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8

 

8

 

김만금은 오후에 농업성에 들리였다.

농촌의 분주한 영농준비실태가 그대로 반영되여있는듯 성의 이방저방에서 전화종이 울리고 큰소리가 들리였으며 문서를 든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갔다.

체격이 큰 최영길부상이 배를 내밀고 복도를 걸어오고있었다. 갑자기 옆에서 문이 벌컥 열리고 공처럼 막 튀여나오던 어떤 지도원이 그의 큰 배와 부딪쳤다.

《뭐야?》 최영길이 흠칫하며 꽥소리를 쳤다.

지도원은 《미안합니다. 부상동지!》하고는 허리를 굽혀 사죄하고 뒤걸음질을 쳐 나왔던 문으로 도로 들어갔다.

최영길이 문을 쥔채 안에 대고 소리쳤다.

《여긴 어디야? 사무실이 왜 이렇게 너절해? 담배연기만 자욱하고ㅡ 너는 누구야? 부처장? 좀 있다 내 방에 오라.》

문을 쾅 닫고 복도로 돌아섰다.

《아니 부장동무 아니요?》 그는 다가온 김만금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어서 갑시다.》

김만금은 최영길이를 따라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최영길은 가방을 던지다싶이 책상에 놓고 곧 차를 김만금이에게 대접했다. 그들은 쏘파에 나란히 앉아서 차를 마시였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인가?》

김만금의 물음에 최영길은 《내각에 갔댔소.》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마시였다.

이 두사람은 왜정시기 안주농업학교를 같이 다닌 인연으로 하여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다. 같은 농업학교를 다닌 동창일뿐만아니라 둘사이에 인연이 깊었다.

그 인연은 김만금이 일으킨 큰 사건과 관련되여있는것이였다.

그 사건이란 이런것이였다.

김만금의 어머니가 그 농업학교의 기숙사에서 식모로 일하고있었는데 하루는 기숙사의 왜놈 사감이 창고에서 식료품을 도적맞히였다고 하며 그 혐의를 어머니에게 들씌우고 갖은 모욕을 다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억울하여 울면서 아들에게 하소연하였다. 자기 어머니처럼 선량하고 어질고 깨끗한 녀자가 없다고 믿고있는 만금이는 치밀어오르는 격분을 참을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기숙생들에게 나오는 물자와 식료품들을 떼먹군 해서 여론이 나쁜 사감놈이 자기의 죄를 어머니에게 넘겨씌우려고 약은 수를 쓴다고 그는 단정하였다. 이튿날 만금은 사감놈의 방에 문을 차고 들어가 주먹을 안기고 둘러메치고 걷어차며 실컷 화풀이를 했다. 안주의 유명한 싸움군인 그가 왜놈 하나 제끼는것은 간단했다. 했으나 그 뒤처리는 시끄러웠다.

그는 어디든 몸을 피해야 하였다. 이때 최영길이 그를 데리고 멀지 않는곳에 있는 자기의 누이네 집에 숨겨주었다.

《고맙네, 최군!》

만금은 진정 고마와했다. 왜놈들이 살벌하게 날치는판에 왜놈을 때려눕힌 조선사람을 숨겨준다는것은 웬만큼 담이 크고 또 정의감이 강하지 않고서는 단행할수 없는 일이였다.

이 사건은 안주일판을 들었다 놓았고 조선인학생들은 만금을 영웅처럼 떠받들었다. 최영길은 일본으로 가려는 만금을 도와 돈도 좀 마련해주고 안주에서의 탈출도 조직해주었다.

그들은 손을 굳게 잡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들을 마주보며 헤여졌다. 이렇게 헤여진 후 해방이 되여 최영길이 북조선인민위원회 농림국에서 일한다는것을 안 김만금이 찾아가 처음으로 만났다. 그 뒤로는 서로 일이 바쁘다나니 별로 만나지 못했고 전쟁시기에는 더욱 만나지 못했는데 어느 봄날 내각에서 조직한 회의장에서 다시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회의에서는 전시알곡생산문제를 토의했는데 농업성일군들과 각 도 인민위원회 위원장들이 참가했다. 당시 평남도인민위원장이였던 김만금은 토론연단에 나선 농림성 국장 최영길을 알아보고 가슴을 울렁이였다. 그것은 최영길이 영농준비사업을 지도하러 농촌을 돌아다니다가 폭격에 잘못되였다는 풍문을 들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는것이다. 해볕에 타고 꺼칠해지긴 했어도 그는 타고난 성미 그대로 정력적으로 토론을 하였다.

최영길은 절절한 목소리로 토론을 했는데 녀성농민들속에서 광범히 벌어지고있는 녀성보잡이운동을 적극 장려하여 녀성들과 늙은이들만 남은 후방이지만 그들의 손으로 올농사를 훌륭히 지을데 대한 결의를 다지였다.

