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산악 10


 
 

10

 

근 10여일만에 중대로 돌아온 철규가 반토굴에서 풍기는 씁쓸들크무레한 풀향기와 전사들의 땀내에 흠씬 취한채 누가 들어가도 모를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2군단방어계선인 동쪽의 간무봉으로부터 서쪽의 석사리일대까지의 여러 지점에 각이한 구경의 포탄들이 날아와 터졌다.

1211고지와 마주한 가칠봉에서는 기관총사격과 함께 한개 중대가량의 적들이 릉선을 타고내릴듯 돌격태세를 취하였다. 전 세기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군악을 울리며 횡대대형의 보보공격을 할 때처럼 축음기를 틀어놓고 《만세!》까지 부르면서··· 전호굴설작업을 하던 전사들이 사격좌지를 차지했을 때는 포사격도 멈춰지고 돌격태세의 적들도 종적없이 사라져버렸다. 무겁게 내려앉은 검은 비구름속에서 희멀건 상현달이 전장의 고요를 더 깊게 했다.

바로 그 시각 전선사령부의 한 방에서는 황영학의 문제를 놓고 저마다 제나름의 의혹과 반발, 울분과 번민속에 모대김하고있었다.

전선사령관 김웅과 사령부관하 여러 사단장들과 련대장들이 모였다는데서는 전투총화회의라고도 할수 있었지만 사령부 재판소장과 검찰소장이 이른바 주석단에 앉았다는것으로 볼 때는 야전재판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재판이라고 하면 검찰소측의 기소내용이 발표되고 그에 따른 재판소장의 결론이 있었겠으나 이 모임에서는 김웅의 진지한 《자기비판》과 관하 지휘관들에 대한 엄한 추궁과 질문이 련발되는 속에 이젠 끝나는가부다 하고 다들 돌아가서 할 일들을 계획하고있을 때 황영학련대장이 연단에 불리워나갔다.

그에 대해서도 기소보고같은것은 없었고 주로 김웅의 질문이 련이어졌는데 모인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이날 회의의 《주타격대상》이 황영학임을 직감하게 되였다. 일찌기 무정이 그의 유순하면서도 고집센 두눈과 전체적으로 둥근 인상을 주는 얼굴이며 몸집을 두고 《참대곰 같구만.》라고 한뒤부터 《참대곰》으로 불리워진 황영학은 여기 모인 거의 모든 지휘관들에게서 호감을 사고있는 인물이였다.

더구나 그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 3년 넘게 중국 동북지방을 누벼다녔다는 사실로 하여 평양학원과 보안간부훈련소를 거쳐 지휘관으로 된 사람들에게는 각별한 존경과 호기심의 대상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는 대우산을 내준 장본인중의 한사람으로 되여 엄한 문책속에 들게 된것이다.

대우산일대에서 벌린 《기동방어전》(김웅은 이때부터 《기동전》이라는 말대신 《기동방어전》이라는 말을 썼다.)을 놓고 더 많은 적을 유인, 포초, 섬멸하기 위한 《1보 후퇴 2보전진》의 계략이였다는것과 실천상에서 엄중한 착오로 증명된 이러한 실책을 범하게 된것은 전적으로 최고사령관동지의 작전적방침과 의도에 대한 몰리해에서 나왔으며 주요하게는 《지휘관들의 주동적이며 창발적인 림기응변과 전사들의 높은 전투정신과 애국적정열을 지나치게 믿은데서 나온 주관적욕심》이였다고 자신을 《신랄히》 비판한 김웅은 황영학이를 내세우면서부터는 모든 잘못이 그 하나에게 있다는 론조로 이리치고 저리치며 답새기는것이였다.

그런데 황영학은 김웅의 어떤 추궁과 질문에도 거의나 입을 다물고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숯불덩이처럼 타드는 얼굴과 받기 전 황소와 같이 잔뜩 목을 움츠린 그의 자세에서, 이따금 객석에서 울리는 기침소리와 수선거림에 눈길을 쳐들 때 비쳐나오는 수치감과 울분의 빛을 보며 그의 마음속 번민을 력력히 느끼며 자신들도 그와 같은 심정인양 고개들을 수그렸다.

