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산악 17


 
 

17

 

작열하는 대지, 땅이 뒤집혀지고 수림이 몸부림친다.

번쩍이는 섬광속에 갈가리 찢겨진 나무아지들과 이파리들이 흩날린다. 수백년 자란 거목도 대구경포탄에는 견뎌내지 못한다. 몸무겁게 안고있던 비물을 와수수 휘뿌리며 서서히 쓰러지는 나무들에서는 생과 작별하는 마지막신음소리가 울린다. 바람을 향해 손을 젓고 태양을 향해 미소짓던 아지와 잎새들은 마지막경련인양 푸르르 떨며 산발한 머리칼마냥 비젖은 땅에 맥없이 잦아든다.

하늘만은 태평이다. 몇점의 비구름들과 마지막비꼬치까지 죄다 떨구고난 가벼운 깃털구름들이 술래잡이하듯 감도는 속에 몇대의 추격기들과 함께 수천만딸라의 거금으로 만들어진 구라망회사의 특수방탄용직승기가 천미리로부터 고성고개까지의 30여km 전선상공을 날고있다.

3 000m의 고공에서 보게 되는 전선은 모형사판의 전선과 다를바 없다. 좀 이채로운것이 있다면 크리스마스때의 전기불꽃처럼 펑끗거리는 무수한 섬광과 그 섬광이 만들어내는 연기뿐이다. 희고 푸르고 노릿한 그 연기발들은 높낮은 산발들과 날카로운 기복들을 부드럽게 감싸며 거대한 띠발을 형성하고있다. 그렇게 볼 때 30여km의 전선은 추상파화가의 단붓질로 그려진 횡선의 연기발이였다.

《어떻소, 송준장?》

밴플리트의 웅글진 저음에 모두의 시선이 송우인에게 쏠렸다. 쌍안경을 내린 송우인은 질문의 저의를 알수 없다는 눈길로 그를 마주 보았다.

밴플리트는 두겹진 군턱에 새겨진 뽀드라지를 매만지며 싱그레 웃었다.

《우리의 첫 희생은 바로 이 세례식을 위해서였소. 》

송우인은 눈길을 내리깔았다.

(새벽녘의 일때문이구나. )

보병만으로써의 무모한 공격, 위력정찰전으로 불리운 공격은 세차례나 련속되였다. 그로 하여 《국군》 5사와 8보사는 각기 한개 련대씩의 손실을 가져왔다.

이에 의분을 느낀 송우인은 자기로서 볼 때 분명히 모험적이였지만 그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 첫 정찰전에서 적의 방어상태를 안이상 포병공격을 배합해야 하지 않는가고, 그에 따른 또 하나의 불만에 대해서는 속으로만 뇌였다.

(미군을 투입하였다면 포사격을 앞세웠을테지요.···)라고.

《나는 우리의 이 세례식을 <은하수>포격으로 기록에 남기자고 하오. 보오, 포사격지대가 은하수처럼 보이지 않소. 》

밴플리트의 시선이 송우인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갔다. 도일 히키, 8군 공군사령관과 포병사령관··· 리종찬은 애교띤 미소로 고개까지 끄덕여보인다. 송우인은 속으로 웃었다.

《부르도크장군》이 어떻게 되여 서정시인으로 되였는가. 육안으로만 본데서 온 로인성착각인가. 밴플리트며 리종찬에 대한 반발이 그의 입을 열게 했다.

《살상효률은 별로 크지 않을것 같습니다.》

《그건 옳소. 놈들은 지금 전호에 땅두더지처럼 박혀있을테니까. 하지만 여기 이곳들에서는 파괴와 출혈이 있을것이요.》

밴플리트는 이마와 심장쪽을 짚어보이며 또 한번 느슨한 웃음을 지었다.

(과연 그렇게 될가. )

송우인은 밴플리트의 손에서 번쩍이는 어느 도이췰란드장군의 선사품이라는 흑금강석반지를 보며 랭소를 머금었다.

허세인가, 진심인가, 워커의 후임으로 반년넘게 이 땅에 살았다면 뭔가 깨도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하지만 송우인은 이런 빛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밴플리트는 다른 모든 《국군》장성들과 다름없이 《국군의 아버지》였으며 《한국》과 그의 운명에 후광으로 될 《별》이고 《기둥》이였던것이다.

(성격! 전화속에서 이루어진 담대한 성격때문이다. )

그는 밴플리트에 대한 일종의 불만을 느낄 때마다 자기 생각 한구석에서 속삭이는 변호인의 말에 귀기울이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여기에는 별반 품이 들것도 없었다. 밴플리트는 작전지휘시 조폭하고 무서운 《부르도크》로 소문났지만 《국군》지휘관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너그러웠고 송우인에 대해서는 말그대로 《아버지》같은 아량과 호의를 보여주었다. 어느 때인가는 송우인을 보고 아일랜드계와 에스빠냐계의 피가 섞인 미국인 같다고 춰올려주었다.

