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산악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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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는 자기 고유의 법칙성이 있다. 강한자는 이기고 약한자는 진다는 일반의 법칙속에 강한것은 무엇이고 약한것은 어떤것인가 자기와 적에 대한 연구, 지형지대에 대한 파악, 그에 기초한 전략과 작전전술의 수립, 여기서 강약을 규정하는것을 크게 세가지 요인으로 보고있다.

우선 력학적힘, 물리적수량과 관계된것이다. 인원(훈련에 의한 질적수준을 동반한), 무장장비, 철과 화약과 식량을 비롯한 보급원천이다.

다음으로는 국가와 군대의 통수부, 구체적으로는 군대의 최고지휘관과 참모진의 우렬이 승패의 주요한 조건으로 된다.

끝으로 그 나라 인민과 군대의 사기, 정신도덕적힘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보고있다.

이에 대한 순서는 시대별로 나라마다 일정하게 달리하고있다.

례하면 브류메르 18일정변에 대한 엥겔스의 짧은 론문이 나간 뒤부터 전쟁승리의 요인에서 정신도덕적힘의 우월성을 첫째로 보는 견해들이 대두하였다. 그후 로씨야혁명(공민전쟁을 포함하여)이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중국의 국내혁명전쟁과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대전은 인원과 물량의 힘이 아니라 군대의 사기, 정신도덕적힘과 그 무력을 통솔하는 최고지휘관의 지략과 덕, 위엄이 결정적이라는것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일방의 진리로만 되였고 전쟁사가들과 연구가들은 의연히 물량의 힘을 첫째로 보고있다. 그들은 2차세계대전에 대한 분석도 그런 각도에서 하였다.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배도 미국에 비한 철과 화약의 절대적부족에서 찾았고 도이췰란드군에 대한 쏘련군의 승리도 무진장한 자원과 우랄에 전개한 막강한 군수공업의 덕이라고 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조선전쟁은 이른바 두개의 《진리》를 새롭게 검증하는 싸움이라고 할수 있다.

8월 23일부터 더욱 본격화된 1211고지방위전은 비등한 힘의 두 강한 적수가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한 결전으로 되였다.

물론 《제공권》은 의연히 적들이 쥐고있었고 포병화력의 밀도에서도 아군보다 배이상을 초과했지만 8월 23일 오후부터는 《2방어계선》의 모든 포들과 력량의 전방진출, 예비무력의 급송과 무기, 탄약의 계속되는 보충을 확신한 최현이 그동안 로출시키지 않았던 포병대와 제2제대병력을 화선에 진출시킴으로써 전체적인 화력밀도에서는 거의나 대등한 상태를 이루었다.

뿐만아니라 고사포를 비롯한 모든 고사화력을 총동원하여 대공전투를 벌릴데 대한 김일성동지의 8월 22일부 명령에 따라 전선수송로와 대소고지들에서 적의 급강하폭격을 제압좌절시키자 적들의 사기는 대폭적으로 저락되는 반면에 아군은 정연한 진지방어체계를 갖춘 속에 배가의 기세를 떨치게 되였다.

최현은 로병관이 가져온 김일성동지의 명령서와 그 명령서를 받기 전에 하달받은최고사령관 명령 00197호 《모든 전선부대들에 땅크습격조를 조직할데 대하여》에 따라 적의 중요거점들과 포진지, 땅크집결처에 대한 야간습격을 조직하였다.

맹렬한 《공세의 핍박》에 수세적인 방어에만 치우쳤다고 생각한 인민군이 하루밤새에 수십대의 땅크와 수백문의 포들을 요정내고 여러곳의 대대, 련대지휘부를 짓뭉개버린것으로 하여 적은 아연실색하였다. 그러나 《백전로장》으로 자부하는 밴플리트는 비록 얼마간 놀라고 당황하기도 했으나 부르도크의 용맹한 기질은 조금도 잃지 않았다. 경계태세를 늦춘데 대하여 호되게 으름장을 놓고 미10군단의 예비땅크대대들과 포병대들을 전부 전방에 진출시키고 983.1고지, 965고지방향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함과 함께 가칠봉을 출발지점으로 하여 1211고지에 대한 총공격을 단행하였다.

