

《애인이란 북에 간 림운학이겠지요.

약속한 동무란 북에서 보낸 프락치야일것이구요.》

《원 무슨 망녕된 소릴!》

아버지가 꾸짖듯 말하자 백정식은 머리를 꾸벅했다.

《실례했습니다. 격한김의 망발입니다.》

그리고는 련화에게 음울한 시선을 주고 이제까지의 태도와는 판다른 은근한 태도로 말했다.

《미스 성, 난 운학이라는 환상과 결별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씽씽 바람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련화는 온몸이 나른한중에 이 생각을 굴리며 무언가 떳떳치 못한 께름한 예감이 들었다.

밤이 어둠이라는 자극제로 도깨비와 강도를 불러낸다면 전쟁이라는 조직된 범행은 일종의 자극제로 되여 백정식이와 같은 인간에게는 유쾌한 범죄를 감행할 들뜬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백정식은 오늘 경호대 대기차를 몰고 륙군형무소로 무단출입한것이 문제시된다는것을, 더더구나 채병덕의 인장을 쓴것으로 지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으르렁대는 매부와 충돌할수도 있고 자칫하면 군사재판에까지 회부될수 있다는것을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나으리들이 동족을 피에 잠그는 행위를 버젓이 하는판에 이까짓 일이 무슨 문제랴 하고 마치 서부활극에 나오는 렵기적주인공인양 모험을 한것이다.

백정식은 서북청년단이 좌익청년들을 때려엎는 그 장소에서 성련화를 보고 그 미모에 넋이 빠지면서부터 한가지 결심을 굳혔다.

저 녀자가 진정으로 나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결혼할것이다.그 결혼으로 어리석은 빨갱이짓과 결별하게 할것이다. 그렇지 않고 배척하는 경우엔 육체를 점령하고 아예 없애치울것이다. 녀자는 배척하였다. 그러나 련화를 단념할 용단을 내리기에는 백정식의 의지에 뭔가 부족한것이 있었다. 그리고 시간과 환경이 련화를 쟁취한다던가 짓밟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모든 욕망을 그는 오늘 현실적으로 실현할것이였다. 그 방법에 대한 계획과 그 계획에서 오는 긴장과 짜릿한 감정으로 그는 차에 앉았을 때부터 리윤병의 집에 들어설 때까지 련화를 보는 척도 안했다.

련화는 형부네 집에 들어설 때 오싹 소름끼치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았다. 무엇때문인지 알수 없었다. 너무나 조용한탓인지 아니면 신발장에 신발을 올려놓고 머리를 쳐들었을 때 십자가에 매단 벌거벗은 그리스토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있는 목판화를 본탓인지. 그러나 그는 《얘, 왜 그러고 선?》하고 계화가 부드럽게 속삭이며 잔등을 가벼이 떠밀 때 주위를 둘러보고 다소 마음을 놓으며 걸음을 옮겼다. 약간씩 소리를 내는 마루장을 밟으면서 그는 뼈부러지는듯한 신음소리와 악에 받쳐 웨치는 형리의 고함소리를 더는 듣지 않게 되였다는것으로 또 등이 거멓고 배가 하얀 이름을 알수 없는 벌레들이 발밑으로 기여다니는 구질구질한 형무소의 감방에서 벗어났다는것으로 그리고 옆에는 비록 사상과 감정으로는 멀리 떨어져있어도 여하튼 같은 피줄을 타고 났고 한 이부자리에서 자며 한 밥상에서 밥을 먹으며 자라난 언니가 있다는것으로 일종의 안온과 안심을 느끼였다.

《시부모들은 1층에 있어. 다 잠들었으니 걱정 마.》

련화는 계화가 이끄는대로 따라움직였다. 2층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언니의 살내가 느껴지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언니가 가져오는 음식을 이것저것 먹었다.

《얘, 그 사람한테 가 인사는 해야지.》

련화가 목욕과 포식에서 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눈이 감츠레해있자 계화가 속삭이듯 말하며 손을 잡아끌었다.