송우인은 그때 밴플리트가 어데서 그런 근사점을 찾았겠는가 머리를 쥐여짜보았으나 피부색으로나 골상학적견지에서 봐도 그 비슷한데를 끝내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송우인은 밴플리트의 그 말을 자기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그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으로 보답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지금의 현지관측을 통해 우리의 작전구상이 옳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오. 》

밴플리트의 손에는 두뽐길이의 상아봉이 들려졌고 그 상아봉은 타원형탁의 작전지도에 가닿았다. 모두의 눈길이 상아봉과 지도에 가닿았으나 그것은 례의적인 흉내였다. 지도의 매개 점과 선들, 산발과 골짜기, 공격주로들과 병력배치는 손금보듯 환히 머리속에 새겨졌기때문이다.

송우인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상아봉이 비아리로부터 곧은 골- 말휘리를 거쳐 지도의 끝부분에까지 가닿는것을 보다가 다시금 흑금강석반지에 시선을 주며 밴플리트의 생각을 점쳐보았다.

이번 작전이 성공되면··· 밴플리트의 지시봉은 양덕을 거쳐 평양에 닿을것이고··· 원대한 꿈의 실현과 함께 그의 손에는 고려나 리조때의 수공예품인 금반지가 더 끼워질지 모른다. 그런후에는 어느 날 자기 가족들과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서 《북조선고위장성의 선사품》이였다고 겸손한 웃음속에 오늘을 추억할것이다.

《각하, 저길 보십시오.》

리종찬이 지엄스런 밴플리트에게 기쁨을 줄 기회를 찾았다는듯 성급한 동작으로 기창밑을 가리켰다.

밴플리트는 그의 손짓이 가닿는쪽을 보자 머리를 저었다.

《저들은 지뢰도 묻지 못했군.》

기창밑으로는 비아리로부터 직동령(곧은 골)우쪽으로 뻗어간 길이 펼쳐져있었다. 전투기비행사들의 정확한 묘준폭격으로 길좌우는 불바다로 되였는데 오직 그 길에만은 한방의 폭탄도 떨어지지 않고있었다.

송우인은 쌍안경의 도움으로 검붉은 화염과 폭연에 묻힌 그 길에서 마른 땅에 소낙비가 쏟아질 때와 같은 현상이 생겨남을 알아보았다. 길을 누벼나가며 쏘아대는 14. 5㎜기관총탄과 25㎜기관포탄은 무수한 목화송이와 같은 흙덩어리를 만들어내고있었다. 땅크대대들의 출격에 앞서 하는 이른바 지뢰해제작업인데 밴플리트의 말대로 단 한개의 지뢰도 묻지 못한듯 폭발도 비말도 전혀 생겨나지 않았다.

송우인은 허구픈 웃음을 웃었다.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을테지.)

모름지기 이 지대를 맡은 인민군지휘관들도 땅크의 진출을 예견했을것이다. 하여 반땅크전의 일반교범대로 길좌우에 반땅크포들을 전개시켰을것이고. 하지만 그 포들은 지금의 주단식폭격에 하나같이 파철덩어리로 되고말았을것이다.

(왜 지뢰를 묻지 못했는가, 없어서?··· 그럴수 있지. 전선서부의 평원지대에도 모자랐을테니까. 하긴 묻지 않은것이 오히려 나은셈이다. 묻어서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저 지뢰해제총탄에 죄다 하늘로 날아났을것을.)

송우인은 공군사령관이 그만 돌아갈 시간이 되였다고 하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밴플리트는 손을 들어 반대의사를 알렸다.

《아니요. 저 길로의 땅크열병행진까지 보고 갑시다.》

밴플리트는 웃음만을 보이는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듯 엄숙한 표정을 짓느라고 했으나 턱의 군살이 떨리는것으로 보아 허파는 여전히 춤바람에 흔들리는것 같았다.

(그래, 이번 작전의 성공은 명백하다. )

송우인은 전률비슷한 쾌감속에 몸이 오싹해졌다.

1 553문의 중곡사포와 박격포, 3 346문의 반땅크포, 265대의 땅크, 13만 7 335명의 대군··· 지금까지 한개의 전선에 이렇듯 많은 병화력을 집중하기는 처음이다.

(사이껭, 당신은 다시금 1930년대로 돌아가게 될것이다. )

송우인은 한시절 애정겹게 불렀던 사람의 이름을 뇌이며 다시금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대였다. 푸릿한 연기발속에 묻힌 산악이 자기의 형체를 뚜렷이 드러냈다. 좀전과 다름없이 움직이는것이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구 부러져나간 나무들이 시체더미처럼 보일따름이다.

(그래, 이 산악은 큼직한 묘혈로, 봉분으로 될것이다. 3만? 4만?···)

그는 어제 밤 결정한 두개의 공격주로들을 세심히 살펴나갔다.

비아리-곧은 골(직동령밑 골짜기)사이의 도로방향으로는 땅크대대들을 앞세운 미2보사와 프랑스대대와 네데를란드대대, 《한국》군 7보사와 5보사의 일부가, 가전리-이포리사이의 도로방향으로는 《한국》군 5보사의 27련대와 8보사, 수도사단, 11보사가 가위형공격을 들이대여 인민군주력집단을 포위섬멸한 다음 종심성과를 확대하기 위하여 미1해병사단과 미187항공륙전련대를 진출시킨다.