8월 27일 미 2사단의 보병무력까지 출동시킨 상태에서 《공세》이래 최대의 폭격과 포격으로 전선전반고지들을 불바다속에 몰아넣었다. 이로부터 최현은 김일성동지의 명령에 따라 군단이 보유하고있는 모든 포들을 전투에 인입시켰다.

어두울 때가지 계속된 전투에서 밴플리트는 수천의 사상자를 내였고 그 대가로 얻은것은 중간지대의 무명고지 한개뿐이였다.

다음날부터 적들은 헐떡거리기 시작하였다. 예비가 거덜나기 시작한것이였다.

···8월 24일부터 련 닷새동안 줄닿게 내리던 비가 즘즛해진 날 밤 최고사령부 선두창고가 있는 석왕사로부터 안변, 고산을 걸쳐 철령을 넘은 여러대의 포탄차들이 화천다리목에서 불현듯 멈춰서자 그 차들의 뒤꽁무니를 다쫓듯 따라오던 군용승용차에서 후리후리한 몸매의 군인이 뛰여내렸다. 로병관이였다. 군용비옷을 입은 그는 어스름한 밤하늘을 근심스럽게 보며 다리목쪽으로 총총히 걸음을 옮겼다.

다리는 중간부가 무너져내렸다. 희읍스름한 강물속에서 수백명의 공병들이 다리수리를 하느라고 떠들썩하였다.

로병관은 다리목으로부터 꼬리잡이하듯 줄지어 늘어선 운수차들을 불안스러운 눈매로 돌아보고는 도하장직일관인듯 한 기발을 든 군관에게 다가가 약간 성칼진 어조로 물었다.

《몇시에 맞았소?》

《30분전입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되오?》

《두시간, 아니 한시간 반이면 될것입니다.》

《여보, 그 시간이면-》

로병관은 뭔가 더 쏴붙일듯 하다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홱 내젓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은 없었으나 새말갛게 씻긴 별들이 구슬을 휘뿌린듯 총총히 널린 하늘은 가슴이 시서늘할 정도로 너무 밝았다. 그 별들사이로 대여섯개의 붉은 점이 서서히 움직였다.

《적기가 아니요?》

《녜, 후방을 치러 가는것 같습니다.》

기발을 든 군인은 흘깃 하늘을 쳐다보았을뿐 별로 대수롭지 않아하는 태도였다. 도하장쪽은 아니니 안심하라는 뜻까지 포함된 그 말에 로병관은 쓴웃음을 짓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다리목 좌우에 그물위장을 한 고사포와 고사총들이 포구와 총구를 하늘에 뻗치고선것을 본 그는 본래의 성칼진 어조로 다시 물었다.

《공습시 저 사람들은 잠잔것이 아니요?》

약간 위압적으로 울리는 그 말에 기발을 든 군인은 상대의 아래우를 다시 뜯어보다가 무슨 구령이나 받은 사람처럼 차렷자세를 취했다.

《자지 않았습니다. 장령동지! 초저녁부터 대여섯편대가 교대적으로 덤벼드는것을 계속 때려쫓았는데 한놈이, 그 비행사녀석의 재간이 이만저만 아니였습니다. 글쎄 그놈이 강물을 핥듯 저공비행을 하며 던진 폭탄에 그만 맞았습니다. 다른 놈들은 고공에서 책임량을 하느라 아무케나 폭탄을 던져버리고는 훌훌히 달아빼는데 그놈만은··· 참 재수없었습니다.》

《그런 <재간덩이>가 있다면 또 맞겠소···》

《아니 그야 우연이지요. 허연 대낮에도 우리가 갈겨대면 꽁지가 빳빳해 도망치군 합니다.》

《저 아래 여울목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은 뭘하오?》

로병관은 다리목에서부터 400∼500m 아래쪽에 널려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기발을 든 군인은 그가 손짓하는쪽을 물끄러미 보다가 나직한 한숨을 뽑으며 대답했다.

《<로부녀수송대>입니다.》

《<로부녀수송대>?》

《녜, 그렇습니다. 로인들과 녀맹원들로 자발적으로 무어진 부대입니다.》

부대라는 말에 로병관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그리고는 비옷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철령쪽 하늘을 비질하는 탐조등과 예광탄의 불빛을 보다가 기발을 든 군인에게 《수고하겠소.》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로부녀수송대》쪽을 향해 걸음을 떼였다.