이들중에서 가장 심각한 가슴앓이를 당하는 사람은 로병관이였다.

로병관은 이미 회의전에 김웅으로부터 황영학이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려는가를 알았다. 김웅은 대우산을 내여준것과 그에 대한 탈환전투의 실패를 죄다 황영학에게 뒤집어씌우고 철직해임제기를 하려는것이였다.

지금 한시간 넘게 황영학에게 묻고 따지고 때리는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책임의 《근본원인》이 황영학에게 있음을 인식시키고 그에 따라 만든 문건을 최고사령부에 보고하기 위한 준비사업이라는것도 로병관은 알고있었다.

이에 대해 로병관은 김웅이와 함께 있게 되면서 처음으로 되는 《항변》을 하였다. 대우산탈환전투의 조직과 지휘는 자기가 (속으로는 김웅이까지 념두에 두었지만) 했으니만치 황영학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처벌을 준다면 응당 자기가 받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말하였다.

그러나 김웅은 그의 말을 귀등으로 날려보내며 랭소를 지었다.

《사업에서 인정람용은 금물이요. 물론 나나 동무의 부주의도 있소. 하지만 그것은 내가 며칠전에도 말했지만 지엽적인 원인에 불과하오. 우리는 근본원인을 밝혀 최고사령부에서도 정확한 인식을 가지게끔 하자는것이요.》

로병관은 그의 말속에서 그 어떤 책략같은 어두움을 느꼈으나 더 맞설수는 없었다.

《향교집》귀동자로 곱게 자라난 그에게는 량심도 《기사도》도 있었으나 옛날의 은사요, 현재의 전선사령관인 김웅과 끝까지 대결할 용기는 없었던것이다.

탕! 하는 소리에 로병관은 또다시 흠칫하며 고개를 쳐들었다.

앞의 책상을 내리친 김웅은 한때 교탁으로 리용되였던 연탁에 선 황영학을 찌를듯 쏴보며 소리를 높였다.

《그래 계속 입을 다물고있으면 어쩌자는건가. 반항이요. 뭐요?》

《반항은 아닙니다.》

《그럼 말을 해야지. 보오. 동무때문에 이 숱한 지휘관들이 부대에도 가지 못하고 여기 있지 않소. 지금이 어느때요. 응?》

《···》

황영학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뿌연 눈에 물기가 고인듯 싶었다.

카바이드등의 날카로운 불줄기가 관자노리의 불끈 살아오른 혈관을 푸르게 비쳤다.

그는 무겁게 말을 떼였다.

《저로서는 더 할 말이 없기때문입니다. 적들에게 고지를 내주고 탈환전투에서도 실패했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그럼 내 말을 다 인정한다는거요? 다시 말하지만 동무의 오유는 고지를 내주는데서부터 시작되였소. 전호굴설이 안된 상태에서 적의 화력이 우세하다고 하여 물러선다는것이 도대체 혁명군대지휘관에게서 있을수 있는 일이요? 정 포화력이 심하여 참호를 내주었다 해도 적들이 자리를 잡기 전에 다시 들이치면 고지를 잃지 않을것이 아니요.

이것이야말로 비겁성과 무능의 전형적인 실례라고 해야 할것이요.

다음, 탈환전투조직과 지휘란게 무슨 아이들 장난이요? 동무들이 용감하게 내달아 1참호까지 접근했더라면 적들은 좌우량익에서 포위환을 짓는 련대들에 눈길조차 돌리지 못했을것이고 대우산은 먹어놓은 당상이였을것이란 말이요. 라태, 곰같은 게으름, 굼벵이같은 동작.》

《굼벵이는 없었습니다.》

《뭐요!》

김웅은 또 책상을 칠듯 주먹을 쳐들었다가 입술을 파들파들 떨며 병아리를 노리는 독수리상이 되여 황영학을 쏴보았다.

《그러니 동문 내 말 전부를 부정한다는거구만.···》

《그···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뭐요?》

김웅의 눈에 싸늘한 웃음이 비끼는가싶더니 뜻밖일 정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동문 인정한다는 말을 떼기가 그렇게 힘드오? 남자답지 못하구만.》

로병관은 저도 모르게 바지무르팍을 꽉 움켜잡았다.

