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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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서기가 저녁시간이면 어김없이 가져온, 낮동안 세계에서 벌어진 중요한 사건들과 그 사건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 여론들을 종합한 조선중앙통신사의 세계동향자료를 들고들어왔다. 그는 통신사자료와 함께 얼마전에 발표한 농업현물세에 관한 법령 (알곡수확에 대한 농업현물세의 평균부과비률을 대폭 낮춘다)과 학생들의 수업료를 전반적으로 페지할데 대한 내각결정에 접한 각계각층의 반향자료를 첨부하여 가져왔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를 끝내고 휴식을 하시는중이였다. 그이께서는 전후에 늘 내각에 나가계시였는데 최근에는 거의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 사업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휴식시간이면 편지도 읽고 라지오도 들으며 누군가를 불러 이야기도 나누시군 하였다. 세계동향자료와 상식자료도 보시였다. 상무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해 내각에서 온 김일부수상이 어쩌면 들릴것 같았다. 그는 지금 김만금농업부장을 만나 담화하고있을것이다. 회의가 집무실에서 있었는데 끝나고 헤여질무렵 수령님께서 인사말로 《내각에 가려오?》하고 묻자 그는 《농업부장동무를 만날 일이 있습니다.》하고 대답했을뿐 작별인사는 하지 않았다. 김만금을 만나고 가는 길에 얼핏 들릴수 있었다. 김일이 당중앙위원회에 오는 경우는 상무위원회에 참가하거나 수령님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인데 공식적인 사업이 끝나면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 수령님과 잠간 사담이라도 나누고 가는것이 통례였다. 뚝하고 실무적인것 같은 김일이지만 부드럽고 뜨거운 인간미를 간직하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먼저 최고인민회의 법령과 내각결정에 대한 각이한 계층의 반향자료들을 읽으시였다. 반향이 대단히 좋았다. 로동자, 농민, 기술자, 사무원들이 올해에 1차5개년계획을 반드시 끝내며 알곡증산으로 당과 정부의 배려와 혜택에 보답하겠다고 결의들을 다지였다.

다음 세계동향자료들을 보시였다. 세계각지에서 정치가들, 은행가들, 실업계의 거두들, 군부우두머리들, 론평원들과 기자들이 분주히 돌아치며 입에서 침방울을 튕기면서 웨쳐대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였다. 주목되는것은 1941년에 쳐칠이 쏘련을 방문한 이래 처음으로 되는 영국수상으로서의 맥 밀란의 2월말 모스크바도착과 흐루쑈브와의 회담, 귀국후의 기자회견이 세계적인 파문을 일으키고 보도수단들이 제나름으로 계속 떠들어대고있는것이였다. 쏘련을 극도로 적대시하던 영국이 어째서 그에 접근하고있는가? 다가오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인기작전의 하나로 충격적인 쏘련방문을 했다는 평이 우세하다. 한편 쏘련내부에서의 변화, 즉 반쓰딸린깜빠니야, 당의 령도와 프로레타리아독재, 계급투쟁에 대한 재평가 등 한마디로 사회주의의 기본원칙으로부터의 양보와 리탈이 서방의 흥미를 끌고있는 사정과 관련되여있을것이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사회주의건설의 초행길을 개척했던 쏘련에서 쓰달린의 서거이후 공산주의의 전면적인 건설에로의 이행이라는 구호를 들고 변화된 현실에 맞게 맑스-레닌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사회주의의 원칙, 레닌적윈칙으로부터 벗어나 그 무엇을 달성해보려 하고있다. 이것이 흐루쑈브의 《새로운 발견》인것이다.

