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1

 

 

제 1 장

1

 

북만 소흥안령일대

1943년 1월

 

밀영의 겨울밤이다. 나무우듬지를 때리는 바람소리는 그칠줄 모른다. 그것은 까닭모를 불안을 예고해주는듯 했다.

김책은 자정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일수 있었다. 선잠은 꿈부터 불러왔다. 꿈도 아주 희한한 꿈이였다.

··· 어딘지 모를 강변이다. 강변에는 잔가지들을 실실이 드리운 수양버들 한그루가 서있었다. 수양버들그늘속에서 막돌들을 괴이고 걸어놓은 오지장사귀가 보글보글 끓고있었다. 거기서는 구수한 토장국냄새가 짙게 풍기였다.

주위는 온통 파아란 토끼풀천지이고 그우로는 한껏 무르익은 봄날의 해빛이 따갑게 내리비치였다. 해빛은 소리없이 흐르는 강물의 수면우에서도 재롱스럽게 춤추고있었다.

김책은 군복웃저고리를 벗어내치고 흰 내의바람으로 장사귀옆에 앉아 식칼로 도마우의 빨간 고추를 썰며 신명나게 노래가락을 뽑고있었다.

 

3년묵은 된장으로 지지개를 끓여보세
륙쪽마늘 다져넣고 붉은 고추 썰어넣고
장사귀에 보글보글 깨가루도 뿌렸더니
향기롭고 얼벌하다 천하진미 이거라오
지지개 지지개 된장지지개
우리 랑군 밥 한그릇 게눈감추듯 비운다오

 

그때 커다란 단지를 옆에 끼고 오시던 김정숙동지께서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이참, 전 여태껏 김책동지가 그런 재주를 감춰두고계신줄은 몰랐습니다.》

《허, 정숙동문 그래 이 김책이 노래도 한가락 뽑을줄 모르는 뚝박쇠인줄만 알고있었소? 내가 일단 나서기만 하면 우리 혁명군의 일등명창이라 뽐내는 안길동무쯤은 코를 납작하게 눌러놓을수 있소.》

《정말 그러실것 같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덩달아 변죽을 울리며 풀밭우에 내려놓은 단지안에서 보시기로 무언가를 떠담아 김책이한테 권하시였다.

《마셔보십시오.》

《이게 뭐요?》

김책은 의아해서 보시기안을 들여다보았다. 윤택이 나는 파르스름한 액체였는데 꿀향기가 진하게 풍기였다.

《꿀물이 아니요?》

《위탈에 좋다는 보약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보약재를 구해다 손수 절구에 찧어 가루를 낸 다음 꿀에 섞으시였습니다. 이 보약만 쓰시면 김책동지의 위탈은 꼭 나을겁니다.》

《아니, 사령관동지께서?》

《예,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보약으로 김책동지의 위탈을 완치시킨 다음에야 우리 소조도 백두산지구까지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니, 이거 참···》

김책은 더 말을 못하고 두눈만 슴뻑거렸다.···

꿈은 여기서 끝나고말았다.

굉장한 바람소리가 반토굴집안을 마구 뒤흔들어놓고있었다. 정월의 무서운 강추위와 짝을 이룬 소흥안령산줄기의 사나운 바람이였다.

이놈의 바람이 무슨 일을 내겠군.

김책은 침상에서 일어나앉았다. 캄캄한 반토굴집에는 썰렁한 랭기가 떠돌았다. 저녁까지만 해도 뜨끈뜨끈 달아있던 구들바닥도 다 식어버린 모양이였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잠잠해진것 같던 위의 쓰림이 다시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김책은 위의 아픔보다 바람소리에 놀라서 꿈을 깬 일이 못내 아쉬웠다.

참 별일이거던. 어쩌면 그때의 일이 신통히도 꿈에서 되살아나는것일가.

1941년 봄 김정숙동지께서 그의 위탈치료를 위해 신기한 보약을 지어주신것은 실지로 있은 일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김일성동지께서소부대를 데리고 금방 오께얀스까야훈련기지라 일컫는 남야영을 떠나신 직후였다.

또한 김정숙동지께서도 한개 소조를 인솔하시고 장백과 국내에서의 정치공작을 위해 백두산지구로 곧 떠나셔야 했다. 그 출발이 어쩐지 자기의 병치료때문에 지체되는것만 같아서 김책은 마음을 편안히 가질수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보약의 효험은 대단했다.