(영학이, 정신을 차리라. 정신을.)

옆에서 울리는 기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눈섭이 맞붙다싶이 얼굴을 찡그린 53사 사단장 오진우가 긴장한 눈길로 황영학을 주시하고있고 지금까지 조는듯 한 자세로 눈을 내리깔고 있던 해안방어독립려단장 김성국은 주먹을 부르쥐고 김웅과 황영학을 엇갈아 살피고있었다.

《저는-》

황영학은 입을 뗐으나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삐그덕- 하는 문소리와 함께 검은 차광막을 밀어제끼며 최현군단장이 들어섰던것이였다.

《저도 참가할만 합니까?》

최현은 김웅이쪽을 보면서도 어딘가 그 뒤쪽에 눈길을 박으며 물었다. 말은 온화했으나 일그러진 얼굴의 주름살들이 떠는것으로 보아 그의 심기가 좋지 않음을 모두가 느꼈다.

《어서··· 어떻게?》

김웅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입안의 소리같은 말로 떠듬거릴 때 주석단자리를 내여주느라 재판소장과 검찰소장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여기 앉지비.》

최현은 그들을 향해 손을 저어보이고 맨 앞줄의 길다란 널의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리루 올라오시우.》

김웅이 누군가가 새로 가져다놓는 학생용의자를 가리켜보이며 눈짓까지 했으나 최현은 설레설레 머리를 젓고는 황영학으로부터 객석의 사람들을 빙 둘러살피다가 김웅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

《회의가 오래 끌것 같습니까?》

《허, 이 황영학동무의 소심줄같은 고집때문에 지금껏 끌고있습니다.》

김웅은 마치 사소한 규률위반문제를 취급하던듯이 태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말에 최현은 다시금 황영학을 찬찬히 여겨보다가 김웅에게 또 물었다.

《어떤 고집이길래?··· 이거 안됐습니다.》

로병관은 《이거 안됐습니다.》라는 사민투의 말을 할 때 최현의 눈에 차거운 빛이 번쩍이는것을 보며 폭풍전의 시서늘한 바람을 감촉한듯 한 쾌감을 느꼈다.

황영학이를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시킨 당사자가 최현군단장이라는데서 더더욱 기대가 컸다.

(분명 영학이때문에 왔구나.) 가슴이 뛰였다. 그제 아침 전선사령부에도 들리지 않고 곧장 군단사령부가 있는 순갑리로 갔던 그가 야간 비행대가 날치는 험한 길을 돌따서 여기까지 다시 온것이야말로 황영학에게 구명대를 던져주기 위한것이 아니겠는가.

은근히 부풀어가던 희망과 기대는 본래의 태도로 다시 돌아간 김웅이 방금전보다 더 날카로운 분석과 론거로 황영학의 잘못을 렬거하자부터 뒤흔들리기 시작했고 김웅의 눈빛이 예리하게 번뜩일수록 최현의 얼굴색이 흐려지는것을 보자 찬바람맞은 풍선처럼 가라앉고말았다.

《내가 몇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최현이 움쭉 일어서는 바람에 희망의 불꽃이 또 한번 벙긋했으나 《이랬나 저랬나》 하는 투로 묻는 최현의 질문이 황영학에게 치명상으로 되는 일격임을 알자 완전히 맥을 놓고말았다.

《영학동문··· 전호굴설작업을 잘할데 대한 내 명령을 집행했나?》

황영학은 목울대뼈가 두세번 오르내리였다.

그는 뭔가 말을 할듯말듯 하다가 김웅이를 언뜻 보고는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닫아맸다.

(왜 말 못하는가. 그건 김웅사령관의 지시에 의한것이 아닌가. 아니 내 잘못도 있었지. 반타격으로 이행할 상태에서 무슨 전호굴설인가고.)

로병관은 이럴 때 응당 자기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표표한 기상의 김웅이를 보자 황영학이처럼 고개를 수그리고말았다.

