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7

 

7

 

리종수로인은 오늘도 소달구지로 논에 두엄을 실어내고있었다. 사납고 힘이 남아돌아가는 황소는 저음으로 영각을 하며 씽씽 걸었다.

날씨는 한결 따스해졌으나 아직 들바람이 심했고 밤이면 눈녹은 물들이 얼어붙고 낮이면 녹아서 질쩍거리였다.

로인과 황소를 마주하여 키가 크고 버쩍 여윈 장영덕위원장이 긴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고있었다. 털모자의 귀덮개가 분주스럽게 오르내리고 솜옷자락이 너풀거렸다. 이마에 땀이 돋아 번들거리였다.

(원 부지런하기두 하지. 어델 갔다오누?) 종수로인은 장영덕을 보면서 이렇게 속으로 뇌이였다.

하여튼 관리위원장은 회의도 자주 열고 돌아다니기도 잘했다.

《령감님, 수고합니다.》 장영덕은 손으로 털모자를 붙잡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와ㅡ와ㅡ》

로인은 소달구지를 멈추어세웠다.

《어데 갔다 오시오?》

《예, 2반에 갔다오는 길입니다. 아직 모판자리에 바람막이바자도 다 못쳤습니다. 회의할 때는 다 해놓을것처럼 대답을 했지만 돌아가서는 또 꾸물거리지요. 2작업반장같은 사람을 보고 소힘줄처럼 질긴 사람이라구 하지요. 마음대로 하라는식으로 셈평좋게 지내는데 욕을 해두 어디 욕을 타야 어쩌지요. 죽은 소귀신처럼 머리를 수굿하고 눈만 껌뻑거리며 서있기만 하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알수가 있어야지요.》

장영덕은 아직도 분이 채 사그라지지 않았는지 종수로인에게 하소연으로 남은 욕을 대신하는것이였다.

《그 사람이 홍역을 늦게 하면서 귀가 좀 어떻게 됐다구 하던데 실지로 잘 듣지 못하는게 아닙니까?》 장영덕이 물었다.

리종수로인이 허허 웃었다.

《그 사람이 가는귀를 먹었습니다. 그래두 들을 소리는 다 듣지요. 농사두 잘 짓구요.》

《글쎄 부위원장이 직심한 농사군이라고 보증을 해서 반장을 시켰는데 모르겠단 말이요. 아무리 욕을 해야 담벽이지요. 내 참!》

컴컴하고 길쑴한 얼굴에 다시 분노가 어리고 눈에서 불꽃이 튀는듯 하였다.

리종수로인은 최인서를 잘 안다. 말이 없고 뚝하고 일밖에 모르는 최인서와는 사귈 맛이 없다. 그는 암화협동조합시기에도 작업반장을 했는데 당시 관리위원장 김명배도 애를 먹었다. 그러나 최인서는 이깔나무나 참대처럼 결이 곧은 사람이였고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존경하고 따랐다. 김명배가 몇년간 관리위원장을 하며 실력을 나타내자 비로소 최인서는 그에게 속을 주었다. 김명배는 최인서가 거짓을 모르고 농사를 주인답게 실속있게 짓는다고 보았기에 그에게 많이 의거했다.

최인서는 도나 군에서 자기 조합의 구체적실정을 알지도 못하는, 겨드랑이에 가방이나 끼고다니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입을 꾹 다물던가 《예, 예.》 하고 겉으로 듣는척하며 실지는 속으로 코방귀를 뀌군 하였다. 군인민위원회에서는 청산리의 최인서반장이라고 하면 《아, 그 귀머거리 최고집 말이요?》 하고 욕부터 하였다.

김명배에게는 속을 주던 사람이 왜 장영덕에게는 속을 주지 않는가? 이것은 최인서가 장영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한편 장영덕이 최인서의 진속을 모르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지시만 하며 깔본다는 소리다.

리종수로인은 퍼렇게 성이 난 장영덕을 진정시키느라고 이렇게 말했다.

