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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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리종수로인을 통하여 알게 되신 청산협동조합에서 나타나고있는 문제점들과 함경북도당단체들의 사업에 대한 당중앙위원회지도그루빠의 보고서내용을 결부시켜보시면서 자신께서 직접 함경북도를 현지지도하실 결심을 더욱 굳히시였다.

김만금이 청산리에 가면 그곳 실태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료해를 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리종수로인이 근본문제점은 말한것이나 같다.

리종수로인이야말로 땅처럼 거짓말을 모르고 보고 느낀 생각을 꾸밈없이 말하는 농민이다.수령님께서는 이 로인과 그의 일가사람들을 자주 만나보시는 과정에 우리 농민들의 소원과 지향이 무엇이고 그 소원과 지향을 반영하여 작성된 우리 당의 농업정책이 어떻게 그들의 생활에 구현돼가고있는가를 직접 느낄수 있으시였다.

해방후 이 리씨일가의 청산리1대인 리준형로인을 만나주신 김일성동지께서 그의 아들 리종수를 다시 만나신것은 조국해방전쟁이 가렬했던 1951년 봄이였다.

어느날 이른새벽 장군님께서는 청산리를 지나가시다가 논에서 모판을 만들고있는 농민들을 보시게 되였다.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이였다. 그이께서는 군용차를 세우고 견장없는 군복에 가죽장화를 신은 차림새로 퍼렇게 밝아오는 새벽하늘을 등지고 농민들께로 다가가시였다.

당시는 비행기공습이 심해서 낮에는 일을 얼마 못하고 새벽이나 어슬한 저녁 아니면 달밝은 밤에 했다.

《새벽에 수고들을 하십니다.》 그이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고요한 들을 흔드는듯 하였다.

《아니, 장군님께서!···》

저저마다 반기는 농민들속에서 리종수를 알아보신 그이께서는 《원동마을 모범농민이시군요.》하고 인사를 받아주시였다.

《모판을 만들고있습니까?》

《예, 밭작물은 거의 다 파종하고 지금 모판을 만드는 중입니다.》

《마을형편이 어떻습니까? 피해가 심합니까?》

리종수가 그이의 물으심에 대답을 드리였다.

《후퇴시기에 피해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로력과 소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장군님말씀을 받들고 소겨리, 품앗이반을 조직해서 곤난을 타개해나가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소겨리, 품앗이반을 조직하니 어떤 점이 좋은가고 물으시였다.

리종수는 당원들이 많이 피살되고 장정들은 다 전선에 나가 로인들과 녀자들만 남아있지만 소가 있는 농가를 중심으로 품앗이반을 조직하여 상호협력해나가고있다고, 혼자서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수 없지만 힘을 합치니 된다고 하였다.

《장군님께서 전쟁전에 우리 집에 오셨을적에도 상호협력해서 뒤진 농가가 없게 하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그게 더 절박합니다.》

농촌이 심한 파괴와 손실을 입었고 로력이 극히 곤난한 속에서도 바로 힘을 합침으로써 농사를 지을수 있고 살아갈수 있는것이 현실이다. 당에서 내놓은 이 방향에 따라 농사를 짓고있는 리종수농민은 그 정당성을 몸으로 느끼고있었다.

리종수농민은 그의 아버지 리준형로인처럼 당정책을 받들어 농사를 잘 짓고있는데서 선진적이였다.

장군님께서는 그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옳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힘을 합쳐야 농사도 지을수 있고 살아갈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말고 전선에 더 많은 식량을 보내주어야 합니다.》

《예, 장군님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리종수는 높지 않으나 저력있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논흙이 묻어있는 걷어올린 굵은 종아리며 삽을 틀어잡고있는 억센 손이며 선이 굵직굵직한 얼굴의 성실한 표정에서 농민의 체취가 풍기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농민들의 이야기에서 집단경리의 싹과 그의 현실성을 더욱 느끼시였다.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는 토지를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분여해줌으로써 농촌문제해결의 첫걸음을 내짚었고 그것은 농업생산력을 비상히 촉진시키였다. 그 생활력을 전쟁전 리준형의 일가를 방문하여 볼수 있으시였다. 그러나 농촌경리를 계속 발전시켜 농촌문제의 종국적해결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집단화, 공업화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사회주의혁명단계의 중요한 과제이다.