이 두개의 타격집단이 성과를 거둔데 따라 금성리일대에서 맹렬한 공격을 들이댈 보조타격부대들은 동해안으로 상륙하는 미 16군단과 합류한다.

(좀 허무하구나. )

이 순간 송우인은 아침녘에 두개 련대가 괴멸되였고 그 련대들을 소탕한 인민군군인들이 다음공격에 어떤 자세로 응전하리라는데 대해서는 감감 잊고말았다. 강약이 부동, 약육강식의 숙명을 생각했다.

이 지대가 한시절 《라당련합군》이 휩쓸고 지나간 곳이라는것이 생각되였다.

(김유신도 지금의 나와 같은 심정이였을가? )

화랑도의 거울로, 《국군》의 조상으로 간주된 신라의 장군을 그려보게 되는 그의 마음속에는 한가닥 애수 비슷한 감정이 늦가을 저녁의 황혼처럼 슬며시 깃들었다. 《라당련합군》의 마지막공격에 류혈을 이루었을 고구려군진영이 방불히 보이는듯싶었고 동족들의 시체속을 묵묵히 걸었을 김유신의 얼굴도 보이는듯싶었다.

문득 찌르는듯 한 아픔이 엄습해왔다.

고향사람들의 시체가 비껴왔던것이다. 그의 본의는 아니였다. 사단참모장으로 고향에 《개선》할 때 그는 북관사람들의 《아일랜드성 반항기질》을 말하며 지나친 《살륙》과 《제재》를 피할것을 고집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노》하는 미군고문관의 한마디 말에 무질러졌고 《38따라지》를 업신여기는 장교들에 의하여 무참한 학살이 감행되였다. 로병관과 황영학의 가족이라도 구할가 하여 내달렸으나 때는 이미 늦었었다.

(그래, 그것은 아녀자의 감정이였다. 큰것을 위해서는 작은것을 희생시키는 법이지. )

저 김유신은 《통일》성업을 위해 사랑하는 애희마저 한칼에 베여버리지 않았는가.

(로병관! 당신은 나를 절치부심의 원쑤로 보겠지. 황영학! 너도 그렇고··· 하지만 나는 자네들만은 구하고 싶네.)

송우인은 이곳 어딘가에 로병관이며 황영학이 있다는것을 알고있다. 인민군전선사령관의 부관은 전번 릿지웨이의 물음앞에 대답못한 로병관이며 황영학의 존재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자네들은 사상과 주의, 신념과 령수에 대한 매혹으로 이북을 택했지. 그러나 나의 사상과 신념은 표대의 글발이 아니라 힘과 실리에 있었네.

강자로 되는것, 여기에 삶의 목적이 있지. 한데 우리는 숙명적으로 약소민족이거든. 하여 나는 그가 강도건 매독쟁이건 관계없이 강자로 될 기둥만 된다면 그를 업게 되는것이야. 여보게들, 이건 력사의 철리일세.)

《송준장, 무얼 발견한건 아니요?》

송우인은 밴플리트의 웅글진 물음에 쌍안경을 떨굴 정도로 놀랐다. 하지만 순간적인 자제력으로 자신을 다잡은 그는 우연스럽다고 하겠는지 다행이라고 하겠는지 쌍안경에 언뜻 비쳐드는 세개의 점을 포착하였다. 하여 그는 재빨리 대답할수 있었다.

《각하, 곧은골령에 세명의 기마수가··· 기마전령 같습니다.》

《어디, 어디요?》

밴플리트가 체신과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호기심을 나타내며 그의 손에서 쌍안경을 받아들었다. 기내에는 갑자기 수선스러운 활기가 차넘쳤다. 아직까지 움직이는 생명체란 거의나 보지 못했던것이다.

《음, 맞소. 세명이구만.》

밴플리트는 어진 웃음을 흘려보이고 공군사령관에게 쌍안경을 넘겨주었다.

《저자들을 쏴제낄수 없소?》

《사정거리가 멉니다.》

쌍안경을 보지 않고도 세명의 기마수를 포착한 공군사령관의 말에 밴플리트의 얼굴은 험상궂게 이지러졌다.

송우인은 단 1분만 가속하면 세명의 기마수가 기관총유효사거리에 든다는것을 생각하며 밴플리트의 입만 지켜보았다. 하지만 밴플리트는 인민군대의 고사화력때문인지 전선을 넘을 용기까지는 없는것 같았다. 그의 독살스러운 눈이 포병사령관에게 가닿았다.

《사태리의 직사포대대는 뭘하고있소. 개미새끼 한마리도 놓치지 말라고 하잖았는가.》

그 웨침에 화닥닥 일어나던 구척장신의 포병사령관은 천정전등에 이마를 맞쫏고 우거지상이 되였다.