《맑스-레닌주의에 빠다를 푸짐히 바르면 맛이 더 좋아질것이다.》 이것은 그가 한 말이다. 그의 리론가들은 로동생산능률제고에 대한 물질적관심성은 사회주의경제발전의 법칙이라고 말하고있다. 《빠다맛》을 본 사람들이 오직 돈밖에 모르는 개인리기주의자로 전락되고있다.…

이에 대해 기뻐하고 박수를 치며 환성을 올리고있는자들은 서방의 정객들과 반공분자들이다. 흐루쑈브가 쓰딸린을 비판하며 그의 과오를 들추어내고 독재요, 전횡이요, 관료주의요 하고 떠들어대자 서방에서는 그 과오를 쏘베트제도자체의 결함으로, 사회주의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로 분석하며 사회주의제도를 헐뜯기에 분망하였다. 쏘련에서는 그에 반박하여 그 과오는 사회주의제도자체의 산물이 아니며 그 과오들을 바로잡음으로 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이 옳바른 궤도우에 들어설것이라고 급급히 성명하였다. 그러나 그자들은 이번에 쏘련당이 전면적인 공산주의사회건설강령을 제기하자 허장성세한다고 역시 비난하였다.

가슴아픈 일이고 또 분한 일이다.

사실상 쏘련과 그를 추종하는 동유럽나라들이 변화된 시대에 맞게 한다며 가고있는 길은 자본주의복귀라는 무서운 결과에 도달할수 있다. 아니, 벌써 혁명적원칙으로부터 물러섬으로써 그 복귀의 길로 한걸음한걸음 가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마전 당 농업부에서 제출한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의 현 농업실태자료를 보신 생각이 났다. 다시 볼 필요가 있다.

그이께서 책임서기를 부르시여 그 자료를 찾아오라고 지시하시였다.

책임서기가 자료를 찾아다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음, 이게 옳소.》하고는 쏘파에 앉아 문서를 번지시였다.

김만금은 간단한 서론을 쓴 다음 편리해서인지 동유럽나라들의 자료로부터 시작하고있었다.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이 후퇴하고있으며 경제관리에서 일부 자본주의에로의 복귀현상이, 특히 농업부문에서 우심하게 나타나고있는 자료를 먼저 보고드립니다.

뽈스까에서는 전체 경지면적의 80%에 해당되는 경지가 협동경리에 망라되여있었으나 모두 해체해버리고 유고슬라비아(당시)에서의 〈농민자치제에 의한 경리〉의 본을 따서 〈농민자치제에 기초한 각이한 경리형태〉를 발전시킬데 대하여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3~5호, 기껏해서 7~8호정도가 경영상에서만 공동으로 협동하는 〈농업소조〉형태가 나왔고 개인농민경리가 부활했을뿐만아니라 역시 유고슬라비아의 본을 따서 부농경리까지 허용하여 그것이 급격히 장성하고있습니다. 로므니아는 개인상공업을 법적으로 장려하고 발전시킬데 대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마쟈르사람들은 〈나는 진짜 좋은 물건을 사고싶으면 개인상점으로 간다.〉라고 간부들이 내놓고 말하는 형편입니다. 동유럽나라들에서의 이러한 현상은 사회주의 큰 나라인 쏘련에서 반쓰딸린깜빠니야를 벌린데 이어 이 나라들에서 친쓰딸린적인물들을 제거하고 〈자유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정치적인 동란을 배경으로 하고있습니다.

쏘련에서 쏘련공산당 제20차대회를 계기로 로동계급의 당의 구성성분을 변질시키고 그의 령도적역할을 약화시키고있는데 대해서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그들이 민주주의중앙집권제를 부정하고있는데서 그것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레닌과 쓰딸린에 의하여 선포된 민주주의중앙집권제는 로씨야의 특수한 조건의 산물이다. 경제의 락후성, 반봉건적사회관계, 절대적독재, 민주주의의 결여 등과 같은 조건들이 존재하는 때에만 그것이 적용될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민주주의중앙집권제는 당조직의 기본원칙으로서 적합하지 않게 되였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적다수의 관리로 교체되여야 한다.〉라고 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회경제관리에서도 중앙집권적지도를 거세하고 기업을 자유화, 분권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하고있습니다. 유고슬라비아는 1950년대초에 〈자유의 원칙〉에 기초하여 경제를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복귀하였는데 현 쏘련지도부는 그것을 수정주의로 비판한 쓰딸린시기와는 반대로 〈신축성있고 현실주의적인 경제관리〉라고 하면서 여기에 현혹되여 경제전문일군들과 경제학자들을 보내여 경험을 섭취하게 하고있습니다.》

