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산악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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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저녁 미10군단 야전지휘소에 나갔다 온 밴플리트는 도꾜의 릿지웨이에게 처음되는 불안을 토로했다.

《···나는 귀하께서도 충분히 감지한바이지만 귀하와 귀하를 통해 우리의 싸움이 력사에 미증유한 고전임을 대통령과 미국시민전체에게 알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적은 시간마다 강해지고 우리의 출혈은 예상을 초월하고있다.》

그 다음날에도 밴플리트는 야전지휘소로 나갔다.

오래동안의 전투를 지켜보고 장갑차에 오를 때 그는 이전과 달리 부관의 부축을 받았다. 근 열흘나마 미10군단과 《국군》 1군단사이를 오고가며 화풀이도 듣고 중재도 하며 돌아친 송우인도 그와 함께 돌아왔다. 그런데 밴플리트를 마중나온 사람들속에는 릿지웨이도 있었다. 그는 송우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릿지웨이는 밴플리트와 도일 히키를 비롯한 《제관》들을 불러 장시간의 토론을 벌리는 장소에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여느 때라면 이것이 커다란 아픔으로 되였겠지만 송우인에게서는 아무런 조건반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것에 무관심해졌고 일종의 《달관》세상을 초월하는 기분속에 우울해졌기때문이였다.

그의 이런 변화는 오랜 시간속에서의 느낌과 체험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최근 며칠동안에 받아안게 된 심각한 충격때문이였다.

10월 7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게 보내는 릿지웨이의 메쎄지가 방송과 신문으로 발표될 때만 해도 그는 강자로서의 미국의 도고함과 의지를 놓고 조그마한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비록 릿지웨이의 메쎄지에서 정전담판의 파탄과 그로 인한 전투의 치렬성에 대한 책임을 인민군측에 전도하는데 대해서는 얼굴 뜨거운바가 있었지만 《성의있는 태도》(온유한 굴복- 메쎄지내용에 대한 밴플리트의 설명이였다. 이하의 괄호안의것도 같은것이다.)를 강하게 촉구하면서 《이후의 사태발전》(원자탄까지를 포함한 치명적인 강타)은 전적으로 귀측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는 대목에서는 환성을 질렀다. 바로 그런 결심과 의지를 보이기 위해 릿지웨이는 메쎄지발표와 함께 공격강도를 배로 높일데 대한 명령을 떨구었다. 그러나 공격은 번마다 무참하게 좌절당했다. 이를 놓고 심각한 분석과 론의들이 있었다. 그런데 《국군》장교들은 물론 미군장교들속에서까지 사병들속에서 떠도는 신비적인 풍설을 그대로 옮겨놓는자들이 늘어났다.

김일성장군이 도술과 축지법을 쓴다더니 그것이 사실인것 같다. 다 점령한 고지우에 보이는것은 모래와 나무토막들뿐이였는데 불현듯 하늘에서 내려왔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모를 기괴한 사람들이 나타나 수백명의 용사들을 순간에 지옥으로 보냈다.》

《이 앞의 인민군은 대형직승기도 수송기도 없는데 까마득한 산정에 신형포를 올려다놓고 땅크건 화점이건 단방에 요정내군 한다.》

이때문에 군사재판까지 열어 몇몇 《요언전파자》들을 총살형에 처했다. 경주의 불국사에서 중노릇을 하다가 미국의 하바드대학까지 나왔다는 《한국》군장교만이 총살형을 면했다. 같은 대학의 동창생이 재판관인데도 있었지만 그의 자기 변호가 그럴듯 했던것이다.

《당신들은 그래 다 무신론자들인가. 그가 우리 편이건 적의 편이건 신은 분명히 있는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의 3차원적시각과 능력으로 그 신을 볼수도 만져볼수도 없다. 하지만 미구하여 과학은 신의 비밀을 우리에게 드러낼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는 김일성장군이인간으로 환원된 신일수로 있고 아니면 그들을 돕는 그 어떤 신이 우리를 괴멸시키려 하고있다는것만은 분명하다고 믿는다.