그것을 쓰면서부터 입맛도 돌아서고 위의 쓰림도 없어졌으며 얼마후부터는 얼굴에 불깃불깃 혈색이 돌고 몸이 나기까지 했다. 그래서 김책은 그해 여름 우쩍우쩍 힘이 솟는 몸으로 소부대와 함께 북만에 왔었다.

허나 한해반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맹랑하게도 모든것이 도루메기로 되고말았다. 지나친 과로와 마음고생으로 건강관리에 전혀 주의를 돌리지 못한탓이였다. 그는 자기의 위탈로 김일성동지께서 걱정을 하시게 한 일을 생각하면 죄스럽기 그지없었다. 원래 이 사실이 사령부에 알려질가봐 몹시 마음을 써온 김책이였다. 하지만 어떤 예감때문이였는지 김일성동지께서 벌써 무전수를 통하여 자기의 건강상태를 죄다 료해하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자 그만 아무 말도 못하였다. 아마 방금전의 꿈도 그때문일수 있었다. 병치료도 병치료지만···

김책은 무겁게 한숨을 지었다. 김일성동지앞에 죄스러운 일은 재발된 위탈뿐이 아니였다. 보다 중요한것은 북만에 온지 한해반이 지나도록 김일성동지께서 바라시는대로 소부대, 소조활동을 왕성하게 벌리지 못하고있는 사실이였다.

원래 그는 옛 전장인 이 북만에 다시 오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었다. 더우기 원동에서 그처럼 바라고 바라던대로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온 다음부터는 늘 곁에서 그이를 잘 받들어드릴 결심을 바위처럼 굳힌 김책이였다. 그것은 10년전부터 가슴속에 깊이 품고있던 필생의 소망이기도 했다. 허나 일은 그의 생각대로만 되는것이 아니였다.

《아무래도 김책동문 다시 북만으로 가야 할것 같습니다.》

어느날 김일성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을 때 김책은 놀라운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중국동지들은 동북해방작전을 준비하는데서 북만일대의 소부대활동에도 매우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소부대활동의 시작도 잘 떼고 정상궤도에 올려놓자면 북만실정을 잘 알고 투쟁경험도 풍부한 지휘성원이 꼭 있어야 합니다. 주보중동지는 그 적임자로 김책동무를 꼽고 북만으로 보내줄것을 제의해왔습니다. 그 요청도 간곡한것만큼 김책동무가 한번 더 수고해줬으면 합니다.》

김일성동지의 절절한 말씀에 김책은 가슴속에 끓고있는 하많은 말씀을 한마디도 올릴수 없었다.

《사령관동지의 뜻이 그렇다면 가겠습니다. 거기 가서 될수록 빨리 일을 바로잡아놓고는 허형식, 박길송동무들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다시 북만으로 온 김책이였다. 할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북만의 3로군도 지난날 열하원정놀음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지방의 혁명조직들도 거의 파괴된채 복구되지 못하고있었다. 김책은 먼저 그곳 부대들을 여러개의 소부대와 소조들로 편성하고 자신과 허형식, 박길송이 각각 덩지 큰 소부대들을 하나씩 맡았다. 그때부터 북만일대에서도 소부대활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각지 소조들에 의한 대중정치공작이 활발히 벌어지고 혁명조직들이 복구정비되거나 새롭게 결성되였다. 한편 놈들의 경찰서나 군용렬차 등 각이한 군사대상에 대한 소부대들의 습격작전도 끊임없이 계속되였다. 하여 열하원정의 후과로 주저앉아 진통을 겪고있던 북만혁명은 다시금 큰 활력을 가지고 쑥쑥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직 기뻐하긴 이르오.》

김책은 희열에 넘쳐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소부대지휘성원들에게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의 소부대활동은 조선국내나 동남만일대에 비하면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셈이요.》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였다. 그들의 소부대활동에는 미흡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제일 애로는 준비된 지휘성원들이 부족한것이였다. 그래서 정치공작소조나 정찰소조들의 활동은 물론 그들을 엄호해줘야 할 소부대군사활동도 응당한 결실을 보지 못하고있었다.