자료보고서는 《물질적관심성은 농촌경리발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한 리론가의 론문을 분석하고 농촌경리실태에 언급하였다. 개인부업경리를 장려하고 집단경리에 대해서는 물질적리해관계만을 가지며 관리일군들은 손님접대, 사업용 등의 명목으로 꼴호즈의 돈과 재산을 공으로 탕진하고 꼴호즈원들은 재산을 훔쳐먹는다. 출세주의자들, 건달군들, 협잡군들, 무능한자들(여기에는 이전 부농의 후손들도 있는데 계급이 없어졌다는 쏘련에서는 당에서 무리로 탈당하는 한편 아무나 아첨을 잘하고 돈을 찔러주기만 하면 당에도 들고 한자리도 할수 있다.) 바로 이런자들이 지도하는 꼴호즈나 엠떼에쓰(농기계임경소)에서는 모든 사업이 엉망진창이다.… 이런 실례가 있다. 《희망》꼴호즈위원장은 술주정뱅이이고 그 꼴호즈가 속한 구역당1비서는 주당에 잘 보여 출세하려고 애쓰는 인물이였는데 그 꼴호즈를 비롯하여 구역내 꼴호즈들에 대한 지도를 잘못하여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구역은 늘 말밥에 올랐다. 한번은 주당에 올라가 총화를 지으며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내려온 구역당1비서가 올해는 본때를 보이리라, 주적으로 기경도 먼저하고 파종도 제일 먼저 끝내리라 이렇게 결심하였다. 그는 꼴호즈위원장들을 구역당에 불러다놓고 우리 구역이 강냉이파종을 주에서 제일 먼저 끝내야 한다고 선포했고 아직 땅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주당에 춘기파종실적을 속히 보고하려는 조급증에서 《희망》꼴호즈에 내려가 당장 땅을 갈고 강냉이를 심으라고 지시했다. 다른 꼴호즈위원장들은 이 핑게, 저 핑게를 대며 땅이 다 녹을 때를 기다리는데 《희망》꼴호즈위원장은 무능한데다가 그 또한 주당이나 구역당에 잘 보이려는 야심을 가진 인물이여서 1비서가 시키는대로 했다. 결국 《희망》꼴호즈에서는 땅이 다 녹은 다음 강냉이파종을 다시 해야 하였다. 그러나 주당에는 강냉이파종을 먼저 한것으로 보고되여 평가를 받았다. 쏘련의 출판물에 실린 내용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쓰딸린이 이미 30년대에 쇠퇴하여가고 와해되여가는 꼴호즈는 당원증은 주머니에 넣고있으나 어쨌든 바보들인 일군들이 지도하기때문이라고 했던 연설이 상기되시였다.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물론 쏘련에는 아직 공민전쟁시기 백파도당들과 싸운 로세대당원들, 조국전쟁참가자들을 비롯하여 레닌적원칙으로 교양되였으며 그 원칙을 고수하고있는 사람들, 전후세대라 하여도 볼쉐비크당의 전통을 옳게 계승하고있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지키고있으며 그들이 지도부에 틀고앉아있는 당, 행정기관, 엠떼에쓰들, 꼴호즈들에서는 일이 잘되여가고있다. 그런 실례들이 자료보고서에 첨부되여있었다.