심한 파괴를 당한 전시농촌경리의 실태는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농사를 지을수도 살아갈수도 없는 형편이며 이로부터 집단경리의 싹이 생활적요구로부터 움터났다.

《부친께서 건강하십니까?》

김일성동지께서는 수염이 가슴에까지 드리웠던 리준형로인을 눈앞에 그려보며 리종수에게 물으시였다.

《장군님!》 리종수는 눈길을 떨구고 비장한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 오래 살라고 하셨지만 저의 아버지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 찾아주시였던 저희들의 집도 기와를 올려 아주 보기 좋은 기와집으로 되였지만 전쟁시기 미국놈비행기의 폭격으로 불타버렸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폭사당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장군님께서는 리준형일가가 얼마나 무서운 시련을 겪었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으시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여 고향땅을 떠나야 한다는 아들의 권고에 대해 리준형로인은 《우리 가문은 조상대대로 외적과의 싸움에 앞장서왔다. 지금 가문의 자손들이 원쑤 미국놈들과 싸우는데 그 애들처럼 싸우지는 못할망정 피신해간단 말이냐? 아니, 나는 이 집을 지키겠다. 장군님께서 꼭 기와를 올리라 해서 번듯하게 새로지은 이 기와집을 나는 못 떠. 당에서 후퇴명령을 내렸다니 너희들은 가거라.》하며 고집을 부리였다. 양봉문의 손자가 《치안대》를 끌고와서 모범농민의 집이고 손자 셋이 군대에 나간 빨갱이집이라고 하면서 달려들었으나 도끼를 들고 맞서는 리준형로인의 무서운 기상에 위압되여 꽁무니를 사리였다. 그렇게 지켜낸 집이 미군비행기의 폭격에 불타버리였고 리준형로인내외도 희생되였다. 후퇴에서 돌아와 무너진 집터를 파헤치고 타버린 부모들의 시신을 찾아내여 선산에 묻을 때 리종수의 눈에서는 눈물이 아니라 피가 흘렀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새벽노을이 엷게 퍼지는 동녘하늘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잊을수 없는 할아버지였소. 나한테 농사일의 근본을 말해주었소. 참 가슴이 아프오.》

그이께서는 지금 일가가 어디서 살고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리종수는 마침 암화마을에 빈 집이 생겨 손질하고 중축한 다음 일가가 원동에서 그리로 이사해와서 살고있다고 말씀올리였다.

《세 아들은 전선에서 잘 싸우고있습니까?》

《예.》

《그 애들이 원쑤를 갚을것입니다. 부친의 뜻을 잊지 말고 전시알곡생산에 힘씁시다. 굳세게 살아갑시다.》

리종수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

장군님께서는 그 눈물에서 뜨겁게 끓는 농민의 마음을 읽으실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 시기 농촌들에서 조직된 품앗이반, 소겨리반 등 집단경리의 싹을 보시면서 전시농업생산뿐아니라 전후농촌경리 복구발전의 뚜렷한 전망을 확신성있게 내다볼수 있으시였다. 그것은 집단화, 즉 협동화의 길이며 보다 높은 단계에로의 혁명의 전진이였다. 그이께서는 협동화가 농민들의 생활적요구로 제기되고있기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것이라고 믿으시였다.

이러한 확신으로부터 이듬해 봄 그이께서는 원화리에 나가시여 농민들과 같이 일하며 전후에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할 구상을 말씀하시면서 녀맹위원장의 시아버지 림로인에게 조합을 무어 일하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물으시였다. 림로인은 좋다고 하면서도 여럿이 모여서 일하면 건달군이 생길수 있다고 걱정을 하였다.

그이께서는 소탈하게 웃으시며 조합을 잘 관리운영하고 교양사업을 하면 건달군이 생겨나지 않을것이라고 하시였다.

