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벌 5

 

5

 

눈에 피로를 느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문건에서 눈길을 떼고 시계를 보시였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그이께서는 팔을 벌리여 가슴을 펴면서 심호흡을 하고 걸상에서 일어서시였다. 방안은 아늑하고 조용했다. 그이께서는 창가로 다가가시여 창가림을 손으로 젖히고 밖을 내다보시였다.

당중앙위원회청사 앞마당은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밤이 깊어 바람도 잠든듯 아직 잎이 돋지 않은 정원수의 앙상한 가지들이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봄날치고는 유난히 개인 검푸른 밤하늘에서 낫가락같은 그믐달이 추위에 떠는듯 하였다. 그믐달이 희미한 빛을 뿌리고있으나 정원등이 비치지 않는 곳은 캄캄했다. 불이 밝은 정문에 보초병이 차렷자세로 서있다. 정문밖의 큰길에는 가로등이 켜져있었으나 오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이따금 전조등을 켠 자동차가 지나가군 한다.

그이께서는 다시 집무실안을 거니시였다. 창밖을 내다보며 눈의 피로를 좀 풀고 머리도 맑아진듯 하였는데 방금 보신 문건에로 생각이 미치자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시였다. 문건은 함경북도에 파견된 당중앙위원회 지도그루빠의 중간사업보고서였다. 지도그루빠는 함경북도의 당 및 정권기관사업과 공업, 농업, 수산업 등 경제전반사업을 료해하였으며 지금도 계속하고있다.

강선제강소가 1월계획을 수행못한 실태를 현지에 나가 료해하시였고 또 돌아오는 길에서 청산리 리종수로인으로부터 규모가 커진 농업협동조합이 부닥치고있는 난문제들에 대해 듣게 되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함경북도에 당중앙위원회 지도그루빠를 파견한 조치가 시기적절하고 옳은것이였음을 인정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올해에 중요도들의 당단체사업을 전면적으로 료해할 결심을 정초에 이미 내리시였다. 이에 따라 우선 멀리 떨어져있는 함경북도부터 시작된것이였다.

함경북도는 고질적인 결함을 시정하지 못하고있다. 특히 작년에 전국적으로는 농사를 잘 지어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함경북도는 농사를 잘 짓지 못했고 인민생활이 크게 개선되지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책임서기를 부르시였다. 책임서기는 이목구비가 끼끗하고 필요없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보고서를 방금까지 다 보았소.》 수령님께서는 집무실가운데 서신채 책임서기에게 말씀하시였다.

《래일 다시 구체적으로 보겠소.》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물으시였다.

《오늘 제기된것이 더 없소?》

《특별한것은 없고 박달동지에게서 온 편지가 있을뿐입니다.》

《음? 박달동무에게서?》 수령님께서는 놀라시였다. 《언제 왔소?》

《저녁에 접수했습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 가져오지 않았소?》

《보실 문건이 많으신데다가 이제는 퇴근하셔야 하겠기에···》

《이것 보오. 박달동무의 편지야말로 특별한거란 말이요! 그런데 아직까지 끼고있다니. 어서 가져오시오.》

그이께서는 어성을 높이시였다. 박달의 이야기가 나오거나 그를 생각하실적마다 가슴이 쓰려옴을 금치 못하는 수령님이시였다.

박달은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체포되여 일제교형리들의 야수적인 고문에 허리가 부러지고 하반신을 못쓰게 되였지만 혁명가의 지조를 지켜냈다. 이 신념과 의지의 강자는 그러한 몸상태에서 해방의 날을 맞이하여 감옥에서 나온 후 오늘까지 그가 그처럼 사랑했고 자기의 청춘을 다 바쳐 다시 찾기 위해 투쟁한 그 귀중한 조국의 대지를 밟아보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는것이다. 하기에 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주 찾아가 만나주시군 하시였다. 올해 설에도 만경대와 칠골에 계시는 일가의 웃어른들을 찾아보시기에 앞서 박달의 집부터 방문하여 경성휴양소에서 한동안 치료받다가 평양에 올라와있는 그와 그간의 회포도 나누고 위로의 따뜻한 말씀도 해주시였었다. 박달은 수령님을 다시 만나뵙게 된것이 너무도 기뻐 어린애처럼 그이의 손을 꼭 쥐고 놓지를 못했다. 의사들이 현대의학이 도달한 최상의 수준에서 최선을 다하고있지만 불치의 병이라 상태가 날로 악화되여가고있다는것을 알고계시는 수령님께서는 그가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올것만 같으시였다.