그러나 쏘련당이 계속 지금처럼 나간다면 꼴호즈들은 불피코 부패, 와해될것이다. 우에서 정책을 바로세워도 아래에서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이러저러한 부패현상이 생기는데 하물며 우에서 그런 조건을 지어주고있는데야 아래에서의 부패가 성행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자료를 옆탁에 던지시고 수령님께서는 움쭉 일어나시여 상념에 잠겨 집무실을 거니시였다.

혁명과 건설을 수행함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란 있을수 없다. 매 나라마다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가진다. 그렇다고 하여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이 시대의 변화를 운운하면서 《자기식의 길》을 선택한것이 옳은것이겠는가. 아니다. 이른바 그 《자기식의 길》에는 사회주의근본원칙을 무시한 위험성이 있다. 근본원칙을 떠나서 사회주의라는 숭고한 위업에 대하여 생각할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 원칙을 고수하면서 어떠한 길을 개척해나가야 하겠는가.

이 문제가 지금 수령님께서 안고계시는 초미의 문제였다. 지난기간 우리 당은 시종일관 우리의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로선과 정책을 세우고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여왔다. 그리하여 공업화의 기초축성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고 농촌경리의 협동화가 완성됨으로써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자본주의적생산관계가 완전히 청산되고 사회주의제도가 승리하였다. 우리 나라는 지금 자기의 력사상 일찌기 없었던 민족적번영기에 들어섰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되는것이 아니며 전진도상에 난관이 없을수 없다. 오늘의 난관은 전후의 난관과 다르다. 먹을것도 입을것도 집도 없었던 전후의 난관을 이겨내고 의식주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한 오늘날의 난관은 내 나라를 더욱 부강한 나라로, 우리 인민을 더욱 잘살게 하기 위한 보다 높은 혁명단계의 로상에서 부닥친 난관이다. 원칙을 지키면서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전진을 이룩하는 과정에 현실에서 결함과 오유들이 나타났던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극복하고 더 높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결함과 편향들을 시정하면서 부단히 사색하고 탐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수령님의 사색은 강선제강소와 청산리를 거쳐 이제 곧 가시게 될 함경북도를 더듬어가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상념에 잠겨 집무실을 거닐고계시는데 김일이 조용히 집무실 문가에 들어섰다.

《일을 다 보았습니다.》

이젠 그만 돌아가겠다는 인사말이였으나 그의 표정에는 수령님곁에서 잠시나마 사담이라도 나누었으면 하는 기색이 력력하였다.

《들어오오.》 수령님께서 손세까지 쓰시며 그를 부르시였다.

김일은 농민처럼 푸수해보이지만 사업에 들어가서는 매우 엄격하고 모든것을 명백히 할줄 아는 지도간부였다. 그러나 그는 수령님앞에서는 소박하고 겸손한 제자의 한사람이였다.

《마침 잘 왔소. 1부수상동무가 나한테 들려갈줄 알았소. 자 앉으시오.》 수령님께서 우선우선한 표정으로 같이 앉으며 김일에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지금 쏘련과 동유럽나라들의 농업실태자료를 보는 중이였소. 김만금농업부장이 제출한거요.》

김일이 그 말씀을 받았다.

《저도 그 자료를 보았습니다.》

《옳소. 내각에도 보냈다고 했소. 1부수상동무도 보았다니 생각되는바가 심상치 않겠지. 나는 쏘련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지 우려되오. 지구우에 첫 사회주의국가를 세운 강국이고 큰 나라가 아니요. 그 사람들도 물론 사회주의, 공산주의건설을 위한 합리적인 방도를 모색하고있지. 흐루쑈브수상이 나와 만난 기회에 자기의 고충을 얘기한적이 있소. 그런데 그들은 시대가 변했다고 하면서 맑스ㅡ레닌주의의 진수를 수정하면서 그 원칙으로부터 벗어나 빗나가고있단 말이요. 우리는 절대로 쏘련의 수정궤도를 따라갈수 없소. 우리는 우리 식의 길을 선택해야 하고 또 현재 선택하고있소. 그런데 문제는 대국주의자들이 자기들만 수정주의를 하는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정책을 따르도록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있소.》

김일은 그늘이 짙어진 수령님의 안색을 긴장하게 쳐다보며 그 어떤 불안하고 무거운 심정에 잠기는것이였다.