김책이 여기 와서 한해반이 지나도록 사령부로 돌아가지 못하는 리유도 거기에 있었다. 소부대활동을 완벽한 경지로 올려세운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특히 이번 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 북만의 소부대활동은 매우 어려워졌다. 적들의 극심한 《토벌》로 소부대나 소조들이 뜻하지 않게 손실을 입군 하는 일들도 빈번해졌다.

지난해 8월 3로군의 참모장이였던 허형식을 잃은데 이어 며칠전에는 박길송이 중상을 당한채 놈들한테 체포되여가는 불상사까지 생겨났다. 그것은 김책에게 있어서 실로 큰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허형식이나 박길송은 김책과 더불어 북만의 소부대활동을 이끌어나가는 귀중한 군사정치간부들이였다. 북만의 소부대활동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면 김책은 그들을 데리고 사령부로 돌아갈 작정이였는데 그렇듯 가슴아픈 일을 당한것이다.

박길송이까지 잃고나자 적지 않은 소부대성원들은 의기소침해지고 동요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였다.

《정위동지, 저의 의견은···》

조성된 정세에 대처할 금후 활동방향을 토의하는 모임때 목란지구 소부대책임자 왕쑹이 말했다. 어제날의 중대장이였던 그는 지금 소부대책임자들중에 그중 로숙한 사람이였다.

《현 정황으로 보아 소부대들은 이 겨울동안만이라도 적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멀찍이 자리를 옮기고 일시 활동을 중단했으면 합니다.》

《소부대활동을 중단한단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

나이는 30대초반이나 온 얼굴에 수염이 더부룩한 왕쑹이 자기의 견해를 내놓았다.

《아시다싶이 열하원정때 우린 아까운 사람들을 거의다 잃다보니 소부대들도 대부분 신대원들이고 지휘성원들 역시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맡겨진 임무수행에서 응당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있으며 또 얼마든지 막을수 있는 손실을 당하는 경우도 자주 생기는것입니다.》

그는 박길송소부대의 실례를 근거로 내세웠다.

박길송소부대는 전투력이 제일 강한것으로 소문났다. 수하에 새 소부대들을 많이 꾸린 사람도 박길송이였다. 그들의 정치공작소조나 정찰소조들은 늘 높은 실적을 냈고 적들에 대한 습격작전도 솜씨있게 벌리군 했다. 그러나 신대원들은 역시 신대원들이였다. 정초에 박길송소부대는 어느 한 경찰서를 습격점거하고 밀영으로 돌아오다가 적의 《토벌》대와 맞다들게 되였다. 불의의 조우전에서 당황해난 신대원들은 박길송을 호위할 대신 도리여 그의 엄호를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박길송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소부대성원들은 절반나마 구원될수 있었으나 그자신은 중상을 입고 적들에게 붙잡혀간것이다.

《교훈은 지휘성원들이나 대원들의 수준을 높이지 않고서는 소부대활동의 성과를 담보할수 없다는것입니다. 그래서 일시 소부대활동을 중단하고 안전지대로 가서 군정훈련을 하자는걸 제기합니다.》

일부 지휘성원들도 왕쑹의 말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김책으로서는 왕쑹의 주장을 부정할수 없었다. 그것은 엄연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말이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신대원들이라고 하여 소부대활동을 벌리지 못한다는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다. 박길송은 신대원들을 데리고도 소부대활동을 손색없이 진행하였다. 직접 신입대원들을 끼고다니며 하나하나 배워주면서 할바를 다했던것이다. 대원들이란 실전을 통해서만 빨리 자라는 법이다. 비록 이번의 조우전에서 박길송을 잃기는 하였으나 그의 경험이야말로 누구나 다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라 할수 있었다.

김책은 구태여 이것을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또 다른 제안이 있으면 말해보오.》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지휘성원들은 모두 눈길을 떨어뜨리고 묵묵히 앉아있을뿐이였다. 김책에게는 그들의 태도가 소부대활동을 일시 중단하자는 제의를 시원하게 받아들이지 않고있는 자기에 대한 무언의 불만으로 느껴졌다.

토굴집밖에서는 스산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금시 가슴을 얼쿠어버릴듯 한 바람소리였다.

돌처럼 굳어져버린것 같은 침묵이 계속되였다.