련화는 례의라는 그 도덕의 굴레를 벗을수 없다는데 끌려 응접실에 앉아 담배를 빨고있는 백정식에게로 갔다.

《고마워요.》

백정식은 매우 례절바른 태도로 정중히 인사를 받았다.

《푹 쉬십시오. 그런데 제 차가 이 집에 왔댔으니만치 혹 수색시에 이 집에 올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데는 얼씬 마십시오. 래일···》

백정식은 여기서 말을 끊고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했다.

《앞으로 경계령이 풀리면 그때 알려드리지요.》

련화는 그앞에 그대로 있기가 무엇하여 목례를 하고 언니가 침방으로 정한 방으로 걸어갔다. 그 방에까지 이른 그는 백정식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으로 하여 숨소리를 죽이고 언니와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잘수 없습니다. 경무대로··· 래일이면 알것입니다.》

련화는 자기와 관계된 소리가 아니라는것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화분들이 구석구석 놓인 방한가운데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었다. 창가림이며 원탁이며 침대발치에 세운 체경이며 전축대옆에 놓인 화장대며가 다 호화롭고 사치한것이였다. 련화는 녀자의 본능이라고 할 충동에 끌려 화장품대에 가 동그란 경대의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쳐보고 반라체의 요염한 녀자가 웃고있는 칼멘 상표의 륜곽을 집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분통을 열지 않고 도로 놓고말았다. 며칠동안의 상심과 육체적고통에서 약간 수척해진 얼굴을, 그러나 자기로도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갸름한 얼굴에 쌍까풀이 알릴가말가한 눈이 꿈속에 잠긴듯 몽롱해있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짓고 침대로 다가갔다. 언니가 가져다 놓은 깃이 넓고 가슴부분에 수를 놓은 하얀 잠옷을 보며 문득 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자기 집을 생각했다. 오직 있다면 책들뿐, 장식이란 몇개의 옛그림과 서예의 족자들··· 자기네와 언니는 서로 다른 먼 세계로 갈라져있다는 사실이 이 휑뎅그렁하면서도 사치한 방안의 일체가 그리고 널직한 침대에 던져진 비단잠옷으로 증명되는것 같았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어데 앉기만 하면 잠에 곯아떨어질듯하던 피곤대신 뭔가 불쾌하면서도 두려운 생각이 스며들었다.

마침 언니가 들어왔다. 그는 침대에 앉아 량무릎에 팔굽을 의지하고 턱을 고인채 생각에 잠겨있는 련화를 물끄러미 보다가 조용히 옆에 와 앉았다.

《넌 그래 끝내 공산주의를 한다는거니?》

《그 사람은 갔어요?》

련화는 대답대신 경계어린 눈길로 물었다. 계화는 무심한 태도로 대꾸했다.

《피곤해서 조금 눈을 붙였다가 간다누나. 새벽근무여서··· 그 사람이 참 불쌍하구나.》

련화는 놀라움속에 언니를 야멸차게 쏴보았다.

계화는 련화의 눈총에 어설픈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그래 넌 사상이 다르면 다 원쑤로 본다지?》

《언니, 그만 자요.》

《련화야, 넌 언제 한번 내 말을 귀등으로도 안들었다만 이번엔 좀 새겨들어라. 이젠 무슨 그런 통일이니 공산당이니 하는데 끼여들지 말아라. 어디까지나 우린 녀자야. 녀자란 뭣이니. 가정을 꾸리여 남편을 받드는 내조자로 사는것이 녀자의 도리가 아니겠니. 너는 지금 마음에 잡스러운것이 가득 차서 방황하고있는 들새와 같다.》

련화는 언니의 그 목사의 설교조 비슷한 어조에 그만 웃고말았다. 자조, 순종, 고요를 미덕으로 알고있는 언니, 지어진 운명의 오솔길을 조용히 눈 내리깔고 걷는 녀인으로만 알고있는 언니가 사상을 두고 훈시를 하는 거기에 웃음이 나간것이다. 그러자 전신에 긴장이 탁 풀리며 다시금 자고싶은 생각이 치밀었다.