박달은 조국은 사회주의를 향하여 천리마로 내닫고있으며 도처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산천초목도 변해가고있는데 침상에 누워 줄곧 수령님의 배려와 나라의 혜택만 받고있으니 면목이 없다고, 수령님을 만나뵈오니 어서 병을 고치고 일할 생각이 불끈 솟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개인문제가 아니라 당과 국가의 사업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것이였다. 그는 우리 나라에서 농업협동화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주의적개조를 끝낸데 대하여 그리고 올해에 사회주의공업화의 기초축성을 끝내게 되는데 대하여 긍지에 넘쳐 이것이 항일혁명투사들이 백두의 험준한 산발과 천고의 밀림을 주름잡으며 또 옥중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싸우며 그려보았고 희망했던 사회주의조국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고 격동적으로 말했다.

《수상님, 일을 하고싶습니다.》

목마른 사람이 갈증에 시달리듯 일을 하고파 견딜수 없어하는 그의 눈이 숯불처럼 이글거리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저으기 흥분되여 말씀하시였다.

《박달동무는 지금 일을 하고있소. 침대에 누워있지만 가슴우에 판대기를 올려놓고 소설을 쓰고있단 말이요. 나는 장편소설 〈서광〉을 읽어보았소. 수기들도 읽어보았소. 우리의 새세대들을 백두의 혁명정신으로 교양하는데 이바지하는 훌륭한 글들이요. 박달동무, 글을 계속 쓰시오. 그러나 무리하지는 마오.》

수령님께서는 혁명전우에 대한 믿음과 불같은 애정으로 목이 메이시였고 뼈마디가 앙상한 그의 손을 잡아주시며 그를 침상에서 일으켜세워주지 못하는 괴로움과 나날이 악화되여가는 몸상태에 대한 서글픔으로 울적해지시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렇게 만나주시고 헤여진 박달이 두달이 지나 편지를 보내여왔다. 무슨 일때문일가? 혹시 개인적인 부탁이 있어서일가?

수령님으로부터 엄한 지적을 받은 책임서기가 즉시에 돌아서서 나갔다가 편지를 들고 바삐 들어왔다. 매우 책임적이고 깐깐한 그가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박달의 생각뿐이시였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가? 그이께서는 누런 색갈의 길죽한 규격봉투를 받아쥐면서 조바심을 누르지 못하시였다.

마침 편지봉투 웃면을 책임서기가 가위로 잘라가지고 왔기때문에 그이께서는 지체함이 없이 봉투안에서 속지를 꺼내여 접은 자리들을 바로 펴며 읽기 시작하시였다.

박달은 서두에서 설에 수령님을 다시 만나뵈온 기쁨과 감격, 감사의 정에 대해 절절하게 피력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이름할수 없는 뜨거움이 가득 차오름을 어쩌지 못하시였다. 삐뚤삐뚤하지만 정성을 다해 한자한자 쪼아박듯 한 편지의 글줄들을 눈으로 더듬어가시느라니 박달의 훌쭉하게 볼이 꺼져들어가고 창백해진 얼굴이 떠올라 눈앞이 흐려오시였다.

《수상님!》 박달의 편지에는 계속하여 이렇게 씌여져있었다. 《국사에 바쁘신 수상님께 편지를 올리게 됨은 한가지 외람되게 여쭐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저의 고향이 함북도 길주가 아닙니까. 거기서 친척들과 옛친우들이 더러 찾아오는데 오늘 저는 그들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길주와 길주뿐아닌 함경북도가 다 농사를 잘 짓지 못해 지금 생활이 어렵다고 합니다. 함북도일군들이 되는대로 농사를 지도하는것 같습니다. 작물배치를 망탕 하고 가물피해를 막지 못해 수확이 떨어졌으며 한편 남새가 없어 곤난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다나니 물론 전쟁이 끝난 직후에 비하면 생활이 많이 펴이였으나 함북도가 량강도보다 못산다고 합니다.