《그러니 명령 불복종에 태공··· 이건 인정하나?》

《네.》

《됐어, 다음.》

최현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이글거리는 눈길로 황영학을 지릅떠보다가 옹골찬 저음으로 물었다.

《탈환전투조직전에 정찰은 했나?》

《못했습니다.》

《그러니 둘째, 다음.》

최현은 또 한번 숨을 들이쉬고 동안을 두었다가 물었다.

《탈환전투실패후 다시 빼앗을 결심은 있었나?》

《생각은 있었지만··· 가능성은 찾지 못했습니다.》

《음, 그랬겠지.》

최현은 무거운 짐을 부려놓은 사람처럼 어깨를 떨구고있다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명령불집행에 무분별, 의견이 있나?》

그는 두개의 손가락을 들어보이며 서리찬 음성으로 물었다.

《없습니다.》

《좋아, 내 생각 같아서는 별 몇개 잡아뗐으면 좋겠는데··· 장군님께서 주신 별이니 어찌 못하겠구나. 사령관동무!》

그의 눈길이 번쩍하며 김웅에게 가멎었다.

《황영학동무의 문제는 이만 끝내기로 하는게 어떻습니까. 나는 군단지휘관들앞에서 황영학동무에게 엄중경고를 선포했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장군님께서 이미 결론을 주신것입니다.》

로병관은 눈물이 찔끔 나는것을 간신히 참았다.

두번 처벌은 줄수 없으니 영학은 무사하게 된것이 아닌가.

(그런즉 장군님께서! 장군님께서 미리 말씀이 계셨구나.)

장내가 수선거렸다.

최현이 황영학의 잘못을 따지고들 때만 해도 득의양양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김웅만은 까딱 않고 앉아있었다. 수첩장을 번지는 그의 새끼손가락이 바르르 떠는것이 알렸다.

1분, 2분··· 계속되는 침묵에 몇사람이 기침소리를 내자 최현이 또다시 일어섰다.

《사령관동무, 방금 여기 도착해서 들은건데 우리 군단계선에 포사격이 있었다는구만. 제원구득시사 사격같습니다.》

《아니, 근데 왜 나한테는 알리지 않는가.》

김웅은 회의석속에는 소리칠 대상이 한명도 없겠건만 괜히 큰소리치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는 빠른 말씨로 지금까지의 경험과 교훈을 참작하여 차후 전투임무수행에서 사소한 실책과 허점도 없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고 페회를 선언했다.

그리고는 최현이 먼저 나갈가봐 걱정되는듯 재빨리 그에 다가가 사뭇 친절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그간 병치료는 잘되였습니까?》

《그 치료사 죽어서야 끝나지요.》

최현은 어색한 웃음속에 말을 받고는 좀 만날수 없겠는가고 물었다.

《만나야지요. 만나구말구요. 참 저녁식사는 하고 떠났습니까?》

《네.》

최현은 모두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쏠린것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로병관은 최현과의 친교를 시위하듯 그의 팔을 끄잡고 나가던 김웅이가 눈짓하며 따르라는 바람에 그뒤를 쫓지 않을수 없었다.

(무엇때문일가.)

그는 김웅을 잘 알았으나 최현에 대해서는 소문으로만 알고있었다. 그가 알고있는 최현은 무정과 비슷한 성미라는것과 김웅과는 그닥 가까운 축이 못된다는것이 하나의 예비지식이였다.

그는 소개한 기관건물들에서 가져온 가구들로 어마어마하게 꾸려진 김웅의 방에 들어서면서 여러가지 경우를 그려보다가 올해 초겨울 최고사령관동지의 전보지시를 깔아뭉개려 한 리승엽에게 최현이 권총을 들이댄 사실을 상기하며 그 어떤 뜻밖의 충돌이 있을수 있다고 미리 가정해보았다.

그는 며칠전에 내려온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서에 적힌 《···전선사령부의 일부 일군들이 아직도 교조적인 <기동전>에 매달려》 있다는 엄격한 비판글구와 결부시켜 생각했던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가 아닌가.)