《최인서가 엉뎅이에 뿔난 송아지같긴 해두 농사를 망칠 사람이 아니웨다. 속으로 다 타산하지요.》

그러나 장영덕은 여전히 얼굴이 불그락 푸르락했다. 《모르겠소. 난 그 사람을 정말 모르겠단 말이요.》

리종수로인은 오늘은 좀 얘기를 해야 하겠다고 잡도리를 했다. 수령님께서 로인에게 관리위원장사업을 도와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관리위원장! 내 좀 말합시다. 그렇게 자꾸 작업반장을 믿지 못하구 욕이나 해서 되겠소?》 이렇게 말하는 순간 그는 스스로도 흥분이 되여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수상님을 만나뵙구 와서 얘기했지요? 리당위원장이랑 있는데서 말이요. 수상님께서 관리위원회가 조직사업을 잘해야 한다구 말씀하셨다구 하지 않았습니까?》

장영덕은 잠시 말문이 막혀 로인을 지켜보기만 하였다. 로인은 분명 관리위원장인 자기의 사업조직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있었다. 로인이 계속했다.

《건설작업들을 마무리해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또 로력을 뽑아가니 농산반 일이 밀릴수밖에 있겠소?》

로인은 일전에 관리위원장방에서 조합이 벌려놓은 건설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또 로력을 내야 하겠다고 포치한데 대한 의견을 말하는것이였다.

그날은 말하기 싫어서 입을 다물고 속으로만 끙끙 갑자르고있었는데 지금 뒤늦게나마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장영덕은 말이 별로 없는 듬직한 리종수가 이와같이 말하니 그 어떤 위압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동시에 관리위원회의 조치에 지지를 표시하고 관리위원장을 고무해주고 밀어줄대신 최인서같은 작업반장을 두둔하면서 뜨적뜨적 의견을 말하는 로인에 대한 반감이 불쑥 치밀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하대하고 욕을 할 상대가 아니였다.

흥분한 장영덕은 입을 벌리고 들판에 부는 찬바람을 마구 들이마시였다. 이윽하여 그는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것 같습니까. 예, 령감님?》 하고 불만을 터치였다.

《하나 물읍시다. 기계화반에는 무슨 사람이 40명씩이나 들어가있소? 그것두 상로력인 젊은 사람들이? 거기다 두철이두 동원에서 돌아오면 들어가기루 약조가 되여있다지요?》

《약조가 되여있지요. 아니, 기계화반명단에 벌써 올라있습니다. 왜 그런가? 두철이가 고중을 나왔으니 속에 든게 있는데다가 매부가 농업성 최영길부상이 아니요? 그래, 두철이를 통해 부상의 신세를 지면 기계화반을 꾸리고 필요한 설비, 자재들을 받아쓰는데 불리할것 같습니까, 유리할것 같습니까? 그리구 올해는 농촌기술혁명을 선차적인 과업으로 제기하고있지요. 밤낮 허리를 굽히고 호미질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이전 수리반을 기계화작업반으루 이름두 고치고 인원두 군에서 수자를 찍어 내려보냈지요. 전망성있는 청년들로 꾸리라는겁니다. 그 청년들이 지금은 하는 일 없는것 같지만 이제 큰몫을 맡게 되지요.》

리종수로인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앞으루는 40명이 필요할지 모르나 지금은 너무 많습니다. 기계화를 한다구 해서 기계화반에 인원수를 늘쿤다고 해결되겠습니까? 실속있게 해야지요. 인원수가 문제 아니웨다.

그러니까 꼭 필요한 사람만 남기구 다 건설을 마무리하는데 돌리구 농산반사람들은 돌려보내는것이 좋을것 같습네다. 이밖에도 더 연구하면 공로력을 찾아낼수 있을거웨다.》

이번에는 장영덕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기계화반은 못 다칩니다. 군의 지시고 성의 지시지요. 그대신 퇴비생산과제를 주지 않았습니까?》

리종수로인은 관리위원장이 조합의 실태로부터 출발하여 사고하는것이 아니라 군인민위원회의 지시로부터 출발하여 사고하며 그것이 고집과 배합되여 아주 굳어졌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지만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조직사업에서 변화가 일어날수 없을것이다. 참신한 조직사업이 아니라 지시와 독촉밖에 기대할것이 없을것이다. 생각한다는것이 두철이를 통해 농업성 부상의 줄을 잡아당겨 덕을 보자는따위이다.

이 순간 로인은 두철이에 대한 련민의 정이 끓어올랐다. 워낙 예술소조활동도 잘하고 뽈차기를 즐기는 두철이는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성미였다. 그런다고 작업반에서나 관리위원회에서는 두철이를 땅에서 발이 뜨지 못하게 안착시키고 일을 잘하도록 조처할 대신 무슨 동원이 제기되기만 하면 두철이를 내보내군 하였다. 김선달이 같은 활량이라고 하면서 그를 대하는 사람마다 웃으며 재미나 하였다. 그러나 두철이를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일찌기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살아온 그가 제멋대로 성장한것이다.