년초에 열린 회의에서 앞날의 휘황한 전망을 펼치여 지금 온 나라 농촌이 새해 영농준비에 떨쳐나 들끓고있는 소식이 매일 신문과 방송에 나고있는데 고향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함경북도는 구태의연한것 같습니다. 문제성이 있다고 보면서 념려가 가슴에 맺혀 상기와 같이 소신을 여쭈는바이오니 참작이 되시겠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를 거듭 읽어보시였다. 박달의 인간됨과 의리심과 혁명가로서의 높이가 그대로 반영된 편지였다. 역시 개인문제로 편지를 쓸 박달이 아니였다. 그는 침상에 누워있으나 당과 함께 숨쉬고 번영의 길로 줄달음치는 조국과 보조를 맞추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에 바친 그의 투쟁업적을 평가해주시며 그것만으로도 인민들의 존경을 받고있으니 여생을 편안히 보낼 면목이 충분하다는 위안을 해주시였다. 그러나 박달은 그럴수록 더 겸허했고 그이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하여 무엇이든 일을 찾아하려고 노력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일군들이 다 박달 같다면 사회주의건설이 훨씬 순조롭게 진행될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박달동무, 고맙소!)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박달에게 인사를 보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박달의 편지를 통해 충격을 받으시였다.

그이의 상념은 다시 함경북도에로 줄달음쳐갔다. 당중앙위원회는 함경북도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이미 정확한 방침을 제시해주었으며 국가에서는 해마다 이 도에 많은 식량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함경북도의 책임일군들은 당의 방침을 제대로 실행하지 않았으며 해마다 많은 식량을 받으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받지 않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우에 두팔을 엇결으시고 집무실을 거닐며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제멋대로 하는것인가. 머리가 굳어졌는가. 지리적으로 볼 때 함경북도는 북쪽에 높은 산을 끼고있고 동쪽에는 바다를 끼고있으므로 이곳에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차고 메마른 공기와 바다에서 올라오는 누기찬 공기가 마주쳐 안개끼는 시간이 많고 해쪼이는 시간이 적다. 때문에 농작물이 랭해를 받게 되며 서리를 일찌기 맞게 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오직 내한성이 강한 작물을 심는것밖에 없다. 안전하게 수확을 거둘수 있는 작물, 다시말하여 찬데서 잘 견디며 일찌기 여물면서 많은 수확을 낼수 있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 이에 대해 당중앙위원회는 명백한 방침을 주었다. 그러면 도의 일군들이 이 원칙에서 군에 지시를 주어야 할것이며 군의 일군들은 창조적으로 실정에 맞게 해야 할것이다. 평양에서 매 군에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적해줄수야 없지 않는가. 그런데 박달의 편지에도 언급되였지만 도에서는 당의 방침에 어긋나게 벼와 강냉이를 많이 심도록 일률적으로 아래에 내려먹이였다. 강냉이가 잘되는 곳에서는 강냉이를 심고 콩이 잘되는 곳에서는 콩을 심어야 할것이 아닌가. 벼도 내한성이 강한 종자를 심어야 한다.

박달의 고향인 길주에서 온 농민들이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는것이 우연치 않다. 길주, 명천, 김책이 어떤 고장인가. 논도 있고 기후도 비교적 따스한데 랭해, 가물피해를 제일 많이 받았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길주, 명천, 김책은 산에서는 산나물과 과일을 따고 들에서는 농사를 짓고 강과 바다에서는 물고기를 잡는 고장이다. 예로부터 물이 좋고 경치 아름답고 물산이 풍족하고 인물이 많이 나는 고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사회주의세상에서 생활이 어려운가. 이렇게 해놓고도 함경북도일군들은 《만세》를 곧잘 부른다. 겉으로는 만세를 부르고 뒤에 가서는 집행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만세만 불러서야 되겠는가? 사회주의를 실제적으로 건설해야 한다. 박달의 편지는 이에 대해 울린 경종과 같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들고 교환수에게 김만금 농업부장이 자기 사무실에 있으면 찾으라고 하시였다.