만약 당신들이 나를 총살한다면 당신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것으로 되니만치 3케이단의 종교재판정에 나서야 할것이며 바티칸의 영원한 적으로 될것이다.》

인민군의 완강하고 드센 방어는 10월 9일부터 릿지웨이에게 보내온 김일성장군의 메쎄지로 하여 최대의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릿지웨이의 변명과 위협을 단호히 일축한 메쎄지에서 《···당신측이 지켜야 할 모든 책임에서 결코 벗어날수도 무사할수도 없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이다.》라고 한 마지막대목은 송우인은 물론 밴플리트에게도 무시무시한 파멸의 선고로 돌렸다.

그 이후부터 더욱 적극화된 인민군의 맹렬한 강타는 《한국》군부대만이 아니라 미군부대내에서도 자총자, 도주자를 속출시켰고 동맹국군들속에서는 전투참가를 로골적으로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하였다. 현명하게도 네데를란드군의 한개 부대는 복무기간연장을 거부하고 이미 본국행기선에 올랐다.

릿지웨이는 비행기에 오를 때 또다시 우인이와 눈길이 마주쳤으나 그때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비행기가 검은 구름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서있던 밴플리트가 외롭게 서있는 송우인을 보자 안됐다는 기색을 보였다.

《송준장.》

밴플리트는 무슨 일인가 하여 흘끔흘끔 돌아보는 《제관》들이 멀어져가는것을 지켜보다가 말을 떼였다.

《이제 조사단이 도꾜에 온다고 하오. 여차직하면 여기까지도 올것이요.》

송우인으로서는 응당한 관심을 보여야 했다.

《무슨 조사단입니까?》

《국회조사단인데··· 대통령도 동의를 했다고 하오.》

밴플리트는 쿨럭쿨럭 기침을 깇고나서 계속했다.

《때문에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해야겠소. 리대통령한테까지는 알릴것 없고 당신네 참모총장과 국방부장··· 그리고 백선엽군단의 지휘관들과 참모장교들에게 지금까지의 작전과 관련한 보고서를 준비하도록 해야겠소.》

《그건 어떤 방향에서?》

《사실대로 하는것이지, 사실대로··· 내 생각에는 우리의 작전과 전투행동은 성과적이였소. 보고서도 보고서이지만 이제부터의 싸움이 중요하다는것을 명심해야겠소.》

밴플리트는 비행장표식등의 불빛에 생겨난 그림자를 밟으며 걸음을 옮겼다.》

《국회와 여론은··· 정전담판에 쏠리고있소··· 리해력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의 정전을 놓고 시비까지 하고있고··· 대통령도 더이상··· 막지 못하는것 같소.》

《작전은 지금 최종결속단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그런데 이제 한주일내에 결판을 짓지 못하면··· 곤난할것 같소. 맷트가 그렇게 약속했다고 하오. 조사단은 그전에 오는데 맷트의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적수들이라고 봐야 하오.》

《각하, 전 그 기한내에는 반드시 우리의 결심이 실현되리라고 봅니다.》

송우인은 밴플리트가 이토록 자기를 믿어주고 의지하려 하는데서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송준장의 동생은 지금 어디에 있소?》

밴플리트의 뜻밖의 물음에 송우인은 가슴이 덜커덩했다. 송우식의 편지와 쉘슨중좌의 미묘한 웃음이 떠올랐다. 중좌와 밴플리트대장간에는 하늘땅 차이가 있지만 송우식의 편지까지 들고다니는 그라고 볼 때 뭔가 우식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면 형된 자기가 밴플리트의 《국군》보좌관이니만치 일정한 귀띔이 있었을것이다.

우인은 불안을 지우지 못한채 우식이가 지금 미2사에 있다는것을 말했다.