로병관은 최고사령부 선두창고에 와닿은 갱도굴설용폭약과 도화선을 접수하여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그는 오늘만이 아니라 최고사령부에 갔다온 날부터 이러한 《보장근무사업》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았다. 첫 이틀동안에는 《제2방어계선》에 남아있는 포와 무기, 탄약들을 1211고지일대에로 진출시키는 전반작전을 지휘감독했고 그뒤에는 병기창들마다 찾아다니며 여분을 탐색하여 전선에 보내는 사업을 조직지휘했다. 그 과정에 그는 일개 전사마냥 탄약상자를 메여나르기도 했고 고산으로부터 철령, 회양, 직동령을 거쳐 매봉뒤계선까지 오가는 탄약차들에 올라 적기들과의 대공전투도 벌렸으며 갱도굴설용정대를 벼리는 화선야장간에 들려서는 함마를 휘두르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김웅을 비롯한 일부 전선사령부 지휘관들에게서는 불만을 샀으나 최현을 비롯한 군단내 지휘관들과 전사들에게서는 절대적인 지지와 존경을 받았다.

김웅과는 오늘도 그의 《고위지휘관답지 않은 처신》을 놓고 불쾌한 말이 오고갔다.

《로동무는 나나 우리 전선사령부사업조직을 믿지 못하는것이 아니요?》

김웅의 말은 정통을 찌르는것이였다. 그러나 로병관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수 없었다. 김웅은 로병관의 침묵을 자기 말에 대한 리해부족으로 생각했던지 한발 드티는 식으로 말했다.

《물론 지금까지 나나 전선사령부사업을 볼 때 잘못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요. 만약 이번에 최고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이 없었더라면··· 엄중한 사태를 빚어낼수도 있었소. 이미 내가 상동지앞에서도 자기비판을 했지만 2방어계선문제가 그것이요. 사실 나로서는 잘한다는것이··· 그렇게 되였소. 최고사령관동지의 혜안에 따르지 못한··· 실책이였소. 그때문에 나도 할수 있는 노력은 다 하는것이요.》

그의 말은 사실이였다. 김웅은 《2방어계선》의 화력기재들과 인원들을 전방에 내보낼데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전달받기 바쁘게 배비변경조직을 함과 함께 고사기관총을 설치한 운수차에 올라 전방진출대렬의 선두에 섰었다.

《그런데 동문 지금 전선사령부나 관하 병기보장인원들은 다 제쳐놓고 제혼자 한다는 식으로 돌아치니 그 사람들로서는 자립성을 잃는것이고 지휘체계에서도 혼란을 가져오게 하는것이 아니겠소.》

《참고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됐소. 내가 하자는 말은 동무가 병기수송에만 빠져있지 말라는거요. 문제는 2군단의 작전지휘를 어떻게 하는가 모든것을 세심히 살펴 장군님께 얼마나 정확히 보고드리는가에 전투의 승패가 결정되는것이 아니겠소. 동문 최현군단장을 크게 믿는데 나도 이의는 없소. 하지만 그라고 실수가 없겠소. 최고사령관동지께서의 작전전투지휘는 동무네의 정황판단과 분석에 따른 보고에서 출발되는데 동무가 그곳에 있으면서 정확한 보고를 드리게끔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하오.》

로병관은 그 말에도 더 다른 대답을 할수 없었다.

《그리고 동무한테만 하는 말이지만 현재 종합되는 정찰자료에 의하면 적들속에서 전선동부작전이 불리하다는 설이 나돌며 새로운 방향에로의 공격안이 준비되고있다고 하오. 아직은 단정할수 없지만 지금의 전선동부공격이 조만간 끝나리라는것이요. 그때엔 전선중부나 서부에로 주타격이 가해질수도 있소. 그런만치 우리로서는 그에 대처할 준비도 세워야 할것이요.》

《최고사령부에서도 알고있습니까?》

《그렇소.》

김웅은 담배를 꺼내물며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10여일 채 안되는 기간에 무척 사람이 달라졌다. 로병관을 만날 때면 늘 의심쩍어하는 기색이면서도 예전의 위엄기나 표표한 기색을 보이지 않고 허심하게 대했다. 뿐만아니라 2군단에 대한 지휘권을 놓은 상태에서도 그곳의 전투행동에 대해서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로병관은 이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 김웅의 변화는 최용건을 만난 뒤부터(정확히는 로병관이 장군님을 뵙고 온 그시각부터라고도)라고 할수 있었다.