수령님께서 그의 토론을 매우 주의깊이 들어주시였다.

《토론을 잘했습니다.》 수령님께서 평가해주시였다. 《파종도 전선입니다. 농촌에 녀성들과 늙은이들만 남았지만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으면 한치의 땅도 묵이지 않을수 있습니다. 지금 녀성보잡이운동이 광범히 벌어지고있는데 이 동무가 토론한것처럼 이 운동을 잘 이끌어야 합니다. 동무의 토론을 들으니 나도 힘이 납니다.》

수령님께서는 왜정시기 공부한 몇 안되는 농업전문가들중의 한사람인 최영길을 얼굴로는 알고계시였는데 이 회의이후 그에게 관심을 돌려 논밭갈이며 모내기정형 등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걸어주시고 이 전쟁때 수고한다는 치하도 해주시였었다.

회의 휴식시간에 김만금이 최영길이를 찾아갔다.

《당신 살아있었구만. 나는 폭격에 잘못된줄로만 알고있었지. 애도의 술까지 마셨네.》

최영길은 껄껄 웃었다.

《내가 오래 살겠군. 하긴 죽을번 했지. 농림성(후에 농업성)에 한번 찾아오게. 평남도기관들이 순안에 있으니 평양에 자주 올 기회가 있겠지.》

《한번 만나세.》

전후에 평안남도의 당 및 행정기관들이 평양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같은 평양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제각기 바삐 돌아가다보니 만날 기회가 적었고 자리를 같이하고 앉아 회포를 나눌 시간도 적었다. 그렇게 이따금씩 만났기때문에 그들은 서로 상대방에 대한 좋은 추억만을 간직하고있었다.

운명은 동창생들을 같은 농업전선에서 손잡고 일하도록 했다. 김만금이 당 농업부장으로 되였던것이다. 그는 드디여 최영길을 동창생으로가 아니라 부상으로서 사업적면의 파악을 하게 되였다. 최영길은 일을 제끼는 일군으로 평가되고있었다. 그는 농산을 보는 부상으로 사실상 성의 실권자였다. 한것은 상이 늙고 자주 앓으며 사업에서 유리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사업의욕을 잃고 뒤전으로 물러나다싶이 했기때문이였다. 상과는 반대로 부상 최영길은 날이 갈수록 사업의욕이 높아졌다. 부상으로 되자 성사람들은 물론 당중앙위원회나 내각에서도 그가 비상한 전개력을 발휘하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산하 각 부서들을 손아귀에 꽉 틀어쥐였으며 사무실에서는 그의 힘찬 목소리가 울려나오군 하였다. 그의 산하 사람들뿐만아니라 성의 다른 부서 사람들도 그를 존경했고 두려워했으며 그에게 의탁해보려 하였다. 지어 어떤 사람들은 최부상이 바삐 지나가면서 인사를 미처 받아주지 않으면 고민하기까지 했다.

사실 농업학교도 고스란히 졸업했고 그후로 농업과 관련된 기관에서 줄곧 일해온 그는 행정실무에도 농사기술에도 경험이 풍부하고 밝았다. 그래서 자신심에 넘쳐있었다. 그는 자기식의 결심채택을 하기 좋아했다. 회의에서 국, 처장들이 길다랗게 토론하는것을 묵묵히 듣고서는 그들의 의견에 기초하기도 하고 또는 그들의 의견을 전혀 무시하기도 하면서 쩡쩡 울리는 목소리로 자기의 결심을 선포하는것이였다. 《다들 들으시오. 나의 결심은 이렇소.》그러면 그대로 해야 하는것이다.

김만금이 당중앙위원회 농업부장으로 임명되여 알게 된 최영길에 대한 표상은 대체로 이러하였다. 차차 같이 일하며 지내보니 최영길은 김만금이를 동창생으로는 따뜻하게 대했으나 사업면에서는 눈아래로 굽어보고있었다. 해방후 북조선인민위원회 농림국, 공화국 내각 농림성, 농업성에서 떠나지 않고 일해온 그의 눈에는 안주농업학교도 채 다니지 못했고 주로 당일군으로 일해온 김만금이가 농업실무면에서 자기와 견줄수 없는 인물로 보이는것 같았다.

《부장님께서 어떻게 래왕하셨소?》

둘이 있으면 롱담을 하군 하는 최영길이 담배를 피워물며 물었다.

《나는 오전에 강서군 청산리에 갔댔소.》 김만금이 말했다. 《군인민위원장방에 전화를 하니 마침 거기에 군내 협동조합관리위원장들이 다 모였다고 하더군. 그래서 청산리 관리위원장을 보내달라고 했지. 중요한 모임을 하는데 안됐다고 하니까 모임에서 기본적인 론의는 끝났다고 하더군. 그런데 부상동무,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론의했을것 같소?》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어내려고 김만금이 이와 같이 물었다.