《각하, 사태리의 직사포들은 오직 장갑기재와 수송차들만 때리게 하였습니다.》

도일 히키가 이 모든 잘못은 자기에게 있다는 식의 죄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뜻밖에도 밴플리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게 하도록 했지. 이게 늙은이의 망녕이라는거요.》

그는 도일 히키가 뒤집어쓰려던 《잘못》을 허심하게 자기것으로 만들고는 쌍안경을 다시 들고 세명의 기마수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멋있소. 멋있어. 용감하거던.》

송우인은 산협을 이리저리 에돌며 달리는 세점이 멀리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밴플리트가 재차 하는 말에 공경어린 시선을 주었다.

《보매 통신선들이 끊어져나갔을것이요. 밤에도 포사격을 멈춰서는 안되겠소.

사람의 신경이든 저 통신신경이든 죄다 마비되게 말이요.》

《알겠습니다, 각하.》

포병사령관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밴플리트는 그의 이마가 천정에 부딪치게 된것이 미안했던지 부드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래일 아침 공격통로들을 개척할 포병대는 휴식을 시키시오.》

이 말 역시 《늙은이의 망녕》으로 봐야 할것이나 누구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래일 아침 공격통로들을 개척할 400여문의 포는 오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으니만큼 불필요한 지시였던것이다.

《아,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리종찬이 먼저 발견하였다.

송우인은 비아리계선에서 떠났을 20여대의 땅크가 폭연과 화염이 묻힌 사태리길에 들어선것을 알아보았다.

딱정벌레 같기도 한 그 검은 점들은 움직이는것이 아니라 그냥 한자리에 서있는듯 하는데 눈의 피로로 잠시 쌍안경을 떼였다가 다시 봤을 때에는 인민군 63사의 방어지점을 넘어서고있었다.

《흥, 이건 너무 싱거운걸···》

밴플리트는 말을 이렇게 했으나 쌍안경을 쥔 손은 떨고있었다.

항공기들이 개척한 길에 들어선 땅크들이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대며 속도를 높일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맨 선두땅크에서 팡끗 하는 섬광이 이는것과 함께 땅크는 삽시에 불길에 휘말려들고 뒤이어 두번째, 세번째 땅크도 불길속에 휘말려들었다.

《오폭격인가.》

밴플리트의 노성이 기내를 울렸다.

《각하, 오폭격이 아니라 인민군반땅크포들이 살아있습니다.》

《뭣이?》

밴플리트의 쌍안경이 탁 소리를 내며 비행기창에 부딪쳤다.

송우인은 쌍안경을 창에 가까이 대지 않고도 알아볼수 있었다. 《지뢰해제》사격으로 다듬질한 길에서는 무수한 불꽃이 팡끗 했다가는 목화송이로 변했다. 어림짐작으로도 한개 대대이상급의 반땅크포가 길을 따라 종렬로 배치되여 땅크들을 맞창내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기내에는 무거운 침묵이 서렸다.

《땅크대의 진출을 중지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도일 히키의 말에 밴플리트는 말없는 고개짓으로 승인을 표시하고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역시 적수는 적수야.》

허장성세한 그의 말로도 기내의 무거운 분위기는 가셔지지 않았다. 그러자 밴플리트는 조소어린 미소를 지으며 위엄있게 말했다.

《당신네는 사관학교 학생들도 아닌데 왜 이 모양인가. 저 땅크의 진출도 일종의 위력정찰이였소. 조선속담에 한번 채인 돌에 두번 채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공군사령관!》

그의 눈이 번쩍했다.

《오늘안으로 저 걸림돌들을 죄다 날려버리시오.》

《알았습니다.》

《가만, 그러되 길은 파괴되지 않게 하오. 조만간 우리가 가게 될 길이니 경폭탄과 소이탄으로 없애시오.》

밴플리트는 로장의 능력을 과시했다고 생각했음인지 자못 흡족한 기색으로 실눈을 지으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제 그만 돌아가는것이 어떻소?》

《네, 다들 기다리고있을것입니다. 》

도일 히키의 대답에 밴플리트는 싱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송우인에게 눈길을 옮겼다.

《송준장, 준장의 동생이 우리 2보사에 있던가?》

《네, 그렇습니다.》

《가던 길에 거기에 들려봅시다.》

송우인은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존경할만 한 무장이고. 그는 어제오늘에 걸쳐 밴플리트에게서 또하나의 무관다운 점을 발견하였다. 8월 17일로 선정된 릿지웨이의 공격날자를 하루 미룬 용단때문이였다. 폭우속에서 향방을 잃고 전멸할것이라는 밴플리트의 말에 대하여 도꾜의 릿지웨이는 현지사령관의 결심에 맡긴다고 하였다. 비행기는 천천히 선회를 했으나 좌석박띠가 팽팽해 질 정도로 한끝으로 몸이 쏠렸다.