《펜실바니아보병학교에 가는것으로 되지 않았던가?》

《네. 이번 작전이 끝나면 가는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송우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개 카츄사병을, 더구나 조사파견단이라는 례사롭지 않은 일을 놓고 그에 대한 질문을 하는것이 이상했다. 밴플리트도 그의 의문을 알아차린듯 했다.

《이번에 파견돼오는 조사단에 송준장동생과 함께 리대통령의 훈장을 받은 보튼상사의 아버지도 있소. 나는 조사단이 전선병사들까지 만나는 경우 그 보튼과 한국병사로는 송준장의 동생을 내정하고있소.》

《네?!》

송우인은 자기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밴플리트라는 이 어마어마한 《군신》이 조사단과 맞세울 병사에 대해서까지 생각하다니, 고맙기도 하였다. 조사단이 오는 경우 송우식은 전방에서 떠나오게 될것이고 우선 자기부터 만나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희요 꽃피는 산골이요도 다 알게 될것이고 정신착란증 비슷한 천사인지 뭔지 하는 망상증도 가셔줄수 있다.

여기까지 생각한 송우인은 인사 겸 겸양의 표시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각하, 저의 동생은 그런 자리에까지 내세울만 한 군인이 못됩니다.》

밴플리트는 싱그레 웃었다.

《아니요. 준장은 자기 동생을 잘못 보고있소. 나는 우리 군인들만 아니라 당신들에 대해서도··· 보는 눈을 익혔소.》

《감사합니다.》

송우인은 그의 말이 동생에게라기보다 자기에 대한 믿음의 표시라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밴플리트는 자기 약속을 리행하지 못했다.

조사단은 이틀후에 도착했고 미10군단 전방감시소에까지 나갔으나 병사들까지는 만나려 하지 않았고 밴플리트 역시 그에 대해 잊고있었다.

그는 조사단앞에서 말 그대로 《부르도크》, 《군신 마르스》가 되여 미10군단장 바야스가 하여야 할 사단지휘까지 도맡아나섰다. 《퇴각》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총살》로 을러메였고 실지 세명의 지휘관을 총살형에 처하였다.

10월 23일 조사단을 떠나보내고난(보튼의 아버지만은 그냥 남아 있었다.) 밴플리트는 미10군단 야전지휘관들과 《한국》군 1군단장까지 호출한 자리에서 《최후》, 《최종》이라는 말을 연거퍼 반복하며 결정적인 공격을 강조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주일이다. 7일 길수를 생각하라. 포탄도 병사도 아끼지 말라.》

다음날 저녁 송우인은 밴플리트의 호출을 받았다. 밴플리트는 조사단이 올 때도 쓰지 않던 철갑모에 방탄조끼까지 걸치고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송우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밴플리트는 날카로운 눈길로 그를 응시하다가 웃어보였다.

《마지막전투를 보자는것이요. 조사단은 일주일간의 말미를 주었소. 그때도 안되면 릿지웨이사령관 역시 정전담판에 대해 더이상 미룰수 없게 되오.》

《그럼 인민군측의 요구대로 한다는것입니까?》

송우인은 깜짝 놀랐다. 밴플리트는 흡족한 기색이였다.

《그렇게까지야. 그래서 한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지 않소. 결사전이요.》

그는 송우인도 함께 가자고 했다.

밖에는 장갑차들이 와있었다.

 

모든것이 체념과 망각속에 굳어졌다.

밤인지 낮인지도 구분할수 없고 시간이 가는지 오는지도 알수 없다.

신경은 마비상태다. 머리를 들부시는듯 한 포격도 온몸의 내장을 들춰내는 지동에도 무감각이다.

꽥! 하는 고함소리에 송우식은 눈을 번쩍 떴다.

《여, 오늘 당번이 누구야?》

이제는 보다 못해 보풀이 일대로 인 춘화첩을 움켜쥔 보튼이 반쯤 졸고있는 병사들을 노려보고있었다.