곧 김만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농업부장 김만금이 전화받습니다.》

《아직 일을 보오?》

《예. 이제 퇴근하겠습니다.》

좀 당황해하는 대답이였다. 김만금이 혈압이 높기때문에 수령님으로부터 늦도록 일을 하지 말라, 술을 적게 마시라 하는 주의를 여러번 받았는데 아마 그때문인것 같았다.

《이왕 늦은김에 이야기나 좀 합시다. 나한테 오시오.》

수령님께서는 송수화기를 내려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리시였다.

김만금은 당사업경험이 풍부하고 왜정때 일본에 건너가 대학공부도 좀 하고 해방후 쏘련에 류학가서 고급당학교도 다닌 머리에 든것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렇지만 그는 사색형의 인물이 아니라 행동형의 인물이였다. 성미가 워낙 한군데 꾹 박혀있지 못하는 성미였다. 어려서 소년씨름경기에 나가 황소를 탔다는 김만금은 안주일판에 널리 알려진 싸움군이였다. 일제가 열두삼천리벌에 관개공사를 한다고 하자 그곳에 나타난 김만금은 그 공사장에서 역시 주먹으로 소문을 냈었다. 그러한 그가 해방후 당일군으로 체계적으로 성장했다. 수령님께서는 잠시도 진정하지 못하는, 지금도 옛날의 싸움군기질이 항상 불깃해있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그를 보시며 그의 과거경력과 결부시켜 웃음을 금치 못하군 하시였다.

평안남도당위원장을 하던 시기 그의 사무실은 늘 비여있었다. 그는 차를 타고 다니며 사색을 하였고 갑자기 부닥치는 정황에 즉시적으로 대응할줄 알았다. 그만큼 아는것이 많았고 림기응변이 좋았다. 수령님께서도 알고계시는 사실인데 한번은 그가 어느 탄광에 명절날 갑자기 찾아가서 씨름판에 끼여든적이 있었다. 승용차를 멀리 세우고 웃옷을 벗어제끼고 나타난 그를 평안남도당위원장으로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좀 해봅시다.》

하고 그는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서 씨름판에 나섰다.

자그마한 키에 몸이 가로 퍼진 그는 첫눈에도 씨름군처럼 보였다. 그래서 흥미를 가지고 씨름군들이 그에게 도전했다. 그는 맞다든 씨름군들을 모두 배지기로 떠넘기고 1등을 했다.

직맹위원장이 상을 주려했지만 탄광사람같지 않아서 누구냐고 물었다.

《지나가던 사람이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상을 줄수 없소. 이 씨름경기는 우리 탄광사람들이 하는 승부니까. 씨름을 잘하는건 사실이요. 수고했소. 그럼 잘 가시오.》

직맹위원장이 이렇게 딱 잘랐다.

《그런데 상으로는 뭘 주오?》만금이 물었다.

《돼지요.》

《이거 시시하구만. 씨름이야 황소를 걸구 해야지. 여보, 내쪽에서 상을 거절하오.》

《별 싱거운 사람을 다 보겠군. 여보, 어서 가던 길이나 가오.》

《아니, 나는 여기 탄광당위원장과 씨름을 해보구야 가겠소.》

그러자 웃음이 터졌다. 김만금은 왜 웃는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한 씨름군이 나서서 만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동무가 씨름을 잘하는건 인정하오. 그러나 우리 당위원장과는 상대가 안될거요.》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만금은 이 탄광의 당위원장이 어떻게 생겼드라 하고 기억을 더듬었으나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하여튼 누가 가서 데려오우.》

《마침 저기 오십니다.》

보니 키는 크지만 몸이 말라서 전주대같은 사람이 급히 걸어오고있었다. 키가 작고 다부지고 뚱뚱한 김만금이와 극적대조를 이루는 체격이였다.