《다시말해서 농업협동조합들에서 지금 무엇이 초미의 문제요?》

최영길은 빙긋이 웃었다.

《중학교학생들이나 할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알만하오. 농업성을 추궁하고 조여대자는거겠지요. 청산리에 가서 복잡한 현실이 안고있는 문제들에 부닥쳐본것 같은데 그것은 좋은 일이요. 하지만 농사란 늘 그렇소. 부장동무가 물론 처음 당하는 일은 아닐테지요.》

《물론 내가 농촌을 모르는건 아니요. 그러나 농업부장으로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오늘의 견지에서 우리 농촌을 보게 되니 생각되는바가 많소.》

최영길이 고개를 연방 끄떡이였다.

《알만 하오. 알만 하오. 부장동무의 표현대로 하면 초미의 문제인 퇴비생산과 반출이 제대로 되지 않겠지요. 그건 해마다 제기되는 보편적인 현상이요.》

최영길은 얼굴을 쳐들고 담배연기를 공중으로 뿜어댔다.

《그런데 올해에는 어떻게 되여 정당 50t톤씩 내라고 계획을 떨구었소? 갑자기 50t을 할수 있는가. 밑에서는 혼란이요. 나도 그 계획을 무심히 스쳤는데 그건 지나친 욕망이요.》

최영길은 흥분하는 김만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건 반드시 집행된다고 볼수 없는 계획이요. 욕심을 부린게요.》

《아니 집행될수 없는걸 알면서 계획을 떨군단 말이요?》 김만금이 부르짖다싶이 했다.

《목표를 높이 정해준거요. 목표를 높이 제시해주고 우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통제하고 내밀어야 하오. 그럴수록 퇴비가 많이 생산되지요. 목표가 높아 조합들에서 여기에 맞추느라 수자를 불구어 보고하든 어쨌든 퇴비가 논밭에 많이 들어가면 되는거 아니겠소?》

김만금은 머리를 가로 흔들었다.

《성에서는 무엇을 하라, 무엇을 하라 계속 지시문을 떨구는데 그것 역시 다 집행될수 없다는것을 알고 하는것이겠소?》

《성은 올해계획에 있는대로 지시문을 떨굽니다. 부장동무도 그 계획을 검토했지요?》

《나는 우리가 계획을 주관주의적으로 세우지 않았는가 우려되오. 이건 솔직한 심정이요.》

최영길은 확신성있게 말했다.

《올해계획은 바로 섰습니다. 부장동무! 지금 공업부문은 올해에 제1차 5개년계획을 앞당겨 완수할 대담하고 방대한 목표를 내세웠소. 올해에 끝내면 2년 앞당겨 3년안으로 끝내는것으로 되오. 그들의 기세는 비상히 앙양되여있소. 개별적 공장, 기업소들이 올해계획을 너무 높이 세웠기때문에 국가계획위원회에서는 오히려 조절했다고 하오. 우리가 올해 알곡생산계획을 높이 세운것은 합법칙적이요.》

그의 연설은 누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 바람에 중단되였다.

《무슨 일이요?》 최영길이 눈살을 찌프리였다.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됐소, 가보오. 아래사람 교양을 잘하오.》

《예, 알았습니다.》

부처장이 인사하고 물러갔다.

김만금은 그간 흥분을 억제하고있다가 부처장이 나가기 바쁘게 말했다.

《그런데 글쎄 조합에서는 로력이 걸려 애를 먹는단 말이요. 로력을 자꾸 빼가니 문제 아니요?》

최영길은 끄떡하지 않았다. 일군들이 농촌에 나가 보고와서는 현실적인 애로와 난관들을 이야기하기마련인데 그런것에 다 귀를 기울이며 일일이 쫓아다니다가는 큰것을 놓칠수 있다고 생각하는 최영길이였다.

《그 로력들이 다 필요한 일을 합니다. 올해계획에 들어있는 일들을 말이요.》하고 그는 대답했다. 《부장동무, 전쟁시기가 생각나지 않소? 청장년들은 다 군대에 나가고 늙은이들과 녀자들만 남았지요. 그런데도 논밭갈이를 했고 파종을 했고 김을 맸고 수확을 거두어 전선에 식량을 보냈지요.》

김만금은 그와 처음 만났던, 굴속에서 진행한 내각회의가 생각났다. 그 시기는 비상한 시기였다. 농민들이 그 시기에 발휘했던 높은 애국심을 살리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은 현대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큰 규모의 사회주의집단경리가 아닌가. 김만금이 이렇게 말했다.

최영길이 대답했다.