계화는 련화의 가느스름한 눈과 흐트러진 입모양새를 보며 어깨를 그러안았다.

《너처럼 곱디고운 애가 빨갱이라니 참 요절할 일이다. 괜히 들떠하지 말고 시집가렴.》

《언니, 그런 말 말아요. 그리고 난 솔직한 말로 공산당이 안예요. 호호, 내가 무슨 정치에 간참하겠어요?》

련화는 한때 미《군정》을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흐름에 운학이를 따라 뛰여든 그것으로 내내 자기를 무슨 《운동가》로 보는 언니가 우스웠고 이자리에서 그 오해를 풀고 벌려진 《간격》을 메꾸고싶었다. 그러나 계화는 그의 소리를 하나의 변명으로 들었는지 귀전으로 스치며 제 생각을 좇아 말했다.

《지금 백정식씨는 너때문에 환장이 됐다. 저처럼 열정적인 사랑이 있다는것을 나는 소설에서나 봤지 생전처음이다.》

《언니!》

련화는 새침해서 소리쳤다. 그리고는 새파래진 얼굴로 발끝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잘금잘금 씹었다. 이처럼 련화가 성을 낼라치면 계화는 언제나 어리둥절해진다. 그것은 자기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착한 말을 하는데 왜 그걸 몰라줄가 하는데서 버릇된것이기도 하다.

《넌 여전히 암코양이 한가지로구나.》

계화는 쑥스럽게 웃었다. 언니라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세살아래의 련화에게 눌려지내였다. 련화는 아버지한테는 물론 온 동리의 귀염둥이였고 사내애들도 함부로 놀리려들지 못하는 담차고 영악한 소녀였을뿐아니라 학교시절에 계화가 겨우 보통성적을 유지할 때 련화는 늘 90점이상을 놓치지 않는 우수생이였다. 그런데서부터 계화는 모든데서 련화한테 양보하는데 습관되였고 그럴때마다 《암코양이같으니》하는 핀잔 비슷한 나무람을 던지는것으로 언니의 명분을 지켰을따름이다. 계화는 련화가 정말 지쳐쓰러질듯한 피곤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고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련화는 침대에 놓인 언니의 잠옷을 들어보다가 체경우에 걸어놓고 옷을 입은채로 침대에 꼬부리고 누웠다. 그런데 왜서인지 몸이 오싹오싹해졌다. 그는 머리밭의 모포를 펼쳤다. 모포에서는 담배내와 향수내가 엇섞여 풍겼다.

《여긴 너의 형부가 자는 침대란다. 수색이 있어도 그렇고 여기가 좋을게다.》

아까 계화가 하던 말이 떠올라 도로 모포를 말아서 마루바닥에 놓고 베개도 잇을 금방 바꾼것이지만 뭔가 께름직하여 뒤집어놓았다. 그런데 베개밑에서 뭔가 차고 딱딱한 쇠붙이가 손에 마쳤다. 그것을 꺼내보았다. 권총이였다. 련화는 섬찍하게 놀랐다. 4년전 이런 권총의 총구앞에 섰을 때의 소름끼치던 일이 번개치듯 되살아올랐다. 미군정통치를 반대하는 좌익계학생대표들의 토론회로 알려진 모임때였다. 서청패와 경찰들이 달려들어 모임해산을 선포하고 반항하는 남학생들을 포승에 지워 끌고가는 소요스런 란투가 한마당 끝나 헤쳐갈 때 어디선가 미군들이 달려들었다. 련화는 담장가에서 미군의 손에 잡혔다. 술취한 미군은 알아들을수 없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며 그의 허리를 그러잡고 세라복앞자락을 찢어내렸다. 그 순간 이미 가버린줄 알았던 운학이가 나타났다. 운학은 그놈의 동가슴을 떠박지르며 련화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뛰시오.》

그러나 련화는 뛸수 없었다. 운학이를 향해 그 미국놈이 권총을 뽑아들었던것이였다. 련화는 비명을 지르며 운학의 앞을 질러나갔다.