종수로인이 입을 다물고있자 장영덕이도 더 말하고싶지 않았다.

《자, 령감님. 난 가겠소. 길바닥에서 너무 오래 지체했구려.》

장영덕은 리종수로인과 헤여져 부지런히 관리위원회로 걸어갔다.

방에 들어서기 바쁘게 전화종이 울리였다.

《관리위원장동무요?》

송수화기를 들자 이렇게 묻는다.

《예, 장영덕이올시다.》

《내 군 농업부장이요.》

장영덕은 〈또 무슨 지시를 떨구려나?〉 하고 끔찍해하였다.

《예, 듣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송수화기에서 실무적이고 명령적인 소리가 튀여나왔다.

《래일 군인민위원장방에서 퇴비생산과 반출에 대한 중간총화가 있습니다. 아침 9시까지 도착하시오.》

《알겠습니다.》

그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사업수첩을 펴놓고 뒤적거리다가 방에서 나갔다. 마침 로동지도원을 만났다. 그는 로동지도원을 불러세웠다.

《시간이 나는대루 한바퀴 돌라구. 저녁때까지 반장들이 퇴비생산 및 반출정형을 나한테 직접 보고하라구 말이요.》

아직 작업반에까지 전화를 놓지 못했던것이다.

《그러지요.》

자전거를 가지고있는 그는 어렵지 않게 임무를 수행하였다.

저녁에 스물다섯개 작업반반장들이 관리위원장사무실의 출입문돌쩌귀에서 불이 날 정도로 련이어 들이닥쳤다.

장영덕은 잔소리를 해가며 반장들을 한명씩 만나 그들이 불러주는 수자들을 종이에 적었다.

그런데 작업반장들은 실지 퇴비를 얼마나 장만했고 얼마를 반출했는지 정확히 알수 없었다. 퇴비더미를 저울에 달아보겠는가 자로 재보겠는가. 그러니까 실지 일을 한 조합원들도 정확히 알수 없는것이다. 그들의 눈짐작이 곧 수자다. 그걸 종합하여 분조장이 반장에게 보고하는데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더니 언제나 그 보고하는 수자는 불어나기마련이다. 그런다고 분조장도 반장도 탓하지 않았다. 탓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은근히 좋아했다. 작업반장은 그렇게 문서상으로 불어난 수자를 또 좀 보태서 관리위원장에게 보고한다. 관리위원장이 《왜 이렇게밖에 못했소?》하고 책망하고 잔소리를 하는것이 싫었던것이다.

관리위원장도 반장들이 보탠다는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한다. 수자가 많으면 군에 보고하기 좋은것이다.···

이튿날 군인민위원회에 올라간 장영덕은 다른 20여명의 관리위원장들과 함께 군위원장방에 불리워들어갔다. 여기서는 관리위원장들이 조합에서의 작업반장 위치와 같았다. 군위원장이 얼마씩 했는가고 묻고 관리위원장이 얼마씩 했다고 대답하는것이였다.

볼이 늘어진데다가 머리를 바투 올리깎고 우를 직선으로 다스려서 얼굴이 네모져보이는 군인민위원장이 관리위원장들로부터 보고를 받았는데 그 역시 잔소리를 해가며 수첩에 수자들을 적었다. 장영덕은 앞에서 대답한 관리위원장들이 추궁을 받는것을 보고 수자를 불구어 퇴비를 40% 반출했다고 대답하였으나 《동무, 2월이 다 가고있는데 40%가 뭐요?》하는 욕을 면치 못했다.

한창 회의를 하는데 전화가 왔다.

《청산협동조합 관리위원장동무.》전화를 받고나서 군위원장이 말했다. 《중앙당 농업부장동지가 동무네 조합에 온다는데 나가보오. 대도로에서 대기했다가 맞아들이오. 누군지 알지요? 평남도당위원장을 하던 김만금동지요.》

장역덕은 군위원장의 독촉을 더 듣지 않게 되여 기쁜 마음으로 대도로에 나갔다. 거기서 그는 승용차를 타고오는 김만금이를 맞이했다.

키가 작으나 머리가 크고 몸이 가로 퍼져 총체적으로 《크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 청산리로 꺾어드는 갈림길어귀에 서있는 장영덕이앞에서 차를 세우고 내렸다.