《사회주의적협동화의 완성과 큰 규모의 집단경리에로의 발전은 성사업에서도 일련의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소. 이전에는, 작년까지만 해도 개인농이 있어가지고 제멋대로 농사를 지었기때문에 성에서도 군인민위원회에서도 장악통제하기가 어려웠소. 참, 골치 아팠소. 농업성이 늘 말을 들었단 말이요. 그러나 올해부터는 나라의 전체 농가와 농업생산수단이 성의 수중에 장악되여있고 정연한 사업체계와 질서가 확립된 상태에서 성이 농업을 지도하게 되오. 여기에 경리형태개조완성의 첫째가는 생활력이 있지요. 우리가 계획을 세워 떨구거나 지시를 내리면 도에서 군으로, 군에서 협동조합으로 즉시 지체없이 그것이 내려가지요. 일할 멋이 있소. 중앙집권제가 가능하게 되였소. 성의 지시가 아래에 쭉ㅡ쭉ㅡ 내려간단 말이요. 매 농가들에까지.》

최영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말은 그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반영한것이였다. 부상으로 된 이후 일을 왕성하게 전개하여나가고있는 최영길에게 있어서 나라에 조성된 새로운 환경은 룡마에 날개를 달아준격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이러한 심정을 어느 내각회의에서 수령님앞에서 공식표명했었다.

최영길이 말을 잇대였다.

《물론 성의 지시가 밑에까지 쭉ㅡ쭉ㅡ 내려간다 해서 그것들이 그대로 다 정확히 수행되리라고 어리석게 생각할수는 없소. 그건 리상주의요. 현실은 다양하고 복잡하오. 우리 나라의 기후와 토질은 산을 하나 사이에 두고도 이쪽과 저쪽이 다르고 또 농업생산은 공업제품의 생산과 다르오. 기계제품이나 벽돌을 생산하는것은 매 시간, 매일 장악할수 있으며 또 명백하오. 그러나 농업은 가령 퇴비생산과 반출, 김매기정형 등등을 기계제품처럼 정확히 장악할수 없소. 그러나 유리한 점도 있소. 공업은 매 공장을 개별적으로 다 장악해야 하지만 농촌은 저 함경북도 온성군 한끝에서부터 황해남도 강령반도 한끝에까지 협동조합들이 널려있지만 모양새가 다 같고 하나의 영농공정에 따라 일하고있소. 그 영농공정이 해마다 반복되오. 한개 협동조합을 들여다보고도 전국을 다 알수 있고 또 설사 협동조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여기 앉아서 농촌의 실태를 능히 알수 있으며 장악통제할수 있소. 그러므로 중요한것은 강한 장악통제를 하는거요. 공업제품처럼 명백하지 못하며 가을에 가서 알곡생산량에 의해 비로소 총화되는 한해영농사업이기때문에 총적인 목표와 매 공정별 계획들을 높이 설정하고 강하게 내밀어야 하며 동시에 물질적보장대책을 세워야 하지요.》

김만금은 성미가 급한 사람이기때문에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지 못했다. 그래서 쏘파에서 일어나 서성대며 부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상이 농촌의 특수성에 대하여 만금이도 잘 아는것을 반복하며 론리를 전개하는것을 들으면서 그는 그럴수 있겠다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농업성은 우에서 큰 선에서 일반적인 지도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성이 어떻게 강하게 장악하고 지도하는가 하는것은 구체적으로 일군이 어떻게 요구성을 높이는가 하는데 따른다. 최영길같은 손아귀가 센 일군이 필요한것은 그때문일것이다.

김만금이 청산리에 나가서 보고온 구체적인 실태와 걸리고있는 문제들에 대하여 더 말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였다. 최영길은 그런것들도 다 예상하고있으며 또 실지 알고있는것 같았다. 농사일에서 최영길이를 따를수 있겠는가.

그러나 최영길의 연설에 공감하면서도 김만금은 청산리의 장영덕, 유근재, 김명배, 리종수 등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 협동조합이 안고있는 애로와 모순들을(나아가서 다른 조합들에서도 그러할것이다.) 풀어야 할 구체적인 대책이 눈에 보이지 않아 어쩐지 심정이 어두웠다.

《부상동무의 생각과 립장에 대해서는 알만 하오. 그러나 구체적인 한가지 대책을 나는 의논하고싶소. 로력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의 하나로 농기계임경소들에서 뜨락또르들을 퇴비운반에 인입하도록 지시가 있어야 할거요.》

그는 기양농기계임경소에 들렸던 이야기를 하였다.

최영길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지시가 내려갔소. 다시 강조하여 지시를 합시다.》

그는 사무탁으로 가서 송수화기를 들고 임경소관리국장을 찾아 큰소리로 농기계임경소들이 농촌의 영농준비사업에 적극 개입하지 않고있는데 대해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

《지시문을 다시 작성하여 떨구시오. 알았소? 지시를 제대로 집행하지 않는자는 용서하지 않겠소!》

송수화기를 덜컥 내려놓았다. 그것으로 부상은 할바를 한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