이로 하여 그는 김웅과 최현이 자리에 마주앉았을 때도 차렷자세를 허물지 않고 긴장된 눈길로 최현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아닐세라 그를 알아본 최현은 찌붓한 눈길로 감사납게 스쳐봤을뿐 인사말 한마디 없었다. 그러자 김웅이가 자기는 어떤 대상에도 구애됨이 없다는 소탈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로병관동무는 앞으로도 2군단사업을 돕기로 되여있습니다.》

그 말에 최현은 로병관을 다시 돌아보기는 했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눈길로 스쳐봤을뿐 알은척하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사령관동무, 내 오늘 한가지 제기할 일이 있어서 왔수다.》

최현은 김웅의 새 부관이 가져다놓은 차고뿌를 밀어놓으며 음울한 눈길로 김웅을 곧추 보았다.

《뭔데요?》

김웅은 유연한 태도를 보이려 했으나 랭랭한 두눈에는 긴장이 어려있었다.

최현은 마디진 손을 맞잡고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사령부병기창과 석왕사에 장져놓은 포와 탄약들을 언제 가면 우리한테 보내주겠는가 하는겁니다. 내가 양덕골안에서 끌어낸 포들도 지금까지 고산바닥에서 딩군다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아, 그 문제였군요.》

김웅은 낯색이 핼끔하게 질릴 정도로 변했으나 입가에 웃음만은 지우지 않았다.

그는 길게 자란 손톱을 내려다보다가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군단장동무도 알겠지만 요새 와서는 적비행기들이 더 갈갭니다. 참 오는 도중에 폭격을 겪지 않았습니까?》

《아니.》

《아 오늘은 비가 온다고 했으니 뜨지 않는가 보군요.》

김웅은 뭔가 련이을 말을 생각하는듯 차를 들어 홀짝홀짝 마시며 눈을 뒤굴리다가 계속했다.

《내가 언젠가도 말한바 있지만 우리한테 포가 극히 적으니만큼 한문이라도 잃는다면 큰 손실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반항공대책이 보다 철저히 선 다음 집중수송을 하려고 한것입니다.》

《사령관동문 적의 공격이 이달 중순으로 예견된걸 모릅니까?》

《그야 알지요. 하지만 비행대폭격에 포와 탄약을 없앨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사령관동무가 생각하는 반항공대책이 무슨걸 념두에 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기다리는 사이면··· 전쟁두 끝나지 않겠습니까.》

《건 도대체 무슨 소리요?》

《무슨 소린가구? 건··· 고지도 사람들도 다 잃는다 그 소립지. 그래 사령관동문 포와 탄약은 귀중하고 그때문에 피흘리며 쓰러지는 전사들은 관계치 않는다는겝니까? 전사들이 쓰러지면 고지를, 나라를 잃습니다.》

김웅의 낯이 해쓱해졌다.

《그렇게 말하지 맙시다.》

김웅은 가늘에 떨리는 손으로 차고뿌를 매만지다가 놓으며 화해를 구하는 눈길로 최현을 보았다. 최현은 여전히 한 표정, 한 자세로 말했다.

《내 알기엔 지금 최사(최고사령부)고사포들까지 이곳 수송로를 지켜주는 조건에서 오늘 밤부터라도 포와 탄약의 대거수송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시간은 우리를 돕지 못할겝니다. 보나마나 날을 따라 적기들은 더 많이 날아들테고··· 그러니 조금도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 군단지역에 들어서는 포와 탄약손실은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 책임진다는것입니까?》

김웅의 말에는 비양기가 있었다. 최현의 눈섭이 꿈틀했다.

《내가 책임진다는것은 아무런 손실도 없게 한다는것이요.》

그는 례입을 걷어치웠다. 김웅은 얄팍한 입술을 잘금잘금 깨물다가 의자등받이에 몸을 제끼며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가능한껏 합시다. 그런데 양덕에서 온 포들은 수리를 요하는것들이 태반인데 그것도 보내달라는것입니까?》

《네. 우리 군단수리소들에서도 웬만한 불량개소는 퇴치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즉시적으로 수송구분대들에 비상소집을 하였으면 합니다.》

《이제?》

김웅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그를 보다가 단호한 태도로 잘라 말했다.