송우식은 그의 눈길이 변기통과 그 옆에 놓인 깡통들에 가닿는것을 보고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누군가의 빌붙는듯 한 말소리가 꿈결처럼 들렸다.

《이등병 톰이였습니다.》

《톰?!···》

보튼의 말소리가 굳어졌다.

톰은 오늘 보튼때문에 죽은것이다.

처벌대대에 편입된통에 1211고지 코밑의 《캘리포니아동굴》(보튼이 붙인 명칭이다.)로 오게 된 송우식이네는 그동안 《한국》군 3보사의 독전대임무를 수행하였다.

공격서렬의 맨 뒤에서 그것도 100여m 상거한 거리에서 도망쳐오는자들을 쏘게 된 임무였지만 고지들에서 날아오는 총포탄의 세례를 피할수 없었다.

톰은 오늘 직일이였으니만치 나가지 않아도 되였다. 그러나 보튼의 꾀임이였는지 강압이였는지 아침전투에 나갔다가 산산쪼각의 고기덩이로 변하고 말았던것이다.

(톰, 너는 머저리야, 머저리.)

송우식은 무지스러우면서도 자기에게는 더없이 상냥했던 흑인병사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영희며 보튼을 두고 하던 말이 떠오르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니 생각하지 말자.)

그는 입술까지 앙다물었다.

《다음차례는 누구야?》

보튼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송우식은 모두의 눈길이 자기에게로 쏠린다는것과 그러면서도 자기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것에 일종의 쾌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보튼도 그를 보던듯 싶었다. 하지만 우식이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감사납게 뜬 눈이 풀려지며 어딘가 허망중을 헤매였다. 우식은 아무 말없이 포탄상자로 만든 변기통과 통신선으로 끈을 단 오줌받이깡통들을 들고 굴밖으로 나갔다. 두텁게 친 모포와 155㎜곡사포방순으로 (직승기로 날아와 떨군것이였다.) 된 문짝을 밀어 젖히자 매캐한 연기와 흙먼지에 숨구멍이 콱 막혀 들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가슴은 시원히 열리였다.

날이 밝은듯 싶었으나 사위를 분간할수 없었다.

뜨는 해인지 지는 달인지 모를 뿌잇한 쟁반 같은것이 매달린 가칠봉 우측의 《상심령》쪽은 여느때보다 더한 장관을 이루고있었다. 포탄은 한자리에 두번 떨어지지 않는다지만 온 산정을 휩쓰는 섬광과 불기둥은 같은 곳에서도 연방 솟구치고있었다.

《저래도 매한가지지.》

그는 입안의 소리로 뇌이며 돌아서다 말고 슈- 하는 소리가 가까와 오자 우뚝 굳어지고 말았다. 폭발은 그가 선데서 30∼40m안팎의 후미진 곳에서 터졌다. 그것을 시작으로 골바닥을 연거퍼 들부어대는 포탄에 몇초 안되는 사이에 캄캄나락이 되였다.

송우식은 낯이 하얗게 질린채 그냥 서있었다. 이렇게 밖을 나설 때거나 독전대가 되여 총포탄속에 들 때마다 뭔가 기다리게 되는 습관이 그를 굳어지게 한것이다.

그가 문안에 들어서니 보튼은 눈이 휘둥그래 있었다.

《벌써 시작인가?》

《<함정골>을 칩니다.》

《그럼 아직 멀었구만.》

통로개척사격이 끝나고 《한국》군 3보사의 기본공격진이 여기까지 오자면 그의 말이 과히 틀린것은 아니였다.

지금 이 고지 꼭대기에도 《한국》군 한개 중대가 있으나 그들은 기본공격진이 올 때 합류되거나 인민군방어진의 허점을 노리다가 불시적인 기습을 한다. 그러나 보름전 전투에서 그런 기습을 하다가 전멸당한 뒤로 최우수용사들을 선발하여 대대급화력을 가진 강한 중대로 만들고 주로는 이 고지를 지키는것과 기본공격서렬의 안내를 한다.