《청산리관리위원장 장영덕입니다.》

《음, 수고하오.》

김만금은 무슨 작업을 하는가, 퇴비를 정당 얼마씩 냈는가, 퇴비원천을 어떻게 확보하는가 하는것들을 물었다. 장영덕은 진거름, 집짐승우리쳐내기, 풀썩인것, 개바닥파기 등으로 원천을 확보한다고 대답하였다.

《타오, 관리위원회로 갑시다.》

김만금이 말했다. 장영덕은 송구스러워하며 차에 올랐다.

승용차는 암화마을로 향했다. 거기에 관리위원회가 있었다. 한낮이 되니 해빛이 비치면서 물기 머금은 땅이 거밋거밋하게 부풀어오르고 흰김을 내뿜었다.

절기는 우수가 지나 땅속에서 겨울난 개구리와 벌레들의 입이 떨어진다는 경칩을 앞에 두고있다.

김만금은 퇴비를 계획대로 내지 못하고있다는 관리위원장의 대답을 두고 생각에 잠겨있다가 이렇게 물었다.

《퇴비를 왜 계획대로 내지 못하고있소?》

장영덕은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뜻대로 잘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 관리위원장사업을 작년말부터 석달째 하고있는데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겠습니다. 군인민위원회에서 매번 해야 할 일에 대해 지시를 떨구어주니 받아물고 일을 전개합니다. 그런데 걸음걸음 힘에 부칩니다.》

《왜 힘에 부치는것 같소?》

장영덕은 높은 중앙간부앞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손바닥을 썩썩 소리나게 마주비비며 할 말을 고르느라 전전긍긍하였다. 김만금이 물었다.

《애로가 뭐요? 조합이 커지니 할 일이 많아서 그러오?》

《할 일이 산더미같습니다. 우의 지시를 다 집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제일 곤난한것이 로력입니다.》

《지금 무슨 일들을 하고있소?》

장영덕은 퇴비생산과 반출, 랭상모판준비 등 농사일과 축산반과 건설반사업에 대하여 한동안 이야기하였다.

《그러니 로력이 긴장하겠군.》

김만금이 혼자소리로 말했다.

승용차가 청산벌가운데로 달리고있었다. 김만금은 벌에서 일하는 농민들을 보며 차를 세우라 하고는 야산밑에 비교적 바람이 적게 부는 안침진 곳에 자리잡고있는 랭상모판을 향해 걸어갔다. 몇몇 농민들이 바람막이나래를 치고있다가 허리들을 굽혀 인사를 하였다.

《수고들을 합니다. 어느 작업반입니까?》

농민 한사람이 옆에 서있는 무뚝뚝하고 등이 약간 구부정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2반장 최인서인데 바람을 등지고있어 잘 듣지 못했다. 그래서 대답을 하지 않으니 옆사람이 어서 대답하라고 쳐다보는것이였다.

당황해난 장영덕이 대신 대답했다.

《여기는 2작업반입니다. 이 동무가 반장입니다. 반장동무, 가까이 오오. 중앙당 농업부장동지요.》 그는 최인서에게 소리를 쳤다.

최인서는 큰 간부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는지 담배진에 누렇게 된 이발을 드러내며 웃는것 같은 모양을 지었다. 사실 그는 웃사람을 맞을 때 짓는 그런 웃음을 보인것이였다. 우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따지고 독촉하는것이여서 사실 반갑지 않으나 어쨌든 겉표정은 온순하고 송구스러워하는 웃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어리숙한체 한다. 이것은 최인서의 전술이였다. 어리숙한체 하고 못듣는척 하며 빨리 웃사람으로부터 떨어지려 한다. 오래 같이 있어보았대야 리익될것은 없었다. 작업반농사는 자기가 알아서 한다. 찾아오는 간부들은 공연히 시간만 빼앗는다.

《작업반 모판이 이것이 전부요?》하고 김만금이 모판두둑들이 적어보여서 물었다.

《예.》반장은 여전히 송구스러워하는 얼굴이다.

장영덕은 이 사람이 잘못 듣고 무작정 《예.》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판이 한군데 더 있었던것이다. 이것이 전부라면 랭상모를 지내 적게 한다는 말을 들을수 있다. 그래서 장영덕이 급급히 설명하였다.