술취한 미군은 껄껄 웃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흉내를 내며 《땅! 땅!》 하고 입소리를 내고는 권총을 도로 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아까보다 더한 횡포한 동작으로 련화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운학의 몸이 앞으로 날았다. 련화를 그러안던 미군이 뒤로 허궁 나가 넘어지자 운학은 재차 껑충 뛰였다가 놈의 복부를 발굽으로 들이질렀다. 련화는 운학의 손에 부축되여 담장을 넘었고 그의 손에 팔목을 잡힌채 골목을 누벼달렸다. 행인들이 오가는 불빛 환한 백화점앞에서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련화는 자기의 세라복 앞깃이 터쳐 열린것을 보았다. 급급히 손으로 가리웠으나 이미 운학의 눈길도 거기에 닿았을 때였다. 운학은 얼굴을 붉히며 외면하고는 말없이 저고리를 벗어주었다···

련화는 오시시 몸이 떨렸다. 그는 애릿한 추억을 불러일으키게 한 권총을 베개로 눌러놓았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문소리에 련화는 와뜰 놀라며 눈을 떴다. 바람이 밀려들며 시커먼 그림자가 얼핏거렸다. 소스라친 련화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앉았다. 체경우에 걸어놓은 흰 잠옷이 그대로 있는것을 보고 꿈이 아님을 알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문가에는 백정식이가 서있었다. 겁먹은듯 휘둥그렇게 뜬 눈이 향방을 찾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온몸을 덜덜 떨고있었다.

《나가세요.》

련화는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아니 조용히! 잠간만.》

백정식은 그대로 덜덜 떨며 다가왔다.

《나가요. 안나가면 소리칠래요.》

《련화씨, 난 잠간만 이야기를···》

《안돼요! 안돼요!》

련화는 공포와 불안속에 몸이 가드라들며 소리쳤다.

백정식의 얼굴이 이지러지였다.

《정말 이러기요?》

문쪽을 한번 돌아보고난 백정식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허둥거리던 눈이 살기를 띠고 번득였다.

련화는 위험을 감촉하며 몸을 옹송그렸다. 백정식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독을 써보다가 능글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련화는 침대에서 뛰여내렸다. 그 순간 베개밑에 있는 권총이 생각되였다. 련화는 다급히 권총을 빼들고 소리쳤다.

《달려들면 쏠테다!》

마구 달려들려던 백정식은 흠칫하며 멈춰섰다. 권총을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찡그러졌다.

《네가 이런 녀자였구나.》

련화는 그자의 몸뚱이를 겨눠 권총을 든채 뒤걸음치며 문쪽으로 다가갔다.

《강도다!》

그는 새되게 소리치며 문을 열어젖히고 내달렸다. 옆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언니의 놀란 얼굴을 보자 련화는 분을 참을수 없었다.

《훌륭해요.》

련화는 차겁게 한마디 내쏘고는 계단을 구르며 내달렸다.

파리채를 거꾸로 편 조글조글한 상판의 령감과 부딪쳤다.

《강도다!》

령감이 기겁하여 소리치는것을 들으며 신발을 찾아든 련화는 정신없이 밖으로 달려나갔다.

가는 비발이 활짝 단 얼굴을 식혔다.

한창 달리던 그는 세종로어귀의 전주대옆에서 세 그림자가 후닥닥 물러나 사라지는것을 보았다. 련화는 황급한중에도 전주대에 눈띄게 붙인 흰 종이장에 일순 시선이 멎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빛발아래 드러난 글자를 보던 련화는 가슴이 널뛰듯했다.

《금 새벽 4시 북조선공산군 38선 전반연선에 대거 남침.》

련화는 소름이 오싹 끼쳐와서 정신없이 내달렸다. 세명의 경관이 두억시니같이 나타나 길을 막아섰다.

《아니 이년이 권총까지 쥐고있구나.》

련화는 손에 쥔 권총을 훌 놓아버렸다. 세명의 경관에게 끌려 간곳은 동대문경찰서였다.