쏘련이 사회주의나라들에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한것이였다. 이전에는 절대적이라고 할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쏘련공산당의 현정책이 그처럼 그를 무조건 추종하는 나라들에 거침없이 파급되여가는것이고 그 정책의 수정주의적본질을 파악하고 배척하는 나라들의 경우에는 저항이 어려운것이다. 다시말하여 다름아닌 사회주의 큰 나라이기때문에 그를 견제하고 원칙을 고수하기가 어려운것이다. 김일은 수령님의 절절한 말씀을 들으며 심각한 생각에 잠기였다.

《나는 주체의 기치를 든 우리 조선혁명가들이 지난날에도 시련을 겪었고 현재도 겪고있으며 앞으로 겪게 되리라고 보오. 우리가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하는 투쟁이 대국주의를 막는 투쟁과 결부되여있기때문이요. 우리가 혁명을 시작하면서부터 부닥쳐온 대국주의자들의 압력과 간섭에 대해서는 회상하기조차 싫소. 전후시기만을 돌이켜봐도 이만저만 아니였지. 심지어 우리 당이 8월전원회의에서 사대주의자들을 치자 큰 나라들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기까지 하지 않았소? 오만한 내정간섭이였소. 물론 그들은 저들의 잘못을 깨달았고 내가 모스크바에 간 기회에 나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잘했다는 식으로 에둘러 사과했소. 그렇다고 흐루쑈브의 본심이야 달라졌겠는가. 우리 당이 쓰딸린을 비판하지 않는데 대해서 그리고 자기들의 정책과 로선을 따르지 않는데 대해서 의연히 아니꼬와하고있단 말이요. 이런 정세속에서 우리 당은 변함없이 주체의 기치를 들고 사회주의원칙을 고수해야 한단 말이요. 우리 나라는 작은 나라요. 경제도 쏘련에 뒤떨어져있소. 그러나 우리는 양보할수 없고 타협할수 없소. 그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소. 조선의 혁명가들은 원칙적인 길을 택해야 하며 그 정당성을 경제건설성과를 통해 립증시켜야 하는거요. 그러면 대국주의자들도 자연 입을 다물게 될것이고 서방의 반동들도 사회주의에 대한 비방을 더 할수 없게 될것이요. 우리가 오늘의 새로운 환경에서 옳바른 정책을 세우고 사회주의건설을 편향없이 진척시켜나가는것은 이처럼 심각하고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거요.》

《그렇습니다. 수상동지!》

두주먹을 무릎우에 올려놓고있는 김일이 힘주어 대답을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짧은 대답과 그의 굳세고 드팀없는 모습이 마음에 드시였고 믿음이 가시였다.

부관이 다과가 담긴 다반을 들고들어왔다. 그리고 고뿌에 사이다를 부었다.

수령님께서는 김일과 함께 사이다를 드시였다.

《수상동지, 제 생각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윽하여 김일이 침묵을 깨며 뜨적뜨적 말했다.

《민주주의중앙집권제원칙은 사회주의사회에서의 당, 국가활동과 경제관리에서 중요한 원칙인데 방금 수상동지께서 보신 자료에도 있는것처럼 지금 쏘련당에서는 그것을 부정하고있습니다. 변천된 새시기에는 맞지 않으며 〈민주주의〉로 대치해야 한다는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서방이 사회주의를 비난하는 중요항목이 바로 그 민주주의중앙집권제가 아닙니까. 그러니까 서방의 비난에 동조하고 굴복한것입니다.》

수령님께서는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그 원칙을 바로 적용하지 못하면 큰 편향이 생기게 되는데 민주주의, 즉 아래의 광범한 의견에 토대하지 않고 중앙집권제, 다시말하여 우의 통제와 명령만을 내세우면 그것이 관료주의를 낳으며 서방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에게 사회주의를 비방할수 있는 언치를 주게 되오.