《그 불쌍한 새들은 보이지 않는군. 》

밴플리트는 좌석손잡이를 꽉 잡고 몸자세를 유지하는 속에서도 로장답게 바깥관찰을 계속하였다. ···

 

송우인이 기마전령이라고 하고 밴플리트가 불쌍한 《새》들이라고 한 기마수들은 최현과 그의 련락병 그리고 로병관이였다.

52사 사단지휘부가 자리잡은 청송리골안을 그대로 지나친 그들은 매봉뒤골짜기에 이르면서부터 말들때문에 어지간히 애를 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게거품을 잔뜩 문 말들은 폭음과 땅의 진동에 놀란데다가 눈을 지져내는듯 한 초연에 비명을 치며 외딴 풀숲으로 가로질러 뛰는가 하면 아예 네굽을 벋디디고 죽자꾸나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자갈끈을 바싹 당기며 배허벅을 조겨라.》

승마술에 도통한 최현도 길아닌 야생돌배밭속에 끌려갔다가 간신히 되돌아나왔다. 그런중에도 최현은 어느 틈에 따들었던지 퍼런 돌배를 와작와작 씹으며 산고지로 말을 쳐몰았다.

사람도 말도 온통 땀투성이였다.

매봉꼭대기에 오른 그들이 폭음에 절반 얼이 빠져나간 말들을 교통호에 밀어넣을 때 52사 사단장이 기절초풍한 얼굴로 나타났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구··· 어데 다친데는 없습니까?》

《무슨 쓸개 빠진 소릴, 어떤 놈들이 우릴 쏴 맞힌단말인가.》

감시소에 들어선 최현은 통나무바람벽에 걸린 물통의 물을 절반쯤 비우고 그동안의 정황을 물었다.

《30분전에 보고드렸던 그대로입니다.》

《아직도 굳어진 혀가 풀리질 않았구나.》

최현이 비주룩이 웃자 사단장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왜 떠는가를 구체적으로 듣자.》

최현의 천덕스러운 말에 사단장은 모욕감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들의 방어전연에 투입된 적은 적게 잡아도 7배의 력량 4만명으로 추정되고있습니다. 이로부터 현재의 포폭격이 끝난 뒤 적이 밀려들게 되면··· 부득불 예비대로 된 한개 대대와 함께 저도 보총을 들고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여있습니다.》

《음, 그렇다면 유언장을 써둬야겠구나.》

《그건 제 피로 씌여질것입니다.》

《피로?!··· 전선신문에 낼만 한 말이구만.》

최현은 그의 말은 다 들으나마나 하다는 기색으로 감시창구에 다가갔다.

(흥클한 령감이라구야. 할 말은 해주지 않고.)

로병관에게는 사단장이 불쌍해보였다. 《여보게, 너무 초조해말라구. 이제 속이 확 열릴 소리를 듣게 될걸세. 지금 군단장은 붕 떠있는 상태일세.》 이런 말을 해주고싶었으나 사단장은 그의 눈짓도 알아채지 못하고있었다. 로병관은 어제와 오늘에 걸쳐 최현에게서 미처 알지 못한 뜻밖의 많은것을 알게 되였다. 최고사령부에 갔다온 련락군관으로부터 김일성동지의 친서와 수정된 결심지도를 받아들었을 때 최현은 여러 사람들이 지켜본다는것도 잊고 눈물이 글썽해있었다.

오늘 새벽 먼 우뢰소리처럼 들려오던 포사격이 천지를 뒤집을듯 한 굉음으로 변하고 적의 대거출현을 알리는 보고가 들어오자 최현은 또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래 오신단 말이지. 오신다?!》

최현은 손벽을 철썩치고는 성난 범처럼 방안을 왔다갔다 하는가 하면 껄껄 웃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불시에 걸음을 멈추고는 로병관과 참모장의 손을 꽉 잡았다가 놓았다.

《어떻소. 장군님께서 예견하신바 그대로요. 우리한테 주타격! 주타격이란 말이요. 아- 얼마나 현명하신 판단인가.》

로병관이 최고사령부에 빨리 보고드려야 하지 않는가고 하자 최현은 머리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 장군님께서는 지금 요때가 긴요한 휴식시간이기도 하고 또 하루를 설계하시는 시간이기도 하오.》

52사와 63사에서 첫 공격을 좌절시켰다는 보고가 왔을 때야 최현은 최고사령부와 직결된 전화기에 다가섰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전화를 걸지 않은것이 로병관의 의사이기도 한듯이 물었다.

《장군님께 보고드리자고 하오. 반대 없소?》

최현은 《네.》하는 그의 말을 듣고도 한동안 호흡조절을 하는 사람처럼 서있다가 송수화기를 잡았다. 전화가 끝난 뒤에도 로병관의 초조한 모습을 여겨보자 벙긋이 웃었다.