당직경관은 《야간통행단속명부》라는 책을 펼치고 주소성명을 묻다가 성련화라는 이름을 듣자 《아!》 하고 환성을 지르듯하였다.

그리고 옆에 놓인 경비일지를 훑어보고는 어디엔지 분주히 전화를 걸었다. 30분도 못되여 차 하나가 들이닥치고 헌병들이 뛰여내렸다. 련화는 그자들에게 잡혀 끌려나갔다. 련화는 완전한 절망상태에 빠져 걸음을 걷다가 땡 땡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반공국시》라는 표찰이 붙은 옆에 둥그런 벽시계가 보였다.

시침은 새벽 3시를 가리키고있었다.

모든것이 악몽속에 흘러가고있었다.

련화가 헌병사령부의 찦차에 실려 서대문감옥으로 끌려가는 그 시각, 괴뢰군의 모든 전투부대들은 미끌미끌한 흙밭이며 전호, 풀숲과 나무뒤에 엎디여있었다. 포마다 포구씌우개를 벗긴 상태에서 장탄을 하였다.

새벽 네시, 정확히 말하면 어떤데서는 그보다 30분 빨리 또는 뜨게 38선 전반지역에서 북쪽을 향해 총포사격을 개시하였다.

비구름 어린 하늘은 삽시에 쇠와 불의 광란속에 휘감겼다.

각종 구경의 포와 저격무기들이 불을 뿜었고 백두산과 압록강을 최종목표로 삼은 십여만의 군대가 논밭과 개울과 산허리를 질러 북으로 내달았다. 나무와 풀과 생명을 가차없이 불사르고 찢어버리는 포화, 불의 소나기, 폭음의 광란속에서 38도선의 땅은 태고이래 처음되는 시련속에 잠겨들었다. 바로 이 시각, 칸사스 시투주의 고향별장에 와 주말휴가를 즐기는 미합중국대통령 트루맨은 성경을 보고있었다.

흔들이의자우에 절반 눕다싶이하고 그 작고 여물진 눈으로 쏴 보듯하는 대목은 마태복음 7장 7절의 한대목이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것이니라.》

비밀명령 제29호로서 조선전쟁의 불을 지핀 이 대통령의 표정은 극히 평온하였다. 이제부터 7일후면 남조선군대는 북조선전체를 공략할것이였다. 운명적인 수자 7은 성경의 이 대목에서 두번 반복됨으로써 벌써 신의 확실한 담보로 계시된것으로 여겨졌다.

 

검푸른 번개빛이 감시창을 찢었다. 우뢰소리가 밀려들었다. 목깃단추 하나를 열어놓은채 야전탁에 엎뎌 쪽잠이 들었던 최현은 눈을 뜸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무서운 굉음이 고막을 찢을듯 들려왔다. 감시창으로부터는 폭풍이 밀려들었다. 튕기듯 밖으로 나간 최현은 일진 태풍의 광란을 목격하였다.

벽계봉 좌우의 수키로전선은 포화속에 휩싸였다. 포탄은 그가 선 려단장감시소주변에도 연방 날아와 터졌다. 수천개의 반디불이 일선형으로 번뜩였고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웨침이 그 공격산병선에서 터져나왔다.

《아오까(적들이 경비대를 칭하여 부른 말)! 항복하라!》

그 공격산병선, 불의 파도는 숲과 골짜기를 메우며 단숨에 려단방어선을 무찔러버릴것만 같았다.

《폭풍!》

최현은 날듯이 뛰여들어가 전화통을 잡았다.

38선경비초병들에게 악몽같은 순간으로 영원히 기억에 새겨진 가렬처절한 방어전투는 새벽 3시 40분부터 개시되였다. 전사들은 내의바람에 총을 잡았고 어떤 지휘관들은 전화기를 잡고 지휘부를 찾아 발전자돌리개를 돌리다가 전호에 뛰여드는 적병과 부딪쳐 육박전투를 벌리기도 하였다. 몇분사이에 방어선이 다 무너지고 동강이 나는것 같았다. 여기저기 전화선이 끊어져나갔다. 전화선을 이으러 달려나간 통신병들은 도처에서 적과 부딪쳐 쓰러지군했다.