8월 24일 저녁 건지리를 출발한 최용건은 폭우로 여러 다리들이 떠내려 간통에 8월 27일에야 전선사령부에 도착하였다.

그때 로병관은 십중팔구 김웅이 자리를 내여놓을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김웅은 내적인 추궁을 받는것으로만 끝났다.

로병관으로서는 예상밖이여서 무척 놀랐다. 그만큼 감동이 컸다. 사람을 아끼시는 김일성동지의 넓으신 아량을 새삼스럽게 느꼈기때문이였다. 김웅이가 두번다시 탈선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도 만나면 경계감부터 앞세우게 되였다.

방금전에도 그랬다. 전선서부가 주타격으로 변화될수 있다고 한 말이 의혹을 심어줬던것이다. 그러나 찬비뿌리는 길에 나서자 김웅의 말을 새롭게 파고들어보게 되였다.

정말 그럴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가 아는 최근 정찰자료들과 포로들의 진술을 상기해봐도 김웅의 말에는 일리가 있는것 같았다.

포탄과 탄약이 들짱나고 막대한 유생력량의 손실을 가져온 적들속에서는 전투기피자와 도주자들의 속출로 곤혹을 겪고있는 상태라고 했다. 더우기 최고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에 따라 진행되는 습격조들의 맹렬한 활동은 적들로 하여금 화력밀도에서 우세를 더이상 보장할수 없게 만들었다.

로병관은 최고사령부 집무실에서 하시던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되뇌여보며 머리를 저었다.

《전선동부에 대한 현재의 공격은 시작에 불과한것이요. 때문에 갱도를 시급히 뚫는것과 함께 장기전에 대처할수 있게끔 진지화, 병실화해야 하오.》

그렇다!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로병관은 이 생각 하나를 품고 석왕사까지 갔으며 포탄과 함께 폭약과 도화선을 실은 차들을 앞세우고 1211고지로 떠난것이다.

그가 여울목가까이에 이르렀을 때는 스무나문명의 사람들이 강복판에 들어서있고 또 그 인원만 한 사람들이 강녘 버들숲쪽에서 우물거리고있었다.

《군대동무, 더 가지 마우다.》

량손을 오무려 고불통을 가리우고 담배연기를 빨아대던 로인이 그를 보고있었다. 손가락짬으로 빠져나오는 불빛에 코언저리까지 주름이 가득한것으로 봐서 퍼그나 년세가 많아보였다.

《무엇때문입니까?》

로병관은 년세도 년세지만 그 로인의 위엄찬 태도에 호감이 가 조용히 물었다.

《내인들이우다. 물건널 차비를 하지요.》

《물건널 차비라니요?》

로병관은 되물었다.

로인의 목소리가 불퉁스러워졌다.

《보아하니 군관어른 같은데 눈치가 발바닥이구려. 내인들이 아래도리를 벗고있수다.》

《녜?!》

로병관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입고들 건넜지요. 그런데 아낙네들 살이란게 여려놔서 젖은 옷을 입고 40∼50리 걷고나면 온통 피자박이 되고말거던··· 그 다음부터 내가 엄명을 했수다.》

로인이 으험으험 기침을 깇으며 고불통의 담배재를 털 때 그 기침소리를 기다렸던듯 청아한 녀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버님, 떠나시자요.》

《오냐, 그럼 배놀이를 해보자!》

로인은 물에 세워두었던 지게에 어깨를 들이밀고 끙- 소리를 한번 내지르며 로병관이 미처 손대일 사이없이 일어났다.

이때에야 로병관은 로인도 아래바지를 벗어 허리에 둘러감았고 또 지게에 얹힌것이 76㎜포탄상자이며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상자임을 알아보았다. 쌀 한가마니폭 무게일것이라는데 깜짝 놀랐다.

《로인님, 잠간만.》

로병관은 제잡담하고 로인의 지게다리를 붙잡았다.

《임자 왜 그러나?》

《저도 좀 날라보자는겁니다.》

《아니, 그만두게. 이건 내 몫일세.》

《허허, 아바이몫이면 내 몫도 되지요.》

로병관은 끝내 상자 하나를 허물어버리고 말았다. 그 상자우에는 쌀자루가 놓여있었다.