탄부들이 다시 웃었다. 그제야 만금은 아까부터 그들이 왜 웃는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당위원장은 전혀 씨름에 어울리지 않았던것이다.

《안녕하십니까. 도당위원장동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탄광당위원장이 황급히 인사를 했다. 탄부들의 반응은 대단히 컸다. 같이 씨름한 사람들이 련속 와서 인사를 했고 직맹위원장은 잘못했다고 하며 상을 타가라고 했다.

김만금은 당위원장을 데리고 사무실로 가며 무엇을 하고있었는가고 물었다. 당위원장은 회의보고서를 쓰고있었다고 대답했다.

《대단히 바쁜 사람이구만.》 김만금이 야유적으로 말했다. 《너무 바빠서 명절날에도 일하누만. 여보, 당위원장동무, 일할줄 모르는 사람이 휴식일에도 일한다고 했소. 이런 날에야 탄부들과 함께 어울려 같이 놀아야지. 씨름은 못해도 배구 같은것은 할수 있겠는데? 그렇게 로동자들속에서 같이 휴식하며 정치사업도 하란 말이요. 그게 보고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거요.》

즉흥적으로 떠오른 묘리있는 말로 이렇게 당위원장을 깨우쳐주었다.

평남도사람들은 잘못한것이 드러나 걸려들면 그로부터 《눈알이 쑥 빠지게》욕을 먹군 했지만 그를 좋아하였다.···

김만금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에 대한 일화를 생각하고계시던 수령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어서 가까이 오라고 하시였다.

《여기 와 앉소.》 그이의 목소리는 우렁우렁하면서도 부드러웠다. 《평남도에서 일하던 시기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만금동무가 중앙당에 들어와서는 전국적범위에서 사색하고 사업을 조직하느라 밖에 나갈 틈이 없으니 우리안에 갇힌 범신세가 된셈이군. 무슨 일때문에 자정이 넘도록 사무실에 박혀있소?》

대답은 뜻밖이였다.

《수상님, 저는 학습을 하고있었습니다.》

《학습이라! 무슨 학습을 하고있었소?》

《농업실무에 대한 학습입니다.》

《그랬댔구만.》

《수상님, 사실 저는 자신이 헐치 않은 자리에 앉아있다는것을 요새 절실히 느끼고있습니다.》

김만금의 표정은 진지했다.

《음, 계속하오.》

《제가 수상님의 신임에 의하여 중앙당 농업부장으로 임명된 작년 2월부터 가을까지는 기본적으로 평남도당위원장을 하면서 해오던 사업인 농업협동화를 완성하고 리단위로 통합하는 사업을 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저의 사업범위가 도에서 전국적범위로 확대되긴 했어도 그렇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와서는, 정확히는 올해계획을 세우고 확정하던 작년말부터 새로운 정황에 부닥치게 되였습니다. 수상동지께서 올초 전국농업협동조합대회 보고와 결론에서 주신 과업들을 실천에 옮기는 사업이 결코 쉽지 않다는것을 시간이 갈수록 느끼고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자기가 맡은 중임을 두고 걱정하고있는 그가 마음에 드시였다. 일군들은 이렇게 걱정을 해야 한다. 김만금이 만세만 부르며 앉아있지 않다는것을 알수 있으시였다. 이것은 좋은 일이였다.

《저는 우선 농업성사람들을 대상하면서 제가 비록 해방전에 농업학교를 좀 다녔고 군당위원장과 도당위원장을 하며 농업을 지도해보았지만 농업실무에 밝지 못하다는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농업성사람들에게서 배우고있는 형편입니다.》

《농업성 부상 최영길동무와는 안주농업학교 동창이라고 했던가요?》

수령님께서 물으시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중에서 중퇴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후부터는 농사와는 인연이 거의 없는 곳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그렇지만 최영길동무는 농업학교를 졸업하였고 해방후에 나라의 몇명 안되는 농업전문가로서 내내 농업지도일군으로 일해왔으니 이 분야에서는 그가 훨씬 앞섰습니다. 선생이라 할수 있습니다. 농업상 함의선동무는 쏘련에서 농업학교를 나왔고 꼴호즈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며 조선에 나와서도 농업지도일군으로 계속 일해오고있습니다. 역시 선생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당적으로 지도하기가 힘들다는거겠소?》

《농업실무를 모르고는 당적지도가 실속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손을 내저으시였다.