이 순간 김책은 문득 열하원정의 나날이 생각났다. 국제당의 지시에 따라 열하원정을 하게 된다는 소리에 많은 지휘성원들이 침묵으로 대답했다. 열하원정의 무모성과 허점을 꿰뚫어보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국제당의 지시이기때문에 반대의사를 내놓을수 없었으며 참혹한 실패를 예감하면서도 무모한 죽음터를 향해 군말없이 떠나가군 했었다. 거퍼 3년이나 되풀이되는 이 놀음에 부대를 다 잃고나서야 살아남은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

《아, 원통하구나!》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장차 동북해방에 이바지할 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리면서 군사정찰과 소규모적인 습격작전도 끊임없이 벌려야 하는 소부대활동목적이 명백하고 누구한테나 승산있는 일로 인정되고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난국을 헤치기 어렵다고 저렇게 낯빛들이 어두워서야 되겠는가. 아마 적들의 발악적인 공세와 겨울활동의 불리성 그리고 일부 소부대들의 좌절, 그중에서도 박길송소부대의 손실앞에서 마음이 흔들린것 같았다. 지휘성원들의 준비정도가 왕쑹쯤만 돼도 이런 일은 생길수도 없었다. 경험이 어린 그들로서는 점점 어렵게만 변화되는 최근의 정황앞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나갈 자신심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일궈세울수 있겠는가.

《오늘은 이만하고 좀더 생각들을 해봅시다. 어떻게 하면 현 난국을 타개할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고 보다 합리적인 출로를 찾아내도록 합시다.》

김책은 휴회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출로를 모색하느라 밤잠마저 잊으며 지내오는중이였다. 그는 왕쑹의 제의를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대부분 신입대원으로 구성된 소부대들을 안전한 지대로 데리고가서 본격적인 군정훈련을 하자는 그 제의는 십분 타당하다고 할수 있었다. 그렇다고 겨울철의 소부대활동을 일시 중단하자는데는 마음이 딱 걸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내놓으신 소부대활동방침은 조선인민혁명군뿐아니라 중국의 항일련군부대들도 반드시 리행해야 할 중요한 혁명과업이였다. 그것을 겨울철이라고 중단할수도 없고 신입대원들이 많다고 중단할수도 없었다.

이런 때 놈들의 공세를 꺾어버리고 주도권을 쥐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김책은 새로운 방도를 찾는데 사색의 배머리를 돌렸다. 여러 소부대들을 한데 집결시켜 적들의 《토벌》거점을 먼저 들이쳐서 기를 꺾어버리는것이 어떨가 하는데로 생각을 모았다. 그럴사하기는 했으나 그것도 소부대활동방침과는 어긋난다. 또 다른 방도가 없을가 하고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뾰족한 수는 생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태를 사령부에 보고해야겠군.

마침내 김책은 이렇게 결심을 내렸다. 결심을 내리고보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전같으면 이런 경우 확신이 없는 결심이라도 스스로 내리지 않으면 안되였고 옳든그르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겨야 했다. 눈먼 총질같은 행위였고 괴로운 심사에 포로되여 지내야 하는 고문같은 체험이였다. 지금은 그런 고충이란 있을수 없다. 자기가 풀지 못하는 문제는 김일성동지께서 명쾌한 대답을 주시군 하기때문이였다. 그래서 며칠전부터 북만의 형편을 사령부에 그대로 보고드릴 작정도 했었다. 허나 김책은 선뜻 전문을 보낼수 없었다. 북만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기가 지금같은 정황도 타개하지 못하여 김일성동지께 또 무거운 짐을 얹어드리는것이 몹시 마음에 걸리였다. 뿐만아니라 박길송을 잃은 일을 차마 보고드릴수 없었다. 박길송이로 말하면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키워주신 사람이였다. 하기에 박길송은 자나깨나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올 그날만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런 사람을 잃고보니 김책은 차마 이 상실의 아픔을 보고드리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었다. 그렇다고 무한정 시간을 끌수도 없었다. 어차피 사실을 보고드려야 하는것이다.

바람이 또 한번 요란스럽게 요동을 치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계실가?

달빛이 희미하게 흘러드는 뙤창을 바라보느라니 김책의 마음은 자기도 모르게 그리움에 젖어들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