《백골부대》출신들로 이루어진 이 중대의 군인들은 하나같이 전투경험이 오랜데다가 이북에서 땅과 공장을 잃었거나 혁혁한 《무공》으로 청사에 길이 남으려는 자들로 구성되여 있다.

그들은 인민군 한개 소대가 뚫다가 만 갱도와 전호들을 새롭게 보강굴설하여 한개 대대의 력량까지 수용할수 있게 하였다. 하여 공격시에 퇴각해 온 패잔병들은 그들의 갱도와 전호에 은페해 있다가 재차 공격에 인입되였는데 며칠전부터 거듭되여 쳐들어 오는 인민군의 야간습격때문에 지뢰원과 철조망으로 두더지 한마리 슴새 들어올수 없게 만들었다. 보튼과 이 굴안의 미군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그렇게 한것이다.

수없이 밀려드는 패잔병들과 여기를 도약대처럼 삼고 기여드는 《국군》들을 다 받아들이다가는 어느 땐가 그속에 끼여들수 있는 인민군습격조에 의해 여지없이 봉변을 당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대신 이 고지의 문지기이자 공격진의 안내자들인 《한국》군인들에 한해서는 미군과 거의 같은 공급을 하고있다. 그들이 잘 싸워야만 보튼네의 안전이 담보된다. 상부에서는 이곳을 매우 중요시하고있다. 공격출발진지에서부터 헐떡거리며 밀려온 자들이 이 고지뒤에 머물러 힘을 모았다가 단거리선수처럼 1211고지 정점으로 돌진할수 있기때문이다.

《자, 기운을 돋구자구.》

보튼은 벽에 건 배낭에서 단파라지오를 꺼내들었다.

전투전이나 뒤끝이면 광란적인 음악을 듣는것을 일과로 삼는 보튼은 라지오의 조절기를 돌리다가 《쉿》 하며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오케이!》

그의 입에서 뜻밖의 웨침이 터져나왔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백포를 친 칸막이뒤의 소대장까지 나왔다.

《보튼상사, 무슨 일인가?》

《경사입니다. 개성 판문점에서 우리측 련락장교와 공산군측 련락군관이 마주 앉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드디여 손을 든것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전쟁을 시급히 끝마칠데 대한 말이 있었는데 일본계집이 하는 영어여서 똑똑친 못했습니다.》

소대장은 뻥한 눈길로 그를 보다가 칸막이뒤로 사라졌다.

보튼은 기고만장해 소리쳤다.

《이젠 두더지생활도 끝났다.》

《건 어찌된 일입니까. 정전담판이야 넉달째 했는데-》

누군가 묻자 보튼은 멸시어린 눈길로 쏴보았다.

《자넨 그렇게도 아둔한가. 그전까지의 담판은 껄렁껄렁이였어. 릿지웨이장군께서 요 얼마전에 메쎄지를 통해 을렀다멨는데 그만 하면 알아 맞혀야지.

말하자면··· 우리의 강력한 공세에 적은 지쳤을것이고··· 2차대전때도 이랬지.

우리가 엘바강에 진출하자 도이췰란드의 장군들은 다들 항복교섭을 요구해 왔거든.

이번에는 평양이나 모스크바, 베이징 어디에서 <이젠 그만합시다.> 하고 손을 내밀었을거란 말이야. 사실 저놈의 <상심령>을 타고 앉고 금강산선녀들도 껴안아 보면 좋겠지만··· 이 보튼상사도 지쳤단 말이야.

그러니 강자로서 아량을 보일겸 고향에 돌아가··· 키스 쩍쩍하기 위해 이런 제안을 한거지.》

한바탕 유식을 뽐내고 난 보튼은 라지오의 파장을 새롭게 맞추었다.

이 동굴에서의 유일한 락으로 삼는 쟈즈곡이 울려나왔다.

《자 한바탕 춤을 추지 않겠나. 》

쟈즈곡의 광란적인 소음이 괴성으로 바뀌자 보튼의 몸놀림에 여럿이 따라섰다.