《김만금동무가 농업실무가 없다는게 말이 되오? 물론 농업상이나 부상보다 전문지식이 떨어질수 있지. 그러나 동무는 농업실무에만 빠져서는 안된단 말이요. 도당위원장을 하던것처럼 하면 되는거지, 내가 동무를 부장으로 임명하면서 이 점은 특히 강조한것 같은데? 당농업부장이 농업실무에 밝지 못해서는 안되겠지만 보다 중요한것은 당정책적안목이라고 하지 않았소? 동무가 힘들다고 솔직히 말하며 자기 사업을 두고 걱정하는것은 좋은 일이요. 내앞이니 그런 속마음을 터놓는것이겠지. 그렇다고 사무실에 자정이 넘도록 박혀있는것을 그것으로 변명하려고는 하지 마오. 몸을 돌보지 않는다고 내가 추궁할가봐 미리 연막을 치는건 아니요?》

《수상님!》 김만금이 절절한 어조로 말씀드리였다. 《수상님께서는 저희들에게만 요구하시고자신께서는 너무 무리하십니다. 지금이 몇십니까?》

《됐소, 됐소! 이건 역습이구만. 자, 내가 동무를 불렀으니 이제는 내 이야기를 듣소. 만금동무는 박달동무를 더러 찾아가보오?》

전혀 예상밖의 물음이여서 김만금은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는 자신없이 대답하였다.

《도당위원장을 할 때 몇번 찾아가보고는··· 최근에는 병문안을 못했습니다.》

평남도당위원장을 하던 시기 그는 박달을 몇번 찾아가 이야기도 나누고 방조도 주었다. 그러나 농업부장이 된 후로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무슨 리유가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였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며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가책의 빛이 스치는 그의 얼굴표정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수 있으시였다.

《박달동무와 같은 혁명투사들을 자주 찾아가 만나는것이 나쁘지 않소.》 수령님께서 타이르는듯 온화하면서도 깊은 뜻을 담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운신을 못하는 투사를 찾아보는것이 도리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도 그런 투사들에게서 배우는것이 많기때문이요.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당과 혁명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 불타는 애국심, 불굴의 혁명정신을 배우게 되오.》 이렇게 말씀하시며 수령님께서는 집무탁에서 편지를 집어드시였다. 《읽어보오. 박달동무가 나한테 보내온 편지요.》

김만금이 선채로 편지를 두번 거듭 읽었다. 그리고 수령님께 말씀드리였다.

《머리가 숙어집니다.》

《그의 상태가 계속 나빠지고있소. 의사들을 만나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소. 웬만한 사람같으면 벌써 쓰러졌을거요. 이런 편지를 쓸 생각도 못할거요.》

수령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마디마디가 김만금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그는 머리를 들지 못했다. 말씀을 하시는 수령님자신께서도 무거운 심정인듯 하였다.

그이의 목소리가 저력있게 울리였다.

《동무가 옳게 말했소.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소. 앉소, 이야기를 계속합시다.》

김만금은 박달의 편지를 집무탁우에 정히 올려놓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들고 들어왔던 사업수첩을 펼치였다.

수령님께서는 집무탁에서 보고서를 집어드시였다.

《함경북도 당단체들의 사업을 료해한 당중앙위원회 지도그루빠의 보고서요. 동무도 한번 볼 필요가 있소. 내가 보내줄테니 읽어보오.》

《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나간 사업을 엄격히 총화짓는것은 오늘과 래일을 위한 교훈을 찾자는데 목적이 있소. 사회주의건설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선 오늘날에 와선 더욱 그렇소. 이런데로부터 나는 함경북도에 대한 지도사업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오. 내가 직접 현지에 가서 실태를 전면적으로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가보오.》

수령님께서는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국면과 관련하여 큰 규모의 집단경리운영문제에 언급하시였다.