《허허, 이거 한결 거뿐하군. 헌데 저 아낙네들은 어쩐다. 젊은 남정들이 가까이 오면 영 부끄러워한다네. 체네들도 있거든.》

《저도 아바이로 불리우니 그런 걱정 마십시오.》

로병관은 자기를 뒤쫓아온 련락병이 대신 메려는걸 뿌리쳐 돌려보내고 로인과 함께 물에 들어섰다. 산골물이라 물은 차겁다못해 머리끝가지 쩌릿쩌릿하게 만들었다.

로인은 물에 발을 디디는 순간 《으흐》하고 몸서리를 쳤을뿐 묵묵히 걸어나갔다.

그런데 그들의 뒤를 따라 하나 둘 들어서는 녀인들은 연신 비명을 쳤다.

《애개개》, 《아이구》 까무라치는 소리들만 지르는가싶더니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누군가 건드러지게 타령을 불러대기 시작하였다.

 

신고산이 우르르

인민군 나가는 소리에

 

여러 목소리들이 그 선창을 따랐다. 차거운 물때문에 흑흑 흐느끼면서도 기를 써 그 노래를 따라부르는 녀인들도 있었다.

《어, 살것 같군.》

강뚝에 먼저 올라 바지를 꿰입은 로인은 장화를 거꾸로 쥐고 서있는 로병관을 보자 혀를 끌끌 찼다.

《내사 뭐라던가. 몽땅 벗어안고 건느자고.》

그의 발치에 쭈그리고 앉아 바지아래단을 비틀어짜던 로인이 흠칫하고 굳어졌다. 바지측장에 붙은 장령표식줄을 알아봤던것이다.

《글쎄 례사사람 같지 않다 생각했는데 틀림없구만.》

《아바이, 담배나 한대 피우고 헤여집시다.》

로병관이 곱아든 손으로 담배곽을 꺼내려 하자 로인이 앞질러 담배쌈지를 들춰냈다.

《이 담배를 맛보시우. 제가 만난 군대들은 이런 담배를 처음이라고 다들 혀를 두릅디다.》

두 사람은 의좋은 친구처럼 마주앉아 담배를 피웠다. 로인의 담배는 말그대로 참으로 향기롭고 구수했다.

《로인님의 집은 어데십니까?》

《법동이라기두 하고 영풍이라고도 하는 풍하면 범바위골에서 삽니다.》

《아니?!》

로병관은 펄쩍 뛰듯이 놀래였다.

《허허, 왜 그러시우.》

《저 녀성동무들도 거기서 떠났습니까?》

《녜, 거기서 떠났지요. 거의나 한부락사람들이우다. 풍상면 사람들도 좀 있고··· 군당부장어른이 총책임자랍니다.》

《그렇댔군요.》

로병관은 감회가 새로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철령밑의 구읍리까지 오게 허락되였던 후방수송대들은 8월 23일을 기해 회양군 말휘리까지 올수 있게 되였다.

로병관은 이에 대해 후방인민들을 믿지 못한다고 푸념질하던 운전사와 자기의 《공로》로 치부하고있었다.

그 말휘리까지 오는 첫 수송대들중의 하나가 《영풍수송대》이다.

《영풍수송대》는 태반이 로인들로 이루어진데다가 멀리 법동에서 오는것으로 처음부터 와디디하게 소문을 냈다. 법동에서부터 고산까지 오는 길은 한 박격포소대장이 개척한 길로서 사민들만 아니라 군인수송대들도 그 길을 리용하고있다.

《한데 닷새전 비에 그곳 다리들이 죄다 떠내려갔다고들 하던데 어떻게 왔습니까?》

《허허, 사람의 발이야 새의 날개 맞잡이 아닙니까. 차들은 못오지만 사람이 건널데야 없을라구요.》

로인은 지게에 실린 포탄상자를 흐뭇이 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지금까진 낟알마대나 지고 날랐지만 이번 다리가 떠내려간통에 포탄상자를 지게 되였지요. 그때문에 다들 기세가 더욱 높지요. 한데 젊은것들이 문제란 말입니다.》

《젊은것들이라니요?》

《포탄차를 끌고왔던 군대녀석들이지요. 하 글쎄 다리때문에 못건너오게 되니 다들 울상이면서두 우리가 나른다니까 코웃음들을 치는게 아니겠습니까. 그 포탄 하나면 미국놈 100놈을 잡는다구들 하면서··· 허··· 우리 늙은것들이 어디다 흘릴가봐인지 학질만난 녀석들처럼 떨드란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으름장을 놓았지요.