《아니, 저쪽에 또 있습니다. 동무, 똑똑히 대답해야지.》그는 간부앞이라 큰소리를 칠수 없어 이렇게 중얼거리였다.

《예.》대답은 여전했다.

장영덕은 큰 망신을 당할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김만금의 눈치를 살피였다. 김만금은 좀 불쾌해하는 기색이였다. 하긴 인사조차 변변히 하지 않은 최인서가 마음에 들수 없을것이다.

《저, 부장동지, 가십시다.》 장영덕이 가만히 말했다. 《잘 듣지 못합니다.》

김만금이 최인서를 잠간 살펴보고나서 돌아섰다.

장영덕이로서는 다행이였다. 2작업반은 영농준비공정이 뒤떨어진 작업반이였다. 퇴비생산과 운반도 방풍장 치는것도 모판두둑을 짓는것도 다 다른 작업반에 뒤져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는지 따라서며 가을에 가서는 결국 앞선다고 하는데 두고보아야 할것이다. 가을은 가을이고 지금 당장 영농공정이 뒤졌으니 간부들이 따지고들면 관리위원장이 욕을 먹게 되지 않는가.

한동안 걸어가던 김만금이 뒤를 돌아보니 작업반장은 반원들과 함께 나래를 계속 쳐나가고있었다. 송구스러운듯 웃던 얼굴이 어느새 뚝한 얼굴로 되여 묵묵히 일손을 놀리고있다. 김만금은 속으로 어쩐지 저 반장이 우정 귀머거리시늉을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동무가 어떻소. 반장사업은 잘하오?》

장영덕은 최인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대해서는 아직 알수 없었다. 그러므로 자기가 본 최인서를 그대로 말하였다.

《씨원치 못합니다. 농사는 잘 짓는다고 하는데 작업반을 제대로 이끌지는 못하는것 같습니다. 도무지 속을 주지 않고 제멋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김만금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농민들이 일하는데 가야 그들에게 방해나 줄뿐 시원한 소리를 들을것 같지 않아 관리위원회로 갔다.

관리위원회마당에서 차에서 내린 김만금은 리당위원장과 관리위원회 부위원장 그리고 리종수로인을 불러오라고 지시하였다.

먼저 리당위원장 유근재가 왔다. 유근재의 얼굴이 불깃한것을 보니 사무실에 있다가 달려나왔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동무, 무얼하고있었소?》

김만금이 물었다.

《예, 강옥숙이라는 조합원을 불러 담화하던 중입니다.》

《어떤 녀자요?》

《과분데 조합일에는 나오지 않고 장사를 다니군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녀성이구만. 그렇더래도 담화야 일이 끝난 다음 해야지. 동무네 관리위원장은 로력이 긴장하다고 말하는데 벌써 두 사람이 담화하느라고 일에서 떨어져있지 않소?》

《···》

김만금은 하긴 리당위원장이 평조합원처럼 들에 나가 일할수 없고 강옥숙이라는 과부는 장사를 다닌다니 두사람이 대낮에 마주 앉았다 해서 별 지장을 주지는 않을것이다, 강옥숙이를 설복하고 교양하는것이 급선무일것이다, 이렇게 인정하게 되였지만 어쨌든 잘못된것이라고 추궁을 하였다.

리의 주민구성에 대해 물어보니 리당위원장은 모범농민, 전사자, 피살자가족들이 있는 반면에 《치안대》가담자, 처단자가족, 월남자가족, 반동적인 종교인, 장사하다 몰락한 사람들도 있어 복잡하다고 하였다.

《그건 어느 농촌마을이나 다 마찬가지요. 주민들을 교양하는 최선의 방도는 로동이요. 그러자면 동무자신이 로동에 참가하고 그들이 따르게 해야 해. 담화도 로동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하고.》

《예.》

《농촌의 계급진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광범한 군중을 교양개조하여 사회주의근로자로 만드는 사업을 한시도 중단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되오. 동시에 나쁜 놈을 잡아내고!》

이런 말을 하고있는데 김명배가 들에서 들어왔다. 그는 팔소매에 붉은 줄이 간 군관솜옷을 입고있었다.

《관리위원회 부위원장입니다.》

유근재가 그를 김만금에게 소개했다.

《제대군관이구만?》

《그렇습니다.》 김명배가 차렷자세로 대답하였다.

사람이 단단하게 생기고 눈에 영채가 돌았다. 김만금은 그가 낯이 익었다.