《내께 앉아있으라고 하시오. ··· 하기사 우리야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되지.》

최현의 활짝 단 뺨이 실룩이였다. 그다음 최현은 진중하게 앉아있었다. 하지만 얼마간 시간이 흐른뒤부터 또다시 초조한 징조를 보였다. 사단지휘관들에게 20분 간격으로 전화보고를 할것을 요구했고 전화가 없을 때면 허탈상태에 빠진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내겐 이런 시간이 고문이요.》

그런데 한두시간으로 예견한 포사격과 폭격이 더욱 강화되고 일부 구간에서 화력밀도가 더욱 증가된다는것을 알게 되자 최현의 낯색이 달라졌고 말도 적어졌다. 어둑한 얼굴로 의자에 붙앉아 담배를 피울 때면 타버린 고목등걸처럼 보일 정도였다.

로병관이 전선사령부의 탄약과 물자수송차의 운행정형을 알아보고 전화를 놓았을 때 최현은 드디여 자기의 심정을 드러냈다.

《동문 어떻게 생각하나. 놈들한테 제아무리 포탄이 많다 해도 통로개척도 아닌 위력사격에 저렇게 많이 쏟아부을수 있소?》

최현의 말보다 불안스럽게 깜박이는 눈길에서 로병관은 더욱 가슴이 써늘해지였다.

부산부두에는 하루 1만t이상 하륙할수 없다. 그중에 식량과 피복, 일반무기와 탄약을 제하고 나면 폭탄과 포탄은 7∼8천t정도로 봐야 할것이다. 그런데 전선은 여기만 아니니만치 아무리 주타격방향이라 하여도 3분의 2이상은 올수 없을것이다. 그렇다면··· 로병관이 지금까지 생각한 문제를 되새겨볼 때 최현이 재차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보기요. 놈들은 혹시 다른델 뚫러먹기 위해 우리의 력량전체를 여기로 쏠리게게 하자는것이 아닐가.》

로병관은 최현의 동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조석변화라는 말은 최현한테는 가당치 않을것이다.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여기가 주타격이라고 환성을 올리던 그가 어쩌면 이처럼 흔들릴수 있단 말인가.

로병관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있던 최현은 퍼렇게 피줄이 살아난 손등을 내려다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내사 팔삭둥이되는게거든. 저 뒈질놈들은 죄다 지금의 나처럼 되는걸 바라고있는것 같소. 》

《군단장동지,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다른 말씀이 없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한데 어째 이렇게 속이 탈가.》

최현이 담배를 새롭게 피워물 때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로병관은 증폭되여 울리는 첫 음성과 튕기듯 일어서는 최현의 동작에서 김일성동지의 전화임을 알았다. 장거리전화여서 잡음이 심했으나 김일성동지의 특유한 음성이 뚜렷이 들렸다.

《···총참(총참모부)의 종합료해보고를 통해 대략 알았는데 최현동무의 생각을 듣자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의 공격을 위력정찰전투로 본다고 하는데 그렇습니까?》

《네, 집(최고사령부)에서도 예견하셨던것처럼 그렇습니다. 한데 무슨 감자알(포탄)들이 그렇게 많은지··· 여러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우릴 죄다 여기에 얽어매고 다른델 치자고 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최현의 눈빛이 잔뜩 긴장되였다. 로병관은 뒤잇는 암호와 략어들이 섞인 대화를 풀이해서 들었다.

《여러가지 의문들은 지워버리시오. 시탐적인 공격이라는 의미에서는 소경막대질로 방어진지들을 찾자는것이고 대구경포들까지 입을 벌린것은 동무말대로 우리의 간담을 놀래우자는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포사격이 오늘로 끝나는 위력시위사격이 아니라 일단 공격주로를 차지하면 그에 지향된 방향에 밀집사격이 퍼부어질것입니다. 놈들은 최현동무가 중시하는 산악과 수림전체를 허허벌판으로 만들것입니다.》

《허, 산이사 간대루 없어지겠습니까.》

《거야 그렇지요. 그러나 수림은··· 없어질것입니다. 때문에 적들이 눈앞에 덤벼드는 순간까지는 진지굴설에 관심을 가지시오.

그리고 적들의 공격이 전선전반에 걸쳐 진행된다고 하여 력량을 분산전개할것이 아니라 이미 밝힌데 따라 중점적인 방어요점들과 기본공격방향으로 인정되는 계선에 강력한 방어진을 꾸려놓고 결정적인 강타의 기회를 택하도록 하시오.

다음 적아의 경계선이 명백히 찍혀지기 전까지 유격전술의 다양한 전법을 활용하시오. 그렇게 되는 경우 전선은 톱날식으로 되니만치 호상 련락과 린접간의 련계가 잘 보장되지 않는 약점이 있지만 적의 공격을 분산시키고 포사격의 자유를 얽어매게 되는것으로 하여 시간을 얻고 적을 수세에 빠뜨리게 할것입니다. 내 말뜻을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뒤에도 김일성동지와 최현의 전화는 오래 계속되였으나 암호와 략어의 뜻을 미처 해득하지 못한데다가 오가는 대화에서 전술과 전법문제가 어떤 때는 명백했으나 어떤 때는 아리숭했다. 《유생력량은 될수록 로출》시키지 말라는 말씀이 반복되였다.