전후에 협동조합들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다시말하여 사회주의적개조가 시작되였다. 어느날 청산리를 찾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협동조합을 조직하는데서 선구자적역할을 한 리종수를 만나 조합을 조직해서 일하니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수상님, 이제는 이 앞벌이 다 우리 조합의 땅이 되였습니다.》

리종수의 대답이였다. 그의 흙빛이 배인 얼굴에서는 자랑과 긍지가 넘치고있었다.

토지개혁이후 《내 땅》이라 하며 분여받은 토지를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면서 기름지우고 낟알을 심어가꾸며 희열에 넘쳐있었던 농민들이 지금은 조합에 합친 토지를 《우리 땅》이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하고있지 않는가. 그렇다, 농민들이 협동화를 자기들의 생활적요구로 받아들이였으며 그만큼 그들의 의식이 성장하였다. 《나》로부터 《우리》로···

리종수는 우리 땅을 이전의 내 땅처럼 아끼고 다루었다. 협동조합원들의 의식수준이 집단주의에로 지향되고있었다. 그리하여 소농경리에 비한 집단경리의 우월성이 나타났으니 알곡총수확고가 전쟁전수준을 훨씬 넘었고 협동화가 전국적으로 완성된 작년에는 알곡생산이 최고수확을 기록하였다. 가을에 암화협동조합을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마당에 펴놓은 멍석우에 조합원들과 같이 허물없이 앉아 담화를 하시면서 조합들을 리단위로 크게 통합하여 새로운 보다 높은 단계에로 집단경리를 발전시켜나갈데 대한 방향을 제시하시였다. 전국적으로 작은 규모의 협동조합들을 큰 규모로 통합하는 사업은 짧은 시간내에 끝났다. 그것은 집단경리의 우월성을 이미 체감한 농민들이 사회주의농촌경리발전의 합법칙적요구를 자기 생활의 요구로 간주하였기때문이다.

이제 이 큰 규모의 협동조합들에 대한 관리운영과 지도사업을 잘하고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면 우리는 사회주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면 우리 인민이 세기를 두고 소원해오던 리상사회에로 큰걸음을 내짚게 될것이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리상이다. 잘먹고 잘입고 서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것은 태고적부터 갈구해온 인류의 리상이며 이 리상은 사회주의사회건설을 통해서만 실현될수 있다.

공상적사회주의자들의 념원과 리상을 맑스가 과학적토대우에 올려놓았으며 레닌에 의해 광활한 로씨야땅에 첫 사회주의국가가 탄생하였다. 인류의 리상이 현실로 구현될수 있는 실제적인 조건이 마련되였다. 오늘은 사회주의국가들의 대렬이 급속히 늘어나고있다.

하지만 사회주의사회건설이라는 이 거대한 사회변혁과정은 전인미답의 초행길로서 그 실천에서 많은 문제들을 산생시켰고 부단히 새로운 요구를 제기하고있다.

수령님께서는 외투를 입으시고 집무실을 나서시여 층계를 내려가시였다. 청사중앙현관앞에 승용차가 발동을 걸고 대기하고있었다. 희미하게 비치는 정원등들도 겨울난 정원수들이며 정문에 엄숙한 자세로 서있는 보초병들도 깊은 밤의 고요와 정숙을 지켜 까딱 움직이지 않는듯 했다.

어느덧 새벽에 접어들었다. 대기는 몹시 쌀쌀하였다. 청청한 밤하늘에 은하수는 이미 기울었고 쪽배같은 그믐달과 아득한 우주공간에 보석처럼 총총히 널린 무수한 별들이 맑은 대기속에서 선명한 빛을 뿌리고있었다.

아름다운 별의 세계를 바라보시며 수령님의 사색은 깊어만 갔다. 인류의 아름다운 리상인 사회주의사회의 건설을 편향없이 진척시켜나가기 위해서는 방향타를 어떻게 잡고나갈것인가.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책임감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어깨에 실려오는 중하를 느끼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