나는 요새 사회주의와 사회주의건설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아마도 우리가 사회주의제도가 완전히 승리한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선때문일거요. 그리고 우리의 내부형편을 들여다볼 때 새 발전단계에 맞게 일군들의 수준과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고있기때문이요.》

오늘의 우리 내부형편을 비판적으로 깊이 들여다보자. 생산의 규모가 커지는데 따라 계획지표가 높아지는것은 합법칙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왜 천리마의 고향이라는 긍지를 간직하고있는 강선제강소가 1월계획을 미달했는가.

강선제강소 지배인은 설비를 갱신하고 관리하는 사업을 잘못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설비갱신과 관리의 주인인 로동자, 기술자들을 옳게 조직동원하지 못했다는데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리 로동계급, 우리 인민이 어떤 인민인가, 못살았기때문에 앞으로 나가려는 진취성이 강하다. 의지가 강하고 투쟁에서 단련되였다. 만약 고생을 모르고 처음부터 잘사는 인민이였다면 전쟁도 이기지 못했을것이고 전후복구건설의 난관도 이겨내지 못했을것이다. 이러한 인민의 분출하는 애국적열의를 일군들이 옳게만 조직동원한다면 오늘의 난관을 능히 이겨내고 계속 전진할수 있을것이다.

문제는 일군들의 새로운 안목, 관점, 조직력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농촌도 마찬가지다.

수령님께서는 김만금이 청산리에 갔다 왔을것이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시며 책임부관에게 그를 찾도록 지시하시였다.

미구하여 언제 보아도 피가 끓는듯 혈기왕성한 김만금이 나타났다. 수령님께서 그에게 걸상을 권하시였다.

《청산리에 갔던 얘기를 들어보기요. 동무가 보건대 지금 농촌경리의 관리운영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어떤것이라고 보오.》

김만금은 수령님께 보고드릴 기회를 기다리며 미리 준비를 했지만 잠시 머리를 정돈하고 허두를 뗐다.

《수상님께서 이미 말씀하신바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청산협동조합과 약수협동조합을 돌아보고 구체적으로 알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규모가 커지고 사업내용이 방대해진 협동조합을 관리운영하는데서 관리일군들의 조직지도능력이 따라가지 못합니다. 청산리관리위원장은 분주히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아래를 구체적으로 장악하지 못했거나 아래실정을 무시하고 성과 군의 지시를 무작정 내리먹이기때문에 작업반장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있습니다.》

김만금은 최인서2작업반장에 대한 관리위원장과 부위원장, 리종수로인의 상반되는 견해를 이야기하였다.

《동무가 보건대는 어떻소?》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2작업반장은 우에서 내려오는 간부들을 피하면서 씨원한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도 푸대접을 받았습니다. 관리위원장에게 속을 주지 않고있다고 합니다.》

《왜 그러는것 같소?》

《원래 말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마치 들판에 꺼꺼부정해서 무뚝뚝한 얼굴로 서있는 농민의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하였다.

《나는 만금동무가 바로 그것을 파헤쳐보아야 했을것이라고 생각하오. 푸대접을 받았다니 더 말하기 싫었겠지.》

김만금은 금시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바로 그랬다. 그래서 더 말할 재미가 없어 관리위원회로 갔었다. 귀를 잘못 듣는다고 하기때문에…

《어떻든 관리위원장에게 속을 주지 않는다면, 또 관리위원장이 그를 싫어한다면 잘못이 얼핏 보건대 그 작업반장에게 있는것 같지만 관리위원장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요. 동무도 그래서 지도능력을 말한거겠지.》