전화를 마치고 났을 때 최현의 얼굴은 달덩이처럼 환해졌다. 그에게는 지금까지 전전긍긍해하던 의문점들이 죄다 사라진듯 싶었다. 김일성동지와 최현간에는 몇마디 략어와 암호나 일반적인듯 한 대화속에서도 큰 문제의 해결점이 밝혀지고 쉽사리 서로 통하는듯 싶었다.

로병관의 이러한 생각은 김일성동지와 전화내용을 전달할 때의 그의 말에서 더욱 확신적인것으로 굳어졌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에는 친서에서도 밝히신바대로 주도권을 잡는것, 교조적이며 도식적인 전법이 아니라 우리 식 전법을 살릴데 대한 사상이 밝혀져있소. 》

최현은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련락병을 찾아 말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

《군단장동지, 그러심 안됩니다. 파편들이!-》

52사 사단장이 범치듯 놀라 소리쳤다.

최현의 머리가 감시구밖으로 쑥 나가있는것이였다.

《방금전에 날아든 파편입니다.》

최현의 어깨를 끄잡아당긴 사단장은 자기의 돌발적인 행위를 변명하듯 파랗게 탄 쇠쪼각을 꺼내 내밀었다.

《그건 어째? 박물관에 보내자는건가?》

《포탄종류를 알아볼가 해서 건사해두었습니다.》

《종류를··· 허, 그러니 혀가 굳어질수밖에···》

최현은 그의 손에 든 파편쪼각을 찬찬히 보다가 감시구밖으로 훌 던져버렸다.

《이런걸 다 모은다면 2∼3일후에는 이 방이 꽉 찰게요.》

그리고는 실눈이 되여 옆에 선 군관들과 사단장을 보다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동무네한테 현재의 인원만큼 더 준다면 어떨것 같소. 그때도 피로 유언장을 쓸텐가.》

그 말에 사단장은 놀란듯 눈을 치떴다가 노여움에 차 말했다.

《군단장동지, 저희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실태를 정확히 보고하라니까 사실그대로 말한것이지··· 저희가 무슨 겁을 먹은줄 압니까. 그저 알아달라는것이지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 군단을 그처럼 믿으시여 단독방어과업을 주셨는데 저의 사단이라고 왜 장군님의 믿음을 어기겠습니까.》

최현은 대답을 못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소년처럼 사단장을 보다가 그의 어깨를 꽉 쳤다.

《내 잘못했다.》

그리고는 웃어보였는데 그것은 웃는다기보다 우는듯 한 모습으로 안겨들며 로병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전날 6군단의 기본주력을 2군단에 배속시키게끔 하신다는 장군님의 명령문을 접했을 때의 최현의 모습이 겹쳐들며 가슴을 더욱 저릿하게 했다. 그때도 최현은 성난것 같기도 하고 우는듯 한 모습같기도 하였다. 《동무네가 옳았소. 》 로병관과 참모장에게 이 말을 하고난 그는 한동안 엄숙한 기색으로 (량볼의 근육이 뛰놀았다. ) 있다가 손을 홱 내저었다.

《장군님께선 이런분이시란 말이요, 이런분!》

그리고는 창문쪽에 가 우두커니 있다가 홱 돌아섰다. 그때의 그의 눈에는 물기가 번쩍했다.

《난 말이요. 이래서 바쁘오, 바쁘단 말이여. 큰 짐이요. 지금까지 늘 이랬다니, 동무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지 않소?》

그때 로병관은 최현이 그렇지 않는가 하는 물음의 뜻을 미처 가늠하지 못하면서도 《네. 》 하고 대답했다. 론리로는 설명할수 없는 큰 감동이 미쳐왔기때문이였다.

《군단장동지, 63사 사단장동지가 찾습니다.》

뭔가 말을 떼려는듯싶던 최현은 사단장부관의 다급한 소리에 구석쪽의 전화탁에 다가갔다.

송수화기를 든 그의 입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스거? 크게 말해라.

몽땅 녹였다?!··· 좋아, 좋소. 음, 은페를 해야지. 그저 딱딱 맞아떨어지는구나. ··· 그래그래!》

최현은 송수화기를 뿌리치듯 놓고 개선장군 같은 름름한 자세를 취했다.

《63사가 적의 땅크대를 거의다 녹여냈소, 흠.》

그는 손을 썩썩 비비다가 52사 사단장과 눈길이 부딪치자 엄한 기색을 지었다.

《동무가 보총을 들고 함께 나갈 그 예비대는 어디 있나?》

《이 앞골짜기에 은페해있습니다.》

《그 사람들한테 공병삽이랑 곡괭이랑 다 있나?》

《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없습니다.》

《사단창고엔 있겠지?》

《있습니다.》

《그럼 그 쟁기들을 날라다가 그들한테 줘라.》

《그건 어떤?》

《땅을 파야겠다. 놀고있는 사람은 한명도 없어야 돼. 이 앞 쌍두두령으로부터 1211고지까지 몽땅 다 굴을 뚫어야 한다는걸 알지?》

《네. 》

《동무네 기본임무는 쌈이지만 굴파기 역시 첫째다.》

《그럼 적이 방어선을 넘어들어 올 땐 어떻게 합니까.》

《넘지 못해. 이 앞으론 그저 덤벼드는 흉내나 낼테니까.