《암화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을 하지 않았소?》

《그렇습니다.》

그는 군대식으로 간단간단하게 대답하였다.

《글쎄, 내 동무를 본 기억이 나오. 암화협동조합이 농사를 잘 지었지. 통합이 된 후에 농사를 더 잘 지어야지?》

《예.》

김만금은 부위원장과 간단히 담화를 했다. 부위원장은 작년까지는 재미나게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으니까 오손도손했다는것이다. 김만금은 그럴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관리위원장이 리종수로인과 같이 왔다. 김만금은 작년가을 수령님을 따라 만나보았던 로인의 골격이 굵고 듬직한 모습을 잊지 않고있었다. 그는 실농군의 체취가 느껴지는 거칠고 묵직한 로인의 손을 잡으며 먼저 인사말을 했다.

관리위원장사무실로 들어들 갔다.

《수상님께서는 청산협동조합에 관심을 돌리고계십니다.》 김만금이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이렇게 허두를 뗐다. 《나는 올해 농사차비정형을 알아보자고 왔습니다. 올해에 들어와 조합이 할 일이 많아진데 비해 로력의 부족을 느끼고있다는데 우선 로력을 어떻게 쓰고있는지, 즉 로력관리를 어떻게 하고있는지 따져봅시다.》

이어 그는 하나하나 따졌다. 도와 군에서 관개공사와 길닦기에 조합원들을 동원시켰다. 조합자체가 살림집, 유치원, 민주선전실과 축사건설을 벌려놓고 아직 결속하지 못했다. 농산반에 비해 축산반, 건설반, 기계화반에 인원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 이렇게 농사일에 로력자가 적게 돌려지게 된 원인을 밝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농사만 지을수 없으니까요.》

장영덕이가 말했다. 그러자 부위원장 김명배가 얼굴이 불깃해지며 반박했다.

《그렇게만 보면 아무것도 해결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농사뿐아니라 관개공사도 건설도 축산도 기계화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은 농사를 짓는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합에서는 자체의 실정에 대한 파악과 고려에 앞서 군인민위원회와 성의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장영덕의 눈에서 파란불이 일었다. 이것은 자기, 관리위원장에 대한 의견이다. 가만 보면 부위원장은 관리위원장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자기, 장영덕을 은근히 깔보는것 같다. 그래서 장영덕은 농업부장이 있는 자리라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툭 내쏘았다.

《동무, 그건 무슨 소리요? 그러면 우의 지시에 반발하며 제멋대로 해야 한다는거요?》

《저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부위원장은 안타까와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의 지시를 받아들이되 조합의 실정에 맞게 하며 농사를 짓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것입니다.》

《말은 쉽지, 말하기는 쉽단 말이요.》

김만금은 두사람을 진정시키였다. 두사람의 관리위원회 일군들의 견해가 합치되지 못하고있는것은 그자체가 관리위원회사업이 잘되여가고있지 못하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는 수령님께서 청산리의 관리일군들이 큰 규모의 협동경리를 관리운영하는데서 힘들어하는것 같다고 하셨던 말씀이 바로 이러한 실태를 들여다보신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현실에 나와 파고드니 문제의 절박성이 환하게 안겨왔다. 물론 평남도당위원장을 오래하며 농촌에 많이 나가본 그가 처음 느끼는바는 아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 새 환경에 비추어 높은 당정책적안목을 가지고 현실을 대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받아안고 보니 그 느낌은 깊은것이였다.

《다투지들 마시오.》 김만금이 엄하게 말했다.

《다투자고 모인건 아니요. 작년에 암화협동조합은 일을 잘해서 수상님께 기쁨을 드리였소. 그런데 그 조합을 모체로 여섯개 조합이 통합된 후 농사차비에서부터 혼란이 오고있는것 같소. 관리위원장동무가 작업반장들을 틀어쥐지 못하고있는것 같소.》

부위원장과의 담화때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즉 김명배는 농사경험이 있는 작업반장들이 관리위원장의 지시를 무턱대고 따르지 않으며 또 그럴수도 없다고 했었다. 우에서 내려보내는 지시가 많아서 작업반장들이 다 집행할수는 없다는것이였다. 여기에는 분명 지시와 집행사이의 모순이 반영되여있었다.

김만금의 말을 듣고 장영덕이 저으기 흥분했다.