《예.》

《리종수로인이 그 반장을 좋게 평가했다면 좋게 보아야 하오. 리종수로인은 거짓을 모르는 땅과 같은 농민이요. 땅은 거짓말을 안하오. 땀을 흘린것만큼의 수확을 주지 더 주지도 덜 주지도 않소. 리종수로인이 그렇소.》

《잘 알았습니다.》

《계속하오.》

《둘째로, 조합이 커졌으나 토지면적당 로력수가 변함이 없고 생산수단도 변함이 없는데 올해생산계획이 높아져 이로부터 생겨난 모순과 복잡성을 타개해나가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일을 잔뜩 벌려놓고 걷어쥐지 못하고있으며 결국 영농준비에서 로력의 부족을 느끼고있습니다. 관리위원장은 독촉이나 하고 욕이나 하고있었습니다. 로력을 풀기 위해 뜨락또르를 영농준비에 적극 인입하는 문제를 농업성에 상정시켰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관리일군들이 조직지도사업을 잘못하면 힘이 커진 조합이 은을 못내.》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농업성의 계획사업이나 지도사업에서도 실정에 맞지 않게 하는것이 있소.》

《예. 그렇습니다.》

김만금이 대답하는데 잠자코 있던 김일이 입을 열었다.

《최영길부상이 내각회의에서 협동화가 끝나니 민주주의중앙집권제를 할수 있다면서 연설을 잘했는데 너무 자신만만해하는것 같았습니다.》

김만금은 최영길과의 담화가 상기되면서 김일1부수상이 옳게 느끼지 않았겠는가 생각하였다. 그렇게 느낀데는 단순히 연설하는것이나 들었기때문이 아니라 농업성사업의 결함을 들여다보고있기때문일것이다. 김일은 웬만해서는 칭찬하는 법이 없다. 좀전에 자기 김만금과 나눈 담화에서 김일은 맥을 못추고있는 농업상에 대해 그리고 농업성사업이 에누리가 많은데 대해 걱정을 했었다. 그러면서 김일은 농업성의 2인자라고 하는 최영길에게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다.

최영길이 김일의 눈에 들지 못하고있는것이 만금이에게 좋을리 없었다. 김만금이는 그와 사업을 해나갈수록 그에게 걸었던 기대가 점차 희미해져가는것을 괴롭게 인정하고있었다.

《그 동무가 점차 두각을 나타내면서 손탁이 세고 사업을 전개할줄 안다는것이 인정되고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관료주의를 부릴것 같은 위구심이 생깁니다.》

김일이 계속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내각회의에서 한 최영길의 자신만만해하는 연설을 들으시였다. 그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해방후부터 알고계시였다. 그렇지만 농업지도기관에서 줄곧 일해오고있는 실력있는 농업전문가라는 정도의 인식에 머물고있으시였다. 전쟁시기에 있은 전시알곡생산을 보장하기 위한 내각회의때 그의 토론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이후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빈농의 아들로 어머니, 아버지가 손끝이 닳도록 농사를 지어 학비를 대주어 농업학교를 졸업한것이며 농림국과 농림성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는 실력있고 전개력있는 일군으로 평가되고있다는것 등을 알게 되시였다. 그리하여 전후복구건설이 시작되자 그를 농업성 부상으로 등용하시였었다.…

《당 농업부에서 농업성에 대한 정책적지도를 옳게 해야 하겠소.》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현실을 떠난 지도는 관료주의이며 그것은 오히려 생산의욕을 떨굴수 있소.》

《제가 농업성에 대한 당적지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김만금이 자책어린 어조로 말씀올렸다.

《동무가 농업부장이 된지 1년 되나마나하니 그럴수 있지. 농업부의 사업방향은 내가 이미 말했소. 좋습니다. 우리는 며칠후에 함북도를 지도하게 되며 련이어 다른 도들도 지도하려 하오. 이 과정을 통해 우선 우리자신들이 많은것을 깨닫고 인식을 새로하게 되리라고 믿소.》

담화를 끝내며 그이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김일과 김만금이 그이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