그러니 가전리-이포리도로방향의 고지들에만 전투력량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다들 공병으로 돼야 된다. 굴을 파다가 덤벼들면 족치고··· 그럼 되는게야.》

《군단장동지, 질문할만 합니까?》

최현의 말이 정식명령이라는것을 안 사단장은 넘치는 불만을 질문이라는 말에 담았다. 최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단장은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며 말했다.

《예비대까지 굴파기에 동원시키는 경우 임의의 지점에 파구가 생기면 무엇으로 막게 됩니까.》

《동무네 오늘 새벽 교란전투를 멋있게 했지?》

최현은 동문서답의 대답을 하며 한눈을 찡긋 했다. 사단장이 그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뚝해있자 그는 더욱 씩씩한 태도로 말했다.

《황영학이가 나갔댔다지. 적중하게 골랐거던.》

《그건 그 동무의 제기에 따른것입니다.》

《여하튼 사단장이 잘한게지.》

《군단장동지, 제발 이러지 마십시오. 지금 그런 롱담을 하실 때가···》

《허, 롱담이라니. 내 말하자는건 계속 그렇게 해대면 한주일쯤은 끄떡없다는게야. 그렇지 않나?》

《지금 같은 포폭격이 계속되면 은페지도 없으니만치 그런 전투는 더 하기 어려울것입니다. 》

《건 비슷한 소리야. 하지만 놈들이 이 앞수림을 다 결단내자면 한달은 걸릴게거든. 그러나 저러나 적들에게는 이 앞지대가 미궁과 같단 말이야. 그러니 크고 작은 모든 릉선과 돌출부, 필요하면 골짜기들까지 소대, 중대급으로 잠복해있다가 여기서 치고 저기서 쳐서 적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자는거야. 적들이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가 하면 다른 곳으로 훌쩍 빠지고··· 이렇게 되면 적아가 뒤섞이는 통에 적들은 포사격도 바로 할수 없을게고··· 기본목표로 되는 고지들에 와닿기까지는 하루나 이틀은 걸릴 판이거든. 그사이에 우린 부족된 탄약도 보충받고 진지도 강화하고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때는 격이지. 그런데다가 1211고지와 이 앞으로는 당분간 적들이 덮쳐들지 못해.》

《네?!··· 그건 어떻게 되여-》

《어떻게라니, 그건 장군님께서 그렇게 하게끔 하신것이다. 방금 63사 일도 그렇지. 놈들은 장군님께서 그어놓으신 길을 따라 땅크를 들이밀다가 풍지박산됐다. 그리구 동무네 사단은 이제 준군단이 된다. 》

《준군단이라니요?》

사단장의 눈이 덩둘해 질 때 로병관은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를 체험하며 《자, 이제 잘 듣소.》 하는 눈길로 포병부사단장으로부터 부관에 이르기까지의 모두를 따뜻이 둘러보았다.

최현은 로병관의 그런 눈짓으로 하여 더욱 호기심에 차하는 얼굴들을 보자 새삼스럽게 자기의 옷차림을 까근히 훑어보고는 제껴 쓴 모자를 고쳐썼다.

그 다음 가볍게 기침을 하고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때까지의 반말조를《습니다》로 고치는 말이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6군단의 기본력량을 우리 군단에 배속시키게 해주셨습니다. 이로부터 동무넨 두개 련대이상의 인원을 새로 보충받게 됩니다.

내가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것은 동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동무들!》

최현은 뭔가 호소적인 말을 하듯 하다가 손을 내리그었다.

《지도를 꺼내오.》

사단장에게 이 말을 한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원탁에 다가갔다. 두손으로 원탁모서리를 누른 그는 고개를 짓수그린채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가방의 지도를 꺼내 원탁우에 펴놓으려고 하던 사단장은 흠칫하며 눈길을 내리 깔았다. 로병관도 보게 되였다.

부옇게 흐려진 최현의 눈굽에는 루공이 막힌 로인들에게서 보게 되는 눈물방울이 맴돌고있었다.

6군단의 보충력량에 따른 새로운 방어진편성과 앞으로 있게 될 전투의 구체적세부까지 토론을 하고난 최현은 련락병만 데리고 63사로 떠나갔다. 로병관은 다음날까지 52사에 머물기로 하였다.

초기전투시 가장 가렬한 전투지점으로 예견된 가전리- 이포리도로방향의 고지전투들을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또하나 황영학이를 만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가 최현과 함께 이리로 온데는 황영학이를 만나고 련락군관으로부터 받은 영숙이의 편지문안내용을 알려주자는 목적도 있었다. 그의 이런 결심에 대해 최현은 선선히 동의를 표시했다.

《전사(전선사령부)대표의 결심이니 낸들 어쩔수 없지.》

최현은 로병관이 이리로 함께 오겠다고 나설 때부터 그전까지의 경원시하던 태도를 말끔히 가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