《글쎄 제가 능력이 딸리지요. 다리 아프게 달려다니고 목이 쉬도록 욕만 하지요. 그런데 작업반장들이 손을 맞추어주지 않으면 저도 용빼는 수가 없습니다. 군에서는 독촉을 하지··· 우의 지시는 국가정책이 아니겠습니까.》

이때 여태 입을 다물고있던 리종수로인이 짧게 깎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뜨적뜨적 말했다.

《사실 관리위원장동무가 애를 씁니다.》

김만금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관리위원장의 열성을 작업반장들이 따르지 못하는가? 그는 아까 들판에서 만났던 2작업반장이 떠올랐다. 그는 그 반장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뚝하고 사람을 싫어하는것 같은 그런 반장을 관리위원장이 틀어쥐기 힘들어할수 있다.

《그런데 로인님, 2작업반장말입니다. 이름이 뭐든지.》 김만금이 물었다.

《최인서웨다.》

《예, 그 최인서반장이 어떻습니까?》

로인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실속있는 농사군입니다.》

김명배도 자립성이 강하고 거짓말을 모르는 진짜 농사군이라고 하였다. 김만금은 생각이 깊어졌다. 한참 지나 로인에게 다시 물었다.

《작업반장으로서 조직력은 있습니까?》

《조직력이란게 별것이겠습니까? 자기가 앞장서서 일을 잘하면 다 따라합니다.》

《그렇게만 해서는 안됩니다.》

《예, 옳습니다. 최인서는 말은 안해도 다 속궁냥이 있습니다.》

관리위원장이 불쑥 끼여들었다.

《그 속궁냥이 뭔지 나는 모르겠는데 그런 경험주의자, 보수주의자들때문에 나는 혈압이 다 오릅니다. 나는 령감님이 왜 최인서를 칭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김만금은 김명배부위원장과 리종수로인이 최인서를 칭찬하니 생각을 달리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말이요.》 그가 말했다. 《관리위원장동무, 그래두 그 작업반장에게서 참작할것이 있을게 아니겠소?》

장영덕은 여전히 시뿌둥한 얼굴이였다.

《그런 작업반장의 말을 듣다간 군의 지시를 하나도 집행할수 없고 밤낮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 보십시오. 부장동지! 올해에 퇴비를 정당 50t씩 내야 한다고 우에서 계획이 떨어졌는데 작업반장들은 못한다고 합니다. 최인서는 애당초 꿈도 꾸지 않습니다. 부장동지는 저에게 퇴비생산과 반출정형을 물었지요? 이런 사정인데 관리위원장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여기 리종수령감도 하는껏 해야 한다는 소리만 하는데 나는 군인민위원회에 매일, 매주 보고를 해야 합니다.》

김만금은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했다. 그는 농업성의 올해 계획을 검토할 때 퇴비를 정당 50t씩 시비한다는 대목을 별치않게 스치였었다. 농업전문가들을 믿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별치않게 스친 수자가 밑의 집행단위에서는 심각한 론점을 야기시키고있지 않는가.

장영덕관리위원장은 성이나 군의 지시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고지식한 일군인것 같다. 사실 일군들은 고지식해야 한다. 그런데 작업반장들은 50t을 못낸다고 하고있다. 김만금이도 지금 그 수자를 놓고 생각해보니 엄청난, 성에서 주관주의적으로 산출해낸 수자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어떻게 갑자기 정당 50t의 퇴비를 낼수 있겠는가. 그러한 엄청난 계획이 장영덕같은 고지식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부담을 주겠는가? 리종수로인이 우에서 내려오는 지시가 너무 많다고 했는데 많을뿐만아니라 아래실정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을것이다. 그는 이러한것들을 성에 가서 최영길부상에게 따져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만금은 자기의 복잡한 심정을 터쳐놓을수는 없었으므로 그리고 뾰족한 방도를 내놓을수도 없는것이여서 관리운영을 잘할데 대한 일반적인 소리를 하는데 그쳤다. 그러느라니 점차로 그가 하는 말의 탄력이 약해졌다. 그는 자기가 공연한 말공부를 한다고 느끼였다.

그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청산리를 떠나 약수협동조합을 더 료해하고 기양농기계임경소를 찾아갔다. 거기서 지배인과 기사장을 만나 청산리를 비롯한 농업협동조합들의 영농준비작업에 뜨락또르들을 적극 인입할데 대해 의논하였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오늘 농촌이 안고있는, 그가 잠간 나와 보고서도 많이 부닥쳐본 심각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겠는지 여전히 마음이 개운치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