<야, 이 녀석들아, 내 아들놈도 대포를 다루는 군관이다. 그쯤한건 다 알고 덤비는것이니 우는 소릴랑은 전쟁이 끝난 다음 색시될 체네들한테나 하구 얼른 가서 또 싣구 나오너라.> 하구 호령했더니 그제사 좀 수그러들지는데 군당에서랑 와서야 고분고분해집디다.》

《그랬군요. 한데 떠난건 언제였습니까?》

《사흘전이였지요. 이른 조반을 치르고 부지런히 걷는다는게 이 모양입니다.》

《이 모양이라니요?··· 거기서 예까지야 300리가 넘지 않습니까?》

《그거야 자동차길이구 우리야 지름길로 왔지요. 그 길루 말하면 김일성장군님의 령을 받은 우리 아들녀석이 먼저 밟구··· 그 다음부터 다른 군대들이랑 우리랑 오군 하는 전선원호길이지요.》

《아드님이 포병이라고 했던가요?》

《녜, 어른처럼 큰 별을 달지 못했어두 군관입지요.》

《혹시 아드님 이름이 김철규가 아닙니까?》

《녜?!-》

로인은 입을 쩍 벌리다말고 로병관의 손을 제잡담 틀어잡았다.

《그를 아십네까?》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운 군인인데 제가 그를 모를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직접 아신단 말입니까?》

《녜, 알다마다요. 훌륭한 박격포지휘관이지요.》

로인은 사실의 진가를 알려는듯 두눈이 화등잔이 되여 보다가 벌떡 일어섰다.

《미순아, 미순아!-》

늙은이답지 않은 우렁찬 소리가 강반의 야음을 흔들었다.

《녜 – 에.》

얌전스러운 목소리가 받는가싶더니 날씬한 몸매의 처녀가 땅밑에서 솟아오른듯 불쑥 나타났다. 그는 로병관을 보자 무르춤해 굳어져 서며 로인의 얼굴만 빠끔히 쳐다보았다.

로인이 버럭 큰소리를 쳤다.

《얘야, 왜 말뚝처럼 서있는거냐. 저 장관어른은 철규를 잘 아시는분이란다.》

그리고는 로병관에게 자기의 《며늘애》라고 소개를 했다.

《그렇습니까?》

로병관이 새삼스럽게 《며늘애》를 보자 로인은 쩟쩟 하고 혀를 차며 또 한번 윽박지르는 소리를 내질렀다.

《얘야, 무릎절을 올리거라 무릎절을.》

처녀는 어쩔바를 몰라하며 머리를 외로 틀었다. 수집음을 타는것만 아니라면 신통히 영숙이와 먹고 게운듯 한 모습이였다.

《그래 우리 철규는 어떻게 싸우고있습니까?》

로인은 《며늘애》의 무릎절을 성사시키지 못한것이 아쉬운듯 채머리를 젓고는 긴 이야기를 들을 잡도리로 또다시 담배쌈지를 꺼내들었다. 철규를 잘 알고있다고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있는것 같았다.

로병관은 난처해졌다. 그때 다행스럽게도 녀인들이 수선거리는쪽에서 《떠나들봅시다.》하는 소리와 함께 호각소리가 울렸다.

《우리를 안내하는 군대어른의 신호입니다.》

로인은 이 말을 하면서도 움직일념은 하지 않고 로병관의 입만 지켜보았다.

로병관으로서는 철규를 아는척 한것이 후회될 지경이였다.

속사리골안에서도 이 비슷한 나세의 로인을 만난것과 그 로인 역시 아들을 찾던것을 상기하며 아직껏 그 로인의 아들에 대해 알아보지 못한것까지 겹쳐 떠올라 궁색한 마음을 더 크게 했다.

《로인님, 제가 이 며칠안으로 철규동무한테···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로인은 머리를 끄덕끄덕하며 《원, 무슨 그런 일까지.》하고 돌아보는데 한결 기뻐하는 상이였다.

《장관어른!》

그는 곡진한 어조로 한마디 부르고는 《며늘애》를 가리켜보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 애랑 나랑은 한행보 할 때마다 그 녀석이 있는데까지 가보는것이 소망이우다.》

《그럴테지요. 오죽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동무가 있는 곳은 최전방입니다.》

《녜, 그러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싶고··· 하긴 맹랑스러운 생각이지요. 군사일에 지장을 줘서야 안되지요.》

로인은 으험으험 헛기침을 하고는 지게다리밑에서 명태짝같은것을 벗겨 로병관에게 내밀었다.