《그건 안되오. 이제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 해도 한두시간안으로는 출발할수 없는것이고 철령고개에 오를 즈음에는 날이 밝는단 말이요.》

《오늘 일기예보에는 큰 비가 내리는것으로 되여있습니다.》

《일기예보 하나를 믿고 모험을 해야 한단 말이요?》

《필요하면 해야지.》

《허.》

김웅은 이럴 때엔 도대체 어쩌면 좋으냐 하는 눈으로 로병관을 보았다.

벗어진 이마의 실오리같은 피줄이 팔락거리는것을 보자 로병관은 불시에 그가 측은해졌다.

김웅이 이처럼 수세에 빠져있는것을 처음으로 보는 로병관이였다.

(신경도 드세질 못하구나.)

최현이 여직껏 쓴외보듯 하던 차잔을 들어 맛스럽게 마시는것을 보며 확실한 대답을 듣기전에는 떠나지 않을 잡도리임을 알았다.

《뭐야?》

김웅의 새된 웨침에 로병관은 문쪽을 돌아보았다.

김웅의 부관이 문가로 들어서다 말고 흠칫하며 굳어져있었다.

《총참모부에서 무선통신이-》

얼어든 그의 말에 김웅은 또 한번 된소리를 내였다.

《뭐요, 말하오.》

김웅은 최현에게 당한 《모욕》을 그한테 분풀이하려는것 같았다.

《저- 무정동지가 돌아갔답니다.》

《그 사람이 어데 있다 돌아갔다는거요?》

《저··· 어데 있다가 간것이 아니라··· 사망되였다는 뜻같습니다.》

《사망?!》

김웅은 놀란 소리를 내고는 일순간 낯빛을 흐리였다.

《그밖에 다른것은 없소?》

《전선사령부에서 조의표식이 있어야겠다고···》

김웅은 책상을 걷어찰듯 일어섰다. 부관한테 다가가 전신지를 움켜든 그는 몇글자 보는듯마는듯 하다가 팔매돌처럼 집어던졌다.

눈에서 시퍼런 불빛이 튕겼다.

《도대체 그 사람들이 제 정신인가.

영웅전사들한테도 다 못하는 조의를 그한테 하라고.

최현동무, 사람들이란게 이렇단 ···》

김웅의 말은 여기서 끊어졌다.

쟁강-하며 차잔이 마루바닥에서 박산났다.

《도대체 사령관동무도··· 사람이요?》

최현은 얼굴이 먹장처럼 질려 부들부들 떨다가 비칠하며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확 잡아 열어제치다가 다시 돌아섰다.

《난 떠나겠소. 명심할거는 포와 탄약수송에 대한 나의 요구는 우리 장군님의 의도라는거요.》

문이 쾅- 닫기자 김웅은 심장동통이 오는듯 왼가슴을 꽉 누르고있었다.

《사령관동지, 너무하십니다.》

로병관의 격한 부르짖음에 김웅은 야멸찬 눈길로 흘겨보고는 최현의 뒤를 다쫓아 튕기듯 달려나갔다.

로병관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무정의 여윈 얼굴을 그려보며 무거운 걸음으로 그를 따라나갔다.

축축한 비발이 얼굴을 쳤다.

김웅의 손에서 ㄱ자형의 전등이 벙긋하자 최현과 그가 타고온 차가 눈앞에 보였다.

《최현동무!》

김웅은 놀랍게도 방금전의 충천한 노기는 싹 가셔진 소리로 찾으며 뛰다싶이 그를 향해 갔다.

《잘 가오. 다른 오해랑은 말고.》

김웅이 손을 내밀자 최현은 부르튼 소리로 말을 받았다. 《꼭 부탁합니다.》

로병관은 최현이 차에 오를 때 김웅이 비쳐주는 전지불빛으로 뒤좌석에 앉아있는 황영학을 보게 되였다.

그런데 분명 자기를 보던듯싶은 황영학은 고개를 돌려 외면하는것이 아닌가.

로병관은 날카로운 창끝에 꿰인 사람처럼 몸을 흠칫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