 

이 동굴은 캘리포니아

이 동굴은 ××녀인의 ××속

이 동굴은 하느님의 선물

 

언제부턴가 지어 부르기 시작한 노래로 악청들을 돋구었다.

이 동굴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한것은 한t짜리 항공폭탄덕분에 이 동굴을 발견하게 된때문이다.

B-29기의 조준수의 실수로 《한국》군 한개 소대를 멸살시킨 그 폭탄은 천연의 비밀로 감춰진 이 동굴을 드러나게 했던것이다.

우식은 눈을 감고있었다. 그러나 소리만은 막을 길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쏴갈길가.)

형의 모습이 비껴들며 그래서는 안된다고 속삭인다.

(바로 이런 광대극 비슷한 속에서였을것이다.)

영희가 찾아왔을 때 보튼은 갑자기 보급품을 타라고 그를 대대 본부에 보냈다.

농촌집 웃방에 자리잡은 영희를 두고 떠나는것이 마음놓이지 않아 주인내외에게 단단히 부탁하였으나 돌아와 보니 영희는 없었다.

주인내외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노라고 하며 우들우들 떨었고 보튼은 별의별 능청을 다 부리던 끝에 위문단차가 갑자기 떠나는 바람에 떠났다고 했다.

우식은 다음날에야 영희를 보게 되였다.

경비중대 군견이 피투성이가 된 영희의 옷 한쪼박을 물고 왔던것이다. 미칠것만 같았다.

톰은 보튼을 위시한 세사람이 영희를 다쳐놓았다고 했다. 그때 너무도 억이 막혀 당장 보튼을 해치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형이 생각나서 입술을 피지게 깨물며 참았다. 기회를 보자고 생각했다.

인민군습격에 곡사포들이 녹아났을 때 처벌대대에 자진 따라나선것 역시 바로 그런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보튼은 좀해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전투장에 나갈 때마다 보튼은 언제나 그의 뒤전에 섰던것이다.

(기회?! 이제 정전이 되면···)

영희가 없는 《정전》이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간막이쪽으로 사라졌던 소대장이 뛰여나왔다.

《비상!》

그의 말은 날카로왔으나 눈에는 공포가 어려있었다.

그는 더부룩한 수염투성이의 얼굴들을 자못 위엄스럽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보튼상사의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정전담판은 1211고지를 먹음으로써만 실현된다.

그래서 오늘 전투에는 우리 사단전체가 인입되게 된다. 오늘도 래일도 마찬가지다. 전투준비!》

《우리 임무는 무엇입니까. 독전이겠지요?》

보튼이 물었다. 얼마전에 보튼장군이 전선까지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고있는 소대장은 잠시 눈살을 찌프렸을뿐 유쾌한 소리로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오늘 당번은 누군가?》

《접니다.》

송우식의 대답에 소대장은 못 마땅한 기색이였으나 어쩔수 없는 태도로 말했다.

《우리가 나간 다음 이 안을 잘 꾸려야겠다. 저 춘화들은 불 태우고.》

《네.》

송우식은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고쳐했다.

《소대장님, 전 오늘 전투에 나갔으면 합니다.》

《뭣이?》

소대장도 그렇지만 모두가 이런 횡재를 마다하는 송우식을 의아쩍게 보았다.

우식은 지금까지 별로 가깝지도 않은 자기보다 손아래인 카츄사병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대장님, 저 친구가 리질을 만났습니다. 당번은 저 친구가 대신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꾀병이 아닌가?》

《아닙니다.》

이번에도 송우식이 대답했다. 무슨 행운인가 싶어 눈이 둥그래 있는 카츄사병에게는 보는척도 하지 않았다.

《좋다. 그럼 그렇게 하라.》

소대장의 말을 들으며 우식은 자기가 태여나서 뭔가 남을 위한다는것이 이것밖에 없다는 구슬픔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