우리앞에 어떤 새로운 높은 목표가 나서고있는가? 이에 대해 그이께서는 집단화가 끝났을 당시의 쏘련의 꼴호즈와 대비하여 말씀하시였다.

《쏘련에서는 집단화가 끝난 후부터 꼴호즈운동의 두번째 단계로 설정하고 총적목표를 모든 꼴호즈원들을 부유하게 만드는것, 다시말해서 빈농도 중농도 모두 부유한 농민의 수준에 올라서도록 하는것으로 설정하였소.》

그이께서는 사회주의건설과 관련하여 실천적경험을 쌓은 쓰딸린의 저서를 많이 보시였다.

레닌도 사회주의건설에 지침으로 되는 사상과 리론을 제기하였지만 실천은 쓰딸린이 그 지침에 토대하여 하였다.

《쓰딸린은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꼴호즈원들이 정직하게 일하며 농기계와 뜨락또르를 옳바로 리용하고 토지를 옳바르게 경작하며 꼴호즈의 재산을 애호해야 한다는 과업을 제기했소.》

수령님께서 계속하시였다.

《우리앞에 나선 과업에 대해서는 1월달에 진행한 전국농업협동조합대회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였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농촌경리의 기계화를 적극 따라세우며 협동경리에 대한 관리운영사업을 개선하고 그에 대한 당 및 국가적지도와 방조를 강화하는거요. 그런데 새해 영농준비에 들어간 협동조합들에서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맞게 조직사업과 관리운영을 잘하지 못하는것 같소. 내가 만나본 청산리 리종수로인이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소. 관리위원장이 작업반장들을 틀어쥐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는것 같소.》

사업수첩에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부지런히 적고있는 김만금을 보시며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수첩에다 자꾸 써서는 뭘하겠소. 현실에 나가보면 다 알수 있소.》

김만금은 사업수첩을 덮으며 저으기 붉어진 얼굴로 《예, 알았습니다.》하고 대답을 올리였다.

《농촌에 자주 나가봐야 하오. 함경북도에 같이 갑시다.》

《예.》

《동무가 농업실무에 대한 학습을 하고있는것은 물론 좋소. 그러나 정책적안목을 높이는것이 무엇보다 필요하오. 실무적인 문제들은 농업성이 하면 되는것이고 당농업부는 오늘 우리 혁명앞에 나서고있는 과업과 또한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의 실태, 경험과 교훈에 비추어 어떻게 사회주의농촌건설을 편향없이 전진시키겠는가 하는 지도방법문제를 연구해야 하오. 만일 우리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고 관료주의적인 사업방법과 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사회주의농촌건설, 나아가서 사회주의건설을 전반적으로 진척시켜나가는데서 커다란 장애에 부닥칠것이고 시련을 겪게 될것이요.》

수령님께서 엄숙하고 준절하게 하시는 말씀은 김만금의 흉벽을 울리였다. 혁명과 건설의 령도방법에 대해 수령님께서 오늘 처음 말씀하시는것은 아니였지만 지금 더욱 절절히 받아들이게 되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혁명과 건설의 전과정에서 우리 혁명가들이 잊지 말아야 할 진리를 다시금 강조하시였는데 김만금은 우리 혁명의 현단계에서 그 문제가 특히 현실적으로 중요하며 또 김만금자신을 비롯한 일군들의 정치적안목과 의식수준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있기때문에 안타깝게 강조하시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수상님, 저는 정치정세를 대하는 안목이 낮고 예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진짜 학습을 하겠습니다. 수상님으로부터 부단히 배우겠습니다.》

흥분하여 붉어진 그의 얼굴과 불꽃이 튀는듯 한 눈을 보시며 수령님께서 부드럽게 말씀하시였다.

《서둘러 결의를 말하지 마오. 농촌에 갔다와서 다시 만납시다. 청산리에 나가보오.》

《알겠습니다. 청산리에 곧 나가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퇴근할가? 이런! 벌써 새벽 두시구만!》

수령님께서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씀하시였다.