《포위에 들었습니다.》

《견지하기 어렵습니다.》

《두개의 초소가 점령당했습니다.》

려단장감시소안에 설치된 세개의 전화기로는 지휘관들의 다급한 웨침이 연방 날아들었다. 최현은 그 모든 보고들에 지원을 약속했고 한메터도 퇴각해서는 안된다고 을러메였다. 그리고는 침묵하고있는 중대와 초소들을 전화로 찾았다. 그 호출전화에는 거의나 다 응답이 없었다.

최현은 옛날 리도산 《토벌대》의 불의습격을 받았을 때보다 몇배 더한 긴장과 초조를 체험하였다. 몇분 안되는 사이에 여러 진지가 돌파된것을 안 최현은 려단참모장을 전화로 호출하여 예비 구분대들의 전투진입계선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만약시의 정황에 대처해 취할 방도까지 말한후 애용하는 말 《새매》에 올라탔다. 주인과 함께 송악산줄기와 골짜기를 메주밟듯하며 다닌 《새매》는 밤어둠속에서도 쏜살같이 달렸다. 한개의 기마소대와 련락병, 부관이 그를 따랐다.

지원을 요청한 구분대들과 포위에 든 초소들을 찾아 동쪽으로 서쪽으로 좌충우돌하며 질주하였다. 어둠속에서 불의에 적과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최현은 그대로 경기관총을 휘두르며 그 적들이 미처 정신차릴 여유를 주지 않고 뚫고나가 다음초소로 가서는 돌격해들어온 적들을 구축하라는 명령을 떨구었다. 그 과정에 최현의 《새매》가 적탄에 맞아 쓰러졌다. 최현이 필사적으로 날아다니며 불의공격으로 빚어진 혼란을 극복하고 방어전선을 얼마간 회복하였을 때 려단좌익린접이 허물어졌다. 한개 중대가 지켜선곳을 두개 대대가 밀고들어온것이였다.

포사격에 엄개지붕이 훌 날아버린 려단장감시소에 들어서기 바쁘게 받은 이 전화보고에 최현은 전화탁을 내리쳤다.

《물러서다니?!》

이미 파편에 짜개진 전화탁은 그의 드센 주먹에 두쪼각이 나고말았다. 최현은 발치에 떨어진 널쪼각을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다.

《려단경비중대만 남기고 모든 직속중대들을··· 그렇소, 후방창고 경비분대까지··· 다 거기에 돌리오. 우린 한메터도 물러서선 안되오.》

《려단장동지! 포위에 든 조건에서는 퇴각하라고 내무상동지로부터 승낙이 있었습니다.》

《여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참모장의 보고에 최현은 마치 그가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 주먹쥔 손을 흔들었다.

《누가 누구를 포위한다는거요. 물러서라는 소리는 무슨 소리고··· 우리는 죽어도 이 38선을 베고 죽어야 한단말이요.》

그때 최현이가 가장 불안해하던 사태가 일어났다. 최현려단의 기본방어계선을 정면공격으로 단숨에 뭉개버리려던 적들은 자기의 시도가 좌절되자 한개 기갑련대무력을 투입시켰다. 거기에는 두개 중대의 력량밖에 없었다.

《···지금 남은 전투력량은 보병 두개 소대, 반땅크포 세문입니다···》

전사한 대대장의 후임으로 전화를 건다고 하는 군사부대대장의 비장한 말소리는 여기서 끊어졌다. 최현은 전화기를 군사부려단장에게 넘겨주고 려단의 유일한 예비대로 된 기마소대와 련락병, 부관을 대동하고 그곳으로 달렸다. 두개 중대가 진을 치고있던 릉선코숭이는 나무 한대 없이 번번해졌다. 그런속에 살아남은 전사들이 도로와 산기슭을 타고 밀려드는 적들과 마지막결사전을 벌리고있었다. 최현은 허물어진 엄페호에서 숨이 진 군사부대대장의 시체를 꺼낸후 거기에 자기의 경기관총좌지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새벽 내내 탄약배낭을 메고다니는 련락병이 죽은 군사부대대장을 두고 신입병사시절에 자기의 중대장이였다고 하며 울먹거리는것을 보고 기가 차 말했다.