《성의루 알구 이걸 받아주십시오. 장관어른두 엽초를 좋아하는것 같은데. 얘야 가자.》

《아바이.》

로병관은 불시의 충격에 그들을 멈춰세웠다.

(한번 만나보게 하자.)

이들이 말휘리까지 간다면 속사리까지도 갈수 있을것이다. 1211고지에서부터 속사리까지는 걸음길로도 세시간안팎이다. 아니, 철규는 그 절반시간으로 날아올수 있다.

(그러나···)

오가는 길에서 불상사가 생길수 있다는 생각이 혀에 오른 말을 삼켜버리게 했다.

《아버님, 제가 어떻게 하든 이 담배도 철규동무한테 꼭 보내주겠습니다.》

《원 무슨 그런 페까지, 얘야 장관어른한테 인사를 올려라.》

로인의 말에 정미순이라고 하는 녀자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며 절을 했다.

그는 두사람의 모습이 어둠속에 묻혀 사라질 때가지 그냥 한자리에 못박혀 서있었다.

가슴에는 뜨거운 열물 같은것이 차흘렀다.

차에 올라서는 줄담배만 피웠다. 이상스럽게도 그들이 아니라 영숙의 자태가 줄곧 눈앞에서 맴돌았다.

최고사령부에 갔을 때 만난 영숙이도 지금의 정미순이라는 녀자처럼 거의나 말이 없었다.

원래 말보다 눈으로 자기의 《언어》를 충분히 전달할줄 아는 녀자인데도 있었다.

영숙은 미리 선통을 받은듯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방안은 말끔히 정돈되여있었고 꽃병이 놓인 자그마한 책상우에는 과자와 참외가 놓여있었다.

병관이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영숙은 책상머리에서 꿈을 꾸는듯 한 자세로 가딱않고있다가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군대식경례가 아니라 나이든 녀학생들이 남선생들에게 하듯 허리까지 굽히며 절을 했다.

3년전에 그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와 같은 눈빛이였다.

얼굴도 그때처럼 해쓱해보였다.

보안간부훈련소의 사관으로 있던 영숙은 병실꾸리기작업을 할 때 들어올리던 대들보가 떨어지는 바람에 타박상을 입었던것이다. 그가 군인의 길을 곧추 밟지 못하고 대학에 가게 된데는 이 타박상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영숙은 어깨로부터 가슴까지 부목을 대고있었는데 로병관이 들어서는것을 보자 부목도 아픔도 죄 잊은듯 로병관에게만 하는 조선절로 인사를 했다.

《쇄골을 다쳤어요. 인차 낫는대요.》

영숙은 처녀로서의 부상이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로병관이 너무 걱정할가봐서인지 조심스러우면서도 두려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

로병관은 너스레를 피웠다

《동무의 지금 모습을 한장 그림에 남겨두고싶구만.》

최고사령부의 그 방에서는 그런 너스레도 우스개말도 못했다.

그저 장군님을 만나뵈온 일과 영학이 잘 있다는 그러루한 말만 곱씹었다.

(좀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그가 군단병기창고에 들렸다가 지휘부에 들어섰을 때는 날이 푸름푸름 밝고있었다.

최현은 이틀전에 붙잡아온 미군 포병소좌와 차를 마시고있었다. 미군소좌는 관례상 전선사령부에 올려보내야지만 최현은 미군야전포병규정을 《배운다》고 하며 생각날 때면 그를 자기옆에 불러앉히군 하는것이였다.

로병관은 미군소좌와 통역으로 있던 군관이 밖에 나가자 그 동안의 사업일정과 함께 김만산과 그의 며느리인 정미순이를 만나게 된 일을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가 들고온 엽초에 의문어린 눈길을 쏟고있던 최현은 버럭 화를 내였다.

《여보, 그 로인이 누군지 알고있소? 아, 왕별을 달고있으면서도 그 고마운분의 소원까지 못풀어준다는게 말이 되오?》

최현은 말휘리의 경무초소를 찾았다. 김만산과 정미순이를 속사리까지 오게 하라고 한 다음 52사사단장을 전화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