《태순이, 우는건 이다음 울라, 탄약!》

련락병은 군사부대대장의 얼굴에 모자를 씌워주고 탄창을 꺼내 최현에게 내밀었다.

《자, 이건 군사부대대장의 복수다.》

최현은 쇠붙이의 차거운 감촉에 입술을 이지러뜨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한탄창을 다 풀고 《탄약!》 하고 소리치며 왼손을 내밀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벙끗! 하는 섬광이 순간적으로 주변을 대낮처럼 만들었다. 련락병은 뒤골이 피범벅이 되여 엎어져있었다.

《빌어먹을!》

최현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뱉으며 련락병의 손에서 탄창을 빼내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경기관총에 탄창을 맞추고 또다시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50여메터까지 접근한 적의 제1선 공격서렬이 쫙 흩어지며 풀숲에 숨겨들자 최현은 얼른 경기관총을 놓고 련락병을 안아일으켰다. 온기도 있고 맥박도 느껴졌다. 흙버무리가 된 얼굴에서 풀솔같은 속눈섭이 움죽거렸다. 푸르른 새벽빛속에서 눈동자가 반짝 열리는것 같다.

《살았구나.》

최현은 너무 기쁜김에 울음지르듯 소리치며 개인붕대포를 꺼내 련락병의 뒤골을 싸매주었다. 탄환이 뼈를 부슨것 같았다.

그의 손이 상처에 닿자 호리호리한 련락병의 몸이 쇠장대처럼 굳어지며 떨었다. 아픔에 정신을 차린듯 눈을 뜨고 입술을 깨물며 최현의 가슴팍을 꽉 움켜쥔다.

《죄꼼만 참아.》

최현은 어린애를 달래듯 속삭였다. 련락병은 여전히 바들바들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군대가 왔나요?》

《군대?! 이제 오지. 이제.》

위생병이 와서 련락병을 가볍게 안아들어 군사부대대장의 시신을 눕힌 탄약고에 가져다 모로 눕혔다.

《려단장동지,이거 안되겠습니다.》

붕대를 엇가로 동인 가슴에 자동총을 건 중대장이 뛰여들었다.

《려단장동지, 떠나주십시오.》

《뭐라구?》

《저걸 보십시오.》

최현은 도로를 바라보았다. 불을 켠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밀려들었다. 앞에 선 몇대는 장갑차였다. 길홈타기와 산비탈, 길건너의 보리밭에 엎드려있던 수백명의 적들이 우아-하고 일어 났다. 최현은 턱을 매만졌다.

《내가 떠나면 저놈들이 물러서는가?》

《그··· 그런게 아니라 여긴 위험합니다.···》

《위험한건 여기가 아니야···》

최현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었다. 끈덕지게 자기를 바라보는 중대장의 시선을 느끼자 최현은 불시에 통절한 아픔과 분노를 느끼며 격하게 말했다.

《우리가 물러나면 적들은 어데까지 밀려갈지 모른다. 그럼 전쟁이란말이다.》

《이제야 전쟁 아닙니까.》

《안돼, 우리가 되게 치면 작년처럼 물러설게다.》

최현은 엉거주춤 허리를 굽히고 물러서는 중대장을 보다가 과연 지금의 정황으로 볼 때 자기 말처럼 되겠는가 생각했다.

(그러나 내 임무는 평화를 지키는것이라 했다.)

최현은 《도쯔께끼(돌격)!》를 부르는 적 지휘관의 웨침소리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허, 왜놈군대에 있던놈이 지휘하는구나.)

《아오까! 항복하라···》

숨어배겼던 적들이 수백개의 그림자로 일떠나며 돌진해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